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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묘지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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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캣
작품등록일 :
2021.12.19 03:33
최근연재일 :
2022.01.18 10:00
연재수 :
27 회
조회수 :
3,5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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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4
글자수 :
138,214

작성
21.12.30 0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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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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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묘지기와 도굴꾼은 한 끗 차이(5)

DUMMY

온몸에 불타오르는 검은색 사기를 두른 데스나이트.

그가 검을 길게 늘어뜨리고, 몸을 한껏 낮춘다.


"온다. 준비해."


누누이 말했듯 나의 실체화는 완벽하지 않다.

시은과 라스는 아마 한두 번의 공격을 한 뒤 영체로 돌아가고 말 것이다.

결국, 그들이 만들 기회는 단 한 번.


'해내지 못하면 죽는다.'


그들이 만들어 줄 한 번의 기회를 살려야만, 살아서 이곳을 나갈 수 있다.


[옵니다!]


콰드드득. 대리석 바닥을 깨부수며 탄성있게 뛰어오른 데스나이트가 일순에 짓쳐들었다.


-크아아!!


눈 깜짝할 새 코앞까지 다다른 아드리안.

하지만 시은이 사방으로 펼쳐낸 점액질 그물이 그의 움직임을 일순 붙잡았다.


하지만 정말로 잠시일 뿐.

결국 데스 나이트가 불타는 검을 휘둘러 그물을 잘라냈다.

실체화의 완성도가 기술의 정교함에 영향을 주는 탓이었다.


[미안! 이게 낼 수 있는 최대한이야!]


그렇게 외친 시은의 몸이 반투명해지며 다시 사람의 모습으로 돌아갔다.

방금 데스나이트를 묶느라 영기가 다한 것이다.


"이시은 나이스!"


어차피 처음부터 시은의 역할은 데스나이트의 몸을 잠깐이나마 묶는 것 뿐.

그새 기술을 완성한 라스가 황금색 빛의 검을 높이 치켜들었다.

그러자 일렁이던 라스의 광검이 형체를 잃고 폭발하며, 묘실 천장에 닿을 만큼 거대해진다.


[심판의 빛!!!!]


라스가 목청이 터져라 외치며 팔을 아래로 내리자,

거대한 빛의 검이 데스 나이트의 정수리부터 덮쳐든다.


쿠과과과과과과광--!!


열쇠의 힘을 한껏 머금은 라스의 파괴력은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이었다.


-크아아아아아!!


검을 위로 치켜든 데스 나이트가 라스의 공격을 받아낸다. 그를 받치는 바닥을 부수고 무릎까지 꿇리긴 했으나, 아직 빛의 검은 데스 나이트를 삼키지 못했다.

[젠장!]


드물게 욕을 하는 라스.

열쇠의 힘이 떨어지는 것보다 먼저 실체화가 풀리기 시작했다. 그의 몸에서 황금색 갑주가 사라지고, 서서히 반투명해져 간다.

하지만.


"그거면 충분하지."


콰가가가가각--


데스 나이트가 라스의 일격을 받아내느라 정신없는 사이.

나는 이미 놈의 지척에 도달해 샷건을 겨눴다.


철컥. 두개골을 조준한 총구에 영기가 모여든다.

어차피 한 두번 쓰고 버릴 샷건.

총이 터지든 말든 상관없이 계속해서 빈 마력석에 영기를 축적시킨다.


"이 날을 위해서 준비했지."


구동체인 마력석의 성질을 바꾸는 건 아직까지도 익숙해지지 않았지만,

마력석에 영기를 충전시키는 법은 비교적 간단했다.

영기를 둘러서 마력석의 형태를 억지로 유지시키면 된다.

그럼 적어도 한 방은 날릴 수 있다.


라스의 실체화가 거의 풀렸을 때쯤. 샷건이 영기를 밀어내는 감각이 왔다. 영기를 담은 마력석에 한계가 온 것이다.


"스읍."


남은 영기를 반대쪽 손으로 보내 야삽에 두른다. 그러자 일렁이는 보라색 기운이 안정적으로 야삽에 스며든다.


라스와 시은이 적을 붙잡아두는 사이, 샷건으로 적을 무력화하고, 야삽으로 한번 더 목을 벤다.

우리의 대 보스전 작전이 완벽히 들어맞기 직전이었다.


-자, 잠까아아안!!! 항복! 항복이다!

"?"


데스 나이트가 다급한 목소리로 항복을 외쳤다.

......하지만 늦어도 너무 늦었다.

이미 내 방아쇠는 한참 당겨진 뒤였으니까.


딸칵. 투콰아앙-!!!!!!!!


샷건이라기 보단 차라리 대구경 라이플에 가까운 발포음이 온 공동을 울렸다.

총구에서 발출된 보라색 폭발이 데스 나이트의 온몸을 휩쓸며 지나간 뒤.

철커덕.

데스 나이트의 검이 잔뜩 부서진 대리석 바닥 위로 떨어졌다.


[와아아!!!! 우리가 이겼어! 이겼다고!!! 기분 개쩔어!]


이시은도 허공을 뺑뺑 돌며 기뻐한다.

아무래도 마지막에 데스 나이트가 백기를 들었던게 좀 이상하지만...... 죽은 놈에게 왜 그랬냐고 묻기도 애매한 상황이다.


일단 눈앞을 어지럽히는 메시지들부터 어떻게 좀 해야지.


[경험치를 얻었습니다.]

[레벨이 상승했습니다.]

......

[레벨이 상승했습니다.]

[스테이터스가 갱신되었습니다.]

[무기 숙련도가 올랐습니다.]


[새로운 업적 달성!]

[던전의 보스를 잡았다. 1/1]

[보상 : 공적치 30000]


레벨이 무려 30가량 올랐다. 내 현재 레벨이 20임을 생각하면 여태까지 쌓아온걸 훨씬 상회하는 경험치를 얻었다는 소리다.

데스 나이트의 레벨이 400이 넘는 상태에서 잡았다면 또 어땠을까 싶지만...... 그랬다면 아마 시은이 멈추기도 전에 내 목이 날아갔을지도 모른다.


'쓸데없는 상상이야.'


나는 고개를 도리도리 저어 잡념을 흩어버리고, 데스 나이트의 유해를 향해 다가갔다.

그리고 땅바닥에 굴러다니던 데스 나이트의 검을 집어들었을 때였다.


띠링. 띠링.


[망자의 유품을 흡수했습니다.]

[성 아드리안의 애검이 플레이어 '이진현'에게 귀속되었습니다.]


"......에휴. 이럴 것 같더라."


힘이 늘어나니까 좋아해야 할 텐데, 어쩐지 짐덩이가 늘어나는 것만 같은 기분이다.

나는 한숨을 푹푹 쉬며 영물함 인벤토리를 열었다.


그리고 시스템 창에 띄워진 항목을 누르자,


[이보게! 투항한 기사를 그렇게 함부로 죽이면 어쩌나!]


하는 고함 소리와 함께,

은빛 갑옷을 입은 콧수염 아저씨의 유령이 포로롱 튀어나왔다.



* * *



"그러니까. 원래는 가볍게 놀아주다가 대줄 생각이었는데, 저 넷이 날 죽이려 하길래 도와줬다?"

[그렇다.]


갑옷 입은 성기사가 팔짱을 낀 채 근엄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저 말이 정말로 사실이라면, 살려준 건 일단 고맙긴 한데......


"그럼 다 끝났으면 얌전히 목이나 내밀면 되는걸, 왜 굳이 저희까지 공격한 겁니까?"

[이 묘실에 수백 년이나 홀로 잠들어 있었다! 그냥 죽기도 아까운데, 조금 놀다가 가면 어디 덧나나? 어차피 네놈들 죽인다고 나가지도 못하는데 내가 뭐하러 그러겠나!]


성기사, 아드리안이 꽤나 분한 듯 콧김을 씩씩 불며 말했다.

어째 갑옷 입은 모양새도 그렇고, 콧수염도 그렇고.

성격마저 괴짜 냄새가 솔솔 나는게, 꼭 돈키호테 같다.


[성기사가 정말로 존재하는 거였군요. 만나 뵈어서 정말로 영광입니다.]


라스가 아드리안 옆에 붙어서 눈을 반짝반짝 빛낸다.

자신이 빛의 힘을 받아 싸우는 만큼, 빛을 섬기던 성기사를 직접 만나서 무척 반가운 모양이었다.


[아니, 그, 뭐, 데스 나이트가 됐긴 한데. 그래. 죽기 전에는 성기사였지. 죽기 전에는. 그나저나 빛의 용사가 아직도 대를 이어가고 있다니 놀랍구만. 뭐... 꼴을 보아하니 이미 죽은 것 같네만.]

[예. 하지만 진현을 만나 다시 업을 수행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다행이 아닐 수가 없지요.]


저렇게 있으니 마치 손주와 할아버지가 대화하는 모습처럼 보이네.

그렇게 둘이 오손도손 말을 이어가는 걸 가만히 지켜보던 도중.

시은이 슥 다가와서 말했다.


[밖에서 사람들 기다리고 있을 텐데. 일단 나가는 게 좋지 않을까?]

"그래, 그래야겠다. 어이, 빛의 사도들! 집에 돌아가서 마저 얘기합시다!“


마침 들어온 입구 쪽에 새로운 게이트가 열려 있었다.


'자동으로 내보내는 기능은 없나?‘


그런 실없는 생각을 하면서 게이트를 향해 발을 내디뎠다.

그런데.


[클리어 조건을 만족하지 못했습니다.]


이런 메시지가 뜨면서 게이트가 다시금 스르륵 닫혔다.

던전 보스를 잡았는데 클리어가 안 됐다고? 이게 무슨 개소리야?


"뭐 알고 계신 거 없습니까?“

[으음...... 내가 이곳의 주인이긴 하지만, 이곳에 관여된 모든 섭리에 대해 이해한 건 아니라네.]

"모른다는 말을 참 길게도 하시네요.“


그러다 시은이 뭔가를 발견했는지 호들갑을 떨며 불렀다.


[진현아! 이진현!]

"왜 불러? 뭐 찾아낸 거 있어?“

[저 안경 쓴 사람 아직 살아있는데?]


아! 하마터면 잊을 뻔했네.


"흐음. 저건 또 어떻게 하나?"


성 아드리안의 영묘로 입장할 때 나타난 에메랄드색 머리의 여자. 베스.


박태민 일행이 날 죽이려 들거라던 그녀의 말이 맞았다.

박태민 파티는 보스를 잡기 전이든 후든, 정말로 그럴 계획을 짜고 있었으니까.

데스 나이트가 이만큼 강하지 않았더라면 저기 시체로 널부러진 건 녀석들이 아니라 나였을 게 틀림 없다.


나는 벽에 처박혀 꼼짝않고 있는 박태민에게 다가갔다.


"저기요. 박태민씨?"


찹찹. 뺨을 치는데 깨어나질 않는다.

하긴. 476레벨 짜리 괴물한테 처맞았는데, 살아남은 게 오히려 용하달까.


하지만 그런 사정을 일일이 배려해 줄 만큼 내가 착한 놈은 아닌지라.


짜악. 짜악.

손을 뒤로 쭉 뻗어 풀스윙하길 한 열 번쯤 했을까.

마침내 박태민이 정신을 차렸다.


"으, 으헉. 이진현씨...? 여긴?"


어. 일어났네?

짜악.


"어이쿠, 실수. 깨어나신 줄 몰랐지."


나는 능글맞게 웃음 지으며 손을 거뒀다. 한쪽 볼이 퉁퉁 부은 박태민을 보며 시은이 꺄르르 웃었다.


"데스 나이트는......?“

"내가 잡았다. 아직도 못 믿겠냐?“


내가 데스 나이트의 유해를 가리키며 묻자, 그걸 본 박태민이 고개를 저었다. 그의 사지육신 중에 유일하게 움직이는 부위였다.


"대체 나한테 왜 그런 거야?“

"당신은, 아니, 넌 내 동생을 죽였다. 그리고 공적치를 빼앗았지. 쿨럭. 내가 복수할 명분은, 충분하지 않나?“

"의절했다며. 그리고 진짜로 내가 죽인 거 아니라니까?“

"......젠장. 그 여자가 꿈에 나타나서 바람만 넣지 않았어도. 쿨럭.“

"그 여자?“

"지금부터 내가 하는 말은 미친 소리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전부 사실이다.“


이후 박태민의 입에서 놀라운 이야기가 줄줄 흘러나왔다.


베스는 내 앞에만 나타난 것이 아니었다.

이미 원정 준비단계에서 박태민의 앞에 나타나, 나에게 했던 것과 비슷한 소릴 했단다.

다만 내용이 조금 달랐다.


"4명을 죽이고 홀로 살아남아야 클리어가 된다고?“

"그래. 쿨럭. 그래서 86번대 중에서도 버려야 할 놈들과 널 데리고 보스룸에 온 거다."


결국 제 친구들까지 전부 다 죽일 심산이었구만.

이거 동생이나 형님이나 쌍으로 나쁜 놈들이네.

그리고.

베스 그년은 애초부터 4명이 죽어야 나갈 수 있게 해놓은 건가?

진짜 악질이 따로 없다.


슬슬 박태민이 숨을 헐떡이기 시작한다.

출혈이 심하고, 주요 장기가 있는 몸 몇 군데가 찌부러져 있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남길 말은?“


박태민은 다시 고개를 저었다.

그러고는 가만히 눈을 감았다.

얕게 헐떡이던 호흡도 점점 가라앉는다.


[갔군.]


아드리안이 박태민을 내려다보며 무덤덤하게 말했다.

하긴. 피붙이도 뭣도 없는 곳인 데 남길 말이 뭐가 있을까.

내가 생각해도 바보같은 질문이었다.


그러다 문득 생긴 의문.


"그러고 보니. 보스룸을 클리어하면 여긴 아예 사라지는 건가?“


이대로 그냥 나가면 이들이 가졌던 모든 장비나 아티팩트도 함께 사라질지도 모르는 일.

그래서 조금 챙겨볼까, 했지만.


[난 절대 반대야! 아무것도 만지면 안돼! 쟤들이랑 같이 있는 거 싫단 말야!]


소스라치게 놀란 시은이 극구 반대를 하는 바람에 그 계획은 무산됐다.

듣기로는 영물함 안에서 만날 수도 있다나 뭐라나.


띠링. 띠링. 띠링.


"아 맞다. 추가 보상이 있을 거라고 했지?“


뭐 얼마나 대단한 걸 걸어 놓으셨길래, 사람 목숨을 넷이나 바쳐야 했을까.

나는 떠오르는 메시지 로그들을 천천히 확인하기 시작했다.


작가의말

아레나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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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불타는 석양 아래(3) 22.01.03 82 6 12쪽
13 불타는 석양 아래(2) +3 22.01.01 117 9 11쪽
12 불타는 석양 아래(1) +3 21.12.31 116 9 12쪽
» 묘지기와 도굴꾼은 한 끗 차이(5) +2 21.12.30 112 12 12쪽
10 묘지기와 도굴꾼은 한 끗 차이(4) 21.12.29 112 12 11쪽
9 묘지기와 도굴꾼은 한 끗 차이(3) +2 21.12.28 120 12 12쪽
8 묘지기와 도굴꾼은 한 끗 차이(2) +2 21.12.27 130 9 12쪽
7 묘지기와 도굴꾼은 한 끗 차이(1) +2 21.12.25 169 9 13쪽
6 로스트 에덴(5) +2 21.12.24 189 12 13쪽
5 로스트 에덴(4) +2 21.12.23 187 8 13쪽
4 로스트 에덴(3) +2 21.12.22 223 16 13쪽
3 로스트 에덴(2) +5 21.12.21 310 57 13쪽
2 로스트 에덴(1) +5 21.12.20 447 68 12쪽
1 Prologue. +19 21.12.20 560 118 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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