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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묘지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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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캣
작품등록일 :
2021.12.19 03:33
최근연재일 :
2022.01.18 10:00
연재수 :
27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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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138,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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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12.28 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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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묘지기와 도굴꾼은 한 끗 차이(3)

DUMMY

-절대로 언데드들을 먼저 공격하지 마세요.


그리 말하곤 미리 착용한 배틀 슈트와 무장을 모조리 풀어 가방에 넣었다.

주변에서 걷던 플레이어들이 의아한 눈빛을 보낸다.

전투를 앞두고 무장을 벗는 사람이 있으면 당연히 그런 반응이겠지.

하지만 관심은 금세 사라졌다. 어차피 전투에 도움 안되는 쪼렙이라고 생각한 건지.


"일단 말대로 하긴 했는데. 이거 정말 맞냐? 대체 그런 공략법은 어디서 찾은 거야?"


세준이 당혹감을 감추지 못한 채 귀에 대고 물었다.

물론 내가 하는 말을 곧이 곧대로 믿는게 이상한 거긴 한데.


"나는 진현 오빠 말 믿어요."


내게 뭔가가 있다는 확신을 한 걸까? 아니면 그냥 맹목적인 믿음 같은게 생긴 걸까.

어느새 환도 두 자루를 등에 매단 검집에 꽂아넣은 세진이 반짝거리는 눈으로 날 쳐다봤다.

"세진아, 너는 왜 항상...... 아니다. 말을 말아야지."


푸 한숨을 내쉰 세준 역시 들고 있던 자동 소총을 어깨에 걸었다.


"뭐. 하고 싶은 말 있으면 지금 해."

"아니 그. 진현이 있는 데서 할 얘긴 아닌 거 같은데."

"그럼 하지 마."

"......"


세준의 말을 빠르게 잘라버린 세진은 다시 생글거리며 내게 물었다.


"그 다음은요?"

"음. 그냥 걸어. 남들이 싸우던 말던 신경쓰지 말고. 혹시 언데드가 다가오더라도 무기에는 절대 손을 대선 안 돼."

"네. 오빠."


......세진이 부쩍 살가워진 건 좋은 일이긴 한데. 어쩐지 적응하기가 어렵다.

처음 임무에 나갔을 때, 걸리적 거린다며 눈에서 한기를 흘려대던 그 모습과 현재의 괴리감이 너무 크다.

그렇다고 오빠 소리가 듣기 싫다는 건 절대 아니지만!


"선발대 2팀 입장합니다!"


인솔자인 박태민이 게이트로 걸어 들어가고. 뒤이어 선발대가 모두 게이트로 들어가기 시작한다.


조금 꺼림칙한 분위기를 풍기는 검붉은 게이트.

해X포터가 9와 3/4 승강장에 처음 들어갈 때도 이런 느낌이었을까?

나는 눈을 질끈 감고서 시커먼 게이트 속으로 발을 내디뎠다.



* * *



도착했나?

눈꺼풀 안으로 밝은 빛이 새어들어 온다.

하지만 눈을 떴을 땐.


"안녕? 또 만났네."


웬 에메랄드색 머리의 처음 보는 여자가 눈 앞에 있었다.

그것도 내가 이 세상에 떨어지기 전날 밤 꾸었던 꿈처럼, 온통 새하얀 방 한가운데서.


"!!"


너 대체 뭐하는 새끼야! 라고 입을 열어 외치려 했지만.


"?"


몸이 움직이지 않는다.

입도 벌려지지 않고, 눈조차 깜빡이지 못한다.

숨도 쉬어지지 않는다. 하지만 괴롭지는 않다.

마치 모든 시간이 멈춘 것처럼......


"맞아. 내가 잠시 시간을 멈췄단다."


차이나 드레스처럼 곳곳이 트이고 몸에 딱 달라붙는 흰색 옷을 입은 여자가 내게 걸어오며 입을 열었다.

그녀가 손을 들어 내 뺨을 부드럽게 감싼다.

정면에서 눈을 마주치자 작게 눈웃음을 흘린다.


"내가 만든 세계는 어때? 재밌니?"


아. 네가 만든 세계라고 하는게 맞을까?

키득. 여자가 웃는 입을 손으로 가리며 말을 이었다.


"아참, 실례. 자기 소개부터 하는게 먼저겠지? 내 이름은 베스라고 해."


베스.

들어본 적 없는 이름이다.

내가 만든 로스트 에덴에도 그런 이름은 들어가지 않았다.


"내가 누군지는 차차 자연스레 알게 될 거야. 네가 왜 이곳에 왔는지, 앞으로 무얼 해야 되는지도."


베스가 혀를 낼름하며 자신의 입술을 훑는다.

온화하고 부드러운 외양과는 달리 요염한 분위기를 풀풀 날린다.


"다만 내가 굳이 이 타이밍에 나선 건...... 한 가지 조언을 하기 위해서."


그렇게 말한 여자가 얼굴을 슥 들이대더니 귀에다 대고 속삭였다.


"이 던전에는 원래 네가 두었던 것보다 조금 더 특별한 보상을 숨겨 놓았단다. 하지만...... 그걸 얻으려면 보스를 죽이고도 플레이어 네 명의 목숨을 추가로 바쳐야 해."


그래서 뭐?

무고한 사람들을 죽이기라도 하란 말인가?

박태민. 그가 나에게 사적인 감정이 있든 없든, 실제로 날 건드릴지는 아직 모르는 일이다.

그런 걱정 자체가 나의 기우일 수도 있고.

그런데 내가 먼저 그들을 적대하라고?


나를 가만히 지켜보던 베스가 손가락을 딱 튕기며 말을 보탰다.


"아참. 스포일러 하나 해줄까? 너와 함께 보스룸에 들어갈 나머지 넷은 널 죽이려 하고 있단다."


이러면 의욕이 좀 생기려나?

새초롬하게 웃은 베스가 치렁치렁한 연녹색 머리를 살랑거리며 뒷걸음친다.


"답은 이미 나왔을 거야. 그렇지?"


그렇다. 저쪽에서 손을 대려고 하면 반항하는 게 당연하다.

이미 그걸 가정한 작전도 다 세워두었고, 그대로만 흘러간다면 추가 보상까지도 모두 얻을 수 있다.


하지만 저 말을 그대로 믿자니 께름칙하다.

오히려 나를 혼란스럽게 만들려는 개수작이 아닐까?


"믿는 건 네 자유란다. 난 조금 더 재밌는 관람을 위해 개입했을 뿐이니까. 어머. 혹시 말해주지 않는 편이 더 재밌었으려나? 호호호. 그래도 맘에 드는 장난감이 사라지는건 바라지 않는 걸."


혼잣말처럼 중얼거리던 여자가 점점 뒤로 멀어져 간다.


한 발짝. 두 발짝.

그리고 세 발짝이 되었을 때.


화악.

멈춰있던 감각이 해일처럼 일시에 몰려온다.

눈 앞이 일순 어두워지더니, 꿉꿉한 냄새가 확하고 풍겨와 코를 괴롭힌다.


"좌측이 뚫렸다!"

"젠장! 바닥에서 튀어나온다는 말은 없었잖아!"

"치유사! 치유사 어딨나!?"

"끄아아아악--!"


눈앞에 펼쳐진 동굴형 던전 안에선 이미 전투가 진행 중이었다.

내 옆의 세준과 세진은 가만히 서서 다른 이들의 싸움를 지켜보고 있다.

아까는 정말로 시간이 멈췄던 걸까?

남매를 빤히 바라보자 세준과 세진이 물음표를 날렸다.


"왜? 우리도 싸워?"

"아뇨. 갑시다."


막 게이트를 빠져나온 팀들도 대형을 잡고 몰려오는 언데드에 맞서기 시작한다.


"근데 진짜네. 언데드들이 이쪽은 쳐다도 안봐. 왜 저러지?"

"간단히 설명하자면...... 이곳은 성 아드리안의 관이 있는 영묘. 그리고 저 언데드들은 죽어서도 영묘를 지키는 묘지기들이죠."

"아. 그래서 오빠가 무기를 들면 안된다고......"

"맞아. 자신을 적대하는 도굴꾼으로 인식하고 달려들거든."

"넌 그런 정보는 대체 어디서 찾았냐? 신통방통하네. 혹시 2회차라던가 뭐 그런거 아니야?"

"2회차였으면 제가 공동묘지같은데서 살았을까요."

"하긴. 그건 그래."


물론 살긴 했겠지.

실제로 묘지기가 되면서 얻은 '영기'라는 능력이 어지간히 편한 게 아니니까.


영기는 마나를 흩뜨린다.

덕분에 순수 마나로 이루어진 마법이나 스킬은 대부분 영기 장막으로 파훼할 수 있다.


공격시에도 마찬가지. 영기를 두른 삽은 나보다 강한 적의 마나 실드도 두부처럼 손쉽게 베어낸다. 이미 마더 토벌 때에도 증명된 사실이다.


아직은 내 레벨이 낮아서 정면으로 맞부딪히면 스탯 차이로 밀릴 확률이 높지만...... 저 두 가지 활용법 만으로도 영기에는 충분한 포텐셜이 있다.


그러니까 2회차였더라도 나는 묘지기를 골랐을 것이다.

애초에 마나 불감증 특성을 타고난 지라 다른 선택지가 없기도 하고.


"이봐! 와서 좀 거들어!"


가죽벨트의 민머리 거한이 제 몸집만한 도끼를 붕붕 휘두르며 신경질적으로 소리쳤다.

나는 일부러 새하얀 이가 드러나게 씩 웃으며 말했다.


"86번대가 지켜주시기로 했잖습니까?"

"이런 빌어먹을!"


도끼맨이 앓는 소리를 냈지만 더이상 내게 신경을 할애할 여유는 없어보였다.


도끼가 앞에 짓쳐드는 해골 전사의 두개골을 부순다.

곧바로 다른 해골의 칼날이 목으로 날아든다.

도끼 자루로 튕겨내고 다시 휘두른다. 또 두개골을 부순다.

그렇게 수십 번을 반복하지만, 거한이 팔을 쉴 틈은 결코 오지 않는다.

언데드가 물밀듯이 계속 밀려오는 탓이다.

동굴 천장을 타고 기어오는 놈들이 있는가 하면, 땅밑을 뚫고 올라오는 녀석들도 있다.


하지만 이쪽도 결코 밀리진 않는다.


"하아압!"


박태민이 스태프를 휘두르자, 얼음으로 만들어진 창 다섯 개가 해골 수십마리를 분쇄하며 관통한다.

그러고는 휘리릭 몸을 돌리며 가까이 붙은 해골들을 스태프로 쳐낸다.

스태프 끝에서 폭발이 일어나 좀비들을 산산조각 낸다.

물결처럼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움직임. 그 끝에는 언제나 마법이 작렬한다.


'배틀 메이지.'


파티원의 보호를 받으며, 긴 주문을 영창해 강력한 마법으로 적들을 일거에 쓸어버리는 원소술사, 워록 등의 마도사들과는 다르다.


그들은 마나로 신체를 강화시키고, 적과 아군 사이에 파고들어 효과적임과 동시에 빠르게 발동하는 마법을 이용해서 싸운다.


박태민의 마나로 강화된 스태프가 공중을 빙글빙글 돌며 적들을 날려버리더니, 다시 휙 하고 손에 돌아와 잡힌다.


그가 전투하는 모습은 영기의 사용법을 고민하던 나에게도 큰 영감을 주기 충분했다.


"와. 베이스 최강자 답네. 시원시원하구먼."

"나도 저렇게 싸울 수 있으면 좋을텐데."


세진이 등에 맨 환도를 매만졌다. 그녀의 직업은 그림자 무사.

마나로 분신을 만들거나 그림자 사이로 이동하는 등 전투 방법은 다양하지만,

넘어온 지 1년이 지난 아직까지도 세진의 전투법은 그림자로 또다른 팔을 만들어 사용하는 정도다.


물론 그녀의 재능이 모자라서가 아니다.


나도 영기로 제3의 팔을 만들어 연습하고 있지만, 한 달여를 이거 하나에 매달렸음에도 실전에서 쓸 정도는 되지 못했다.

이 모든 게 로스트 에덴이 쓸데없이 현실적인 탓이다.


내가 만든 게임에서는 그저 원하는 스킬을 마우스 커서나 키보드로 누르면 끝이었다.

하지만 로스트 에덴은 다르다.

자신이 가진 오감 말고도 그 이상의 무언가를 느껴야 한다.


마나. 혹은 영기. 혹은 그 외.

무엇이 되었든 그걸 전투에서 사용하려면 수없이 많은 훈련과 성찰이 들어가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박태민이 더더욱 대단한 것이고.


"모두 뒤로 비켜주세요!"

"다들 물러나! 대형 마법 날아간다!"


지휘에 따라 전위에 서있던 플레이어들이 황급히 뒤로 빠지며 밀집 대형을 만든다.


천장을 타고 오는 놈들은 사수들이 화살과 탄환으로 떨어뜨리고,

바닥을 파고 올라오려는 놈들은 신관들이 힘을 모아 펼친 신성한 영역에 막힌다.


그리고 마침내.

가장 뒤에서 86번대 정예들의 보호를 받으며 주문을 영창하던 여자가 스태프를 치켜들었다.


"만개하라! 얼음의 꽃잎이여!"


허공에 떠있던 푸른색 마법진이 눈싸라기처럼 사르르 흩어져 스태프 끝에 맴돌더니,


솨아아아아---


일제히 퍼져 온 동굴을 휩쓴다.


"와..."


시야를 빼곡히 수놓은 빙설의 꽃잎이, 동굴에 있는 모든 살아있는 것과 죽은 것에 달라 붙는다.


쩌저적-


꽃잎이 붙은 것들은 모두 얼어붙어 때아닌, 혹은 때늦은 종말을 맞이한다.

그 어떤 폭발음도, 비명도 없이.


"우...우와아..."

"급이 다르네. 급이."


세진은 눈을 동그랗게 뜨며 경악하고, 세준은 씁쓸한 표정으로 쯧하며 혀를 찼다.


"유명한 사람인가요?"

"어. 근데 나도 직접 보는 건 처음이야. 몸이 약해서 은퇴했다고 들었는데?"


그래서 내가 몰랐구나.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저 멀리 그녀의 모습을 보았다.

언뜻 보이는 블루블랙의 머리 색과 깔맞춤한 로브.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털썩.

방금 걸로 탈진했는지 주변의 부축을 받는 모습이 보였다.


'이번 원정에 공을 들이긴 했구나.'


아파서 은퇴했다는 사람을 불러올 정도면 말 다 했지.

나는 다시 그녀에게서 관심을 끄고 앞을 바라보았다.


"원정대, 앞으로 전진!"


박태민의 힘찬 목소리가 온통 새하얀 동굴 안에 웅웅 울려 퍼졌다.


작가의말

아레나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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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내 안에 무언가가 있다(1) 22.01.18 27 2 9쪽
26 B-84(5) 22.01.17 34 2 10쪽
25 B-84(4) 22.01.15 38 2 10쪽
24 B-84(3) 22.01.14 43 1 11쪽
23 B-84(2) +2 22.01.13 39 2 12쪽
22 B-84(1) +2 22.01.12 47 2 12쪽
21 캐러밴(5) +3 22.01.11 62 4 12쪽
20 캐러밴(4) +6 22.01.10 57 7 12쪽
19 캐러밴(3) +2 22.01.08 65 6 12쪽
18 캐러밴(2) +2 22.01.07 74 13 11쪽
17 캐러밴(1) 22.01.06 70 13 13쪽
16 불타는 석양 아래(5) 22.01.05 77 11 11쪽
15 불타는 석양 아래(4) 22.01.04 83 12 12쪽
14 불타는 석양 아래(3) 22.01.03 82 6 12쪽
13 불타는 석양 아래(2) +3 22.01.01 117 9 11쪽
12 불타는 석양 아래(1) +3 21.12.31 117 9 12쪽
11 묘지기와 도굴꾼은 한 끗 차이(5) +2 21.12.30 112 12 12쪽
10 묘지기와 도굴꾼은 한 끗 차이(4) 21.12.29 112 12 11쪽
» 묘지기와 도굴꾼은 한 끗 차이(3) +2 21.12.28 121 12 12쪽
8 묘지기와 도굴꾼은 한 끗 차이(2) +2 21.12.27 131 9 12쪽
7 묘지기와 도굴꾼은 한 끗 차이(1) +2 21.12.25 169 9 13쪽
6 로스트 에덴(5) +2 21.12.24 189 12 13쪽
5 로스트 에덴(4) +2 21.12.23 188 8 13쪽
4 로스트 에덴(3) +2 21.12.22 223 16 13쪽
3 로스트 에덴(2) +5 21.12.21 310 57 13쪽
2 로스트 에덴(1) +5 21.12.20 447 68 12쪽
1 Prologue. +19 21.12.20 560 118 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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