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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묘지기가 되었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퓨전

키캣
작품등록일 :
2021.12.19 03:33
최근연재일 :
2022.01.18 10:00
연재수 :
27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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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138,214

작성
21.12.23 0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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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3쪽

로스트 에덴(4)

DUMMY

로스트 에덴(4)






"우욱...욱."


시발.

시발. 시발.

시발. 시발. 시발. 시발...!


"우웨웩--"


몇번이나 속을 게워냈다. 하지만 좀전의 광경을 떠올리자 자꾸만 뭐가 또 올라온다.


어두운 굴 속에서 형형한 붉은 안광과 함께 나타난 '마더'.

다른 괴물 개미들과는 달리 눈처럼 새하얀 신체를 지닌 그 괴물은, '아름다웠다'.


이상한 성욕을 지닌 놈들에게 내다 팔면 부르는게 값이라고 생각될 만큼...... 아름답고, 청초하고, 가녀리고, 어딘가 애달파 보이기 까지 하는.


그런 감상이었다.


......양쪽으로 갈라지는 턱주가리에서 빨대가 튀어나오기 전까진 말이다.


"우욱."


그 광경을 떠올리자 다시 한 번 욕지기가 올라온다.


인간이 체액을 빨아먹혀서 풍선처럼 쪼그라드는 모습을 실시간으로 본 적이 있는가?


난 있다. 그것도 채 1미터가 떨어지지 않은 거리에서. 심지어 마더년은 내가 실눈뜨고 있는걸 어찌 알았는지, 이쪽을 보며 윙크까지 날렸다.


[그런 취향이셨습니까?]

"개소리하지마."

[윙크를 보고 맥박수가 잠깐동안 크게 뛰신걸 확인했습니다. 하지만 괴물과의 로맨스는 결코 이루어질 수 없는...]

"아 진짜! 아니라고!!!!"


빼액하고 소리를 지른 난 한숨을 쉬며 고개를 숙였다. 그런 그로테스크한 광경을 보면서 내가 그랬다고? 그럴리가 없다. 하지만 라스가 그런 걸로 사람을 놀리거나 거짓말할 놈은 아니고, 실제로 내가 마더를 보고나서 첫인상도 아름답니 가녀리니 하는......


"이런 시발. 나도 슬슬 미쳐가나보다. 흐흐."

[진현. 당신은 충분히 노력했습니다. 진현이 보인 숭고한 희생은...... 로스트 에덴의 다른 플레이어님들께도 분명 지대한 영향을 미치게 될겁니다.]


라스가 그렇게 위로하며 내 어깨에 손을 얹었다. 그런데.


치지익--......


"?"


뭔가 타는 소리가 난다. 눈을 돌려보니, 라스가 손을 얹은 내 어깨부근의 끈끈이가 검은 연기를 내며 타고 있다.


"어. 이거 설마?"


나는 서둘러 영기를 끌어올린다.


[영기 장막].


몸을 보호하는 보라색 영기의 불꽃을 전신에 두르자,


치지이이이이익----


끈끈이가 타서 철퍽철퍽하고 바닥에 떨어진다. 라스도 놀란 듯 눈이 휘둥그래져서 날 쳐다본다. 나는 엄지를 척 들었다.


"라스. 나이스."

[이건...... 정말 엄청난 발견이군요. 영기가 마나를 흩어버렸습니다.]


영기가 마나를 흩어버렸다. ......아. 어쩐지 돌이켜보면 조금 이상한 점이 없지는 않았다.


영기를 얻고난 직후 보러간 전투원 테스트.


마나 실드를 뚫어야 적에게 상처를 낼 수 있는 만큼. 테스트 역시 마나 실드를 두른 허수아비를 처리하는 걸로 되어 있었다.


그때 영기를 두른 삽으로 단번에 허수아비를 가르면서 테스트를 통과했는데, 시험관이 놀라면서 '이걸 한 번에 자른 사람은 처음 봤다'고 했었지.


그동안은 일일 퀘스트로 레벨을 좀 올려둬서 그런 줄 알았다.


[묘지기] 직업의 일일 퀘스트는 땅파기 100회. 이걸 삼개월을 꾸준히 하다보니 레벨이 어느새 10까지 올라 있는 상황이었다.


반면, 다른 신병들은 베이스에 도착해, 적성을 찾자마자 허수아비를 상대했으니. 당연히 렙빨로 차이가 있지 않을까? 하고 어렴풋이 생각했었다.


그러나. 만약 그게 렙빨이 아니라 영기 자체의 특성이었다면?


'슬슬 탈출로가 보이는데?'


이곳에서 탈출할 갖가지 아이디어가 번뜩이기 시작했다.


"라스. 여기 잡혀올때 들어온 통로. 기억해?"

[워낙 구불구불하고 갈래길이 많아서 전부 기억하진 못했습니다. 죄송합니다.]

"아니 괜찮아. 선택지 중에 하나가 사라졌을 뿐이니까."


나머지 선택지 중에서 가장 효과적인 방법을 찾으면 된다.


그리고... 나와 라스가 연구한 영기에 대한 모든 결과물, 그리고 영기의 특성을 활용한다면. 마더를 잡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단 마더의 둥지가 발견되면, 개인으로 움직이는 헌터들을 비롯한 베이스 내의 모든 플레이어가 마더를 찾아 나선다.


일단 마더만 죽인다면 통제를 잃은 개미들은 우왕좌왕하며 저들끼리 싸우다가 자멸해버리기 때문이다.


몇몇 사람들은 폭렙의 기회가 사라진다며 아쉬워하지만.


인명피해가 늘어날수록 마더의 힘이 강해진다는 건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라 굳이 불만을 겉으로 드러내진 않는다.


어쨌든 대 개미전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마더의 사살. 마더를 먼저 죽이고 개미들이 전부 자멸할 때까지 숨어서 기다리기만 하면 되는 일이다.


그리고 내겐 그럴 능력이 있다.


마나 실드를 두부처럼 잘라버리는 영기 삽.

그리고 라스가 있으니까.




* * *




스르륵. 스르륵.

석벽에 끈적이는 살점이 다닥다닥 붙은 커다란 공동.

그곳으로 이어진 새카만 굴에서, 마치 미끄러지듯 움직이는 마더의 새하얀 동체가 모습을 드러냈다.


"......"


거미줄처럼 벽에 딱 달라붙어, 먹잇감을 구속하는 끈적이들. 마더는 그 중에서도 가장 좌측을 향해 나아간다.


"......"


진현은 그저 곧은 눈빛으로 마더를 바라본다.

온통 새하얗고 긴 생머리.

그리고 머리색만큼 새하얀 피부와 이마에 박힌 붉은 돌, 조각상처럼 오밀조밀한 얼굴에 차가운 인상을 지닌 소녀.


하지만 진현의 눈빛 역시 아무런 흔들림이 없다. 그는 두 눈을 부릅뜬 채 정면으로 마더를 응시한다.


"......"


마침내 마더가 온몸이 구속된 진현의 앞에 선다.

이제 조금 있으면 마더의 턱주가리가 양갈래로 벌어지며, 안에서 길다란 죽창같은 빨대가...


"저기."

"......?"


진현의 얼굴이 순간 당혹으로 물든다. 마더. 그녀가 입을 열었지만, 그건 빨대를 꺼내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나랑 대화좀 할래?"




* * *





"나는 한국에 살던 평범한 대학생이었어."


얘가 갑자기 무슨 소릴 하는 걸까. 진현은 흔들리는 눈빛으로 마더 근처의 바닥을 훑었다. 하지만 아무런 반응도 없었다.


"남해로 놀러가다가 고속도로에서 교통사고가 났고, 정신을 차려보니까 웬 좁고 끈적한 액체 속이었어. 그러다가 바깥을 보게 됐을땐."


마더가 쓴웃음을 지으며 제 몸을 슥 둘러보곤 다시 말을 이었다.


"이 모양 이 꼴이었지. 그땐 더 작았지만. 근데 정말로 힘든건 뭐였는지 알아?"


"퀸. 그 여자가 자꾸 내 머릿속으로 말을 걸어."


"인간들을 잡아먹어라. 잡아먹고 강해져서 내게로 오라. 라고."


마더의 말에 진현이 다급한 표정으로 눈짓을 하지만, 여전히 아무런 반응도 없다. 마더는 진현의 이상한 상태에도 신경쓰지 않고 계속 말을 이었다.


"여기. 이거 보여? 이게 퀸과 정신이 연결된 더듬이가 있던 자리야."


마더가 고개를 약간 숙이자 정수리 부근에 땜빵처럼 구멍난 상처 두 개가 보였다.


"퀸이 많이 화났을거야. 모든 개미들을 멀리 내보내긴 했지만, 퀸이 강제로 개미들의 통제권을 빼앗으려 들고 있어. 아마 몇 분 뒤면 개미들이 나와 너를 죽이려고 들겠지."

"......원하는게 뭐지?"

"자유. 그리고 안전."


진현이 이번엔 아래를 향해 작게 고개를 주억였다. 긍정의 표시. 그러자 마더 바로 옆의 흙바닥이 불쑥 올라오더니.


"푸하."


또다른 진현이 삽을 들고 모습을 드러냈다.


"?!"


붉은 눈의 인간형 괴물이 깜짝 놀라 옆걸음질을 쳤다.


"너, 너는...? 어떻게 둘이 된거지? 분신술?"

"아니."


다시 벽에 붙어있던 진현을 돌아보자, 그의 신형이 서서히 보라색 영기로 흩어지다가 다른 모습으로 완전히 변모했다. 노란 머리에 푸른 눈. 라스였다.


[이 여자는--]

"그래. 나도 알아."


원래 작전은 이랬다. 영기를 이용해 변신한 라스가 진현의 묶인 모습을 연기한다. 그리고 마더가 빨대를 꽂는 그때, 땅을 파고 들어가 숨어있던 진현이 달려들어 무방비 상태의 마더를 죽인다.


하지만 마더의 돌발행동으로 작전이 조금 틀어졌다.


"마더. 아니, 뭐라고 불러야 하지?"

"이시은이야."

"그래. 이시은. 영혼을 볼 수 있는 라스가 보증했으니 인간이었던 것까지 의심하진 않을게. 하지만,"


진현이 팔을 들어 어딘가를 가리킨다. 꺼멓게 죽은 미라들이 붙어있는 살점의 벽.


"너는 살인자고 괴물이야. 이미 네 명이나 되는 사람들을 잡아먹었다."


"나도... 나도 좋아서 그런건 아니었어. 나라고 이 꼴이 좋은 줄 알아? 평범하게 학교 다니면서, 공부하다 스트레스 받으면 카페에서 커피도 한잔 하고. 가끔 여행도 다니고, 연애도 하고. 그런... 그런 평범한 학생이었는데!"


마더가 울듯 말듯한 찡그린 표정으로 절규하듯 외친다.


"퀸이 자꾸 내 머릿속을 헤집어! 더듬이를 뜯은 지금도 어째서인지 계속 시키고 있어... 널 죽이라고. 어서 죽이라고! 하지만..."

"......더 이상은... 싫어."


마침내. 마더의 붉은 눈에서 눈물이 또르르 흘러내렸다. 마치 먹물처럼 검은 색의 눈물.

하지만 저게 과연 악어의 눈물일까, 아니면 정말로 서글퍼서 흘리는 눈물일까...... 진현은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았다.


"......역시 믿기 힘들겠지."

"하나만 묻자. 왜 나였냐?"

"그건......"


마더는 망설이는 표정을 짓다가 고개를 절레절레 가로저으며 입을 열었다.


"못믿겠으면 됐어. 어차피 기대하지도 않았고. 그냥......들어줄 사람이 필요했을 뿐이야. 이제 죽여줘. 더이상 이런 모습으로 살고 싶지 않으니까."


순백의 괴물이 조용히 눈을 감고 고개를 늘어뜨렸다. 그러자 머리에서 흘러내린 한 방울 피가 얼굴을 타고 아래로 떨어졌다.


"......젠장."


솔직히. 믿으려면 못 믿을 것도 없다.

하지만, 이대로 손을 잡고 둥지를 빠져나가면?

그다음은 뭐 어쩌란 말인가?

괴물을 데리고 베이스로 귀환하자고?

아니면 불쌍한 마더와 함께 오손도손 둥지에서 사나?


진현이 해줄 수 있는 건 결국 아무것도 없다. 어쩌면 마더......이시은 본인도 이미 알고 있었을지 모른다.

그저 자살을 결심하기 전, 인간다운 대화를 나눠보고 싶었을 수도 있다.

마지막까지 인간으로 남고 싶어서.


"미안하다."


무력하다.

자신은 너무도 무력하다.

영기라고 하는, 아직도 가능성이 많은 능력을 겨우 손에 넣었건만.

아직 아무런 기반도 없는 그가 할 수 있는 거라고는.


"시체는...... 양지바른 곳에 묻어줄게. 내 직업이 마침 묘지기거든."

"...그래. 잘 부탁할게."


시은이 검은 눈물을 흘리며 새하얀 웃음을 지었다.

--그리고 그게 86번 베이스에 주변에 태어난 개미들의 수장, 마더가 보인 마지막 표정이었다.


푸슛.


진현이 영기를 머금은 삽날을 가로로 긋자, 마더의 순백색 머리카락이 사방으로 흩날리며 땅으로 떨어졌다.


그리고 귓가에 울리는 경박한 소리와 함께 올라오는 낯익은 메시지 로그.


띠링. 띠링. 띠링.


[경험치를 얻었습니다.]

[레벨이 상승했습니다.]

[레벨이 상승했습니다.]

[레벨이 상승했습니다.]

[레벨이 상승했습니다.]

[레벨이 상승했습니다.]

[레벨이 상승했습니다.]

[레벨이 상승했습니다.]

[레벨이 상승했습니다.]

[스테이터스 포인트가 갱신되었습니다.]

[무기 숙련도가 올랐습니다.]


[새로운 업적 달성!]

[중간 보스급 몬스터를 잡았다.(1) 1/1]

[보상 : 공적치 50000]


레벨이 8이나 오르고, 공적치도 5만씩이나 얻었지만.

진현은 어쩐지 영 기쁘지가 않았다.


"하...... 살긴 살았는데. 기분 개같네."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진현은 충분히 고민했고, 옳은 결정을 내렸다고 생각합니다.]

"옳은 결정. 그래. 옳은 결정이었지."


아마 지금쯤 바깥은 개미들로 난리가 났을 거다. 마더를 죽이기 위해 전진하던 지원군들의 피해도 줄겠지.


털썩. 맥이 탁 풀려서 바닥에 드러누웠다.

죄책감...은 아니다.

애초에 능력이 안됐던 거니까.

그렇다면 찝찝함? 아니면 무력함?

내가 느끼고 있는.

그리고 느껴야 할 감정은 대체 뭔가.


"기분 개같네.“


그렇게 누워서 한숨을 푹푹 쉬고 있던 도중.

라스가 땅바닥에서 무언가를 발견하더니 진현을 불렀다.


[진현. 마더의 시체에서 뭔가가 나왔습니다.]

"응? 아. 전리품이 있었구나. 걔도 일단은 몬스터였으니까......"


고개를 돌리자 손에 잡힐만한 거리에 붉은 색 돌멩이 같은게 보였다.

이시은의 이마에 붙어있던, 길쭉한 조약돌처럼 생긴 보석이었다.

그리고 그걸 집어들자.


"어?"


멀쩡하던 보석이 일순 모래알처럼 부스러지더니, 손을 타고 흘러들어오기 시작했다.


작가의말

스토리 아레나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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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내 안에 무언가가 있다(1) 22.01.18 27 2 9쪽
26 B-84(5) 22.01.17 34 2 10쪽
25 B-84(4) 22.01.15 38 2 10쪽
24 B-84(3) 22.01.14 42 1 11쪽
23 B-84(2) +2 22.01.13 38 2 12쪽
22 B-84(1) +2 22.01.12 46 2 12쪽
21 캐러밴(5) +3 22.01.11 62 4 12쪽
20 캐러밴(4) +6 22.01.10 57 7 12쪽
19 캐러밴(3) +2 22.01.08 65 6 12쪽
18 캐러밴(2) +2 22.01.07 74 13 11쪽
17 캐러밴(1) 22.01.06 70 13 13쪽
16 불타는 석양 아래(5) 22.01.05 77 11 11쪽
15 불타는 석양 아래(4) 22.01.04 83 12 12쪽
14 불타는 석양 아래(3) 22.01.03 82 6 12쪽
13 불타는 석양 아래(2) +3 22.01.01 117 9 11쪽
12 불타는 석양 아래(1) +3 21.12.31 116 9 12쪽
11 묘지기와 도굴꾼은 한 끗 차이(5) +2 21.12.30 112 12 12쪽
10 묘지기와 도굴꾼은 한 끗 차이(4) 21.12.29 112 12 11쪽
9 묘지기와 도굴꾼은 한 끗 차이(3) +2 21.12.28 120 12 12쪽
8 묘지기와 도굴꾼은 한 끗 차이(2) +2 21.12.27 130 9 12쪽
7 묘지기와 도굴꾼은 한 끗 차이(1) +2 21.12.25 169 9 13쪽
6 로스트 에덴(5) +2 21.12.24 189 12 13쪽
» 로스트 에덴(4) +2 21.12.23 188 8 13쪽
4 로스트 에덴(3) +2 21.12.22 223 16 13쪽
3 로스트 에덴(2) +5 21.12.21 310 57 13쪽
2 로스트 에덴(1) +5 21.12.20 447 68 12쪽
1 Prologue. +19 21.12.20 560 118 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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