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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유자 님의 서재입니다.

행복의 연금술 가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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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녹색유자
작품등록일 :
2021.10.08 16:53
최근연재일 :
2022.01.13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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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10.19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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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23쪽

23화

DUMMY

화이트플레인에서 골든포트로 가는 길은, 짐마차 두 대가 동시에 오갈 수 있을만큼 넓었고 또 매끄러웠다. 그 덕분에 펠릭스와 올리버, 실비아는 이번만큼은 들뜬 마음으로, 아무런 걱정없이 넓은 대로를 걸어갈 수 있었다.


“이렇게까지 멀리 나온건 처음이에요.”


실비아는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말했다. 여전히 도로 양 옆으로는 드넓은 밀밭이 펼쳐져, 아직 수확되지 않은 밀들이 바람에 물결처럼 일렁이고 있었다.


“그래요? 다음에는 더 멀리 나갈지도 몰라요.”


“네? 이것보다 더 멀리요?”


“어쩌면요. 운이 좋다면 모를까.”


“펠릭스. 괜히 겁주는거죠?”


펠릭스는 대답하지 않고 웃음으로 얼버무렸다.


“걱정마. 만약 그럴일이 생긴다면, 그 때는 마차를 빌려 타면 될 일이니까.”


“올리버. 하지만, 그럼 여행 도중에 약재를 얻을 가능성이 줄어들잖아요.”


“실비아. 그 말에도 일리는 있다만, 지금까지 여행을 하면서 주운 재료라고는 불나무껍질 하나밖에 없잖아? 그래서야 수지타산이 안 맞는다고.”


“그건 그렇지만······”


“뭐, 그건 그 때 가서 생각할 일이죠. 일단은, 골든포트로 가는 발걸음이나 재촉하자고요.”


“그러고보니, 골든포트에는 뭐가 있나요?”


“온갖게 다 있지.” 올리버가 웃으며 대답해주었다.


“어떤 것이요?”


“극장, 공연장, 전시장, 광장, 시장, 경매장, 재판장, 처형장, 하역장, 작업장, 그리고 그 모든 것들이 존재할 수 있도록 만들어준 거대한 항구.”


“엄청나네요.”


“그래. 아마 실비아 네가 좋아할 만한 것들이 많을거다. 사실, 지금까지 귀족의 취미에 어울릴 만한 곳에 다녀간 적은 없으니까.”


“아치볼트 자작의 성에 다녀왔잖아요?”


펠릭스가 끼어들었다.


“하지만, 거긴 너무 살풍경했다고요. 성이라기 보다는 무슨 수도원에 가까웠는걸.”


“그래. 그런 감이 없잖아 있었지. 뭐, 이번에는 훨씬 더 괜찮을거야. 그런데, 실비아. 돈은 충분해?”


“돈이요?”


“귀족의 취미를 즐기려면 돈이 꽤 많이 필요하잖아?” 올리버가 웃으며 묻자 실비아는 잠시 걸음을 늦추며 주머니를 뒤적거렸다. 그녀는 주머니의 주둥이를 묶은 끈을 살짝 풀어 안을 보고는, 조금 흔들리는 눈으로 주머니를 도로 묶었다.


“뭐, 돈이 없어도 즐길 수는 있어요. 예전에는 약 한두가지만 만들어주면 온 마을사람하고 친구가 될 수 있었는데······”


“펠릭스. 그런 시대도 끝났다니까. 예전에는 귀족이고 평민이고 크고작은 잔병치레가 많았으니 그랬다지만, 요즘 사람들은 다들 건강하다고. 예전처럼 연금술사를 두 팔 벌려 반기는 곳은 그리 많지 않아.”


“딥우드쯤 된다면 모를까요.”


실비아도 옆에서 거들자 펠릭스는 입을 비죽이며 뭐라고 작게 중얼거렸다.




마차가 오가는 길을 따라 한동안 걷자, 마침내 해질녘이 다 되어서야 커다란 회색의 성문이 저 멀리 모습을 드러냈다. 성문 위에 걸린 반짝이는 방패와 배의 문장이 비스듬한 햇볕을 받아 눈부시게 번쩍거리고 있었다.


“다 왔군요. 저기에요.”


펠릭스는 길 저편의 성을 가리키며 말했다.


“조금만 더 힘을 내 보죠.”


한 걸음, 두 걸음. 계속해서 걸음을 옮겨 마침내 성문 앞에 도착했다. 경비병들에게 신원 증명서를 내보이자, 그것을 확인한 경비병은 펠릭스에게 목례를 올리고, 조그만 뿔나팔을 독특한 리듬으로 불었다. 그러자, 성문에 연결된 거대한 금속 도르래가 웅장한 소리를 내며 성문을 양 옆으로 서서히 열어젖혀 골든포트의 찬란한 도시 안으로 그들을 안내했다.




골든포트는 모든 면에서 그동안 실비아가 보아 온 곳들 중 단연코 최고였다. 거리를 오가는 사람들의 숫자 뿐만 아니라, 그들이 입고있는 의복의 질이나 얼굴 표정조차도 그야말로 최고였다. 대부분 그럴싸한 벽돌로 만든 석조 건물에, 가끔 보이는 목조 건물도 바닷바람에 뒤틀린 흔적이라고는 전혀 없었다. 도시 한 가운데 교회의 종탑에서 종소리가 울려퍼지자, 종탑 위에 앉아 쉬던 새 떼들이 일제히 하늘 위로 날아올라 해질녘의 붉은 하늘과 하얀 구름을 배경으로 멋진 장관을 이루었다. 거기서 고개를 내려 아래를 보니, 활기로 가득찬 시장 거리와 그것보단 훨씬 점잖은 상가 거리가 양 옆으로 늘어서 있었다. 그리고 두 거리가 만나는 광장에는 음유시인이 구경꾼들을 거느리며 조그마한 류트를 연주하며 즉흥곡을 부르고 있었으며 그 건너편에서는 음유시인을 힐끗힐끗 바라보며 새하얀 캔버스 위에 물감으로 그 모습을 빠르고 가볍게 그려내는 젊은 화가가 있었다.


이 모든 풍경들을 돌아보던 실비아는, 고래의 울음소리같은 뱃고동 소리를 듣고 고개를 돌려 먼 바다로 뻗어있는 항구를 돌아보았다. 거의 성채만큼이나 거대하고 웅장한 배들이 항구에 정박하여, 돛대를 접고 수많은 사람들이 화물을 옮기고 있었다. 막 돛을 이리저리 접으며 항구로 들어오는 배도 한 척 있었는데, 그 당당함과 위엄이란 마치 개선장군과도 같았다.


“멋져요!”


실비아는 이것보다 더 정확한, 더 풍부한 감상이 있을까 잠시 생각했지만, 다시한번 같은 말을 했다.


“정말 멋져요!”


“그렇지?” 옆에서 올리버가 괜히 으쓱거리며 말했다. “이 곳이 마음에 들 거라고 했잖아. 어때, 직접 보니까?”


“정말, 정말 멋져요! 세상에, 하늘 아래 이런 곳이 다 있었다니······”


“원 참. 공작령에라도 갔다가는 까무러치겠어요, 실비아!”


“네? 여긴 공작령이 아닌가요?”


“아니야. 여긴 자유도시거든. 성주는 있지만 영주는 없어. 무슨 상인길드 조합장이 성을 샀을거야 아마.”


“그렇군요.”


“그렇죠. 하지만, 별로 중요한 사실도 아니니까 그딴 것은 잊어버려요.”


펠릭스는 이제 구경은 끝났다는듯 항구쪽을 향해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어디가요?”


그러자 펠릭스는 뒤를 돌아보며 씩 웃었다.


“골든 포트의 최고 구경거리를 보러요.”


“그게 뭔데요?”


“뭐겠어요? 당연히, 대경매장이죠!”



대경매장의 거대한 대리석 홀에는 수없이 많은 사람들로 북적거리고 웅성거렸지만, 전혀 시끄럽지는 않았다. 신사복을 빼어입고 단안경을 낀 채, 종자들과 무언가를 중얼거리는 신흥부자도 있었으며, 전통적인 옷을 빼입고 수행원을 거느린채, 조금은 거만한 자세로 오늘의 경매 목록을 훑어보는 귀족도 있었다. 그리고 조금 의외였지만, 그저그런 평범한 평민의 옷차림을 하고서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경매 목록을 보는 사람도 있었다.


“평범한 사람도 참여할 수 있나요?”


펠릭스는 실비아의 시선 끝을 슬쩍 살펴보고 대답했다.


“그럴리가요! 입장권만 해도 금화 한닢 값어치는 하는데.”


“그래요?”


“그래요. 이런 곳에서는, 저런 특색없이 평범한 사람들이 가장 무서운 법이거든요. 그만큼 돈이나 명예에 신경쓸 필요조차 없을만큼 돈이 많은 부자거나, 아니면 그런 부자가 가서 자기대신 경매좀 참가해 달라고 용돈을 쥐어준 사람이거나. 어느쪽이든 만만하게 봐 넘길 사람은 아니에요. 그렇죠, 올리버?”


“그래. 나도 이곳 대경매장까지는 아니었지만, 펠릭스 네가 부탁해서 사냥복 그대로 입고 경매장에 간 적도 있었지.”


“그래요? 조금 부끄러웠겠어요.”


“전혀. 내가 진짜 걱정한 건, 상품을 낙찰받을수 있을까 없을까 하는것 뿐이었거든.”


“그래서, 잘 됐나요?”


“다행히.”


“그 때, 뭘 샀는데요?”


“그게, 아마. 귀뚜라미였나······”


“귀뚜라미요?”


실비아가 화들짝 놀라자 펠릭스는 뭐가 문제냐는듯 되물었다.


“왜요?”


“아니, 귀뚜라미를, 경매장에서······”


“평범한 귀뚜라미는 아니었으니까요.”


“그래봤자 벌레잖아요.”


“내 참. 약재라고요 약재. 길바닥에 굴러다니는 귀뚜라미가 아니라.”


“그렇다고는 해도, 좀······"


“그래. 나도 그 때 낙찰받은 상품을 덩그러니 받았을 때는 조금 당황했지. 하지만, 실비아. 그 뒤로 겪은 일들에 비하면, 그런것쯤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렇게 잡담을 나누며 세 사람은 경매장 홀의 카운터로 천천히 걸어갔다.


펠릭스가 신분증명을 내보이자, 카운터 너머에서 잠시 조그만 소란이 있더니, 정신을 차렸을 때는 대경매장 입장권 한 부가 펠릭스의 손에 들려 있었다.


“샀어요?”


“서비스래요.” 펠릭스는 두 손가락으로 입장권을 팔랑거리며 말했다.


“서비스요?”


“뇌물이랄지, 뭐 그런 것의 일종이죠.”


“네? 저 사람들이 뭐가 아쉬워서 당신한테 뇌물을 주는데요?”


“그러게요!”


펠릭스는 혼자 깔깔 웃고는 입장권을 팔랑이며 경매장 안쪽으로 걸어들어갔다. 옷 위로 근육을 여과없이 드러내 보이고 있는 인상험악한 문지기들이 세 사람을 멈춰세웠다가, 펠릭스가 보이는 입장권을 확인한 다음 정중하게 인사하며 그들을 경매장 안으로 들여보내 주었다.




안쪽에는 조용한 복도가 있었고, 복도 저쪽 끝에 두꺼운 문이 있었다. 펠릭스가 문을 열자, 그 너머에는 커다란 오페라극장 같은 공간이 펼쳐져 있었다. 한 가운데, 가장 낮은곳에 둥근 무대가 있었고, 무대를 부채꼴로 둘러싸고 사람들이 앉는 푹신한 의자들이 계단처럼 늘어서 있었다. 펠릭스는 입장권에 쓰여진 번호로 가 앉았다.


“우리들도 앉아도 될까요?”


“아마도요. 경매장이 가득 차는 일은 거의 없으니까. 누가 뭐라 그러면 제가 쫓아낼게요.”


조금 불안한 마음으로 실비아는 펠릭스와 올리버 사이에 앉았다. 다행히, 자신의 자리를 주장하는 사람이 나타나지 않고 경매장 천장의 조명이 어둑하게 꺼지더니, 곧 무대 위에 사회자가 슬슬 올라왔다.




사회자는 우선 자기 자신에 대해 소개를 했다. 물론, 실비아는 그가 어느 길드 소속의 조합원인지 들어봤자 아무런 감흥도 느끼지 못했다. 하지만 그녀의 앞 자리에 앉아있던 중년의 신사는 아주 중요한 정보를 들은 조사원처럼 자기도모르게 흠 하는 소리를 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다음에는 오늘의 경매에 대한 가벼운 설명이 이어졌다. 들어도 무엇인지 모르는 보화, 영원히 사라진줄 알았던 전설적인 예술가의 그림, 바다 건너에서 찾은 주먹만한 보석. 뭐 그런 것들이었다. 경매 물건을 설명하는 사회자가 어찌나 맛깔나게 설명을 하는지, 실비아는 실물을 보지도 못했으면서도 벌써 그것들로 장식된 방 안에 들어와 있는듯한 착각을 느낄 정도였다.



그리고 정작 경매는, 그야말로 폭풍처럼 흘러갔다. 실비아가 제대로 알아차리기도 전에 상품의 값어치가 무시무시한 기세로 솟구치고, 그녀가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사회자가 망치를 두드리며 낙찰을 선언한 뒤였다.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도 모른 채, 그녀는 몇 개의 상품들이 조용히, 그러나 확실하게 자신의 주인을 찾아가는 모습을 신기한 눈으로 구경했다.


“재밌었죠?”


경매가 끝나 썰물처럼 빠져나가는 사람들의 파도를 타고나오며 펠릭스가 묻자, 실비아는 여전히 어안이 벙벙한채 중얼거렸다.


“모르겠어요. 저는, 도통 뭐가 뭔지···..”


“처음 가면 다 그렇죠 뭐. 아무튼, 우리도 경매에 참가할테니까, 미리 한번 견학한 셈 치자고요.”


“언제죠?”


어느새 홀까지 돌아온 그들은, 펠릭스를 따라 커다란 게시판에 적힌 경매 일정을 살펴보았다.


“내일. 이런. 이렇게보니, 꽤 아슬아슬했군요. 하루이틀쯤 더 걸릴 줄 알았더니, 그렇게 빨리 하역을 했나.”


“뭐, 아무튼 다행이야. 어찌됐든 제때 도착했으니까. 그럼, 이제 슬슬 여관이라도 잡으러 가는게 어때? 이제 저녁시간이고······”


갑자기, 맑은 대리석 바닥을 쿵쿵 울리며 누군가가 가까이 뛰어왔다. 그리고 그 사람은 덥썩 펠릭스의 어깨를 붙잡았다.


“펠릭스!”


깜짝 놀라 펠릭스가 뒤를 돌아보자, 그 역시 잠시 아리송한 얼굴이 되었다가 금새 반갑게 웃었다.


“첼시. 네가 왜 여기있어?”


“내가 할 말이다. 넌 왜 여기있는데?”


벌써 악수를 나누며 첼시가 묻자 펠릭스는 씩 웃으며 말했다.


“내가 먼저 물어봤는데.”


“아, 뭐. 돈 냄새가 나서 왔지. 나야, 항상 그렇잖아?”


“그래. 첼시. 이 돈 밝히는 욕심쟁이같으니. 그 때도, 몰래 재료를 빼돌리려다가 크게 혼났잖아?”


“한 번 뿐이었어! 그 뒤로는 그런적 없다고.”


첼시는 웃으며 농담던지듯 말했다.


“그래, 그렇겠지. 아무튼, 그래서. 그럼 돈 벌러 경매장에 온거야?”


“아니, 돈벌이는 골든포트에 있어. 경매장에는 그냥 심심해서 놀러왔어.”


“거짓말은.”


첼시는 펠릭스의 말에 씩 웃는 것으로 대답해주었다.


“그러는 펠릭스. 너는?”


“나? 나야 뭐 늘 그렇듯이, 약재 사러 왔지.”


“골든포트 대경매장까지? 무슨 풍뎅이나 그런걸 사려는건 아닌가봐?”


“맞아. 내가 찾는건 외뿔소의 뿔이야. 마침, 얼마전에 들어왔다고 하더라고.”


“아, 그거! 그런데, 그거 좀 비싸잖아. 돈은 있고?”


“필요한 만큼은.”


“그래? 그렇다면 다행이네. 돈이 없다면 내가 아는 은행에 소개라도 해 주려 했더니.”


“관둬. 네가 아는 은행들은 다 어디 한 군데씩 나사가 빠져있잖아.”


“하하. 농담은. 그래, 펠릭스. 설마 너랑 경매장에서 붙는 날이 다 오다니.”


“뭐?”


“나도 노리고 있거든. 그 외뿔소의 뿔.” 첼시는 조금 침착해진 표정으로 말했다.


“양보해줘. 아주 중요한 약에 쓸 재료야.”


“말이 되는 소리를 해 펠릭스. 갖고싶으면, 돈으로 가져가.”


첼시는 여유롭게 웃으며 말했다.


“그래, 뭐 경매장에 왔으면, 경매장의 규칙을 따라야지. 좋아. 돈으로 승부보자고.”


“쉽지않을걸. 이래뵈도 나는 그동안 번 돈이 제법 되니까.”


“이쪽도 그리 만만하지 않을걸.”


두 사람이 말없이 슬쩍 웃으며 신경전을 벌이고 있는 사이로, 실비아가 헛기침을 하며 끼어들었다.


“펠릭스. 여기 계속 있을 거예요?”


“아, 맞아. 첼시. 이쪽은 내 동료들. 나는 동료들이 기다리고 있어서 그만 가 봐야겠는데······”


“아니, 이렇게 오랜만에 만났는데 벌써? 그러지말고 펠릭스. 온 김에 술이나 한 잔 하고가.”


“아니, 나는······”


“그래. 펠릭스.” 올리버가 끼어들어 말했다. “가서 회포라도 풀고 와.”


“올리버. 왜그래요?”


“아니, 그러라고. 저쪽 아가씨는 굉장히 반가운 눈치인걸.”


“그렇지만.” 펠릭스는 올리버의 귓가에 대고 속삭였다. “첼시는 항상 꿍꿍이가 있다고요.”


“무슨 이야기를 그렇게 몰래몰래 나누시는걸까?”


첼시가 웃자, 펠릭스 역시 조금 어색하게 따라 웃었다.


“그럼, 뭐 알아서 해. 아무튼 나랑 실비아는 그만 나가고 싶거든. 봐. 슬슬 정리하고 있잖아.”


어느새 손님들은 거의 경매장에서 빠져나간 뒤였고, 경비병들 역시 조금 귀찮다는 눈으로 그들을 곁눈질하고 있었다.


“아, 그렇네요. 첼시? 만나서 반가웠다만···”


“그래! 같이 한 잔 하러 가자고!”


첼시는 반쯤 억지로 펠릭스의 손을 잡아끌었다.


“아, 아니. 첼시 좀···”


“펠릭스. 나랑 실비아는 근처 구경이라도 하고 있을테니까, 천천히 와.”


“올리버!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펠릭스는 결국 첼시의 손에 끌려 나가고 말았다.


“펠릭스는 옛 동료를 만날 때마다 당황하네요.”


펠릭스가 끌려나간 문을 보며 실비아가 말했다.


“그러게. 저놈, 대체 연금술을 배우면서 무슨 짓을 한 거야?”




첼시는 펠릭스의 손목을 잡아끌고 이 거리 저 거리를 오갔다. 그녀는 마음에 드는 술집을 찾는 것처럼 보였지만, 사실 펠릭스가 보기에는 무언가 다른 꿍꿍이가 있는듯 싶었다. 왜냐하면, 결국 여기저기를 기웃거리던 첼시는 갑자기 생각났다는듯 어느 술집으로 곧장 달려갔기 때문이었다. 그 술집은 미묘하게 골목 안쪽에 가려져 있어, 평범한 사람은 그곳에 술집이 있는지도 모를 것처럼 보였는데도 그녀는 미리 계획이라도 한 것처럼 망설임없이 그곳으로 펠릭스를 끌고갔다.




그런 곳에도 손님은 있어보였다. 테이블 마다 한두 명의 사람들이 조그마한 음식 접시나 반쯤 빈 술잔 따위를 벗 삼아 조용히 앉아 있었다. 가게 안의 조명은 비밀스러운 이야기를 나누기에 적절할 만큼 어두웠고, 비밀스러운 음모를 실행하는데는 더없이 적당하게 어두웠다.




첼시의 손에 이끌려 가게 안으로 들어온 펠릭스는 괜히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자리에 앉았다. 아무도 그에게 신경을 쓰지 않았다는 점이 그의 경계심을 한층 더 자극했다. 그러나 첼시는, 오히려 이 곳으로 오자마자 무슨 고향 땅을 밟은 선원처럼 대단히 편안한 자세와 태도로 태연하게 맥주 두 잔을 들고 테이블로 왔다.


“자! 이건 내가 쏘는거다.”


첼시는 맥주잔을 펠릭스에게 슥 밀었다. 그러자 펠릭스는 가게 게시판에 적힌 요금표를 보고 주머니를 뒤져 동화 스무닢을 꺼내 동전 열 개짜리 탑을 두개 쌓아올려 첼시쪽으로 슥 밀었다.


“왜이래? 쏜다니까.”


“믿을 걸 믿어야지. 언제 네가 공짜라고 한 것치고, 진짜 공짜였던게 있었어?”


“아, 뭐 하긴. 내가 신용이 없는 편이긴 하지. 그래도, 이번에는 진짜였는데.”


그러면서도 첼시는 주섬주섬 펠릭스가 밀어준 동화 20닢을 주워 주머니에 짤그랑 소리가 나도록 집어넣었다.


“난 이 소리가 좋아.” 첼시는 괜히 두둑한 주머니를 흔들며 말했다. 동전과 동전이 맞부딪히며 겅쾌한 짤랑 소리를 내었다.


“그래. 예전부터 좋아했지.”


말을 마친 첼시는 맥주잔을 집어들어 벌컥벌컥 몇 모금 들이켰다. 어찌나 게걸스레 먹는지, 목구멍으로 액체가 꿀떡꿀떡 넘어가는 소리가 들릴 정도였다.


“그래, 펠릭스. 그래서 말인데, 혹시 너만 괜찮으면 소소하게 용돈벌이 안 할래?”


반쯤 비운 잔을 소리나게 테이블 위에 탁 하고 내려놓으며 첼시가 말하자, 펠릭스는 거품이 인 맥주 잔에는 눈길조차 주지 않고 단칼에 거절했다.


“안해”


“왜? 편하게 돈 버는 일인데.”


“싫어.”


“좋다니까. 자, 들어봐. 그냥 내가 너한테 상자를 줄 건데······”


“첼시.” 펠릭스는 한 손을 들어올려 그녀의 말을 잘랐다. “그만. 네 사업 이야기는 더이상 듣고싶지 않아.”


“그래? 왜?”


“그냥. 모르는 편이 좋을것 같아서.”


첼시는 잠시 펠릭스를 훑어보더니, 고양이처럼 눈을 가늘게 뜨고는 살짝 웃으며 맥주잔을 집어들었다.


“하여튼, 펠릭스. 눈치빠르기는.”


“보나마나 여기 네 사업 본거지지?” 펠릭스는 시선을 돌리지 않고 첼시를 똑바로 보며 말했다.


“무슨 근거로?”


“여기 손님들. 아무도 음식에는 손도 안 대고, 잔에 든 맥주는 진작 거품이 빠졌는데 관심도 없잖아. 첼시. 난 네가 어떻게 돈을 버는지에는 별로 상관 안 하겠지만, 네 사업에 우리들을 끌어들이지는 않았으면 좋겠는데.”


“그래? 거 좋은 말인걸 펠릭스. 그러니까, 요컨대, 내가 뭘 하든 너는 신경 끄겠다, 이 말이지?”


“나한테 피해만 안 준다면.”


“그정도면 감지덕지지. 요새 사람들은 다들 너무 눈치가 빨라서 옛날만큼 일 벌리기가 힘들단 말이야······”


첼시는 다시 맥주를 들이키고 갑자기 하소연을 시작했다.


“예전이 좋았어. 그 때는 다 같이 사람들이 못 살았거든. 이놈이고 저놈이고 등쳐먹을 구석이라고는 전혀 없다보니, 누가 누굴 속이네마네 상상조차 못 했는데.”


“사람들 등쳐먹고 사는거야?”


“그건 너무 심하고. 그러니까, 나는 모기같은 사람이라고나 할까? 남몰래 달라붙어 피를 빨고 슬쩍 도망치지만, 흡혈귀처럼 죽을만큼 쪽쪽 빨지는 않는다고.”


첼시는 그것이 대단한 자랑인마냥 펠릭스에게 말했다.


“적당히 해. 잘못해서 경비대에 끌려가면, 스승님이 뭐라그러시겠어.”


“원. 걱정도. 내가 알아서 해. 그리고 스승님은 나보다 널 더 싫어하잖아?”


“그건 그렇지만.” 침을 꿀꺽 삼키며 펠릭스가 대답했다. “그래도, 가급적이면 평범하게 돈 좀 벌어. 그리고, 혹시나 해서 하는 말인데, 연금술사의 이름에 부끄러운 일을 하지는 않았지?”


첼시는 다시 눈을 가늘게 뜨고 펠릭스를 힐끔 보았다.


“했으면 어쩌려고?”


펠릭스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첼시의 눈을 노려 보았다. 두 사람이 동시에 입을 다물자, 가게 안의 희미한 소음조차 일순간 멈춘 듯했다.


그러다가 갑자기 첼시가 헛웃음을 터트리며 펠릭스의 시선을 피했다.


“안 했어.”


그리고 첼시는 조금 씁쓸한 목소리로 덧붙였다.


“할 수 있었으면, 차라리 편하게 돈이나 벌었을텐데.”


“어쨌든, 다행이야 첼시. 부탁이니까 연금술사의 이름에 먹칠을 하지만 말아줘.”


“걱정도. 내가 무슨 수로 먹칠을해? 하려고 애써봤자 나같은 삼류는 먹칠이고 뭐고 그런 거창한 짓 하지도 못한다고. 너정도 되면 모를까.”


여전히 씁쓸한 목소리로 첼시가 덧붙였다. 그녀는 다시 잔을 들어올리고 입에 갖다 댔는데, 이미 맥주를 모조리 마신 탓에 잔에서는 아무것도 흘러나오지 않았다. 그녀는 조금 당황한 얼굴로 빈 잔을 몇 번 더 입에 털다가, 벌떡 일어나 카운터로 뚜벅뚜벅 걸어갔다.




다시 거품이 이는 시원한 맥주가 가득 담긴 맥주잔을 들고 첼시가 돌아왔다. 그녀는 말없이 자리에 앉아 이번에도 잔을 쭉 들이켰다.


“그래서.”


잔을 내려놓으며 첼시가 말했다.


“펠릭스. 외뿔소의 뿔을 노린다고?”


“그래. 내 최고의 약을 만드는게 쓸 거야.”


“우연이네.” 첼시는 다시 맥주를 쭉 들이켰다. 그녀는 그 큰 잔을, 단 두 번만에 바닥까지 깨끗하게 비우고는 빈 잔을 테이블 위에 내려놓았다.


“나도 그럴거거든.”


“왜?”


“내가 지금 같이 일하는, 그러니까, 사업상 동료가 있는데. 그놈 배때지에서 기름이 줄줄 배어나올 만큼 몸이 엉망진창이거든. 핏줄이 자주 막혀 툭하면 어지럽다고 쓰러지고. 재수없으면 당장 오늘 밤에 핏줄이 터져 죽을지도 모르지. 그런데, 외뿔소의 뿔이 막힌 핏줄을 뚫는데 좋다고 하잖아?”


“반대로 알고 있는거 아냐? 혈우병의 치료약이잖아.”


“이거나저거나. 어쨌든 피에 좋은 약이라니까 그거면 충분하지 뭐. 그놈도 하여튼. 내가 그러게 건강관리좀 하랬더만.”


첼시는 다시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빈 잔을 들어올렸다. 그러자 펠릭스는 자기 앞에 놓인채 거품이 식어가던 맥주잔을 조용히 첼시 쪽으로 밀었다. 그러자, 첼시는 얼떨떨한 표정으로 그것을 보다가, 갑자기 웃었다.


“펠릭스. 내가 쏘는거라니까.”


“그런 것 치고는 벌써 내 돈 받아 챙겼잖아. 그런 주제에 쏘니마니 말은. 내가 쏠게. 한 잔 마셔.”


“그래? 그럼 나야 고맙지.” 첼시는 아주 고맙다는 표정으로 식어빠진 맥주의 잔을 집어들고, 입에 갖다댄 다음 벌컥벌컥 마시기 시작했다. 이번에 그녀는 단 한번만에 그 큰 잔을 완전히 비워냈다.


“너무 많이 마신것 아냐?”


“괜찮아. 나 술 세거든. 아무튼, 펠릭스. 그만 슬슬 일어나자고.”


펠릭스는 더이상 캐묻지 않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첼시는 그를 다시 번화한 광장까지 데려다준 다음, 어둑한 그림자에 가려진 골목쪽으로 돌아가다, 중간에 몸을 돌려 반갑게 손을 마구 흔들었다.


“펠릭스. 내일 보자!”


“그래.”


펠릭스는 첼시에게 손을 흔들어 주었다. 그녀가 어두운 골목의 조금 뒤틀린 목조 건물들의 시커먼 그림자에 가리어 더이상 보이지 않을 때까지, 펠릭스는 그녀가 등을 돌린 뒤로도, 그녀의 조금 쓸쓸한 등을 향해 손을 흔들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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