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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유자 님의 서재입니다.

행복의 연금술 가게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완결

녹색유자
작품등록일 :
2021.10.08 16:53
최근연재일 :
2022.01.13 18:00
연재수 :
172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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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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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1,774,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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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10.17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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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24쪽

19화

DUMMY

아치볼트 자작의 마차는 아주 부드럽게, 그리고 경쾌하게 펠릭스와 실비아 그리고 올리버를 갈림길까지 태워주었다.


“고마워요!”


마부를 향해 펠릭스가 인사를 건네자, 마부는 모자를 벗으며 고개를 살짝 끄덕인 다음, 다시 마차를 돌려 왔던길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으으-!”


마차에서 내린 올리버가 이상한 소리를 내며 기지개를 쭉 켰다.


“아함. 잘 잤군.”


“코까지 골던데요 올리버.”


“아, 그랬어?”


“네.” 실비아는 살짝 웃으며 말했다. “조금 의외였어요.”


“자, 아무튼, 다들 정신 차려요. 지금부터 다시 도보 여행이 시작되니까.”


“어디로 가죠?”


그들은 앞에 놓인 갈림길과 이정표를 말없이 돌아보았다. 하나는 지금까지 마차가 달려온 것과 같이 하얀 벽돌로 잘 포장된 도로였고, 다른 하나는 숲 속으로 이어지는 흙길이었다.


“감이 오지 않나요?”


“사실, 별로 믿고 싶지 않았는데.”


“뭐, 숲길이 어때서. 내가 잘 안내해 준다니까.”


“안내하고 자시고 할 것도 없지만요. 그럼, 그만 밍기적거리고 다시 발걸음을 옮겨 보자고요!”


“아, 잠시만요 펠릭스!”


실비아가 다급하게 그를 불러세우자, 펠릭스도 휙 뒤를 돌아보았다.


“왜요, 왜요?”


“그, 저기······”


“왜요?”


“벌레 쫓는약 있어요?”


“아. 난 또 뭐라고. 알았어요. 그래, 차라리 미리 말하는게 나아요. 잘 했어요 실비아.”


그리고 펠릭스는 허리띠에 달린 약병 하나를 쏙 뽑아 실비아에게 내밀었다.


“피부에 발라요.”


실비아는 그가 시키는대로, 투명하고 조금 끈적이는 액체를 손등과 손목, 목 뒤의 옷 밖으로 드러나 보이는 피부에 발랐다.


“어때요?”


“으, 조금 기분나쁜걸요. 미끌미끌하고······”


“그래도 벌레한테 물리진 않겠네요. 자, 그럼 이제 출발하죠 올리버.”


“그래, 가 보자고. 오랜만에 본업으로 돌아간 것 같아서 벌써부터 몸이 쑤시는군.”




올리버는 기세좋게 숲 속으로 일행들을 이끌었다. 그러나, 사실 사람들이 제법 오가던 숲길이었는지, 올리버가 나서서 크게 뭔가를 할 일은 거의 없었다. 가끔 웃자라 도로위를 침범하는 나뭇가지나 거친 잡초를 지팡이를 휘둘러 꺾어내는 정도가 다였다. 그렇지만, 올리버는 그정도로도 아주 만족스러워 보였다.


“여긴 좀 어둡네요.”


조금 걱정스러운 눈으로 주변을 둘러보며 실비아가 말했다.


“숲이 빽빽하니까요.”


“연금술 가게도 숲 속에 있잖아요?”


“거긴 가게 주변이 공터고, 가게로 오는 길도 나무를 좀 베어서 그래요. 그런데, 여긴 다듬지 않은 야생림에 가깝다보니. 좀 그렇죠 아무래도.”


“꼭 뭐가 튀어나올것 같아요.”


실비아는 나무와 풀, 바위의 검은 그림자를 힐끗힐끗 곁눈질했다.


“괜히 그런말 마요. 불길하게.”


“아, 알았어요. 그래도, 올리버가 알아서 잘 해 주겠죠?”


“응? 뭐? 불렀어?”


올리버는 벌써 저만치 일행을 앞질러서, 길을 가로막던 잡초를 지팡이로 두들거 패다가 뒤늦게 뒤를 돌아보았다.


“아니에요. 계속 가요.”


“그래. 필요하면 부르라고.”


올리버는 다시 신이난 채 거침없이 걸어갔다. 펠릭스는 그런 올리버의 듬직한 등을 쳐다보며 만족스럽게 웃다가, 갑자기 눈을 휘둥그레 뜨고 길이 없는 수풀쪽으로 달려갔다.


“펠릭스! 어디가요? 올리버, 올리버!”


“뭐, 뭔데?”


올리버는 재빨리 돌아와, 거칠고 뻣뻣한 덤불을 헤집으며 걸어가는 펠릭스를 따라갔다.


“뭐해, 펠릭스?”


“아, 뭔가 보였어요!”


“진정좀해.” 올리버는 덤불 한 가운에데 끼어버린 그를 보고 작게 한숨을 쉬며 주머니칼을 꺼냈다.


“이런.”


“가만있어봐. 내 참. 어린애도 아니고. 왜, 반짝이는 나비라도 본거야?”


“어쩌면 훨씬 좋은거죠. 올리버. 빨리좀 해 봐요.”


“진정좀 해. 잠깐 늦는다고 큰일 나는것도 아니잖아.” 그러나 올리버가 말을 마치자마자 펠릭스는 덤불에서 발을 쑥 빼낼수 있었다.


“좋아. 잠시만 있어봐요.”


그러면서 그는 다시 잡초를 헤치며 숲 안쪽으로 걸어들어가기 시작했다. 길 위에 혼자남은 실비아는 걱정스럽게 올리버와 펠릭스의 이름을 불러보다가, 조심스럽게 그들이 풀을 헤치고 짓밟으며 만든 길 위에 발을 내딛었다.


“만세!”


앞쪽에서 펠릭스의 목소리가 들렸다. 덤불을 조금 헤치고 들어가보니, 그곳에는 시커멓게 타고 허리가 부러진 나무가 있었다.


“뭐죠?”


“불나무 껍질!” 펠릭스는 주머니칼로 나무 껍질을 벗기다가, 칼을 도로 집어넣고 배낭 속에서 자그마한 도끼날을 하나 꺼내들었다. 그는 올리버의 지팡이를 반쯤 빼앗아 그 위에 날을 끼우고 노끈으로 날을 단단히 엮은 다음, 갑자기 나무를 패기 시작했다.


“뭐해요?”


“불나무 껍질이오!” 펠릭스가 기세좋게 도끼를 두어번 더 내려찍자, 올리버가 그에게서 다시 반쯤 도끼를 빼앗아, 펠릭스와 달리 아주 솜씨좋게 내리쳤다. 그러자, 쩍 하는 소리가 나며 나무 껍질이 뜯어져나왔다. 펠릭스는 겉껍질을 대강 뜯어낸 다음, 잠시 손가락으로 무언가를 가늠하더니, 다시 도끼질을 하여 나무 토막을 잘라냈다.


“뭔데요 그게?”


“벼락맞은 나무의 독특한 무늬가 생긴 속껍질이오. 신비한 기운이 서려있다고 전해지는 약재인데, 워낙에 희귀해서 아직 자세한 효과가 검증되지도 않은 물건이죠.”


펠릭스는 보물이라도 찾은 마냥, 거의 입이 귀에까지 걸릴 정도로 히죽 웃으며 재빨리 캐낸 나무토막을 가방 안으로 쑥 집어넣었다.


“봐요. 내 말이 맞죠? 마차를 타고 갔으면 이런 보물을 얻지도 못했을걸. 벼락 맞은 나무가 흔한것도 아니고, 이건 대경매장에서도 구하기 힘들다고요.”


“잘됐네요. 아, 어쩌면, 마음을 곱게 써서 구름위의 누군가가 당신에게 선물을 준 건지도 모르죠?”


“네? 무슨 뜬구름잡는 소리에요, 실비아?”


“알렉스 말이에요. 펠릭스, 당신이 답지않게 그에게 공짜로 약도 만들어 줬잖아요?”


그러자 펠릭스는 실비아를 반쯤 놀리듯 말했다.


“낭만 소설을 너무 많이 읽었군요.”


“펠릭스! 좋은 뜻으로 한 말인데, 꼭 그렇게······”


“자, 볼일 다 봤으면 이제 그만 길로 돌아가지. 벌써 다리가 간질간질거리는게, 기분나쁘거든.”


“꺅! 벌레에요?”


실비아가 호들갑을 떨자 올리버는 별 것 아니라는 투로 다리를 슥 보고는 대답했다.


“아니, 풀 때문인것 같은데. 하지만, 벌레가 아니라는 보장도 없지.”


“펠릭스, 올리버, 당장 여기서 나가요!”


실비아는 허둥거리며 왔던 길을 도로 밟아가다가, 금새 방향을 잃어버려 올리버의 이름을 애타게 부르기 시작했다. 올리버는 터벅터벅 실비아의 곁으로 가, 왔던 길을 지팡이로 가리켜 주었다. 그러자 실비아는 부끄러운듯 고개를 살짝 숙이며 재빨리 길 위로 돌아갔다.




“아, 표지판이다.”


잠깐의 소동 후에 한참동안 조용히 풀벌레 소리를 음악삼아 걷던 그들 앞에, 반쯤 글씨가 지워진 나무 표지판이 나타났다.


“뭐래요?”


“이 앞으로 가면 딥우드 마을이 나온다는데요. 딥우드라니, 별로 성의있는 이름은 아니네요.”


실비아는 표지판에서 멀어지며 말했다.


“아무튼, 다 왔다는 뜻이군. 자, 조금만 더 힘을 내라고.”


“어휴, 올리버. 당신은 지치지도 않아요?”


얼굴이 피다못해 거의 얼굴에서 빛이나는 올리버를 보고 펠릭스가 넋두리를 했다.


“그럼, 여기서 쉬어가게? 앉을 데도 마땅찮고, 바닥은 진흙인데.”


“그것도 일리있는 말이기는 하네요. 그 마을이 빨리 나오면 좋으련만!”


펠릭스는 다시 넋두리를 하며 먼저 슬금슬금 걷기 시작했다.


“조금 의외네요. 펠릭스는 숲을 좋아하는줄 알았는데.”


“습기에 약하거든.” 올리버는 사냥개처럼 코를 킁킁거리며 말했다. “여긴 좀 축축하니까.”


“종이도 아니고, 사람이 습기에 약해요?”


“뭐, 너도 알잖아?” 올리버는 펠릭스의 오른 다리를 눈짓했다.


“아.”


“그래. 그럼 슬슬 우리도 가지. 펠릭스 혼자 숲길을 걷도록 할 수는 없으니까.”


올리버가 성큼성큼 걸어 자연스레 앞장서자, 실비아도 펠릭스를 따라잡았다.




“잠시 쉬어가지.”


숲 속에서 자그마한 공터를 발견한 올리버는, 야생 짐승이 근처에 없는지 잠시 주변을 살펴본 다음 돌아와 말했다.


“벌레는 없겠죠?”


“있어도 큰 문제는 아닐거야.”


실비아는 조심조심 자리를 잡기 시작했고, 펠릭스는 잠시 공터 여기저기를 살펴보다가 팔자좋게 땅 위로 불거져나온 나무뿌리 위에 털썩 주저앉았다.


올리버는 실비아와 펠릭스가 목을 축이는 동안, 무언가를 열심히 만들고 있었다. 물을 마신 실비아는 가죽 부대를 도로 집어넣은 다음, 올리버에게 슬쩍 다가왔다.


“뭘 만들고 계세요?”


“아, 이거.” 올리버의 손에 들린 것은, 나뭇가지로 만든 조그맣고 조잡한 새총이었다. “저쪽 덤불 속에서 뭔가 움직인것 같아서.”


“새총이네요. 새총을 잘 쏘나요?”


올리버는 바닥을 살펴, 적당한 돌멩이 하나를 집어들어 새총에 매긴 다음, 부스럭거리는 수풀을 향해 휙 하고 새총을 쏘았다. 딱! 소리와 함께, 수풀이 다시 들썩이며 검은 그림자 몇몇이 재빨리 사라졌다.


수풀로 걸어 들어갔던 올리버는 축 처진 토끼 한 마리를 손에 들고 돌아왔다.


“잘 맞지?”


“그렇네요.” 조금 징그럽다는 표정으로 실비아가 말했다.


“너도 쏴 볼래?”


“네?”


“아니. 재밌어 하는 것 같아서. 새총이야 오락용으로도 자주 쏘곤 하고.”


“그런가요?”


“그래. 내가 살던 곳에서는 어린 애들도 새총 하나씩은 손에 들고 들로 산으로 뛰어다녔지. 꽤 재밌었어. 꼭 장난이랍시고 사람한테 쏴대는 놈이 있었지만. 그런 녀석들은 나중에 제 부모한테 크게 혼나고 그랬지.”


“재밌네요.”


실비아가 실없이 고개를 끄덕이자, 올리버는 그가 만든 새총을 실비아의 손에 쥐어주었다.


“자. 이렇게.”


올리버는 손대중으로 대강 쏘는 시범을 보여주었고, 실비아는 머뭇거리며 그를 따라 새총의 고무줄을 쭉 당겨보았다.


“생각보다 꽤 힘이 드는걸요!”


“그럼, 뭘 기대했어? 자, 이번에는 한번 이걸 넣고 쏴 봐.”


실비아는 올리버가 주워준 돌멩이를 새총에 매기고, 그가 가리켜 주는 나무 한 가운데를 겨누고 새총을 쏘았다. 그러나 돌멩이는 힘없이 나무를 크게 빗나가버렸다.


“어이, 이봐요. 어린 사냥꾼 아가씨. 하루종일 그러고 있을 건가요?”


벌써 몇 발 정도 돌멩이를 쏘아대는 실비아에게 펠릭스가 말했다.


“이것만 쏘고요.”


이번에 날아간 돌멩이는 나무의 정 가운데에 정확히 부딪혔다. 옆에서 보고있던 올리버조차 그 모습을 보고 아주 만족스럽게 웃을 정도로, 그녀의 솜씨는 몰라보게 좋아져있었다.


“빨리 배우는 똘똘한 아가씨로군.”


“고맙네요.” 새총을 올리버에게 돌려주며 실비아가 말했다.


“이제 숲 속에 혼자 떨어져도 굶을 일은 없겠군. 이렇게나 잘 쏘아대니까.”


“올리버. 당신이 실비아를 채집꾼으로 키우든말든 난 별로 상관 안 하겠지만, 이런 곳에서 너무 오래 지체하지는 말자고요. 뭔가 벌레가 내 다리를 문 것 같으니까.”


“벌레요!”


실비아는 다시 호들갑을 떨며 자신의 온 몸을 손으로 탈탈 털었다.


“채집꾼으로서는 실격이죠?”


“뭐, 그렇네. 사실, 조금 아깝기는 한걸.”


“빨리 가요. 으, 난 벌레는 싫은걸요.”


아쉽다는 듯한 눈으로 자기를 쳐다보는 올리버의 얼굴을 볼 겨를도 없이, 실비아는 두 사람을 재촉했다.




휴식을 마친 세 사람은 숲 속으로 발걸음을 계속해서 옮겼다. 그러다 마침내, 빽빽한 나무와 나무의 거무칙칙한 그림자에 가려져 있던 자그마한 숲속마을 딥우드가 그들의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나무와 풀을 엮어 지은 열 채 조금 더 되는 집들, 그중 다른 것들보다 조금 더 큼직한 집은, 아마 촌장이 머무는 곳처럼 보였다. 길을 따라 마을 안으로 들어가자, 그들은 무언가 불안한 눈으로 자기들을 힐끔거리는 마을사람들의 시선을 느꼈다.


“도착했네요. 마침내.”


펠릭스가 갑자기 기지개를 켜는데도, 이곳의 마을 사람들은 단 한명도 놀라는 기색이 없었다. 그보다는, 오히려 그들이 마을 입구에 들어서면서부터 무언가를 계속 경계하고 있다는 인상이 강하게 들었다.


“우선 촌장부터 만나러 갈까?”


“그래야 하나요?”


“그래. 이런 자그마한 마을에는 촌장한테 얼굴도장을 찍어둬야 나중에 곤란한 일이 없거든.” 그리고 올리버는 실비아의 귓가에 대고 거의 들리지 않게, 작게 속삭였다. “이런 외지고 작은 마을에서는, 촌장이 곧 왕이고 그의 말이 곧 법이야.”


“네에? 그건, 좀······”


“원래 세상 일이라는게 그런거야. 이 기회에 잘 알아두라고, 실비아. 아, 펠릭스. 구경은 그만하고······”


“아, 네. 촌장부터 만나는게 좋겠죠, 아무래도.”


잠시 마을 안을 둘러보던 펠릭스도 어딘가 어두운 얼굴로 중얼거렸다.





세 사람은 마을 사람들의 경계를 받으며, 딥우드의 마을 안에서 가장 큰 목조 건물의 문을 두드렸다. 그러자 곧, 중년과 노년의 사이의 애매한 경계에 머물러 있는듯한 남자가, 피로에 전 눈으로 그들을 맞이해 주었다.


촌장은 손님들을 냉대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그는, 집 안으로 그들을 불러들여 굳이 차를 내어오기까지 했다.


“조금 의외네요.”


촌장의 집 안을 이리저리 둘러보며 실비아가 말했다. 그녀는 그 나무 집 안에서 무언가 흥미로운 것을 발견하길 기대하는듯이 눈을 계속 이리저리 굴렸다.


“뭐가요.”


“저는, 바로 쫓겨나는줄 알았거든요.”


“왜?”


실비아와 마찬가지로, 촌장의 집 안을 이리저리 곁눈질하며 올리버가 말했다.


“그냥, 뭔가 이곳 사람들은 우리를 별로 반기지 않는것 같아서요.”


“그럴 수도 있죠 뭐. 여행자를 반기지 않는 마을들도 많아요. 괜히 와서 말썽만 잔뜩 피우고 마을 사람들의 생업을 방해한다고.”


“그러고보니, 이 마을은 생업이 뭘까요? 방앗간이나, 풍차나, 대장간이나, 마굿간, 외양간, 뭐 하나 보이질 않던데요.”


“숲이 이렇게 빽빽한데 아마 숲 속에서 뭘 캐서 도시에 내다 팔겠죠.”


“그렇겠죠?”


실비아는 무언가 영 탐탁찮다는듯 말끝을 흐렸다.


“뭐 문제라도?”


“아니, 아니에요.” 그러나 실비아는 여전히 무언가 마음에 걸리는듯 보였다.




곧 촌장은 거의 맹물에 가까운 차를 끓여 잔에 채 반도 채우지 않고 일행들의 앞에 내려놓았다.


“환대에 감사드립니다.”


실비아는 펠릭스의 말이 반쯤은 반어법이라고 생각하며 잔을 집어들었다가, 차에서 영 이상한 냄새가 나서 눈치를 보며 도로 잔을 내려놓았다.


“그래서, 우리들은 지나가던 여행자들입니다. 마을에서 잠깐 쉬어가는 김에, 촌장님께 그래도 허락은 구해야겠다 싶어서요.”


“어디까지 가나?”


펠릭스의 말은 듣지도 않은듯, 촌장이 다짜고짜 물었다.


“남쪽, 골든포트까지 갑니다.”


“그렇군. 결국 골든포트군.”


“네?”


“아니, 신경쓰지마. 그래서, 당신들은 뭐하는 사람인가?”


실비아는 그 질문을 듣고 불쾌한 기색을 드러냈지만, 펠릭스는 그냥 평범하게 대답했다.


“연금술사와 그 동료들입니다.”


“연금술사!” 갑자기 촌장은 대단한 사람이라도 만난 것처럼 놀라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정말인가, 그게!”


“네. 물론이죠. 연금술사가 필요한 일이라도 있습니까?”


“그래, 있어. 있고말고.” 촌장은 다시 자리에 앉은 다음 초조하게 말을 시작했다.


“우릴 좀 도와줘.”


“무슨일인지 들어보고요.”


촌장은 다시 머뭇거리며 죄를 숨기는 사람처럼 주변을 힐끗힐끗 두리번거리며 말했다.


“자꾸 악몽을 꿔.”


“악몽이요? 뭐, 그정도야. 긴장이완제 정도면 충분한가요?”


“아니! 그렇게 단순한 일이 아니야!” 촌장은 괜히 화를 버럭 냈다가, 뒤늦게 당황하여 괜히 얼버무리듯 말했다. “나 혼자만 꾸는 것도 아니고, 온 마을 사람들이 벌써 며칠동안 계속 악몽에 시달리고 있다고!”


“그래요? 아주 이상한 일이네요. 정확히 그게 언제부터죠?”


“몰라. 대충, 한 일주일쯤 됐나 그럴테지. 그래서, 약을 만들어줘. 제발, 부탁이야. 오늘도 그 악몽 때문에 한 시간도 채 잠들지 못했다고. 나 혼자 뿐이 아니야. 온 마을 사람들이 악몽에 시달려.”


“어떤 악몽인데요?”


“숲 속에, 그러니까······” 갑자기 촌장은 무언가를 말하려다 말고 그대로 입을 다물었다.


“숲 속에?”


“몰라. 그 뒤는, 기억이 나지 않아. 하지만, 아무튼 아주 끔찍한 기분으로 잠에서 벌떡벌떡 깬다고.”


실비아는 그렇게 말하는 촌장의 눈이 유달리 흔들리는 것을 알아차렸다.


“뭐, 그런가요? 악몽이라. 일단은 긴장이완제를 만들어 드리죠. 솥이 있습니까?”


“솥은 많아.”


“연금술사들이 쓰는 솥 말입니다.” 펠릭스가 씩 웃으며 말했다. “있나요?”


“없어. 그냥 솥 뿐이야. 하지만, 무슨 차이가 있나?”


펠릭스는 굳이 촌장에게 설명하지 않고 그저 웃어보였다.


“알겠습니다. 일단은 한번 만들어 보도록 하죠. 그럼, 솥이 있는 곳으로 안내좀 해 주시겠습니까?”


“그래, 그래. 알겠어. 고마워. 정말, 정말 고맙다고.”


그러면서 촌장은 두 손으로 펠릭스의 손을 붙들고 위아래로 마구 흔들었다. 그 바람에, 촌장의 널찍한 옷자락 아래에 숨겨져 있던 보석이 박힌 팔찌가 촛불 빛에 반짝였다. 실비아는 아주 의아하게 생각하며 그 모습을 말없이 지켜보았다.




촌장은 마을 사람 한 명의 집을 반쯤 강제로 비우고, 펠릭스를 그곳으로 안내했다.


“여기를 써.”


“방금전까지 사람이 살던곳 같은데요?”


“하루이틀정도는 괜찮을거야. 아무튼, 약을 만들어 줘. 제발, 이 악몽을 멈춰달라고.”


“일단.” 펠릭스는 촌장의 말을 자르고 끼어들며 말했다. “조금 조사를 해 보고 나서요.”


“조사? 조사라고? 무슨?”


“그야. 정확한 증상을 알아야 약을 만들든가 말든가 할 것 아닙니까. 그냥 두루뭉술하게 악몽이라고만 하면, 제가 무슨 약을 처방해 주겠습니까?”


“아까 만들어 준다면서? 그뭐냐, 긴장 이완제?”


“네. 그걸로 해결된다면 다행이지만, 악몽을 꾸는데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을지도 모르니까요. 한번 가서 조사를 해 보고 약을 만들어 드리지요.”


“그래? 꼭, 그래야 하나?”


“네. 당연한 일입니다. 약을 만들려면 당연히 환자의 상태를 파악하는게 우선 아닙니까?”


촌장은 잠시 펠릭스의 앞을 가로막고 머뭇거리다가 조금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사람을 붙여줄게. 아니, 불러줄게. 그 조사를 하는데 도움이 되도록.”


“네. 얼마든지. 그렇다면야 이쪽에서 감사드립니다.”


“그럼, 어디가지말고 여기 가만히 있어!”


그리고 말을 마친 촌장은 어디론가 냅다 달려갔다.


“굉장히 신경이 예민한 사람인가봐요. 계속 안절부절 못하고.”


“계속 악몽을 꿨다잖아요. 원래 사람이 잠 못자면 영 엉망이 되거든요. 그렇지 않아요, 올리버?”


“그걸 왜 나한테 물어?”


“아님 말고요. 아, 금방 오네.”


촌장은 그와 비슷하게, 긴장과 불안과 경계가 서린 충혈된 눈으로 펠릭스와 일행들을 티나게 곁눈질하는 마을 사람 한 명을 데리고 돌아왔다.


“자, 얘랑 같이 가라고. 다른 마을 사람들이 뭐라 그러면 얘가 알아서 처리해 줄거야.”


“네, 뭐. 고마워요. 그럼 슬슬 가 볼까요? 일단, 당신 이름이?”


남자는 갑자기 명백하게 당황하여 허둥거리다가, 촌장과 눈이 마주치더니 겨우 무언가 말했다.


“도우.”


“도우?”


다시 남자의 눈이 마구 흔들렸다.


“뭐, 알겠어요. 가죠, 도우.”


그제서야 남자의 눈이 다시 조금씩 안정을 되찾기 시작했다. 그는 허둥거리며 일행을 앞섰다가, 뒤쳐졌다 정신사납게 따라다녔다.




마을 곳곳을 돌아다니며 그들은 나무꾼, 채집꾼, 주부, 어린아이, 노인, 심지어는 낚시꾼까지 마을 안에 남아있던 사람들에게 모조리 찾아가 이런저런 질문들을 던져보았다.


“펠릭스. 뭐 좀 알겠어요?”


그러자 펠릭스는 아리송하다는듯 말했다.


“글쎄요.”


“글쎄요?”


실비아가 따라 말하자, 다시 펠릭스가 말했다.


“글쎄요. 우선, 실비아. 악몽병이라는 건 존재할리가 없어요.”


“왜요?”


“그야, 꿈이라는 것은 본질적으로 우리들이 만들어낸 환상에 불과하니까요.”


펠릭스는 자명한 사실을 말할 때처럼 태연하게 말했다.


“그런데, 이 사람들은 다들 악몽을 꾼다잖아요. 정말, 무슨 전염병이라도 휩쓸고 간 것처럼.”


“그게 이상하단 말이죠. 그리고 또 이상한게 있어요. 왜 다들 숲 이야기를 하는걸까요?”


“그거야, 온 마을이 숲에 둘러싸여 있으니까 그렇겠지.”


“그렇겠죠? 그리고, 꿈에 대한 기억은 아주 불분명하고 희미하기 마련이거든요. 그러니까, 실제로 무슨 꿈을 꾸었던 간에 아마 다들 숲에 관한 꿈을 꿨다고 잘못 기억하고 있는 것이겠죠.”


“하지만, 그래도 뭔가 이상한 낌새가 있는 건 분명해.”


“올리버. 그래요, 당신 의견은 어떻죠?”


“나도 자세히는 모르겠지만, 이 사람들은 무언가를 두려워하고 있어. 어쩌면, 한 일 주일쯤 전에 숲 속에 위험한 괴물이 나타났을지도 몰라.”


“그럴까요? 만약 그게 사실이라면, 제가 약을 만들 필요도 없는 문제로군요.”


“그래.” 올리버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계속 숲이 언급되는것도 신경쓰여. 숲에 뭐가 있길래 그러는지 한번 확인해봐야겠어.”


“좋아요. 아, 도우? 거기 밖에 있나요?”


곧 우당탕 소리를 내며 도우가 허둥지둥 뛰어들어왔다.


“좋아요. 도우. 이 마을 근처의 숲을 좀 안내해줘요.”


“네?” 도우는 무슨 처음 듣는 말인마냥 얼빠진 목소리로 되물었다.


“못 들었어요? 마을 근처 숲을 좀 안내해 달라고요. 사람들이 자꾸 숲에 관한 악몽을 꾸잖아요. 거기에 악몽의 단서가 있을지도 모르잖아요.”


“아, 그, 잠시만요. 촌장님한테 물어보고······”


“내참. 마을 바로 근처를 돌아다니는데도 촌장 허락이 필요하다니. 알았어요. 가 봐요.”


도우는 허리를 푹 수그린 다음, 허둥거리며 촌장의 집을 향해 뛰어갔다.


“정말 여긴 이상한 곳이에요.”


“제 생각도 그래요.”


“내 생각도 그래.”


“드물게 의견일치를 봤네요.”


“그러게. 그나저나 숲에서도 아무것도 못 찾으면 어떡하지?”


“그러면, 그 때는 그냥 대충 약이나 지어줘야죠, 뭐.”


다시 헐레벌떡 뛰어오는 도우를 멀뚱히 보며 펠릭스가 말했다.


“아, 저, 저기. 그러니까, 이제 한번 돌아봅시다.”


“그래요. 안내해줘요.”


그들은 못미더운 안내인을 따라 딥우드의 마을을 둘러싼 숲 속으로 천천히 발을 들이밀었다.



그들은 숲 속에서 할 수 있는 데까지는 살펴보았다. 짐승의 흔적, 낯선 식물의 흔적, 또는 사람들이 두려워 할 만한 무언가를 찾기위해. 그러나 그들은 아무것도 찾지 못했다. 애초에, 도우는 대체 뭐가 그리 두려워서 그러는건지, 그렇게 숲 깊숙한 곳까지 일행들을 데리고 가지도 않았다. 답답한 마음에 펠릭스가 더 안쪽으로 가자고 말하자, 도우는 그것이 무슨 대단한 금기라도 되는 마냥 거의 화를 내듯이 펠릭스를 뜯어말렸다. 그래서, 펠릭스도 굳이 더이상 숲 속 깊은곳 까지 들어가지는 않았다.



다시 그 허름한 나무집에 모인 실비아와 올리버는, 펠릭스가 조용히 약을 만드는 것을 지켜보았다.


“이상하네. 숲 속에도 별건 없는데.”


“그러니까요. 어쩌면, 펠릭스. 당신이 몰랐던 새로운 종류의 병은 아닐까요?”


“하하! 실비아. 그건 말도 안 돼요.” 펠릭스는 태연하게 솥을 휘휘 저으며 말했다. “꿈은, 우리의 머리에서 어떤 작용이 일어나서 만들어 지는 것인데, 우리 인간의 고등한 뇌를 아주 특정한 형태로, 지속적으로 영향을 주는 그런 병이 있다고요? 그것도, 우리 육체의 다른 모든 부분들은 가만히 놔두고?”


“어쩌면, 기생충의 한 종류라든가······”


“나는 사람 머리에 기생하는 기생충에 대해서는 듣도보도 못했어요. 우리 대스승님도 그런 이야기는 안 해줬다고요.”


“또 모르잖아요. 그 사이에 무슨 새로운 기생충이 나왔다든가······”


“어휴. 꿈이 크군요. 그래도, 굳이 뇌에 작용을 하지 않더라도, 기생충의 영향일지도 모르니까 여기에 구충제도 조금 섞어봐야 하겠군요.”


그러면서 펠릭스는 수상쩍은 재료를 솥 안에 풍덩풍덩 빠뜨렸다.


“이걸로 될까?”


여전히 무언가 석연찮다는듯, 턱을 쓰다듬으며 올리버가 중얼거렸다.


“뭐, 안되면 별 수 없죠. 그땐 다른 방법을 찾아야지.”


솥 안에서 느릿하게 부글부글 끓는 액체를 슬쩍 쳐다보며 펠릭스가 중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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