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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유자 님의 서재입니다.

행복의 연금술 가게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완결

녹색유자
작품등록일 :
2021.10.08 16:53
최근연재일 :
2022.01.13 18:00
연재수 :
172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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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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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1,774,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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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10.17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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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26쪽

20화

DUMMY

어찌저찌 완성된 약을 촌장에게 가져가자, 촌장은 바로 화색이 되어 펠릭스가 하는 말은 귓등으로 대강 들어넘기고, 대뜸 약을 쭉 들이켰다.


“이제 악몽을 안 꿔도 되겠지?”


약이 담겨있던 병을 거의 부숴버릴 기세로 강하게 내려놓으며 촌장이 말했다.


“아마도요. 뭐, 약을 만들어 줬으니 이제 우린 그만 떠나볼까 합니다만.”


“아니, 조금만 더 있다가 가!” 촌장은 조금 강압적으로 느껴질만큼 펠릭스에게 매달렸다.


“왜요?”


“또 악몽을 꿀지도 모르잖아.”


“그러면 그 때는.” 펠릭스는 촌장의 손을 탁 쳐내며 말했다. “다른 약사를 찾아 보시던지요.”


“펠릭스. 아무리그래도, 나이드신 분한테······”


“오, 오? 아가씨. 아가씨도 연금술사인가?”


이번에 촌장은 목표를 바꾸어, 실비아에게 달려들다가 올리버에 의해 저지당했다.


“이쪽은 평범한 사람이오.”


“아, 그래? 그럼 어쩔수 없지. 연금술사 선생 당신 혼자만이라도 남아있어 줘. 다른 사람들은 몰라. 알아서들 하라지.”


“미안하지만, 갈 길이 바빠서요. 우리도 그렇게 한가한 사람들은 아니거든요?”


“아니, 제발! 부탁이야!” 갑자기 촌장은 바닥에 무릎까지 꿇으며 펠릭스에게 매달렸다. “제발, 제발! 그 꿈을 그만 꾸고싶어. 꿈이 무서워 잠이 들지도 못해, 제발 멈춰줘, 제발 도와줘!”


“이렇게까지 매달리는데······”


“실비아. 여기서 발목이 잡히면, 대경매에 늦을지도 몰라요. 당신 약의 재료를 구하러 가는 길이잖아요?”


실비아는 그 말을 듣고 잠시 흠칫했지만, 그래도 눈앞에서 나이든 노인이 그렇게까지 매달리는 모습을 보아서인지, 계속 그녀의 눈동자는 불안하게 흔들렸다.


“에휴. 알았어요. 뭐, 일정을 조금 여유롭게 잡긴 했으니. 이봐요! 아무리 그래도, 여기 죽치고 앉아 있을 수는 없어요. 그러니까, 아무나 가장 잠 못자는 사람을 불러와서 이 약을 먹여요. 금방 잠이 들 겁니다. 그 사람이 일어났을 때, 악몽을 꿨는지 아닌지 한번 물어보자고요.”


“만약, 또 악몽을 꾼다고 하면?”


“그 때는, 도와드리지요. 내일 아침까지는.”


“그래, 그래! 그정도라도 고마워. 당장 불러올게. 누구든지 간에.”


그리고 다시 촌장은 헐레벌떡 집에서 뛰어나가버렸다.


“이게 내 최선이에요.”


“그정도라도 고마워요 펠릭스.”


“그나저나. 역시 영 마음에 걸린단 말이야.”


“뭐가요?”


“아니, 그렇잖아. 왜 그렇게까지 악몽을 무서워 하는거지? 펠릭스. 너도 살면서 악몽 한두번쯤은······”


“전혀요.”


“그럼, 실비아. 너도 살면서 악몽 한두번쯤은 꿔 봤을거 아냐. 그런데, 그렇다고 잠을 자는걸 두려워 한 적이 있나?”


“그렇지는 않죠? 가끔 그렇기는 해도, 어느순간 꼬박 잠이 들어버리고. 그리고 악몽은 한두번 꾸다보면 어느순간 자연스레 사라지고 그렇잖아요.”


“그래. 일 주일이나 악몽을 꾼다니. 대체 이곳 마을 사람들은 무슨 일을 겪었길레? 마을에 폭풍이 들이닥친것도 아니고, 홍수가 난 것도 아니고, 흉포한 짐승이 휩쓸고 간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산적 떼가 왔다간것도 아니고. 온 마을사람들이 동시에 벌벌 떨며 무서워 할 일이 달리 뭐가있지?”


“글쎄요. 만약, 이번 약으로 효과를 못 본다면, 그 때 다시한번 조사해보죠. 하지만, 솔직히 제 생각엔, 이 약이면 아마 악몽이고뭐고 아주 푹 잘수 있을거라고 거의 확신하지만요.”




촌장은 마을 사람 두 명을 데려와, 펠릭스가 만든 약을 먹이고 그들을 침대에 뉘였다. 과연, 약은 아주 효과적이어서, 그들은 금새 숨을 색색 쉬며 잠이 든 것처럼 보였다.


“이제 된걸까요?”


“모르죠. 됐으면 좋겠는데.”


펠릭스는 잠들어있는 사람들의 가까이 다가가, 그들의 숨소리나 맥을 슬쩍 확인하고 돌아왔다.


“뭐해요? 자는 사람 상대로.”


“아주 과학적인 일이거든요. 진짜 내가 모르는 무슨 병일지도 모르잖아요. 어쩌면, 내가 최초의 발견자일지도 몰라요.”


“내 참. 그런것 치고는, 무슨 처음보는 나비를 쫓는 애같은 표정이네요.”


“아, 그런가요? 하긴, 비슷하긴 해요. 만약, 새로운 병을 찾은 거면 내가 이름을 붙일 수 있잖아요?”


“펠릭스! 이사람들은 진지하다고요! 당신도 조금이라도 진지해져봐요!”


실비아의 일침이 너무 날카로웠는지, 잠들어있던 사람이 몸을 뒤척이며 잠꼬대를 했다.


“자는데 방해하지 말고요.”


“당신이 어이없는 소리를 하니까 그렇죠.”


다시 침대에 누워 자고 있던 사람들은 잠꼬대를 하고, 몸을 뒤척이며 채 말이 되지 못한 소리를 입으로 내더니, 이상한 소리를 내며 끙끙 앓다가, 갑자기 비명을 지르며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 식은땀을 줄줄 흘리며 거칠게 숨을 몰아쉬었다.


“아니, 설마?”


거의 동시에, 옆 침대에서 자던 사람도 비슷한 증상을 보이며 벌떡 일어나버렸다. 펠릭스는 당장 그들의 맥을 짚고, 그들의 안색을 살폈지만, 별다른 것은 찾지 못한듯 복잡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아니, 이런. 너희들, 설마 또 그 꿈을 꾼거냐?”


촌장이 뛰어들어오자 그들은 서로를 마주보고는 촌장을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이것 봐! 우리가 이딴 꼴로 살고 있어. 제발, 좀 도와줘, 도와달라고······”




촌장의 집에서 일단 빠져나온 펠릭스는, 실비아와 달리 얼굴에 침울한 기색이 드리우기 보다는, 오히려 짜증에 가까운 무언가가 드리운듯 보였다.


“뭐가 불만이에요?”


“네.” 펠릭스는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대답했다.


“뭐가요?”


“저 사람들은 병이 없어요. 피를 뽑지는 못했지만, 아마 기생충도 없을 거라고요. 애초에, 처음부터 이상했어. 기생충이 있었다면 당장 과식 증상이 있었을텐데, 그런게 없는걸 보면 역시 기생충은 아닐거야.”


“아니, 한가하게 분석하고 있을 때에요?”


“지금 분석을 하지, 그럼 언제 해요?”


펠릭스는 실비아를 휙 돌아보고 말한 뒤, 다시 고개를 휙 돌리고 생각나는대로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중독증상일리도 없고. 애초에, 자는 동안에만 증상이 나타나는 병이라니. 무슨 싸구려 괴담에 등장하는 마녀의 주술도 아니고. 상식적이지 않아.”


“그래, 펠릭스. 상식적이지 않아. 이건, 주술도 아니고, 병도 아니고, 기생충도 아니야. 그냥, 악몽이야.”


“그래, 그래요. 이런. 다시 조사를 해 봐야겠어요.”


“무슨 조사를요?”


“아주 단순해빠진 조사요. 그러니까, 마을에 이렇게 사람들이 생생한 악몽을 꿀 만한 무언가가 있었는지 물어봐야죠. 그러니까, 재담꾼, 유랑광대, 연기자 지망생, 무명 소설가나 뭐 그런사람들이 오간적 있는지.”


그렇게 말하며 펠릭스는 다시 촌장의 집으로 돌아갔다.




“없어.”


“없다고요?”


펠릭스는 죄인을 취조하는 사람처럼 다시 캐물었다.


“없다니까.”


“아니, 이 마을에 들렀던 여행자가, 우리가 처음이라고요?”


“그래.”


촌장은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그게 말이 돼요?”


“그런걸 어떡해?”


되려, 그는 화를 냈다.


“아니,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올해 여기 첫 방문한 손님이 우리라고요? 이미 가을 중순에 접어들고 있는데?”


“그렇다니까! 더이상 할 말 없으니까, 그딴거나 물어보려면 나가!” 촌장은 버럭 화를내며 펠릭스의 등을 밀어 반강제로 그를 집에서 쫓아내버렸다.




“어때요?”


“망할 놈 같으니. 거짓말은. 실비아. 당신도 지도 봐서 알겠지만, 여긴 지름길이에요. 급행마차를 탈 돈은 없어도 튼튼한 다리를 가진 사람은 다들 이쪽길로, 이 마을을 경유해서 골든포트로 갈 거라고요.”


“아니면 거기서 나오거나.”


“그래, 아무튼, 그렇다고요. 내 참. 씨알도 안 먹힐 거짓말을 해?”


“하긴, 그러고보니, 저도 이상한게 있었어요.”


“뭔데요?”


“그러니까. 이 마을 사람들을 조사하는 동안에요. 마을 사람들중 몇몇은 이상하게 비싸고 좋은 옷을 입고 있었고, 또 몇몇은 어울리지 않게 화려한 보석이나 금붙이가 있었어요. 당장 촌장님의 손목에만 해도, 소맷자락 아래에 얼핏 무언가 반짝이는게 보였거든요.”


“뭐, 장신구야 살 수도 있죠.”


“유명한 보석 세공 길드에서 나온 한정 상품이었어요. 옷도, 제가 아는 길드에서 올해 처음으로 선보인 옷이고. 그런데 그 길드의 옷은 비싸서, 거의 귀족들에게만 옷을 팔거든요.”


“그래요? 그런데도 여기 사람들이 그런걸 몸에 주렁주렁 달고 있다? 아니, 마을 밑에 금광이라도 있대요?”


“그랬으면 집부터 새로 지었겠지. 저 꼴좀 봐.”


올리버는 그렇게 말하며 굴뚝이 아니라, 굴뚝 옆과 천장의 틈새로 술술 피어오르는 희끄무레한 연기를 가리켰다.


“여긴 정말 이상한 곳이네요.”


“아. 그래, 드디어 알아챘어!”


“뭔데요 올리버? 뭐죠?”


“낚시꾼! 그래, 마을 사람 중에 낚시꾼이 있었잖아? 이 숲속에 낚시꾼이 왠 말이야?”


“거짓말쟁인가보죠.”


“아니, 아니야. 숲 근처 어디에 강이나 호수나 하다못해 연못이라도 있다는 뜻이겠지. 그래, 그러고보면 이 마을에는 우물도 없잖아. 이사람들이 무슨 이슬만 마시고 사는 요정들도 아닐테고. 그럼 이근처 어디에 호수가 있을텐데, 그 도우라는 택도 없는 이름을 가진놈은 우리한테 호수를 보여주지도 않았다고.”


“호수가 중요한가요?”


실비아가 묻자, 펠릭스가 대신 대답해주었다.


“그렇죠. 그러고보니, 중요하네요. 전염병이 돌 때, 가장 흔하게 병이 퍼지는 경로가 오염된 수원지를 통해서거든요. 이런. 내가 안일했어요. 악몽이라는 말에 깜빡 넘어가서 그런 기초적인것도 조사하지 않다니.”


“좋아. 가자고 펠릭스. 한번 찾아보자고. 호수든뭐든.”


“그러니까, 그 호수를 찾고 자시고 하는게, 악몽이랑 상관이 있을까요?”


“있겠죠. 나한테 도와달라고 매달리면서도 호순지뭔지를 보여주지 않는 것을 보면.”


“그 도우라는 사람이 깜빡 잊었을지도 모르잖아요.”


“말이 되는 소릴 해요. 그사람이 바보도 아니고, 설마 자기네가 맨날 물뜨는 곳을 잊어요? 촌장한테 물어보러 간 것도 이상해요. 그깟 일을 물어볼 필요가 뭐가 있담?”


“너무 의심하지는 마 펠릭스. 나도 여기 사람들이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섣불리 의심하다가는 제대로 못 본다.”


“알았어요 올리버. 일단, 가 보죠.”




올리버는 길을 벗어나, 코를 킁킁거리며 숲 속 여기저기를 헤치고 다녔다.


“찾을 수 있을까요?”


“있을걸요. 마을 사람들이 자주 다니는 곳이라면 희미하게나마 길이 남아있을테니까.”


“아니, 이게 뭐지? 펠릭스. 와서 이것좀 봐.”


올리버가 가리킨 곳에는, 마른 덤불이 엉켜 진로를 가로막고 있었다.


“뭐죠 이게?”


“누가 일부러 갖다둔 거겠지. 근처 풀들은 다 싱싱한데, 이것만 바싹 말랐을리 없으니까.”


올리버는 지팡이를 덤불에 쿡 찔러 넣고 이리저리 움직여보다가, 영 마음에 들지 않는지 허리춤에 달고 다니던 칼을 뽑아들어 덤불을 반으로 슥 베어버렸다.


“봐. 이 너머로 길이 이어져있어.”


그곳에는 오랜 시간 사람들의 발에 짓밟혀 풀이 자라지 못하고 다져진 흙길이 있었다.


“따라가보죠.”


“그래. 어디 뭐가 기다리고 있나 보자고.”


그리 멀리 갈 필요도 없었다. 길을 따라 잠시 걷다가, 시야를 가리던 나무를 지나쳐가자 그들 앞에 검푸른 호수가 덩그러니 모습을 드러내 보였다.


“봐. 호수가 있잖아. 그러니 낚시꾼이 있는거지.”


올리버는 호수 가까이 다가가다, 호숫가에 멈춰서서 근처를 두리번거리다가 돌멩이 하나를 집어들어 호수 안으로 풍덩 빠뜨렸다.


“그런데, 호수를 찾긴 했지만, 여긴 아무것도 없는걸요. 그냥 평범한 호수처럼 보이는데······”


“잠깐만요!”


갑자기 펠릭스는 손수건을 꺼내, 코와 입을 막고 호숫가를 빙 둘러 가기 시작했다.


“뭐해요?”


“올리버, 실비아. 당신들도 가려요!”


“네?”


올리버는 되묻지도 않고 재빨리 펠릭스가 시킨대로 코와 입을 막았다. 그러자 실비아도 뒤늦게 주섬주섬 손수건을 꺼내 코와 입을 막고 펠릭스의 뒤를 무작정 따라갔다.


“아니, 세상에. 이게 뭐야!”


“왜, 뭔데?”


올리버는 순식간에 달음박질쳐 실비아도 추월하여 펠릭스가 있는 곳으로 다가갔다.


“뭔데요?”


실비아도 도착하자, 펠릭스는 말없이 호수 근처 바닥에 피어있는 버섯 하나를 가리켰다.


“뭔데요?”


“꿈버섯이요. 이 안으로 이어져있네. 따라와요.”


펠릭스는 그렇게 말하며 그저 평범해 보이는 갈색의 버섯을 따라 안쪽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그 안에는, 갈색 버섯의 군락이 피어 있었다.


“말도 안돼. 나가요, 나가요! 당장!”


“아니, 왜?”


“이건, 꿈버섯이라고요!”


일행들의 등을 떠밀며 펠릭스는 황급히 그들을 다시 호숫가로 돌려보냈다.


“아니, 꿈버섯의 군락이라니. 말도안돼. 이게 왜 여기있지?”


“왜요? 뭔데요? 그러고보니, 알렉스한테 만들어준 약에도 꿈버섯을 넣었다면서요.”


“꿈버섯. 강력한 환각 작용이 있는 버섯이에요. 포자만 맡아도 환각을 느낄 수 있을 만큼 강해요. 워낙에 위험한 버섯이라 왕국에서 허가받지 않은 곳에서는, 종자를 구할수도 없고, 키우는건 당연히 불가능한 버섯이라고요. 그리고, 주기적으로 산림 감시원들이 신고를 받아 야생 꿈버섯 군락을 짓밟아버리고요. 그런데, 여기 이렇게 뜬금없이 군락이 있다니. 이상한 일이에요.”


“하지만, 덕분에 하나는 확실해졌군. 저 버섯의 포자가 떨어진 이 물을 마시고, 마을 사람들이 지독한 꿈에 시달리는 거겠지.”


냉소적인 목소리로 올리버가 말했지만, 펠릭스는 여전히 무언가 알쏭달쏭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면 좋은 꿈을 꿨어야 할텐데요. 여전히 뭔가 이상하군요. 올리버. 좀 도와줘요.”


“나도 갈래요.”


“그러든가요. 위험하니까, 최대한 숨을 참고, 손수건으로 코와 입을 잘 막아요. 다시한번 가 보죠. 분명 저기, 뭔가 있는게 틀림없는것 같으니까.”


세 사람은 다시 조심스럽게 꿈버섯의 군락으로 들어왔다. 그들은 잔뜩 경계하는 눈으로 버섯이 잔뜩 피어난 주변을 살피다가, 갑자기 올리버가 지팡이 끝에 삽날을 끼우는 것을 보았다.


“왜요?”


“재미난걸 찾아서.”


올리버는 삽날을 땅 속에 푹 쑤셔넣고, 흙더미를 파헤쳤다. 그러자, 버섯 아래의 부드러운 흙 속에서, 사람의 옷가지로 보이는 것이 슬쩍 튀어나와 보였다.


“아니, 뭐지?”


“있어봐. 내가 꺼낼 테니까.”


올리버는 그렇게 말하며 다시 삽을 푹 찔러넣고, 버섯이 피어난 흙더미를 그대로 퍼내 옆으로 치워버렸다. 삽질을 몇번 더 반복하자, 실비아는 입을 가리며 고개를 돌려버렸다. 반쯤 썩어 엉망이 된 사람의 시체가, 여전히 옷을 입은 그대로 흙 아래에 묻혀 있었다.


“이게...대체 뭐지?”


“잠시만요.” 순식간에 장갑을 끼고, 펠릭스는 시체를 살피기 시작했다.


“남자, 성인이군요. 뼈의 크기와 길이로 알 수 있어요. 그리고, 옷에는 뭐가 들었나? 아니, 이것좀 봐요 올리버!”


펠릭스는 시체의 주머니 속에서 축축하게 썩어가던 종이를 꺼내들었다.


“신분증명서잖아. 카를로스. 블랙 스와인 상회 소속임을 증명한다. 음. 어디서 들어본 상회인데···...”


“상인이었군요. 그리고, 아. 이것도 봐요!”


“영수증이로군, 이번에는.”


“저도 봐요!”


그러자 올리버는 실비아에게 영수증을 건넸다. 실비아는 두 눈으로 빠르게 영수증을 읽어보았다.


“어때?”


“세상에. 맞아요. 여기 적힌 물건들, 제가 딥우드 마을에서 봤던 바로 그 물건들이에요!”


“그래? 그렇다면, 이걸로 모든 진실이 드러나고 말았군.”


“뭐죠, 올리버?”


“간단한 이야기야. 그보다, 우선 여길 빠져나가서 설명하지.”




올리버와 펠릭스, 실비아는 딥우드 마을 촌장의 집 앞에 모여 있었다. 그리고 불안에 가득찬 표정의 촌장이 나오자, 펠릭스는 최대한 미안한 얼굴로 말했다.


“아무래도, 촌장님. 이건 제 능력 밖의 일 같습니다.”


“뭐? 안돼, 안돼! 도와주기로 했잖아!”


“할 수 있는 방법은 다 썼습니다. 사람들이 악몽을 꾸는 원인조차 저는 파악하지 못했습니다. 능력이 부족해 미안하군요.”


“아니, 그래도. 뭔가 더 도울 수 있는 방법이 있지 않나?”


“죄송합니다. 그럼, 저흰 이만.”


“아니, 기다려!”


그러나 펠릭스는 매정하게 촌장의 말을 더이상 듣지 않고 딥우드의 마을 밖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의 뒤를 따라 실비아도, 그리고 마지막으로 올리버도 마을에서 빠져나왔다.


“그래, 그렇게 된 일이라고.”


“올리버. 그래도 그건 너무 비약이에요.”


“뭐가? 단순한 사실들을 나열했을 뿐이야. 사실을 나열해서 자연스레 떠오른 진실을 보았을 뿐이지. 생각해봐, 펠릭스.”


그리고 올리버는 다시 자신의 추리를 늘어놓기 시작했다.


“블랙스와인 상회 소속의 방문상인 카를로스가 마을에 왔어. 그는 금은보화에다가 값비싼 옷들을 가지고 마을에 찾아왔겠지. 촌장을 비롯한 마을 사람들은, 그의 재산을 탐내 그를 죽이고, 대충 호수 근처에 파묻어버린거야. 그런데, 공교롭게도 그의 시체 위에서 꿈버섯이 피어나고 말았지. 그 포자에 호수가 오염된 줄도 모르고, 마을 사람들은 그 물을 떠 마셨어. 그리고, 꿈버섯의 강렬한 환각에 마을 사람들의 죄책감이 더해져서 이루 말로 다할 수 없는 악몽을 꾸게 된 것이지. 계속해서. 버섯의 수명이 다할 때까지.”


“꽤 괜찮은 추리군요 올리버. 두 가지만 빼고요.”


“둘 씩이나?”


“그래요. 차근히 생각해봐요.”


“하지만, 펠릭스. 이번에는 조금 매정하지 않았나요?”


“뭐가요?”


“그렇잖아요.” 실비아는 종종걸음으로 펠릭스의 앞으로 걸어나와, 그의 앞을 막아서며 말했다. “꿈버섯에 대해서 말해주기만 했어도, 저 사람들은 더이상 악몽에 시달리진 않았을텐데요.”


“아, 그거요? 그러니까, 실비아. 당신은 내가 약을 만들어 주지 않았다고 화를 내는 거군요?”


“맞아요.”


“그야, 저 사람들은 내게 약값을 지불하지 않을 것이 분명하니까요.”


“네?”


“약값이요. 당연하잖아요. 약을 받았으면, 비용을 지불해야지.”


“아니, 그건 그렇지만······. 그리고, 당신은 아무 대가없이 알렉스한테도 약을 만들어 줬잖아요?”


“내말을 오해하지 말아요. 내가 말하는 약값이라는건 금전적인 부분을 말하는게 아니에요. 좀 더 노골적으로 말하자면, 나한테 약을 만들만한 가치가 있는 일인지 아닌지가 중요한 기준이죠.”


“한 마디로, 자기마음대로라는 뜻인가요?”


펠릭스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요. 알렉스에게 약을 무상으로 만들어 준 것은, 그게 재밌을것 같아서 그런 거에요. 증상을 꽁꽁 숨기고있는 사람이 무엇을 숨기고 있는지 파헤치고, 드러내 보이며 그의 병을 치료하는 것. 재밌는 일이거든요.”


“제정신이 아니군요! 그런 미치광이같은 발상으로, 알렉스한테 약을 만들어 준거였어요? 그는 도저히 재기할 수 없을 만큼 끔찍한 고통을 입은 사람이라면서요? 다른 누구도 아니고 바로 당신이 그렇게 말했잖아요! 그런데, 그런 불쌍한 사람한테···...”


펠릭스는 손을 들어올려 실비아의 말을 가로막으며 끼어들었다.


“어쨌든, 그는 내게 약값을 줄 수 있었어요. 그래서 나는 그에게 약을 만들어 주었죠. 그뿐이에요. 하지만, 저 사람들. 딥우드의 축축한 공기에 푹 젖어버린 사람들은, 내가 약을 만들어 준다고 해서 내게 아무것도 주지 않을테죠. 그럼 내 손에 뭐가 남죠? 직업적 만족? 개인적 흥미? 하다못해 돈도 안 줄 걸요.”


“그래도, 당신에게는 힘과 지식이 있잖아요. 못 가진 사람들을 돕는데 좀 쓰면 어디 덧나나요? 약자를 돕는 것이 보람차다고 느끼지 않나요?”


“그래요. 나는 당신 말마따나 보람찬 일에는 얼마든지 내 지식과 힘을 쓸 준비가 되어 있어요. 하지만, 나는 보물이 탐나서 사람을 죽여 싸그리 빼앗은 주제에 그 죄책감도 못이겨서 벌벌 떠는 파렴치한들에게 마음의 위안을 주려고 연금술을 배운 것도 아니거든요?”


“오늘 일을 메를린이 안다면, 크게 실망할 거예요!”


“그럴 리가요. 메를린은 내가 어떤 사람인지 벌써 잘 알고 있는데. 오늘 일을 아주 과장해서 말해본들, 쿡 하고 웃으며 말하겠죠. ‘정말 펠릭스 다워.’ 라고요.”


“당신은 정말이지······”


“그쯤해둬, 실비아. 펠릭스하고 말싸움을 해 봤자 얻는것도 없으니까.”


“아니, 올리버! 그래도, 좀 너무하지 않나요? 아니, 나는 저 사람이 그딴 마음으로 약을 만들고 있는 줄은 몰랐다고요.”


“이런 마음이면 어떻고, 또 저런 마음이면 어때서? 펠릭스는 다른 이유로 차별하는것도 아니잖아. 추해서, 늙어서, 멍청해서, 성격이 더러워서, 또는 남자라서, 여자라서, 아이라서. 그런 이유로 사람을 차별하는 수많은 약사들과 연금술사들이 있는데, 펠릭스는 그렇지는 않아.”


“훨씬 끔찍한 이유로 사람을 구분하는 데도요?”


“약값만 지불하면 약을 만들어 주잖아. 그것도 최선을 다해서 최고로 좋은 약을 만들어주지. 그러면, 좋은 연금술사 아냐?”


“하지만, 그래도······.그래, 저한테 만들어준 약은 실패했잖아요!”


“그래요! 그게 내 인생의 최악의 오점으로 남을지도 모르겠어요. 이대로 실비아 당신이 길을 터주지 않는다면 말이죠.”


그제서야 실비아는 여전히 화를 내면서도, 슬쩍 몸을 옆으로 움직여 펠릭스의 앞길을 열어 주었다.


“그래. 잡담은 그쯤 나누고 우선 이 기분나쁜 숲은 빨리 벗어나버리자고. 그나저나, 꿈버섯은 그럼 대체 뭐였을까?”


“뭐요, 올리버?”


“꿈버섯 말이야. 그렇잖아. 마을 사람들이 상인을 죽이고, 그의 보물을 빼앗아 나눠가진다음 호수 근처에 암매장한것 까지는 알겠단말야. 그리고 피어난 꿈버섯의 포자와 죄책감 때문에 악몽을 꾸는것도. 그런데, 그 꿈버섯은 왜 거기 피어있던걸까?”


“글쎄요. 그거야말로 수수께끼인데.”


올리버는 턱을 쓰다듬으며 눈을 가늘게뜨고 입으로 이상한 소리를 내다가, 탄성을 질렀다.


“아하! 그래, 기억났어.”


“뭔데요?”


“소식지에서 봤어. 블랙스와인 상회. 그래, 그런거였구나.”


“혼자만 알지말고 빨리 가르쳐줘요, 올리버.”


실비아가 재촉하는데도 올리버는 혼자 실실 웃으며 느긋하게 말을 했다.


“그래. 언젠가, 소식지에서 봤지. 한 일주일 쯤 전인가? 블랙스와인 상회가 밀수 혐의로 조사를 받는다는 내용이었어. 그런데 그 밀수품이 뭔줄 아나?”


“꿈버섯인가요?”


“그래! 바로 그거야 실비아. 그래, 그러니 모든 상황이 설명되는군. 꿈버섯을 몰래 키우던 상회 소속의 상인이, 자기 몸에 포자가 묻은줄도 모르고 재빨리 돈을 숨기기 위해 상회의 어음이니 뭐니 하는 것들을 값비싼 물건들과 맞바꾸었겠지. 그리고 그 물건을 숨기러 가는 길에, 재수없게 이 마을에서 죽어버린거야. 밀수로 벌어들인 상회의 더러운 돈은, 아무것도 모르는 마을 사람들이 차지해버렸지. 그리고 그의 몸에서 떨어져나온 꿈버섯의 포자는 다시 그를 죽인 마을사람들에게 끔찍한 악몽이 되어 복수를 해 주고 있던거군그래. 아니, 이렇게 보니 정말 웃기는 일이로군. 그야말로, 인과응보야.”


“그렇네요 올리버. 정말, 우연의 일치 치고는 아주 재미난 일이군요.”


“재미요? 제가 보기엔 한심하기 짝이 없는 일이네요. 내가 이런 촌극에 휩쓸려서, 돌맹이같은 펠릭스 당신과 말다툼을 벌이고 있었다니.” 실비아는 한숨을 폭 쉬며 말했다.


“왜요?”


“그렇잖아요. 순간의 욕심에 눈이 멀어 밀수를 한 그 사람이나, 마찬가지로 욕심에 눈이 멀어 사람을 죽여놓고 계속 죄책감에 시달리는 사람들이나. 왜들 그렇게 한 치 앞을 못 내다볼까요?”


그러자, 잠자코 그녀의 말을 듣고있던 펠릭스는 웃으며 실비아에게 되물었다.


“글쎄요. 그건 당신도 마찬가지 아닌가요, 실비아?”


“네?”


“그렇잖아요?” 놀란 눈으로 자기를 쳐다보는 실비아를 향해 펠릭스가 웃으며 말했다. “죽음의 약을 구하러 나를 찾아왔잖아요.”


“아니, 나는, 달라요! 나는 아주 오랜시간 숙고한 끝에 내린 결론이라고요!”


“그건 이사람들도 마찬가지겠죠.”


“그럴리가요.”


“실비아. 세상에 아무 생각 없이 사는 사람은 없어요. 우리가 보기에, 아무리 이상하고 의미없어 보이는 일을 하는 사람이라도, 그사람들 나름대로는 다들 자기만의 분명한 이유가 있는 법이에요. 저들도 분명 나름대로 오랜 시간과 공을 들여 충분히 생각한 끝에 내린 결론이 그것들일 뿐이에요.”


“저렇게 결과가 나쁜데도요? 저런 결과를 예상하지 못했다고요?”


“몰랐으니까요. 이런 일이 벌어지기 전 까지는, 다들 자기가 옳다고 생각했겠죠.”


“그야, 그럴지도 모르지만...그치만, 그러면 너무 씁쓸하잖아요. 아무리 알아도, 아무리 생각해도 결국 일이 벌어지기 전까지는 모른다는 뜻이잖아요.”


“뭐 세상 사는일이 다 그렇죠 뭐. 그나저나 올리버.”


“왜 또. 젊은 철학자들의 토론회에 참여할 생각은 난 요만큼도 없어.”


“아니, 그게 아니고. 이렇게 기분도 칙칙해졌는데, 분위기 전환이라도 할 겸 무슨 재밌는 이야기라도 해 달라고요.”


“난 술꾼들 농담밖에 모르는데, 그거라도 괜찮아?”


“절대 안 돼요!”


실비아가 단칼에 거절하는데도 올리버는 껄껄 웃으며 입을 열기 시작했다. 다행히, 그의 입에서 나온 것은 술꾼의 농담은 아니었고, 대신 술집 주인의 조금 점잖은 농담이었다. 물론, 실비아나 펠릭스는 올리버가 자주 가는 술집에는 들어가본적도 없었기에, 그들은 농담의 출처를 모른 채 금새 웃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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