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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유자 님의 서재입니다.

행복의 연금술 가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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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녹색유자
작품등록일 :
2021.10.08 16:53
최근연재일 :
2022.01.13 18:00
연재수 :
172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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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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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1,774,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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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10.09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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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34쪽

4화

DUMMY

연금술사의 작업실이란 연금술사에게는 성이요, 안방이고, 보물창고와 같았다. 그렇기에, 주인의 허락 없이 다른 연금술사의 작업실에 발을 들이는 것은 아주 무례하고 수치스러운 일로 널리 퍼져 있었다. 하지만 연금술사가 아닌 평범한 사람들이 보기에는, 그들의 작업실이란 정체불명의 수상쩍은 도구들과 재료들, 장식품들이 가득 들어있는 싸구려 창고와도 같았다.


그런데 바로 그 작업실에, 초대받지 못한 손님이 태연하게 앉아 책을 읽고 있다는 것이었다. 펠릭스는 화가 나기보다도, 어떻게 감히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는지 혼란스러워 하며 작업실의 문을 벌컥 열었다. 거기에는, 그의 작업대 위에 책더미를 정갈하게 쌓아 올려두고, 한 권을 펼쳐 조용히 읽고있는 실비아가 있었다.


“내 작업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오자마자 펠릭스가 외쳤다. 화재 현장에서, 사람들은 가장 소중한 것을 불 옆에 서서 애타게 부르짖는다고들 한다. 그것이, 아마 펠릭스에게는 이 큼직한 작업실 전체인 것처럼 보였다.


“내 작업실!”


“아니, 뭐에요?”


“내 작업실! 내 허락도 없이 멋대로 들어오다니. 뭐에요? 그건 내가 당신한테 할 말이라고요!”


펠릭스가 소리를 꽥 지르자 실비아는 깜짝 놀라 움찔했다.


“아니, 나는 저기 부엌에 앉아있던······”


“올리버, 올리버!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요!”


펠릭스가 도로 작업실에서 폭풍처럼 빠르게 빠져나가자 실비아는 당황하여 눈을 깜빡이며 활짝 열어젖힌 작업실의 문만 보았다. 문 너머에서 잠시 소란이 있은 뒤에, 다시 펠릭스는 쉴새없이 무언가를 툴툴거리며 작업실로 돌아왔다.


“나가요.”


“왜요?”


“나가요. 연금술사의 작업실에 주인 허락도 없이 멋대로 들어오다니.”


“그럼 저는 어디서······”


“밖에 소파에 앉아 읽든가,부엌 테이블에 앉아 읽든가, 그것도 싫으면 부엌 솥에 들어가서라도 읽든지요. 여기는 안 돼요. 여긴 내 성이고, 내 신성한 작업대이며, 내 소중한 보물창고나 다름없다고요!”


“여기가요?”


실비아는 진심으로 전혀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작업실을 둘러보았다.


“그래요!”


“하지만, 그런 것치고는, 좀······”


“이래서 문외한들이란. 자, 어서, 어서 나가요.”


“쿵!”


갑자기, 작업대 옆의 선반 근처에서 무언가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이게 무슨 소리죠?”


펠릭스의 얼굴이 순식간에 잿빛이되어, 그는 잽싸게 달려왔다.


“나가요, 나가요 빨리. 빨리 나가라니까.”


“아니, 좀 기다려 봐요. 무슨 소리 나잖아요.”


“덜컹-”


다시 소리가 났다. 펠릭스가 흙빛이 되어버린 얼굴로 옆에 서있는것도 무시한채, 실비아는 호기심이 가득한 표정으로 소리가 난 선반 문에 귀를 가만히 가져다 대었다. 안에서 무언가 붕붕거리는 소리도 나고, 부스럭거리는 소리도 들렸다.


“안에 뭐가 있나요?”


“신경끄고 나가요. 나 진짜 화낼 거예요. 계속 말 했어요. 나가라고.”


“뭐가 들어있는데요?”


“신경끄라니까!” 펠릭스가 다시 소리를 꽥 질렀다. “그만 나가라니까요?”


“뭘 숨겼길레 그렇게 방어적으로 굴어요? 무슨, 어른의 장난감이라도 넣어뒀나요?”


“어떻게 그런 모욕적인 말을! 이봐요. 당신! 사람 말 알아들을 줄 알면 그만······”


실비아는 갑자기 예고도 없이 선반의 문을 활짝 열어젖혔다.


“안 돼!”


펠릭스의 비명과 함께, 선반 아래에 들어있던 네모난 철사 우리에 갇힌 정체불명의 커다란 곤충과 절지동물들이 갑자기 확 쏟아붓는 강렬한 실내 조명의 빛에 깜짝 놀라 우리 안에서 마구 날뛰며 이상한 소리를 내었다.


“으아악!”


펠릭스는 실성한 사람처럼 실비아를 밀쳐버리고 도로 문을 닫은 다음, 허둥지둥 작업실의 조명들을 하나씩 후후 불어 꺼버리고 절뚝이며 창문마다 두꺼운 커튼을 쳤다.


“어두워요! 갑자기 뭐하는...악!”


“나가, 나가! 나가-!”


펠릭스는 실비아의 등을 떠밀어 작업실 밖으로 내쫓아 버린다음, 어리둥절하게 서있는 그녀의 눈앞에서 문을 쾅 닫아버렸다.




졸지에 푸대접을 받고 작업실에서 쫓겨난 실비아는 처음에는 조금 당황했지만, 금세 그녀는 화가나기 시작했다. 귀족씩이나 되는 자기에게, 저 나이도 비슷해보이는 연금술사가 어떻게 감히 이딴 대접을 할 수 있지? 그녀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왜 그래? 무슨 일이지?”


그보다 더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이 모든 일의 원인을 제공한 바로 이 남자였다. 자신을 올리버라고 소개한 거구의 남자는 아무것도 모른다는듯한 표정으로 부엌 테이블에 앉아 조용히 차나 홀짝이고 있었다.


“당신 때문이잖아요!”


실비아가 소리쳤다.


“내가 뭘?”


“당신이, 저기 들어가서 책 읽어도 된다면서요!”


“아, 그거. 되는 줄 알았는데, 나도 이렇게 될 줄은 몰랐어.”


“몰랐다고 하면 그만인가요?”


그러자 갑자기, 올리버는 고개를 슬쩍 들이밀며 되물었다.


“방금 그말. 진심으로 하는거야? 몰랐다고 하면 그만이냐고?”


실비아는 그러자 움찔하며 몸을 뒤로 슬쩍 뺐다.


“뭐, 뭐에요?”


“당신에게 물었어. 모르면 그만이냐고? 그건 나한테 할 질문이 아니라, 당신 자기 자신에게 먼저 해야 할 질문 아닐까?”


“뭐라고요?”


“그렇잖아.” 올리버는 잔에 남은 차를 모조리 후루룩 마셨다. “당신이 안에서 뭔가를 저지른 덕분에 펠릭스가 길길이 뛰고 있는 거잖아. 그런데 당신은, 전혀 그것에 대해 일말의 죄책감도 느끼지 못하는 것처럼 보이는군.”


“아니, 나한테 뭘 미리 알려주던가 했어야죠. 난 정말 아무것도 몰랐다고요.”


“방금 내게 뭐라고 했지? 뭘, 몰랐다고 하면 그만이랬나? 이제 그 질문에 대답해야 할 사람은 내가 아니라 실비아 당신 같은데. 어때? 뭐라고 대답하겠나?”


실비아는 화난 표정으로 잠시 생각하다가, 고개를 휙 돌렸다.


“대답하지 않겠어요.”


“나한테 대답할 필요는 없어. 나는 몰랐다면 그만이라고 생각하거든. 하지만 네가 그걸로 납득할지 말지는, 네 스스로 생각해볼 문제지.”


“사람들은 끔찍한 일을 저질러 놓고서도 정작 아무것도 몰랐다고, 그렇게 될 줄 몰랐다고 말 한마디만 하면 뭐든 용서받을 수 있을줄 알아요!”


“당신도 마찬가지처럼 보이는군. 그런 네가, 그들을 비난할 수 있을까?”


“뭐요!”


실비아는 그렇게 화를 내면서도, 계속해서 주저했다.


“귀족의 딸로 태어나 지금껏 수도없이 많은 혜택들을 누려왔고, 그래서 그게 당연하다고 생각했겠지. 그리고 다른 사람들이 하찮게 보였을 거야. 혜택을 누리지 못하는 많은 천한 사람들. 아마 지금까지도 무슨 일이 생길 때마다 말 한마디 툭 던지고, 돈주머니 하나를 던지면 그걸로 문제가 해결 될 줄 알았겠지.”


“난 당신에게 훈계를 들을 만 한 일을 한 적 없어요!”


“훈계가 아니야. 그냥, 스스로를 돌아보라고 한 말이야. 그 증거로, 나는 너한테 이래라저래라 하지는 않잖아. 내가 너보고 당장 가서 사과하라고 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저기 구석에 손들고 서서 울상으로 반성이나 하고 있으라고 하지도 않았어. 그냥, 너 스스로 그걸로 괜찮은지 한번 돌아보라고 하는 말이지.”


“닥쳐요, 가정교사도 그렇게 지루한 훈계는 하지 않을 걸요!”


“가정교사가 남의 방에 들어갈때는 조심하라고 가르쳐주지 않던가?”


“당신이 들어가라면서요?”


“들어가서 책을 읽어도 될거라고 했지. 조용히 책만 읽었는데 펠릭스가 저렇게 화를 내던가? 그렇다면 당장 돌아가서 어서 싸우지 않고 여기 멀뚱히 서서 뭘 하고 있는거지?”


실비아의 표정이 당혹스러움으로 일그러졌다.


“책만 본건 아니어서···...하지만, 몰랐다고요. 저렇게 화 낼 일인줄.”


“처음으로 돌아왔군. 그래서, 어떻게 생각하나? 몰랐다고 하면 그걸로 용서가 되나?”


“나는, 나는······”


“이제 나는 필요없어보이는군. 알아서 해. 나는 해 줄 만큼 했어.”


그리고 올리버는 부엌에서 일어나 자기 방으로 들어가 문을 닫아버렸다. 철컥, 하는 자물쇠 채우는 소리까지 내 가면서.


“아니. 이봐요. 당신, 자기 할 말만 하고 가면 그만이에요? 이봐요, 나와봐요!”


그러나 실비아에게 대답을 해 줄 사람은 그곳에 더이상 없었다.


“아니, 정말, 하나같이 무례하기 짝이 없는 사람들이야! 어떻게, 어떻게 사람이 저렇게 제멋대로 일수가 있지? 정말, 무례하고, 예의없고, 남의 생각이라고는 눈꼽만큼도 할 줄을 모르는데다가, 최악이야. 내가 어쩌자고 대체······”


자그마한 나무 의자에 털썩 주저앉아, 실비아가 넋두리를 했다.


“내가 그렇게 잘못한거야?”


그러자 때마침 부엌의 창문으로 벼락이 번쩍이며 우르릉 소리를 내고 천둥이 쳐, 실비아는 잘못을 저지른 아이처럼 깜짝 놀랐다.




실비아는 주저하며 조심스럽게 펠릭스의 작업 문에 대고 손을 들어올려 노크를 했다. 똑 똑. 그러나 아무 반응이 없어, 그녀는 다시 한번 노크를 했다. 이제는 초조해져서 세 번째 노크를 하자 잠기지 않은 작업실의 나무문이 스르르 열렸다. 실비아는 열린 문 너머로 조심조심 머리를 들이밀고 어두운 방 안을 살짝 훔쳐보았다. 방 안에 불은 모두 꺼져 있었는데, 어디선가 빛이 보였다. 노란색의 이상한 무늬. 그것은 천천히 움직이고 있었는데, 실비아는 그것을 눈의 착각이라고 생각하고 문을 조금 더 열었다. 그러자 밖에서 새어들어온 빛 덕분에, 무늬의 정체가 드러났다. 그것은 사냥개정도 크기는 돼어 보이는 커다란 나방의 날개였다. 나방의 날개 위에 새겨진 기이한 무늬가 어둠 속에서 발광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헉!”


두 손으로 입을 막으며 실비아가 소리쳤다. 그러자 나방의 날개가 한번 퍼덕였다. 다행히 펠릭스는 그녀가 낸 소리를 듣지 못한 것인지, 아기를 안듯이 나방을 끌어안고 뭔가를 하고 있었다.


실비아가 용기를 내어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가자 펠릭스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볼 수 있었다. 그는 어둠 속에서 손 끝의 감각에 의존하여, 나방의 날개 위에 이상한 연고 같은 것을 얇게 펴바르고 있었다. 이따금 나방은 날개를 퍼덕였지만, 크게 저항하지는 않았다.


마침내, 펠릭스의 기이한 치료가 끝나자, 그는 조심스레 우리에 나방을 넣고 자물쇠를 채운 다음, 선반의 문을 열고 그 안에 케이지를 도로 집어넣었다. 선반의 문을 닫고 기지개를 켠 뒤, 뒤를 돌아본 펠릭스는 실비아와 눈이 마주치자마자 기겁하며 비명을 질렀다.


“으아악!”


그는 우당탕 뒤로 쓰러졌다.


“이봐요! 괜찮아요?”


“아니, 유령인줄 알았네. 뭐에요! 내가 나가랬잖아.”


“사과하려고 온 걸요.” 실비아는 방금전까지 진지하게 사과를 생각하던 자신이 조금 바보같이 느껴졌다. 이 우스꽝스럽게 넘어져 혼자 힘으로는 일어나지도 못하는 연금술사에게, 자기가 사과해야 하다니.


“아, 난 또 뭐라고. 진짜 유령이라도 나타난줄 알았네. 됐어요. 사과하지 마요. 사과한다고 해서 어차피 별 달라질것도 없는걸.”


“네? 그렇지만, 저한테 화가 난게······”


“지금은 아무생각없어요. 그렇지만, 당신이 쓸데없이 선반 문만 안 열었어도. 어휴.”


“미리 알려주던가요. 그리고 나는 올리버라는 사람이······”


“그래서, 자기 잘못은 없다 이거군요?”


실비아는 다시 얼굴을 붉히며 시선을 돌렸다.


“미안해요. 멋대로 열어봐서.”


“됐어요. 그리고 이제 나가봐요. 연금술사의 작업실에는, 연금술사밖에 못 들어와요.”


“전에 약을 만들때는 저한테 보여줬잖아요.”


“죽음의 약을 만들 때만 예외에요.” 펠릭스는 단호하게 선을 그었다. “그 외에는, 어떤 예외도 없어요. 정 구경하고 싶으면 연금술사가 되던가.”


“터무니없는소리!”


“동감이에요. 그러니 그만 나가줄래요? 아까 당신때문에 빛을 번쩍 쬐는 바람에 지금 놀라 다친 벌레들한테 막 연고를 발라준 참이라 나는 좀 지쳤거든요?”


실비아는 우물쭈물하며 문가로 다가가다가, 조용히 말했다.


“소중한, 그러니까, 당신한테는 소중한 것들이었죠?”


“뭐요. 아, 벌레요? 그래요.”


“저도, 어릴 때 강아지를 기른 적이 있었어요. 그래서······”


실비아는 거기서, 갑자기 기억 저편에 묻어두었던 수많은 추억들이 조그마한 강아지가 컹컹짖는 소리와 함께 무덤을 뚫고 빠져나와 그녀의 양 옆에서 손을 맞잡고 크게 원을 그리며 빙글빙글 도는 것을 느꼈다. 그 때 느꼈던 잔잔한 행복과, 충만함, 기쁨, 즐거움. 그리고 그리움까지···...그녀가 다시 정신을 차리고 시선을 조금 내렸을 때, 그 앞에는 멀뚱히 서 있는 펠릭스가 있었다.


“혹시 잡아먹으려고 기르던 놈인가요?”


“미쳤어요!”


방금전까지 기분좋게 실비아의 머리속을 떠돌던 기억 전체가, 강아지와 함께 화들짝 놀라 무덤 속으로 달아나버렸다.


“근데 그 이야기를 왜 해요? 나는 약재로 쓰려고 저 벌레들을 키우는건데.”


“아니, 당신은 사람의 마음이라는걸 갖고 있지 않나요? 그래도 얼마동안 같이 키워줬으면 애착이랄지, 사랑이랄지, 친근함이랄지 뭐 그런게 느껴지지 않나요? 나는, 당신이, 어쩌면 나처럼······”


“아 물론, 재료로서 아주 소중하게 생각해요. 하지만 재료일 뿐인걸요. 그리고 벌레인데, 벌레랑 무슨 교감을 하겠어요.”


“아깐 그렇게 소중하게, 어둠 속에서 사랑스럽게 어루만져 줬잖아요!”


“아니, 그런 낯부끄러운소릴!” 펠릭스는 황급히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말했다. “누가 들으면 오해하겠어요.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그딴 변태같은 말을······”


“뭐에요! 나는 당신한테서 동질감이 느껴져서, 그래서 미안해서, 불쌍해 보여서 사과하러 온 건데, 그따위로 말하기에요? 어릴 때 키우던 강아지 생각도 나서, 그래서, 그래서···...당신, 역시 이상해요!”


“뭐야. 무슨 소란들이야?”


작업실의 문을 벌컥 열고, 랜턴을 들이밀며 올리버가 튀어들어왔다.


“아, 올리버. 이 말괄량이 아가씨좀 데리고 나가줘요. 같이 있다가는 순식간에 늙을것 같아요.”


“아니, 이 무례한 사람이! 내가 신경써서 말해 주는데도······”


“올리버. 어서요.”


“아가씨, 같이 갑시다. 지금 이 연금술사가 조금 제정신이 아니거든요.”


“올리버!”


그러나 올리버는 펠릭스에게 눈을 찡긋해주고는 실비아의 어깨를 붙잡고 방 밖으로 반 강제로 데리고 나갔다.


“올리버. 하여튼, 이제 괜찮다는데도.”


실비아와 올리버가 작업실에서 나가자, 펠릭스는 절뚝거리며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가만히 멈춰있는 세상이 갑자기 빙빙 돌기라도 하는 것처럼 제자리에서 몇 바퀴를 허우적 거리다가, 겨우 방향을 잡고 작업실 지하로 통하는 문을 열고 내려갔다.




“어떻게 저렇게 무례한 사람이 있을 수 있죠?”


부엌에서, 올리버가 끓여준 율무차가 담긴 잔을 두 손으로 다소곳이 잡은 채로, 실비아는 거의 모욕에 가까운 투로 말을 했다.


“뭐, 연금술사들은 다들 이상하거든. 그래서, 사과했나?”


“하긴 했어요.” 훨씬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실비아가 대답했다. 그녀는 조심스레 율무차에 입을 가져다 댔는데, 너무 뜨거워서 금새 잔에서 입을 뗐다.


“잘됐네.”


“당신 때문이잖아요.”


“뭐가?”


“당신이 나한테 쓸데없는 소리만 안 했어도, 사과한답시고 도로 방에 들어가서 그런, 아니, 어떻게 그 사랑스러운 강아지를 가지고 그런 역겨운 상상을······”


“왜, 설마 또 잡아먹는다는둥 말을 했나?”


“이번이 처음이 아니라고요?”


실비아는 깜짝 놀라 말했다.


“당장 감옥에 집어 쳐 넣어야 돼요. 저런 불한당 같으니! 어떻게 그렇게 사랑스런 생명을······”


“아가씨. 당신이 좀 이해해줘. 펠릭스한테는, 그런 것은 아무 의미도 없거든.”


“뭐가요?”


“강아지가 사랑스럽느니 어떻다니 하는것.” 올리버는 율무차가 담겨 하얀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잔을 집어들고는, 뜨겁지도 않은 듯이 눈 하나 깜짝않고 한 모금 홀짝했다.


“저 사람에게는 인간의 마음이 없나요? 그러고보면, 죽음의 약을 선뜻 만들어 주겠다고 한것도 그래요. 세상에, 내가 대체 무슨 계약을 맺은거람?”


그러자 올리버는 호탕하게 웃으며 잔을 테이블 위에 내려놓았다.


“왜 웃어요?”


“그래, 펠릭스가 낯설게 보이겠지. 하지만, 저 녀석은 나쁜 놈은 절대 아냐.”


“제 식구라고 감싸는건가요?”


“붉은 가루병.” 올리버는 비내리는 창 밖을 쳐다보며 말했다. “혹시 아나?”


“아주 끔찍한 전염병이라고 들었어요.”


“그래. 그 병을 어떻게 이겨냈는지 아나? 가정교사가 뭐라고 가르쳐줬지?”


“안 가르쳐줬어요.”


“학교에서는?”


“왕이 현명한 결정을 내렸고, 백성들이 힘을 합쳐 이겨냈대요.”


“하하! 그래? 정말 누군지는 몰라도, 그 교사라는 놈의 머릿속을 한번 열어보고싶군. 그 안에는 형형색색의 꽃들로 가득 차 있을게 분명해!”


“모욕적인 언사에요! 제 스승을 욕하지마요!”


그러나 올리버는 오히려 적의가 담긴 웃음을 지으며 실비아를 보았다.


“그 붉은 가루병을 막아낸게 펠릭스야.”


“네? 저 애송이같은 연금술사가요?”


“혼자 막은 건 아니지만, 혼자 감당했어.”


“뭘 했는데요? 한낱 연금술사 따위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그 약을 만드는것 뿐이잖아요. 하지만 붉은 가루병에는 약도 없다는데요.”


“병을 낫게 하는 약은 없지.” 올리버가 무시무시한 목소리로 말했다. 창문 밖으로 벼락이 내리치며 천둥 소리가 울려퍼졌다.


“무슨 뜻이에요?”


“전염병을 막는 방법을 아나, 아가씨?”


“난 아가씨가 아니라 실비아에요. 그리고, 전염병을 막는 방법이라면, 약을 만들거나, 아니면 자연히 수그러들 때까지 기다리거나. 뭐 그런거 아닌가요?”


“그래. 자연히 수그러들때까지 말이지. 즉, 아무 조치도 취하지 않고 두 손 놓고 그저 지나가길 기다린다는 거지. 병에걸린 사람들이 모조리 죽어버려, 더이상 병을 퍼트리지 못하게 될 때까지.”


“으시시한소리 하지마요! 난, 그런 이야기 못 듣는다고요. 그리고, 그거랑 저 연금술사가······”


“펠릭스.”


올리버가 정정해주자 실비아는 침을 꼴깍 삼키고 다시 말했다.


“펠릭스랑 무슨 상관인데요?”


“실비아. 펠릭스가 어떤 연금술사인지 아나?”


“모르죠. 어제 만난 사람을 어떻게 알아요?”


올리버는 찻잔을 들어올려 한 모금 마셨다. 다시한번 천둥이 치며, 부엌 선반에 들어있는 수많은 식기들이 달그락거리는 소리를 냈다.


“펠릭스는 죽음의 약을 만드는 연금술사야.”


“그런데요?”


“그리고 전염병을 막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병에 걸린 사람들이 병을 퍼뜨리기전에 모조리 죽여버리는 것이지.”


“그래서요? 아니, 설마······”


“그래. 그 설마야.” 다시 번개가 내리쳤다. “펠릭스가 약을 만들어, 모조리 죽여버렸어. 그래서 붉은 가루병을 조기에 진압했지.”


“정말, 사람의 마음이라고는 조금도 없는, 살아있는 악마의 화신 같은 놈이군요. 어떻게, 어떻게 그런 사람과 같이······”


“그 때, 펠릭스가 손 놓고 있었으면 붉은 가루병이 온 왕국에 퍼졌을거다. 그랬으면 거리마다 피를 쏟으며 죽은 시체로 가득했겠지.”


“그건 비약이에요.”


“상상은 자유지. 안전한 새장에서 조용히 자란 귀족은 이해하지 못할 일이야. 나는 그 때 봤어. 그 연금술사라는 작자들이 얼마나 위선적인지, 그리고 펠릭스가 얼마나 대단한 놈인지도. 그래서 나는 그놈 밑에서 일하는거야. 새파랗게 어린 젊은놈이지만, 그놈은 여느 연금술사보다 낫거든.”


“당신이 하는 말, 하나도 못 믿겠어요.”


“믿기 싫으면 믿지 마. 나는 너한테 이래라저래라 할 마음없어. 그냥 나는 네게 이번에는 답을 주었을 뿐이야. 펠릭스가 사람의 마음이 전혀 없는 괴물같이 보인다면서?”


“그래요.” 실비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만 그놈은 나쁜 괴물은 아니야. 그냥, 어딘가 조금 모자란 괴물이지. 그러니 너무 무서워하지도 말고, 미워하지도 말라고.”


“저보고 이래라저래라 안하겠다면서요?”


“아, 미안. 아무래도, 오래 같이 지내다보니까 가끔 아들같이 느껴져서 그래.” 올리버는 다시 차를 한 모금 후루룩 마셨다. “그래, 뭐, 결국 실비아 네 마음이긴 하지. 그렇지만, 펠릭스한테도 나름대로의 사연이 있어. 아가씨가 죽음의 약을 찾으러 왔지만, 펠릭스는 그걸 가지고 너한테 아무것도 묻지 않았잖아? 그저, 약을 만들어 줬을 뿐이지.”


“그건 그렇지만요.”


“너를 평가하지도 않았고, 무시하거나, 비웃거나, 칭송하거나, 우대하거나, 천대하거나, 아무것도 하지 않았지. 펠릭스는 그런 놈이야.”


먼 곳에서 천둥 소리가 낮게 울려퍼졌다.


“왜 저한테 이렇게 구구절절 말을 해 주는 거에요?”


“왜냐면, 너는 이제 비가 그치면 펠릭스랑 같이 약재를 찾으러 떠나야 하니까. 벌써부터 둘이 티격태격 하는걸 보니, 적어도 너한테 펠릭스가 어떤 놈인지는 말 해 두는게 좋을 것 같아서. 아니면, 이제와서 약재를 찾으러 떠나길 포기할 셈인가?”


“반 년은 길어요.” 실비아가 말했다.


“그러니까, 여행 동료에 대해서 알아두라는 말이지.”


이제 천둥 소리는 들리지 않고, 대신 무거운 빗소리가 두꺼운 커튼처럼 내려왔다.


“아까 한 말, 사실인가요?”


“뭐가?”


“붉은 가루병 이야기요.”


“아, 그거. 믿기 싫으면 믿지마.”


올리버는 머나먼 남의 나라에서 일어나는 일을 말하듯, 아무 생각없이 중얼거렸다.


“사실인지 아닌지 물었어요.”


그러자 올리버는 씩 웃었다.


“세상에 그렇게 사실이다 아니다로 깔끔하게 떨어지는 문장은 거의 없어. 굳이 말하자면, 거의 사실이지만 거짓도 있어. 그게 다야.”


“그런게 어딨어요?”


실비아가 항의했지만 올리버는 그저 웃을 뿐이었다.


“그게 세상이야. 싫어도 어쩔 도리가 없어. 정 싫으면, 싫은 사람이 떠야지. 너처럼.”


“나요? 아니, 당신 자꾸 나에 대해 아는척 하지 말아요. 무례하기 짝이 없다고요!”


“하하, 미안. 술집에서 나쁜걸 또 배워왔군. 옆에 펠릭스가 있었으면 한 소리 했겠구만. 그나저나, 펠릭스가 읽으라고 준 책은 다 읽었나?”


실비아는 우물쭈물 자리에서 일어났다.


“뭐, 그것도 읽기 싫으면 읽지 마.”


“읽어야 한다면서요?”


“안 읽어도 별 문제 없어. 펠릭스는 실력도 뛰어나고 아주 철저한 놈이거든. 저래보여도 말이야. 우연히 약재를 찾았는데 못 알아보고 지나치는 일은, 절대 있을리 없어.”


“그래요? 그렇다면, 다행이지만······”


그러나 실비아는 무언가 탐탁찮은듯한 표정으로 우물쭈물거렸다.


“하지만, 못미더우면 네가 직접 배우는것도 좋겠지. 아니면, 연금술사들의 마술에 관심이 있나?”


“없어요!”


당장 실비아가 잡아뗐다. 그러자 올리버는 다시 호탕하게 웃었다.


“혹시라도 관심이 생기면 펠릭스한테 달라붙으라고. 그놈은 그렇게 새파랗게 어리지만, 실력에 있어서는 여느 늙은이 못지 않거든. 특히나 그 죽음의 약에 대해서는, 전설적인 연금술사들의 대스승 말고는 아무도 따라올 놈이 없어.”


“내가 만에 하나라도 연금술에 관심이 생긴다 하더라도, 그렇게 수상쩍고 음흉한 약 따위에는 절대 관심 없을 걸요!”


“누가 미래를 알겠어. 뭐, 아무튼 수고하라고.”


올리버는 찻잔에 남은 차를 마저 마셔버리고, 자리에서 일어나 방 안으로 들어갔다. 곧, 그는 등에 활과 활통을 메고 가죽 조끼를 걸친 차림으로 나왔다.


“뭐에요?”


“내 일을 하러 갈 시간이야.”


“비가 이렇게 퍼붓는데요? 밖에 나가요?”


올리버가 웃었다. “아가씨. 귀족이라 지금껏 몰랐겠지만, 우리같은 사람들은 비가오든 눈이오든 나가야돼. 뭐, 신경써줄 필요는 없어. 나는 내 일을 하는 것뿐이니까. 아가씨도, 아가씨의 일을 하면 그걸로 그뿐이야. 그러니 서로 자기 일이나 잘 하라고.”


“그래요? 그건, 그렇지만······”


“아니면, 채집꾼의 일에 관심이 생겼나?”


“아니오.”


“그래, 그러면 된 거야. 가서 책이나 읽으라고. 아니면, 뭐 다른 거라도 하든가. 아무튼, 수고해 아가씨. 부디 들짐승의 고기가 입에 맞으면 좋을텐데.”


그 말을 끝으로 올리버는 비가 퍼붓는 바깥으로 사라지듯 나가버렸다. 졸지에 널찍한 연금술 가게 안에 혼자 남은 실비아는 오늘따라 유난히 빗소리가 크게 들리는 것같았다.




어둠 속에서 일을 마친 펠릭스는 작업실의 문을 열고 부엌으로 걸어나왔다. 부엌으로 나오자마자, 그는 무슨 싸구려 동화에서처럼 테이블 위에 책더미를 쌓아두고 거기에 파묻힌채 꾸벅꾸벅, 아니, 팔자좋게 졸고있는 실비아를 보고 헛웃음이 났다.


펠릭스가 부엌에서 달그락거리는 소리를 내어, 실비아는 천천히 잠에서 깼다.


“아.”


실비아의 목소리를 듣고 펠릭스는 잠시 뒤를 돌아보았다.


“아, 안녕하세요.”


“인사를 나눌 시간대는 아닌것 같네요. 그리고 우리 오늘은 이미 인사를 나눴잖아요?”


“그랬던가요?”


실비아는 눈을 비비며 말했다.


“뭐, 아니라도 별 상관은 없는 일이죠. 그나저나, 어때요. 책은 좀 읽을만 해요?”


“모르겠어요. 읽는다고 읽긴 했는데······”


그러자 펠릭스는 실비아의 맞은편에 가서 의자를 쭉 빼 그 위에 앉았다.


“달맞이꽃과 달꽃의 차이를 아나요?”


“밤에 꽃이 피는게 달꽃이에요.” 하품을 하며 실비아가 말했다.


“사랑초의 효능을 아나요?”


“이것저것 있다지만, 거의다 증명되지 못한 허풍이고, 실제 효과는 진정효과 뿐이요. 배앓이 약으로 쓴다는데요.”


“여기 연금술사 한 명이 한 병치 약의 재료로 약을 두 병 만들려고 합니다. 물을 얼마나 넣어야 할까요?”


“원래 양의 1.5배요. 그리고 마왕잠자리 날개를 한 장 뜯어넣어야 하겠네요.”


“만드레이크가 무엇이죠?”


“헛소문만 무성한 독초요.”


“꽤 많이 읽었네요.”


펠릭스가 대견하다는듯 말했다.


“뭐, 그렇네요.”


“어쩌면 책을 읽는데는 나보다 나을지도 모르겠군요. 그럼 마지막으로 하나만 더 묻도록 하죠. 적율, 흑살구, 버섯두꺼비, 호수뿌리, 요정가루, 개암나무꽃, 인어의 머리칼, 뿔도마뱀 눈알, 외뿔소의 뿔, 겨울눈꽃, 불나무 껍질 말린것을 섞으면 뭐가 나올까요?”


실비아는 전혀 모르겠다는 듯한 표정으로, 아니, 지금 펠릭스가 무슨 말을 하는지조차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멀뚱히 있었다.


“짜잔. 죽음의 약이랍니다. 물론 몇 가지 재료가 빠졌으니, 내게서 약을 훔쳐갈 생각은 말아요!”


그리고 펠릭스는 혼자 깔깔 웃기 시작했다. 조금은 소름끼치게, 그리고 조금은 천진난만하게. 창밖의 빗소리를 배경삼아.




저녁시간이 되자, 빗소리가 약해졌다. 펠릭스와 실비아는 부엌 테이블에 앉아 올리버가 화덕 옆에서 잡아온 비둘기를 손질하여 불에 굽는 것을 보았다.


“좀 징그럽지 않아요?”


“뭐가요?”


“비둘기 손질하는 거요. 귀족 아가씨들이라면 당연히 눈을 돌릴 줄 알았는데. 거기서 좀 더 고상한 척 하는 아가씨는 두 손으로 입을 가리거나, 과장이 심한 사람은 아예 기절한 척 쓰러지기도 하죠.”


“안 그러거든요!”


실비아가 반박했다.


“그래요?”


“그래요! 당신이 귀족을 알아요?”


“뭐, 사실 잘 모르긴 하죠.”


펠릭스는 심드렁하게 대답했다.


“이제 내일은 출발하는건가요?”


실비아가 조심스럽게 묻자 펠릭스는 몇 초 정도 가만히 있다가 대답했다.


“상황에 따라서요.”


“네?”


“비가 오면, 못 가요. 그리고 기다리고 있는 소식도 있고.”


“뭘 기다리고 있는데요?”


“확인할게 좀 있어서요. 그리고 친구한테 편지 보낸것도 아직 답장을 못 받았어요.”


“정말, 하나같이 시답잖은 이유네요.”


“그런가요? 나한테는 하나같이 중요한 이유들 뿐인데.”


실비아는 말실수를 한 것 같다는 느낌을 조금 받아, 펠릭스의 기분이 상했을까 하여 조심스레 그의 눈치를 보았다.


“아, 신경쓰지마요. 난 그런 걸로는 상처 안받거든요.”


“네? 아······”


“눈치보지 말라는 뜻이에요. 오자마자 마음대로 온 집안에 작업실을 헤집어놓고, 이제와서 눈치볼 생각 말아요.”


“하지만 그건 너무······”


“예의차리고자시고 하기에는 우리 둘다 신나게 싸워댔잖아요. 이제와서 예의차려 뭐해요. 그냥 편하게 있어요. 어차피, 좋든싫든 그 죽음의 약이 완성될 때까지는 이렇게 다녀야 할 테니까.”


“그럼, 그렇다면, 알겠어요.”


그리고 두 사람은 비둘기의 고기가 꼬챙이에 꽂혀 불 위에서 지글거리는 것을 조용히 구경했다.




“원, 둘 다 왜그렇게 말들이 많아.”


비둘기 고기를 접시에 담아오며 올리버가 말했다.


“어쩌다보니까요.”


“일단 들라고. 저녁 식사치고는 양이 좀 모자라 보이지만, 이 정도가 딱이거든. 밤에 너무 많이 먹으면 속이 더부룩해서 잠이 안와.”


“그건 당신 나이가···”


“펠릭스!”


올리버가 항의하자, 펠릭스는 혼자 깔깔 웃어넘겼다.


“아, 그래. 실비아. 그래, 어서 들어. 아니면 산비둘기 고기는 못 먹겠나?”


올리버는 포크와 나이프를 손에 든 채, 조용히 접시를 쳐다만 보고있는 실비아를 향해 말했다.


“아니, 아니에요. 그런 건 아니고······”


“그럼? 옆에 서서 고기를 능숙하게 해체 해 줄 하인을 찾는 건 아니지?”


“아니에요! 나는 그 정도는 항상 혼자서 했다고요.”


“그래?” 올리버가 못 믿겠다는듯 묻자 실비아가 화를 냈다.


“그래요!”


“그러면 다행이고. 자, 어서들 들어.”


“저기, 당신은 안 먹나요?”


“나?” 올리버는 자기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묻고는, 웃음을 터트렸다.


“뭐야, 내 신경을 써 준 거야? 거 낯부끄럽게. 이봐, 실비아. 신경끄고 먹기나 해. 왜, 그런 말도 있잖아. 부모는 애들 먹는것만 봐도 배부르다고.”


“네? 처음 들어봐요.”


“아, 지체높은 귀족 가문의 아가씨였지 참. 하긴, 귀족가문에서 이딴 말을 해 줄만 한 사람은 없겠군그래. 아무튼 내 신경끄고 먹어. 먹으라고.”


“당신은 안 먹어요?”


그러자 올리버는 주전자에 물을 받아 끓이기 시작했다.


“채집꾼과 사냥꾼은 알아서 자기 식사를 해결하는 법이야.”


“그래도······”


“아니면, 그 고기를 나한테 통째로 넘기겠어? 대신 오늘 저녁에는 쫄쫄 굶어야 할텐데.”


실비아는 잠시 머뭇거리다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올리버는 다시 허탈하게 웃으며 고개를 돌려버렸다.


“택도없는 소리말고 먹기나 해. 식으면 맛 없다 그거.”


“그렇지만.”


“어허.”


“그래요 실비아. 그냥 먹어요. 저래뵈도 올리버는 한 고집 하거든요. 당신 정도로는 절대로 설득할 수 없을 걸요?”


“이봐요 펠릭스. 당신은 빠져있어요.”


“원, 참. 알려줘도 그래.”


툴툴거리며 기세좋게 아예 손으로 비둘기 고기를 잡고 물어뜯는 펠릭스를 보고, 실비아는 조금은 혐오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펠릭스는 그런 시선따윈 전혀 신경쓰지 않고 쩝쩝거리는 소리까지 내며 고기를 뜯어먹고, 트림을 하고, 이 사이에 끼인 고기조각을 손가락을 집어넣어 빼기까지 했다.


“구경났어요?”


실비아는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되물었다.


“예의가 너무 없지 않아요?”


“여긴 내 집이고, 당신은 손님인데, 예의를 차려야 할 건 당신이죠.”


“우린 계약을 한 동등한 사이 아니었나요?”


“그건 약재를 찾을 때 이야기죠. 식사 시간은 상관없어요.”


“일리있는 말이군.”


마침 찻물을 다 끓인 올리버가 펠릭스의 의견에 동의했다.


“아니, 그렇다고 해도, 최소한의 인간으로서의 예의라는게 있잖아요?”


“차리고 싶으면 혼자 차려요 그놈의 예의. 나는 내 집 안에서 내 맘대로 할 권리는 있다고요. 당신도 당신 집에서는 마음대로 살지 않나요?”


실비아는 시선을 아래로 깔고, 대답하지 않았다.


“아니에요?”


“자, 자. 차들 한잔 해.” 올리버는 분위기가 여기서 더 이상해지기 전에 능숙하게 쟁반에 잔을 받쳐 들고 끼어들었다. 펠릭스는 잔을 집어들다 멈칫했다. 또, 사랑초의 꽃잎이 잔 안에서 막 부풀고 있었다.


“올리버! 또!”


“왜.”


“사랑초!” 펠릭스가 잔을 손가락질하며 소리쳤다. “아끼랬잖아요!”


“뭘. 어차피 한동안은 가게도 비울텐데, 이 기회에 먹어둬야지.”


“약재라니까!” 펠릭스가 항의했다.


“맛있잖아. 달짝지근하고, 향도 좋고, 마시면 긴장이 풀리고, 기분도 풀리고, 따스하고 나른한 기운이 올라오지. 과연, 사랑의 묘약이라고 착각할 만도 해.”


“비싸다고요!”


“드디어 본색을 드러내는군, 펠릭스.” 올리버는 그러곤 혼자 실실 웃으며 차를 한 모금 후룩 마셨다.


“이젠 내 말을 듣지도 않아.”


“뭐, 다음에 배앓이 손님이 오면 내가 만들어둔 매실 액이라도 줄게.”


“그러니까, 그건 연금술사로서 폼이 안 난다고요!”


“뭘, 언제는 손님이 원하는 때에 원하는 약을 주는게 직업적 사명이니 뭐니 번지르르하게 늘어놓고선. 순 겉멋 뿐이었군.”


“올리버!”


올리버는 웃으며 잔을 기울여 얼굴을 살짝 가리며 실비아를 곁눈질 했다. 다행히 그녀의 얼굴은 아까보단 조금 더 환해져서, 조금 웃음을 머금은채 두 사람의 하찮은 실랑이를 구경하고 있었다. 정말 손이 많이가는 아가씨로군. 올리버는 잔을 기울이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저녁 식사가 끝나자 펠릭스는 계단을 올라 방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실비아는 집으로 돌아가지 않고 여기에 꿋꿋이 남겠다고 하여, 올리버는 손님용 소파 위에 잠자리를 마련해 주었다.


“진짜 안 돌아가도 되겠어?”


실비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부모가 화낼텐데.”


“신경 안 써요.”


“누가 누구한테?”


실비아는 머뭇거리며 입을 다물었다.


“말 하기싫음 하지 말아. 아무튼, 거긴 솔직히 자기에 좋은 자리는 아니다. 정 못 자겠거든 내 방 문을 두드려. 세 번, 똑똑 똑. 이 리듬이야.”


올리버는 가볍게 주먹을 쥐어 나무 문을 리듬에 맞춰 두드렸다.


“리듬까지 맞춰야해요?”


“직업병이라. 뭐, 아니면 소리내서 불러도 되고.”


“감사합니다.”


“감사는. 원래 애 보는건 어른 일이야. 신경 끄고, 그럼 푹 자라고 아가씨. 내일부터는 바빠질 테니까.”


“정말, 감사합니다.”


고개를 꾸벅 숙인 실비아를 보고 한번 웃어준 뒤, 올리버는 가게의 조명을 하나둘 끄고 자기 방으로 돌아왔다.




“원, 참. 결혼도 안 했는데 벌써 애를 둘이나 보게 생겼구만.”


방으로 돌아온 올리버는 창 밖에 둥둥 뜬 달을 보며 허탈하게 중얼거렸다.


“어쩌다 이런 말썽꾸러기들을 맡게 됐는지 원. 내 팔자 하고는. 기구하기 짝이 없군.”


넋두리를 끝낸 올리버는 옷을 갈아입고 침대 위에 풀썩 드러누워 기지개를 켠 다음, 금새 코를 골며 잠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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