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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유자 님의 서재입니다.

행복의 연금술 가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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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녹색유자
작품등록일 :
2021.10.08 16:53
최근연재일 :
2022.01.13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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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10.15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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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쪽

15화

DUMMY

그날 밤, 펠릭스는 올빼미 우는 소리를 들으며 그의 방 안 책상에 앉아 창문 밖을 바라보며 골똘히 생각에 잠겨 있었다. 갑자기, 무언가 푸드득 하고 창문에 달라붙어 유리를 콕콕 쪼았다. 펠릭스는 조금 기대하는 표정으로 창문을 열었고, 발목에 쪽지를 묶고 날아온 흰 비둘기의 머리를 슬슬 쓰다듬으며 설탕물이 담긴 조그만 접시를 내밀었다.


비둘기가 설탕물을 쪼는 동안, 펠릭스는 발목에 묶여있던 쪽지를 펼쳐 보았다. 순식간에 쪽지를 읽어내려간 그는 결심이 선듯한 표정을 짓고 슬며시 웃으며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아침의 태양이 완전히 떠올라 자신의 위세를 뽐내기도 전에, 펠릭스는 이미 잠에서 깨어 있었다. 그는 계단을 내려와 소파에서 잠든 실비아를 슬쩍 보고는, 올리버의 방 문에 리듬감있게 노크를 했다. 그러자 달칵 문손잡이가 돌아가며 문이 열렸다.


“왜?”


“올리버. 여행갈 시간이에요.”


“여행?”


펠릭스는 올리버에게 쪽지를 보여주었다. 올리버역시 쪽지를 순식간에 훑어본다음, 크게 하품을 하고 기지개를 켜며 말했다.


“그래, 잘 됐군. 그런데, 실비아는?”


올리버는 문틈으로 소파에 거의 가려진채 담요를 덮고 있는 실비아를 힐끗 보았다.


“여행을 견딜 수 있을까?”


“해 봐야 알겠지만, 뭐. 견뎌내야죠. 저하고 약속도 했잖아요. 최고의 죽음의 약을 만들어 주겠지만, 그에 걸맞는 재료를 구하기 위해 같이 애쓰자고.”


“그렇긴 한데, 그게 노력한다고 되는 일이 아니잖아. 발이 부르트고 다리가 부으면 걷고싶어도 못 걸어.”


“제가 있잖아요?” 펠릭스가 씩 웃으며 말했다. “위대한 연금술사, 펠릭스 님이 동행하는데 그것쯤이야 별 문제 아니죠.”


“그것도 일리있는 말이기는 한데, 글쎄. 귀족 아가씨가 어디까지 해 주련지······”


소파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실비아는 몸을 잠깐 뒤척이더니 다시 숨을 색색 쉬었다.


“뭐, 해 보면 알겠죠. 어디, 실비아, 실비아? 일어날 시간이에요 잠꾸러기 아가씨.”


펠릭스는 소파 쪽으로 걸어가 실비아의 이름을 불렀다.


“일어나요 잠꾸러기 아가씨!”


“응-”


“아니, 아주 푹 잠들었네. 어떻게 이 불편한데서 그렇게 속편하게 잘 수 있지? 실비아. 실비아? 내 말 안들리나요오?”


“아, 왜요!”


실비아는 짜증을 내며 덮고있던 담요를 펠릭스의 얼굴을 향해 뻥 걷어찼다. 졸지에 담요의 습격을 받은 펠릭스는 얼이 빠져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잠시 그대로 서 있었다.


“아함. 한참 잘 자고 있었는데. 아, 펠릭스. 거기서 뭐하고 있어요?”


“실비아. 방금 담요가 내 얼굴로 날아든것 같은데. 혹시 이게 그 유령들린 물건인가 뭔가 하는 걸까요?”


펠릭스는 그의 발치에 떨어진 담요 뭉치를 주섬주섬 주워들며 말했다.




“아, 저기, 그게······”


“별로 지체높은 귀족의 모습처럼 보이지는 않던데요.”


“저, 죄송해요. 혹시 다쳤어요?”


“아뇨. 됐어요. 일단 잠이나 깨요. 가서 금방 세수라도 하고 와요. 중요하게 할 말 있으니까.”


“네? 뭔데요?”


“여행 갈 거예요.”


“네?”


“여행. 당신이 가자면서요? 재료찾으러.”


“아, 아! 네. 드디어 가는군요?”


실비아는 무슨 마을 근처 들판으로 소풍나가는 어린 아이처럼 갑자기 기분이 잔뜩 들떠 손뼉까지 치며 말했다.


“아니, 그렇게 들뜰 일은 아니고······”


“알았어요. 금방 준비하고 올게요!”


그리고 실비아는 쪼르르 뒷문으로 나갔다. 그녀가 문 밖으로 나가자 펠릭스는 들고있던 담요를 도로 소파 위에 휙 집어던졌다.


“괜찮을까?”


걱정스런 눈으로 올리버는 실비아가 제대로 닫지도 않아 삐걱거리며 바람에 앞뒤로 흔들리는 뒷문을 보며 말했다.


“글쎄요.”


“사실, 실비아가 어디까지 나가봤겠어? 귀족 소녀야. 특별한 사정이 있지 않은 이상, 귀하게 키웠을거라고. 나중에 비싸게 팔아치워야 하니까.”


“그 정략 결혼 말이죠?”


“그래. 그거. 그러니, 저 아가씨가 집에서 어디 멀리 나가봤자 겨우 뉴캐슬에서 이 마을 정도까지밖에 안 나가봤겠지. 근데, 너는 지금 골든포트까지 간다면서.”


“그래요.”


“거긴 꽤 멀잖아. 급행 마차를 타도 꼬박 하루가 걸리는 거리인데.”


“걸어갈거지만요.”


“뭐? 왜?”


“그건 이따 설명해 줄게요. 저기 얼굴에 물기도 덜 닦아서 턱에 물이 뚝뚝 떨어지는것도 모르는 말괄량이 아가씨도 또 똑같은걸 물을 테니까.”


올리버가 고개를 돌리자 여전히 아무것도 모르고 그저 기분좋게 웃고만있는 실비아가 보였다. 기나긴 도보 여행이 무얼 뜻하는지 아는 올리버로서는, 그저 좋아라 하는 실비아의 모습에 한숨밖에 나오지 않았다.






펠릭스와 실비아, 올리버는 거실 테이블 앞에 마주앉았다. 펠릭스는 그의 방 벽에 걸려있던 지도를 가져와 테이블 위에 활짝 펼쳐놓고 말했다.


“자, 실비아. 우선 좋은 소식이 왔다는걸 알려주겠어요.”


“네. 말해요 펠릭스.”


펠릭스는 우선 실비아에게 쪽지를 들이밀어 보였다.


“읽어봐요.”


쪽지를 받아든 실비아는 쪽지를 소리내어 읽기 시작했다.


“골든포트. 대경매장에서 온 거네요? 귀하가 기다리시던 배가 항구에 열흘 뒤에 정박할 것이다. 화물 목록은······앗, 앗! 이거! 외뿔소의 뿔!”


“그래요, 그래요 실비아! 드디어 우리가 기다리던 재료의 아주 멀쩡하고 정상적인 소식이 온 거라고요!”


거의 감격에 겨워서, 펠릭스가 말했다.


“펠릭스. 과장이 심해.”


“아니, 올리버! 적율, 두꺼비 생각해 봐요. 또 그 재수없는 폭풍때문에 배가 가라앉지 않은게 기적같다고요!”


“원 참. 호들갑은.”


“그래서, 그래서요? 골든포트까지 갈 건가요?”


“당연히 가야죠! 실비아. 운만 조금 따라주면 거기서 재료 두 개까지 확보할 수 있어요!”


“두 개 씩이나!” 실비아도 어느새 펠릭스의 호들갑이 옮은듯, 그녀는 두 눈을 크게 뜨고 입을 살짝 벌린채, 기쁨에 찬 표정을 짓고 있었다.


“좋아요. 아주 좋아요. 그럼, 실비아. 골든포트까지 당장 가야겠죠?”


“그렇네요. 빨리 출발해야겠어요. 어디, 여행 준비를 해 두었던가······”


“아, 조금 진정해요 실비아.” 그 새 자신의 짐가방을 향해 걸어가던 실비아를 멈춰세우며 펠릭스가 말했다.


“네? 아, 네. 아, 제가 조금 흥분했네요. 아직 말이 덜 끝난거죠?”


“그래요. 자, 그럼. 우선 여행 계획을 말 해 줄게요.”


“네! 좋아요.”


실비아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을 본 올리버는, 도저히 입에서 새어나오는 한숨을 참기가 힘들었다. 그의 품 어딘가에 숨어있던 갈색 다람쥐 코튼이 제 주인이 답답한걸 알아채고 얼굴 근처를 알짱거리며 재롱을 떨어주었는데도 말이다.




“자, 우리가 지금 여기 있어요.”


펠릭스는 왕국 지도의 한 지점을 가리켰다.


“네. 알았어요.”


“그리고 여기까지 갈 거예요.”


펠릭스는 왕국 지도의 남쪽 바닷가를 손가락으로 콕 찝었다.


“그렇군요.”


“그래요. 걸어서 갈 것이고, 하루에 7시간을 걸으면 아마 닷새 정도면 도착할 거예요.”


“네?”


실비아는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왜요.”


“왜 걸어가요? 마차 타고 가도 되잖아요?”


“아, 그래. 실비아. 아주 일리있는 말이에요. 하지만, 싫어요.”


“싫다니, 왜요?”


실비아가 항의를 했지만 펠릭스는 눈 하나 꿈쩍 않았다.


“제가 말했잖아요. 당신하고 만난 그 다음날. 도감을 주면서 제가 뭐라고 말했죠?”


“돌아다니다가, 혹시라도 약의 재료를 찾으면······”


“그래요. 바로 그거에요! 아주 기억력이 뛰어나군요. 실비아. 마차를 타면 골든포트까지 금방 도착하겠죠. 아마 하루를 꼬박 달리면 도착할 거예요. 그런데, 그러면 여행길 도중에 발견했을지도 모르는 많은 재료들을 놓친다고요.”


“아니, 그래도······”


“그래도?”


“그렇게, 멀리까지 나가본 적이 없는데.”


실비아가 난색을 표하자, 옆에서 올리버가 가볍게 헛기침을 하며 끼어들었다.


“뭐, 실비아. 나랑 펠릭스가 옆에 있으니 너무 걱정할 건 없어. 나는 편한 길을 찾아줄테고, 펠릭스는 네가 지치면 강장제나 피로회복제나, 뭐 그 비슷한 걸 약으로 만들어 줄 거다.”


실비아는 조금 못미덥다는 표정으로 펠릭스를 힐끔 돌아보았다. 그러나 펠릭스는 그저 의기양양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그렇지만······꼭, 꼭 걸어가야 하나요?”


“당신도 여행 기대하고 있었잖아요? 아니, 오히려 생각보다 너무 냉정해서 내가 더 놀랄 지경이에요.”


“그게, 그러니까. 너무 멀잖아요?”


실비아는 다시 지도를 가리켰다.


“멀다고요. 거의 100km정도 떨어졌는데······”


“그래서 말했잖아요. 하루에 7시간씩 걸어서 닷새 정도면 도착할 거라고.”


실비아는 머뭇거리다가 그냥 입을 다물어 버렸다.


“싫어요?”


“싫은건 아니에요. 다만······”


“다만?”


“걱정이 좀 돼서요. 그러니까, 저 혼자 뒤쳐지면 어떡해요?”


“아니, 걱정 말라니까. 실비아. 우리가 네 걸음에 맞춰 줄게.”


“그게 아니라, 대경매요.” 실비아는 답지않게 머뭇거리며, 아니, 거의 울먹이며 말했다. “나 때문에, 늦으면 어떡해요?”


“아니, 걱정 말아요 실비아! 거기까지 생각해서 여유있게 여행 일정을 잡은 거라고요.”


갑자기 예고도 없이 눈물을 글썽이는 실비아를 보고 펠릭스는 당황하여 허둥댔다.


“그렇지만, 혹시라도······”


“아, 알았어요. 중간에, 정 안될것 같으면 마을 가서 마차 탈 테니까. 그러니까, 걱정 마요.”


“마을이 있어요?”


“아, 막 설명하려던 참이라고요. 그래. 자, 봐요 실비아. 급행마차를 타면 이쪽 대로를 통해 골든포트까지 달려가요. 하지만, 봐요. 대로는 구불구불 한데다가 이 성, 저 성, 이 마을 저 마을 여기저기 들르잖아요? 그래서, 우리는 이쪽 지름길로 갑니다.”


펠릭스는 녹색이 빽빽한 지도 부분을 가리켰다.


“거기 마을이 있어요?”


“숲 입구에 하나, 숲 속에 하나, 숲 바깥 언저리에 하나. 그 다음은 골든포트. 직선 거리로는 갈만한 거리에요.”


“하지만, 숲은 위험하잖아요. 그리고 또, 바닥도 험하고······”


“그건 올리버를 믿자고요. 그리고 저는 짐승 쫓는 약도 만들줄 알아요. 그러니 걱정 마요. 아니면, 혹시 벌레가 무서워서······?”


“아, 아니에요!”


“아니라니, 정말 다행이네요. 소녀들은 덜 그런데, 아가씨들은 왜들 그렇게 벌레를 무서워하는지······”


다시 올리버가 점잖게 헛기침을 하며 끼어들었다.


“그래서, 실비아. 그럼 도보 여행을 가겠다고 찬성한거지?”


실비아는 다시 우물쭈물했다.


“저, 저기······”


“정 싫다면.” 올리버는 자꾸 입 근처에서 얼쩡거리는 코튼을 가볍게 손으로 쥐고 말했다. “너는 먼저 마차를 타고 골든포트까지 가는 방법도 있어. 우리 둘은 걸어가고.”


“네, 네? 왜 그렇게 해야돼요?”


“네가 걱정된다면서. 너 때문에 다같이 늦을까봐. 그러니, 너는 급행 마차를 타고 오늘이든, 내일이든, 우리가 도착할 즈음에 맞춰서 골든포트로 가면 되잖아. 우리 둘은, 도보 여행이 익숙해서 아마 늦을 일은 없으니까.”


“하지만······”


올리버는 옆에서 끼어들고 싶어 잔뜩 안달이난 펠릭스에게 눈짓으로 메시지를 보내었다. 그러자, 펠릭스는 금새 이해했다는듯 슬며시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골든포트는 큰 도시니까, 귀족 출신인 네가 시간을 보내기에 좋을거야. 화려한 극장에서 연극과 오페라 공연이 있을 테고, 극장 밖에서도 악단, 화가와 시인들이 도시 곳곳에서 공연을 벌이지. 너와 비슷한 지위의 귀족이나 몰락귀족, 또는 가문의 업을 벗어던진 귀족들도 있을테고. 어때? 먼저 가서 기다릴래?”


실비아는 다시 갑자기 눈물을 글썽였다.


“저, 저 혼자서요?”


“아니, 싫으면 우리랑 같이 가든가.”


“걸어서요?”


“그래. 하지만, 네 재료를 찾으려면 달리 방법이 없잖아. 그리고, 혼자라도 귀족 아가씨가 시간을 보내기에 골든포트는 꽤나······”


“저, 그럼, 저도 그냥 걸어갈래요.”


“그래요?”


펠릭스가 실쭉 웃자, 올리버는 그의 등을 말없이 툭 쳤다. 그러자 펠릭스는 입을 비죽이며 웃음을 멈추었다.


“그래요. 그, 같이 가요. 혼자 남는건 싫으니까······”


“알았어, 알았어. 자, 그럼 이제 여행 준비를 해 보자고. 실비아. 따라와. 짐 싸는 방법부터 가르쳐 줄 테니까.”


“그럼, 둘이 수고해줘요. 나는 편지 보낼데가 있어서.”


“그놈의 편지. 무슨, 갑자기 잘나가는 시인이라도 된 거야? 무슨 편지를 그렇게 쓰는거야 펠릭스?”


펠릭스는 올리버의 물음에 대답하지 않고 씩 웃기만 한 다음 계단위로 올라갔다.


“하여튼. 뭐, 그럼 이제 슬슬 시작해볼까?”




실비아에게 이것저것 가르쳐주기 시작한 올리버는, 문득 그녀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더 총명하다는 것을 알아챘다. 그녀는 금세 배우고, 또 금방 이해했다. 말 한 마디를 놓치지 않았으며, 올리버가 어휘가 부족해 두루뭉술하게 말 한 것도 그녀는 무슨 뜻인지 곧잘 알아챘다. 이렇게 똑똑한 귀족 아가씨가 집을 나와, 죽음의 약을 찾아 떠돌아 다녔다니. 올리버는 문득 입 안에서 씁쓸한 맛이 느껴졌다.


“왜요?”


“아, 아냐.”


어쩌면, 그 정략 결혼 때문일지도 모르겠군. 아니면, 다른 사정이나. 올리버는 혼자 속으로 중얼거리며 실비아에게 여행에 필요한 지식들을 알려주고, 그녀의 짐을 봐 주다가 잠시 멈춰섰다.


“네 신발.”


귀족에게 어울리는 화려한 신발을 올리버가 가리켰다.


“네. 신발이요?”


“편한 건 없어?”


“저게 그래도 제일 편한 신발인데······”


“펠릭스?”


올리버는 막 계단을 내려오던 펠릭스에게 말했다.


“왜요?”


“광장으로 갈 거지?”


“편지 부치려면, 그렇죠. 우편국이 거기 있으니까. 왜요?”


“같이 가지. 실비아한테 신발부터 시작해서 몇가지 좀 사 줘야 될 것 같아.”


“네?”


“가자고, 실비아. 지금 입고있는 옷들에게 인사라도 해 줘. 그 귀족의 의복들이랑은, 당분간 안녕이니까.”


“네? 어째서요?”


“여행길에 부적합해. 내 말 알아듣지?”


실비아는 잠시 곰곰이 생각하다 고개를 끄덕였다.


“똘똘한 아가씨로군. 가자 펠릭스. 그리고, 간 김에 나도 살게 좀 있거든.”


“그래요. 그럼 다 같이 가죠.”




세 사람은 정오의 따스하고 상쾌한 햇살을 받으며 광장으로 나왔다. 펠릭스는 광장 한 가운데 서더니, 갑자기 태양을 향해 두 팔을 번쩍 들어올려, 지나가던 사람들 몇몇은 화들짝 놀라며 그를 이상한 눈으로 보았다.


“뭐해요 펠릭스?”


황급히 그를 잡아 끌며 실비아가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아, 왜요! 모처럼 햇볕 좀 쬐고 있었는데.”


“집에서 만날 쬐잖아요!”


“아, 거긴 숲이라서 볕이 잘 안 든단 말이에요.”


“남 보기 부끄럽지도 않아요?”


“아니, 뭐 언제부터 남들 시선을 그렇게 신경썼다고. 애초에, 내가 남 시선을 신경쓰고 그랬으면 연금술사가 되기나 했겠어요?”


“뭐, 일리있는 말이로군.”


펠릭스의 옆에서 올리버가 그의 말에 동의를 해 주었다.


“그래서, 어디로 가고 있는 거죠?”


“우선, 옷과 신발부터 사지.”


그렇게 말하며 올리버는 기세좋게 어느 가게의 문을 활짝 열고, 안으로 실비아를 들였다.



평범하게 도톰한 천 옷과 펑퍼짐한 바지. 가죽 조끼를 입은 실비아는 누가봐도 시골 처녀처럼 보였다.


“실비아. 마음에 들어요?”


새어나오는 웃음을 참지 못하고 입 가로 실실 흘리며 펠릭스가 말하자, 실비아는 그를 째릿 쳐다보았다.


“너무 놀리지마 펠릭스.”


“아니, 올리버. 장난으로 일부러 그런거죠?”


“아니, 아주 합리적인 이유가 있어서 그랬어.”


“뭔데요?!” 실비아는 올리버도 째릿 노려보며 말했다. “아주 합당한 이유가 있어야 할 거예요!”


“그래. 말 해주지. 첫 번째로, 화려하고 비싼 옷은 약하고 움직이기 불편해. 거친 숲과 들을 걷는데는 맨몸보다도 쓸모가 없을거다.”


“그렇지만, 비싼 옷감을 사용한 옷들 중에서도 좋은 옷은 많다고요. 사냥복이라든가······”


“그리고 두 번째로, 이게 가장 중요한 이유인데.”


그러면서 올리버는 걸음까지 멈추고는 지그시 실비아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뭐, 왜요?”


“실비아.” 올리버는 고개를 살짝 가까이 가져다대고, 아주 비밀스럽고 무시무시한 말을 하려는 것처럼 무겁게 입을 열었다. “여행중에, 값비싼 옷이나 장신구를 내보이는 것은, 노상강도들에게 나를 죽이고 내 것을 싸그리 털어가라고 떠벌리고 다니는것과 같아.”


“네, 네에?”


두려움과 공포로 두 눈이 휘둥그레진 실비아의 머리를, 올리버는 그 솥뚜껑같은 손으로 슬슬 쓰다듬으며 웃어준 다음 다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뭐, 일리있는 말이네요 올리버! 그래서 나는 있는 티를 안 내죠.”


“너는 옷 좀 사 입어. 언제까지 기워입을거야?”


“좋잖아요.”


“그래, 내 솜씨가 좋긴 하다만······실비아?”


“아, 네!” 뒤늦게 실비아는 그들의 뒤로 따라붙었다. 아까보다 조금 더 가까이 따라붙어, 조금 겁을 먹은 것처럼 그녀는 쫄래쫄래 따라왔다.


“너무 겁줬어요 올리버!”


조금 분위기를 환기시켜보기 위해 펠릭스가 가볍게 말을 던졌지만, 이번에도 올리버는 무겁게 받아쳤다.


“그게 현실이야. 펠릭스. 너는 어차피 이해 못 하겠지만, 세상은 어쨌든 위험하다고. 그리고, 특히 실비아처럼 귀족 가문의 아가씨가 숲 속을 거니는건, 아주 위험한 일이지.”


“그렇게나요···?”


조금 더 겁을 먹은 듯, 실비아의 목소리는 아까보다 더 작게 들렸다.


“그래. 나도 겁주고싶진 않지만, 그게 사실이야. 네 육체를 노리고, 또는 네 몸값을 노리고, 네 몸을 치장한 물건들을 노리고, 많은 짐승만도 못한 사람들이 너를 노릴지도 몰라. 그러니, 실수로라도 떨어지지 않게 조심해.”


“아, 그리고 너무 걱정하지 마요 실비아. 내가 당신을 위해 아주 괜찮은 약을 미리 만들었으니까. 어떤 놈이든, 짐승이든 인간이든 간에, 함부로 덤비는 놈 한테는 이걸 집어 던져버려요.”


그리고 펠릭스는 잠시 품위없게 웃옷과 바지 여기저기를 뒤지다가 작고 새빨간 약병을 꺼내들었다.


“이건 뭔데요?”


“전에 봤잖아요? 그 때, 밤나무 숲에서.”


“밤나무? 아, 아! 그거구나. 그, 고마워요 펠릭스.”


“뭘요. 그럼 이제 집으로 돌아가죠.”


실비아는 신기한 눈으로 약병을 이리저리 살펴보다가 옷자락 안으로 쏙 집어넣었다. 그리고 올리버는 들리지 않을 정도로 조용히 펠릭스에게 말했다.


“펠릭스. 저 약까지 주는건 조금 너무 나간거 아냐?”


“그렇지만, 제가 해 줄수 있는 거라고는 저런것 뿐이니까요. 행여라도 실비아한테 무슨 일이 일어나도, 저는 올리버 당신과 달리 도와줄 수 있는 방법이 별로 없어요.”


“그래, 그렇긴 하지만···”


올리버는 슬쩍 뒤를 돌아 실비아를 살짝 살펴보았다.


“왜요?”


“아, 아냐 아무것도. 그보다 발걸음을 조금 재촉하지.”


나쁜 생각을 떨쳐 버리려는듯 괜히 고개를 내저으며 올리버는 조금 발걸음을 재촉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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