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녹색유자 님의 서재입니다.

행복의 연금술 가게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완결

녹색유자
작품등록일 :
2021.10.08 16:53
최근연재일 :
2022.01.13 18:00
연재수 :
172 회
조회수 :
6,069
추천수 :
188
글자수 :
1,774,925

작성
21.10.16 18:10
조회
29
추천
1
글자
24쪽

17화

DUMMY

인간들의 거친 싸움이 만들어낸 불길한 폭풍에 휩쓸려 꺼져버린줄로만 알았던 촛불이 슬며시 도로 되살아나 방 안을 비추었다. 그곳에는, 알렉스의 손에서 튕겨져 나와 실비아의 발치에서 무시무시하게 번뜩이는 식칼과, 바닥에 납작 눌린채 두 손을 등 뒤에 묶여버린 알렉스, 그리고 그 알렉스를 짓누르고 있는 올리버와, 여전히 태연한 표정으로 그 모든 광경을 천천히 지켜보고 있는 펠릭스가 있었다.


“고마워요 올리버.”


“뭘, 이정도 가지고. 하여튼, 위험한 물건을 휘두르다니. 어리다고는 해도 너무 막 나가는거 아니야?”


“닥쳐요! 당신들이, 우리들의 숭고한 의지에 대해 뭘 압니까?”


알렉스는 옴짝달싹 못하게 된 상황에서도 전혀 기죽지 않았다.


“자자. 알렉스. 우선 조금만 진정해봐요.”


“닥쳐요! 당신, 또 수상한 약을 만들어서 우리들을 못살게 굴려는것 아닙니까? 이미 우린 당할 만큼 당했다고요! 밤에 잠이 오지 않는 약을 음식에 섞어 넣어서 하루종일 일을 시키고, 어디 아픈곳이 있다고 하면 늘상 똑같은 쓸모없는 약만 처방해주는, 당신들 귀족의 앞잡이들을, 우리들이 곱게 봐넘겨 줄 것 같습니까?”


“하하, 거 참. 먼저 와있던 연금술사도 한가닥 하는 사람이었나보네. 봐요, 알렉스. 나는 그 당신들이 미워하는 귀족한테 굳이 부탁해서 이런 자리를 만든거라고요. 당신하고 이야기나 좀 나눠볼까 해서.”


“뭐요?”


“이야기요. 차근차근 이야기를 좀 나눠보자고요. 그리고, 나는 잠 안오는 약이나 돌팔이 위약은 안 만들어요. 나는 긍지높은 숲 속의 연금술사라, 그렇게 쉽게 타협하지는 않거든요.”


알렉스의 눈이 불신과 의심으로 조금씩 흔들렸다. 펠릭스는 그를 조금 더 흔들어 보기로 하고 다시 입을 열었다.


“말이나 하자니까요. 일단은. 솔직히 말해서, 나는 당신들 노동자들이 어떤 사람인지 그리고 어떻게 살고 있는지 궁금하거든요.”


“닥쳐요!” 다시 알렉스의 눈에 광신에 가까운 무언가가 번뜩였다. “보나마나 그 약아빠진 호기심을 채우기 위해서겠지. 우리들을 서커스의 짐승으로 알고 있군. 우리들이 한두번 당한 줄 압니까?”


“뭐, 그럼 거기서 그대로 있던가요. 그래도 대화를 하는데는 지장이 없으니까.”


알렉스는 다시 두 팔을 움직여 보았으나, 올리버가 그를 아주 단단히 붙잡고 있어 그는 움직일 수 없었다.


“정말 대화를 해 줄겁니까?”


“실비아. 거기 문좀 잠가요. 그리고, 아 그래. 의자를 막아요. 아니, 등받이를 손잡이 아래에 끼워요. 그래, 그렇게요.”


그러고 나서 펠릭스는 실비아의 발치에 떨어져 있던 식칼을 집어들고, 알렉스를 향해 씩 웃으며 말했다.


“그래요. 이야기나 잠깐 하자고요?”




알렉스는 올리버의 밧줄로 두 손이 등 뒤로 묶인 채, 이제는 테이블 앞 의자에 펠릭스의 일행과 마주앉아 있었다.


“무슨 말이 듣고싶은 겁니까?”


반항적인 투로 알렉스가 말하자, 펠릭스는 잠시 헛기침을 하고 말했다.


“일단은 제가 무슨 약을 만들려고 하는지부터 알려드리지요.”


“마음대로 하십시오. 어차피, 나는 당신들 잘나빠진 연금술사들이 하는 말 못 알아들으니까.”


“알기 쉽게 설명해 줄게요. 그러니까, 나는 거인같은 괴력을 뿜어낼 수 있도록 도와주는 약을 만들겁니다.”


“뭐요?”


알렉스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정말 그런 약이 있습니까?”


“물론이죠! 나는 당신들 한명 한명이 모두 이 약을 마실 수 있을 만큼 약을 많이 만들거고, 그리고 그 약을 만드는 방법도 여기 남겨두고 갈 겁니다.”


“그래, 그렇단 말이지······” 알렉스는 전혀 딴생각을 하는 것처럼 있다가, 펠릭스가 손가락을 딱, 하고 마주치자 다시 이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집중해요. 그런데, 그 약에는 치명적인 부작용이 있으니까.”


“내 이럴 줄 알았어! 역시, 감언이설로 우릴 속여넘길 생각이었지?”


“아니, 속일 거였으면 부작용이 있다고 말도 안 꺼냈죠. 진정하고 좀 들어요. 내참. 왜이렇게 성질이 급한건지. 뭐 화장실이라도 가고싶은거에요?”


알렉스는 잠시 가만히 있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그대로 싸요. 나중에 우리가 하인한테 말은 잘 해 줄테니까.”


“아니! 이 무례한 놈이······”


“아, 시끄러 시끄러. 아무튼, 잘 들어요 알렉스. 약의 부작용에 대해 설명해 줄 테니까!”


그러자 알렉스는 다시 입을 다물고 펠릭스를 노려보았다.


“그 약은, 하루에 한 번. 정량을 기준으로, 한달 동안에는 먹어도 아무런 문제도 없어요. 먹는 사람에게 어마어마한 괴력을 줄 거에요. 그런데······”


“그런데?”


알렉스가 말하자, 펠릭스는 씩 웃으며 덧붙였다.


“한 달이 지나서도 약을 계속 먹으면, 온 몸의 내장이 망가지고 팔다리의 근육이 무너져내려요. 그래서 순식간에 사람이 폐인이 되어버리죠.”


“뭐야!” 알렉스는 의자에서 벌떡 일어나 주먹을 휘두르려다가, 뒤로 묶인 두 팔을 어찌하지 못하고 씩씩거리며 말했다. “그딴 위험한 약을 먹으라고?”


“아치볼트 자작과 말이 끝났어요. 봐요. 여기, 계약서. 그는 올해 날씨가 걱정이 되어서, 사과 수확을 최대한 앞당기려고 하고있을 뿐이에요.” 펠릭스는 계약서의 사본을 꺼내 알렉스의 눈앞에 들이밀었다. “한 달, 즉 30일 동안만 약을 먹이겠다고 계약서에 적혀있죠? 아치볼트 자작도 서명을 남겼어요. 그러니, 당신들이 그 부작용으로 고통받을 일은 전혀 없다고요. 뭐, 약을 이상한데 쓰지 않는다면요.”


“그건, 그렇네. 하지만······”


“아, 알아요. 꺼림칙하다 이거죠? 그렇죠. 어찌됐든 위험한 부작용이 있는 약이니까. 하지만, 괜찮아요. 내가 보증해요. 한 달 안으로만 먹으면 아무 문제도 없어요. 그리고, 알렉스. 계약서를 잘 읽어보면 알겠지만, 이 부분이요.”


그러면서 펠릭스는 계약서의 한 부분을 손가락으로 콕 찝었다.


“봐요. ‘사과를 수확하기 위해’ 라고 적혀있죠? 그러니까 당신들이 사과를 빨리 수확해버리면, 더이상 그 약을 먹을 필요도 없어요. 한 달 씩이나 위험한 약을 먹지 않아도 된다는 뜻이죠.”


“그건, 그렇지만······그래도···”


펠릭스는 씩 웃으며 계약서를 도로 품 속으로 집어넣었다.


“그래요. 여전히 걱정이 되겠죠. 맞아요. 나도 위험한 부작용이 있는 약은 함부로 추천하지 않아요. 약이라는건 생각보다 예민하고 제멋대로인 구석이 있어서, 때때로 생각지도 못한 효과를 내거든요. 그래서, 나는 이 약을 먹을 당신들 한명 한명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알고 싶어요. 그래서 당신을 여기로 부른거고. 알렉스. 이제 상황이 이해가 가나요?”


알렉스는 잠시 멍하니 서 있다가 엉거주춤 도로 자리에 앉았다.


“아, 뭐, 그런 이유였다면야.”


“그래요. 오해가 풀렸다니 다행이군요. 나는 귀족의 앞잡이가 아니에요. 당신들에게 해를 끼칠 생각은 요만큼도 없다고요. 그냥 당신들에게 꼭 맞는 약을 만들고 싶어서 그런 거니까, 당신 자신과 동료들에 대해 차근차근 말 해 줘요. 아, 아니다. 아예 숙소를 직접 안내해 주지 않겠어요?”


“숙소를요?”


알렉스의 얼굴이 조금 복잡하게 일그러졌다.


“네. 숙소에는 그사람이 살아온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으니까요. 다 안전한 약을 만들기 위해서에요. 괴력을 주지만 치명적인 부작용이 있는 약을 안전하게 만들기 위해서. 괜찮죠?”


“아, 잠시. 음. 좋습니다.”


펠릭스는 마침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올리버. 그만 풀어주죠.”


올리버가 알렉스의 팔에 묶인 밧줄을 풀자, 알렉스는 올리버를 잠시 노려보더니 문쪽으로 휙 걸어가 의자를 치우며 말했다.


“따라와요.”


알렉스가 먼저 문을 열고 나가자, 실비아가 걱정스러운 눈으로 펠릭스에게 다가와 말했다.




“괜찮아요? 위험하고 폭력적인 사람 같은데······”


“괜찮아요. 그리고 한번 봐야겠어요.”


“보다니, 뭘요?”


“짐.” 펠릭스는 실비아를 향해 찡긋 웃었다.


“네?”


“짐이요. 뭐, 이런 일에 휘말리는건 내 취향이 아니긴 한데, 그 아치볼트 자작한테 도움을 받은 것도 있으니까. 올리버. 알죠?”


“내 참. 펠릭스. 너 혼자 있을때면 모르겠다만, 우리들까지 같이 끌고 위험한 다리를 꼭 건너야 하겠어?”


“뭐, 본성이 이런지라. 그러면서도 올리버 당신도 꿋꿋이 내 앞에서, 내 뒤에서 같이 따라와 주잖아요?”


“그건 그래. 결국 피해보는건 실비아 뿐인가?”


“아, 그래, 그래요! 하여튼, 당신들은 너무 막나가는 경향이 있어요.”


“그러면서 따라올거잖아요. 자, 알렉스를 놓치기 전에 슬슬 가 봅시다.”


세 사람은 쪼르르 벽돌 건물의 입구로 걸어나왔다. 그곳에서 멀뚱히 서 있던 알렉스는 그들이 나오고 나서야 다시 숙소 거리를 걷기 시작했다.




알렉스는 그들에게 노동자들이 머무는 숙소를 보여주었다. 그리고 그 숙소라는 것은, 실비아의 생각 보다 훨씬 지낼만 한 것이었다. 좁은 방에 이층침대 두개. 그리고 칸을 넣어 속을 반으로 나눈 옷장이 두개. 좋은 방이라고 할 수는 없었지만, 그렇다고 노동자가 지내기에 썩 나쁜 것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여기가 당신을 숙소인가요?”


“그래요! 저 귀족은 우리들을 이런 돼지우리같은 곳에 집어쳐넣고, 우리들의 고혈을 빨고 있습니다!”


뭐가 그리 불만인지 알렉스는 다시 씩씩거리고 성을 내며 숙소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며 이곳이 누구의 침상이고, 그 사람은 어떤 사람인지 따위를 설명해 주었다.


“뭐, 그리 넓지는 않네요. 아, 혹시 당신 자리는 어디죠?”


알렉스는 일행들을 이끌고, 자신이 머무는 독방의 문을 열어 보였다.


“당신은 따로 방을 갖고 있군요?”


“나는 노동자들의 대표니까요.”


“그래요? 약간의 특권을 갖고 있다고 봐도 되겠어요.”


침대 하나, 협탁 하나, 옷장 하나가 있는 알렉스의 방은 여전히 넓지는 않았지만, 다른 노동자들이 쓰는 방보다는 분명 넓어보였다.


“사람이 살기 위해 이 정도는 필요해요!”


“그렇겠죠. 아, 이건 뭐지?”


아무생각없이 펠릭스는 이불 사이에 살며시 삐져나와있는 책의 귀퉁이를 발견해, 이불을 휙 걷어보았다.


“아, 안돼!”


그 책은, 동쪽 바다 건너에서 출판된, 자유에 관한 아주 공격적이고 논쟁적인, 그리고 선동적인 불온 서적이었다.


“뭐, 좋은 책이네요.”


“그렇습니다.” 알렉스는 복잡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내 주인에게 고발할 겁니까?”


“당신 주인이 어딨어요? 당신 노예인가요? 아니잖아요?”


“그렇기는 하지만······”


“그럼 당신 주인이 어딨어요. 설마 스스로를 노예라고 생각하는건 아니겠죠? 이런 책을 읽으면서?”


“아무튼, 책 이야기는 그만둬요! 그리고, 내 방도 충분히 봤으니, 다시 다른 노동자들이 머무는 곳을 보여주겠습니다.”


“얼마든지요.” 크게 하품을 하며 펠릭스가 말하자 알렉스의 얼굴이 조금 일그러졌다.




한창 노동자 숙소 여기저기를 돌아다니고 기웃거린 펠릭스는, 이번에는 노동자들이 식사를 하는 식당을 보여달라고 했다. 그러자 알렉스는 흔쾌히 그들에게 식당을 안내해주었다.


숙소 한 가운데, 벽돌 건물 옆의 목조 건물이 식당이었다. 문을 열자마자 하루의 노동을 마친 사람들이 뿜어내는 냄새와, 막 만들어진 음식냄새가 섞여 코를 찌르는듯한 냄새가 났다.


“보십시오. 이것이 바로, 우리들이 먹는 식사입니다.”


알렉스는 보란듯이 말했지만, 그들은 입구 근처에서 어정이고 있었기에 정확히 노동자들이 뭘 먹는지 눈에 보이지는 않았다.


“좀 더 자세히 살펴 볼게요.”


“그래요. 얼마든지요. 허여멀건 수프와, 딱딱하고 쓴맛이 나는 흑빵. 그것이, 우리 노동자들이 하루 종일 뼈빠지게 일한 대가란 말입니다!”


펠릭스는 알렉스는 슬며시 무시해 치우고 마침 접시에 음식을 받아 그의 앞을 지나가는 사람을 슬쩍 따라가보았다. 접시에 담긴 그릇에는 흰 스프가 있었지만, 묽어 보이지는 않았다.


“잠깐 주방을 봐도 될까요?”


“마음대로 하십시오. 저도 여기 온 김에 식사나 해야하겠습니다. 당신들도?”


세 사람은 서로 눈치를 보았다.


“저희들은, 알아서 할게요.”


“아, 그러십시오. 다 먹고 나서 입구에서 기다리고 있을테니 그리 찾아와요.”


그리고 알렉스는 다른 사람들처럼 접시를 챙겨들고 어디론가 갔다. 펠릭스는 알렉스의 뒤를 따라가, 배식대 근처에서 잠시 어정거리며 알렉스가 멀어지길 기다렸다.


“저기, 뭐 좀 물어봅시다. 아, 난 수상한 사람은 아니고, 아치볼트에게 고용된 연금술사인데.”


알렉스가 충분히 멀어지자 펠릭스는 국자로 수프를 퍼담고 있던 사람에게 슬쩍 말을 붙였다.


“아, 뭐. 물어보십쇼.”


“이 스프. 뭘로 만든 겁니까?”


“닭고기요. 국물이 뽀얗죠? 이래뵈도 꽤 먹을만 합니다. 당신들도 한 입 드셔 보렵니까?”


“아니오, 고맙습니다. 그럼, 닭은 한 몇 마리나······?


“오십마리인가? 네 사람당 한 마리 꼴이랬는데. 스프치곤 꽤 괜찮은 양이지요.”


“아, 물론입니다. 아, 그리고 또 하나 물어보고 싶은게 있는데. 빵 있지 않습니까.”


“아, 빵이요. 매일아침 마차로 배달오는 빵입니다.”


“그래요?”


“그래요. 맛이 꽤 괜찮수다. 반죽에 우유를 좀 섞나봐요. 또 뭐 궁금한게 있습니까요?”


“아, 그럼 여기 식사는 꽤나 먹을만 한 편이겠군요?”


“말해 뭐해요!” 그는 갑자기 웃으며 말했다. “내가 예전에 용병으로 일 한 적이 있는데, 그 때 먹던 밥보다 지금 여기서 먹는 밥이 훨씬 나으니까. 다른건 몰라도, 밥 하나는 괜찮게 나온다고 볼 수 있수다. 뭣보다도, 여긴 빵에 쥐꼬리만큼이긴 해도 버터도 올려주는걸요!”


“그래요. 고마워요. 큰 도움이 되었어요.”


배식대에서 걸어나오는 펠릭스의 뒤를 따르며 실비아가 물었다.


“왜 그런걸 물어봐요?”


“아, 알렉스가 시대의 부름을 받은 영웅인지, 아니면 혼자 꿈속에 빠져사는 사람인지 조금 궁금해서요. 아, 실례합니다. 괜찮으면, 합석해도 될런지요?”


이번에 펠릭스는 태연히 한창 식사중인 노동자들 옆의 의자를 빼 앉으며 말했다. 그러자 그들은 멀뚱멀뚱 서로 눈치를 보다가 슬쩍 고개를 끄덕였다.


“아, 뭐. 긴장할건 없고, 저는 연금술사입니다. 아치볼트 자작에게 고용되어 약을 만들려고 하는데···..”


“그래요? 아, 그얘긴가?”


“오, 벌써 알고 있습니까?”


“몰라요. 잘은 모르는데.” 펠릭스의 옆에 앉아있던 노동자는 수프를 한 숟갈 후룩 입에 넣고 다시 말했다. “뭐, 요새 갑자기 날이 쌀쌀해지기도 했고, 올해는 폭풍도 자주 불다보니. 다들 영 기운없이 비실거리고 있으니까 무슨 힘나는 약이라도 만들어 준댔는데.”


“소문이었잖아.”


맞은 편의 노동자가 대화에 끼어들었다.


“소문이래도. 아치볼트 자작이 언제 우리 속인적이 있나?”


“오, 잠시만요. 꽤 흥미로운 이야기인걸요. 아치볼트 자작은 거짓말을 하지 않나요?”


“뭐, 그쯤되는 귀족 양반이 뭐가 아쉬워서 우리들한테 거짓말을 해요?”


대수롭잖다는듯 펠릭스의 맞은편에 앉은 노동자가 빵에 정말 버터를 찔끔 발라 한입 베어물며 말했다.


“그래요. 그럼, 혹시 노동으로 버는 돈은?”


“한 달에 은화 20닢이요. 밥 나오고, 잠 잘수 있고 옷도 주는데 그만하면 좋은 축이죠.”


“그래요? 그럼 당신들은 아치볼트 자작에게 별다른 불만은 없겠군요?”


“딱히요. 그런데, 알렉스는 늘상 자작이 한 번씩 과수원으로 나올 때마다 인상을 팍 쓰던데.”


“그래요. 혹시, 왜 그러는지 아나요?”


“몰라요. 뭐, 그가 우리들의 자유? 자유랬나? 그걸 약탈해 간다고 하던데요.”


“당신은 그 말에 동의하나요?”


노동자는 잠시 입을 우물거리며 그 자유라는 단어의 뜻을 헤아리는듯 했다.


“몰라요. 난 배 안 곯고, 등 따숩고, 배 부르고, 돈 받는데. 내가 뭘 더 바라겠어요.”


“그래. 이래뵈도 꽤 일할만 한 곳이거든 여기가. 젊은이들도 가끔 와서 한 일이년 일해서 돈벌어가요. 뭐, 화가 지망생도 있었지, 전에는?”


“맞아. 제빵사 아들도 있었어. 그놈 가끔 밀가루를 사온 날에 멍든 사과를 주워와서 만들어주는 사과 파이가 맛있었지.”


“아아! 그래요. 여러분들은 그럼 지금의 상태에 꽤 만족하네요?”


졸지에 노동자들의 반상회가 열리려고 하여, 펠릭스는 황급히 말을 자르며 끼어들었다.


“그렇죠 뭐.” 그 노동자가 동료들을 죽 둘러보자, 같은 테이블에 앉은 사람들은 다들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 그러고보니. 제 앞선 연금술사가 있었다던데요. 혹시, 식사를 너무 방해하지 않는다면, 그 이야기를 조금 해도 될까요?”


“얼마든지 하쇼. 나도 오랜만에 낯선 사람이랑 이야기하니 좋구만.” 그러나 노동자의 시선이 실비아에게 향하자 펠릭스는 몸을 살짝 기울여 그의 시선을 가로막았다.


“그 제 앞선 연금술사요. 늘상 똑같은 약을 준다는데.”


“아, 뭐 그렇긴하지.” 여전히 별 것 아니라는듯 이번에는 다른 노동자가 말하면서 닭고기 수프에 숟가락을 푹 집어넣고 한 술 뜨다가, 큼직한 고기가 걸리는 것을 보고 히죽 웃었다.


“그야, 우린 늘상 똑같은데가 아파서 가니까.”


“그래. 과수원에 다칠 일이 별로 없거든. 여긴 땅도 잘 골라서 넘어지는 일도 별로 없고. 보통 과일 따느라 허리나 손목, 손가락이 아픈게 전부지.”


“아니면 얼뜨기 같은놈이 괭이질을 하다가 어디가 삐끗하거나.”


“숙소에서 싸워가지고 다쳐서 간 놈도 있지 않았나?”


“아, 그래. 그게 알렉스였어. 벌써 한 2년 전인가? 3년 전인가?”


“난 그런일 있는 줄도 몰랐는데. 내가 여기서 이제 3년째 일하는거니까, 그 전인가본데?”


“아, 잠시만요.” 이번에는 노동자들의 토론이 일어나려는 기미가 보여, 펠릭스가 다시 끼어들었다.


“알렉스가 다른 사람과 싸웠나요?”


“아, 뭐. 약을 잘못 받았다든가 뭐랬든가. 그래서 잔뜩 성이 나 있었는데, 복도에서 누가 부딪힌거지 뭐. 사실, 여기 건물 복도는 좀 좁거든.”


“진짜 좁은 복도를 네가 못 가봐서 그래. 나는 예전에 병영에 있었는데······”


“아, 이제 충분히 들었습니다. 덕분에 감사드립니다.” 펠릭스는 그들에게 씩 웃어주고는 이제 그만 자리에서 일어나 알렉스를 찾기 시작했다.




테이블에서 빠져나오자 힐끔힐끔 뒤를 돌아보며 실비아가 말했다.


“뭐에요, 펠릭스. 알렉스가 말 한 거랑은 좀 느낌이 다른데요?”


“당신이 보기에도 그렇죠?”


“그럼 뭐야. 알렉스는 혼자 헛된 꿈에 빠져 살고 있는건가?”


올리버역시 뭔가 아리송하다는듯 말했다.


“어쩌면요. 아직은 증거가 부족하지만, 그것도 곧 알게 되겠지요. 아, 알렉스. 덕분에 잘 둘러봤어요.”


펠릭스는 막 접시를 닦아 도로 집어넣고 식당 입구쪽으로 걸어가는 알렉스에게 태연하게 다가갔다.


“이제 뭘 더 보고 싶으십니까?”


식당에서 빠져나오며 알렉스가 펠릭스를 향해 물었다.


“볼 만큼은 본 것 같군요. 그럼, 알렉스. 아, 하나만, 잠시만요. 귀 좀 빌려줘요.”


“네? 아니······”


알렉스의 허락도 받지않고 펠릭스는 그의 귀에 대고 뭐라고 작게 속삭였다.


“부탁해요. 들어줄거라고 믿고 기다릴게요.”


“아니, 왜 그렇게 이상한 부탁을······”


“부탁해요. 다 당신들을 위해서니까.”


알렉스는 못마땅한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이제 우린 그만 헤어지죠. 어쨌든 나는 아치볼트 자작의 부탁대로 약을 만들기는 해야 하니까.”


알렉스는 펠릭스에게 고개를 한번 끄덕이고는, 여전히 복잡미묘한 표정으로 뒤도 안 돌아보고 숙소로 휙 돌아갔다.



알렉스가 그의 숙소로 돌아가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아치볼트가 보내준 마차가 그들에게 다가왔다. 마차에서 하인이 내려 문을 열어주자, 그들은 마차를 타고 다시 이동하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또 어디로 가는 걸까요?”


“연금술사의 작업실이겠죠. 이전에도 연금술사가 여기에 있었다고 하니 아마 작업실도 남아있겠죠. 아, 잠시만요. 어이, 이봐요! 부탁 하나만 해도 될까요?”


마부가 앉은 자리로 연결된 조그만 차창을 열고 펠릭스는 잘 들리지 않게 뭐라 중얼거렸다.


“꼭이에요. 중요한 일이니까 잘 좀 전해줘요.”


그리고 펠릭스는 도로 차창을 닫았다.


“이번에는 또 무슨 꿍꿍이야?”


“꿍꿍이는요. 그냥 부탁좀 한 걸 가지고.”


“아무튼, 펠릭스. 그래서 그 약 만들건가요? 위험한 약 같기도 하고, 알렉스는 그 약으로 다른 생각을 하는 것 같던데요······”


“뭐, 그럼 이 기회에 한번 생각을 정리해보죠. 우선, 실비아. 당신은 어떻던가요?”


“네? 뭐가요?”


“말 그대로에요. 이곳에 혁명의 붉은 전조가 드리워진것 같던가요?”


“아니오. 전혀 모르겠던데요. 다만······”


“다만?”


“그 알렉스라는 사람.” 실비아는 조금 말하기 부끄러운듯 주저하며 입을 열었다. “혼자 겉도는것 같던데요.”


“오! 꽤 좋은 지적이네요. 어째서요?”


“그야, 밥 먹을때 혼자 먹잖아요. 방도 혼자쓰고. 다른 사람들은 다들 서로 잡담이라도 나누거나 하던데······”


“어린아이다운 발상이로군.”


“뭐에요 올리버! 그럼, 당신은? 당신은 어땠는데요?”


실비아가 쏘아붙이자 올리버는 어깨를 으쓱했다.


“별 거 없었어. 일단, 혁명을 준비하는 놈들처럼 보이지는 않았어. 숙소 여기저기를 우리가 들쑤시고 다녔는데도 긴장하는 기색도 없고, 그렇다고 무기를 숨기거나 한 것도 없었어.”


“그래요. 다들 비슷한 생각 같군요. 제 생각도 비슷해요. 애초에, 한 달 월급으로 은화 스무닢이면 전혀 만만하게 볼 직장이 아니라고요.”


“그런가요?”


“귀족들이란. 올리버. 말 좀 해 줘요. 평범한 사람이 한 달에 얼마를 쓰는지.”


“아? 뭐, 아껴쓰면 은화 다섯 닢으로 버틴적도 있었지.”


“다섯 닢!” 실비아가 경악에 가깝게 소리쳤다. “어떻게 그게 가능해요?”


“그야, 필요한건 숲에서 캐오면 되니까. 그 정도가 아니라도 은화 열다섯 닢이면 한 달은 거뜬해.”


“그럼 계산을 해 보자면, 아치볼트 자작의 사과 과수원에서 일하는 사람은 한 달을 일하면 대충 은화 다섯닢이 매 달 손에 그대로 남네요. 한 이 년 일하면 금화 한닢이 조금 더 넘게 손에 남는군요. 하지만, 아치볼트 자작은 노동자들에게 숙소와 음식을 제공해줘요.”


“그럼 돈이 더 남겠지. 어쩌면, 스무닢 그대로 남을지도 몰라. 그럼 다섯 달만 일해도 금화가 한 닢이야. 일년 일하면 금화 두닢하고도 남지. 귀족들 보기에는 푼돈일지 몰라도, 그냥 단순노동으로 버는것 치고는 꽤 괜찮다고.”


“그런데, 알렉스는 불만이 많아보이던데요?”


“그래요. 그게 좀 이상하단 말이에요.” 펠릭스는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그리고 그는 입에 자유를 다는 사람치고는 이미 꽤 자유로워보였어요. 방도 혼자 따로 쓰고. 자세한건 조금 더 알아봐야 하겠지만.”


“그래. 일단은 약 만드는데나 집중하라고. 네 고용주는 아치볼트 자작이잖아? 그 서늘한 눈빛 기억나지?”


“당연하죠. 아무튼, 약을 만드는 것 자체는 별 문제는 없을것 같고, 다만, 내 부탁들을 들어주려는지가 문제네요.”


“뭘 부탁했는데요?”


실비아가 묻자, 펠릭스는 씩 웃으며 그녀에게 대답했다.


“그건, 비밀이에요. 나중에 봐요.”


“아니, 툭하면 비밀이래. 펠릭스, 우리 그래도 여행 동료인데······”


“앗, 마차가 멈췄나? 다 왔나보다!” 펠릭스는 실비아의 말을 마저 듣지도 않고, 하인이 문을 열어주기도 전에 잽싸게 마차 문을 열고 밖으로 폴짝 뛰어내렸다. 실비아는 그런 펠릭스의 뒷모습을 잠시 한심하다는듯 쳐다보고 조심조심 마차에서 가볍게 폴짝 뛰어내렸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행복의 연금술 가게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23 23화 21.10.19 29 1 23쪽
22 22화 21.10.18 27 1 30쪽
21 21화 21.10.18 32 1 20쪽
20 20화 21.10.17 30 1 26쪽
19 19화 21.10.17 29 1 24쪽
18 18화 21.10.16 30 1 24쪽
» 17화 21.10.16 30 1 24쪽
16 16화 21.10.15 31 1 25쪽
15 15화 21.10.15 32 1 19쪽
14 14화 21.10.14 31 1 22쪽
13 13화 21.10.14 29 1 31쪽
12 12화 21.10.13 35 1 27쪽
11 11화 21.10.13 36 1 31쪽
10 10화 21.10.12 37 1 22쪽
9 9화 21.10.12 33 2 13쪽
8 8화 21.10.11 38 2 28쪽
7 7화 21.10.11 43 2 19쪽
6 6화 21.10.10 47 2 22쪽
5 5화 21.10.10 55 2 24쪽
4 4화 21.10.09 74 2 34쪽
3 3화 21.10.09 101 4 18쪽
2 2화 21.10.08 234 4 29쪽
1 1화 21.10.08 775 5 28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