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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유자 님의 서재입니다.

행복의 연금술 가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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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녹색유자
작품등록일 :
2021.10.08 16:53
최근연재일 :
2022.01.13 18:00
연재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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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74,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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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10.13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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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쪽

11화

DUMMY

메를린의 오두막 현관문이 열리자 두 명의 남자가 어색하게 안으로 걸어들어왔다. 한 명은 펠릭스였고, 다른 한 명은 이전에 본 적 있었던 해리어였다. 해리어는 갓을 씌운 등불을 현관 옆의 고리에 건 뒤 당황스러운 눈으로 실비아와 올리버를 번갈아 쳐다보았다.


“내 일행들이야.”


“너한테 안 물어봤어.”


시선을 피하며 해리어는 불편하다는 투로 중얼거렸다.



“메를린은 어딨는거야? 손님을 초대해놓고······”


“아, 해리어. 왔어?” 부엌에서 손에 벙어리 장갑을 낀 채 메를린이 후다닥 달려나왔다.


“메를린. 오랜만이네. 이게 몇 년 만이지? 어디······”


“아, 해리어. 반갑기는 한테 요리중이라. 거기 앉아서 조금만 기다려줄래?”


“메를린. 잠시······” 그러나 메를린은 해리어의 말을 제대로 듣지도 않고 도로 부엌으로 가버렸다.


“일단 앉자고.”


“펠릭스. 나한테 명령하지마.”


“결국 앉을거면서.”


그렇게 두 사람은 서로 미묘하게 신경전을 벌이며 올리버와 실비아가 앉아있던 탁자로 걸어왔다.






탁자 위에는 곧 메를린이 끓인 걸쭉한 스튜가 한 사람 앞에 한 접시씩 놓였다. 스튜 안에는 정체를 알 수 없는 고기 조각이 정육면체 모양으로 잘려 감자와 고구마, 당근 사이에 태연하게 섞여 있었다.


“그래서, 메를린. 이제 설명좀 해 주지.”


스튜를 한 술도 뜨지 않고 줄곧 앉아만있던 해리어는, 대강 부엌일을 끝낸 뒤에 테이블에 같이 앉은 메를린에게 말했다.


“날 왜 부른거지?”


“그냥.” 메를린은 생긋 웃으며 말했다. “친구가 친구를 부르는데 이유가 필요한건 아니잖아?”


“펠릭스가 있잖아!” 해리어는 무슨 상종못할 쓰레기라도 본 듯 펠릭스에게 손가락질하며 말했다.


“펠릭스하고 친했잖아. 항상 너만의 레시피를 종이에 써서 펠릭스한테 약을 만들어 달라고 부탁하고 그랬잖아?”


“그래, 해리어. 그러고보니 기억난다. 너 말야. 머리는 좋은데 손이 둔해서 항상 재료를 잘못넣었잖아. 그걸로 혼나기도 많이 혼나고······”


“옛날 이야기는, 이제 그만하지!”


성난 목소리로 해리어가 말하자, 메를린은 다시 방긋 웃으며 부엌으로 가더니 금새 쟁반에 잔들을 받쳐 가지고 돌아왔다.


“차 한잔 해.”


해리어는 잔을 집어들고 입에 가져다 대려다가 문득 멈췄다.


“왜? 입에 맞지 않아?”


“아니. 너무 뜨거워서.”


그리고 해리어는 도로 잔을 내려놓고 말없이 식사를 시작했다. 식사가 완전히 끝날 때까지, 그는 잔에는 더이상 손도 대지 않았다.




식사가 끝나고 부엌에서 달그락거리며 설거지를 하는 메를린의 옆으로, 해리어는 불편한 헛기침 소리를 내며 다가왔다.


“메를린. 펠릭스가 왜 여기있는거지?”


큰 나무 대야에 물을 받아 그릇을 씻던 메를린은 고개를 휙 돌리고 웃으며 대답해 주었다.


“내가 부른거야. 너랑 화해가 하고 싶대.”


“난 그럴 마음없어. 초대해 준 건 고맙지만, 난 이만 돌아가겠어.”


어느새 부엌 입구에 비스듬히 기대 서서 이야기를 엿듣고 있던 펠릭스가 대화에 끼어들었다.


“내일 아침에 가. 밤의 숲은 위험하거든.”


“협박하는건가?”


“아니, 그냥 친구로서의 충고야.”


“친구!” 해리어는 아주 목욕적인 말을 들은사람처럼 버럭 화를 냈다. “펠릭스. 네놈이 감히, 친구 따위의 말을······”


“자, 둘다 그쯤 해 둬.” 자리에서 일어나며 메를린이 말했다. 그녀는 아주 날카롭게 눈을 뜨고 두 사람을 번갈아 쳐다보며 또박또박 말 해주었다. “여긴 내 집이고, 너희들 말고도 손님이 많아.” 메를린은 그렇게 말하며 그녀의 오두막 안에 둥지를 튼 작은 짐승들과, 오두막을 무슨 통로쯤으로 생각하는 조그만 짐승들, 그리고 거실에 멍하니 앉아있는 올리버와 실비아를 차례대로 돌아보았다. “그러니까, 너무 열내지들 말라고.”





그래서 해리어는 결국 메를린의 오두막에서 나가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거실에 자리를 잡은 올리버나 실비아의 근처로 가지도 않았다. 그래서 그는 현관 바로 옆 벽에 기대서서 침통한 표정으로 오두막의 목재 곳곳에 숭숭 뚫린 시커멓고 텅 빈 구멍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리고 펠릭스는 재료가 든 바구니를 들고 메를린의 작업실로 조심스레 걸어들어갔다. 그에게 호기심이 생겨, 실비아는 자리에서 일어나 펠릭스의 뒤를 따라갔다. 아무도 그녀에게 관심을 주지 않았기에 그녀는 누구의 제지도 받지 않고 작업실로 따라들어갔다.






작업실 안으로 들어가자, 벌써 펠릭스가 바닥의 우물에서 물을 긷고 있는 것이 실비아의 눈에 띄었다.


“그걸 알고 있었어요?”


“실비아는 편지로 자기 작업실을 자랑하곤 했죠.” 물을 길어올려 솥 안으로 부어넣으며 펠릭스가 말했다. “연금술사는 자기 작업실을 자랑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이거든요.”


“그렇군요. 그래서, 허락도 안 받고 약을 만들려고요?”


“허락은 진작 받았어요. 그러니, 실비아. 당신도 달리 볼 일이 없다면 그만 나가줬으면 좋겠네요. 연금술사가 되어서 남에게 약 만드는 모습을 내 보이는 것은, 처녀가 되어서 옷 갈아입는 모습을 내보이는 것만큼 부끄러운 일이거든요.”


“파렴치하기는!” 실비아는 옷 위에서 팔로 자기 몸을 가리며 말했다.


“비유가 그렇다는거죠. 그래서, 거기 계속 있을거에요?”


“왜 만드는 거에요 갑자기?” 조금 걱정스럽다는 투로 실비아가 펠릭스에게 물었다.


“그 말 들어봤어요?” 물을 다 넣었는지 재료가든 병들을 꺼내오며 펠릭스가 말했다. “검의 달인들은 서로가 칼을 쥐는 모습만 보고도 대화가 통한다고 하잖아요.”


“그런데요?”


“우리 연금술사들도 마찬가지거든요.” 병을 옮기다말고 펠릭스는 실비아를 향해 씩 웃어보였다. “우리들은 상대가 만드는 약만 보고도 대화가 돼요.”


“그게 말이나 돼요?”


펠릭스는 실비아에게 대답해주지 않고 여전히 씩 웃기만 했다.


“그나저나, 해리어가 너무 오래 약에서 손을 떼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그리고 그 말이 끝나자마자, 펠릭스의 얼굴은 본데없이 진중해졌다. 그는 마치 다른 모든 것들이 들리지 않고, 보이지 않는 사람처럼 오로지 약을 만드는데만 온 신경을 집중하고 있었다. 실비아는 펠릭스의 낯선 모습에 조금 겁에 질려 그의 이름을 두어번 정도 불러 보았지만, 펠릭스는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고 그저 약을 만들 뿐이었다. 그의 엄숙하고도 무시무시한 모습에, 실비아는 주저하다가 슬며시 작업실에서 빠져나갔다.




숲속 오두막에 밤이 깊어갔다. 집주인 메를린은 손님들에게 머물 방을 하나씩 열어 주었다. 서재로 쓰던 방은 안이 비좁아 실비아가 들어가게 되었고, 올리버는 창고에서 자리를 잡았다. 메를린은 해리어에게는 제대로 된 방을 내어주었는데, 왜 그렇게 준비된 빈 방이 있느냐는 해리어의 물음에 메를린은 그저 웃었다.


그리고 마침내, 연금술사의 작업실 안에서 펠릭스의 탄성에 가까운 한숨소리가 들려왔다. 펠릭스는 작은 약병에 그가 정성껏, 아니, 있는 힘을 다해 만든 약을 한 방울도 흘리지 않게 조심해서 담았다. 그는 약병을 옆에 두고 작업실의 솥을 깨끗이 씻은 뒤, 이마의 땀을 닦으며 약병을 챙겨들고 나왔다.


밤중에, 나무 오두막의 복도에서 노크소리가 울려퍼졌다. 노크소리가 들리고 거의 곧바로 아직 옷도 갈아입지 않은 해리어가 문을 열었다.


“안녕 해리어. 달이 밝다. 꼭, 그날 밤처럼.”


“날 놀리러 이 밤중에 찾아왔나?”


펠릭스는 대답 대신에 그에게 약병을 불쑥 내밀었다.


“뭐야?”


“그 때, 네가 만들어 달라고 한 약.”


“말도 안 돼.” 해리어는 조금 당황해서 말했다. “너는, 붉은 가루 병의 약을 끝끝내 만들지 못했잖아!”


“그 약이 아니야.”


“뭐?” 해리어는 눈에 띄게 당황하며 말했다. “뭐야?”


“열어 봐.”


해리어는 약병을 집어들고 잠시 머뭇거리다가, 펠릭스를 힐끗 노려보며 말했다.


“일단 안으로 들어와.”


펠릭스는 고개를 끄덕이고, 해리어가 열어준 문 틈으로 방 안으로 들어왔다.




해리어가 머물고 있는 방으로 들어오자마자 펠릭스는 그것이 누구 몫의 방이었는지 바로 알아챘다. 그리고 그 방의 단 한 부분조차 아직 어질러진 흔적이 없는 것을 보고, 해리어가 얼마나 이곳을 불편하게 여기는 지도 바로 알 수 있었다.


“무슨 꿍꿍이야?”


“아, 그래. 한번 열어봐.”


해리어는 반신반의하며 약병의 코르크 마개를 열었다. 그는 코를 갖다대고 킁킁거리며 약의 냄새를 맡더니, 갑자기 한 순간에 무너져 내린 것처럼 보였다.


“펠릭스. 이건······”


“사랑의 묘약. 네가 그 때 만들어 달라고 했잖아. 이제야 만들 수 있게 됐어. 미안해.”


“아니, 펠릭스. 이 약은······” 펠릭스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던듯, 다시 해리어가 중얼거렸다.


“그래. 그 때 말이야. 숲 속에서 길을 잃고 헤매이던 마을 방앗간 아가씨. 그 아가씨를 우연히 만나 마을까지 배웅해주고 돌아온 날, 너 저녁 내내 멍한 눈으로 그 아가씨 이야기만 했잖아. 그러더니 그 다음날 아침일찍 갑자기 나한테 불쑥 찾아와서 사랑의 묘약을 만들어 달라질 않나.”


“그 때는, 나는 아직 애송이였어.”


해리어는 눈에 띄게 동요하며 말했다. 약병을 든 그의 두 손이 덜덜 떨렸다.


“그래. 그리고 나도 그랬지. 넌 진지하게 사랑의 묘약의 가장 좋은 레시피를 마련해 왔지만, 정작 사랑초를 구할 길이 없었지. 그 때는 이미 겨울로 접어드는 시기였는데, 사랑초는 추위에 약한 풀이니까. 그래서 너는 뒤늦게 그걸 알아차리고, 사랑초를 대체할 만한 재료를 찾기 시작했어. 하지만, 결국 난 약을 만들어주지 못했지. 물론, 다행히 그것과는 상관없이 너는 그레이스와 사이가 좋아진 것 같았지만.”


“그레이스.” 해리어는 그 이름을 천천히 발음해 보았다. 그 단어를 음미하며, 음절 하나하나에 깃든 추억을 음미하며 해리어는 그 이름을 천천히 읊어보았다.


“해리어. 그 때는 정말 미안했어. 그리고 그 다음에 일어난 일은, 유감이야.”


“펠릭스. 그래, 너는 붉은 가루 병의 약을 만들어내지 않았어!” 순식간에 얼굴이 시뻘개져, 눈에 눈물까지 글썽이며 해리어가 통곡에 가깝게 소리쳤다. “나는 너를 믿었는데, 네가 언제나처럼 기발한 약을 만들어 우리 모두를 놀래켜줄 알았는데, 그럴 줄 알고 믿고 기다리고 있었는데! 그랬는데! 네가 가져온 약은 사람을 죽이는 약이었어. 펠릭스. 그레이스는 살 수도 있었는데 네가 그 약으로 죽여버렸어!”




펠릭스는 해리어에게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조용히 그를 지켜보며 그의 말을 듣기만 했다. 해리어는 혼자 화를 내고 울다가 금새 지쳐버렸다.


“해리어. 유감이야.”


“유감이라고. 잠긴 목소리로, 초췌해진 얼굴로 해리어가 중얼거렸다. “그레이스의 무덤 앞에서 다시 한 번 말해보지그래.”


“해리어. 미안해. 네 말이 맞아. 나는 결국 붉은 가루 병의 약을 만들지 못했어. 최선을 다해 노력했는데도.”


“네가 무슨 노력을 했는데!” 충혈된 두 눈을 부릅뜨고, 눈물을 글썽이며 해리어가 소리치는데도 펠릭스는 조용히 그에게 말해주었다.


“그 약. 다시 한 번 맛을 봐. 해리어. 다른건 몰라도, 넌 우리들중 가장 혀가 뛰어났었지. 맛을 보고, 한번 그 맛을 천천히 음미해봐.”


해리어는 여전히 어깨를 들썩이고 흐느끼면서도 떨리는 손으로 약병의 뚜껑을 열어 손등위에 약을 한 방울 톡 떨어뜨린 다음, 혓바닥을 살며시 갖다대어 약의 맛을 음미하기 시작했다.


잠시 조용한 침묵이 감돌았다. 그리고, 해리어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약이군. 대스승님이 제안한 약이야. 그 약과, 내가 고안한 사랑의 묘약을 섞었어. 재주도 좋군 펠릭스. 하지만, 그래서 어쩌라는거야?”


“아니, 하나 더 섞었어. 잘 맛 봐봐.”


“그게 뭔데?”


“내가 그레이스에게 만들어준 약.”


“뭐라고? 펠릭스. 이제 나까지 죽일 셈인가?”


“아니, 아니야 그럴리가.” 노발대발하려는 해리어를 애써 진정시키며 펠릭스가 재빨리 말했다. “그냥, 맛을 보라는 뜻에서 섞었어. 그리고 그 약은, 네가 생각하는 그런 약이 아니야.”


해리어는 처참한 표정으로 펠릭스를 잠시 바라보다가, 다시 약병의 뚜껑을 열고 입 안에 약을 한 방울 털어넣었다. 그는 잠시 약의 맛을 음미하는가 싶었는데 갑자기 그의 두 눈에서 눈물이 주륵 흘러나왔다.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흐느끼기 시작했다.


“펠릭스.” 꺽꺽거리는 소리를 내 가며, 애써 겨우 쥐어짜낸 목소리로 해리어가 말했다. “그레이스는, 그레이스는, 죽기 전에 네게 무슨 약을 부탁했지?”


펠릭스는 해리어의 질문에 대답하지 않았다.


“펠릭스. 말 해줘. 내게 대답해. 그레이스는, 네게 대체 무슨 약을 부탁했지?”


“대답할 수 없어. 그건 그레이스와의 약속이거든.”


마침내 해리어는 그 자리에 무너져내리며 힘없이 바닥에 철썩 주저앉아 계속해서 흐느꼈다.


“펠릭스. 펠릭스 이, 이 빌어먹을, 빌어먹을 놈이···...어떻게···...어떻게···...어떻게 그동안 견뎌온거야? 어떻게, 그걸 견딜 수가 있지? 대체 어떻게, 어떻게 사람이 그럴 수가······”


펠릭스는 쓸쓸하게 웃으며 해리어에게 말했다.


“나는 그런 사람이니까. 나한테는 사람의 마음이 조금 없거든. 그러니, 그런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해야지.”


“펠릭스. 펠릭스······” 점점 더 해리어의 목소리가 거칠어졌다. “나는, 나는···...그레이스가...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줄은···...그녀는···...그래, 결국 그녀는, 스스로···...” 결국, 해리어는 하려던 말을 끝맺지 못하고 참아온 울음을 터트리며 고통스럽게 통곡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펠릭스는 그런 그를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아무 생각도 하지 않고 다만 그저 조용히 바라만 보았다.






시간이 흐르고 마침내 울음을 멈춘 해리어와 펠릭스는 서로 다른 방향을 보고 앉아있었다.


“해리어. 시장에서는, 내가 미안했다.” 먼저 입을 연것은 펠릭스였다.




“펠릭스. 이제 그런건 아무 상관없어. 그보다, 너한테 하나 묻고싶은게 있어.”


“물어봐.”


“너는 붉은 가루 병에 대해 잘 아는 축이었지.”


“맞아.”


“그러니 너한테 묻겠어. 붉은 가루 병을 만들어 퍼트린건, 우리 연금술사들중 한 명이었나?”


펠릭스가 해리어의 질문에 대답하지 않아 방 안에는 침묵이 감돌았다.


“펠릭스. 나는 그 병을 우리 연금술사가 만들었다고 확신하고 있었어.”


“어째서지?” 펠릭스의 말투에서는, 그러나 궁금함이나 당황 같은 감정이 묻어나지는 않았다. 오히려 그는 조금 도발적으로 해리어에게 그 생각은 틀렸다고 말하는 것처럼 보였다.


“우리가 아는 어떤 약도 듣지 않았으니까. 그리고 그 병. 그 이상한 진행과정. 누군가 의도적으로 만들었다고밖에 생각되지 않는 증상.”


펠릭스는 해리어의 말에 동의도, 반박도 하지 않았다.


“그레이스가 죽었을 때, 나는 네가 그 병을 만들었다고 생각했어. 우리들중 그 누구보다도 죽음에 가까웠고, 죽음에 탐닉하고, 죽음을 바라는 연금술사처럼 보였거든. 그래서 나는 그레이스가 붉은 가루 병으로 죽었을 때부터 너를 증오했다. 내 친구라고 생각했던 사람이 내 약혼자를 죽게 만들었다고 생각했는데 어떻게 미워하지 않을 수 있겠어. 그런 생각이 들자 나는 내 약혼자를 죽인 이 연금술사들의 무리에 도저히 같이 남아있을 수가 없어서, 연금술사를 버리고 숲에서 떠났다. 하지만, 다행히, 내 생각이 틀렸던 것 같아. 펠릭스. 너는 죽음에 탐닉하는게 아니었어. 너는 죽음을 똑바로 바라볼 수 있는 사람이었던거야.” “과찬이야.”


“아니, 그래보여. 그래, 나는 그런 너를 질투했던거야. 내가 두려워하는 죽음을 똑바로 바라보는 너를.”


“낯간지럽게 그러지마 해리어. 그보다, 너 말야. 아직 연금술을 포기하지 않은거지? 네가 모은다던 버섯두꺼비. 방금 내가 만든 사랑의 묘약의 재료였어. 사랑초를 대체할 재료. 드디어 찾은 거지. 이슬과 풍뎅이만 먹은, 미꾸라지를 먹은 적 없는 것으로 말이야.”


“그건 생각이 지나쳐.”


“아니, 난 이미 마을까지 내려가서 확인하고 왔어. 버섯두꺼비가 정력제라는 소문은 그 먼 과거 이후로 단 한번도 돈 적이 없어. 대신, 알 수 없는 이유로 얼마전부터 버섯두꺼비를 비싸게 사들이는 괴짜에 대한 소문 뿐이었지. 어쩐지, 이상하다고 생각했어 해리어. 너는 똑똑한 사람이야. 버섯두꺼비가 정력제라는, 틀린 것으로 증명된 소문을 퍼트리고 다녔을리 없지. 너는 다른 이유가 있어서 재료를 사모은거야. 약을 만들려고. 네가 그 때 못 만든 약을, 이제와서라도 다시 만들려고. 이제와서 변명할 생각 마. 넌 아직 연금술사의 꿈을 포기하지 않은거지? 그래서 굳이 몸에 맞지도 않은 약사 따위가 된 거잖아.”


“펠릭스. 그만 말해. 네 말마따나 낯간지러워. 그래. 네 말이 맞아. 그렇지만, 이제 더이상 두꺼비를 사 모을 이유도 없어졌군. 나는 결국 다시 실패했어. 나는 내 손으로 약을 만들어내지 못했어. 이 세상에 사랑의 묘약따위는 역시 존재하지 않는거야.”


그 말을 들은 펠릭스는 갑자기 픽 웃었다.


“해리어. 너도 아다시피 사랑의 묘약따윈 존재하지 않았지. 하지만, 네가 가져온 이 레시피는 단순한 사랑의 묘약의 레시피가 아니야. 어쩌면, 여기에는 있을지도 몰라.”


“뭐가?”


“사랑.” 펠릭스는 가만히 고개를 들어 해리어를 바라보았다. “이건 내가 만든 불완전한 모조품에 불과해. 가장 중요한 사랑하는 마음이 전혀 담겨있지 않지. 하지만, 네가 만드는 약에는, 어쩌면 들어있을지도 몰라. 그 사랑이라는게. 네가 그레이스를 생각하는 마음을 담아서 묘약을 만든다면, 어쩌면 그건 정말 사랑의 묘약이 될 지도 몰라.”


펠릭스의 말을 가만히 듣고있던 해리어는, 갑자기 웃음을 터트렸다. 묵은 갈증이 해소되는 시원한 웃음. 어린 아이의 순수함이 묻어나는 진실된 웃음. 해리어는 웃으며 말했다.


“그야말로, 꿈 같은 말이야. 잠자리에 들기 전에 동화책을 읽는 어린 아이나 할 법한 발상이로군.”


“그래. 그 말대로야. 그렇지만, 낭만적이지않아?” 창 밖으로 비스듬히 떠오른 푸른 달을 보며 펠릭스가 중얼거리자, 해리어는 어둠속에서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해리어의 방에서 나온 펠릭스는 창 밖의 달을 올려다보다가 조심스레 오두막의 현관문을 열고 마당으로 고개를 살짝 내밀어 보았다. 마당에서는, 메를린이 옷을 벗오 두 팔 벌려 달빛을 온 몸으로 받고 있었다. 펠릭스가 그녀를 향해 두어발자국 다가오자, 메를린은 옆에 벗어두었던 로브를 주섬주섬 걸쳤다.


“펠릭스. 내 몸이 보고싶었던거야?”


“그럴리가. 파란 달이 떠 있길레 혹시나 해서 나와본거야.”


로브를 다 입은 메를린은 펠릭스를 돌아보며 웃었다.


“들었어?”


“어쩌다보니, 약간.”


“그렇구나.” 펠릭스는 메를린을 향해 몇 발자국 더 가까이 걸어가다가, 한 다섯발자국 정도의 간격을 남기고 거기서 멈춰섰다.


“이제 잘 됐네. 해리어와 오해도 풀렸고. 하지만.” 메를린의 눈꼬리가 조금 서글프게 쳐졌다. “펠릭스. 끝끝내 내 이야기는 하지 않았구나.”


펠릭스는 어깨를 으쓱했다. “할 필요가 없었으니까.”


“내 이야기를 했더라면 더 빨리, 더 확실하게 오해를 풀 수 있었을텐데.”


“그랬더라면 해리어는 나 대신 너를 미워하면서 남은 평생을 살았겠지. 뭐, 그것도 삶의 원동력이라면 원동력이지만, 그렇게 좋은 것은 아니니까.”


메를린은 그렇게 말하는 펠릭스를 향해 미소를 지어주고 다시 몸을 돌려 파라란 달을 올려다보았다.


“나는 치료약을 만들어냈어. 붉은 가루 병을 치료할 수 있는 어쩌면 유일한 약. 그 약을 썼더라면, 그레이스가 살아남았을지도 몰라.”


“하지만, 네가 그 약을 만들도록 놔 둘 수는 없었어.” 펠릭스는 곧바로 메를린의 말에 끼어들었다. “마녀의 피. 네 약의 재료에는 마녀의 피가 들어가는데, 그 때 우리가 아는 마녀라고는 한 명 뿐이었지. 그 비루한 늙은이들이 더럽고 추잡한 침을 네 몸에 꽃고 모기처럼 네 몸에서 피를 빨아가도록 놔 둘 수는 없었어.”


“하지만, 펠릭스. 그 때, 내 피로 약을 만들었으면, 네가 약으로 죽인 그 많은 사람들이 살아남았을지도 모르는데?”


“메를린.” 펠릭스는 그녀의 등에 대고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나는 저울질을 잘 해. 그 때 멀쩡히 살아난 네 목숨이, 죽어버린 그들의 목숨보다 훨씬 중하다고 생각했어. 나는 그 때 네 솥을 쏟아버린 일을 전혀 후회하지 않아.”


“아, 펠릭스. 오만할 정도로 자신감이 넘치는 펠릭스···...나는 가끔 네가 부러워. 네 자신만만한 고집이 그 때 나를 구해냈어.”


“하지만, 덕분에 그레이스는 죽고, 해리어는 나를 증오했고, 게일, 노리스, 듀프, 카야, 린, 버크, 제인, 첼시, 트로이까지 모두가 결국 뿔뿔이 흩어지게 됐으니까. 이제 그 숲에 남은것이라고는 대스승님 뿐일거야. 하긴, 다들 죽음의 약이라는게 유일한 처방이라는 사실을 견딜 재간이 없었던거지. 뭐, 그럴만하긴 했지만.”


“그래. 그렇지만, 어쨌든 펠릭스. 너는 그 때 병을 막아냈어. 그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야.”


“나도 알아.” 씁쓸하다는듯 한숨을 쉬며 펠릭스가 말했다. “그런데, 메를린. 그보다 해리어가 신경쓰이는 말을 하더라.”


“뭔데?”


“우리들중 누가 만든 병이 아니냐고. 붉은 가루 병.”


메를린은 잠시 조용히 있다가 입을 열었다.


“글쎄. 그 때도 그런 소문이 돌기는 했지만, 나는 잘 모르겠는걸. 나는 마녀의 피가 섞여서 은근히 따돌림을 받았으니까. 일단, 적어도 내가 만들지는 않았어. 믿어줄래 펠릭스?”


“당연히 믿어. 너는 그런 번거로운 방법따위 쓸 필요도 없었으니까.”


“펠릭스. 짗궃기는. 아무튼, 밤이 깊었어. 밤의 숲은 평범한 사람들에게는 그리 친절하지 않아.”


“그래 메를린. 그럼, 수고해. 나는 이만 들어갈게.”


“아, 그전에 하나만 물어볼게 펠릭스.” 벌써 그녀에게서 등을 돌려 오두막으로 돌아가던 펠릭스는 메를린의 말에 그대로 멈춰섰다.


“그 때, 그레이스에게 만들어준 약. 정확히 어떤 약이었어?”


메를린에게 등을 돌린채, 펠릭스는 잠시 가만히 서 있다가 대답했다.


“진통제. 긴장이완제. 약간의 환각제. 예술가들이 꿈에 잠길 때 자주 쓰는 요정가루와 별모래를 섞어넣고, 행복한 기분을 느낄 수 있게 해주는 버섯 말린 가루도 섞었어.”


“그게 죽음의 약이야?”


“아니. 내가 그레이스에게 만들어 준 건, 죽음을 천천히 생각해 볼 수 있도록 도와주는 약이었지. 나는 그레이스에게는 죽음의 약을 만들어 주지 않았어. 그게 다야. 해리어도 그걸 이제 알아차렸으니, 나를 용서해준 거겠지. 아무튼, 난 이만 들어가볼게.”


펠릭스가 다시 걸음을 옮겨 오두막 안으로 들어가 문을 닫자, 메를린은 다시 로브를 벗고 쓸쓸한 달을 향해 외로이 두 팔을 벌렸다.




영원할것 같던 숲 속의 밤이 끝나고 마침내 밝은 아침이 밝아왔다. 아침이 되어 실비아가 거실로 나왔을 때는, 이미 해리어는 먼저 떠나고 없었다. 해리어는 거실 테이블 위에 고맙다는 단 한 단어만 쓰여진 쪽지를 남기고, 그렇게 소리소문없이 조용히 메를린의 오두막을 떠난 뒤였다.


“좋은아침이에요.”


테이블위에 올려진 해리어의 쪽지를 집어들어 읽고있는 펠릭스의 등을 향해 실비아는 하품을 하며 말했다.


“무슨 좋은 일 있어요?”


펠릭스가 뒤를 돌아보자 실비아가 신기하다는 듯한 눈으로 물었다.


“아니오. 식사하러 가죠.” 쪽지를 주머니에 집어넣으며, 펠릭스는 웃으며 말했다.


펠릭스와 실비아, 올리버는 메를린의 집에서 아침까지 대접받은 뒤에야 오두막 밖으로 걸어나왔다. 실비아는 드디어 오두막을 벗어나게 된 것이 조금은 즐겁다는듯 태양을 향해 웃으며 기지개를 켰고, 올리버는 여느 때와 같이 별다른 생각은 없어보였다.


“펠릭스. 이제 가는거야?”


문 앞까지 따라나온 메를린을 향해 펠릭스는 웃으며 말했다.


“이제 가야지. 너무 오래있었어.”


“만약에, 펠릭스. 만에 하나지만, 돌아오고 싶으면 언제든지 돌아와도 돼. 나는 여기서 계속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


“메를린. 한 오십년쯤 뒤라면 모를까, 한동안은 돌아올 생각 없으니까 좋은 사람 찾으면 그냥 바로 낚아채.”


“펠릭스. 농담도.” 메를린은 펠릭스를 향해 웃어보였다. “아무튼, 반가웠어. 앞으로도 자주 보면 좋겠는데. 조금 아쉽다.”


“종종 편지 쓸 테니까. 너무 그러지마 메를린. 그리고 두꺼비도, 해리어 건도 도와줘서 고마웠어.”


메를린은 펠릭스를 향해 뚜벅뚜벅 걸어오더니 말없이 그를 안았다. 펠릭스를 안고 그의 등을 토닥여준 다음 메를린은 그에게서 떨어져 씁쓸하다는듯 웃음을 지어 보였다. 펠릭스는 그런 메를린을 향해 고개를 끄덕여준 뒤, 뒤를 돌아 메를린의 오두막에서 걸어나갔다.




펠릭스와 메를린은 올리버의 뒤를 따라 숲 속 오솔길을 되짚어가기 시작했다.


“그래서, 구한거야?” 크게 하품을 하며, 올리버가 말했다.


“물론이죠.”


“얼마나?” 옷 안에 뭐가 숨어들었는지, 올리버는 잠시 옷 속으로 손을 집어넣고 이리저리 휘적였다. 그러다가 쑥 뽑아낸 그의 손 안에는, 조그만 갈색 다람쥐 한 마리가 들려 있었다.


“열 두 마리요.”


“네?” 이번에는 옆에서 실비아가 끼어들었다. “열 세 마리 필요하다고 하지 않았어요?”


“아, 한 마리는 다른데 썼어요. 그리고 걱정 말아요 실비아. 처음부터 거기까지 미리 계산해서 열 세마리를 받은 거니까. 당신건 충분해요.”


“그렇다면, 뭐, 다행이지만. 아, 맞아. 그리고 그 해리어라는 사람. 그래서 결국 뭐였던거죠?”


펠릭스는 서서히 걸음을 늦추더니, 어느 순간 제자리에 멈춰 섰다.


“펠릭스?”


“아. 해리어. 그래요. 해리어에 대해 말하고 있었죠? 좋아요, 실비아. 뭐가 궁금한거죠?”


“...그래서, 결국 뭐였나고요. 왜 우리한테 시비를 걸었는지, 왜 그렇게 당신을 미워하는건지.”


“옛날 이야기를 조금 해야돼요. 전에 말했던것 같지만, 해리어와 나는 같은 연금술사 동문이었죠. 그리고 당신도 이제 아다시피 붉은 가루 병이 돌았고, 그 때 내가 해리어의 약혼자에게 죽음의 약을 만들어 줬어요.”


“세상에. 당신이 죽인 거였어요?”


“아니오. 그건 먹으면 죽는 약이 아니었어요.”


“그러면요?”


“환각제, 진정제, 진통제, 긴장 이완제, 각성제 같은 것들을 적절한 비율로 섞은 약이었죠. 붉은 가루 병의 끔찍한 고통에서 잠시 벗어나, 삶의 의미를 한번 되새겨 보라는 뜻에서 만들어 줬어요.”


“그럼 그건 죽음의 약이 아니잖아요?”


“죽음에 대해 숙고할 수 있게 도와주는 약이니, 넓게 보면 죽음의 약이죠. 아무튼, 내가 만들어준 약도 별 소용은 없었던거죠. 나중에 가 보니 죽어있더군요. 쥐약을 먹고. 그것도 붉은 가루 병 만큼이나 고통스러운 죽음이었을텐데.”


실비아는 펠릭스의 말을 듣고 잠시 이름모를 불쌍한 영혼을 위해 조용히 기도를 했다.


“잠깐만요. 그럼 그 해리어라는 사람은 당신을 미워할 이유가 전혀 없잖아요?”


“내가 죽인걸로 해 뒀어요. 쥐약을 치워버렸죠.”


“네? 어째서요?”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는 다는 듯, 의아한 표정으로 실비아가 물었다.


“그렇게라도 안 하면, 해리어가 미쳐버릴것 같아서요. 일부러 두루뭉술하게 말했죠. 죽음의 약을 만들어 줬다고. 그 약을 먹고, 그녀가 죽었다고. 어디에도 거짓은 없었어요. 그래서 해리어는 처음에는 슬픔과 고통으로 무너졌다가, 나중에는 저를 미워하는 마음을 동력삼아 다시 일어나더군요. 씁쓸했지만, 여리고 순수한 해리어가 어디서 혼자 죽게 만드는 것보다는 그게 훨씬 나았어요.”


“아니, 그래도 펠릭스. 억울하지도 않아요? 저지르지도 않은 죄로 남의 원한을 산 거잖아요. 그게, 꼭 그렇게까지 했어야 할 일인가요? 다른 좋은 방법도 있지 않았겠어요?”


펠릭스는 쓸쓸한 미소를 지으며 실비아를 향해 말했다.


“그 때는, 나도 아직 어렸어요. 그 이상 좋은 방법은 생각나지 않았어요. 그리고 결과적으로 나도 해리어도 지금은 이렇게 멀쩡히 살아있으니, 잘 된일 아니겠어요.”


“그래도, 좋은 말로 설득을 한다든가, 옆에서 조용히 타이른다든가, 힘이 나도록 기운을 북돋아준다든가······”


“실비아.” 실비아의 말을 끊고 펠릭스가 말했다. “우리 연금술사들이 만드는 약에는 대원칙이 하나 있어요. 그게 뭔지 알아요?”


“몰라요. 제가 어떻게 알아요? 난 연금술사도 아닌데.”


“받는 사람이 원하지 않는 약은, 아무리 뛰어난 약이라도 효과가 없다.”


“말도 안 돼요.” 당장 실비아는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저만해도, 어릴 때 쓰고 맛없는 감기약을 얼마나 싫어했는데, 억지로 유모가 감기약을 먹였을 때 유모한테 얼마나 못되게 굴었는지 알아요? 하지만, 잘만 나았다고요.”


“그건 당신이 병이 낫기를 바랐으니까 그런거죠. 누가봐도 비유인 말을 그렇게 걸고 넘어지지 마요. 아무튼, 그래. 해리어의 약혼녀는 병이 낫기를 바라지 않았어요. 대신, 다른 것을 바랬지. 내 약으로 그녀의 마음을 돌릴 수 있기를 바랬는데, 저로서는 역부족이었어요. 일은 벌어졌고, 저는 이제 그걸 수습해야 했죠. 그래서 저는 그 때 최선이라고 생각한대로 움직였어요. 결과적으로, 나쁘지만은 않았죠.”


“그렇게 오래 누군가의 원한을 샀는데도요?”


갑자기, 펠릭스는 실비아를 향해 씩 웃어보였다.


“원래 약 만드는 사람들은 원한을 많이 사거든요. 당신은 모르겠지만.”


“그래요? 모르고 사는게 속 편할 것 같네요.”


“어이, 이봐! 언제부터 거기 가만히 서 있었던거야?”


혼자 저만치 앞장서가던 올리버는 뒤늦게 돌아와 다시 펠릭스와 실비아를 데리고 오솔길을 걸어갔다.



“아, 펠릭스.”


한동안 조용히 오솔길을 걸어가던 실비아는 불현듯 떠올랐다는듯 어제 메를린과 함께 만들었던 약을 꺼내들어 보였다.


“뭔데요?”


“제가 만든 약이에요. 어때요?”


“약을 만들었다고요? 누구랑? 어떻게?”


“메를린이 저한테 가르쳐줬어요. 그분 말로는, 무려 당신보다 훨씬 낫다던데요?”


당황해서인지, 복잡미묘한 표정의 펠릭스를 향해 조금 의기양양하여 실비아가 말했다.


“그래요? 그럼 어디 한번 볼까요.” 펠릭스는 약병의 뚜껑을 열고 살짝 냄새를 맡아보았다. “사랑의 묘약이네요.”


“그래요.” 실비아는 여전히 의기양양한채 계속 말했다. “메를린이 말하던데요. 당신은 사랑의 묘약 만드는데 그렇게 서툴렀다고.”


“아, 맞아요. 서툴렀죠. 그 때는 나도 아직 견습이었거든요.”


그런데 그 때, 갑자기 펠릭스의 눈에서 눈물 한 줄기가 아무런 예고도 없이 주륵 흘러내렸다.


“뭐에요?”


“네? 아, 글쎄요. 뭘까요?” 깜짝 놀라 손등으로 눈물을 훔치고는 쓸쓸하게 웃으며 되묻는 펠릭스를 보고, 실비아는 더이상 아무 말도 하지않고 고개를 돌렸다. 그렇게 그들은 나무의 틈사이로 부서져 새어들어오는 밝은 햇살을 쬐며 행복의 연금술가게를 향해 조용히 걸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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