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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유자 님의 서재입니다.

행복의 연금술 가게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완결

녹색유자
작품등록일 :
2021.10.08 16:53
최근연재일 :
2022.01.13 18:00
연재수 :
172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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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54
추천수 :
188
글자수 :
1,774,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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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10.09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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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8쪽

3화

DUMMY

“쿵쿵쿵쿵!”


꼭두새벽부터 누군가가 행복의 연금술 가게의 잠긴 문을 부술 기세로 두들겨댔다. 침대에서 세상 모르게 푹 자고 있던 펠릭스는 갑자기 쾅! 하는 소리에 화들짝 놀라 침대에서 굴러떨어졌다.


촛대에 성냥을 그어 불을 밝히고, 조심스레 일층으로 내려오니 다시 문에서 쿵쿵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혹시나 했는데, 이미 올리버는 잠에서 깨어 칼을 뽑아들고 거실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아니, 문을 두드리는 사람이 설마 도둑이나 강도겠어요?”


펠릭스는 그런 올리버를 보고 한심하다는듯 말했다.


“누가 알겠어?”


그러나 올리버도 한 고집 하는 사람이었다.


“급한 사람일수도 있잖아요. 일단 문을 열어볼테니 뒤에 있어요.”


“사선을 가리지만 마.”


“어련히 알아서 할까봐요.”


펠릭스는 문에 걸어둔 빗장을 조심스레 들어올리고 살짝 문을 열었다.




문 너머에 서 있는 사람은 새벽의 어둠 때문에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체구가 그리 크지 않은 것 정도밖에는.


펠릭스가 촛불을 들이밀자, 그제서야 그는 누가 이 새벽부터 무례하게 문을 두드리는지 알 수 있었다. 그에게서 죽음의 약을 사간 바로 그 사람이 문 밖에서 검은 로브를 뒤집어쓰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긴장이 풀려, 크게 하품을 하며 펠릭스가 말했다.


“결정했어요. 같이 가기로.”


“거 잘 됐네요.”


입맛을 쩝쩝 다시며 그가 말했다.


“출발해요.”


“오늘은, 안 가요.”


“왜요?”


대번에 날카로운 목소리가 조용한 대기를 찢으며 날아들었다.


“오늘은 여행 준비를 해야하니까요. 무턱대고 아무 계획도 없이 여길 뜬다고 해서 무슨 뾰족한 수가 생기는것도 아니에요. 하물며, 약에 쓸 약재를 구하려면 우선 어디에 뭐가 있는지 없는지 정도는 파악해 둬야죠.”


“가까이에 큰 성이 있잖아요.”


“거긴 벌써 확인했어요. 어제, 당신이 다녀간뒤로 혹시나 해서 전서구를 보냈는데, 그쪽 시장에도 지금 재료가 별로 없어요. 뭐, 그럴만 한 시기기는 해요.”


“그럼 어떡해요?”


“그러니까, 오늘 그걸 알아봐야죠. 그럼 그만 돌아가주지 않겠어요? 나는 아직 좀 더 자고 싶은데. 그리고 우편국이 문을 열어야 뭘 알아보든가 말든가 할것 아니에요. 소식지도 받아봐야되는데, 소식지도 아침은 되어야 나오니. 광장의 포고꾼만 해도······”


펠릭스가 계속해서 이야기에 꼬리의 꼬리를 물고 늘어놓자, 그 손님은 질색을 하며 말했다.


“아, 알았어요. 당신 마음대로 해요. 그럼 내일 오면 되나요?”


“아니, 한 네 시간쯤 있다 와요.”


“왜요? 오늘은 안 간다면서요.”


펠릭스는 다시 하품을 하고 기지개를 켰다.


“당신도 같이 약재를 찾으러 갈 거면, 적어도 뭐가 약초고 독초인지는 구분할 수 있어야죠.”


“네? 그냥, 따라만 가면 되는 거 아니에요?”


“먹을 사람이 직접 캐는 약초가 제일 효과가 좋아요.”


“아니,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그렇게 따지면 시장에서 파는 약초들은······”


“네. 그건 다 약효가 영 떨어지죠. 제가 당신에게 최고의 약을 만들어 주겠다고 했잖아요? 그러면 그에 걸맞는 최고의 재료를 모으는 것 정도는 도와줘요. 설마, 우리들이 발품을 파는 동안 뒤에서 팔짱끼고 가만히 있을 생각은 아니었죠?”


“아니, 그건 어제 말 안해줬잖아요. 그냥, 마음이 중요하다고만······”


“뭐, 싫음 관두든가요. 대신, 약효가 떨어지거나 또 무슨 예상 못한 부작용이 있어도 나한테 뭐라 그러기 없기에요.”


“아, 알았어요. 알겠어요. 그럼 네 시간있다가 돌아올게요.”


마침내 그녀는 회중시계를 꺼내 보더니 대답했다.


“좋아요. 그럼 그 때 찾아와요. 아, 당신 이름이 뭐죠?”


“네?” 경계하는 투로 그녀가 말했다.


“방문 예약을 받으려면 이름을 알아야죠, 손님.”


“난 아무한테나 내 이름을 알려주지 않아요.”


“그럼 그냥 이름없이 손님이라고 써 둬요? 그리고 계속 같이 다니는 동안에도 그냥 손님이라고 부를까요?”


그녀는 잠시 가만히 서 있다가 다시 잦아드는 목소리로 말했다.


“실비아에요."


“좋아요. 실비아. 세 시간 오십오분 뒤에 다시 만나요. 그럼, 안녕!”


그리고 펠릭스는 그녀가 또 뭐라 하기 전에 잽싸게 문을 닫았다.






“실비아. 실비아라.”


줄곧 문 바로옆에서 언제든지 뛰쳐나갈 준비를 하고 있던 올리버가 허리띠에 채워두었던 칼집을 풀며 말했다.


“왜요. 알아요?”


“아니, 모르는 이름이야. 귀족 가문의 영애라면 한 번쯤은 들어봤을텐데.”


“사교계에 데뷔하지도 못할만큼 어린 애송인가보죠.”


“아니면 사교계를 기피하거나. 가문에서 버린 자식이라든가, 뭐 가능성은 있겠지.”


“단순히 올리버 당신이 너무 늙었을지도 모르고요.”


“내가 왜?”


“맞잖아요. 벌써 나이 사십줄 아녜요? 잘나가는 귀족도 아닌데, 사교계에서 활약하긴 너무 늙었죠.”


“이놈이, 고용주라고 아주 못하는 말이 없군. 이래뵈도 나도 아직 꽤 잘 나간다고.”


“아무렴요. 아무튼 난 더 자다가 일어날테니까, 올리버 당신도 그만 문 잠그고 돌아가봐요.”


펠릭스는 다시 삐걱이는 계단을 올라 그의 푹신한 침대 위로 몸을 던졌다. 언제인가 올리버가 잡아온 오리의 하얀 깃털을 뽑아 잔뜩 채워넣은 푹신한 이불에 파묻혀, 그는 기분좋게 입맛을 다시며 금새 잠에 빠져들었다.




어둠속에서 펠릭스는 두 눈을 반짝 떴다. 기분좋게 눈꺼풀 위를 간질이며 잠을 깨워주는 아침 햇살의 따뜻함이 오늘은 느껴지지 않았다. 침대에서 몸을 억지로 일으켜보니, 온 몸이 뻑적지근하고 찌뿌뚱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커튼을 살짝 들춰보니 아니나다를까, 창문 밖에서는 을씨년스러운 비가 내리고 있었다.


비틀거리며 삐걱이는 계단을 밟고 일층으로 내려오자, 오늘 아침에는 고소하고 따스한 향기가 펠릭스의 코끝을 간질였다. 부엌으로 들어서자 테이블 위에 잔을 내려놓고 소식지를 펼쳐 보고있는 올리버가 보였다.


“좋은아침. 올리버.”


입이 찢어져라 하품을 하고 몸을 벅벅 긁으며 펠릭스는 찬장을 열었다.


“좋은 아침은. 지금이 몇 시인줄 알고.”


“몇 신데요?”


찬장에서 어제 먹었던 흑빵 덩이를 꺼내며 펠릭스가 말했다. 그는 조리대 위에 빵을 올려놓고는, 허공에 손을 뻗어 앞으로 몇 끼니나 더 이 빵을 먹을 수 있을지 보이지않는 선을 그으며 가늠해보았다.


“벌써 정오야.”


“정오!”


펠릭스가 소리쳤다.


“손님은요? 그러니까. 아, 이름이 뭐였더라······”


“실비아.”


“그래, 실비아. 그녀는 지금 어디있죠?”


“여기있어요.”


부엌의 구석에서, 검은 덩어리가 꾸물거리더니 자리에서 일어나 펠릭스에게 다가왔다.


“시간약속을 지키지 못하는 분이시네요. 솔직히, 조금 실망이에요.”


“아, 그게, 어제는 약 만드는데 너무 열중해서 그만. 당신도 봤죠? 그 큰 솥을 한가득 끓이면서 계속 국자로 휘휘 저었잖아요. 아, 이게 아니지. 미안해요. 게다가 오늘 비가 오는 줄은 몰랐거든요. 저는 비오는 날에는 약해서······”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에요? 사람이 달팽이나 지렁이도 아니고. 비오는날 약한 사람이 어딨어요?”


펠릭스는 변명하듯 시선을 피하면서, 올리버를 향해 뭐라도 도와달라는 눈빛을 보냈다.


“자, 아무튼, 이 늦잠꾸러기한테는 그쯤 해 두라고. 좀 늦었지만, 이제 슬슬 하루를 시작해야지.”


그러나 올리버의 말은 실비아에게는 물론이고, 펠릭스에게도 별다른 도움이 되지는 못했다.


“정말이지, 이렇게 두루뭉술 넘어갈 생각인가요? 이봐요. 나랑 방문 예약을 잡았으면 마땅히 그 시간에 나를 맞이할 준비쯤은 해뒀어야 하잖아요.”


“아이고, 미안해요 손님. 아니, 실비아. 비가 오는 날에는 영 약해서리.”


“할아버지들도 아니고. 하여튼, 제대로 사과해요!”


펠릭스는 다시 올리버에게 도움을 구하는 눈길을 보냈지만, 올리버는 무시했다.


“죄송합니다. 시간 약속을 지키지 못했어요.”


결국 펠릭스는 실비아를 향해 허리를 푹 수그렸다.


“이제 됐나요?”


“좀 낫네요.”


‘하여튼, 귀족 놈들이란······’


차마 입 밖으로 말을 꺼내지는 못하고 펠릭스는 혼자 속으로 툴툴거리며 연금술사의 작업실로 들어갔다.




작업실에 다녀온 펠릭스는 빛바랜 두꺼운 책들을 한아름 안고 돌아왔다. 먼지가 풀풀 날리는 책이 끼어있어, 펠릭스는 연신 재채기를 하면서도 책을 중간에 빠뜨리지도 않고 좁은 부엌 테이블 위해 책 더미를 내려놓았다.


“이걸 어디 쓰려고요?”


“아, 실비아. 좋은 질문이에요.” 어깨를 빙빙 돌려 풀며 펠릭스가 말했다. “이제 이걸 읽으면 돼요.”


“네?”


“읽으라고요.”


“제가요? 왜요?”


실비아는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펠릭스를 쳐다보았다.


“그래야지 약초든뭐든 찾을거 아녜요? 벌써 새벽에 이야기가 끝났던것 아닌가요?”


“아니, 그 약 하나 만드는데 들어가는 재료가 그렇게 많아요? 이 많은 책들을 다 읽어야 할만큼?”


“싫음 관두든지요. 그러면 여섯 달은 기다려야 하겠네요. 뭐, 그래봤자 나는 아쉬울 것도 없지만.”


“난 그 약이 빨리 갖고 싶어요!”


실비아가 다시 앙칼진 목소리로 소리쳐, 펠릭스와 올리버는 두 귀를 막았다.


“당장이라도 갖고싶다고요!”


“그러면, 이 책들을 읽어요.”


“전부 다요?”


“가능한 한 많이. 여행길에,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생각지도 못한 재료를 찾을지도 모르는데, 못 보고 그냥 지나치면 아깝잖아요. 그리고, 운만 좋다면 한 달 안으로 약을 만들 재료들을 모을지 또 누가 알아요?”


“약재라는건 정말이지, 순 제멋대로군요. 규칙이란것도 없고, 운이 좋으면 어디서든지 찾을 수 있다니. 그게 대체 뭐란 말이에요?”


“뭐, 변덕스럽긴하죠 그친구들이.”


펠릭스는 남의 이야기를 하듯 말했다.


“아무튼, 그럼 수고해요 실비아. 다 못읽어도 괜찮아요. 어차피, 다 읽을거라고 기대도 안 하고 있으니까.”


“무례하군요. 나를 지금 무시하는건가요?”


“무시가 아니에요.” 펠릭스는 그녀를 향해 웃으며 말했다. “내가 아는 가장 총명한 연금술사도, 그 많은 책을 다 읽는데만 해도 며칠은 걸렸어요. 그러니, 당신도 그냥 마음편히 읽어요. 어차피 다 못 볼 테고, 다 본다 하더라도 우연히 만났는데 못알아보고 지나치는 약재가 한둘쯤은 분명 있을테니까요.”


“나를 도발하는군요. 좋아요. 두고봐요. 내가 어떤 사람인지, 이 기회에 아주 분명하게 새겨 드리죠.”


“뭐, 기대할게요. 그럼 올리버. 집좀 봐줘요. 나는 밖에 나갔다 올테니까.”


“비가 많이 오는데. 괜찮겠어?”


펠릭스는 웃으며 어깨를 으쓱해보였다. 그러자마자 창문이 번쩍이며 천둥 소리가 요란하게 울려퍼졌다.


“진짜 괜찮겠어?”


펠릭스는 당황한 표정으로 창문을 돌아보았다가, 애써 표정을 수습하며 다시 올리버를 향해 어색하게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그래. 뭐, 마음대로 해.”


“그럼 수고들 해요. 이따 보자고요.”





행복의 연금술 가게의 문은 오늘도 열리지 않았다. 대신 연금술 가게의 부엌에 붙은 뒷문은 오늘따라 자주 여닫혔다. 펠릭스는 로브를 걸치고 질척한 골목을 달리듯 지나쳐 포고꾼이 머무르는 마을 광장으로 갔다.


포고꾼은 이런 날씨에도 나무로 조잡하게 만든 그늘 아래에 서서 힘껏 종을 울리며 연신 큰 소리로 뭐라고 외치고 있었다. 빗소리와 간간히 들려오는 천둥 소리 때문에 그의 말을 제대로 알아듣기 위해서는 꽤 가까이 다가갔어야 했다. 어쨌든 펠릭스는 그가 뭐라고 소리쳐대는지 들었는데, 쓸만한 정보라고는 눈꼽만큼도 없어 그는 아쉽다는듯 한숨을 쉬며 소식지가 모이는 마을 회관으로 자리를 옮겼다.


마을 회관의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자, 바로 정면의 벽난로에서 빨간 불꽃이 넘실거리며 온기를 온 회관 안으로 퍼트리고 있는 것이 보였다. 그러나 그 온기는 몸도 마음도 축축하게 젖어버린 사람들로 가득 찬 마을 회관의 습기를 말리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얼마나 축축한지, 회관 한 켠에 쌓여있는 누런 소식지도 습기를 머금어 눅눅했다.


펠릭스는 소식지 하나를 집어들었다. 그러고보니, 올리버가 오늘 아침에 소식지를 보고 있던데. 거기서 보고 왔으면 좋았을걸. 뒤늦게 후회를 하며 그가 소식지를 기세좋게 활짝 펼치자, 그만 그 기세를 못 버티고 부욱 하는 소리를 내며 축축한 소식지는 반토막이 났다.


주변의 시선을 애써 무시하며 두 번째 소식지를 집어든 펠릭스는 그제서야 내용을 찬찬히 읽어볼 수 있었다. 어디선가 반란의 불씨가 일었다가 금새 꺼졌다는 것이나, 국경에서 조그마한 무력 충돌이 있었다든가, 수수께끼의 괴물이 어느 마을에서 나타났다든가, 아니면 영영 사라진 줄 알았던 희귀한지 흔한지 모를 풀이 어디서 새로이 발견됐다든가. 하나같이 하품밖에 나오지 않는 지루한 기사들 뿐이었다.


펠릭스는 페이지를 넘겨, 그가 궁금했던 시장 시세표를 보았다. 그리고, 그는 갑자기 턱이 떡 벌어졌다. 그가 찾던 약재의 값이, 그야말로 하룻밤사이에 열 배 이상 뛰어올라 버린 것이었다. 펠릭스는 처음에는 자기가 잘못 본 줄 알고 눈을 비볐고, 그 다음에는 종이가 잘못 됐다고 생각해 세 번째 소식지를 펼쳤다. 그러나 다섯 번째 소식지를 펼쳐도 숫자는 모두 똑같이 쓰여 있었다. 그가 이제 막 여섯번째 소식지를 집어들자, 마을회관의 경비병이 웃으며 그에게 다가와 그를 정중하게 밖으로 내쫓았다.



마을 회관에서 내쫓긴 펠릭스는 공연히 허공에 발길질을 했지만, 재수없게 그만 물웅덩이를 밟아 물이 튀기며 그의 신발과 바짓단을 차갑게 적셔, 그의 마음 한 구석도 똑같이 울적하게 젖어들었다. 그는 이번에는 전서구들이 모이는 우편국으로 가, 그에게 온 우편물이 없는지 확인했다. 때마침 우편이 하나 들어와 있어 펠릭스는 반가운 마음으로 요금을 지불하고 편지를 뜯어보았다. 편지에는 글씨들이 빼곡했는데, 반갑게 웃으며 편지를 읽던 펠릭스의 얼굴은 그가 편지의 추신을 읽은 뒤에는 흙빛으로 바뀌어 있었다.



당황한 펠릭스는 이제 시장 바닥을 마구잡이로 돌아다니며 눈에 띄는 약방이나 약재상마다 찾아가 무턱대고 재료를 팔아달라고 매달리기 시작했다. 몇몇 사람들은 그를 측은하게 여겼지만, 대부분은 그를 무시했고 소수의 사람들은 오히려 그에게 성을 내며 경비병을 부르는 자도 있었다. 큰 말썽이 아닌 데다가, 아직은 조금이나마 존경받는 연금술사인 덕분에 펠릭스는 구금되지는 않았지만, 그가 원하던 것은 결국 찾지 못한 채 펠릭스는 물에 빠진 새앙쥐 꼴이되어 터덜터덜 행복의 연금술가게로 돌아갔다.


흠뻑 젖은 펠릭스가 부엌문을 열자, 때마침 바람이 불어 비바람이 가게 안으로 불어들어왔다.


“아니, 꼴이 그게 뭐야?”


마침 부엌을 지나가던 올리버가 펠릭스를 보고 말했다. 펠릭스는 흠뻑 젖어버려 더이상은 물에 빠져도 물을 빨아들이지도 못할 꼴이 되어버린 로브를 벗어, 여전히 비가 오는 마당에 대고 힘껏 쥐어짠 다음, 불붙은 벽난로 옆에 걸었다.


“거기 놔두면 바닥에 물때가 생길텐데.”


“그렇다고 현관 옆에 놔두면 마르지도 않고 썩을걸요.”


“일리있는 말이야.”


올리버는 실없이 웃으며 다시 차를 팔팔 끓이기 시작했다.


“차좀 적당히 마셔요.” 일이 뜻대로 풀리지 않아, 공연히 펠릭스는 올리버를 향해 짜증을 냈다.


“내 맘이지.”


“다 재료잖아요.”


“언제부터 율무가 연금술 재료였어?”


“아니, 율무는 언제 산건데요?”


“언제 사기는. 내가 먹고 싶어서 며칠 전에 내 돈으로 샀다, 왜?”


올리버의 말에는 시비를 걸만한 구석이 전혀 없었기에, 펠릭스는 혼자 조용히 툴툴거리며 벽난로 앞에 의자를 끌어와 앉았다.




“실비아는요?”


불을 쬐어 몸도 마음도 조금 녹이고 나서야 그 생각이 났다는듯 펠릭스가 물었다.


“책 읽고 있지.”


“어디서요?”


“네 작업실.”


“네?” 펠릭스는 벌떡 일어나 놀란 눈으로 올리버를 보았다. “내 작업실이라고요? 왜요? 거긴 아무나 들이는 곳이 아니라고요!”


“뭐야. 후계자를 키우려던 생각이 아니었어?”


“후계자라니!” 펠릭스는 여전히 조각처럼 굳은채 소리쳤다. “후계자라고요!” 펠릭스는 아까보다 조금 줄어든 목소리로 말했다. “후계자라. 그러고보니, 슬슬 후계자를 하나 키울 때도 된 것 같아요.”


“꽤 총명해 보이던데. 그 아가씨.” 올리버는 티스푼으로 찻잔을 휘휘 저으며 말했다. “가진 것이라고는 귀족의 이름밖에 없으면서 뻗대기나 좋아하는 얼뜨기보단 훨씬 낫더군.”


“당신이 연금술을 알아요? 뭘, 봐도 알지도 못하면서.”


“알 만큼은 알지. 네가 너랑 같이 몇 년을 일했는데?”


후루룩 소리를 내며 차를 한 모금 마시는 올리버를 보고, 펠릭스는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아무튼, 실비아를 후계자로 삼을 수는 없어요.”


“당사자한테도 물어는 봐야지. 그녀가 너한테 후계자로 삼아달라고 말이나 꺼내겠어?”


“아니겠죠, 당연히. 저한테는 다행스럽게도.”


그러자 올리버는 다시 차를 한 모금, 이번에는 아무 소리도 내지 않고 마셨다.


“후계자 안 만들거야?”


“내가 알아서 해요.”


“스승님한테 한 소리 들은 것때문에 그래?"


펠릭스는 올리버를 노려보았다.


“그 이야기는 왜 꺼내요.”


“아니, 뭐, 아님말고. 그냥, 혹시나 해서 해본 말이야.”


“너무 함부로 말하지는 말아요.”


“알았어. 미안해. 너무 화내지 말라고. 너 그러다가 이마에 주름 져.”


“아니, 사람 다룰 줄도 모르면서. 또 어디 술집에서 이상한거 배워왔죠?”


펠릭스가 짜증을 내는데도 올리버는 껄껄 웃으며 다시 차를 홀짝였다.


“뭐, 그렇긴 하네.”


“내 참. 술꾼들이란 하여튼······”


“조용히좀 해요!”


닫힌 연금술사의 작업실 문을 뚫고 실비아의 목소리가 날아들었다.


“아니, 그러고보니 잊고있었네. 내 작업실!”


펠릭스는 이제서야 정신을 차리고 그의 작업실을 향해 오른 발을 절뚝이며 황급히 뛰쳐들어갔다. 올리버는 그런 펠릭스의 뒷모습을 착잡한 표정으로 지켜보며 말없이 찻잔을 슬쩍 기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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