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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유자 님의 서재입니다.

행복의 연금술 가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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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녹색유자
작품등록일 :
2021.10.08 16:53
최근연재일 :
2022.01.13 18:00
연재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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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10.16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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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쪽

18화

DUMMY

연금술사의 작업실은 이층짜리 나무 건물이었다. 그런 점에서, 그곳은 행복의 연금술 가게와 비슷해 보였다. 단 하나, 창문이 거의 없다는 것만 빼면 그랬다.


“조금 답답한 곳이네요.”


“원래 이게 정상이에요. 햇볕은 재료를 변질시키거든요. 우리집에 창문이 좀 많은 편인거죠.”


“왜요?”


“내가 햇볕을 좋아해서. 아무튼, 다들 잠깐 구경이라도 하고 있어요. 수상한건 만지지 말고.”


“어디 가요?”


대뜸 이층으로 향하는 계단으로 다가가는 펠릭스에게 실비아가 물었다.


“잠깐 찾아볼게 있어서.”


“아, 뭐. 그래요. 그럼 수고해요.”


펠릭스는 고개를 끄덕여주고 다시 계단위로 올라갔다.


“올리버. 그 알렉스라는 사람이요.”


펠릭스가 사라지자 실비아는 올리버에게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왜.”


“당신이 보기에는, 어떻던가요?”


올리버는 고개를 휙 돌려 실비아를 쳐다보았다.


“넌 어떻던데?”


“아, 그러니까······”


“난 별 생각 안 들었어.” 올리버는 그렇게 대답하고 작업실로 이어진 문을 슬쩍 열어보았다. 작업실 안은 실비아가 앞서 봤던 두 개의 작업실과 비슷해 보였다. 큰 솥, 수많은 장식장. 마치 연금술사의 작업실을 짓는 공식이라도 있는 것처럼.


“아, 솥이 작아보이는데.”


실비아는 까만 솥으로 다가가, 손으로 솥을 슬슬 쓰다듬어 보았다. 그러다 문 열리는 소리가 들리자 그녀는 솥에서 슬쩍 손을 떼고 시침을 뚝 뗐다.


“아, 나보다 먼저 작업실로 들어왔네. 어때요? 쓸만한가요?”


“내가 본다고 아냐.” 올리버가 웃으며 말했다.


“하긴, 그렇네요. 어디보자, 음. 꽤 괜찮아보여요.”


“이걸로요?” 실비아는 솥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 솥 하나로, 이 백 명이 먹을 약을 만들 수 있어요?”


“네. 왜요?”


“아니, 그러니까. 당신 저한테 보여준 약은, 그렇게 물을 잔뜩 넣고 끓였는데도 한 병 겨우 나왔잖아요.”


“그건 죽음의 약이 특별해서 그런거고요.”


“메를린네 집에서 제가 사랑의 묘약을 만들었을 때도······”


“그건 당신이 제대로 안 봐서 그런거고요. 당연히 한 병 보다는 약이 많이 나오죠. 남은 약은 메를린이 당신모르게 알아서 잘 처리했을걸요. 한번 곰곰이 생각해봐요.”


실비아는 그 때 메를린이 남은 약을 어떻게 했는지 떠올리려 해 보았지만, 벌써 그녀의 기억은 영 희뿌예진 뒤였다.


“뭐, 그래서, 가능해요?”


“물론이죠! 농도가 짙은 원액을 만들고, 그걸 물로 희석시키는 방법이면 여기에 오 백 명이 먹을 만큼의 원액을 만들 수도 있어요.” 펠릭스는 자신만만하게 대답했다.


“다행이네요. 그러면. 그래서, 지금부터 만들건가요?”


“물론이죠!” 펠릭스는 팔을 걷어부치며 솥으로 뚜벅뚜벅 걸어갔다.


“도와드려요?”


“아뇨. 그냥 오늘은 쉬어요 실비아. 당신 발, 아직 팅팅 부은 그대로 아닌가요?”


“아, 그러면. 저······”


“올리버. 가서 실비아 잘 자리좀 만들어 줘요. 만드는 김에 앞으로는 어떻게 하는지도 가르쳐주고. 그리고 방 구석에 거미가 숨어있으면 좀 쫓아내주고요.”


“그런 말 하지 말아요! 괜히 불길하게······”


“알았어 원. 자, 가자고 실비아.”


올리버가 툴툴대는 실비아를 데리고 작업실을 빠져나가자마자, 펠릭스는 잽싸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밤이 깊자 낯선 연금술사의 오두막 안에는 긴장된 공기가 차오르기 시작했다. 펠릭스는 작업실 솥 앞에 등받이없는 조그만 의자를 질질 끌고와 그 위에 앉아 있었다. 시간이 계속 흐르며 이따금 거센 돌풍이 창 밖에서 불어닥쳐 음산한 소리를 그의 귓가로 불어넣었다.


얼마쯤 시간이 흐른 뒤, 등 뒤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펠릭스가 자리에서 일어나 기름 등불의 갓을 벗기고 문으로 다가가 문을 열자, 창백한 기운의 아치볼트 자작이 문 밖에 서 있었다.


“내 부탁을 들어줘서 고마워요 자작님.”


펠릭스는 싱긋 웃으며 그에게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 그러자 아치볼트 자작은 가볍게 헛기침을 하며 작업실로 들어왔다.


자작은 작업실 테이블 위에 일렬로 늘어서 있는, 파르스름한 액으로 가득찬 유리병 다섯 개를 슬쩍 훑어보고, 그 유리병들 옆에 놓여있는 황색 액체의 조그만 병도 슬쩍 돌아보았다.


“자, 이쪽이 자작님께서 부탁하신 약입니다. 아주 농도가 짙은 원액이기 때문에, 이걸 한 병 그대로 들이켰다가는, 그 즉시 심장이 펑! 하고 터져버릴 겁니다.”


펠릭스가 파란 병들을 가리키자 자작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반드시 물로 희석해서 먹도록 하십시오. 두 방울에 물 한 잔입니다. 한 방울씩 따로 덜기 귀찮으시다면, 약 한 병당 물 두 양동이로 쓰셔도 됩니다.”


자작은 다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그 이야기를 하려고 날 부른 것은 아닐테고.”


“물론입니다, 자작님. 여기서 일하는 노동자들에 대해 조금 흥미가 생겨서 말입니다. 어떻게, 잠시 제게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영광을 주시겠습니까?”


자작은 잠시 불편하다는듯 얼굴을 조금찡그리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감사합니다. 그럼,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죠. 여기서 일하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입니까?”


“우리 가문에서 일하는 하인 백 명. 그리고 우리 가문에서 일하지 않는 평범한 사람들 백 명. 지원자들중 쓸만한 사람들을 뽑아서 일을 시키고 있다.


“좋군요. 네. 감사합니다. 그리고 꽤 괜찮은 조건으로 다들 일을 하고 있던데요. 솔직히, 아직 왕국에는 노예제도의 그림자가 남아있다고 보는데, 자작님은 굉장히 노동자들 대우가 좋으시던데요?”


“예전에.” 자작은 입을 열고 무언가 말하려다 침을 꿀꺽 삼켰다. “예전에, 한창 왕국이 전란에 휩싸여 있을때. 나의 할아버지는 어린 아버지를 데리고 이곳 영지를 포기하고 도망길에 오르려 하셨다. 그러나, 할아버지의 하인들, 이 땅에서 살아온 평범한 백성들, 노예들, 그 모든 사람들이 단결하여 외적의 침입에 거세게 저항하여 이 땅을 지켜냈다. 그 뒤로, 나의 할아버지와 아버지는 평범한 사람들, 우리들을 위해 기꺼이 궂은 일을 도맡아 해주는 사람들에게 감사한 마음으로 대접을 해 주었다. 나또한, 아버지에게 배운대로 할 뿐이다.”


“오, 멋지네요. 아주 감동적인 이야기입니다. 그러니, 조상님이 받은 은혜를 계속해서 갚고 있다는 뜻이군요.”


“나는 사냥과 결투를 할 때가 아니면, 손에 채찍을 쥐지 않는다.”


아치볼트 자작은 그것을 아주 자랑스럽게 말했고, 펠릭스 역시 그 말의 뜻을 이해하고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존경할만한 말입니다. 안 그래도, 얼마 전에 저는 시답잖은 이유로 하인에게 매질을 하는 귀족을 보았거든요. 아무튼, 그게 아니지. 자, 자작님. 혹시, 알렉스에 대해 알고 있습니까? 여기서 일하는 일꾼입니다.”


“안다. 일 한지 올해로 11년째다.”


“아주 상세히 기억하시는군요.”


펠릭스의 말에, 갑자기 자작은 헛기침을 하며 위엄이 서린 목소리로 말하기 시작했다.


“이 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만드는 사과는, 우리 가문의 이름이 붙어 온 왕국의 시장으로, 경매장으로 팔린다. 가문의 이름이 달린 일을 하는 사람들을, 어찌 감히 허투루 대할 수 있겠는가?”


“멋진 연설입니다, 자작님. 그래서, 다시 본론으로 돌아오자면, 다른 사람들은 보통 몇 년 정도 일합니까?”


“젊은 사람들은 길어봤자 3년 정도 일하고 떠난다.”


“왜죠?”


“당연히.” 자작은 이상한걸 묻는다는 투로 대답했다. “그들이 원하는 만큼 돈을 벌었으니까.”


“원하는 만큼이라 함은?”


“빵집 소년은 가게를 차릴 만큼 돈을 벌고 떠났다. 화가가 되고 싶었던 소년은 유명 화가의 과외비를 벌고 떠났다. 목수의 아들, 상인의 손자, 하릴없이 거리를 쏘다니던 불량배나 몰락귀족의 자제. 그들 모두 원하는 만큼 돈을 벌고 나서 미련없이 이곳을 떠났다. 여기서 십 년 이상 일 하는건 꿈도 뭣도 더이상 남지않은 닳은 사람들 뿐이다.”


“그런데, 알렉스는 아직 젊어 보이는데도 그렇게 오래 일을 하고 있군요.”


“불쌍한 놈이지. 이해는 가지만, 가끔 한심해 보이는게 사실이다.”


“그 이유를 아시나요?”


자작은 잠시 그 서늘한 눈으로 펠릭스를 쳐다보았다.


“그의 명예에 관련된 일이다. 그의 동의 없이 말할 수는 없다.”


“아쉽군요. 그 이야기를 들었더라면 좋겠지만, 하지만 이정도로도 충분하니까요. 솔직히 말하자면, 자작님. 저기 저 약 보이십니까?”


펠릭스는 이번에는 황색 약병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러자 자작은 고개를 끄덕였다.


“저건 알렉스를 위한 약입니다.”


“진짜 괴력을 주는 약인가?”


“아니오.” 펠릭스는 웃으며 대답했다. “그에게 필요한건 괴력이 아닙니다. 혁명은 물론 더더욱 아니고요.”


“잘 아는군.”


“저 약은, 아주 기분좋은 꿈을 꾸도록 도와주는 약입니다. 그래서, 혹시 자작님께서 알렉스가 원하는 꿈이 뭔지 슬쩍 알려주신다면, 제가 그의 텅 빈 마음 속에 다시한번 꿈을 불어넣는 마술을 선보일 수 있을것 같아서요.”


“괜찮은 생각이지만.” 자작은 잠시 입을 다물었다가 대답했다. “여전히, 그의 명예가 달린 일이므로, 나는 네게 말 할수 없다.”


“아닙니다. 충분히 도움이 되었습니다. 그럼, 계약의 마무리는 내일 아침에 하도록 할까요?”


“그래. 아침에 찾아와라.”


“몇 시에요?”


“나는 6시가 되면 잠에서 깬다. 그 뒤로 편한 때에 찾아와라. 하인들과 문지기들에게 말을 해 둘 테니.”


“감사합니다. 성실하시군요. 아, 그런데, 자작님께 하나만 여쭈겠습니다. 오늘, 우리가 처음 만났을 때, 어째서 제 동료들은 마차에 태우지 않으려고 하셨던겁니까?”


아치볼트 자작은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대답했다.


“그 때, 내 뒤에 마차 한 대가 더 따라오고 있었다. 나는 너와 사업이야기를 마차 안에서 조용하게 나누고 싶었고.”


“아주 합리적인 이유시군요. 오해해서 죄송합니다. 이렇게나 타의 모범이 되시는 자작인줄 몰라뵙다니. 존경스럽습니다.”


아치볼트 자작은 펠릭스가 마지막으로 한 말을 못 들은척하며 자리에서 일어나, 말없이 몸을 휙 돌려서 작업실 문으로 걸어가다 말고, 문득 멈춰서 조용히 말했다.


“별 말씀을, 펠릭스 웨일.”



음산한 돌풍이 더욱 거세어져 유령의 울음소리처럼 들려올 즈음, 의자 위에서 꾸벅꾸벅 졸던 펠릭스는 무언가를 느끼고 눈을 반짝 떴다. 무언가가 그에게 조용히 다가오고 있었다. 의도적으로 발소리를 죽이기 위해 그는 한 걸음을 떼는데도 몇 초를 쓰곤 했다. 올리버의 것이 아닌 인기척은 마침내, 작업실의 방문 바로 앞까지 다가와서 멈춰섰다. 그리고, 그것은 그 자리에 가만히 서서 다시 몇 십 초를 그렇게 있었다.


“알렉스. 들어와요. 여기 아치볼트 자작은 없으니까.”


소리없이 열린 문 너머로, 알렉스의 위험한 눈동자가 위태롭게 흔들리며 빛났다.


“들어와요. 뭘 그렇게 겁내고 있어요?”


“내 주인, 아니, 자작에게 일러바친게 아니었나?”


“아니, 그걸 아직도 마음에 품고 있었어요? 내가 뭐가 아쉬워서 그러겠어요. 자, 아무데나 편한데 앉아요.”


알렉스는 머뭇거리며 작업실 안을 둘러보다가 그냥 가만히 서있기로 작정한듯했다.


“그래서, 나한테 줄 물건이라는게 대체 뭐야?”


펠릭스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 바람에, 알렉스는 반사적으로 무언가를 경계하며 몸을 뒤로 슬쩍 뺐다. 그러나 펠릭스는 알렉스의 그런 반응에 별로 신경쓰지 않고 황색 약병을 집어들어 알렉스에게 내밀었다.


“여기요.”


“이게, 그 괴력을 주는 약인가?”


알렉스는 미심쩍은 표정으로 황색 약병을 천천히 살펴보았다.


“그래요. 당신에게 어마어마한 괴력을 불어넣어주죠. 어떤 고난과 역경도 이겨낼 수 있는 힘을.”


“그 말. 사실이지?”


“제가 당신에게 뭐가 아쉬워서 거짓말을 하나요?”


펠릭스가 넉살좋게 웃자, 그제서야 알렉스는 약병을 받아들었다.


“이제 볼일은 끝인가?”


“아, 아니오. 약을 챙겼으면, 약을 복용하는 방법을 들어야죠. 자, 내가 지금부터 하는 말 잘 들어요 알렉스.”


알렉스는 침을 꿀꺽 삼키고 약병을 쥔 손에 힘을 주어, 약병을 꽉 쥐며 고개를 끄덕였다.


“당신 숙소로 돌아가면, 곧바로 이 약을 한 입에 털어넣어요. 그리고, 침대에 누워서 당신이 가장 행복했을 때의 기억을 떠올려요.”


“뭐? 괴력을 주는 약에, 그런 과정이 필요해?”


“내 말 믿어요. 나는 아주 뛰어난 연금술사니까. 약효를 최대한으로 끌어내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작업이에요. 잘 들어요. 당신이 가장 즐거웠을 때, 당신이 가장 행복했을 때, 당신이 살아있다는 것을 감사하게 느꼈을 때. 그 때를 가만히 떠올려 보는거에요.”


알렉스는 고개를 끄덕이다, 도저히 못하겠다는듯 투정을 부렸다.


“아니, 왜 그렇게 이상한 짓을 해야 하는건데?”


“이상한 짓이라니. 약효를 끌어내기 위해서라니까요. 아니면, 알렉스. 당신에게는 괴력이 별로 필요 없나요?”


“아니! 당장 필요해, 당장, 아주 많이!”


“그러면 내가 시키는대로 해요. 잘 기억하고 있죠? 방에 들어가자마자 약을 한 입에 털어넣고, 곧장 침대에 누워서 천천히 생각하는 거예요. 가장 행복했을 때를, 미소를 참을수 없을 만큼, 살아있음에 무한하게 감사했을 그 때를, 세상 그 누구보다 당당하게 내가 지금 행복하다고 말 할 수 있었던 그 때를. 그리고 그 때를 떠올리며 스스로에게 물어봐요.”


“뭘?”


“지금 그 때처럼 행복해 지려면, 그 약의 힘을 빌려 무엇을 해야 하는지.”


“별 이상한걸 다 묻는군.”


알렉스는 미심쩍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렇지만, 네 말대로 하면, 그러면 진짜 괴력을 얻는거지?”


“물론이죠. 하지만, 의심하면 안 돼요. 당신이 내 말을 의심해서 이 작업을 제대로 하지 않는다면, 당신이 원하는 만큼의 힘이 나지 않을걸요. 기껏해야 한 손으로 사과 한 바구니 들던 것을, 두 바구니 드는 정도로 힘이 세지기나 할까.”


“알겠어. 그럼, 네 말. 믿어도 되는거지?”


“당연하죠. 내가 설마 당신을 속이겠어요?”


알렉스는 여전히 의심스러운 시선으로 펠릭스를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그러자 펠릭스도 지지않고 자신만만한 웃음으로 알렉스의 두 눈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결국, 알렉스는 한숨을 쉬며 시선을 피했다.


“알겠어. 잘 모르겠지만, 네 말대로 해 볼게.”


“꼭이에요! 방으로 들어가자마자 한 입에 털어넣고······”


“알았으니까, 그만 해! 한 입에 털어넣고, 곧바로 잠자리에 누워서 행복한 생각을 하라는거잖아. 가장 행복했을 때, 가장······”


알렉스는 말을 하다 말고 우두커니 멈춰 섰다.


“아, 그래. 이제 나는 그만 가 보겠어. 아무튼, 약 고마워 연금술사.”


“뭘요. 제 일인걸. 수고해요 알렉스. 부디 당신의 앞날에 행운이 있기를.”


그렇게 알렉스도 작업실을 빠져나간 뒤에야 펠릭스는 기지개를 쭉 켜며 하품을 했다.



아침이 되자, 침대에서 잠들었던 실비아는 온 몸이 개운하여 자기도 모르게 입에서 웃음이 났다. 상쾌한 아침을 맞이한 그녀는 곧바로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좋은아침!”


조금 피곤해 보이는 펠릭스를 향해 실비아는 웃으며 인사를 건넸다.


“발은 괜찮아요?”


“네. 어젯밤에 계속 주물렀거든요.”


“잘도 그랬네요. 언제는 부끄럽다더니.”


“아, 아녜요!” 뒤늦게 얼굴을 붉히는 실비아를 보고 펠릭스는 피식 웃었다.


“그럼 슬슬 아치볼트한테 가 보자고요.”


“벌써요?”


“그래요. 일찍 갈수록 좋죠. 우리도 빨리 여기서 볼일을 끝마치고, 아침 식사라도 한 다음 길을 떠나는게 좋잖아요?”


“아, 하긴, 그렇네요. 그런데 그 아치볼트 자작이 지금 깨어나 있을까요?”


“가 보면 알겠죠. 아, 올리버. 좋은아침.”


“좋기는 개뿔.” 올리버는 크게 하품을 하며 퉁명스레 대답했다.


“하긴. 자, 자. 다들 거기 그만 멀뚱히 서 있고, 빨리 준비해서 가자고요.”


“알았어요. 알았으니까 그만 좀 재촉해요. 뭐 기다리는거라도 있어요?”


“아뇨. 왜요?”


실비아는 펠릭스의 얼굴을 잠시 빤히 쳐다보며 말했다.


“꼭 선물 기다리는 애 같아서요.”


“애라고? 아니, 아, 뭐 비슷한가? 어쩌면······”


실비아는 그렇게 혼자 갑자기 생각에 잠긴 펠릭스를 내버려두고 다시 여행 채비를 갖추기 시작했다.



세 사람은 작업실 앞에서 대기하던 마차를 타고 아치볼트 자작의 성으로 들어와, 이전의 그 응접실로 돌아왔다.


“자작님. 그럼 정산을 할까요.”


펠릭스는 자작에게 연금술 약의 재료와 제작법이 담긴 두루마리를 건넸고, 자작은 그것을 천천히 읽어보았다.


“믿어도 되겠지?”


“제 도장을 찍었잖아요?”


“하긴. 그럼.”


자작이 하인에게 눈짓을 보내자, 하인은 조그마한 금박 상자를 펠릭스의 앞에 내려놓았다.


“이건?”


자작이 눈짓을 보내자 펠릭스는 상자를 살짝 열어보았다. 그 안에는, 금화 열 닢이 가지런히 한 줄로 묶인채 들어있었다.


“꽤 괜찮은 보수로군요. 헌데, 저한테 돈을 이렇게 써버리면 자작님한테 남는게 있습니까?”


“많다. 내게 남는 것은.”


“그렇군요. 그럼 감사히 받겠습니다. 아, 영수증을 써 주시죠?”


“안에 동봉되어있다.”


“철두철미 하시군요. 그럼, 연금술사는 이만 물러가보겠습니다. 아, 부작용에 대한 것, 잊지 마십시오.”


“알겠다.”


“좋습니다. 아주 듬직하군요. 그럼 이제 우리들은 진짜로 물러나겠습니다.”


“마차.”


“네?”


자작이 말하자, 세 사람은 어정쩡하게 서서 자작을 돌아보았다.


“마차를 빌려주겠다. 어디까지 가나?”


“아, 뭐 그러실것 까지야······”


“타라.”


펠릭스는 실비아와 올리버의 눈치를 보며 자작에게 꾸벅 머리를 숙였다.


“감사드립니다. 그럼, 이제 정말 그만 물러나 보겠습니다.”




세 사람은 조금 흔들리는 마차를 타고, 매끄러운 도로 위를 편하게 달려갔다. 다만 올리버는 마차에 거의 타자마자 기세좋게 코를 골며 꾸벅꾸벅 졸기 시작했다.


“올리버가 조는 모습, 처음봐요.”


“뭐, 그럴만 하긴 했죠.” 펠릭스는 차창을 열고 마차 밖을 내다보며 중얼거렸다.


“무슨 일인데요?”


“밤을 샜거든요.”


“어머, 왜요?”


“당신은 몰라도 돼요.”


“아니, 자꾸 나만 따돌리기에요? 나도 당신 여행 동료인데. 좀 가르쳐주고 그래요.”


그러나 펠릭스는 결국 실비아에게 대답하지 않고 웃음으로 얼버무려버렸다.


“그나저나, 의외네요. 아치볼트 자작님은 굉장히 차가운 눈을 가진것 치고는, 따뜻하신 분이네요.”


“그러게요.” 이번에도 펠릭스는 구태여 구구절절 이야기를 하지 않고 그저 창 밖을 내다보며 조용히 웃기만 했다.


“그런데요. 그 알렉스라는 사람.” 이번에는 조금 걱정스러운투로 실비아가 말문을 텄다. “어떻게 됐을까요?”


“잘 됐겠죠.”


“네? 어떻게 알아요 그걸?”


펠릭스는 그제서야 고개를 돌려 실비아를 바라보며 대답했다.


“내가 꿈에서 깨어나는 꿈을 꾸는 약을 줬거든요.”


“네? 그게 무슨 소리에요?”


“그러니까. 알렉스가 꾸고 있던 헛된 꿈에서 깨어날 수 있도록, 그에게 진짜 꿈을 꾸는 약을 줬어요.”


“그게 뭔데요?”


“잠 잘오는 수면 유도제에 꿈버섯 말린것을 조금 섞고, 꿈버섯의 독을 중화할 만한 다른 약초를 살짝 섞었어요. 그리고 그가 잠들기 전에 암시를 걸어주었죠. 가장 행복한 순간을 떠올리라고.”


“그래서요?”


“그래서는 무슨. 그걸로 잘 됐을거에요 알렉스는. 애초에, 그는 그 자유 사상이니 뭐니 하는 것에 제대로 된 관심조차 없었다고요. 실비아. 당신도 학식있는 귀족의 자제니만큼 그 책이 어떤 취급 받는지는 알잖아요?”


“그렇죠. 논란이 많은 저자의, 검증되지 않은 독선적이고 무책임한 헛소리가 가득 담긴 선동적인 불온서적이죠. 자유 사상을 주장하는 다른 학자들 사이에서도 이단취급 받는 책이에요.”


“그래요. 알렉스가 바보 멍청이도 아니고, 왜 그딴 불쏘시개만도 못한걸 읽겠어요? 나름의 이유가 있었겠죠. 그딴 것에라도 매달리지 않고서는, 도저히 살아갈 수 없을 만큼 고통스러운 이유가. 내가 모르는 그런 어떤 이유가.”


“그게 뭔데요?”


펠릭스는 좁은 마차에서 두 발을 쭉 뻗으며 말했다.


“거기까진 나도 몰라요. 안 가르쳐줘서. 근데, 내가 몰라도 별 상관은 없어요. 당사자는 그 이유를 잘 알고 있겠죠. 그러니, 그가 약을 먹고, 한번 제대로 된 꿈을 꾸고 나면, 지금 자기 꼴이 어떤지 다시 돌아보겠지요. 대체 왜 그딴 책에 매달려 있는건지. 자기가 진짜 원하던게 무엇인지. 그러면, 그걸로 연금술사가 해 줄 일은 다 끝난 거예요.”


“그래요? 그런데, 조금 의외네요 펠릭스.”


“뭐가요?”


“당신, 전에 카이저랑 만났을 때는, 연민이나 동정심은 조금도 없어보였는데. 알렉스는 이번 의뢰랑은 완전히 무관한 사람인데도, 그에게 굳이 약을 만들어 준거잖아요?”


“아, 뭐. 따지고 보면 그렇네? 이런. 당장 돌아가서 추가 요금을 청구해야······”


“펠릭스!”


“어, 뭐야. 뭐야?”


갑자기 실비아가 소리를 지른 바람에, 깜짝 잠에서 깬 올리버는 멍한 눈으로 주변을 황급히 두리번거렸다.


“아무것도 아니에요. 도로 자요 올리버.”


“아, 뭐야. 설마 둘이 또 싸워?”


“아니에요!”


“아니면 목소리좀 낮춰줘. 어젯밤에 밤을 지샜더니. 어휴, 내 몸도 옛날같지 않군.”


올리버는 눈을 감더니 도로 금새 꾸벅꾸벅 졸기 시작했다. 펠릭스와 실비아도 잠시 서로를 쳐다보다가, 서로 반대쪽의 차창 밖으로 시선을 옮겼다. 마차 밖 멀리에서 천천히 움직이는 숲과 들판을 가만히 바라보며, 실비아는 가슴속에 무언가가 살짝 꿈틀거리는 감각을 느꼈다.




숙소의 침대에서 벌떡 일어난 알렉스는 처음에는 당황했고, 그 다음에는 어안이 벙벙하여 멍한 눈으로 주위를 둘러보다가, 마침내 방금 꾸었던 꿈을 떠올리며 조금은 고통스럽게 두 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렸다. 그는 잠시 소리없이 흐느끼다 기상 시간을 알리는 종소리를 듣고 정신이 번쩍 들어 자리에서 일어났다.


잠에서 깬 알렉스가 간 곳은 사과 농장이 아니라, 무려 아치볼트 자작의 성이었다. 입구의 경비병들은 그를 안으로 들여보내주지 않았지만, 그의 말은 안으로 전해주었다. 곧, 하인 하나가 쪼르르 걸어나와 경비병의 귀에대고 무언가를 속삭이자, 입구를 막아세웠던 그들의 창날이 양 옆으로 치워져 알렉스에게 길을 터 주었다.


하인의 안내를 받아 알렉스는 조그마한 응접실 안으로 들어갔다. 오 분도 되지않아, 창백한 인상의 아치볼트 자작이 조용히 응접실로 들어왔다.


“자작님.”


알렉스는 자작에게 허리를 숙여 예를 표했다.


“그동안 함께 일 할 수 있는 영광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자작은 아까와 똑같은 표정으로 그에게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저는, 이만 떠나겠습니다. 이곳에 너무 오래 머물러 있었습니다.”


“잘 됐군.”


“네?”


“아니다. 그동안 수고했다.”


자작이 눈짓을 보내자, 옆에 서있던 하인이 그에게 조그마한 천주머니 하나를 주었다.


“이건······”


“이번 달치 월급이다.”


“자작님!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자작님?”


그러나 알렉스가 도로 고개를 들어올렸을 때, 이미 아치볼트 자작은 어디론가 가버리고 없었다.


아치볼트 자작의 성에서 나온 알렉스는 그가 십 년 넘게 일해온 브리즈힐의 언덕의 사과 과수원을 천천히 돌아보았다. 그곳에서는 여전히 그의 옛 동료들이 서로 잡담을 나누고, 때로 장난을 쳐 가면서 사과를 따고 있었다. 그는 잠시 미소를 머금고 그 모습을 바라보다가, 이내 고개를 내저으며 정면을 향해, 언덕 아래의 브리즈힐의 마을을 쳐다보았다. 알렉스는 잠시 멈춰서서 크게 심호흡을 한 다음, 돈주머니를 손에들고 브리즈힐의 평범한 사람들이 활기차게 살아가는 마을을 향해 힘차게 발을 내딛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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