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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N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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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baekmirr
그림/삽화
JNH
작품등록일 :
2022.07.08 02:27
최근연재일 :
2022.09.04 09:00
연재수 :
24 회
조회수 :
3,324
추천수 :
21
글자수 :
86,559

작성
22.07.28 06:39
조회
149
추천
1
글자
9쪽

메소드 연기

DUMMY

침대에 걸터앉아 초점 없는 눈으로 허공을 응시하던 신평은 방바닥에서 널브러져 있는 와인병을 집어 들었다.


편의점에서 샀던 와인이 조금 남아 있다.


남아있는 와인을 한 번에 다 들이킨 그는 빈 병을 바닥에 내려놓고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싸쥐었다.


돈 몇 만원 때문에 사람이 죽었다.


분명히 공갈 협박을 했을 것이다.


무슨 협박을 어떻게 했는지 알 수 없지만 죽음을 생각할 만큼 그렇게 두려웠을까.


젊은 여자이니 아주 더러운 방식으로 겁을 줬는지도 모른다.


그들은 오랜 경험으로 축척된 노하우가 있을 것이다.


시끄럽다고 방으로 찾아와 화를 내던 그녀의 얼굴이 생생하게 떠오르자 신평은 참담한 기분이 들었다


자신은 오늘 나이트에서 웨이터에게 오만원을 팁으로 쥐어주었다.


그녀에게 그 오만 원이 있었다면 죽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화장실에 들어가 찬물을 틀어놓고 세면대에 얼굴을 처박은 그는 한동안 움직이지 않았다.


겨우 8천원을 도와주고 뿌듯한 기분이 들었던 자신이 부끄러워 차마 얼굴을 들 수 없었다.


그때 갑자기 방안에서 문자메시지 알림음이 울렸다.


그는 세면대에서 머리를 들어 거울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또 아침 9시.


그는 지금 이 순간에도 심장이 두근거리고 있는 자신이 벌레만도 못한 인간이라고 느끼며 얼굴의 물기도 닦지 않은 채 천천히 방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알림

입금 12,000,000원 굿네이버스

잔액 12,005,520원

오전 9:00


----------------------------------------------------


그날 오후 1시.


벤츠 승용차안은 무거운 침묵으로 네 사람이 서로의 숨소리까지 들릴 정도이다.


오랜 정적을 깨고 신평이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러니까 경찰서에 가면 당신들 이야기는 하지 말아 달라?"


"사장님 그게 아이고, 저를 봤다는 이야기만 하지 말아 주이소. 그거면 됩니더. 저 자식 이야기는 해도 됩니다. CCTV 에도 저 새끼는 이미 찍힜을끼고."


"이거 뭐...협박입니까?"


"아이고 아입니다. 저희가 우째 사장님을 협박합니까? 이렇게 부탁드리고 있지 않습니까?"



지금까지의 이 대머리의 말을 종합하면 자신이 갚아야 할 돈 260 만원을 없던 것으로 하는 대신에 경찰서에서 참고인 조사를 받을 때 거짓 진술을 해 달라는 것이다.


순간 신평은 이 대머리가 수배중이거나 집행유예 기간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사법고시에 5번 떨어진 경험이 이런 상황에서 도움이 되고 있다.


그가 만약 지금 집행유예 기간이라면 자신과 무조건 타협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만약 다른 죄가 또 있어서 줄줄이 엮인다면 이 대머리의 인생은 이제 끝이라고 봐야 한다.


신평은 옆에 앉아 있는 대머리의 얼굴을 쓱 쳐다보았다.


자신보다 나이가 어린 것 같지만 생긴 건 영화에서나 볼 수 있을법한 전형적인 조폭이다.


몸도 거구인데다 팔뚝엔 화려한 문신까지 있어 이 놈이 작정하고 협박을 하면 그 누구라도 공포를 느낄 것이다.


하지만 이런 쓰레기는 강하게 나가야 머리를 숙인다.


'나도 너처럼 막가는 인생이고, 더 이상 인생에 미련없다'는 인상을 심어 주어야 한다.


밤새도록 잠을 못자서 몽롱한 상태인데다 아침에 와인까지 마셔서 그런지 지금의 정신 상태로는 충분히 메소드 연기가 나올 수 있을 것 같다.



"나이가 어떻게 됩니까? 형씨."



갑자기 신평이 나이를 묻자 대머리는 흠칫 놀라서 그를 쳐다봤다.



"제 나이 말입니꺼?


"예."


"이제 서른인데예..."


"나보다 동생인데 말 좀 놔도 되겠습니까?"


"예? 예 그라믄요. 말 노이소. 사장님."



대머리는 신평의 태도가 갑자기 차가워지자 당황하여 괜히 앞자리 조수석에 앉은 젊은 안경의 뒤통수를 후려쳤다.



"야, 이 새끼야. 에어컨 좀 나차라. 얼어죽긋다."



자신을 의식한 행동이라는 것을 알아 챈 신평은 모른 척하고 다음 단계로 돌입했다.



"우선 나한테 사장이라고 말하지 마."


"예?"


"니 눈에는 내가 사장으로 보이냐?"


"아, 예. 그..그라지예. 그럼 뭐라고 불러야..."


"니가 나를 부를 일이 있겠냐만은...정 부르고 싶으면 그냥 아저씨라고 해."


"예? 그..그럼 그라지예."


"너 결혼은 했냐?"


"아니예. 아직..."


"난 이혼하고 혼자 살고 있는데 저번주 토요일에 동작대교에 죽으러 갔다가 한강물이 더러워서 다시 돌아왔어."


"예?"



대머리는 갑자기 신평이 이상한 말을 늘어놓자 딱히 해 줄 말이 없어 멀뚱멀뚱 그냥 듣기만 했다.



"너 혹시 바카라 라고 아냐?


"바카라예? 카지노예?"


"그래. 내가 몇 년 전에 친구따라 카지노에 놀러갔다가 바카라에 홀딱 빠져서 일 년 만에 전 재산을 다 날렸어."


"예?"


"응. 딱 일 년 전이네. 나중에 알고 봤더니 바카라는 '악마가 만든 게임'이라고 하더만. 그 바닥에서."


"아...아, 그래예?"


"그래서 그 이후에 내가 마음을 다잡고 무슨 사업을 좀 하고 있는데..."


"사업을 예?"



신평은 순간 일수 200만 원을 땡겨쓰는 자신이 사업과는 안어울린다고 생각했지만 이미 뱉은 말을 주워 담을 수 없다.



"자세한 건 말해봤자 지루해지고..."


"......"


"단도직입적으로 말할게. 현금 3억만 빌리자. 딱 하루만."


"예?"



대머리는 순간 화가 치밀어 올라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자만 이 거지같은 놈은 자신이 컨트롤 할 수 있는 놈이 아니다.


3억을 내놓으라는 이야기다.


신평은 그가 호락호락한 반응을 보이지 않자 급하게 말을 이었다.



"거저 달라는 게 아니야. 빌려 달라는 거야."


"아니 사장...아니 아저씨. 그게 무슨 소립니꺼? 제가 무슨 돈이 있다고..."


"사채 놀이하면서 3억도 없나?"


"저는 쩐주가 아니라예. 그라고..."


"저녁 6시에 빌려서 다음날 아침 10시에 줄게."


"아니, 제가..."


"그럼 1억. 내가 못 갚으면 우리 부모님이 갚아 줄거야. 각서에도 그렇게 쓰자."


"아니 와 이라십니까? 행님...아니 아저씨예.


"내가 차용증에 인감도장 찍고 공증 각서까지 써 줄게. 하루 이자는 5%."


"아니예. 그게..."



대머리가 난감한 표정을 짓자 신평은 그에게 생각할 시간을 주면 안되겠다는 생각으로 쐐기를 박았다.



"안돼? 그럼 나 먼저 가 볼게."



신평이 갑자기 차문을 열자 대머리는 놀라며 황급히 그의 팔을 붙잡았다.



"잠...잠시만예. 행님...아니 아저씨."


"왜?"


"저는 진짜 돈이 없십니더. 저도 월급 받고 살아예."


"그래 맞어. 다들 먹고 살기 힘들지."



신평이 그의 손을 뿌리치고 차에서 내려 차문을 닫아버리자 대머리는 다급하게 차문을 다시 열었다.



"해...행님! 잠시만예."



차에서 내려 몇 걸음 걸어가던 신평은 못 들은 척하고 계속 걸어갔다.



"행님! 잠시만예. 그럼 제가 사무실에다 한 번 부탁 해 볼께예."



신평은 걸음을 멈추고 몸을 돌렸다.


다시 차 쪽으로 천천히 걸어온 신평은 뒷좌석에 앉아 있는 대머리를 내려다봤다.



"5%면 오백이야. 하루에 오백. 사장한테 어서 말 해 봐."


"만약에 다음날 못 받으면 저는 그날로 죽습니더."


"못 주면 내가 죽어. 그리고 넌 우리 부모님한테 받으면 되잖아."


"그럼...일단 이리 좀 들어와 보이소. 자꾸 갈라꼬 하지 말고."


"말 나온 김에 지금 당장 전화해 봐. 밖에서 담배 좀 피고 있을게."



주머니에서 전자담배를 꺼낸 신평은 대머리가 어디론가 전화를 하자 고개를 들어 하늘을 쳐다보았다.


드디어 1억이 만들어지는 순간이다.



그날 밤.


택시에서 내린 신평은 장례식장 현관 입구에 잠시 멈춰 전광판을 올려다보았다.


분향소 위치를 확인한 그는 건물 안쪽으로 걸어들어가 엘리베이터에 올라탔다.


오랜만에 정장을 입어 어색하다. 날씨도 너무 더워 온몸이 벌써 땀에 젖었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린 그는 잠시 주위를 두리번거리다가 엘리베이터 바로 좌측 분향소로 천천히 걸어 들어갔다.


조문객이 거의 없어 썰렁한 분위기이다.


신발을 벗고 올라온 그는 부의함에 흰 봉투를 넣고 영정사진을 한참동안 바라보더니 예를 갖춰 절을 했다.


그가 절을 마치자 눈이 퉁퉁 부어있는 한 여인이 옆에서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다 말을 걸어왔다.



"저기...누구신지..."



그녀의 가족은 어머니 단 한 명이다.



"이웃입니다."


"네?"


"같은 건물에 사는 사람입니다."


"아...네."


"정말 죄송합니다. 면목이 없습니다."


"예?"



영문을 모르는 그녀가 무슨 말을 하려하자 신평은 말없이 고개를 숙이더니 분향소를 빠져나왔다.


자신에게 단 돈 8천 원을 빌려 가서 1억을 갚아 준 아래층의 그녀.


그가 부의함에 넣은 흰 봉투에는 100만원짜리 수표 10장이 들어 있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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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0×2×2×2×... (최종회) 22.09.04 110 2 9쪽
23 신한은행 VVIP 22.09.01 90 0 9쪽
22 여자의 질투 22.08.30 86 1 7쪽
21 보이지 않는 손 22.08.25 88 0 8쪽
20 암운 22.08.23 92 0 8쪽
19 연애 세포 22.08.21 100 1 7쪽
18 돈귀신 22.08.19 104 1 7쪽
17 사랑도 구라다 22.08.17 118 1 8쪽
16 작업 본능 22.08.13 114 1 7쪽
15 기자정신 22.08.11 120 0 8쪽
14 인연 +1 22.08.09 127 1 7쪽
13 한도초과 22.08.07 134 1 8쪽
12 자기 합리화 22.08.04 141 1 10쪽
11 두 시간에 백만 원 22.08.02 140 1 8쪽
10 모히또 한잔 22.07.30 143 1 8쪽
» 메소드 연기 22.07.28 150 1 9쪽
8 무전유죄 22.07.26 147 1 9쪽
7 아래층에 사는 여자 22.07.22 156 1 7쪽
6 정신과 상담 22.07.20 165 1 10쪽
5 당일대출 무직자 가능 22.07.18 178 0 9쪽
4 고(故) 이건희 회장 22.07.15 181 2 8쪽
3 여자보다 중요한 것 22.07.13 194 1 8쪽
2 2만 원짜리 자존심 22.07.11 204 1 8쪽
1 굿네이버스 22.07.10 243 1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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