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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나이다
작품등록일 :
2023.12.01 1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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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1.01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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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031. 방어진 4

DUMMY

10.


청운당이 보였다.


오솔길에서 벗어난 유정과 만봉은 아직 다리가 뻣뻣했다.


청운당 바로 앞이었지만, 아직 안도의 숨을 내쉴 때는 아니었다.


일성의 분신술을 보지 않았던가.


두 사람은 조심스럽게 청운당 안으로 발을 들였다.


그런데 앞마당에 웬 희멀건 형체 하나가 엎어져 있었다.


그걸 본 두 사람은 다시 멈춰 서지 않을 수 없었다.


“내가 잘못했소이다. 내가 술에 취해 그만 끔찍한 짓을···. 날 죽여주시오.”


다짜고짜 흐느끼며 부들부들 떠는 형체.


흐린 반달 아래여서일까, 그 모습은 더욱 괴이해 보였다.


두 사람의 굳은 몸은 그 형체가 일어설 때까지 풀어지지 않았다.


엎어져서 흐느끼던 형체가 몸을 일으키자 두 사람은 다시 한번 흠칫 놀랐다.


이번에도 일성이었다.


일성은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면서 두 사람 앞에서 머리를 조아렸다.


하지만 유정과 만봉은 인상을 쓸 뿐이었다.


두 사람의 표정은 말하고 있었다.


‘이번에는 진짜인가?’


먼저 만봉이 일성의 몸을 건드려 볼 생각인지 성큼 앞으로 다가섰다.


그런데 그때, 초가의 좌측 구석에서 뭔가가 뛰쳐나왔다.


“이보시게, 만봉! 아니 되오! 그놈을 만지지 마시오. 그놈은 가짜요. 그놈을 건드리면 독충을 뱉어낼 것이요.”


고성을 지르며 나타난 건 또 다른 일성이었다.


당황한 만봉은 뒷걸음질을 쳤고, 유정도 덩달아 주춤주춤 물러섰다.


그러자 이번에는 초가의 반대쪽 구석에서 외침이 들렸다.


“이보시게들! 나를 좀 구해주시게나! 저놈들은 악귀 나찰이 만든 분신들이요. 속지 마시오! 놈들이 나를 이렇게 만들었소이다. 흐흐흑-!”


간절한 외침에 이어 꿈틀대는 무언가가 기어 나왔다.


유정과 만봉은 그 외침이 들리는 쪽을 응시하다가 순간 눈이 주먹만큼 커졌다.


흐릿한 달빛 아래 모습을 드러낸 건 하반신이 잘려 나간 일성이었다.


그는 힘겹게 두 팔에만 의지해서 바닥을 기고 있었다.


세 명의 일성은 조금씩 전진하며 유정과 만봉에게 다가왔다.


여전히 흐느끼고 있었고, 격하게 외치고 있었고, 온몸으로 울부짖고 있었다.


그들이 다가올 때마다 두 사람은 한 걸음씩 뒤로 물러섰다.


겁에 질린 유정이 만봉을 힐끔 돌아보았다.


“장풍이라도 쏴서 일단 제지해야 않겠소?”


하지만 만봉은 고개를 저었다.


“위험하오! 실제로 놈들 중 하나가 독충을 품고 있을 수 있소이다. 장풍에 몸이 찢어지면서 독충이 밖으로 터져 나오면 자칫 다 죽을 수도 있소이다.”


그렇다고 다른 도술을 쓰기도 곤란했다.


이제는 두 사람이 제법 지쳐 집중력이 많이 떨어진 상태인 데다···.


자칫 적절치 못한 도술 사용으로 빈틈을 보일 수도 있었다.


만약 그럴 경우, 혹시 지켜보고 있을지 모를 진짜 일성에게 되치기를 당하기 딱 좋다.


지금은 위험한 상황이었다.


유정과 만봉은 자꾸만 뒤로 밀리면서 초조해졌다.


“기회를 노려야 하오. 놈들이 눈치채지 못하게 몸에 붙은 부적을 떼 낼 기회 말이오!”


만봉의 말대로 하려면 일단 한 사람이 놈들의 주의를 다른 곳으로 분산시킬 필요가 있었다.


쫓던 목표물이 각기 다른 방향으로 흩어지면 놈들도 허둥대며 틈을 보일 테니까.


“그럼 내가 놈들을 청운당 밖으로 유인해 보겠소.”


유정은 생각했다.


아무래도 좁은 앞마당보다 넓은 바깥이 놈들의 허를 노리는 데 더 유리할 것이라고.


이제 더는 물러설 공간이 없었다.


그리고··· 시간도.


유정은 초가의 담을 더듬으며 천천히 청운당 밖으로 벗어나기 시작했다.


그런데 청운당 문밖에서 또 누군가가 나타나더니 유정을 막아섰다.


“어디를 가시오, 유정! 내가 맛난 걸 해드리려 이렇게 마을에서 장까지 봐 왔는데 말이요!”


또 다른 일성의 목소리!


소스라치게 놀란 유정이 물러서다 넘어져 그대로 주저앉는다.


앞에는 새끼 멧돼지를 손에 든 일성이 달빛을 등지고 서서 웃고 있었다.


일성의 웃음이 점점 커졌다.


몸이 들썩였고, 소리도 점점 괴이하게 변해갔다.


마치 이건 웃는 게 아니라 악을 쓰며 발악하는 것 같았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갑자기 그의 얼굴이 심하게 비틀리면서 일그러졌다.


“누가 함부로 내 집에 들어오래? 내가 청운당의 주인이다, 이놈들! 다 죽여라! 다 죽여버려!”


네 명의 일성이 동시에 소리를 질렀다.


그리고 한바탕의 아수라장이 펼쳐졌다.


불과 5미터도 안 되는 짧은 반경 내에서 여섯 명의 수인이 서로 엇갈렸다.


퍼벅-!

퍽-!

쿠웅-!

슈우욱-!

흐으읔-!

안 된다!

아아앜-!

커어엌-!

안 돼!


몸을 짓이기는 소리와 비명이 한 대 얽혔다.


달이 구름에 가려있었기에 격한 장면이 생생하게는 보이지는 않았다.


하지만 유정은 분명히 청력으로 느낄 수 있었다.


불길한 예감과 끔찍한 결과를.


잠시 후 옆에 있던 만봉이 바닥에 고꾸라지는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는 분신술이 풀려 장작개비가 나동그라지는 소리와는 분명 달랐다.


구름이 물러가고 달빛이 돌아왔다.


은은한 달빛에 마당이 드러났고, 유정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유정은 눈 앞에 펼쳐진 끔찍한 광경에 그만 무릎을 꿇고 만다.


만봉은 장풍과 독충에 온몸이 다 허물어져 있었다.


숨은 이미 끊어진 듯싶었다.


유정은 그 아수라장 속에서도 자기 몸만 멀쩡했던 이유를 곧 알게 되었다.


일성의 분신 넷이 한 번에 쏘는 영력을 만봉이 혼자서 몸으로 막아내 준 것이었다.


“이··· 이보게! 만봉! 정신 차리게. 만봉, 이 사람아··· 흑흑···.”


유정은 쏟아지는 눈물을 삼키며 만봉의 몸을 흔들었다.


하지만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닌 만봉이 대답할 리는 없었다.


유정은 울분을 토하며 초가를 향해 외쳤다.


“일성 네 이놈! 당장 모습을 드러내라! 사람을 도대체 몇이나 더 죽이려 드는 거냐?”


그런데 그 외침이 울리자마자였다.


꼬데엑-! 꼬꼬꼬꼬-!


어디선가 닭 울음과 함께 살과 깃털은 다 사라진 닭 뼈의 형체가 유정에게로 날아들었다.


그 빠르기가 제법 상당했다.


유정이 미처 몸을 틀기도 전에 놈의 부리가 먼저 날아와서 박힐 정도였으니.


놈은 먼저 유정의 한쪽 어깨를 쑤시더니 다시 반대쪽 팔도 쪼아버렸다.


“아흐으읔···.”


양팔이 부자연스러워진 유정이 그대로 주저앉아 허리를 굽혔다.


고통에 괴로워하며 몸부림을 치자 놈은 이번에는 정수리를 쪼았다.


머리카락과 살점이 떨어져 나가면서 유정은 점점 이성을 잃어갔다.


“아··· 아아앜!”


하지만 그게 다가 아니었다.


타탕-!

탕-!


적막을 가르는 연이은 총소리가 울렸다.


기겁한 유정은 머리를 땅에 박고 눈을 질끈 감았다.


총이 발사된 곳은 초가의 마루 아래.


총소리의 울림은 고요한 숲속을 꽤 오랫동안 흔들었다.


그리고 그 소름 끼치는 메아리가 잦아들 때쯤이었다.


어디선가 일성이 나타나더니 유정의 앞에 떡하니 섰다.


그 그림자를 본 유정이 슬그머니 실눈을 떠서 확인하고는 흠칫 놀란다.


유정은 대뜸 일성의 바짓단을 붙들고 하소연을 한다.


“이··· 일성! 이보게, 날 사··· 살려주시게! 제발··· 뭐든 시키는 대로 다 하겠네. 제발, 사··· 살려주시게!”



11.


아침 해가 떠오르고 있다.


청운당의 앞마당에는 그림자 두 개가 길게 드리워졌다.


하나는 땅에 엎드린 채 가끔 머리를 치켜들어 분위기를 살피는 유정의 것.


나머지 하나는 우뚝 선 채 팔짱을 끼고서 뜨는 해를 바라보고 있는 일성의 것이었다.


대비되는 두 사람의 모습은 여러 감정을 불러일으켰다.


해가 떠오를 때까지 한마디도 없던 일성이 마침내 입을 열었다.


“뭐든 시키는 대로 하겠다?”


여전히 몸이 성치 않은 유정은 힘겹게 상체를 세우면서 바로 앉으려 했다.


“살려만 주시게! 뭐든 하겠소이다. 정말이요.”


빙그레 웃는 일성은 마당 구석에 널브러져 있는 만봉의 시체를 손으로 가리켰다.


“아니 왜, 만봉처럼 끝까지 싸우지 않았소? 나를 잡으러 온 것 아니었소?”


일성의 웃음이 묘했다.


기쁜 것 같으면서도 슬픔과 노여움을 머금고 있었고.


행복한 것 같으면서도 불행의 씨앗을 품은 듯 보였다.


그의 표정에 항상 이렇게 상반된 감정이 뒤얽힌 건 아마도 정철에게 밀리면서부터였을 것이다.


뭔가가 생각이 났는지 일성이 갑자기 눈썹을 씰룩였다.


“뭐 하나 물어봅시다.”


유정이 긴장하며 고개를 빳빳이 세웠다.


“청운당의 후계자가 누구라고 생각하시오?”


유정은 목덜미에서 식은땀이 흘렀다.


“그, 그거야··· 물론··· 일성 법사, 다··· 당신이 아니오?”


일성은 의아한 듯 볼살을 부풀렸다 다시 내뿜었다.


“다들, 정철을 꼽고 있지 않소? 스승님도 이미 그리 정하실 거로 아는데···.”

“자, 잘은 모르지만··· 아··· 아니, 아직··· 정해진 게 없는 거로 알고 있소이다.”


유정은 등줄기를 타고 흐르는 땀에 옷가지가 젖어 들었다.


“흐음, 우리 유정은 정철과 더 가깝지 않았소? 그와 자주 어울리시던데?”

“아··· 아니, 그게 무슨···. 정철과 가까운 건 내가 아니라 저 만봉이었소이다. 나는 그저 묻는 거에 답이나 하는 정도···.”


유정은 죽은 만봉을 가리키는데 팔이 후들후들 떨렸다.


가까웠던 동료를 팔아먹어 마음이 아프지만, 살려면 어쩔 수가 없었다.


일성이 다시 유정을 노려보았다.


이글이글 타오르는 눈빛이 매서웠다.


“살려주면, 나와 함께 뜻을 펼칠 생각이 있소?”


답이 뻔히 정해져 있는 질문이었다.


여기서 어느 누가 아니라고 하겠는가?


목숨이 날아갈 판인데 말이다.


“그··· 그리하겠소!”


유정이 마른침을 삼키며 대답했다.


“난, 운천과 정철을 쳐내고 청운당을 새로 재건할 것이요.”


자신만만한 일성의 얼굴이 떠오르는 태양보다도 환히 빛났다.


유정은 그 모습이 두렵기만 했다.


“그동안 운천에게 속아왔소이다. 맨날 우리를 최고의 도사들로 키워 어지러운 세상을 바로 잡는 데 힘쓰게 하겠다고 하더니만···.”


유정은 말없이 고개만 주억댔다.


분명 스승 운천은 우리 천애 고아들을 청운당에 데려와 살게 하면서 그렇게 말했었다.


“···보시오! 기약 없이 수련에만 몰두하게 하고, 언제 한 번 세상 밖 구경이나 제대로 시켜준 적이 있소이까?”


카랑카랑한 일성의 목소리가 청운당의 아침 공기를 흔들었다.


그 기세에 눌려 움츠러들기만 하는 유정은 점점 작아지는 기분이었다.


“마을에 다녀올 때마다 바깥세상 소식을 접하고선 깜짝 놀랄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소. 우리만 고립된 채 바보처럼 살고 있었소이다. 그런데 더 화가 나는 건···.”


일성이 갑자기 언성을 높였다.


“운천과 정철, 그 둘만 은근슬쩍 재미를 보고 다닌다는 거요. 내가 모를 줄 알고!”


유정은 알고 있었다.


이런저런 이유를 갖다 붙여서 스승과 정철을 음해하는 건 정당성 확보 차원이라는 걸.


법사들을 죽이고, 스승에 맞서고, 청운당을 접수할, 그런 정당성 말이다.


유정은 조심스레 물었다.


“그런데 말이오··· 저쪽에서도 가만히 있지 않을 텐데··· 대체 어쩔 셈이오? ”


그러자 일성은 기다렸다는 듯 말한다.


“알고 있소. 운천과 정철이 함께하면 내가 불리하다는걸. 그래서 말이오···.”


갑자기 낮아진 음성에서 음산한 기운이 흘렀다.


“···쇠통바위에 가서 그놈을 꺼내줄 생각이오.”


유정의 얼굴이 어두워지더니 눈 밑이 파르르 떨렸다.


“아··· 아··· 악귀··· 나찰을 말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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