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화. 오물은 오물통에 있어야지!
“오물은 오물통에 있어야지!”
내가 담배를 꼬나물고 불을 붙이며 눈을 치켜떴다.
복수를 하겠다고 결심을 하자 벌써부터 전의가 타올랐다.
그 예전 게임장을 굴러다니던 말로, 전투력을 상승하게 만들었다.
현재의 삶 속에서 삼촌들은 선물과 같은 존재들이었다.
아버지 외에는 가족이나 친척들이 없는 상황에서, 혈육처럼 깊은 정을 주고받는 사이가 되어 있었다.
그 나이가 되도록 가정을 꾸리지 못한 삼촌들은, 나를 친 아들처럼 친 동생처럼, 때로는 친구처럼 대해주었다.
사춘기에 들어선 뒤 그런 삼촌들 앞에서는 담배를 피웠다.
거친 바닥에서 함께 부대끼며 뒹굴다보니 우리들의 마음 저변엔 미성년자고 뭐고, 나이를 뛰어넘어 목숨을 함께 나누는 전우애와 같은 감정이 배어있었다.
전장 같은 살풍경한 바닥에서 일반 사회에서의 어쭙잖은 예절 같은 건 거추장스러울 뿐이었다.
우리는 일반 사회와 어우러져 그 규율을 지키며 사는 부류가 아니지 않은가.
아버지도 어차피 피울 거 같이 피자고 했지만, 그래도 아버지라고 얼굴을 맞대고 연기를 내뿜기가 좀 뭣해서 거기까진 선을 지켜준다.
석구 삼촌이 나를 달래려고 팔을 끌어 자리에 앉혔다.
“야, 야, 건아··· 그렇지만 그놈은 보통 인간이 아니야. 조폭이란 말이다.”
“그래. 니 복창 터지는 마음은 이해하겠는데, 우리가 맞짱 뜰 상대가 아니다. 체급이 달라.”
“쫄 거 없어. 그냥 우리 식으로 하면 돼. 우리 손으로 사회에서 격리를 시켜버리면 되는 거 아냐?”
춘배 삼촌이 목소리를 깔며 다독이듯 말했다. 무게를 잡을 땐 또 사투리가 싹 사라진다.
“건이 니가 조폭에 대해 잘 모르나 본데. 그것들이 아무리 전국구가 아니라 해도, 일반 범죄자들하고는 달라. 사람 한 둘 담궈 묻어버리는 건···.”
“알아. 나도 충분히 알고 있으니까, 우리식으로 조용히 처리 하겠다는 거야. 겁나면 나 혼자 할 테니까 삼촌들은 빠져. 대신, 아버지에겐 비밀로 해.”
“야, 야, 건아, 강건!”
내가 술 집 문을 열고 나가자 삼촌들이 황급히 따라 나왔다.
✵
이전 세계에서도 아버지와 삼촌들은 야바위꾼들이었다.
삼촌들도 지금의 모습 그대로였고.
하지만 삼촌들은 지금처럼 나와의 교감은 거의 없었다. 이따금 씩 집에 올 때 얼굴 정도만 본 기억이 있었다.
과거로 돌아온 내가 미래의 상황을 알기에 위기에서 벗어나려 살짝 살짝 변주를 주면 그만큼 변화된 삶이 진행된다.
어린아이가 되어 과거로 회기 된 건 나로서는 어쩔 수 없는 운명이었다 해도, 또 다시 초등학교부터 다녀야 한다는 건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었다.
고등학교까지만 쳐도 장장 12년의 세월이다.
그 감옥 같은 학교생활을 다시 해야 한다는 건 너무도 끔찍한 노릇이었다. 그런데 결국 어쩔 수 없이 다시 가방을 메고 학교를 다니게 되었다.
그런 식으로 현재의 삶은 예전의 삶과 변주된 현재가 뒤섞여 진행을 하지만 어느 정도의 기간이 지나면 다시 예전 삶의 큰 틀로 돌아와 진행되었다.
나는 그 리듬에 어느 정도 감이 잡혀가고 있었다.
새로운 변주에 삶 자체가 완전히 바뀌지 않고, 다시 베이스로 회귀하는 리듬이 얼마나 다행스러운지 모른다.
나는 현재의 삶도 과거의 큰 틀에서 벗어나지 않기를 원한다.
현재의 삶 속에서도 반드시 다시 만나야 할 인간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젠 정말, 많은 세월이 흘러 기억조차 희미해져 가고 있는 미래의 그 삶으로는 영원히 돌아갈 수 없는 것일까?
서교수와 배신자들. 아내 수경과 딸이었던 예리.
떠올리기만 해도 심장이 쿵쾅대는 인간들.
그들을 다시 만난다면, 예전의 삶 속에서 원망스럽고 비통하고 위험했던 순간들을 모두 기억하고 있기에, 그런 상황들을 피해갈 수 있을까?
새로운 변주로 나를 또 다시 절체의 상황으로 몰아가는 것은 아닐까?
그런 변주의 상황이 오더라도 그때와는 달리 극복해 나가야 한다.
미래의 정보라는 치트키가 있기에 가능할 것이다.
그리고 그때와는 또 다른 내가 되어 있어야 한다. 서교수를 넘어서는 그 세계 오버로드가 되어 있어야 한다.
내가 비장한 표정으로 주먹을 불끈 쥐었다.
✵
삼촌들은 오동철을 미행하며 하루 일과를 꼼꼼히 체크해 두었다.
오동철은 오후에 집에서 나와 강남에 있는 자신의 조직이 운영하는 유흥업소들을 시찰 한 뒤, 새벽이 되면 다시 집으로 귀가하는 것으로 일정을 마무리했다.
예전 삶에서도 뽕쟁이들과 몇 번 마찰을 빛은 적이 있었기에, 그들 세계에 대해선 어느 정도 꿰차고 있었다.
오동철 정도의 조직이 마약 사업을 한다면, 자신들이 제조를 하거나 직접 해외에서 밀수를 하지 않는다 해도, 최소한 상선의 중간 판매책의 위치는 꿰차고 있을 것이다.
어쩌면 그 보다 더 상선의 지역 총책을 맡고 있을 지도 모르고.
마약은 철저한 점 조직으로 되어 있어, 상단을 차고 올라가 총책이나 최상선의 비밀스런 거래 현장이나 공장 등을 알아낸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것은 경찰 조직이 해야 할 일이다.
나는 단지 경찰에게 핵심 증거와 함께 오동철이라는 단서를 던져주겠다는 것이다.
놈을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면, 고구마 줄기를 잡아당기듯 튼실한 고구마가 달린 뿌리가 송두리째 뽑혀 올라오겠구나··· 하는.
내가 정의감에 불타는 의인도 아니고, 배트맨처럼 무소불위의 힘이 있는 것도 아닌데, 이 사회에 만연한 마약을 어떻게 뿌리 뽑을 수 있겠나.
나는 그저 오동철을 교도소에 처박고, 그와 관계된 마약 조직을 경찰에서 들쑤셔주면 그것으로 만족할 것이다.
나는 간지나는 모던한 슈트 스타일링 핏을 갖추고, 오동철이 운영하는 룸살롱으로 보무당당하게 들어갔다.
브이넥 블랙 셔츠와 블레이저 스타일의 트렌디한 세미 슈트 룩 차림은 한눈에 봐도 귀티가 철철 넘칠 것이다.
머리도 영국식 댄디 컷 스타일로 힘을 줘, 한껏 세련미가 넘치면서도 자연스러운 패션을 완성했다.
화룡점정.
패션의 완성은 얼굴 아닌가.
무엇보다 귀티 나는 조각 미모가 패션의 마침표를 찍어줄 것이고. 너무 질렀나? 조각 미모까진 아니더라도 귀티 정도는 나는 얼굴이거든. 아님 말고.
나는 영국 유학 중 방학 기간에 귀국한 졸부 2세 행세를 하며 도우미들과 어울려 술을 마셨다.
퍼블릭 룸살롱의 주를 이루는 손님 대부분은 법인 카드로 술값을 계산하는, 배둘레햄이 풍만하고 힐끗한 머리가 반쯤 벗겨진 비즈니스 중년들이다.
냄새 나는 혀를 강제로 입에 밀어 넣고 두꺼비 같은 손으로 질퍽하게 온 몸을 더듬어대는 치욕과 수모, 능멸을 새벽 내내 감내해야 하는 도우미들은 자신들을 3D 업종보다 더한 극한 직업에 종사하는 ‘경제 정신대’라고 치부하며 혀를 내두른다.
괜히 쩜오와 텐프로, 일프로의 피라미드 단계가 있는 것이 아니다.
도우미들도 손님들도, 위로 올라갈수록 우아해진다.
우아하기는 개뿔.
우아한 척 하는 거지.
속은 다 똑같다.
그런데 시퍼렇게 젊고 잘생긴 유학파 졸부2세가 개시부터 도우미 세 명을 앉혀놓고 캐시를 팍팍 뿌려대며 댄디하게 어울려 놀아주니, 자기네들이 더 흥이나 아주 생난리들을 치신다.
나 역시 그 흥에 어울려 적당히 영어를 질러주며 분위기를 띄웠다.
적어도 접시 꾼 정도라도 되려면 다방면에 박학다식해야 한다. 영어는 기본으로 차고 있어야 하고.
남의 주머니에 있는 돈 수금하거나 슈킹 하는 거, 쉬운 일 아니다.
“What the fuck! She is fucking beautiful!
“뭐야 오빠? 그거 좋은 말이지?”
“그럼. 너 개이쁘다라는 말이거든.”
“개이쁘다는 게 뭐야? 욕 같은데?”
“Oh, No! 졸라 이쁘다는, 먼 미래의 말이지.”
“그래? 그럼 오빠 미래에서 온 사람이야?”
“하나를 알려주니 두 개를 아네? 야, 너 딱 내 스타일이다. 나가자. 자러!”
“숏타임이야, 롱타임이야? 허락 맡아야 하거든?”
“롱롱 타임이지~”
뒤엉켜 춤을 추며 팔뚝에 주사 자국이 있는 계집애 하나를 골라 호텔로 향했다.
나는 현재 호적상의 나이는 18세지만 외모는 전혀 그렇게 보이지 않았다. 도무지 나이를 가늠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영혼의 나이 불혹에 또 다른 인생을 10년 살며, 세파에 휩쓸리고 술 담배에 쩔어 살다 보니 그 얼굴이, 그 눈빛이, 평범하겠는가.
주민 등록증 또한 필요하면 언제든지 위조해서 쓸 수 있는 스킬이 있으니 룸살롱에서든 호텔에서든 나를 미성년자로 보는 인간은 아무도 없었다.
호텔에 들어서자 그녀에게 아무렇지 않은 듯 물었다.
“Oh, Shit! 나는 약빨이 있어야 제대로 하는데···. 혜미라 그랬지? 야, 혜미야 너 뽕 파는 애들 알지? 필로폰 말이야.”
그녀가 당황하면서 단호하게 말했다.
“그, 그런 걸 내가 어떻게 알아?”
“에이··· 니네 업소 가면 살 수 있다고 하던데? 그래서 거기 간 거야.”
“누, 누가 그래?”
“내 미국 친구 애들도 이태원이나 이쪽 업소에서 샀다고 하던데 뭐. 같이 좀 즐기자. 연결 해줘 봐.”
“이 오빠는, 내가 그런 걸 어떻게 알겠냐고?”
내가 그녀의 팔을 잡아채 팔뚝을 걷었다. 팔뚝에 고속도로(미세한 바늘 자국들)가 드러났다.
“이건 뭐냐? 영양제 맞은 자국이냐?”
“···.”
그녀가 꿀 먹은 벙어리가 되어 멀뚱멀뚱 올려봤다.
“그럼 가게에서부터 일부러 나를 찍어서 여기 온 거야? 오빠 뭐야, 야당(경찰 정보원)이야?”
내가 나이에 걸맞지 않는 여유 넘치는 미소를 지어보이며 되물었다.
“너는 내가 뭐로 보이냐? 내가 짜바리나 걔네들 끄나풀로 보여?”
그녀가 고개를 가로저으며 한숨을 내쉰다.
“망원(첩자)처럼 보이지는 않는데··· 이거 잘못 되면 겡꼬(징역) 가거든.”
“설사 일이 잘못 되더라도 너한테는 피해가 없게 할 테니까 걱정 마. 방학 동안에 실컷 즐기고 영국행 비행기 타려고 그래.”
“하긴 씨바, 꼬바리 일이나 해주는데 걸려봤자 별 건 아닌데···. 지금 당장은 안 되고. 오빠, 연락처 같은 거나 남겨줘 봐.”
“뒤통수 캐볼 일 있냐? 연락처는···. 이틀 후에 가게 다시 갈 테니까 그리로 오라 그래.”
“양은 얼마나?”
“나야 많을수록 좋지. 친구들이랑 파티 할 거거든. 캐시로 땡겨준다 그래.”
내가 문 쪽으로 가자, 그녀가 의아히 묻는다.
“그냥 가 오빠?”
“난 약빨 안 받으면 안 선다니까.”
“영국에서 뽕질 어지간히 해댔구만.”
이틀 후.
다시 그 업소에서 혜미만을 불러 술을 마셨다.
혜미에게 어떻게 됐냐고 묻기도 전에 야구 모자를 쓴 20대 중반의 남자가 불쑥 문을 열고 들어섰다.
룸살롱과는 어울리지 않는 차림새였다.
슬림한 빈티지 청바지에 가죽 재킷을 입은, 삐쩍 마른 체형에 면도날처럼 날카로운 눈빛을 지니고 있었다.
놈이 문을 닫고 곧바로 나를 향해 걸어오며 노련한 손놀림으로 잭나이프를 꺼내 내 목덜미를 향해 내리찍었다.
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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