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화. 과연 서교수는 어떻게 나타날 것인가? 2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내가 끌려온 곳은 음습한 어느 지하실이었다.
나는 상의가 벗겨진 몸으로 손발이 꽁꽁 묶인 채, 차디 찬 스테인리스 이동 침대 위에 눕혀져 있었다. 마치 부검대처럼 생긴.
나를 살려는 놓으려고 했는지, 주변에 난로도 피워놓고 실내 온도가 높아 덜덜 떨릴 정도는 아니었다.
그래도 바지가 젖어 있어 한기는 느껴졌다.
어떤 변이가 생길지 몰라 그토록 조심을 했는데도, 전혀 예상치 못한 상황에 이 꼴이 됐다.
주위엔 방사장과 부하들 그리고 삐쩍 마른 40대 여자가 서 있었다.
앞니가 툭 튀어나와 도수 높은 안경을 낀 여자는 영화 설국열차에 나오는 ‘틸다 스윈튼’이 분한 ‘메이슨’과 흡사한 외모를 지니고 있었다.
틸다 스윈튼은 의료 복 위로 투명 비닐 옷을 덧입고 있었다.
틸다 뒤로는 의료 복을 입은 20대 남자 두 명이 얼음 팩이 채워져 있는 쿨러를 각각 하나씩 들고 서 있었다.
기억난다.
세 년 놈 모두.
또렷이.
셋 다 절로 구타유발을 하게 만드는 몽타주들이었으니까.
이 상황은 미래에서와 똑같이 진행되고 있다.
다행이었다.
방사장이 부검 대 위에 놓인 나를 우두커니 내려 보며 혀를 차댔다.
“한강에서 심청이 코스프레 할려고 했냐? 쯧쯧쯧 썩을 놈···. 이 몸뚱이가 얼마짜리 물건인데 함부러 굴려대냐. 상하면 어쩌려고.”
놈의 모습이 흐릿하게 보인다.
“큰일 날 뻔 안 했냐. 사람이 매사를 긍정적으로 생각해야지.”
방사장.
이름은 모른다. 그냥 방사장. 사채업자다. 그것도 악질 중의 악질이다.
나이는 30대 중반.
워해머의 오크나 슈렉을 연상시키는 외모의 개쓰레기다.
미래의 세계에서 나를 무던히도 힘들게 했었지.
이 새끼도 작업 대상이다.
서교수가 등장하지 않더라도, 부랄만 남겨놓고 모조리 발라줄 것이다.
“물건 상태가 별로네.”
틸다가 진중한 표정으로 내 눈알을 까보며 말하자, 방사장이 심드렁하게 대꾸한다.
“술에 떡이 돼 잠들었다 깨서 그래. 곧 괜찮아 질 거야.”
틸다가 끄덕이며 돌아서자, 방사장이 나에게 서류 한 장을 들쳐 보이며 말했다.
“여기 신포에 니가 사인한 거 맞지?”
신포.
신체포기각서.
예전에 내가 사기를 당해 인생 막장에 처박혔을 때, 구세주처럼 나타나 나에게 확인사살의 빨대를 박은 조현수라는 놈 때문에, 저 쓰레기에게 현찰 일억을 사채로 땡겼다.
그리고 저 개 쓰레기에게 시달리고 시달리다 막장에 몰려 신체포기각서를 쓰고 현찰을 땡겼었지.
그때 상황을 떠올리며 현실에서도 같은 금액의 캐시를 빌리고 도망을 다녔다. 놈의 눈이 뒤집히라고.
방사장이 돌아보며 말했다.
나는 일이 돌아가는 상황을 좀 더 지켜보기로 했다.
과연 변이가 된 이 상황에서, 서교수가 등장 할 것인지. 등장해 내 목숨을 구원해 줄 것인지.
“시작 해.”
방사장이 물러서자 틸다가 나를 향해 바짝 다가섰다.
조그맣고 툭 불거진 눈이 마치 고양이 고래처럼 생겨 어떻게 보면 귀여워 보이기도 했지만, 제대로 보면 차갑고 날카롭고 재수 없음의 극치를 보여주는 생김새다.
그녀의 손엔 의사들이 쓰는 청진기가 들려있었다.
그녀가 내 몸 이곳저곳에 청진기를 대보고 눈을 까뒤집어 펜라이트로 비춰 보는 등 의사들이 하는 진단을 했다.
내가 무슨 짓을 하냐며 소리를 질렀지만, 재갈이 물려져 있는 탓에 흡흡 대는 괴성만이 입 밖으로 새어나올 뿐이었다.
그 뒤로 방사장과 부하들이 긴장된 표정으로 여자를 주시했다.
이윽고 틸다가 푸르고 가는 입술을 달싹거리며, 차분하고 조분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살짝 맛이 간 것만 빼면, 물건은 상품이네.”
조그만 몸에 조신한 말투였다.
“에이 투 뿔따구(A++)라니까. 우린 그 밑으론 취급 안 해.”
방사장의 말에 틸다가 툭 불거진 눈을 껌뻑이며 입술을 달싹거렸다.
“조선 돈, 5천.”
방사장이 대뜸 받아쳤다.
“지랄! 1억.”
틸다가 냉큼 되받아 친다.
“5천 5백.”
“염병, 9천.”
“6천.”
“8천. 5백.”
“6천 오 백”
“8천. 끝! 지기미, 그 가격이면 만땅 혜자야!”
“7천 끝. 니미럴! 우리도 더 이상은 안 돼. 중국 땅에 널린 게 이런 통나무들인데.”
방사장이 돌아서며 부하들에게 지시를 한다.
“얘들아, 가자. 물건 다시 자루에 다시 담아라. 거래처가 한 둘인가.”
틸다가 황급히 방사장 앞을 막아섰다.
“알았어. 7천 5백, 우리 진짜 남는 거 없어. 알잖아? 버는 것들은 따로 있고.”
방사장이 짜증스레 언성을 높였다.
“이 새끼에게 박힌 돈이 원금 일억에 이자 대충 후려쳐도 1억이 넘어. 그런데 7천 5백 받고 나머진 날리라고?”
“사연이 애달프긴 하네. 근데 그건 방사장 사정이고··· 우린 나까마잖아.
눈알 두개에 간, 심장, 콩팥, 쓸개, 뼉다구, 똥집에 쌍방울까지 다 꺼내 팔아도 그 돈 못 맞춰.
젊고 싱싱하니까 그래도 맞춰보겠다 싶은 거야.”
둘의 진중하고 조분 조분한 말을 가만히 듣고 있자니 기가 막혔다.
그러니까 지금 저것들이 내 몸뚱이를 가지고, 내 몸 속 장기들을 가지고, 흥정을 하고 있다는 얘기다.
나는 양쪽 눈을 부지런히 움직이며 만약 서교수가 등장하지 않으면 어떻게 이 위기를 넘길까 머리를 굴려댔다.
꽁꽁 묶여 있던 손목의 밧줄은 정신이든 때부터 애를 써 대 어느 정도 느슨해져있었다.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두 손이 자유로울 수 있는 상태—.
방사장이 부하들을 보며 목소리를 높였다.
“뭐하냐? 물건 다시 자루에 담으라니까!”
“예, 형님!”
방사장의 부하들이 나를 다시 커다란 포대자루에 담으려 안간힘을 쓰는데, 틸다가 바락바락 악을 쓰며 달려들었다.
“아, 좋아 좋아. 8천. 오케바리?”
“됐거든.”
“이런 니미 퍽퍽하게 굴기는, 우리 진짜 남는 거 없다니까!”
“뭐하냐, 빨리 안 담고?”
“아, 알았어, 염병할 놈아~ 8천 5백!”
방사장이 틸다를 보며 그제야 그 두꺼운 입술을 실룩거리며 미소를 지어준다.
“진작 그럴 것이지. 얘들아, 물건 놔두고 캐시 챙겨라.”
틸다가 일행의 남자들에게 지시를 하자, 남자 하나가 숄더백을 들고 왔다.
남자가 가방을 건네자, 방사장이 지퍼를 열어 안에 들어 있는 오만 원 권 뭉치를 확인했다.
“푸헐··· 저 잡 여우. 딱 8천 5백 들어있구만. 8천 5백에 딜이 될 걸 어떻게 알았다냐.”
틸다가 펜라이트로 내 몸을 이리저리 살피며 말했다.
“장사 한 두 번 하나? 근데 얘 온 몸이 왜 이렇게 시퍼렇게 얼어있냐?”
이렇게 조분하고 조신한 여자의 목소리가 더 소름끼치고 살 떨리게 한다는 걸 이제야 알았다.
“강물에 뿔려 거죽만 언 거야. 내장은 실 할 거야. 나이가 시퍼렇잖아. 나이가.”
틸다가 뒤에 있는 남자에게 사인펜을 건네받아 내 배에 대고 죽죽 금을 그어 댔다.
대형 개복 수술 전에 하는 아니, 몸 안에 있는 장기를 모조리 걷어내는 부검을 하기 전, 메스가 지나가는 길을 그어 놓는 절차였다.
내가 몸부림을 쳐대자 구타유발자 놈들이 내 팔 다리를 움켜잡았다.
틸다가 빨간 포비돈을 사인펜 자국 위에 벅벅 발라댔다. 그리고는 메스를 집어 들고 남자들에게 물었다.
“마취제는?”
“안 가져 왔는데요?”
“아, 좀 잘 챙겨라. 일 한 두 번 하는 것도 아니고.”
“어떡하죠?”
“할 수 없지. 그냥 따자.”
틸다가 심드렁한 표정으로 메스를 내 명치에 갖다 댔다.
“좀 참아봐. 금방 끝날 거야.”
내가 재빨리 느슨해진 밧줄에서 양손을 빼려는데, 뜻대로 되 질 않았다.
‘뭐, 뭐야 이거. 왜 안 빠져’
혼신의 힘을 줘 양손을 빼내려는 순간, 명치에 불로 지지는 듯한 통증이 엄습했다.
“억!”
내가 사지를 흔들며 발버둥을 치자 틸다와 남자 둘이 동시에 떨어져 나갔다. 그리고 부검침대가 뒤집어지며 내 몸이 바닥에 나뒹굴었다.
와장창!
우당탕탕탕!
방사장이 그 모습을 보며 혀를 차 댔다.
“쯧쯧쯧. 아주 생 쑈를 하는구만.”
틸다가 방사장을 보며 짜증스레 말했다.
“아, 씨발. 마취제를 깜빡했어. 멧돼지 기절시키는 거 있거든.”
방사장이 양 손가락을 후투툭 꺾어대며 나섰다.
“아, 비켜 봐. 여기 천연 마취제가 있으니까.”
방사장이 내 몸 위에 올라타더니 수박만한 주먹을 치켜들며 시커멓고 두꺼운 입술을 나불거렸다.
“야 이 씨발 놈아. 내가 너 땜에 날린 돈이 대충 후려잡아도 자그마치 1억 천오백이야. 한 대당 천만 원씩 12대만 맞아라.
오백은 반올림 했다.
졸라 비싼 거 처맞아서 디져도 원도 없겠다.”
틸다가 바락! 목청을 높였다.
“무식하게 무슨 짓이야? 물건 상하면 어떡해?”
“뚝배긴 터져도 상관없잖아?”
“그런가? 그래도 살살해. 눈알까지 터질라.”
퍼억!
틸다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방사장의 육중한 주먹이 내 머리통에 처박혔다.
‘아 씨발. 손목 밧줄이 덜 풀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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