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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한의 서재

폭염의 용제

웹소설 > 자유연재 > 판타지

김재한Z
작품등록일 :
2011.11.22 18:43
최근연재일 :
2011.11.22 18:43
연재수 :
20 회
조회수 :
419,513
추천수 :
1,209
글자수 :
54,471

작성
10.12.14 06:27
조회
32,206
추천
65
글자
8쪽

폭염의 용제 - 02

DUMMY

제1장

백작가의 사생아




1


짹, 짹…….

루그는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를 들으며 눈을 떴다. 눈을 뜨자 커튼 사이로 스며들어온 햇빛이 눈을 찌른다.

"으음……."

루그는 손을 들어 눈을 문지르며 몸을 일으켰다. 부드러운 이불의 감촉이 몸을 미끄러져가고 몸 아래로 푹신한 침대의 감촉이 느껴진다.

뭔가 낯선 감각이었다. 이렇게 푹신한 침대의 존재는 지난 10년 동안 그하고는 거리가 멀었으니까.

'여기가 어디지?'

루그는 눈살을 찌푸리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고급스러운 방이었다. 한눈에 돈 많은 집의 방이라는 것을 알 수 있을 정도로. 푹신한 침대와 부드러운 이불, 그리고 바닥에는 붉은 융단이 깔려있었고 깨끗한 벽에는 거울과 울긋불긋한 가을의 산을 그린 그림까지 걸려 있었다. 그 외에는 테이블 하나와 그 위에 놓인 꽃병이 있을 뿐, 눈에 띄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귀족의 기준으로 보면 무척 검소하고 황량한 방이겠지만 수백 번도 넘게 노숙을 해온 루그의 기준으로 보면 정말 사치스럽기 이를 데 없었다.

'모르겠어. 내가 왜 이런 곳에 있지?'

여기가 어디인지, 자신이 어떻게 여기에 와 있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천천히 기억을 되새겨보았지만 얻은 것은 머리가 깨질 듯한 두통뿐이었다.

"으윽……."

루그는 관자놀이를 누르며 침대에서 나왔다.

<루…… 아…….>

문득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마치 바람결에 들려오는, 사람이 속삭이는 것 같지만 아무런 의미도 없는 그런 소리를 닮은.

루그는 눈살을 찌푸리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하지만 창문은 닫혀 있었고, 바람이 새어 들어오는 것 같지도 않았다.

똑똑.

누군가 방문을 노크하는 소리가 들렸다.

루그는 경계하는 눈으로 문을 바라보았다. 그의 감각은 일반인의 그것과는 차원이 다른 기능을 가졌기에 문밖으로 다가오는 사람의 기척도 쉽게 감지할 수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항상 숨쉬듯이 자연스러웠던 초감각이 사라지고, 누군가 자신이 모르게 다가온다는 사실이 그에게 불안감을 심어주었다.

"어머?"

한동안 대답이 없자 노크했던 사람이 그냥 문을 열고 들어왔다. 들어와서 루그를 보고 놀란 표정을 짓는 것은 젊은 하녀였다.

"도련님도 참. 깨셨으면 대답을 해주시지 그러셨어요."

"아, 미, 미안."

적의라고는 한 점도 찾아볼 수 없는 하녀의 말에 루그가 당황해서 대답했다.

문을 닫고 안으로 들어와서 빵과 우유가 올려진 쟁반을 놓아두는 하녀의 얼굴은 왠지 낯이 익었다. 루그는 아스라한 기억을 뒤져서 그녀의 이름을 떠올려보려고 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알 수가 없었다.

"이름이 뭐지?"

"네?"

"당신 이름."

"메리에요. 사흘 전에도 말씀드렸는데 벌써 잊어버리셨어요?"

젊은 하녀, 메리가 투덜거렸다. 루그는 그녀의 얼굴에서 자신을 깔보는 듯한 웃음을 보았다. 메리라는 이름과 그 웃음을 보는 순간, 불현듯 떠오르는 사실이 하나 있었다.

'설마?'

하지만 루그는 그 사실을 믿을 수가 없었다.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루그가 물었다.

"여기가 어디지?"

"네?"

"여기가 어디냐고 물었다."

"……."

메리는 별 해괴한 놈을 다 본다는 표정으로 루그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루그가 인상을 찌푸린 채 자신을 바라보자 황당해하며 물었다.

"이상한 질문을 하시네요. 도련님, 어디 아프신가요?"

"내 말에나 대답해줘. 여기가 어디지?"

"그야 아스탈 백작가의 성이죠. 절 놀리시려는 건가요?"

메리의 목소리에는 화가 난 기색이 섞여 있었다. 하지만 곧 그녀의 표정이 비웃는 기색이 떠올랐다. 고작해야 하녀인 주제에 도련님이라 부르는 루그를 노골적으로 무시하는 표정.

그녀는 버릇없게도 어깨를 으쓱하더니 아침식사로 보이는 음식들을 가져다놓고는 인사도 없이 나가버렸다. 실로 무례하기 짝이 없는 행동이었지만 루그는 그녀를 붙잡지 않고 문이 닫히는 것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닫힌 문을 노려보며 생각에 잠겨 있는 그의 표정은 무섭게 굳은 채였다.

"도대체 뭐가 어떻게 된 거지?"

<……그……아스……탈.>

또다시 바람이 속삭이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 흠칫한 루그는 왠지 그것이 자신의 이름처럼 들린다고 생각하며 주변을 둘러보았지만 여전히 아무것도 없었다.

불현듯 루그는 갈증을 느끼며 우유가 든 잔에 손을 뻗었다. 그리고 그것을 입가에 가져다대는 순간, 뭔가를 떠올린 듯 눈살을 찌푸리며 행동을 멈추었다.

"…확인해봐야겠어."

루그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우유잔을 다시 내려놓았다. 그리고 몸을 일으켜서 벽에 걸린 거울로 걸어갔다.

그리고 할말을 잃고 돌처럼 굳어버렸다.

"이럴수가……."

경악으로 숨쉬는 것조차 멈추었던 루그는 한참 뒤에야 신음처럼 중얼거렸다.

거울에는 웬 소년의 얼굴이 비춰지고 있었다.

나이는 열 서너 살 정도일까? 연갈색 머리카락에 청록색 눈동자를 가졌고, 초췌하고 깡마른 얼굴이었다. 루그는 거울 속의 소년을 한참동안 바라보다가 천천히 손을 들어올려 스스로의 얼굴을 만져보았다. 당연히 거울 속의 소년 역시 그의 행동을 그대로 따라했다.

"도대체 뭐가 어떻게 된 거지? 왜 내가 어려진 거야? 꿈을 꾸고 있는 건가?"

비로소 거울 속의 소년이 자신이라는 것을 인정한 루그가 믿을 수 없다는 듯 중얼거렸다.

아무리 봐도 뭔가 이상했다. 자신은 서른 일곱 살이었고, 극한까지 단련된 육체를 갖고 있었으며, 몸도 얼굴도 무수한 실전을 겪으며 아로새겨진 흉터로 가득했다. 그런데 마치 지금까지의 삶이 거짓말이었던 것처럼 조금도 단련되지 않은 몸을 가진, 잘 먹지 못하고 자라서 깡마른 소년이 되어 있는 것이다.

<루그…… 아스……탈.>

또다시 바람이 속삭이는 것 같은 소리가 들려왔다. 루그는 이를 악물며 허공에다 대고 물었다.

"누구냐? 누가 내 이름을 부르는 거지?"

<이제야 내 목소리가 들리는 모양이군.>

루그가 그에게 말을 거는 순간, 기분 나쁜 바람소리는 또렷한 목소리로 변했다. 깜짝 놀란 루그가 뭐라고 하기 전에 목소리가 이어졌다.

<귀가 먹어버린 게 아닌가 의심했는데 그건 아닌 모양이야. 하긴 내 말은 귀로 듣는 것은 아닐 테니 머리에 문제가 생겼을까 의심했어야 하나?>

"뭐? 너는 대체 누구야?"

루그가 당황하자 정체불명의 목소리가 기분 나쁘게 웃었다. 누가 들어도 명백한 비웃음이었기에 루그가 흉흉한 분노를 드러냈다.

"내 말에 대답해. 안 그러면 죽여버릴 테다."

<어리석은 루그 아스탈. 너는 결코 나를 죽일 수 없다. 아니, 세상 그 누구도 나를 죽일 수 없지.>

"말장난할 기분이 아니다. 닥치고 내 앞에 모습을 드러내라."

<그럴 수는 없지. 나는 이미 죽은 것이나 마찬가지니까. 육체가 없는 자는 다시 죽을 수 없다. 그리고 그렇기에 네 앞에 모습을 드러낼 수도 없지.>

"뭐?"

스스로를 죽은 자라고 주장하는 목소리에 루그는 할말을 잃고 말았다.




******

보시다시피 이번에는 회귀물입니다.

오타, 오류 지적은 대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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