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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한의 서재

폭염의 용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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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한Z
작품등록일 :
2011.11.22 18:43
최근연재일 :
2011.11.22 18:43
연재수 :
2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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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54,471

작성
10.12.18 1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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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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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
글자
8쪽

폭염의 용제 - 11

DUMMY

그 말에 볼카르가 귀가 솔깃해진 듯 기뻐하며 물었다.

<마법을 배울 생각이 든 건가?>

"생각이야 있지. 다만 강체술을 익힌 후에 배울 뿐."

<마법을 익히고 나면 자신이 시간낭비를 한 것을 후회하게 될 거다. 네가 가려는 길은 내게 마법을 배우면 다 가능한 일이란 말이다.>

"그건 네 생각이고. 내 생각은 다르거든?"

둘은 또 그 문제로 독설을 주고받으며 티격태격했다.

그러다가 볼카르가 진저리를 치며 말했다.

<쯧. 역시 인간의 어리석음이란 구제할 수 없는 본능의 문제란 말인가.>

"마족한테 미쳐서 날뛴 바보 드래곤이 그런 소릴 해봤자 하나도 안 잘나 보인다."

<그, 그건 불가항력이었다.>

"구차하긴. 어쨌든 어떻게 내 체질을 마법사 체질로 바꿀 것인지나 말해봐."

<두 가지 방법이 있다. 아주 빠른 방법과 조금 느리지만 어쨌든 인간의 상식으론 놀랍게 빠른 방법이다.>

"…두 번째는 도대체 무슨 뜻이야? 얼마나 걸리는데?"

<두 달 정도 걸린다.>

"그럼 아주 빠른 방법은?"

<늦어도 일주일, 빠르면 사흘이면 된다.>

"호오, 고작 그 정도 시간만에 인간의 선천적인 체질을 바꾸는 게 가능하다고? 어떤 방법인데?"

<그건 어제오늘 상황을 보고 나서 생각한 것인데, 지금 네 처지로는 좀 쓰기 어려운 방법이다.>

"무슨 뜻이지?"

<너는 가난하지 않은가? 힘도 없고 돈도 없고 신분도 없고 권력도 없고… 하여튼 뭐 아무것도 가진 게 없지.>

"…사실이긴 하다만 네놈한테 들으니 엄청 기분이 나쁘다?"

<진실을 이야기해주면 화를 내는 것이 인간이 가진 본질적인 편협함이지. 어쨌든 마력을 타고나지 않은 인간이 마력을 가지려면 특수한 약초들을 특수한 방법으로 정제해서 특수한 방법으로 사용해야 한다.>

"한마디로 돈이 든다는 소리군. 좋아, 그럼 한동안은 강체술에만 전념하지."

<굳이 그 방법에만 매달릴 필요 없지 않은가. 두 달 동안 내게 마법의 기초이론을 배우면서 체질을 바꾸면…….>

"두 달이라, 그동안 백작 부인하고 마빈한테 묵사발 나서 쫓겨날걸. 지금 상황에서 그렇게 시간이 걸리는 방법 따윈 아무런 의미도 없어. 강체술을 완벽하게 연마한 후에 나중에 용병질을 하건 뭘 하건 해서 돈을 벌어서 첫 번째 방법을 쓰겠어."

루그는 과거에 2개월이 걸렸던 기감을 얻는 과정을 단 하루만에 뛰어넘었다. 그렇기에 반년 이상이 걸렸던 1단계 완료를 한달 이내로 잡았다.

오후 내내 강체술과, 기초체력 훈련을 한 루그는 땀을 식힌 후에 성으로 돌아갔다. 다행히 돌아가는 길에도 마빈과는 마주치지 않았다.




7


"너도 검술을 배워봐야 하지 않겠니?"

아스탈 백작이 그렇게 물은 것은 루그가 회귀한지 일주일이 지났을 때였다. 그동안 루그는 방과, 숲 속 비밀장소만을 오락가락하면서 훈련을 계속하고 있었다.

"너도 앞으로 우리 가문 사람으로 살아가려면 응당 검술을 배워야 할거란다. 적어도 기사 서임 받기에 부끄럽지 않을 정도로는 되어야 기사들이 뒤에서 뭐라고 하지 않겠지."

그 말에 루그는 속으로 실소를 머금었다. 물론 속으로만.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백작은 지금 루그에게 기사 서임은 해주겠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나이 많은 사생아가 등장하는 바람에 부인과, 후계자는 속이 타들어가고 있을 텐데 그들을 다독일 생각은 하지 않고 무작정 루그에게 뭔가를 주려고만 하다니. 그것이 오히려 그들에게 위기감을 느끼게 만들어서 루그를 위험하게 만들 수도 있다는 사실은 생각도 못하는 것 같았다.

생각해보면 이전에도 백작이 루그가 가문에 자리잡을 수 있는 세심한 배려는 없이 이런 별 생각 없는 호의만 계속 보여준 것이 돌이킬 수 없는 파국을 불러왔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그는 변함이 없는 모양이다.

"아버지, 조금 생각해볼 시간을 주시지 않겠습니까? 실은 아직도 이곳이 많이 낯설어서……."

"아, 물론 당장 시작하자는 이야기는 아니다. 충분히 생각해보고 결정하렴."

백작은 재촉하지 않고 미소만 지었다. 루그가 아버지라고 부르면서 귀족 자제 같은 공손한 어투를 사용하는 것이 기분 좋은 모양이었다. 잘 먹이고 입혀놓으니 하루가 다르게 자신을 닮은 외모가 빛을 발하는 루그가 보기 좋기도 했을 것이다. 문제는 그에게만 그렇게 보인다는 거지만.

백작이 물러가고 나자 볼카르가 물었다.

<왜 그의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았지?>

"뭘? 검술을 배우라는 것?"

<그래. 너한테는 좋은 기회 아닌가? 공식적으로 지원을 받으면서 훈련할 수 있을 텐데…….>

"그렇지 않아. 여태까지 봤으니까 알겠지만 나는 검을 쓰지 않는다고. 뭐, 무기는 이것저것 쓰는 법을 익히긴 했지만 근본적으로 나는 맨손격투술을 사용해."

루그는 검사가 아니었다. 그의 유파는 무기를 들지 않고 맨손으로 싸울 때 극한까지 힘을 발휘할 수 있는 특이한 강체술을 연마해온 '오더 시그마'였다. 그렇기에 볼카르와 최후의 결전을 벌였을 때도 루그는 맨손이었다.

<이상하군. 무기를 쓰는 쪽이 더 강한 것이 당연한 것 아닌가?>

"보통은 그렇지. 하지만 우리 유파 '오더 시그마'의 강체술은 무기를 쓰지 않을 때 진정한 힘을 발휘할 수 있는 특별판이야. 나한테는 검이 필요 없어."

루그는 딱 잘라 말했다.

이전에도 그는 맨손으로 수없이 많은 검사들을 쓰러뜨렸다. 그의 손은 검을 쳐서 부러뜨릴 수 있으며, 그의 주먹은 바위조차 부술 수 있으니 검이 필요치 않았다.

"다만 그 진정한 힘을 발휘하려면 강체술이 적어도 4단계에 진입해야 하지. 갈 길이 멀어."

루그가 터득한 강체술은 힘의 흐름이 안정되는 시점부터 일반적인 강체술과는 좀 다른 효과를 발휘한다. 그렇기에 아직도 갈 길이 멀었다.

문득 볼카르가 말했다.

<너는 왠지 과거의 강체술을 되찾기 전까지는 타인에게 뭔가를 받는 것을 고집스럽게 거부하는 것 같군.>

"……."

그 말에 루그가 흠칫했다.

볼카르가 말했다.

<내가 마법을 가르쳐준다는 것도 마다하고, 부친이 검술을 가르쳐주겠다는 것도 싫어하고… 그렇게 강체술을 완성하는 것이 중요한가?>

"그러는 너는 마법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하잖아?"

<마법은 위대한 힘이다.>

"누가 뭐래? 드래곤은 어떨지 모르지만 인간은 자신이 쌓아올린 것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이 당연한 거야. 내게 있어서 오더 시그마의 강체술은 단순한 기술이 아니야. 수십 년 동안 쌓아올린 내 인생 그 자체다. 그리고……."

루그는 불끈 쥔 자신의 주먹을 보며 감상에 젖은 표정을 지었다. 과거의 기억이 떠오르며 가슴이 욱신거린다.

"…쓰레기처럼 살던 내게 사람답게 사는 법을 가르쳐준 인연의 증표이기도 하지. 그러니까 무슨 일이 있어도 나는 강체술을 포기하지 않아."

가문을 나와서 하루하루 충동적으로 쓰레기처럼 살아가던 그를 구원해준 것은 스승과의 만남이었다. 그리고 스승이 소중하게 보살피던 라나와의 인연이 시궁창 속에서 뒹굴던 그의 영혼을 양지로 끌어올려주었다.

루그의 강체술은, 이제는 되돌려진 시간 속에서 사라져버린 그들과의 인연이 존재했다는 것을 증명해주는 이정표다. 비록 그 끝에 존재했던 비극이 사라졌음을 기꺼워한다고 하더라도, 자신이 소중하게 간직했던 보석 같은 추억을 상실했다는 것을 상기할 때마다 가슴이 욱신거렸다. 그렇기에 루그는 날이 갈수록, 자신이 과거로 돌아왔다는 사실을 실감할수록 더욱 강체술에 집착하게 되었다.

"대충 3단계를 완성할 때쯤에는 이 집을 떠날 생각이야. 그 정도만 되면 백작 부인이 보낼 추적자들을 걱정하지 않아도 될 테니까."

그 전까지는 몸을 사리면서 이 집에 붙어있는 수밖에 없다. 루그는 자신의 묘하게 꼬인 처지를 생각하며 쓴웃음을 짓고 말았다.




******

인간에게는 누구나, 특히 살아온 인생만큼 양보할 수 없는 것이 생기는 법. 다음편이 1장 마지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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