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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한의 서재

폭염의 용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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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한Z
작품등록일 :
2011.11.22 18:43
최근연재일 :
2011.11.22 18:43
연재수 :
20 회
조회수 :
419,504
추천수 :
1,209
글자수 :
54,471

작성
10.12.15 06:20
조회
24,506
추천
80
글자
8쪽

폭염의 용제 - 06

DUMMY

"이건 사람이 먹어도 되는 음식이 아니기 때문이지."

<멀쩡한 우유로 보인다만. 적어도 썩은 것 같지는 않았다.>

"그렇게 보이지만 사실은 아니란 말이지. 볼카르, 내가 몇 년이나 시간을 돌아온 것인지 물었지?"

<알고 있는 건가?>

"그래. 이제 확실히 기억났다. 아까 그 하녀 메리, 그리고 이 우유의 맛… 이건 정말 내 인생에서 잊을 수 없는 기억 중 하나지."

이 날은 평생 잊지 못할 더러운 경험을 하게 되는 날이었다. 그렇기에 루그는 자신을 무시하고 비웃던 메리의 인상을 어렴풋이나마 기억하고 있었다.

"22년이다. 내가 마지막으로 너와 싸웠을 때, 나는 37살이었고 그때는 대륙력 699년 8월 4일이었지. 그리고 지금의 나는 15살이고, 여기는 아스탈 백작의 성이며, 시기는 아마 4월일 거야. 정확한 날짜까지는 기억나지 않는군."

루그는 쓴웃음을 지으며 빵을 들어올렸다. 이 빵을 보고 있노라니 예전의 기억이 조금씩 되살아난다. 그 기억들은 아주 기분 나쁜 것들이었다. 루그는 입술을 깨물며 화풀이를 하듯 빵을 수십 조각으로 찢어서 창 밖으로 뿌려버렸다.

<그 빵도 못 먹을 빵인가?>

"빵과 우유에는 약한 독이 들어있어. 내 기억대로라면 아마 오늘이 내가 이 성에 들어온지 일주일이 되는 날이었을 거야. 이 날, 나는 아침에 메리라는 하녀가 가져다준 빵과 우유를 먹고 지독한 복통이 일어나서 하루종일 설사를 했지."

사실 루그의 기억력이 22년 전의 일을 자세하게 기억할 정도로 좋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 성에 들어와서 고생했던 때의 기억은 생생하게 남아있었다. 특히 인생에서 처음으로 독을 먹고 고생한 기억은 지금 생각해도 이가 갈리는 기억이었다.

"그래서 완전히 시체 같은 꼴로 아버지를 만났어. 덕분에 별로 좋지 않은 인상이 박혔던 것 같은데… 그 점은 확신하진 못하겠지만, 어쨌든 그랬던 기억이 나는군."

루그는 그때의 기분이 되살아난 듯 으르렁거렸다.

또 생각나는 것이 있었다.

이 성에 들어온지 사흘째 되는 날, 루그는 보는 사람이 없는 복도 한구석에서 이복동생이자 가문의 후계자인 마빈을 만났다. 그리고 마빈에게 붙잡혀 온갖 모욕적인 말을 듣고, 얼굴을 제외한 모든 것을 구타당해서 다음날까지는 물조차 제대로 삼키지 못하고 아파했었다.

'하필이면 열다섯 살이라니.'

인상을 찌푸리고 있는 루그에게 볼카르가 물었다.

<집 안에서 독이라니, 도대체 무슨 일을 겪은 건가? 설명해주지 않겠나?>

"좀 복잡한 상황이지."

루그는 한숨을 쉬며 침대에 걸터앉아서 과거를 회상했다.



3


루그는 아스탈 백작의 사생아였다.

바람기가 심했던 아스탈 백작은 부인 외에도 두 명의 첩을 두었으면서도 성의 하녀들을 비롯해 이 여자, 저 여자를 건드려서 추문을 일으키곤 했다.

루그도 그런 바람기의 결과물이었다.

그동안 아스탈 백작과 동침하고, 그의 아이를 임신한 여자는 많았다.

하지만 대부분은 아스탈 백작 부인이 임신단계에서 돈을 쥐어주고 처리하거나, 주제 모르고 첩으로 들어오겠다고 설치는 끝까지 버티는 경우에는 쥐도 새도 모르게 처리해버렸다. 그렇게 하기 전에 아스탈 백작이 덜컥 받아들인 것이 두 명의 첩이었다.

"그리고 내 존재는 그녀에게 있어서는 대형사고란 말이지."

백작의 아이를 임신했으면서도 첩이 될 생각도 하지 않고, 그렇다고 아이를 지우는 대신 돈을 받을 생각도 하지 않았던 여자. 끝까지 백작에게 아이의 존재를 알리지 않고 가난 속에서 병들어서 죽어간 그녀가 루그의 어머니 리나르였다.

그렇기에 백작 부인은 루그가 열 다섯 살이 될 때까지 그 존재를 모르고 있었다. 그러다가 리나르는 임종의 순간, 백작이 곤란해지면 들고 찾아오라고 한 정표를 루그의 손에 들려서 아스탈 백작가로 보낸 것이다.

당연히 아스탈 백작가는 발칵 뒤집혔다.

하필이면 백작이 성에 머무르던 날 루그가 찾아왔다는 것이 그러한 혼란을 만들었다. 백작이 집에 없었다면 백작 부인은 루그가 찾아왔다는 사실 자체를 묻어버리고 쥐도 새도 모르게 그를 처리하거나, 아니면 돈을 쥐어주고 먼 곳으로 가버리라고 했을 것이다.

하지만 백작은 자신과 닮은 루그가 정표를 들고 찾아온 것을 보고 대뜸 그를 아들로 인정해버렸다. 덕분에 백작가의 모든 사람들이 루그의 존재를 알게 되었고, 그렇게 커다란 혼란을 야기시킨 백작은 그 다음날 일을 보러 나가버려서 실로 미묘한 상황을 만들어버렸다.

"그래서 한동안 고민하던 백작 부인은 결국 나를 제거하기로 결심해. 오늘 물에 탄 약한 독으로 앓아 눕게 해서 아버지를 만나지 못하게 하는 것이 그 시작이지."

<이해할 수 없군.>

볼카르가 의문을 제기했다.

<백작이 자식으로 인정했다고 해도 너는 사생아 아닌가? 인간들은 항상 발정기의 짐승처럼 문란한 주제에 괴상한 법도를 지녀서 귀족 가문에서는 첩으로도 인정받지 못한 여자가 낳은 아이는 가문의 일원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것으로 아는데.>

"…항상 발정기의 짐승처럼 문란하다라, 그 표현 참 적절한데. 보통은 그렇지. 나도 그래서 별 기대는 안 했고 그냥 성에서 하인 생활이라도 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 내가 전에 살던 곳은 빈민가라서 정말 살기 어려웠거든. 백작가의 하인이 될 수 있다면 정말 꿈 같은 행운이지."

그런데 이곳 탈린 왕국에는 생각지도 못한 법이 존재하고 있었다. 그것은 힘으로 왕위를 찬탈한 3대 전의 국왕이 자신의 처지를 정당화하기 위해 만든 법이었다.

"그건 바로 사생아라도 장자이고, 가주가 가문의 일원으로 인정한다면 귀족으로서의 권리를 갖게 된다는 거야. 잘하면 가주직을 계승하는 것까지도 가능하지."

<이상하군. 인간들이 그런 법을 만들다니.>

"3대 전의 국왕은 원래 왕의 사생아였거든. 하지만 전쟁터에서 활약한 공으로 기사가 되었고, 그리고 놀라운 전공을 착착 더해서 결국은 왕실에서도 영향력이 큰 영주가 되었지."

그리고 왕이 후계자를 정하지 않고 서거하는 일이 벌어졌고, 왕위계승자들이 서로 왕이 되고자 피비린내나는 혈투를 벌였다. 그런데 그 혈투가 진행되는 사이 거의 모든 왕위계승자가 죽어버리는 사태가 벌어지고 만다.

"…그래서 그가 왕이 된 거지. 왕위에 오른 그는 자신의 입지를 확고하게 다지고, 왕이 된 것을 정당화하는 의미에서 아까 전에 말한 법을 만들었어."

그래서 루그는 잘하면 차기 백작이 될 수도 있는, 백작 부인 입장에서는 절대 용서할 수 없는 독충 같은 존재가 된 것이다. 그녀가 루그를 제거하고자 하는 일은 13년간이나 속을 썩여온 남편의 권리를 아들에게 온전히 세습시키고자 하는 몸부림이었다.



*****

아, 막 연재를 시작했는데 추천이 올라와서 무척 당황하고 기뻤습니다; 추천해주신 바람피리님 감사드립니다. 문피아 쪽 게시판이 하루 늦게 생성되어서 실제로는 연재 3일차고, 첫날 세 편, 둘째날 세 편, 그리고 오늘부터 한편씩 연재할 생각이었지만 추천에 삘받아서 한편 더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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