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설련하 님의 서재입니다.

삶의 위대함 - 한울 쥬맥

웹소설 > 작가연재 > 무협, 퓨전

완결

설련하
그림/삽화
설련하
작품등록일 :
2021.06.28 08:42
최근연재일 :
2022.10.17 08:20
연재수 :
290 회
조회수 :
379,661
추천수 :
7,321
글자수 :
2,467,752

작성
21.08.15 10:19
조회
1,315
추천
13
글자
19쪽

118화. 피바다 거원해(巨怨解)

삶의 위대함 - 한울 쥬맥




DUMMY

찬란한 태양이 멀리부터 대지를 빛으로 적셔 오기 시작하니, 양측은 모두 죽음을 향해서 움직이느라 바쁘다.


오늘은 서로 한 치의 양보도 할 수 없는 한판 승부를 벌일 참이라, 동원 가능한 전사는 모두 아침을 든든히 먹고 전장으로 향하였다.


싸움도 든든한 뱃심이 있어야 하는 법. 허기가 지면 힘을 제대로 쓰지 못하니 금방 패하기 마련 아니겠는가?


야차족은 진지 방어를 위한 삼만의 병력과 어젯밤의 전사자와 부상자를 뺀 사십오만의 전사들을 전장에 투입했다.


거인족도 이와 비슷하게 일만칠천의 거인들을 오늘의 전투에 대거 동원하였고.


먼저 진지 앞에서 전열을 정비한 대군이 뒤로 돌아서 서서히 적진을 향해 전진했다. 시간은 어느새 사시 초(9시)에 이르러 주변에는 벌써 갈가마귀와 독수리가 떼 지어 날아다니고 있었다.


야차족은 주로 독을 묻힌 화살과 무기들로 무장을 하였다. 덩치가 작으니 독으로 대신 덕을 보겠다는 것일 터.


그 외에도 전에 거인족과의 전투에서 효과를 보았던 발뒤꿈치나 무릎 관절을 공격하는 무기들, 멀리서 공격이 가능한 장창과 줄 끝에 매단 낫 등 다양한 무기들을 소지했는데······.


일부는 대형 활 수백 기를 몇 명이 조를 이루어 끌고 있었다.


거인족은 천인족을 침략할 때와 비슷한 무기들에다 독화살에 대비한 방어구가 더 늘었고 거차와 대력궁, 피차의 무기 수도 더 늘었다.


피차는 거대한 통나무의 양쪽에 바퀴를 달아서 끌고 달리며 송곳형 몸통으로 적을 깔아뭉개는, 초기의 낭아거를 거인족이 좀더 개량을 한 것이다.


뿌우우우~ 뿌우우우~


쿠아아앙~ 쿠아아앙~


마침내 두 종족(兩族)의 진군을 멈추라는 뿔고동과 징소리가 들리고······.


두 종족은 오십장 정도의 거리를 두고 길게 마주 섰다. 서로 말이 통하지 않으니 주고받을 대화도 없었다.


거인족 샤리네가 하얀 털에 멋지게 자란 붉은 갈기털을 휘날리며 앞으로 나서더니 거인들의 사기를 고양시켰다.


“오늘 우리는 앞서 비참하게 죽어 간 우리 거인들 일백 명의 원수를 같은 자리에서 되갚아 줄 것이다. 위대한 거인들이여! 그동안 피땀 흘려서 갈고닦은 그대들의 투혼을 보여 다오!”


그러자 무장을 갖춘 거인 전사들 일만칠천 명이 동시에 소리를 내질렀다.


“우와! 원수를 갚자!”


쿠앙~ 쿠앙~ 쿠쿠앙~


그 소리가 얼마나 우렁찬 것인지 온 들판이 들썩거렸는데······. 그때는 땅속에서 굴을 파던 두더지들마저 놀라서 움츠리며 숨을 죽였다.


이번에는 야차족에서 은색으로 빛나는 털 위에 은빛 견갑을 착용한 마린챠가 시리낙타를 타고 대군 앞에 섰다.


“저 덩치만 큰 멍청이들이 전에도 우리 영토를 침략하여 전멸을 당하고, 그 수치를 잊지 못해서 다시 우리의 땅을 짓밟으러 왔다. 전사들이여! 야차신의 이름으로 저들을 처벌하자!”


“와아! 침략자를 죽여라!”


“야차신의 이름으로 처단하라!”


뿌우뿌우우~ 뿌우뿌우우~


“공격하라!”


“돌격 앞으로!”


쿠앙~ 쿠앙~ 쿠앙~


뿌우우우~ 뿌우우우~


마침에 공격 명령이 떨어지고 양군이 적을 향해 서로 죽이려고 창칼을 내밀며 다가서기 시작했다.


“독화살을 쏘아라!”


뿌우~ 뿌우~


쉭! 쉬쉬식~ 쉬익!


명령과 뿔고동 소리, 화살 쏘는 소리가 뒤섞이며 야차족에서 수만 발의 독화살이 거인들을 향하여 날아들었다.


“끄아악! 아아악!”


화살을 막겠다고 방패를 들었지만 빈 틈새로 독화살에 당한 거인들이 죽겠다고 비명을 내지른다.


앞쪽의 거인들은 덩치에 걸맞지 않게 거차 뒤로 몸을 숨기고, 거차를 밀면서 앞으로 공격해 들어가는데······.


이번에는 거인들의 반격이 시작되었다.


“대력궁을 쏘아라!”


쿠앙~ 쿠앙~ 쿠쿠앙~


징 소리와 함께 ‘쿵! 쿵! 쿵!’ 하는 소리가 들리고, 거인족에서 거대한 화살 수천 발이 야차족을 향해서 수없이 날아갔다. 화살이 어찌 저리 클 수 있는지! 그리고 어떤 화살은 커다란 소리까지 냈다!


쑤앙! 쉬쉬쉬식! 쉬쉭!


“으아악~ 커흑!”


궤적을 파악하기 위한 명적(鳴鏑)이 섞여 있다 보니 일부 화살은 요란한 소리를 내면서 날아간다. 화살 하나가 야차족 서너 명을 꿰뚫고 지나서야 멈추니, 이 한 번의 교전으로 벌써 수천 명이 그 자리에서 즉사했다.


그러자 순식간에 사방에 피가 낭자하게 흐르는데······.


마침내 두 종족의 앞쪽에 늘어선 선두들이 적진과 맞닿기 시작했다.


숫자가 많은 야차족은 거인들을 감싸듯이 중군 좌우에 좌군과 우군을 두어, 양쪽에서 앞으로 밀고 나가며 학익진 형상으로 포진을 했다.


수가 적은 거인족은 강력한 힘으로 중앙을 돌파하여, 마치 야차족을 두 동강 내겠다는 듯이 거차를 앞세워 안익진 형상으로 밀고 나갔고.


그러니 충돌은 당연히 두 대군의 가장 앞부분 중앙에서부터 일어날 수밖에!


선두에서부터 충돌이 일어나자 거차를 앞세운 거인족은 날아드는 독화살들을 피해 가며 긴 무기들을 휘둘렀다.


막상 백병전이 시작되자 적아가 뒤엉켜서 활은 별로 소용이 없었으니······.


쿠구궁 구르르 쿠릉~


“으아악~ 살려줘!”


거차들이 전장을 무섭게 질주하자 주변의 야차족 전사들이 무수히 깔리고, 짓이겨지고···, 그리고 그 주변이 점점 피로 물들어 갔다.


그 뒤를 이어 이번에는 거대한 통나무에 쇠못을 수없이 박은 파차 수백 대가 거인들에 끌려서 전장을 질주했다. 보호구로 전신을 가린 채 적진을 무자비하게 질주하는 거인들!


덱 데구르르 쿠르르르르~


“끄아악~ 커흑!”


“아아악!”


마침내 핏물이 내를 이루어 흐르면서 메마른 땅을 검붉게 적시기 시작했다.


천인족과 전쟁할 때와는 전혀 다른 양상으로 거인들이 야차족을 짓뭉갰다.


그러자 형체를 알기 어려운 수많은 시신들이 바닥에 나뒹구니, 핏물이 땅을 적시고 거치적거리며 진로를 방해했다.


그래도 힘이 좋은 거인들은 파차를 끌고 이리저리 종횡무진으로 내달리니 가는 곳마다 보이는 건 오직 피바다뿐!!


토납술로 몸을 단련하여 날래진 야차족이라고는 하지만, 이제는 거인족도 토납술로 신체를 단련하니 속도나 힘에서 덩치에 밀릴 수밖에 없었다.


“으아아아악!”


“커흐윽!”


“나 좀 살려 줘!”


온갖 비명 소리가 전장에 가득한데, 바닥에는 상처 난 시신에서 흐르는 피로 검게 탄 대지가 질척거린다.


피가 모여 낮은 곳으로 내를 이루듯 흘러가니, 어느새 수만 명이 피바다 속에 몸을 누이고 있었다.


보이는 것은 숨이 끊어져 쓰레기처럼 구겨진 시신들과 오직 혈해(血海)뿐!!


이 참상을 하늘도 아는지 갑자기 맑은 하늘에 검은 먹구름이 몰려들더니, 마침내 번쩍거리는 번개와 쿠르릉대는 천둥소리가 대지를 뒤덮었다


쿠르릉! 꽈앙!


후두두두두둑!


피로 얼룩진 전장에 뿌옇게 시야를 가리며 소낙비가 거세게 쏟아졌다.


피가 피를 부르듯 동료들의 시신과 피를 본 양쪽 전사들은 점점 더 이성을 잃고 광기에 물들어 가는데······.


악마의 눈처럼 붉게 물든 눈을 사납게 치켜뜨고 그 빗속에서도 서로를 죽이겠다고 발버둥을 치고 있으니!


아비규환(阿鼻叫喚)이 따로 없었다. 이게 바로 생명들 스스로가 만들어 내는 처참한 지옥도가 아니겠는가?


빗물에 핏물이 뒤섞여 검붉게 변한 물이 바닥에서 한 자나 되게 차올랐다.


사방에 보이는 것은 그 속에 몸을 누인 누더기 같은 시신들과, 아직도 서로를 죽이겠다고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드는 부나방들이라!


오호통재(嗚呼痛哉)라!


지옥이 멀리 있는 게 아니로구나!


야욕에 물든 생명들의 허울좋은 명분 속에서 바로 지옥이 움트는 것이니!


마린챠와 미라챠는 야차족 전사들을 독려하며 거인들 속을 칼춤을 추면서 누볐고, 샤리네는 번개 같은 몸짓으로 야수 같은 손톱을 사방으로 휘둘렀다.


그때 중앙부에서는 한 거인이 이 장은 될 법한 거도(巨刀)로 사납게 내리치자, 야차족 전사가 칼을 들어 막았지만 그 힘을 감당하지 못하고 머리에서 가랑이까지 두 쪽이 나고 말았다.


“크아아악!”


그리고 사방으로 튀는 피와 내장들!


“이놈을 죽여라!”


동료가 죽자 주변에서 야차족들이 벌떼처럼 달려들어 여러 관절을 공격하고, 방어구의 틈으로 칼을 찔러 넣었다.


마침내 거인이 다리 관절을 다쳐서 쓰러지니, 야차족이 눈과 귀를 포함하여 약한 구멍마다 차가운 칼을 디밀고······.


이런 일이 도처에서 벌어졌다.


또 한쪽에서는 거인들 다섯이 둥글게 원을 그리고, 그 안에 야차족 전사들 수십 명을 몰아넣은 뒤 거대한 낭아봉으로 피육(皮肉)을 짓이기고 있었다.


쿠웅! 쿵!


“죽어라!”


“으아아아아악~”


온갖 고함과 처절한 비명이 서로 뒤엉킨다.


이렇게 서로를 죽이고자 발버둥치는 악전고투도 어느덧 세 시진(6시간)이 넘어가자, 너도나도 지쳐서 이제는 습관처럼 허우적대고 있었으니!


이 상태로는 도저히 끝을 볼 수 없는지라 양쪽 진영에서 거의 비슷하게 징과 뿔고동 소리가 울려 퍼졌다.


쿠앙~ 쿠앙~ 쿠앙~


뿌우우~ 뿌우우~ 뿌우우~


싸우다 지쳐서 허우적대던 양쪽 전사들이 손발을 멈추고, 피의 강 속에 주저앉아서 한참을 멍하니 앉아 있었다.


겨우 기운을 추스르고 양쪽 진지를 향하여 힘없이 돌아가기 시작하는데······.


이제 피바다가 된 들판에는 크고 작은 시신들만 셀 수 없을 만큼 널려 있었다. 일부는 중상으로 숨쉬기조차 힘들어 꺽꺽대는 사람도 있고······.


그리고 마지막 숨을 붙들고 뜨거운 숨을 몰아쉬고 있는 사람도 있고 말이다.


오늘 이 한 번의 대격전으로 야차족은 이십만 명이 넘게 죽었고, 거인족도 오천 명 가까이 죽어 나갔다.


막판에 큰 비가 쏟아지며 전장에 물이 차오르자, 부상당하거나 죽은 척하고 물속에 누워 있던 야차족들이 잔꾀를 부렸다.


먼저 근접한 거인족들의 보호구 틈으로 발뒤꿈치와 무릎을 집중 공격하여 질퍽거리는 땅으로 넘어뜨렸다.


그렇게 일단 거인들이 넘어지면 개미떼처럼 달려들어서, 일제히 목과 눈에 창칼을 쑤셔 넣었으니······.


덩치가 커도 당할 재간이 없어서 막판에 거인들의 피해가 늘어난 것이다.


두 종족은 전투를 멈추었음에도 전사한 동족들의 시신을 거두지 않았다. 그러니 벌판은 시신들로 가득 찬 채 하루해가 서서히 저물고 있었고.


억수처럼 비를 퍼붓던 하늘은 어느덧 개이고 무심한 흰구름만 여기저기 떠도는 가운데, 스러져 간 생명들의 원혼을 달래듯이 붉은 노을이 온 하늘을 뒤덮었다.


전장 바깥에는 무수한 짐승들이 몰려들고, 붉은 하늘에는 먹장구름처럼 검은 갈가마귀와 독수리 떼가 날아든다.


처음에는 눈치를 보며 몇 번 배회하다가 먹이를 찾아서 시신들에 내려앉았다. 어찌 보면 잔인한 풍경이지만···, 자연에서 나서 자연으로 돌아가는 한 갈래가 아니겠는가?


인간에게는 잔인한 것이 다른 동물들에게는 축복으로 비칠지도 모른다.


“내일을 위해서 모두 일찍 쉬어라!”


양군 모두 마치 아량을 베풀 듯이 휴식을 주지만 그 휴식은 무엇을 위해서일까? 이렇게 지친 몸을 쉬면서 적을 죽일 힘을 밤새 비축(備蓄)하더니, 날이 밝자 또 흉악한 무기들을 챙겨 들고 다시 전장으로 꾸역꾸역 모여들었다.


어제처럼 양쪽으로 야차족 이십오만과 거인족 일만이천이 늘어서더니 또다시 죽고 죽이는 지옥도가 펼쳐지는데, 조금 지나자 이상한 변화가 일어났다.


야차족이 이십 장이 넘는 거대한 뱀들을 수십 마리나 전장에 투입했는데, 그중에는 사람과 머리가 똑같이 생긴 인면사(人面蛇) 챠왕이 섞여 있었다.


거대한 뱀들이 거인들을 감아서 쓰러뜨리면 주변의 야차족이 벌떼처럼 들러붙어 목숨을 끊었다.


바로 인사(人蛇) 합동 작전!


특히 인면사 챠왕은 어찌나 사납고 날래던지 순식간에 수십 명의 거인들이 죽어 나갔다. 대부분 그 무서운 독에 당해서.


스르르륵~


쉬익! 쉭! 쉬쉬쉭!


긴 혀를 날름거리며 꿈틀거리는 거대한 뱀들 사이로 야차족과 거인들이 서로 뒤엉키고···, 생명이 또 덧없이 사라진다.


이 뱀들은 야차족의 야제(제사장들을 관장하는 우두머리, 전시의 군사역)가 키우는 뱀들인데, 지금 주술을 걸어서 거인들을 공격하고 있었다.


잘 이기고 있다가 갑자기 전세가 뒤집힐 것 같으니 결국 샤리네가 나섰다.


샤리네처럼 설인족의 털이 흰색으로 바뀌고 머리와 등에 굵고 빨간 갈기털이 자라면 변이를 일으키게 된다.


그러면 신통력을 갖게 되는데···, 주술과 환법진(幻法陣)을 꿰뚫어 볼 수 있고 신체적인 능력도 증가하여 몸에 도검이 잘 들어가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움직이는 속도와 힘이 좋아져서 굉장히 높은 전투력을 갖게 된다. 마치 지금의 샤리네처럼······.


샤리네가 길이 이 장에 이르는 거대한 도를 들고 앞으로 나서더니 입으로 무슨 주술의 진언 같은 것을 외웠다.


“후리훌리데~ 샤바니~ 바라 밀다홈~ 샤바라 밀다······.”


그 순간 거칠게 거인들을 공격하던 뱀들의 행동이 갑자기 느슨해지고, 마치 꿈에서 막 깨어난 듯이 사방을 두리번거렸다.


그러자 힘차게 고함을 지르는 샤리네.


“지금이다! 빨리 뱀을 죽여라!”


그러면서 자신도 함께 나서서 인면사(人面蛇)들만 골라 거대한 도로 머리를 힘껏 내리치니, 사람의 얼굴을 닮은 머리가 단칼에 잘려 나갔다. 그 잘린 목에서는 피가 분수처럼 뿜어져 나와 사람들이 흘린 피와 섞이는데······.


사나운 인면사들은 거의 샤리네가 처리하고 다른 뱀들도 거인들이 머리를 잘라서 죽이자, 다시 양측 전사들 간의 피 튀기는 백병전이 시작되었다.


“뱀이 모두 죽었다! 쳐라!”


“와아~ 죽여라!”


전투가 시작된 지 한 시진이 넘게 시간이 흐르면서, 어제 죽은 시신(屍身)들 곁으로 또 무수히 많은 시신들이 나뒹굴었다. 눈은 초점을 잃은 채.


어제 죽은 시신 일부는 밤새 들짐승에게 뜯겼는지 그 처참(悽慘)한 모습이 차마 눈뜨고 볼 수 없을 지경이었다.


전투가 시작된 지 두 시진(4시간)이 가까워 오면서, 야차족의 패색이 짙어지자 점점 뒤로 밀려나기 시작했다. 마린챠와 미라챠의 전신도 자신과 적의 피로 붉게 물들었다.


마침내 큰 골을 파고 마름쇠를 뿌린 곳 안쪽으로 밀려나며, 더 이상 밀고 들어오지 못하도록 통로를 막아섰다.


그러면서 양쪽에 높이 쌓은 축대에서는 거대한 활로 거인들의 머리와 눈에 공격을 가했다. 그러자 거인들도 피해가 늘어 더 이상 진격하지 못하고 뒤로 밀려났다. 보호구만으로는 강대한 화살을 막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이미 야차족은 승리가 물 건너간지라 어떻게 더 이상의 피해 없이 퇴군할 것인지를 놓고 고민하기 시작했다.


모두 옥쇄할 수는 없는 것이니까.


거인족이 더 이상 진격하지 못하고 다시 진지로 돌아가자 야차족은 후퇴할 준비를 명하더니, 저녁을 먹고 진지 뒤쪽으로 부상자들부터 빼내기 시작했다. 속도가 느리면 추격전이 벌어져서 또 피해가 늘 것이기 때문이다.


진지 앞쪽의 보초들과 보초용 시리낙타들을 그대로 둔 채 달이 뜨기 전에 순차적으로 조용히 진지를 빠져나갔다.


마침내 달이 떠올라 밝게 대지를 비추니 야차족 진지에는 보초들과 시리낙타 외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해시 말(23시).


샤리네가 천인대 대장들을 불렀다.


“야차족의 동태가 아무래도 이상하다. 진지 앞에 보초들은 서고 있으나 그 뒤가 쥐 죽은 듯이 조용하다. 지금 즉시 일 대를 끌고 가서 공격해 보도록!”


“알겠습니다. 일 대가 나가서 즉시 공격을 해 보겠습니다.”


명령을 받은 천인대 대장이 지휘소를 나와서 즉시 부하들을 이끌고 야차족 진지로 쳐들어갔다.


그러자 보초를 서던 야차족 전사들이 잽싸게 시리낙타를 타고 진지 뒤쪽으로 꼬리가 빠지게 줄행랑을 쳤다.


닭 쫓던 개가 지붕을 쳐다보듯이 황당한 얼굴로 멍하니 바라보던 거인들이 야차족 진지로 들어가서 살펴보는데······.


외곽으로 보이는 천막들 외에는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고 텅 비었다. 그러자 허탈하게 웃으며 돌아와서 샤리네에게 그 결과를 보고했다.


“야차족은 이미 모두 도망가고 없습니다. 이참에 뒤를 쫓아가서 아예 끝장을 보는 것이 좋지 않겠습니까?”


“이긴 싸움인데 더 이상 뒤쫓아서 적진으로 들어가 봐야 남는 게 없는 장사다. 우리도 내일 주변을 정리하고 철군한다. 모두 알려서 준비하도록.”


다음 날, 날이 밝자 거인족도 철군을 준비하여 부대를 나누어서 샤리네부터 돌아가기 시작했다.


오후가 되니 들판은 수 없이 널브러진 야차족과 거인족의 시신 외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아서 정적이 찾아왔다.


그러나 그 정적도 잠깐이고 들짐승과 날짐승 떼가 수도 없이 몰려들어, 버리고 간 시신들로 한 달이 넘게 실컷 배를 채우며 주변을 맴돌았다.


어떤 생명에게는 더할 수 없는 살육의 참사가 어떤 생명에게는 굶주림을 해결해 주는 하늘의 돌보심으로 여겨지니 어느 것이 옳은 것인가?


어느 것이 참이고 어느 것이 거짓이며, 어느 것이 선이고 어느 것이 악인가? 참으로 판단하기 힘든 동전의 양면이라!


이번 거인족과 야차족의 전쟁(戰爭)으로 거인족은 칠천이 죽고 삼천이 크게 다쳤으며, 야차족은 삼십만이 넘게 죽고 오만이 크게 다쳤다.


먼저 일어난 싸움에서 죽어 간 거인들 백 명의 복수를 하는데 양족(兩族)을 합하여 삼십만칠천 명의 목숨을 제물로 바치니, 이 얼마나 넉넉하고 자랑스러운 마음씨들인가? 오호통재라!


이 전쟁이 끝나고 거인족은 동족 백 명의 원한을 풀어 준 곳이라 하여 이 전장을 거원해(巨怨解)라고 부르게 하였다.


* * * * *


거인족과 야차족의 전쟁 결과가 각 종족들에게 차츰 알려지니, 삼십만 명이 넘게 죽은 그 참담(慘憺)한 결과에 모두 진저리를 치며 머리를 내저었다.


혹시 자기네 동족들도 다시 그런 전쟁에 휩쓸릴까 두려워서 모두 군비 증강에 힘쓰니, 이제 점점 더 큰 전쟁(戰爭)을 향하여 나아가게 되었다.


쥬맥에게도 두 종족의 전쟁이 전해지고 환시성 건설에 문제가 없도록 경계를 철저히 하라는 당부도 곁들였다.


그것은 백호대 수련도 게을리하지 말라는 소리나 같았고 말이다.


이에 경각심을 가지고 백호대 수련과 자신의 경지를 높이기 위한 수련에 박차를 가했다.


바로 유비무환!


성 쌓는 일과 수련을 병행해야 하는 벅찬 일정이 이어졌다. 그렇지만 누구 하나 불평불만을 얘기하지 않았다.


대장인 쥬맥이 항상 다른 부대원들보다 앞장서서 솔선수범을 했기 때문이다.


“내가 먼저 할 테니 모두 따라오세요.”


그렇게······.

118화 거원해 위치 지도.png

118화 거원해 위치 지도




감사합니다. - 설련하(偰輦河)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삶의 위대함 - 한울 쥬맥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113 113화. 환시성을 건설하라 21.08.10 1,338 15 18쪽
112 112화. 환시(桓市)를 향하여 21.08.09 1,335 14 17쪽
111 111화. 부족장이 되다 21.08.08 1,320 17 18쪽
110 110화. 영천(靈泉)에 계신 아버지 21.08.07 1,331 17 18쪽
109 109화. 중계(中界) 수행 21.08.06 1,327 18 18쪽
108 108화. 힘이 있어야 평화도 이룬다 21.08.05 1,301 20 19쪽
107 107화. 생사의 기로에서 얻은 기연 21.08.04 1,313 21 18쪽
106 106화. 소리 없이 다가온 음모 21.08.03 1,299 22 18쪽
105 105화. 또 다른 재앙덩어리 천마수 21.08.02 1,327 24 18쪽
104 104화. 결혼 초야(初夜) 21.08.01 1,340 26 19쪽
103 103화. 꿈꾸던 가정을 꾸리다 +1 21.07.31 1,328 25 18쪽
102 102화. 호사다마(好事多魔) +1 21.07.30 1,314 27 18쪽
101 101화. 가정을 꿈꾸다 +1 21.07.29 1,314 28 18쪽
100 100화. 옛 상처를 지우다 +2 21.07.28 1,326 30 17쪽
99 99화. 우군(友軍)을 만들다 +1 21.07.27 1,315 28 18쪽
98 98화. 사랑은 다시 움트고 +1 21.07.26 1,325 30 20쪽
97 97화. 이기어검(以氣馭劍) +1 21.07.25 1,318 31 19쪽
96 96화. 인면(人面)의 오색요접 +1 21.07.24 1,341 31 18쪽
95 95화. 수련에 몰두하다 +1 21.07.23 1,330 33 19쪽
94 94화. 겨울이 가면 봄이 온다 +1 21.07.22 1,330 34 19쪽
93 93화. 천망과 천인족의 혈투(血鬪) +1 21.07.21 1,336 35 18쪽
92 92화. 천망! 그 대재앙의 시작 +1 21.07.20 1,337 35 20쪽
91 91화. 친구 수르의 결혼 +1 21.07.19 1,356 37 18쪽
90 90화. 동명이인(同名異人) +1 21.07.18 1,333 37 19쪽
89 89화. 수르의 애인(愛人) +1 21.07.17 1,332 38 17쪽
88 88화. 대재앙(大災殃)의 잉태 +1 21.07.16 1,342 39 18쪽
87 87화. 노무사들의 분노(忿怒) +1 21.07.15 1,332 42 19쪽
86 86화. 장기전의 묘수 +1 21.07.14 1,348 42 18쪽
85 85화. 혈전 또 혈전 +1 21.07.13 1,318 42 19쪽
84 84화. 운명을 건 전쟁 21.07.12 1,338 42 18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