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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련하 님의 서재입니다.

삶의 위대함 - 한울 쥬맥

웹소설 > 작가연재 > 무협, 퓨전

완결

설련하
그림/삽화
설련하
작품등록일 :
2021.06.28 08:42
최근연재일 :
2022.10.17 08:20
연재수 :
290 회
조회수 :
378,304
추천수 :
7,321
글자수 :
2,467,752

작성
21.07.16 10:28
조회
1,338
추천
39
글자
18쪽

88화. 대재앙(大災殃)의 잉태

삶의 위대함 - 한울 쥬맥




DUMMY

비월족의 금령월은 기유월과 함께 소인족의 침략군을 쳐서 대승을 거두었고, 그로 인하여 비월왕 환제월에게 크게 인정을 받았다.


그래서 삼만 명이던 지상 타격대를 오만 명까지 늘리고 그 총대장을 맡았다.


쥬맥에게 배운 토납술로 출세를 하여 같은 오색비월의 예쁜 신부를 맞이하였고 신혼의 단꿈에 젖어 있었으니···.


쥬맥을 돌보아 주었던 금령월의 어머니인 비류월도 이제 예순세 살이 되어 남들처럼 빨리 예쁜 손자를 보고 싶다고 보채니, 금령월 부부는 그 소원을 풀어 주기 위해서 밤낮으로 열심히 일(?)했다.


그 결과 임신 소식을 알리니 비류월은 좋아서 춤을 추면서 남편을 이끌고 만월이 빛나는 창공으로 날아올랐고.



한편, 반인족 대추장 울트는 요즘 고민이 많았다.


천인족과 물물 교역소를 운영하며 여러 가지 정보를 입수하였으나, 이를 어떻게 알았는지 교역소가 잠정 폐쇄(閉鎖)되어 천인족에 대한 많은 정보가 끊겼다.


그런데 다른 경로로 입수된 정보에 의하면, 이번에 천인족이 거인족과 대대적인 전쟁을 해서 이겼다고 한다. 그동안 정보를 활용하여 무력을 키우고 천인족에게 설욕할 날만 기다려 왔는데 말이다.


‘천인족이 정말 그렇게 강한 것일까?’


직접 싸워 보고도 잘 믿기지 않았다.


그래서 결과보다는 그 내용에 주목했다. 거인군 일만의 정예를 맞아서 삼만의 전사자만 내고 선방을 하였다는데, 아직 반인족은 그만한 능력이 없었다.


‘이번에 거인족이 선보인 새로운 무기류와 전술 등을 봤을 때, 언젠가는 지난번 거인족을 백혼곡에서 크게 무찌른 것에 대한 보복전이 있을 텐데?’


은근히 걱정이 되어 고민을 해 보지만 이제 거인족도 전번처럼 쉬운 상대가 아니다. 무기도 무기지만 그 큰 덩치에도 불구하고 행동들이 무척 빨라졌다.


그들도 여기저기서 당하여 놀지 않고 열심히 준비했는지 이제 예전의 그 덩치만 크고 멍청한 거인들이 아니었다.


다음은 산처럼 쌓여 있는 소금 처리가 문제였다. 지금까지는 천인족에게 좋은 조건으로 물물 교환을 하면서 재미를 보았는데, 이제 교역이 중단되었으니 새로운 판로를 찾아야 한다.


‘다시 거인들과 거래를 해야 하나?’


생각할수록 여러 가지로 고민이 된다.



그런데 고민이 많기는 소인족도 마찬가지.


근래에 보기 드문 기근이 들어서 식량을 조달하기 위해 미르만을 건너 비월족 영역에서 사냥을 하다가, 온순하다고 쉽게 보았던 비월족에게 당했다.


소원림 전투로 오천 명 중에서 사천육백이 넘는 숫자가 달빛 아래 고혼이 되어 돌아오지 못했다. 그런데 비월족은 몇백 명 죽지도 않았다고 하지 않는가?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아무리 생각해도 기가 차다. 언제부터 비월족이 저리도 강했단 말인가? 새처럼 유약하게 하늘에서나 공격하던 그들이 왜 지상전에서까지 강해진 것일까?


소인족들은 천인족에게 적소인이 당하고 비월족에게 황소인과 백소인이 당하고 나니, 이러다가는 다른 종족에게 밀려서 설 자리를 잃는 것은 아닌지 전전긍긍하며 대책을 강구하고 있었다.


더구나 이번에 천인족과 거인족의 거대한 전쟁을 보면서 깜짝 놀랐다. 그 무기와 전술이 소인족은 감히 상상도 하지 못한 것들이었고, 그 몸놀림은 흉내도 낼 수 없었으니 말이다.


그래서 적소인, 황소인, 백소인의 세 천장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모두 생존(生存)을 위하여 코가 석 자나 빠졌다. 다른 종족과의 전쟁에 대비한 여러 가지 무기 개발과 전략 전술에 대한 협의로, 벌써 며칠째 밤을 지새는지 모르겠고······.


함께 머리를 맞대고 토론하고, 또 토론하면서 그 대책을 강구했다.


한편으로는 비월족과의 전쟁에 져서 미르만을 건너갈 수가 없으니, 식량을 조달하기 위하여 물고기가 많은 미르만에서 물고기잡이에 열을 올렸다.


오늘도 소인족들이 배와 뗏목을 수백 척이나 동원하여 거대한 그물로 미르만에서 물고기를 잡고 있었다. 그 총지휘(總指揮)를 백소인족의 현현라가 맡았는데······.


“그물을 끌어올려라! 오늘은 만선의 기쁨을 누려 보자.”


“고기가 빠져나가지 않게 그물을 잘 잡아라!”


“영차! 영차!”


“영치기 영차!”


백소인들이 개발한 거대한 그물이 나무로 만든 물레에 감겨서 두 척의 대형 어선으로 끌려 올라가고, 뗏목들이 그 사이를 누비며 보조를 하고 있었다.


미르만에는 다양한 대형 어류와 대형 파충류도 많이 서식하지만, 그동안 소인족의 출입이 금기시되어 왔다. 쪼들리는 식량 문제만 아니라면 절대로 여기에서 고기를 잡지 않을 것이다.


그 이유는 가끔 이곳에 천망(天蟒)이라는 거대한 초대형의 대망(大蟒)이 지나가기 때문인데······.


북쪽의 깊은 바다에서 생활하는 천망은 가끔 먹이를 찾아 미르만을 통해서 바이칸대호수의 지류까지 가기도 했다.


천인족이 이주할 때 사차원의 공간균열을 통해서 신수들을 따라 들어온 천망은, 신수들 몰래 북명해의 깊은 바다 밑에 터를 잡았다.


새끼 때는 대망(이무기 종류)이라 불리며 커다란 구렁이 형태지만, 천 년 이상을 살아서 성체에 이르면 비로소 천망이라 불리는데, 몸통 지름이 오십 장(150m)에 그 길이가 천삼백삼십 장(4km) 이상까지 성장하는 초대형 파충류였다.


그야말로 무지막지한 괴물 같은 크기.


아무리 큰 공룡도 한입감에 지나지 않았다. 심지어 인드리코룡마저도···. 또한 살생을 서슴지 않으니 신수보다는 차라리 요수에 가까웠다.


오늘은 유난히 어망이 무겁다. 아마 큰 물고기가 많이 잡혔나 보다. 모두 좋아서 힘들지만 희희낙락(喜喜樂樂)하며 열심히 그물을 잡아당겼다.


“더 힘을 써라! 대어가 잔뜩 잡힌 모양이다.”


“힘껏 끌어올려라!”


“영차! 영차! 어기 영차! 영차!”


그물이 점점 위로 올라오는데 물고기도 아니고 메기 종류도 아닌 거대한 뱀 같은 것이 그물에 싸여 몸부림치고 있었다. 식량도 부족한데 잘되었다 싶은데, 덩치가 얼마나 큰지 무거워서 배 위로는 도저히 끌어올려지지가 않는다.


그렇다고 놓아주자니 너무 아깝고······.


결국 근처의 부족들까지 모두 불러 모아, 수백 명이 달라붙어서 소인족 측의 육지로 그물을 끌어올렸다.


올려놓고 보니 몸통 직경이 삼 장(9m)이 넘고, 길이는 칠십 장(210m)에 가까운 초대형(超大型) 뱀이 아닌가?


그물에 들어 있지 않았으면 감히 사냥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엄청나게 큰 뱀!


대신에 잡기만 하면 한동안 식량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니, 모두 작살과 창이나 칼을 이용하여 그물 밖에서 사정없이 대망을 찔렀다.


“대물이다! 빨리 죽여라!”


“우에에에에에엑~~~”


그물 속에서 소인족들이 처음 보는 거대한 뱀이 울부짖었다.


마치 어미를 부르는 듯한 포효(咆哮)에 움찔 놀랐지만 더욱 힘을 내어 수백 명이 찔러 대니, 단단한 가죽도 제대로 몸을 보호하지 못하는지 몸 여기저기에서 피가 분수처럼 치솟았다.


사실 이 거대한 뱀은 천망의 새끼인 대망이었다. 아직 대망을 직접 본 적이 없는 소인족은 천망의 새끼인지도 모르고 대재앙을 몰고 오는 사냥을 하고 있는 것이었고······.


지구에 겨우 안착하여 힘들게 얻은 새끼가 인간들에게 사냥을 당한 것을 알면 천망이 가만히 있을 리 없다.


“우에에에에에엑~~~”


또 한 번 애통하게 어미를 부르는 듯이 울부짖은 대망은, 전신에서 피가 빠지고 눈과 뇌에까지 작살이 박히자 서서히 꿈틀거림이 줄어들다가, 결국은 죽었는지 꿈쩍도 하지 않았다.


“드디어 잡았다. 만세!”


“이제 한동안 식량 걱정은 안 해도 된다. 만만세!”


“가죽을 벗기고 고기를 나누어라. 이놈으로 만찬을 즐기자.”


소인족들은 많은 식량이 생긴 것에 흥분하여 들떠 있었다. 앞으로 어떤 일이 닥칠지 모르나 그것은 내일의 일이다. 그때의 일은 닥치면 그때 해결하면 그뿐인 것이니!


이렇게 안이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설사 내일 죽더라도 오늘은 먹고 살아야 하는 것이니.


* * * * *


저녁 무렵이 되어 수르가 쥬맥을 찾아왔다. 이제 애도 기간(哀悼期間)도 모두 지났으니 오랜만에 술이나 한잔 하면서 기분을 풀자고 졸랐다.


쥬맥도 여러 가지 일을 겪으면서 마음이 복잡한지라 한잔 술로 심사를 달래고 싶어서 얼른 따라나섰다.


외부에 있는 주거지에는 그다지 큰 주점이 없어서 본래의 주거지로 마실 만한 술집을 찾아갔는데······.


그중 제일 크고 음식을 잘한다는 천경루(天驚樓)라는 주점으로 들어섰다.


지난번에 전쟁이 끝나고 참전 무사와 전사자들에게 많은 위로금(慰勞金)이 나와서 주머니는 두둑했으니.


쥬맥은 벌써 유명 인사가 다 되었는지 주점(酒店)에 들어서자 점원이 백호제마검을 알아보고 반갑게 맞이했다.


“어서 오십시오. 쥬맥 대장님.”


“나를 아는가?”


“우리 부족에서 백호제마검을 가지신 분은 쥬맥 대장님뿐이잖아요.”


“그래, 쑥스럽구만. 술 한잔 하려는데 자리는 있나?”


“걱정 마시고 저를 따라오십시오.”


점원이 뭐가 좋은지 싱글벙글하며 쥬맥을 2층으로 안내했다.


2층에도 많은 사람들이 자리를 채우고 있는데 밖이 잘 보이는 난간 쪽으로 6인석 자리가 하나 비어 있었다.


아마 손님이 금방 갔는지 그릇들을 치우며 마무리를 하는 중이었고.


잠깐 기다리다가 금방 정리가 끝나자 자리에 앉았다. 수르가 창가에 앉아서 밖을 보더니 감탄사를 연발한다.


“와! 전경(全景)이 끝내준다. 술이 절로 넘어가겠는데······.”


“왜? 오늘 술값은 네가 내게?”


“야! 그런 것은 평소에 내던 사람이 내야지. 그래야 안 헷갈린다.”


그러자 쥬맥이 실없게 피식 웃고는 점원을 보면서 주문을 했다.


“오늘은 술과 요리가 어떤 것이 좋은가? 한번 추천해 보게.”


“술은 적령이 제일 좋구요, 안주로는 셀렝게메기탕과 실비오닭찜이 좋습니다. 필요하시면 쌀밥도 같이 드립니다.”


“밥은 되었고, 그럼 적령주하고 셀렝게메기탕과 실비오닭찜을 가져다주게. 가만? 셀렝게메기는 독이 있는데···, 괜찮나? 조금 위험하지 않을까?”


“독을 먼저 제거하고 요리를 하니 걱정하지 마십시오. 맛이 쥑입니다.”


그러면서 엄지손가락을 세워 보이며 씩 웃는다.


“그럼 가져오게. 그런데 요리는 한 번에 가져오면 식으니까 좀 먹고 나면 실비오닭찜은 그 뒤에 주게.”


“알겠습니다. 잠시 기다려 주십시오.”


아직 앳티가 남아 있는 점원이 헤실거리고 웃으며 계단을 내려갔다.


주위를 둘러보니 모두 쥬맥을 바라보다가 얼른 얼굴을 돌렸다. 아마 벌써 유명세(有名稅)를 타는 모양이다.


다른 좌석에는 젊은 남자들만 있는 자리도 있고 처녀 총각이 뒤섞인 자리도 여럿 있었다. 한 좌석만 조금 나이 든 중년(中年)의 어른들이 점잖게 술을 마시고 있었고.


수르와 이런저런 얘기를 하고 있는데 금방 술과 안주가 나왔다.


“자, 술 귀신! 한 잔 받아라.”


“정말 오랜만에 마신다. 그지? 맥아, 너도 한 잔 받아라.”


“그래, 오랜만에 건배할까? 자 건배!”


“수르의 장가를 위하여, 건배!”


“뭐야? 네가 왜 네 장가를 위해서 건배를 해? 하면 내가 해야지.”


“이건 비밀인데···, 실은 나 조만간에 장가갈지도 모른다. 이제 총각 딱지를 뗄 때가 된 것도 같애.”


“뭐야? 정말이야? 누군데? 언제 만났는데? 언제 할 건데?”


궁금증이 터진 쥬맥이 수르가 대답할 새도 없이 정신없이 질문을 던졌다.


“야! 정신 사납다. 하나씩만 물어봐.”


“그럼 누군데?”


“음~ 이름이 아인이야 맥아인!”


“언제 만났는데?”


“이번에 거인족과의 전쟁 때 만났지.”


“뭐? 전쟁 때 연애할 정신이 있었어?”


“이번에 여무사들이 많이 참전했잖아? 죽을 고비에서 내가 세 번이나 구해 줬지. 그랬더니 내가 좋다고 하던데?”


“너 임마, 그러고 보니까 내 옆에 안 있고 한 여자 앞에서 자꾸 알짱거리더니 꼬실려고 일부러 그랬지?”


“당근이지. 그럴 때 아니면 어떻게 여자를 꼬시냐? 죽을 목숨을 살려 주는데 안 넘어올 여자가 있겠어?”


“이놈아! 남은 목숨을 걸고 싸우고 있는데 너는 옆에서 여자를 꼬시냐?”


“야! 나도 목숨을 걸고 구해 준 거야. 그것도 자그마치 세 번씩이나!”


수르가 마치 자랑스럽다는 듯이 손가락 세 개를 펴 보이면서 좌우로 흔들었다. 얼굴엔 득의에 찬 미소를 짓고.


“나도 수없이 구했는데······. 그런데 나는 좋다는 그런 여자가 없던데?”


“멍청하기는···. 임마, 한 구멍을 파야지. 여기저기 다 구해 주니까 인기가 없지. 요령이 있어야지 요령이. 이 여자 저 여자를 안 가리고 다 구해 주면 바람둥이인 줄 알 것 아니냐?”


“아~ 또 전쟁 안 나나?”


“임마! 여자나 꼬실려고 전쟁이 나기를 바라냐? 큰일 날 놈이네 진짜.”


“에구, 네 앞에서는 내가 농담도 못 하겠다. 그래 언제쯤 결혼할 건데?”


“음~ 너 약 좀 올리고······, 한 세 달 뒤에나 할까 생각 중이야.”


“재미있게 연애도 좀 하고 해야지. (귓속말로) 근데 예쁘냐?”


“그럼, 당근이지. 미우면 내가 왜 세 번이나 목숨을 걸고 구하겠냐?”


“제수씨는 언제쯤 소개시켜 줄 건데?”


“말 조심해 임마! 내가 먼저 결혼하니까 제수씨가 아니라 형수씨지.”


“에이, 더러워. 나보다 한 달이나 늦게 태어난 놈이 형이라네.”


“그 한 달 가지고 친구 사이에 형 동생을 따지는 놈이 어딨냐?”


“웃긴 소리 마. 한 달이면 밥그릇 국그릇 찬그릇 물그릇 찻잔 수저까지 천개가 넘는다~. 그걸 늘어놓으면 까마득해서 네 얼굴도 안 보여 임마.”


“와! 이제는 별것을 다 갖다 붙이네. 그래, 니가 밥그릇이 나보다 많으니까 형 해라. 대신에 술값은 영원히 형이 내는 거다. 알간? 싫으면 동생하고.”


“어쭈~ 너는 술값이나 한 번 내고 얘기해라 잉~”


둘이 정신없이 말장난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옆에서 누가 치고 들어왔다.


“저~ 쥬맥 대장님 아니십니까? 제 술 한 잔 받으시죠.”


“아~ 예, 그런데 누구시더라?”


“저는 천령대의 이을민입니다. 이번에 구해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아~ 그래요. 그거야 같이 적과 싸우는데 당연한 것이죠.”


그런데 이번에는 또 저쪽 구석에서 세 명이 우르르 오더니 덩달아 권했다.


“제 잔도 한 잔 받으시죠. 저도 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도······.”


“저도······.”


정신없이 이 사람 저 사람이 권하는 술잔을 모두 받아서 마시다 보니 자신도 모르게 잔뜩 취해 버렸다.


“어~ 기분 좋다!”


달빛은 교교하게 빛나는데 술이 얼큰하게 취해서, 수르와 함께 어깨동무를 하고 비틀거리며 길을 따라서 돌아오는 길.


취해서 세상만사를 다 잊어버리니 좋다. 진기로 순식간에 술기운을 몰아낼 수도 있지만 그러려면 구태여 비싼 돈 주고 술을 마실 필요가 있겠는가?


하천가의 다리를 보니 일곱 살 어릴 때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서른이 얼마 남지 않았다. 뒤돌아보니 새삼 세월이 유수(流水)같이 느껴진다.


요즘은 일찍 죽는 사람이 많아서 조혼이 유행이라 둘은 이미 노총각 소리를 듣고 있었다.


자식들이 줄줄이 죽어 나가니 대가 끊길까 두려운 부모들은 자식을 더 낳고, 잃어버린 자식에 대한 슬픔을 새로 낳은 자식에게 쏟는 사랑으로 달래며 살아가는 세상!


그런다고 가슴에 묻은 자식이 잊힐 리 없건만은······. 그 슬픔이 말이다. 그 슬픔의 크기를 어찌 말로 표현할 수 있으리.


둘이 막 하천가 다리를 지나려고 하는데 어디서 흐느끼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 여자인 듯한데 자세히 들어 보니 다리 밑에서 울고 있는 것이 아닌가?


예전에 쥬맥도 다리 밑에서 유리와 안명의 대화를 들은 기억을 떠올리며 내려다보니 누군가 얼굴을 파묻고 홀로 구슬피 울고 있었다.


밤늦은 이 달밤에 하천의 다리 밑에서 애처롭게 홀로 울고 있는 여인! 그 모습만으로도 보는 사람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그런데 누구일까?


지난 전쟁에서 사랑하는 누군가를 잃어버린 것일까? 그도 아니면······.


그 흐느낌이 너무도 서글프다.


호기심이 일었지만 둘은 아는 체하기도 그렇고, 이 늦은 밤에 혼자 우는 여인을 두고 가는 것도 마음에 걸려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데······.


결국 수르가 마음을 다잡고 다가갔다.


“무슨 일인지 모르겠지만 밤이 이미 늦었으니 그만 돌아가시죠.”


“으흐흐흑!”


여인은 더 서럽게 울다가 얼굴을 쳐드는데, 달빛 아래 슬픔에 젖어 눈물로 범벅이 된 하얀 얼굴이 드러났다.


그 얼굴을 자세히 살펴보던 수르가 아는 사람인지 깜짝 놀랐다.


“아니, 유린이잖아! 여기서 왜 울고 있어? 결혼했으니까 이제 말을 올려야 하나? 아무튼 어서 일어나 나가자.”


울고 있는 사람이 유린이라는 말에 쥬맥은 또 심장이 쿵 하고 떨어졌다. 이미 보내고 잊은 사람이지만, 이 밤중에 외진 곳에서 새도 아닌데 홀로 우는 여인이 자신이 예전에 사랑했던 사람이라니! 왜일까?


아무런 이유도 없이 밀려오는 이 서글픔!


“자~ 자, 그만 울고 나가자.”


겨우 달래어 데리고 나와서 다리 난간에 셋이 걸터앉았다. 쥬맥은 어색하여 말하기가 거북했지만 인사는 해야지 싶어서 어쩔 수 없이 말을 건넸다.


“그동안 잘 지냈지? 그런데 무슨 일이 있어?”


“으흐흐흑!”


또 한 차례 구슬프게 울음을 쏟아 낸 보유린이 조금씩 마음을 진정시키더니 겨우 입을 열었다.


“지난번에 거인족과의 전쟁 때······, 그이가 싸우다가 전사를 했어.”


“정말이야? 어쩌다가 그런 일이······.”


“흐흐흑!”




감사합니다. - 설련하(偰輦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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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1

  • 작성자
    Lv.32 무림존자
    작성일
    21.07.16 16:31
    No. 1

    에이 유린이 불쌍하네. 사랑하지도 않는 사람과 정략 결혼한 것도 서러운데 신랑마저 전재터에서 죽다니. 그렇다고 쥬맥에게 다시 붙이지 마세요.

    찬성: 31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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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3 113화. 환시성을 건설하라 21.08.10 1,335 15 18쪽
112 112화. 환시(桓市)를 향하여 21.08.09 1,333 14 17쪽
111 111화. 부족장이 되다 21.08.08 1,317 17 18쪽
110 110화. 영천(靈泉)에 계신 아버지 21.08.07 1,327 17 18쪽
109 109화. 중계(中界) 수행 21.08.06 1,325 18 18쪽
108 108화. 힘이 있어야 평화도 이룬다 21.08.05 1,299 20 19쪽
107 107화. 생사의 기로에서 얻은 기연 21.08.04 1,311 21 18쪽
106 106화. 소리 없이 다가온 음모 21.08.03 1,297 22 18쪽
105 105화. 또 다른 재앙덩어리 천마수 21.08.02 1,324 24 18쪽
104 104화. 결혼 초야(初夜) 21.08.01 1,337 26 19쪽
103 103화. 꿈꾸던 가정을 꾸리다 +1 21.07.31 1,323 25 18쪽
102 102화. 호사다마(好事多魔) +1 21.07.30 1,309 27 18쪽
101 101화. 가정을 꿈꾸다 +1 21.07.29 1,309 28 18쪽
100 100화. 옛 상처를 지우다 +2 21.07.28 1,322 30 17쪽
99 99화. 우군(友軍)을 만들다 +1 21.07.27 1,311 28 18쪽
98 98화. 사랑은 다시 움트고 +1 21.07.26 1,321 30 20쪽
97 97화. 이기어검(以氣馭劍) +1 21.07.25 1,311 31 19쪽
96 96화. 인면(人面)의 오색요접 +1 21.07.24 1,335 31 18쪽
95 95화. 수련에 몰두하다 +1 21.07.23 1,325 33 19쪽
94 94화. 겨울이 가면 봄이 온다 +1 21.07.22 1,326 34 19쪽
93 93화. 천망과 천인족의 혈투(血鬪) +1 21.07.21 1,334 35 18쪽
92 92화. 천망! 그 대재앙의 시작 +1 21.07.20 1,334 35 20쪽
91 91화. 친구 수르의 결혼 +1 21.07.19 1,355 37 18쪽
90 90화. 동명이인(同名異人) +1 21.07.18 1,328 37 19쪽
89 89화. 수르의 애인(愛人) +1 21.07.17 1,329 38 17쪽
» 88화. 대재앙(大災殃)의 잉태 +1 21.07.16 1,339 39 18쪽
87 87화. 노무사들의 분노(忿怒) +1 21.07.15 1,330 42 19쪽
86 86화. 장기전의 묘수 +1 21.07.14 1,345 42 18쪽
85 85화. 혈전 또 혈전 +1 21.07.13 1,315 42 19쪽
84 84화. 운명을 건 전쟁 21.07.12 1,333 42 1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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