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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련하 님의 서재입니다.

삶의 위대함 - 한울 쥬맥

웹소설 > 작가연재 > 무협, 퓨전

완결

설련하
그림/삽화
설련하
작품등록일 :
2021.06.28 08:42
최근연재일 :
2022.10.17 08:20
연재수 :
290 회
조회수 :
378,284
추천수 :
7,321
글자수 :
2,467,752

작성
21.07.17 10:20
조회
1,328
추천
38
글자
17쪽

89화. 수르의 애인(愛人)

삶의 위대함 - 한울 쥬맥




DUMMY

보돈타 대족장의 권력 욕심으로 사랑하지도 않는 야율린 대족장의 아들 야수린과 정략(政略) 결혼을 한 유린이는, 결혼 생활 내내 마음 고생이 심했다.


그런데 정이 없어도 그나마 의지했던 신랑마저 지난 거인족과의 전투에서 전사해 버리니 마음이 갈 곳을 잃었다.


시댁 식구들은 마치 여자를 잘못 만나서 단명(短命)을 한 것처럼 말하니 하루도 마음 편할 날이 없는 것. 밥 한 끼 먹는 것마저도 눈치를 봐야만 했다.


그래서 이 달밤에 홀로 천변을 걷다가, 옛날 쥬맥이 살았던 집 앞을 지나면서 잊고 살았던 첫사랑의 추억으로 ······, 그리고 자신도 모르게 설움이 복받쳐서 다리 밑에 숨어 울고 있었던 것이었으니.


“남편이 먼저 떠난 것은 안됐지만 그래도 얼른 잊고 일어서야지.”


“고마워! 나는 이만 갈게.”


“밤중인데 집 앞까지 바래다줄까?”


“아니야. 시댁에서 보면 이상하게 생각할 거야. 고맙지만 그냥 혼자 갈게.”


“그래, 그럼 조심히 가.”


유린이가 비척비척 일어나더니 힘없이 터덜터덜 걸어가는데, 길게 흘러내린 검은 머리가 윤기를 잃고 푸석해 보인다. 전에는 흑단처럼 검게 빛나던 머리였는데······. 아~ 유린아!


쥬맥은 아픈 마음으로 그 뒷모습을 한참 동안이나 멍하니 바라보았다.


‘좋은 데로 시집을 갔으면 행복하게 잘 살지 왜 내 마음을 이리도 아프게 하니?’


술기운은 언제인지 확 깨어 버렸고, 돌아서는 발걸음이 무겁기만 하다.


“하! ······.”


자신도 모르게 한숨이 나오는데, 수르도 쥬맥의 무거운 마음을 아는지 흘낏흘낏 눈치를 보며 아무런 말이 없다.


“수르야, 마음도 착잡한데 우리 당산나무 아래서 잠시 쉬었다 가자.”


“그래, 그러자.”


둘은 터벅터벅 걸어서 길가의 돌멩이를 이유 없이 발로 차면서 천천히 당산나무 아래 정자(亭子)에 이르렀다. 돌멩이는 왜 자신이 차인지도 모르고 더 큰 돌에 부딪치면서 산산이 부서졌다.


금령파를 연습하면서 치렀던 홍역을 생각하며 들판을 둘러보니, 올해는 하나도 죽지 않고 잘 자라서 풍년이 들듯하다.


이곳에는 어릴 때의 추억들이 너무도 많았다. 천 년이 넘게 자란 거대한 정자나무(귀몽나무)를 사람들이 요즘은 당산나무라고 부르고 있었다.


천령수가 멀리에 있으니 가끔 몇 사람이 이곳에 와서 천령수 대신 정자나무 앞쪽에 제물을 놓고, 하늘에 제사를 지내면서 붙여진 이름이었다.


“수르야, 너 저기 당산나무 가지가 큰 게 부러진 것 보이지? 그게 왜 부러졌는지 알어?”


“하하하! 왜 부러졌냐고? 임마, 네가 부러뜨렸잖아. 나뭇가지로 그네를 탄다고 새끼줄에 돌을 매달아 던져서 잡더니, 저 대밭 쪽으로 그네를 타다가 부러진 거잖아. 그때 떨어져서 아마 혼 좀 났을걸.”


“아이구 야, 말도 마라. 그때 나뭇가지하고 함께 대나무밭에 떨어졌는데 대나무를 베고 남은 날카로운 끌텅(그루터기)에 허벅지를 깊게 찔렸어. 얼마나 아픈지 정신이 아득해서 꼭 죽는 줄 알았다.”


“너 그때의 상처가 아직도 남았지?”


“와! 얼마나 깊게 흉터가 생겼는지 피부가 몇 겹 벗겨졌는데도 없어지지 않고, 아직도 여기 이 허벅지에 그대로 남아 있다. 그것도 다 추억이지 뭐.”


“너 나중에 내 말 안 들으면 네 아들한테 아버지가 그렇게 개구쟁이였다고 다 일러 바친다. 잘 해라. 알간?”


“야, 너는 뭐 새 잡는다고 굴에 손 넣어서 구렁이를 잡아낸 녀석이, 너나 나나 도찐개찐(도긴개긴)이다 이놈아!”


“하하하하!”


“으하하하!”


한바탕 웃고 나니 기분이 좀 풀린다. 많이 마셨던 술도 어지간히 깨었고.


“그런데 네 애인은 언제 소개시켜 줄 건데? 궁금해 죽겠다.”


“왜? 네가 봐서 아니다 싶으면 딱지를 놓으려고? 흥, 어림없지. 노총각 딱지를 떼려고 내가 얼마나 노력해서 얻은 애인인데 그럴 순 없지, 암.”


“네가 좋으면 그만이지만 사랑에 눈먼 네가 보는 것보다 내가 봐야 인성이 어떤지 알게 아니냐? 예쁘고 밉고는 그리 중요하지 않아. 평생을 사는데 그래도 인성 정도는 살펴봐야지.”


“너는 미루를 처음 볼 때 미모에 한눈에 반했다면서 그런 말이 나오냐? 네 눈에는 미모만 보이면서 내 눈은 인성을 보라고? 앞뒤가 맞는 소리를 해야지.”


“그러니까 끝이 좋지 않았잖아. 너는 행복하게 한평생 잘 살아야지.”


“그래, 어쨌든 소개는 시켜야지. 평생 내 호군데 말이야. 흐흐흐!”


“괜히 미적거리지 말고 정이 더 깊어지기 전에 내일이라도 당장 보자.”


“야, 네가 우리 부모님보다 더하다. 우리 부모님은 무조건 좋으시다는데 이거 친구 눈치가 보여서 어디 장가를 가겠냐?”


“부모님은 얼마 못 살고 돌아가시지만 친구는 평생 볼 거잖아.”


“아유, 내가 졌다. 그럼 내일 저녁 술시 초(7시)에 오늘 만난 곳에서 보자.”


수르가 길쭉하게 생긴 모래시계 같은 것을 꺼내 보며 말했다. 시간을 확인하는 것 같지만 실은 자랑질이 분명하다.


“좋았어! 너도 나한테 한번 당해 봐라. 알간? 그런데 너 그거 뭐냐? 꼭 시계 같은데?”


“넌 이것도 모르냐? 소족장이나 대장들만 시계를 주는지 알았지? 요즘은 기술이 발달해서 더 작고 편리한 시계를 돈만 있으면 다 산다.”


수르가 자랑스럽다는 듯이 한 뼘 길이의 길쭉한 시계를 보란듯이 건넨다.


“와! 위에서 준 것보다 훨씬 작고 정교하네. 나도 이제 받은 것은 버리고 작은 것으로 하나 새로 사야겠다.”


“야, 자그마치 금령이 다섯 개야. 시간도 잘 맞고 작아서 편해.”


“기술이 많이 발전했구나! 누군지 그거 개발한 사람은 떼돈 벌었겠는데······.”


“요즘은 머리만 잘 써도 큰돈 번다. 너처럼 어벙한 사람이나 개나 소나 안 가리고 다 퍼 주지.”


“그럼 너도 개나 소네, 응?”


“우하하하하! 나는 인간 야수~르다.”


“하하하하!”


웃음소리로 근심 걱정을 모두 털고 나니 돌아오는 발걸음이 좀 가볍다.



드디어 다음 날 저녁이 되어 쥬맥은 옷을 단정히 차려입고 어제 수르를 만났던 천경루를 찾아갔다.


이틀을 연이어 오자 어제 보았던 점원이 반갑게 맞으며 인사를 건넨다.


“어서 오십시오 쥬맥 대장님. 혼자 오셨습니까?”


“곧 두 사람이 더 올 거야. 좋은 자리로 하나 부탁해.”


“이 층으로 가시지요. 따라오세요.”


쥬맥이 들어와서 이 층으로 올라가자 일 층에서 술을 마시던 사람들이 모두 쳐다보았다. 대부분 알아본다는 얘기다.


그중에서도 구석진 자리에서 여(女)무사들끼리 다섯이 앉아 술을 마시던 아가씨들 중에, 긴 흑발의 일부를 살짝 붉게 염색한 아가씨가 눈빛을 빛내며 쥬맥을 바라보는데, 눈에 선망이 어렸다.


점원은 이 층에 몇 개 비어 있는 자리 중에서도 창가에 가장 전망이 좋은 곳으로 쥬맥을 안내했다.


가을 끝자락에 와 있지만 아열대라 밤에도 시원하여 창을 열고 곤충이 들어오지 못하게 발을 내렸다.


“요리는 지금 시키실 건가요? 아니면 오신 뒤에 시키실 건가요?”


“오늘 술은 적령으로 두 병 주고, 요리는 뭐가 좋지?”


“오늘 요리는 우르대연어탕과 고대코뿔소구이가 최곱니다.”


“그럼 손님이 다 오면 그 두 가지를 순차로 내오게.”


그러면서 웃돈으로 허리춤에서 백령을 하나 꺼내어 건네 주었다.


“지난번도 그렇고 이번에도 좋은 자리를 잡아줘서 고맙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점원이 허리를 굽실거리고 황송해하며 얼른 받았다. 사실 점원에게 백령으로 사례비(謝禮費)를 주는 사람은 부자들이 아니면 거의 없었다.


백령 하나면 점원들의 며칠간 급료에 해당하는 큰 돈이다.


혼자 무료하게 앉아서 주변을 둘러보는데 오늘도 제법 손님이 많았다. 사실 전쟁 통에 큰 고통을 겪고 한잔 술로 그것을 잊으려는 사람들도 꽤 있었고.


몇몇 사람은 한쪽 구석에 홀로 앉아서 침울하게 술잔을 기울이는 모습이 지난 전쟁에서 소중(所重)한 사람을 잃은 모양이다.


한 잔 술에 떠오른 얼굴을 두 잔 술로 애써 지우려는 모습이 그저 안타까울 뿐.


인간사 희로애락이 마음대로 되지 않음을 쥬맥도 최근에 여러 가지를 겪으면서 절실히 깨달았다.


사랑하는 이를 잃은 동병상련의 진한 아픔이 술 향기를 타고 전해져 오는 듯하다. 저 애달픈 향기가 저승까지 전해질 수 있다면 좋으련만······.


“맥아, 먼저 와 있었구나.”


수르의 목소리를 듣고서야 쥬맥은 깊은 상념에서 깨어났다.


“응, 그래 어서 와라.”


그러자 수르가 곱게 차려입은 아가씨를 앞으로 밀면서 자랑스레 소개했다.


“여기는 우리 아인 씨야. 인사해, 내 친구 쥬맥이야.”


“처음 뵙겠습니다. 맥아인입니다.”


“어서 오세요. 수르 친구 쥬맥입니다. 이리 앉으세요.”


쥬맥이 자리에서 일어나 앉기 편하게 의자를 뒤로 빼 주면서 권했다.


“감사합니다. 친절하시네요.”


“수르보다는 제가 더 친절합니다. 하하하!”


“재미있으세요.”


“그럼요. 수르보다는 제가 더 재미있죠. 하하하!”


“호호호호!”


한바탕 웃고 나니 금방 분위기가 화기애애(和氣靄靄)해졌다.


맥아인은 아담한 키와 적당하게 굴곡진 통통한 몸매에 밝은 자주색 경장을 입었는데, 얼굴이 둥그스름하면서도 하얀 피부를 가진 앳띤 미인이었다.


서글서글한 큰 눈과 갈색 머릿결이 어울렸고, 등에는 검을 메고 있었다.


수르가 자리에 앉으며 탁자가 비어 있으니 조심스럽게 물었다.


“뭐 좀 시켰냐?”


“응, 곧 가지고 나올 거야. 처음 먹는 요리인데 괜찮을지 몰라.”


“뭘 시켰는데?”


“우르대연어탕인가 그거 하고 고대코뿔소구이하고.”


“우르대연어탕은 비싸다던데, 아직 먹어 보지 못해서······.”


그때 점원이 큰 그릇에 우르대연어탕을 내오더니 작은 그릇에 나누어 주고, 더 덜어 먹을 수 있도록 국자와 집게를 놓고 간다.


“아인 씨, 들어 보세요. 나도 처음이라 맛이 어떨지 모르겠네요.”


“와! 국물 맛이 아주 시원하고 진한 게 일품이다. 살도 야들야들하고 고소해서 우리 아인 씨가 먹기에 딱이다.”


“정말 맛있어요. 저도 처음 먹어 봐요. 잘 먹겠습니다.”


그때 점원이 적령주 두 병과 잔을 쟁반에 받쳐들고 와서 조심히 내려놓은 다음, 술잔을 나누어 주고 술병의 마개를 따 놓았다.


“술도 한잔 하셔야죠? 원래 우리는 애인을 소개할 때는 세 잔이 기본입니다. 수르 이 녀석도 전에 억지로 먹였으니까 원망하지 마세요.”


“야, 너는 쪼잔하게 받은 대로 갚으려고 그러냐? 좀 봐줘라. 우리 아인 씨는 술을 잘 못 마신단 말이야.”


“아이고~ 그런 사람이 미루에게는 술을 억지로 먹였어?”


“아니에요. 제가 다 마실게요.”


“자! 그럼 건배합시다. 두 사람의 앞날을 위하여!”


“야! 요즘 누가 건배사를 위하여 하냐? 요즘은 어떻게 하는지 잘 봐.”


우쭐하면서 수르가 잔을 들고 맥아인과 함께 건배하는 시범을 보였다.


“우리들의 끝없는 사랑! 알콩~(잔을 한 번 부딪치고) 달콩~(또 한 번 부딪치고) 짠!(한 번 더 부딪치며 올린다)”


박자에 맞추어 잔을 슬쩍 내밀며 부딪치는 모습이 제법 그럴싸하다.


“알았지? 그럼 다시!”


“하! 멋있네. 알았다. 그럼 잔 들어. 자~ 우리들의 끝없는 사랑!”


“(다 함께) 알콩~ 달콩~ 짠!”


“요즘은 이런 것도 할 줄 알아야 여자를 꼬시는 거야. 알았나?”


“아이구, 고맙습니다. 연애 박사님.”


“호호호호! 쥬맥 씨는 미루 씬가 하는 분이 애인인가 봐요?”


“아··· 아인 씨, 그 얘기는 안 하는 것이 좋아. 실은 아픔이 좀 있거든.”


“미안합니다. 제가 잘 몰라서 그만···.”


“아니에요. 이미 지난 일인데요 뭐. 괜찮습니다.”


“수르 씨가 얘기해 주지 않아서 잘 몰랐어요.”


“아니, 아직도 수르 씨예요? 자, 벌주 한 잔 드시고!”


쥬맥이 맥아인의 술잔에 술을 따르고 손짓으로 권했다. 술을 제법 하는지 맥아인이 술잔을 들어서 한 번에 털어 넣었다. 그러더니 독한지 인상을 쓴다.


“크으~, 술이 너무 독해요. 그런데 그러면 뭐라고 불러야 해요?”


“오라버니~ 해 보세요. 오라버니~”


“부끄러워요. 어떡해? (조그맣게) 오라버니~”


“무슨 소린지 하나도 안 들려요. 더 크게 오라버니!!”


“오라버니!”


“오냐!”


“아니, 뭐예요? 왜 쥬맥 씨가 대답을 해요? 저는 수르 씨한테 했는데······.”


“나도 수르에게 똑같이 당했으니까 복수전을 해야죠.”


“정말로 오라버니가 쥬맥 씨한테 그랬어요?”


“이 녀석이 지금 거짓말로 장난치는 거야. 이 오라버니가 그렇게 보여?”


“아니에요. 쥬맥 씨가 장난을 치신 것 같아요.”


“와! 언제부터 두 사람이 짝짜꿍을 했는지 벌써 나를 바보로 만드네.”


“우리 수르 오라버니는 그런 사람이 아니거든요.”


“와~ 벌써 오라버니 소리가 술술 나오네. 짝 없는 사람 서럽네, 진짜.”


그때 ‘쿵’ 하는 소리와 함께 맥아인이 등에 메고 있던 검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러자 맥아인이 얼굴을 붉히며 검을 바닥에서 주워 들었다.


“지난번 전투에서 망가지더니 이제 끈까지 잘 떨어지네요. 아예 검을 새것으로 바꿀까 봐요.”


“그래요? 멀쩡해 보이는데···, 내가 한번 봐도 돼요? 이리 줘 보세요.”


맥아인이 주저하다가 검을 건네주니 쥬맥이 받아서 검을 이리저리 살피다가 검날을 반쯤 빼서 날을 살펴보았다.


검날이 많이 상했는데 대장간에서도 손질이 쉽지 않아 보였다. 아마 진기가 부족해서 거인들의 거대한 뼈를 단칼에 자르지 못하니 뼈에 부딪치거나 무기끼리 충돌할 때 날이 상한 모양이다. 검이라기보다는 톱날에 가까웠다.


“어휴~ 날이 많이 상했는데 내가 좀 손봐도 되겠어요?”


“맨손으로 손볼 수 있겠어요? 대장간에 맡겨 봐야죠.”


“아니야. 이 녀석이 손재주가 아주 좋아. 어디 한번 해 봐라.”


“야, 네 눈에는 고수의 고명(高明)한 수법이 손재주로 보이냐?”


그러면서 보란듯이 검을 빼서 앞에 세우고 엄지와 검지에 극양의 삼매진화(三昧眞火)를 일으켰다. 그리고 검날을 사이에 넣고 문지르기 시작했다.


그러자 곧 두 손가락에 파란 강기가 맺히더니 검날이 붉게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지난날 금령파(金鈴琶)를 만들 때 그 줄을 만들던 방법으로, 쇠를 무르게 녹이고 눌러서 단단히 굳히면서 날카롭게 검날을 세웠다.


그러자 무디고 이가 빠진 검날이 점점 예리해지더니 마치 보검(寶劍)처럼 빛을 내뿜기 시작한다.


검날의 양쪽을 그렇게 다듬는 모습이 하도 신기한지라 주변 사람들까지 넋을 잃고 멍하니 바라보았고······.


“이제 다 됐네. 잘되었는지 어디 한 번 볼까?”


쥬맥이 가슴에서 진령닥으로 만든 얇은 종이를 한 장 꺼내더니 활짝 펼쳐서 검날 위에 놓자, 종이가 소리도 없이 잘리며 바닥으로 떨어져 내렸다.


그 모습을 보고 맥아인이 무척 좋아했다.


짝짝짝짝!


“와! 너무 멋있어요. 검날을 손가락으로 세우다니!”


지켜보던 주변 사람들도 신기한 구경을 했다는 듯이 박수를 쳤다.


맥아인이 검을 받아서 이리저리 살펴보는데 검의 기세가 완전히 달라졌다. 예리한 검날이 시퍼런 살기를 뿜어내는 것이 명검 못지않았고 말이다.


맥아인은 좋아서 몇 번을 더 쳐다보다가 검집에 집어넣었다.


“고맙습니다. 쥬맥 씨 덕분에 고물이 명검이 되어 버렸네요.”


“거봐, 내가 이 녀석의 손재주가 좋다고 했잖아.”


“야, 고수의 고명한 수법을 자꾸 손재주로 비하할래?”


“그래, 너 잘났다. 그럼 내 것도 좀 손을 봐 주면 안 되냐?”


“흐흐, 꿈 깨셔. 내 진기가 아깝다. 참! 아인 씨, 세 잔을 채워야죠?”


“네, 좋아요. 검도 고쳐 주셨으니까 제가 한 잔 따라 드릴게요.”


다시 술잔이 오가는데, 쥬맥이 부모님은 어떤 분이신지 형제 자매는 어떤지 가정 형편은 어떤지 등을 물어보니 수르가 별것을 다 따진다는 표정이다.


“야, 그딴 게 뭐가 중요해. 네가 꼭 우리 부모님 같다 임마.”


“호호호! 그러게요. 쥬맥 씨가 보기보다는 무척 꼼꼼하신가 봐요.”


“사람은 서로 숨기는 것 없이 사정을 다 알아야 더 빨리 가까워져요.”


쥬맥이 나름대로 자신의 소신을 밝히며 여러 가지를 은근슬쩍 물었다. 심지어 주량을 확인하기라도 할 듯이 간간이 술까지 권하면서······.


수르는 고개를 살래살래 저었다.




감사합니다. - 설련하(偰輦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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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3 113화. 환시성을 건설하라 21.08.10 1,335 15 18쪽
112 112화. 환시(桓市)를 향하여 21.08.09 1,333 14 17쪽
111 111화. 부족장이 되다 21.08.08 1,317 17 18쪽
110 110화. 영천(靈泉)에 계신 아버지 21.08.07 1,327 17 18쪽
109 109화. 중계(中界) 수행 21.08.06 1,325 18 18쪽
108 108화. 힘이 있어야 평화도 이룬다 21.08.05 1,299 20 19쪽
107 107화. 생사의 기로에서 얻은 기연 21.08.04 1,311 21 18쪽
106 106화. 소리 없이 다가온 음모 21.08.03 1,297 22 18쪽
105 105화. 또 다른 재앙덩어리 천마수 21.08.02 1,324 24 18쪽
104 104화. 결혼 초야(初夜) 21.08.01 1,336 26 19쪽
103 103화. 꿈꾸던 가정을 꾸리다 +1 21.07.31 1,323 25 18쪽
102 102화. 호사다마(好事多魔) +1 21.07.30 1,309 27 18쪽
101 101화. 가정을 꿈꾸다 +1 21.07.29 1,309 28 18쪽
100 100화. 옛 상처를 지우다 +2 21.07.28 1,321 30 17쪽
99 99화. 우군(友軍)을 만들다 +1 21.07.27 1,311 28 18쪽
98 98화. 사랑은 다시 움트고 +1 21.07.26 1,321 30 20쪽
97 97화. 이기어검(以氣馭劍) +1 21.07.25 1,311 31 19쪽
96 96화. 인면(人面)의 오색요접 +1 21.07.24 1,334 31 18쪽
95 95화. 수련에 몰두하다 +1 21.07.23 1,325 33 19쪽
94 94화. 겨울이 가면 봄이 온다 +1 21.07.22 1,326 34 19쪽
93 93화. 천망과 천인족의 혈투(血鬪) +1 21.07.21 1,334 35 18쪽
92 92화. 천망! 그 대재앙의 시작 +1 21.07.20 1,334 35 20쪽
91 91화. 친구 수르의 결혼 +1 21.07.19 1,355 37 18쪽
90 90화. 동명이인(同名異人) +1 21.07.18 1,328 37 19쪽
» 89화. 수르의 애인(愛人) +1 21.07.17 1,329 38 17쪽
88 88화. 대재앙(大災殃)의 잉태 +1 21.07.16 1,338 39 18쪽
87 87화. 노무사들의 분노(忿怒) +1 21.07.15 1,330 42 19쪽
86 86화. 장기전의 묘수 +1 21.07.14 1,345 42 18쪽
85 85화. 혈전 또 혈전 +1 21.07.13 1,315 42 19쪽
84 84화. 운명을 건 전쟁 21.07.12 1,333 42 1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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