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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타니야 님의 서재입니다.

2012 일본 교환유학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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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사이타니야
작품등록일 :
2014.07.07 20:34
최근연재일 :
2015.07.08 1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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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6.18 0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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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쪽

2013. 02. 15 금요일 유학생활 삼 백 스물 다섯 번째날(교토 1일차)

DUMMY

2013. 02. 15 금요일 유학생활 삼 백 스물 다섯 번째날


오사카에서 교토까지 가깝다고는 하지만 이동시간이 있기 때문에 되도록 일찍 일어나야했다. 시간은 금이라는걸 알면서도 좀처럼 일어날 수가 없었다. 가장 기대하고 있는 데라다야가 오늘 일정에 포함되어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 잊고 푹 자고 싶었다. 무리도 아니다. 어제 잠은 야간버스에서 자느라 충분한 수면이 되지 못했을 것이다. 그뿐만이 아니라 오사카에는 아침일찍 도착하여 하루일과가 쓸대없이 빨리 강제로 시작되었고, 하루종일 돌아다녔다.

‘아침일찍 체크인 하는건 물 건너갔군...’

교토에서 잡은 숙소의 오전 체크인 시간은 8시부터 11시까지인데 11시 이전에 숙소에 도착하기는 글렀다. 일찍 일어났다면 체크인하여서 짐을 내려놓고 여행 할 수 있는데 이번에도 코인락커를 이용하는 수 밖에 없었다.

샤워를 하고 짐을 싼 뒤에 체크아웃을 하기 위해 내려왔다.

“체크아웃을 하려는데요”

“떠나시는거에요?”

“예”

체크아웃을 하고 게스트하우스를 나가려보고니 밖의 사람들이 우산을 쓰고 돌아다니고 있었다. 이럴수가, 최악이다. 비가오고 있던 것이다.

“제기랄!!”

이럴줄알았으면 접는우산 하나를 넣어가지고 오는건데, 집을 나서는 마지막 순간까지 넣을까 말까 하다가 괜히 무게를 늘리기 싫어서 그냥 왔는데 그걸 비웃듯이 비가올줄이야.

“이거 잠깐 빌릴 수 있을까요” 걸려있는 우산 하나를 들고 게스트하우스 주인에게 물었다. 바로 옆에 편의점이 있기 때문에 거기서 우산을 샀다. 어쩔수가없다. 빨리 교토는 가야했고 비는 맞기 싫었기에 선택지가 달리 없었다. 우산은 가장 싼 것이 600엔이었다.

“오지게 비싸군”

하지만 역시 선택지가 없었다. 우산을 600엔에 구매하고 게스트하우스로 되돌아와 짐을 갖고 나왔다. 게스트하우스 바로 앞의 사쿠라가와역에서 전차를 타고 난바역에서 미도스지센으로 갈아타 우메다까지 가고, 한큐선 탑승장으로 향했다. 캐리어가방을 들고있는 사람은 죄다 한국인인 것 같았다. 여기저기 한국어가 들렸다.

교토 가와라마치행 전차가 도착하였고 몸을 실었다. 45분정도 가서 드디어 교토 가와라마치역에 도착하였다.

“내가 왔도다, 교토!!”

가와라마치역에 내렸다. 가장 먼저 내가 찾아갈 곳은 사카모토 료마가 암살당한 ‘오우미야의 터’이다. 가와라마치역에 내리면 바로 있다고 한다. 그런데.....이런! 몇 번 출구로 나가야 바로 있는지를 모르겠다. 상당히 곤란하다. 오우미야는 그냥 달랑 비석하나 세워져있는거라 관광스팟도 아니라서 역의 안내표지판에도 표시되어있지 않을뿐더러 일본인한테 물어봐도 알 리가 없다. 왜 몇 번출구인지 적어오지 않았을까 자신을 자책했다. 한편 스마트폰이라면 바로 알텐데...라는 생각도 들었다. 역무원에게 다가가서 물었다. 교토의 첫 여행지부터 난항이었다.

“실례합니다. 어떤 장소를 찾고있는데요”

역무원 역시 ‘오우미야’를 아무리 말해도 알지 못했다. 역무원은 컴퓨터로 검색을 하였다.

“이렇게 쓰고 오우미야라고 읽어요, 가와라마치 역 몇 번출구로 나가면 바로 있다는데 그게 몇 번 출구인지를 모르겠네요”

종이랑 펜을 빌려 ‘近江屋’라고 쓴 쪽지를 역무원에게 보여주었다. 의외로 역무원은 검색하는데 상당히 오래걸렸다.

“4번출구네요, 사카모토 료마 조난지 맞나요?”

“네! 맞습니다. 감사합니다!!”

4번출구로 거의 뛰어가다시피 갔다. 지상으로 나와보니 이걸 다행이라고 해야할지 비가 그쳤다. 600엔 내고 짐을 산 꼴이 되어버렸다. 4번출구로 나왔으니 오우미야를 찾는건 이제 순전히 내 몫이었다. 길가에 서 있는 표지판에 표시되어있을리도 없다. 그런데 없다. 아무리 찾아도 없다. 어디있는거지? 분명히 내가 본 글에서는 출구로 나오자마자 바로라고 나와있었다. 나를 반겨줄줄 알았던 오우미야가 보이지를 않으니 답답해 미칠노릇이었다. 건물이 아니라 비석이라 가뜩이나 눈에 띄지 않을텐데말이다. 눈에 불을켜고 돌아다니는 수 밖에 없었다. 그러다보니 같은곳을 계속 뺑뺑이를 돌아버렸다. 무거운 가방을 들고 어디있는지도 모르는 비석을 찾으려니 미칠지경이었다. 분명 여기 근처인데 포기할 수가 없었다.

“오!? 교토관광안내소?”

300m 앞에 교토관광안내소라는곳이 있다고 한다. 저기에다가 물어보면 되겠다! 관광안내소에 들어가서 오우미야의 터가 어디있는지 물었다.

“오우미야의 터라면 바로 옆에 가면 있어요”

“에?”

4번출구에서 나오면 바로인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는 점. 그리고 이 관광안내소 바로 옆에 있다는 점 두 개의 이유로 놀랐다.

관광안내소의 아주머니는 나에게 지도를 주었다.

“이 곳이 여기 안내소고요, 바로 옆에 여기가 오우미야에요”

‘가와라마치 역사스팟’이라는 이름의 지도였다.

“우옷!!!! 이케다야의 터, 조슈 한테이(에도시대때 영주가 에도에 두었던 저택)의 터!!!”

지도를 피자마자 한눈에 들어오는 역사스팟들이 있었다.

“사카모토 료마를 굉장히 좋아하시나 보군요”

“네, 그렇습니다!”

“교토에는 언제 오셨어요?”

“방금왔는데요”

“하하하하하, 특이하시네요 교토에 오자마자 가는곳이 오우미야라니”

“전혀 특이하지가 않아요, 전 료마투어를 하기로 마음먹었으니까”

“버스이용권은 사셨나요?” 간사이스루패스를 구매하지 않았다면 대부분의 관광객은 교토시버스 1일이용권을 이용한다. 500엔에 하루동안 버스를 몇 번이나 탈 수 있으며 한번에 220엔이니 세 번만 타도 이득이다.

“여기서도 살 수 있나요?”

“네, 물론이죠!”

교토에 이틀 있을 예정이므로 두 개를 샀다. 아주머니는 버스노선도도 챙겨주었다. 안내소를 나왔다. 한 편의점 앞에 오우미야의 비석이 서 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는 사카모토 료마의 초상이 옆에 서 있었다. 오우미야에 대한 설명이 한국어로도 쓰여있었다.

이 곳 가와라마치는 교토에서 관광객이 가장 많은 곳이다. 이곳에 사는 일본인이야 매일 지나치니까 그렇다쳐도 대부분은 관광객일터인데 이 곳을 주목하는 사람은 나 외에 단 한 사람도 없었다. 반대로 평범한 사람들 입장에서 생각하면 내 쪽이 편의점 앞에서 심각하게 서 있는 이상한사람이려나?

실제로 오우미야에 서게 되다니 감격을 하여 한 동안 움직일 수 없었다. 여기서 사카모토 료마는 1867년 11월 15일 숨을 거두었다, 내 눈 앞에 보이는 이 광경을 지우고 그 당시의 거리를 상상하여 눈 앞에 펼쳤다. 료마가 암살당하는 모습이 보였다. 비석 앞일 뿐인데 다른곳으로 갈 수가 없었다. 그 앞에 얼마나 오랜시간 서 있었는지 모른다.

‘슬슬 갈 까....’

교토역으로 가는 버스를 타러 발길을 돌릴때도 시선은 오우미야의 터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가와라마치에서 JR교토역까지 버스를 타고 이동하였다. 모든곳에 하차버튼이 붙어있다. 우리나라 버스의 경우, 멀리 있는 하차벨을 누르기 위해 수고했던 경험이 누구나 있을 것이다. 교토의 버스는 그렇지 않았다. 모든 좌석 옆, 모든 기둥에, 그리고 천장에 전부 벨이 달려있다.

비는 조금 내렸지만 우산을 쓸 정도는 아니었다. 교토역에 도착하자 바로 앞에 교토타워가 보였다. 이따가 밤에 보면 아름답겠지.

코인락커에다 짐을 넣고 교토역에서 나라선을 타 모모야마 역까지 갔다. 이번 여행의 메인, 사카모토 료마를 좋아하고 나서부터 죽기전에 꼭 한번 가고싶었던 그 곳, 데라다야! 데라다야!정말 데라다야를 곧 보는건가, 너무나도 가고싶었던 곳이기에 실제로 보기 전까진 실감이 나지 않을 것 같았다. 이 기분을 글로 설명할 수가 없다. 아무튼 데라다야로 간다! 10분정도 전차를 타고 모모야마역에 도착하였다.

2010년 방영된 료마전에서는 각 화가 끝날 때 마다 료마나 관련인물의 유적을 소개하고 가는 방법까지 안내해준다. 36화에서 데라다야가 소개가 되었다. ‘JR모모야마 하차’라고만 써 있었을 뿐 그 다음에는 어떻게 가는지 나오지 않았다. 그냥 ‘JR모모야마 하차’라고만 나왔기 때문에 모모야마역에 내리면 바로 데라다야가 나올 줄 알았다.

‘....어레....?’

모모야마 역에 내리고나서 심하게 당황했다. 여기도 교토인가? 모모야마역에 비하면 토가네는 발전된 도시다. 정말 당황해서 한동안 움직일 수가 없을 정도였다. 정신을 가다듬고 데라다야가 정확히 어디에 있는지 알아야했다. 대충 역 밖을 훑어봐도 아무것도 없다. 어찌해야하나. 다행히 모모야마 역 구석에 게시판이 하나 붙어있었는데 거기에 모모야마역에서 갈 수 있는 역사유적들에 대한 소개가 붙어있었다. 다행이다!

일단 데라다야를 찾았다. -도보 20분-이라는 글자에 나는 다시한번 당황했다. 도보 20분이라면 먼 거리가 아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길을 정확히 알고 있을 때에 20분이다.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물어물어 도보20분의 길을 찾아가려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아니, 길을 물어볼 행인이 있을지도 의문이다. 역 상태부터 봐선 길 중간중간에 지도 같은게 세워져있을 기대도 할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진짜로 패기만 갖고 길을 역을 나섰다간 농담이 아니라 진짜로 미아가 될 가능성이 있었다.

둘러보니 부스 안에 여자역무원이 앉아있어서 다가갔다.

“실례합니다. 혹시 이 역 주변의 지도같은 것 있나요?”

밑져야 본전으로 물어봤다. 유명한 관광지도 아닌데 따로 안내지도같은게 있을 리가....

그렇게 생각할 때 여자역무원은 대답대신 팜플렛 하나를 툭 던져주었다.

“!!!!!!!!”

정말 밑져야 본전으로 물어본건데 엄청난 아이템을 얻었다. 지도다! 그것도 그냥 지도가 아니다.

‘모모야마 역 – 료마, 막부말의 거리 후시미를 걷다’

지도의 타이틀 한번 끝내준다. 완전 나를 위한 맞춤안내가 아닌가!!! 보물지도를 발견한 기분이었다. 아까 게시판에서 봤던 6개의 유적에 가는 경로가 표시되어있었다. 그 뿐만이 아니다. 6개의 유적을 전부 돌아볼 수 있도록 효율적인 코스안내까지 써 있었다.

모모야마역 →(0.5km) 고코노미야신사 →(0.7km) 후시미부교소의 터 →(0.6km) 겟케이칸오오쿠라기념관 →(0.5km) 순난구열사의 비(료마충혼비) / 데라다야 →(1.1km) 사츠마시마즈후시미저택의 터 →(1.7km) 모모야마역

료마와 관련된 유적에는 ‘龍’, 신센구미 관련 유적에는 ‘誠’이라는 표시가 붙어있었다. 6개 중 4개가 막부말과 관련된 유적이었다. 그냥 데라다야가 목적이었는데 이러면 머리가 또 복잡해진다.

이래서 RPG게임을 하면 모든사람에게 말을 걸어야 하는것이다. 생각지도 못한 완전좋은 아이템을 얻은 끝내주는 기분이었다. 이 지도를 따라 코스를 다 돌고싶었지만, 얼른 데라다야를 보고나서 그 밖의 교토의 유명 관광지를 보고싶었다. 그렇기에 데라다야까지 가는 길을 스캔해보았다. 데라다야로 가는 길에 위의 유적이 있다면 들리는 식으로 관광하기로 마음먹었기 때문이다. 지도상으로는 상당히 멀리있다. 이 지도를 못 얻고 그냥 무대뽀로 역을 나왔으면 절대 찾지 못했을 것이다.

역에서 가장 가까운 맨 처음 코스인 고코노미야신사가 데라다야로 가는 길에 있었다. 지도를 보고 후시미부교소의 터도 가보고싶어졌는데 다행이 이 역시 데라다야로 가는 길에 있었다. 그 외는 데라다야로 가는 가장 가까운길에서 떨어져있었기에 과감히 포기하기로 했다. 결정되었다면 우물쭈물할 이유가 없다. 고코노미야신사를 향해 걸었다.

고코노미야신사는 모모야마역에서 가깝고 길을 따라 쭉 가면 바로 보였기에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헤이안시대, 경내에서 향이 좋은 물이 솟는다하여 세이와천황으로부터 고코노미야(御香宮)라는 이름을 받았다고 전해진다. 물은 그 후에도 얼어붙는 일 없이 후시미의 칠명수(七名水) 중 하나로 꼽혀 환경성으로부터 명수백선(名水百選)에 선정되었다. 본전, 앞문은 나라의 중요문화재이다.’

지도 뒷면에 써 있는 설명이다. 그냥 그런가보다 하고 둘러보다가 사진을 찍고 나왔다. 그리고 이제 후시미부교소의 터를 찾아나섰다.

‘이제부터 길이 복잡해지는군....’

지도를 따라 충실히 따라왔다고 생각했는데 후시미 부교소 터가 보이지 않았다. 이쯤 왔으면 보여야하는걸 지나서 너무 많이 왔는데 발견되지 않았다. 인적또한 드물어 누구에게 물어볼 수도 없었다. 길을 되돌아가며 혹시 내가 못보고 지나친게 아닌지 다시한번 확인했지만 없었다.

‘아무리 봐도 이 근처인데...’

그 때, 저 위에서 어떤 할머니, 완전 할머니는 아니고 아줌마에서 할머니로의 과도기인 분이 내 쪽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망설이지 않고 다가갔다.

“저기 실례합니다만”

“저 여기 사람이 아니라서 잘 몰라요...”

나는 말도 꺼내지 않았는데 지도를 다 피기도 전에 말을 잘랐다.

“...아, 네....”

민폐긴 하지만 달리 선택지가 없다. 어쩔 수 없이 우체국에 들어가서 물어보기로 했다. 재미있는 것은 아까 길을 물어본 할머니도 우체국에 볼일이 있는지 같이 들어갔다, 할머니는 무슨생각을 했을까?

“바쁘신데 정말 죄송합니다. 길을 찾고 있는데요”

“네네 말씀하세요!”

여자직원분이 대응해주었다. 지도를 내밀고 후시미부교소 터에 가고싶다 말했다.

“하음...여기 말이죠? 으음....아아 분명히 이 근처인데”

“그쵸? 이 근처인건 알겠는데 안 나와서요”

“엄청 가까운데.. 잠시만요, 이건 저보다”

여자직원분은 내 지도를 들고, 옆에서 손님대응을 하고 있는 할아버지 직원에게 다가갔다. 업무중에 굉장히 미안했다. 더더욱 미안하게 정말 친절히 대해주었다. 할아버지 직원분이 손님대응을 끝내고 지도를 보았다.

“여기? 어떠어떠어떻게 가서, 어느쪽으로 돈 다음에 어떠어떻게 가면 나와”

...그렇게 말하면 못 외워서 갈 수 없어요 흑흑

“이 우체국 바로 뒤쪽에 있으니까 돌아가면 돼”

오오! 진작 그렇게 말해주셨어야죠!

여자직원분이 내 앞으로 돌아와서 할아버지의 말씀을 다시 이야기해주었다.

“나가서 걷다가 첫 번째 사거리에서 왼쪽으로 도세요, 쭉 가다보면 운동장이 나올거에요. 그리고 운동장에서 다시 왼쪽으로 돈 다음 직진하시면 나올거에요. 즉, 이 우체국의 바로 뒷 편에 있어요”

천천히 알려주어서 다 외울 수 있었다.

“감사합니다!”

친절히 알려준것도 고마운데 여자직원분은 우체국 밖까지 따라나와 다시한번 알려주었다. 너무나 친절하게 해주어서 기분이 엄청 좋아졌다.

‘왼쪽으로 돌아서, 가다보면 운동장이 나온다. 이거군!’

일본은 어느정도 큰 운동장에 전부 야구장이 만들어져있다. 투수판이 있고 다이아몬드를 그리는 듯이 잔디가 깎여져있다. 볼 때마다 부럽다.

‘다시 왼쪽으로 돌아 직진....’

후시미부교소의 터 비석은 어떤 아파트 단지의 입구에 서 있었다.

‘게이오4년(1868) 1월 3일, 시모토바에서 시작된 –도바, 후시미전투-, 후시미부교소에 진을 친 신센구미와 아이즈번 등의 막부군과, 고코노미야신사에 진을 친 사츠마군은 격렬한 전투로 돌입한다. 그러나 사츠마군은 화기, 지리적 조건 등에서 유리했고 후시미부교소는 다음날 불타내려앉는다.’

역시 지도에 써 있는 후시미부교소에 대한 안내문이다.

‘아까 갔던 고고노미야신사에서 신정부군이 진을 쳤고 여기서 신센구미나 아이즈번 군사들이 진을 쳤구나!!!’

고코노미야에 가보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까 들어간 고코노미야 앞에 사츠마 군들이 진을 친 모습을 상상하고, 지금 내가 서 있는 이 앞에 후시미부교소 건물이 있고, 신센구미나 아이즈번 군사들이 구식무기를 들고 진을 친 모습을 상상하였다. 그리고 얼마동안 도바 후시미 전투가 벌어지는 광경을 상상하고, 후시미부교소가 불타는 모습까지 상상하였다. 그리고 나는 그 후시미부교소가 있던 자리에 서 있다.

“교토에 살면 언제든지 이런 즐거운 상상을 할 수 있을 것 아닌가. 여기 이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은 얼마나 자기들이 좋은 집에 살고 있는건지 알고 있을까?”

지도에 표시된 다음 코스는 겟케이칸오오쿠라기념관(月桂冠大倉記念館)이지만 막부말 역사랑은 관계가 없고, 또한 데라다야까지 가는 최단코스와 겹치지 않아서 생략하기로 하고 바로 데라다야로 가기로 했다. 겟케이칸오오쿠라기념관을 찍고 데라다야를 가려면 상당히 돌아가야했다.

“.....이쯤에서 돌아야할 것 같은데...”

데라다야로 곧바로 가려면 빨리 가기 위해 꺾어야할텐데 꺾이는 길이 보이지를 않았다. 내가 그냥 지나쳤을 것이다. 그런데 너무 앞으로 가는 것 같다. 꺾어야 할 타이밍은 예전에 지났으나 꺾는 길은 보이지를 않고 계속 앞으로 뻗어있었다. 꺾어야하는데! 꺾어야하는데! 왜 꺾는길이 안 나오는거야.

오랫동안 걸어서야 꺾는길이 나왔다. 데라다야랑은 이미 멀어졌다. 다시 돌아가야 데라다야가 나올 것이다.

“으잉!!???”

내 눈 앞에 나타난 것은 다름아닌 겟케이칸오오쿠라기념관이었다. 겟케이칸오오쿠라기념관까지 오는길이 너무 멀어서 곧바로 데라다야로 가려한건데 의도치 않게 겟케이칸오오쿠라기념관에 와 버렸다. 이렇게나 멀리 왔다니, 그냥 아무소득도 없이 헛걸음만 한게 아니라 차라리 겟케이칸오오쿠라기념관을 볼 수 있어서 다행이라 생각했다.

-술 만들기와 일본주의 역사를 소개하는, 후시미만의 시설. 메이지시대에 건설 된 술창고를 이용한 관내에는, 당시의 공정에 쓴 주조용구 등을 전시, 전일에 예약하면 술 만들기를 행하는 양조미니프런트도 견학을 할 수 있다.-

지도에 써 있는 겟케이칸오오쿠라기념관의 소개다. 300엔의 입장료를 받는다. 입장료 이전에 시간이 별로 없었으므로 겉모습만 사진을 찍고 데라다야를 찾아 떠났다.

“나올때가 됐는데....”

걷고 걸어도 데라다야는 나오지 않고 시간은 계속 흘러가서 조금씩 초조해졌다. 내 눈 앞에 있는건 왠 재래시장이었다. 그래도 시장인지라 사람이 있으므로 길을 물을 수 있었다. 제복을 입은 사람이 보이길래 다가가서 길을 물었다.

“데라다야를 가려고 하는데요”

“데라다야요? 여기 왼쪽으로 도셔서 시장이 끝나는 곳에서 다시한번 물어봐주세요. 그 다음은 거기서 정확하게 아실 수 있을거에요”

“감사합니다!”

왼쪽으로 돌았다. 이 시장이 끝나는 곳에서 다시한번 물어보면 된다 그거지? 재래시장이 끝났다. 그리고 내 눈 앞에 펼쳐진 것은

“료마도오리다!!!!!!!!!!!!!!!!!!!!!”

료마도오리였다. 누구한테 물어볼 필요도 없다. 료마도오리에 왔으니 데라다야에 도착한것이나 다름없다.

“하하, 하하, 하하하하하하하!!!!!!!!!!”

기쁨에 웃음이 나왔다. 당장 카메라를 들고 사진을 찍어댔다. 여기는 료마도오리다. 사카모토 료마 관련 상품이 즐비했다. 다 사다가 가져가고 싶었다. 이 근처에 살아서 돈이 모일때마다 료마 관련 상품을 사서 모으면 얼마나 좋을까, 평생 행복할 것이다. 당장 가게를 들쑤시고 싶었지만 일단 데라다야 관람이 먼저니까 참았다.

“왔-!!!!!!!!다-!!!!!!!!!!!!!!!!!!!!!!!!!!!!!”

항상 사진으로만 보던 그 정경, 꼭 가보고 싶지만 일본에 간다고 해도 들릴 수 있을까 의문이었던 장소, 그 사진으로만 보던 곳이 내 눈앞에 서 있다. 데라다야에 도착했다.

정신없이 카메라 셔터를 눌러댔다. 관광객이 꽤 있었다. 여기까지 찾아온 사람들은 다들 사카모토 료마의 팬이겠지. 들어가지 않고 밖에서 데라다야를 감상하는데만도 꽤 오랜시간 걸린 것 같다. 항상 사진으로만 보던 곳이고 정말 오고 싶었던 곳이라 겉모습만으로 감동이었다.

“자, 이제 들어가보자!”

이번 여행의 메인이다. 설레서 가슴이 터질 것 같았다.

“몇 분이세요?”

“저 혼자입니다.”

“네, 400엔입니다.”

데라다야 소동에는 두 개가 있다. 1862년 4월, 사츠마번의 존왕파와 공무합체파가 갈라져 칼부림이 일어난 곳이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1866년, 삿초동맹을 이루어낸 사카모토 료마가 데라다야에 투숙 중 후시미부교의 사람에게 잡힐뻔하였을 때, 목욕중인 부인 오료가 일찍이 낌새가 이상하다는걸 눈치채고 황급히 알몸으로 뛰어올라가서 료마에게 위험을 알려 대피시켰다는 에피소드가 남아있는 장소로도 알려져있다.

입장료 400엔을 내니 부적같이 생긴 무언가와 같이 데라다야를 안내하는 팜플렛을 주었다. 관광코스는 2층이었는데 나랑 같이 들어온 관광객들이 다 2층으로 올라가 보이지 않았음에도 나는 멀뚱히 입구를 바라보았다. 아예 신발장에서 올라가지도 않았다. 입장료를 받기 위해 앉아있는 사람이 이상하게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이 곳을 정말 세세히 관찰하고 싶었다. 드디어 신발장에서 발을 들고 나무바닥에 발을 올렸다. 데라다야 안으로 올라섰다. 몸이 부르르 떨렸다. 감격에 겨워 어쩔줄을 몰랐다. 사카모토 료마 외 유신지사들의 사진들이 줄줄히 걸려있었다. 코스에 따라 2층에 올라갔다. 여러개의 방이 있었다. 하나하나 찬찬히 살펴봤다. 데라다야는 아직도 관광지 외에 실제로 아직까지 여관으로써의 영업을 하고 있다. 그래서 조금 어울리지 않지만 위에 에어컨이 달려있었다.

‘료마의 방’이라는 곳에 들어갔다. 아마 여기서 있을 때 오료가 문을 열고 료마에게 위험을 알렸으리라. 료마의 상이라던가 족자같은 것이 여기저기 걸려있었다.

데라다야의 기둥에는 곳곳에 칼자국이 있었다. 사츠마의 무사든, 료마이든, 부교소의 감찰자이든, 그 당시의 누군가가 칼을 휘두를 때 생겼던 칼자국일 것이다.

“그래, 이걸 보러 온 거야...”

칼자국들을 만져보았다. 근데 솔직히 너무나 이상했다. 칼자국이 너무나 깊었다. 칼을 휘두를 때는 상대방을 베기 위해 휘둘렀을 것이다. 기둥에 남은 칼자국은 스치던가, 의도치 않게 벤 것일 것이다. 하지만 칼자국들은 하나같이 너무나 깊었다. 마치 일부러 작정하고 기둥을 베려고 한 것처럼 말이다. 아니면 에도시대 무사들의 칼솜씨를 내가 너무 무시하는것인가? 아무튼 칼자국의 깊이가 너무 깊어서 위화감이 들었다. 관광객을 끌어모으기 위해 나중에 일부러 만든 칼자국이 아닌가 의심되었다.

1층으로 내려가는 계단, 이 계단이 사카모토 료마 습격당시 오료가 뛰어올랐던 계단이라고 한다. 한칸한칸 조심히 내려갔다. 그 계단 앞에는 욕실이 있었고 욕조가 있었다. 이미지를 하였다. 지금 내 눈 앞에 오료가 있다고 상상하였다. 여기서 오료가 목욕을 하고있을 때, 저 너머 창문에서 낌새를 느꼈을 것이다. 그리고 황급히 나와서 알몸으로 저 계단을 뛰어올라간다. 료마의 방의 문을 젖히고 얼른 도망가라고 말한다.

이미지만 한게 아니고 난 실제로 그 계단을 뛰어올라가서 료마의 방에 들어가보기도하였다.

데라다야는 여관이므로 전통여관을 구경한 셈도 된다. 실제로 이곳에 150년이상 서 있었을것이 아닌가.

마지막코스에는 료마관련 책들이 빼곡이 꽂혀있었고, 관련 인물들의 사진도 여기저기 걸려있었다. 각종 신문기사들도 붙어있었다. 그 중에 하나 주목할 수 밖에 없는 신문기사가 있었다.

‘막부말의 데라다야, 소실(焼失)확인’

“으잉?”

간단히 말하자면 데라다야 1868년, 도바후시미전투에서 불탔고, 즉 막부말부터 쭉 남아있는 건물이 아니라는 것이다. 1862년의 데라다야소동 당시에 났던 칼자국이 지금도 남아있다고 전시를 하고있는데, 데라다야가 막부말때부터 남아있던 건물이 아니라던 주장은 전에도 몇몇 있었나보다. 그래서 교토시가 직접 조사를 하였는데 교토시도 막부말때부터 남아있던 건물이 아니라 결론을 내렸고, 때문에 교토시는 데라다야에 전시내용의 개정을 요구하였다한다.

그 다음 문장에는 빨간볼펜으로 줄이 쳐져있었다.

‘어디까지나 시의 견해이고, 지금까지의 여관운영이 전부 부정된 것은 아니다.’

아까 내가 칼자국을 만져보고의 첫 느낌 ‘필요이상으로 깊다’라고 생각한 걸 뒷받침이라도 하는듯한 기사였다. 그리고 또 하나의 의문이 든건, 굳이 이 기사를 액자에 넣어서 잘 보이게 전시할 필요가 있을까 하는 것이었다. 은폐를 하라는 이야기가 아니고, 안 걸어도 될 걸 득되는게 아무것도 없는 물건을 걸어놓은 것도 하나의 충격이라면 충격이었다.

이로써 이번여행의 메인이자 소원이었던 데라다야 관광을 마쳤다. 그런데 하나 신경쓰이는 것이, 인터넷에서 보면 방명록도 있는데 방명록이 보이지 않았다. 여기서만큼은 꼭 방명록을 쓰고 싶었다.

“방명록은 어디있나요?” “바로 뒤 테이블에 올려져있어요” 내가 못 보고 지나쳤나보다. 책꽂이에는 지난년도의 방명록들로 빼곡이 꽂혀있었다. 정성스레 방명록을 썼다. 꼭 오고싶었다. 생각해야 할 일이 있으면 사카모토 료마라면 어떻게 하였을까 생각하곤 한다. 등의 내용이었다.

그리고 기념품을 안 살 수가 없다. 여러 기념품들이 있었지만 가격대와 실속을 생각하면 선택의 폭은 몇 되지 않는다. 신센구미를 좋아하는 사야코에게 줄 오키타 소지 열쇠고리와, 나랑 똑같이 료마를 좋아하는 카나코에게 줄 료마의 가문이 새겨진 휴대폰줄 내꺼랑 합해서 두 개 샀다.

“정말 즐거운 관람이었습니다. 꼭 한번 이 곳에 오고싶었어요”

돈을 내면서 말했다. 진심으로 기뻐서 누군가에게 표현하고 싶었던 것 같다. 내가 한국인이라는 것을 알자 놀라서 얼굴이 변하였다. 한국인이 여기까지 찾아오는건 역시 드문 일일 것이다. 그러고나자 이번엔 거꾸로 직원쪽에서 나에게 이것저것 질문을 하기 시작했다. 일본엔 언제왔느냐, 료마는 언제서부터 좋아하게 되었나라던가말이다. 급기야 기념품을 파는 곳에서 나와서 나랑 대화를 하였다.

“교토에는 언제 오셨어요? 료마의 묘는 보셨나요?”

“오늘 왔어요, 료마의 묘는 내일 갈 생각이에요”

“그럼 이걸 가져가세요”

직원분은 구석에 꽂혀있는 여러장의 전단지 중 한 장을 뽑아 나에게 주었다.

“료젠역사박물관이라는 곳인데요, 료마의 묘랑 가까이 있는곳이에요. 막부말 역사에 관한 물건이 아주 많아서 즐거우실거에요”

“료젠역사박물관도 물론 내일 갈 겁니다.”

“알고 계셨군요!”

“네, 키요미즈데라랑 가까워서 찾기도 쉬울거라 생각해요”

“료젠역사박물관은 기대하셔도 좋아요, 이 전단지를 들고 가시면 할인이 되니까 받아두세요”

“오오오오오오오!!!!!!!! 감사합니다!!!”

청소를 하고 있었는지 다른방에서 또 다른 직원이 튀어나왔다. 아까 표를 살 때 돈을 건낸 분이다.

“이 분 한국인시래” 나랑 대화를 나누던 분이 소개를 해주었다.

“예!? 진짜요? 전 일본인인줄 알았는데!”

두 사람과 꽤 오래 대화를 나누었다. 가능한 오래 있고싶었지만 다음 일정도 있기에 슬슬 데라다야에서 나가려하였다.

“다음에 꼭 다시 오겠습니다. 정말로요”

“반드시 와 주세요”

아예 이 근처에서 살면 항상 데라다야를 올 수 있을텐데, 오사카 걸즈바에서 만났던 리리카가 생각났다.

데라다야의 출구로 나오면 사카모토 료마의 동상과 순난구열사의 비, 그리고 당시 데라다야의 주인이었던 오토세를 모신 향이 있었다. 사진을 찍고 또 다시 거기서 우두커니 서서 그것들을 감상하였다.

데라다야를 나와서 료마도오리로 들어가기 전에 카나코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미 학기는 모두 끝났으니 거의 모든 일본인들은 자기 고향집으로 돌아갔다. 카나코에게 이 휴대폰줄을 주려면 아직 토가네에 있어야한다.

“카나코, 지금 어디야? 나가노로 돌아갔어?”

“일치감치 왔어. 지금 나가노야”

“하긴 유학가야되니까 바쁘겠지, 한국은 일본보다 수업이 한달빠르니까”

“응, 요새 눈코뜰새없이 바빠. 오빠 한국에 가서도 잘 부탁해”

“그래 대전이라면 우리 집이랑도 가까우니까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볼 수 있어”

“지금 교토의 데라다야 앞인데, 꼭 오고싶었던 곳을 와서 너무나 감동이야, 카나코도 사카모토 료마를 좋아하니까 여기서 휴대폰줄 하나를 샀거든”

“정말? 고마워”

“이건 한국에 가서 줄게, 그때까지 내가 잘 보관하고 있으마”

료마도오리에는 여러 가게가 있었지만 단연 내가 들어간 곳은 ‘료마관’이라는 사카모토 료마, 막부말 관련 상품들을 파는 가게였다.

‘어느 하나도 빼놓을게 없네, 정말 통째로 사고싶다’

자기가 좋아하는 분야의 물건만 전문적으로 파는 가게가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생각을 누구나 했을 것이다. 나에겐 AKB샵이 있었고, 또 료마 관련 상품을 전문적으로 파는 가게가 있다면 가고싶다는 생각을 했다. 료마관에 들어갔을 때, 마음만 먹으면 갈 수 있는 AKB샵과는 감흥이 달랐다. 살 마음이 없더라도 물건 하나하나, 세세하게 관찰하였다. 마치 료마관을 검사나온 듯 오랜시간 천천히 구경하였다. 주인이 도대체 저 녀석은 뭐하는 녀석인가라고 생각하지 않을까 싶을정도로 말이다.

‘일본을 다시 한번 세탁한다’ 라는 유명한 료마의 말이 쓰여진 미니족자, 칼과 칼 거치대, 총과 부츠, 료마의 이름표가 세트인 조립식 장식 1200엔짜리와 료마의 도라지꽃 가문 스티커 500엔짜리를 집어들었다. 근데 다 알겠는데 저 부츠는 무슨 의미가 있지? 료마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안다고 자신하고 있었는데 모르겠다. 계산을 하고 부츠에 대해서 뭔지 물어봤다.

“이거, 다 알겠는데 부츠는 무슨 의미인가요?”

“아.....음.......사카모토 료마는 그 당시에 사람들보다 한 발 앞서서 생각하고, 행동하던 사람이었죠. 그 당시는 보통 조리를 신었는데 료마는 부츠를 신고 다녔어요. 그래서 부츠가 들어가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주인분은 갑작스런 질문에 당황했는지 짧지않은 시간 뜸을 들이다가 대답해주었다. 아, 그런 의미였구나!

“교토에 오길 너무너무 잘했어요! 데라다야는 정말 매일매일 꿈꿔왔던 곳이거든요!”

데라다야를 보고왔다는 흥분이 아직 가시지 않아서 주인에게 그 기쁨을 마구 표현하였다.

“아아, 교토는 꼭 와보고싶었거든요, 끝내주는 곳인줄은 알고있었지만 이 정도 일줄은 몰랐어요. 여기서 살면 안 될까요”

다행이 주인아주머니도 수다를 좋아하는듯했다. 귀찮다라는 내색을 비치긴 커녕 오히려 신나서 주인쪽이 더 말을 많이 하기 시작했다. 내가 한국인이라고 하자 주인은 깜짝 놀랐다.

“진짜요!!?? 아까 계산하면서 얘기할 때도 전혀 눈치못챘는데!? 와, 와, 대단해요.”

“아직 부족하죠..세상에 저보다 잘 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이 정도면 충분히 대단한거 아니에요? 그보다 여기를 직접 찾아오다니”

“전 여기를 가장 오고 싶었어요”

나보다도 주인이 더더욱 신나서 이야기를 했다.

“유학생이고 도쿄쪽에 있고 그래서 표준어구나. 그럼 유학은 이제 다 끝난거라고요?” “네, 한국돌아가기전에 오사카랑 교토는 꼭 와보고 싶었어요. 그래서 무리해서 이렇게 찾아왔어요. 오기 정~말 잘했어요!”

“일본에 얼마나 있던거에요?”

“1년이요”

“제가 궁금한게, 1년만에 이 정도로 일본어가 늘은거에요?”

“으으음, 글쎄요. 늘었기야 늘었겠죠....? 제가 아예 모르는 상태에서 온게 아니라 공부를 하다 온거라 얼마나 늘었나 그건 모르겠네요. 제발 늘었으면 좋겠네요. 아! 한 가지 확실한건 듣기만큼은 비약적으로 발전했습니다.”

“역시, 1년동안 있으니까 달라지는게 있는거지요?” “물론입니다. 단순히 언어가 늘었다는 그런문제가 아니에요. 여기에 살면서 느끼는 일본만의 문화같은건 직접 와보지 않고서는 배울 수 없는 것 아니겠어요? 그리고 여기 전차노선같은거, 아무리 일본어를 잘한다 해도 전차노선을 알 수는 없죠. 알 수 있다해도 그건 어디까지나 머릿속에서 맴도는 지식이기에 헤맬 수 밖에 없지요. 텔레비전을 보면서 지금 일본에서 유행하는건 무엇인가. 누가 인기가 있는가. 그런 문화를 습득하는게 유학의 가장 큰 장점이라고 생각해요. 언어가 느는건 당연한거고요”

주인은 내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교환유학이었다고 했나요?”

“네”

“저도 딸이 캐나다로 곧 유학을 가거든요”

“왓!? 정말요?” 그래서 나한테 이것저것 여러 가지 물어봤구나. 단순히 흥미본위가 아니었던 것이다.

“부모님이 보고싶지는 않아요?” “솔직히 말씀드리면 전 여기 일본생활이 너무나 즐거워서요...이제 곧 돌아간다는 사실이 슬퍼요. 1년만 더 있고싶은데...부모님은 23년간 봐왔는걸요? 그러니까 좀 더 안 봐도 괜찮아요. 부모님이 이런 말 들으면 서운하시겠지만”

그만큼 일본생활이 너무나 좋았다는 이야기이다.

“게다가요, 요새 세상이 좋아져서 멀리 있는 것 같지가 않아요. 스카이프라고 해서말이죠”

“아아아아아! 스카이프 알아요 알아요, 얼마전에 딸이 가르쳐줬어요. 캐나다에 가 있을 때 이걸로 연락하면 된다고”

“대단하지 않아요? 해외에서 얼굴을 보며 통화할 수 있다는게? 게다가 무료라고요!”

“전 이 좋은게 정말 무료인지 긴가민가해서 좀 겁나기도 했어요 하하하”

“푸하하하하하하하하 저희 어머니도 처음에 이게 정말 공짜냐고 집요하게 물어봤었어요 푸하하하하하하하”

일본에 처음왔을 때 스카이프가 정말 무료냐고 매 통화마다 집요하게 물었었다.

“오히려 한국학교에 있을때보다 일본에 있을 때 통화를 더 많이한다니까요? 거기다가 스카이프는 얼굴도 볼 수 있으니까 딱히 떨어져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아요.”

“알 것 같아요! 오히려 그런법이죠. 멀리 있으면 더 연락자주 안하고”

“하루만 안해도 무슨 일 있었냐고 막 걱정했다고 난리치고요”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누가보면 료마관의 주인은 따로있고, 나랑 주인아주머니랑 여기를 커피숍으로 착각해 수다를 떨고있는 줄 알 것이다. 주인은 주섬주섬 무엇을 챙겼다.

“이거, 선물이요”

사카모토 료마의 엽서들이다.

“우왓!!!?? 사양않고 받겠습니다.”

“유학에도 종류가 여러개 있죠?”

“예?” “아, 여기에 이런게 있거든요, 2+2라고 해서 2년간 유학을 다니고 해외대학 졸업장도 같이 나오는 프로그램이요”

“아!! 2+2! 여기서도 그렇게 부르나요?”

“설마 교토까지 와서 2+2라는 말을 들을줄이야. 게다가 내용도 똑같다. 좋은건 모방해서 나쁠게 없지만 어딘가는 따라했다는 이야기이다.”

“그건 학비를 다 내고 가는거죠?” “네, 저희학교 2+2는 그렇습니다. 학교에서 장학금이라는 이름으로 지원이 나오긴하지만 그래도 역시 어마어마한 돈이 들죠”

딸이 유학을 간다는데 불안하지 않을 부모가 어디있을까, 주인은 나에게 이것저것 여러 가지를 물어보았다. 마치 이 분에게 유학에 대한 정보를 주기위해 여기에 온 것과 같은 기분이었다. 시간은 이미 4시 30분을 가르키고 있었다. 교토의 관광지는 거의 4시에 문을 닫는다. 이왕 이렇게 된거 주인이랑 많은 수다를 떨어 일본어를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이제 내가 이렇게 일본어로 길게 수다를 떨 수 있는 시간은 많지 않다.

주인은 나에게 사카모토 료마 열쇠고리 하나를 더 선물로 주셨다.

“사카모토 료마 좋아하시나요?” 내가 주인분에게 물었다.

“아? 음.....나도 이게 일이니까 조사를 하게 되고 그러다보니 좋아하게 되었어요 하하”

잘 기억나지는 않는데, 이 료마관은 이 아주머니가 자의로 세운게 아닌 듯 하다. 남편이었나?

“아하하....아까부터 료마얘기 계속했잖아요. 혹시 아주머니는 그냥 운영하고 있는것뿐이고 료마얘기 관심도 없는데 제가 계속 료마얘기해서 짜증나는게 아닌가하고”

주인은 폭소를 했다.

“그럴리가요 그럴리가요, 저도 사카모토 료마를 좋아한답니다.”

“그래요? 그게, 좋아했다가도 일이되면 싫어지는 경우도 있어서요.”

주인은 다시한번 폭소를 하였다.

료마관에 얼마나 있었을까, 처음만나는 사람, 거기다가 가게손님과 주인의 관계임에도 불구하고 굉장히 오랜시간 웃으며 대화하였다. 너무나 즐거웠지만 슬슬 나가보기로 했다. 이 아주머니랑은 연락처를 교환해서 계속 대화를 나누고싶을 정도였다. 하지만 너무 배가고팠다. 오늘 이 시간이 되도록 하루종일 아무것도 먹지 않았다. 마침 다른 손님이 들어왔다. 계속 주인과 대화하는건 실례이다.

“이제 슬슬 가보겠습니다. 선물 감사합니다. 다음에 반드시 다시 오겠습니다.”

“에이, 한번 봤는데 또 오시려고요? 교토에는 다른 볼거리가 아주많아요!”

“물론 그것들도 봐야죠, 하지만 데라다야는 별개에요. 제가 만약 이 근처에 살았다면 매일 데라다야에 들어갔을거에요.”

료마관을 나와서 뭐 먹을곳이 없나 찾았다. 하지만 료마도오리는 기념품을 팔거나 옷을 팔거나 하는 곳이라서 먹을게 없었다. 아까 지나왔던 고코노미야신사 근처에 시장이 있으니까 거기서 먹으면 되겠다. 라고 생각은 했지만 너무나 배고파서 거기까지 갈 수가 없을 것 같았다. 데라다야라던가 료마관 주인과의 대화가 즐겁고 신나서 밥 먹는것도 까먹었다가 이 시간이 되었으니 아무 식당이나 있으면 가야겠다.

식당을 찾다가 손이 뭔가 허전하게 느껴졌다. 아침에 편의점에서 산 우산이 없다. 비가 그쳐서 지금은 그냥 짐이지만 무려 600엔이다. 찾아야한다.

다시 료마관으로 들어갔다. 주인은 내가 나갈 때 들어온 손님 둘과 수다를 떨고 있었다. 이 주인 아주머니는 그냥 수다를 좋아하는 사람인가보다.

“오! 마침 이야기를 하고 있었는데 다시 오셨네”

주인 아주머니는 내 이야기를 하고있었다고 했다.

“한국인이시라면서요!? 대단해요!”

손님 두 분이랑도 잠시 대화를 하였다. 지금 얘기를 하러 온게 아니고 빨리 우산을 찾아 뭐라도 먹고싶었다.

“아, 저기 우산을 놓고간거 같아서요”

“응? 우산? 그런거 안 보였는데”

료마관을 한 바퀴 돌아봐도 우산은 보이지가 않았다.

“혹시 데라다야에 놓고 오신거 아니에요?”

주인이 말했다. 비도 안 오는데 편의점에서 산 비닐우산(비닐우산 치곤 비싸지만)을 누군가가 그 사이에 훔쳐갔을리도 없고, 료마관에는 없는게 확실했다.

“실례했습니다.”

그렇게 말하고 료마관을 나오는데, 손님 두 사람도 나를 따라 나왔다.

“사카모토 료마를 좋아하셔서 여기까지 찾아오셨다면서요”

손님 두 사람중 남자 하나가 말했다.

“예예, 정말 좋아해요, 보세요. 가방도 료마잖아요”

“와! 정말이네!”

그 남자랑 같이 있던 여자가 가방을 보며말했다.

“사카모토 료마는 일본에 와서 좋아하게 된건가요? 아니면 한국에서 뭔가 계기가 있나요?”

일본인이라도 료마에 관심이 없다면 데라다야의 존재조차 모를 것이다. 여기 있다는 것 자체가 료마에 관심이 있다는 이야기이므로 두 사람은 나를 굉장히 흥미롭게 보며 이것저것 질문을 했다.

“원래 역사를 좋아하기도 했고...‘료마가 간다’라는 책을 읽고 흥미를 가지게 됐어요.”

료마관 주인이랑 했던 얘기를 또 하고 있다. 특히나 남자가 정말 재미있다는 표정으로 나와의 대화를 계속하였다. 마음만 먹으면 또 한 시간 정도 이야기를 했을텐데 빨리 우산을 찾아야했고 배가 고파서 대화를 끊었다.

“전 우산을 찾으러 다시 데라다야에 가보겠습니다.”

“아아아, 죄송합니다. 얼른 가보세요”

하지만 데라다야의 문은 굳게 닫혀있었다. 맞다. 4시까지만 열지...내가 데라다야를 나올 때 이미 폐관직전이었던 것이다.

“비도 안 오고, 여행하기에 거추장스러운 짐 하나 버린 셈 치지 뭐”

말은 저렇게 해도 마음은 그렇지가 않다. 이제 얼른 뭐라도 먹고 교토역으로 돌아가 숙소에 들어가야겠다. 주요 관광지는 이미 다 문을 닫았을테고 일단 숙소 체크인을 한 다음에 좀 쉬었다가 밤에도 볼 수 있는 기온을 가던 시조도오리를 가던 할 생각이다.

“그건 그렇고 진짜 시골동네네.......”

아~무것도 없었다. 아무리 교토라도 지역전체가 번화할 수는 없는것인가, 아니면 교토전체가 문화재라는 특수성 때문에 개발을 제한하는 것인가, 어느쪽인지는 몰라도 정말 아무것도 없었다. 그렇기에 나의 주린배를 채워 줄 작은 식당하나조차 보이지 않았다. 그렇다면 답은 하나다 얼른 고코노미야신사 가까이에 있던 시장으로가서 맛있는걸 닥치는대로 집어먹을 것이다. 지도를 보고 열심히 걸었다. 초등학교가 있었다. 그래서 귀여운 초등학생들이 떼거지로 있었다. 기뻤다. 오해하지 마시라, 초등학생을 보고 기뻤다는게 아니고 초등학교가 있다는 것은 근처에 먹을게 있다는 이야기이다. 우리나라 초등학교 앞에는 떡볶이 같은 군것질 거리를 팔지않는가. 잔뜩 기대를 하고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그런건 없었다.

얼마나 걸었을까, 중간에 볶음밥이나 만두를 파는 음식점이 하나 나왔다. 교토까지 와서 이런 평범하기 짝이없는 볶음밥집을 들어가는건 아까운 생각이 들었지만 아무래도 괜찮았다.

“어랍쇼....?”

문은 굳게 닫혀있었다. 하는 수 없이 다시 지도를 펼치고 걷기 시작했다.

지도가 워낙에 넓은 범위를 그려놓았기에 그림이 굉장히 작았다. 시골길(교토가 시골은 아니지만)이라 복잡하니까 점점 알아보기가 힘들어졌다. 정확히 따라가다가 내가 어디에 있는지 알 수가 없어졌고 나름 지도를 따라 간다고 갔다가 이리꺾고 저리꺾고 하다보니 방향감각까지 잃어 잘 가고 있는건지 반대방향으로 가고 있는건지 알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휑하니 이정표가 될 만한 건물도 없다. 철저히 감을 믿고 길을 따라나서는 수 밖에 없었다. 자유여행만이 느낄 수 있는 특권이다. 하하하하하하.

내가 지금 걷고있는 이 길이 틀리더라도 제발 방향만은 맞기를 기도했다. 만약 반대방향으로 걷고있는거라면 정말 대책없어진다.

얼마나 걸었는지 모른다. 확실한건 여행지 두 세 개는 더 볼 시간을 계속 걷기만 했다는 것이다. 이럴바에야 그냥 온 길을 똑같이 되돌아가가는게 나았다. 좀 더 빨리 가자고 모험을 했더니 이 사단이 나버렸다.

한참을 걷다보니 전차선로가 나왔다. 내 감은 틀리지 않았다. 한국에서 고질적인 길치였지만 일본에서 여러 여행을 다니며 레벨업했음이 분명했다. 전차선로가 나왔다는건 모모야마역이 곧 가깝다는 뜻! 마음한켠 불안했던 것이 가셨다. 전차선로가 나온 것 까진 좋은데... 아까 시장이 있었는데 시장대신에 역이 있네?

‘近鉄丹波橋駅’

“잉!!??”

황급히 지도를 펼쳐보았다. 긴테츠탄바바시역이라니, 올라와도 너무 올라왔다. 하지만 자기 위치도 모르는 상태에서 여기까지 온 걸 칭찬해야한다. 솔직히 지금 나의 위치가 어디인지 안 것만해도 대단한 수확이다. 좀 많이 지나쳐 올라오긴했지만 다시 내려가서 왼쪽으로 꺾으면 모모야마역이 나오리라.

그런데 또 문제가 생겼다. 여기가 긴테츠탄바바시역인건 확실히 알았고 이제 지도를 따라서 모모야마 역까지 가면 된다. 그리 멀지도 않다. 제대로 간다면 30분안에 갈 수 있다. 하지만 지도에 표시된 길이 가뜩이나 좁은데 복잡해서 한참을 연구해야했다. 선로앞에서 서서 지도를 계속 빤히 바라보았다. 가장 간단한 방법은 킨테츠탄바바시 역으로 들어가 교토역까지 그냥 전차를 타고 가는거다. 지금 생각하니 굉장히 웃긴데, 자존심이 허락하질 않았다. 이왕 길을 헤멘거 난 반드시 모모야마역을 찾아내고야 말겠다는 오기가 생긴 것이다. 여기서 전차를 타고 교토역까지 가면 지는 것이다라는 생각이 가장 강했고, 고코노미야신사 근처에 있던 시장에서 밥을 먹고 싶었다. 이미 관광지들은 문을 닫았을 테니 교토의 재래시장을 천천히 둘러보며 별미를 맛보고싶은 것이 두 번째 생각이었다.

이 생각이 얼마나 바보같은지는 나중에 숙소에 도착해서 알았다, 킨테츠탄바바시역에서 교토역까지는 환승없이 10분이면 도착하더라.

킨테츠탄바바시역의 발견으로 기껏 내 위치를 파악해놓고, 또 다시 길을 잃었다. 감으로 모모야마 역으로 향하고 있다. 옛 사람들은 북극성을 보고 방향을 잡았다던데 낮에는 북극성이 안 보이잖아? 과연 어떻게 방향을 잡았을까.

“......뭐야 이거 아까 왔던 길이잖아.”

대단히 어려운 미로찾기이다. 일반적으로 미로찾기는 잘못된 길에 들어서면 막다른 길이 있으므로 길이 막혀있으면 다른길로 가면 되지만 이건 그게 아니다. 한번 잘못된 길로 들어서면 밑도 끝도없이 계속 잘못된 방향으로 가니 더 위험하다. 지금 얼마나 많은 시간을 그냥 허비했는지 계산이 불가능 할 정도이다. 그냥 모모야마 역에서 데라다야까지 왔던 길 그대로 돌아갈걸 하는 막심한 후회를 하였다. 20분이면 돌아갈 길을 한 시간째 헤매고 있다.

“지금 웃을 상황이 아니다. 이대로 가다가 정말 밤새 길을 못찾겠다.”

풍경은 더더욱 시골로 변해서 행인조차 없다. 생선가게가 하나 있길래 바로 여기다라고 생각하여 생선가게 주인에게 지도를 보여주며 길을 물었다.

“JR모모야마 역으로 가고싶은데요.”

“으잉!? JR요?”

생선가게 주인은 왜 거기까지 가느냐고 반문하고싶다고 얼굴에 쓰여있었다. 장담컨대 이 생선가게 주인은 가까이에(이미 오래 걸어와서 가깝다고는 말 못하지만)탄바바시역이 있는데 왜 굳이 JR모모야마역을 찾는지 이해불가라고 생각하는 중일 것이다.

“아, 그 전에, 도대체 여기는 어디입니까?”

“여기요..? 흐음......”

생선가게 주인은 지도를 한참보다가 모모야마역과 굉장히 멀리떨어진곳을 손으로 짚었다.

“신마치12쵸메니까 여기네요”

‘으익........’

아까 킨테츠탄바바시역에서 남쪽방향으로 가야했는데 지도를 알아볼수없어서 느낌가는대로 왔더니 정 반대방향으로 걸어왔나보다. 큰일이다. 걸어온 시간만큼 다시 되돌아가봤자 킨테츠탄바바시역일뿐이다. 거기서부터 또 한참을 걸어가야 모모야마역이라는 이야기이다.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한 시간은 걸어가야 할거에요.”

한 시간 넘게 걸어서 여기 온 것 같은데 한 시간을 더 걸어가라니....아무튼 여기가 신마치12초메라는거지? 지도상으로 대충봐도 장난아니게 멀리왔다.

‘신마치5초메에서 왼쪽으로 꺾은다음 쭉 가면 되겠군’

신마치12초메, 11초메, 10초메, 9초메....하염없이 길을 걸었다. 아, 멀다. 하루종일 아무것도 안 먹어서 무언가를 먹으려고 나온건데 두 시간을 걸어서 마침내 제대로 왔다. 아까 아침에 봤던 고코노미야신사가 그렇게 반가울수가 없었다. 이미 시간은 저녁이 되어 하늘은 점점 어두워져가고 있었다.

무언가를 먹어야했기 때문에 일단 눈에 들어오는거 아무거나 입에다 집어넣기로했다. 마침 딱 안성맞춤인 것이 눈에 들어왔다. 타이야끼였다. 직역하자면 도미빵. 우리나라의 붕어빵의 원조격인 풀빵이다. 8월 달에 아자부주반을 구경하러 갔을 때, 여행책에 맛있고 유명한 타이야끼집이 있었기에 찾아다녔지만 망한건지 못 찾은건지 아무튼 먹지 못했던 기억이 있다. 그리고선 거의 반년 후, 한 동안 잊고있었던 타이야끼가 실제로 내 눈앞에 있다.

타이야끼는 붕어빵보다 크기가 더 크다. 붕어보다 도미가 더 크기가 큰지 어떤지는 낚시를 즐기지 않기 때문에 모르지만, 타이야끼는 딱 봐도 꽉 차 보인다.

붕어빵이 그렇듯이 팥이 들어간건 당연한데, 팥 이외에도 또 하나가 써 있었다. 즉, 두 가지 맛이 있었다. 白玉라고 써 있었다.

‘시로타마?’

요즘 붕어빵을 먹으러 가면 당연히 팥과 슈크림 두 가지 맛이 있듯이(슈크림 붕어빵은 몇몇곳에서만 팔다가 내 기억에서는 고등학교 2학년 때 쯤에 일반화가 됐다)일본도 그런 줄 알았다. 난 무엇이던지간에 오리지날을 좋아하므로 팥을 사 먹으려고 하였지만, 한국의 붕어빵과 맛은 그다지 차이가 나지 않을것이라는 생각에 白玉를 주문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리고 도대체 白玉가 무엇인지 그것도 궁금했기 때문이다. 화이트초콜렛이라도 들어있나?

“시로타마 하나 주세요”

白玉을 시로타마로 읽어서 시로타마라고 주문했다. 점원은 다시 되물었는데 나중에 알고보니 白玉는 ‘시로타마’가 아니라 ‘시라타마’라고 읽는것이었다.

“여기있습니다.”

붕어빵 큼지막한버전이 내 손에 들려있었다. 날이 어두워지도록 아무것도 먹지 않았기에 재빨리 한 입 물었다.

‘엥?’

타이야끼를 베어물어 보이는 속살은 白玉라고 불리기에는 너무도 어색한 색깔이었다. 아니 뭐지? 이건 맛으로보나 생긴걸로보나 그냥 팥이 아닌가! 나의 일본어가 잘못됐던것인가, 아니면 점원이 실수를 한 것인가. 기왕 베어물은 것 그냥 먹기로 했다. 그래, 오리지널을 느껴야지. 지금은 붕어빵에 슈크림이 너무나 당연하지만 처음 봤을 때만해도 붕어빵에 무슨 장난질이라고 느꼈으니까. 뭐가 됐든간에 오늘 처음먹는 음식물이라서 정말 꿀맛이었다. 근데 어라? 무언가 찰진 떡 같은 것이 이빨에 걸렸다. 그제서야 나는 모든 수수께끼를 풀었다. 이게 白玉구나!! 白玉는 새알을 말하는거였구나! 팥죽에 들어갈때나 새알을 보아서 우리나라밖에 없는 줄 알았는데 일본붕어빵, 타이야끼에서 이걸 볼 줄이야.

당연히 타이야끼 하나로는 밥은커녕 간식도 되지 않는다. 그래서 바로 옆에 있는 오야코동 전문점으로 들어갔다. 일본에 와서 제대로 된 오야코동을 안 먹어본 것이 아니다. 그러나 유학생활 초기에 먹었었고 그 후로는 다 100엔짜리 인스턴트로 먹었기에 그 맛을 잃어버렸다. 오야코동만 주문한 것이 아니고 우동까지 세트로 나오는 메뉴를 시켰다. 저녁시간이기도 했지만 시장통이라 그런지 사람이 굉장히 많았다. 내 옆에 여자분 하나가 혼자 먹고 있었는데 마주보고 앉아서 같이 먹어주고 싶었다.

사람이 많아서 그런지 주문한 메뉴가 나오는데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얼마 후 오야코동과 우동세트가 나왔다. 그런데 옆에는 쿠폰비스무리한게 있었다. 요시노야가 지금 스탬프카드 이벤트를 하므로 그런거 비슷한거인줄 알았다. 앞으로 다시는 오지 못할곳이기에(언젠가 올 수도 있지만)전혀 소용이 없으므로 젓가락을 들고 오야코동의 맛을 보려했다. 그런데 쿠폰을 자세히보니 카라아게 몇 개를 서비스로 공짜로 준다는 이벤트 쿠폰이였다. 배가 고픈 와중에 아주 잘 됐다. 당장 점원을 불러서 이 쿠폰을 지금당장써도 되냐고 물었다. 점원은 쓸 수 있다고 해서 지금당장 갖다달라고 하였다.

오야코동과 우동에 카라아게까지, 하루종일 먹지못한 것을 한번에 보상받고 드디어 모모야마역에 도착하여 JR교토역으로 돌아가는 전차에 몸을 실었다.

돌아오면서도 아까보았던 데라다야의 정경이 머리에 떠나지가 않았다. 시간이 허락했다면 내일 또 가고 싶었다. 그럼 그 땐 오늘처럼 길을 헤매지 않겠지...

하교시간인건지 전차안에는 학생들이 많았다. 대부분 여학생들이어서 재잘재잘 수다소리가 끊이지가 않았다. 그리고 여기서 도쿄 쪽과 오사카쪽이 확실히 다르다는 것을 거기서 느낄 수가 있었다. 도쿄 쪽의 전차는 아주 조용하다. 학생들이 타면 조금 대화소리가 많이 들리긴 하지만 분명히 가라앉은 목소리로, 브레이크가 걸린 듯한 대화이다. 물론 지금 내가 탄 이 교토전차에 학생들이 많아서 평소보다 시끄러운건 당연히 있겠지만, 여기저기 웃으면서 대화하는 직장인들도 있는 것을 보아, 이게 평소랑 다른모습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이나리역에 정차했을 때 바로보이는 ‘후시미이나리신사’도 교토의 관광지 중 하나이다. 영화 ‘게이샤의 추억’으로 유명해졌다고 하는데 그 영화를 보질 않아서 어떤 장면인지는 모르겠다. 전차의 차창너머로 마스코트인 그 주홍색 도리이가 보였다. ‘센본도리이’라 불리는 주홍색의 수많은 도리이가 만든 터널이 압권인 곳으로, 책의 사진만으로도 그 풍경이 내뿜는 황홀함은 대단했다. 시간상의 문제로 여행일정에는 포함되지 않았지만, 아니, 내가 데라다야에서 돌아오는 길에 길을 잃지 않았다면 잠깐 구경은 할 수 있었겠지만 이렇게 잠깐 이나리역에 멈췄을 때 본 걸로 만족해야했다.

이나리 다음 역은 도후쿠지인데 여기도 관광지이다. 교토는 정말 대단한곳이다. 이 곳에 사는 사람은 얼마나 행복할까라는 생각이 또 다시 들었다. 그리고 좀 진작에 교토도 한번 맛보걸 하는 후회도 다시 밀려왔다.

JR교토역에 도착하였다. 코인락커로 가서 넣어놓은 짐을 찾았다. 낮에는 그냥 낡은 등대같이 생겼던 교토타워가 밤이 되어 아름답게 빛나고 있었다.

교토는 어두워지면 관광코스가 극단적으로 좁아진다. 일단 숙소에 가서 짐을 놓은다음 기온을 갈까 시조도오리를 갈까는 침대에 누워서 몸을 쉬이며 생각하기로 했다.

시계를 보았다. 오후 8시를 향해 달리고 있었다. 숙소를 예약할 때 체크인 예정시간이 있길래 대충 오후 7시 20분으로 써넣었다. 써 넣고서도 ‘너무 늦은거 아냐? 대충써도 너무 대충썼나’라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더 늦게 가고 있다.

숙소로 잡은 ‘지유인’ 교토역에서 가는 길이 아주 단순하다. 미리 뽑아 온 지도를 보며 계속해서 앞으로 갔다. 걷다보면 히가시혼간사가 나올테고 좀 더 걸으면 ‘가라스마고죠’라는 지하철역이 있다. 그리고 그 앞에 ‘오우미야’라는 이름의 주식회사가 있는데 거기서 오른쪽으로 꺾어서 쭉 나오면 된다.

하지만 꽤나 오래 걸었는데 인적은 점점 드물어지고 내가 지금 제대로 가고 있는게 맞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 아까 후시미 모모야마에서 신나게 길을 헤맸으니 또 그렇게 되는거 아닌가라는 불길함이 스쳐갔다. 근데 그 때는 워낙에 길이 복잡했으니까 그랬고 난 지금 계속 직진만했으니 맞게 오는것일텐데? 지도상으로는 교토역에서 조금 앞에 히가시혼간사가 있으므로 히가시혼간사는 나와도 한참 전에 나와야했다.

그렇게 불안감을 안으며 계속 직진을 했는데 히가시혼간사를 가르키는 팻말이 보였다. 순간 바르게 왔다는 안도감과 함께 이제야 히가시혼간사라는 사실에 놀라움이 일었다.

“아니, 이제 히가시혼간사라고?”

분명 지도상으로 교토역에서 조금 떨어져있는데 이제야 히가시혼간사라는 사실은....숙소까지 얼마나 걸어야 도착할 수 있다는 이야기인가? 오늘은 글자그대로 하루종일 걷는구나 싶었다.

히가시혼간사가 나타나 준 덕분에 확신을 걷고 큰 걸음으로 빨리빨리 걸어서 별탈없이 숙소에 도착하였다. ‘時遊人’ 이라는 간판을 보고 잘 왔구나 싶어 크게 안도했다. 긴장하면서 미닫이문을 열었다. 카운터에는 안경 쓴 남자 하나가 있었고 문을 연 나를 바라보았다.

“......”

“......”

멀뚱멀뚱 서로 바라만 보았다. 굉장히 이상한 광경이다. 보통 손님이 들어오면 반갑게 맞이를 하고 어떻게 오셨냐라던가 해줘야하는데 인사조차 하지 않는다. 보다못해 내가 먼저 입을 열었다.

“저기....체크인하러 왔는데요”

그 말을 꺼내고나서도 이 안경 쓴 남자는 입을 여는데 한참이 걸렸다. 굉장히 불쾌했다. 아니면 아르바이트생이고 초보라서 일 머리가 없는것인가, 그렇다보기엔 나이가 30대 중반쯤은 보이니까 무리가 있는데.

“이름이 어떻게 되시죠?”

“조영빈이요”

“아아!!!!!”

그제서야 안경 낀 남자의 얼굴에 안개가 걷힌 듯 환해지며 정말 늦은 인사를 하였다. 캐시카운터 작업을 하고 돈이 안 맞아서 근심걱정을 하다가 구석에 숨어있는 50엔짜리를 발견한 듯한 표정변화였다.

“딱 들어왔을 때 일본인인 줄 알았거든요. 이상하다, 오늘 들어올 일본인 남자는 다 들어왔는데 체크인을 한다고하니까... 제가 실수한게 있었나 싶었거든요”

일본어를 잘해서 일본인으로 착각했다라는 말은 들을 수 있다. 근데 한 마디도 안했는데도 얼굴만 보고 일본인으로 보이다니 환경에 따라 얼굴도 변하는것인가. 한 두 사람이 그러는게 아니니까 생각해보게 되었다.

“제가 일본인으로 생겼다는 말인가요?”

“숙박업 일을 하니까 딱 보면 어디서 왔는지 보인단말예요, 근데 조영빈씨는 아무 의심없이 일본인이라 생각해서 제가 혼동좀 했습니다. 거기다가 체크인 하겠다는 일본어도 너무나 자연스러워가지고....하하하하”

체크인에 필요한 정보를 쓰면서 대화를 계속하였다.

“어디어디를 돌아다녀보셨나요?”

“제가 사카모토 료마를 좋아하거든요, 후시미 데라다야를 실제로 본 순간 너무나 감동을 해서 말이 나오지가 않더라고요.”

“료마를 좋아하신다면 오우미야의 터 한번 가 보시는것도 좋을거에요. 여기서도 가깝고...”

“거긴 교토 도착하자마자 갔어요”

“네? 푸하하하하하하하하 역시! 이야~ 참 특이한 코스네요.”

“거기 앞에서 30분은 서 있던 것 같아요”

“거기서 30분!!??”

“비록 비석밖에 없지만 이 자리에서 료마가 베어졌구나, 그 당시에 료마가 칼을 맞던 장면을 눈 앞에 그리면서 감상하는거죠”

그리고 숙박료를 지불하였다.

“죄송합니다. 잔돈이 없어서요....”

“괜찮아요 푸하하하하하하하하 역시 일본인 같아요! 일본인들이 항상 큰 지폐를 낼 때 잔돈이 없어서요~하면서 내잖아요?”

실제로 저 말은(すみません、細かいのがなくて....)아르바이트 하면서 손님들에게 배운 것이다. 돈을 내고, 와이파이 비밀번호 등을 물어보면서도 역사이야기는 계속되었다.

“대단하네요, 역사를 좋아하시나봐요?”

“아주 좋아합니다! 특히 그 중에서도 막부말 역사를 제일 좋아해서요. 시바 료타로 책을 좋아합니다.”

“하하하하하 시바료타로라...상당히 매니악하네요. 음 그럼 신센구미라던가는..?”

“으음, 신센구미도 확실히 관심은 있긴한데요, 저는 역시 료마를 좋아하기 때문에 정 반대 입장에 있었던 신센구미가 좋다! 라고는 말하기가 힘드네요 하하하”

“시바료타로가 신센구미에 대해 쓴 책이 있어서 물어봤어요. 히지카타 토시조가 주인공인데 음음 제목이....타올라라 검”

“아! 타올라라 검, 한국에도 번역되어서 나왔었습니다.”

“그런 책들이 다 번역되서 외국인에게도 읽힌다는게 개인적으로 참 신기해요”

“아닌것도 있지만 일본역사를 좋아하는 사람들도 많으니까요, 제 친구중에 신센구미를 아주 좋아하는 여자아이가 있는데 저는 료마를 좋아해서 가끔 대립하곤 합니다 하하”

“료마가 신센구미한테 암살당한건 아닐텐데요”

“네네 암살한건 미마와리구미라는게 정설인데, 확실히 처음엔 신센구미가 의심받았었죠”

“정말 대단하시네요, 역사가 좋아서 왔다는 외국인은 몇 명 봤어도 이렇게까지 이야기하는 사람은 이 일 하면서 처음이에요”

“오오, 그런 외국인이 있긴 있군요”

“네, 근데 대부분이...”

“전국시대겠죠”

“맞아요, 오다 노부나가라던가, 도쿠가와 이에야스. 전국시대에도 관심이 있나요?”

“물론입니다. 없을 수가 없죠! 다만 막부말 역사가 가장 재미있어서 좋아하는거지요”

“막부말 역사라면 료젠막부말박물관에 가 보세요”

“아아, 거긴 내일 갈 예정이에요”

“역시! 막부말 역사를 좋아한다면 빠질 수가 없죠, 그 옆에 사카모토 료마의 묘도 있고요”

“내일의 메인입니다. 료젠막부말박물관과 사카모토 료마의 묘는요”

“그럼 내일 일정은 어떻게 되시는건가요?”

“음, 그게 이제부터 차근차근 정리를 하려고 하는데요, 일단 니조성을 갔다가 료젠박물관이랑 료마의 묘, 바로 옆에 키요미즈데라가 있죠? 그리고 미부데라에 시간이 남으면 금각사? 이 정도에요.”

남자는 내 말을 들으며 버스노선도를 바라보았다.

“효율면으로 봤을 땐 니조성 다음에 미부데라, 그리고 료젠박물관이 좋을텐데요”

“그렇긴한데, 제가 료젠박물관에서 얼마나 오랜 시간 있을지 몰라서요”

“푸하하하하하하하 그렇네요 그렇네요 오우미야 비석 앞에서 30분을 서 있었으니까! 좋아하는건 오랜시간 충분히 구경한다!”

“그렇습니다. 하하하하하”

“완벽한 루트네요”

“저기 근데”

“예?”

“일단 짐 갖다놓으시는게 어떤가해서”

“아아아, 맞다.” “저도 까먹고 있었어요”

“헤헤헤 이야기가 재밌어지다보니”

키를 받고 방으로 들어가려 뒤를 돌았는데 뒤를 돌면서 뭔가 굉장한 것이 눈에 스쳤다. 남자랑 대화를 나누느라고 바로 앞에 있는 이 물건을 눈치채지 못했다가 이제야 본 것이다.

“이 부채 뭔가요!”

하얀색과 하늘색으로 조화되어있고 ‘誠’라고 가운데에 써져있는 부채가 꽂혀있었다.

“과연 바로 알아보시는군요”

신센구미는 ‘誠’라고 써 있는 깃발을 내세우고 활동하였다. 과연 교토의 게스트하우스이다. 신센구미 부채가 떡 하니 카운터에 있다니.

“몇 명 정도 아세요?”

남자는 부채를 들고 뒤집어서 뒷면을 보여주었다. 신센구미 대원들의 이름이 쫙 써 있었다.

“곤도 이사미, 히시카타 토시조, 오키타 소지, 사이토 하지메, 나카쿠라 신파치, 도도 헤이스케....”

“와, 저보다 많이 아시는 것 같은데요?”

“아니, 신센구미는 이 정도 밖에 몰라요. 이거, 얼마에요?”

“얼마더라....제가 산 게 아니라서요. 200엔이었나”

“200엔!?”

싸구려같이 생겼어도 나름 기념품의 모양을 하고 있었기에 좀 비쌀 줄 알았는데 200엔이라니. 신센구미를 아는 친구들에게 기념품으로 사다주면 제격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사야코가 굉장히 기뻐할 것 같다. 근데 기념품이라는게 딱 그 장소에서만 특정 제품을 판매하는게 아니라 어딜가나 거의 그 제품이 있기마련인데 데라다야에서 이런 부채는 보지못했다.

“어디가면 이 부채를 살 수 있나요?” 남자는 웃으면서 카운터 밖으로 나왔다. 그리곤 내 옆에 있는 교토시내 전체 지도에서 한 곳을 짚었다.

“여기가 미부데라에요”

내일 일정에 포함 되어있는 미부데라는 신센구미가 검술훈련을 한 곳으로 유명한 곳으로 나는 신센구미 국장이었던 곤도 이사미의 흉상을 보러 일정에 넣었었다.

“오오! 미부데라에서 이 부채를 파나요!? 우와 오늘 안 가길 잘했네요!!!”

바보같은 소리다. 오늘 갔다면 이 부채를 발견하고 살 수 있었겠지.

“미부데라에서 파는건 아니고요, 여기 미부데라 옆에 구 마에카와 저택이라는거 보이죠?”

그 때 카운터 뒤에서 여자 분 하나가 나타났다. 남자랑 닮은 것을 보아 이 남자의 동생임을 한눈에 알 수 있었다.

“안녕하세요”

나랑 여자분은 서로 인사를 나누었다.

“이 분 막부말 역사를 좋아하신대”

남자가 여자분에게 나를 소개했다. 여자분은 눈이 커져서 ‘정말? 정말??’을 연발해댔다.

“부채보고 바로 신센구미라는걸 알아보고 어디서 사는거냐고 해서 지금 가르쳐드리고있는거야, 한국인이시고.”

“한국인!? 한국인이에요?? 우왓, 일본인인줄 알았는데”

난 정말 일본인이 됐나.

“대단해! 막부말 역사를 좋아하는 한국인이라니!”

유난히 여자분의 눈이 초롱초롱했다. 특유의 과장된 제스쳐가 아니고 누가봐도 진짜로 감탄하고 있었다. 여기서 알았다. 이 부채는 여자분이 사 온것이고 이 여자분도 막부말 역사, 특히 신센구미를 좋아하는 모양이다.

“신센구미 좋아하세요?”

거봐, 여자분은 대번 나에게 신센구미를 좋아하냐고 물어왔다.

“아아아 뭐, 좋아하단기보다...관심이 있어서요. 전 사카모토 료마를 좋아합니다.”

내 료마 가방을 들어서 보여주었다.

“어, 진짜다.”

여자분도 같이 교토시내 전체지도 앞에서 안내를 해주었다. 그리고 한 곳을 짚었다.

“여기여기, 오우미야! 어떤덴지 아세요?”

“아,,,네, 사카모토 료마랑 나카오카 신타로가 습격당해서 료마는 그 자리에서 죽었던..”

“와아!!!!”

여자분이 또 감탄을 했다.

“이봐, 오우미야는 오늘 다녀오셨대, 교토 오자마자 갔다는데? 그 앞에서 30분을 서 있었다고 하시더라고. 나카오카 신타로는 누구죠? 역시 저보다 더 잘 아시네요.”

“아 그래? 그럼 거기, 료젠박물관은?”

“내일 가신대. 이번 여행의 메인이라하시더라고 하하하”

남자가 나 대신 대답해주었다.

“그렇구나, 가츠라 코고로는 흥미를 갖고 계시나요?” “여자분이 나에게 질문했다.”

“네, 물론이죠”

“오우미야에서 조금 더 가면 가츠라 코고로 동상이 있는데”

“왓!? 정말요!??”

“네, 여기가 오늘 보셨던 오우미야잖아요? 그리고 쭉 가서 여기 교토 호텔 오쿠라, 여길 찾으시면 가츠라 고고로의 동상을 보실 수 있을거에요”

“아, 여기 이케다야 터도 보이네요”

데라다야를 빨리 보고싶은 마음에 오우미야를 갔다가 서둘러 모모야마를 갔기 때문에 이케다야 터를 가지 못했다. 그 전에, 관광안내소에서 받은 지도는 그 좁은일대를 엄청 크게 그렸기 때문에 오우미야와 이케다야가 상당히 멀게 보였으나 알고보니 아주 가까이에 있었다.

“사카모토 료마를 좋아하시니까 여기도”

“가이엔타이의 본부였던 스야군요”

“정말 잘 아시네요 여기 도사한테이의 터도 있어요”

“우와아아아 도사한테이!”

“니조성에 가시는 건 어때요?” “니조성도 당연히 가야죠! 도쿠가와 요시노부가 대정봉환을 받아들인 역사적인 곳인데!”

교토에서 묵을 숙소를 조사할 때, 싸고 위치가 좋은 지유인으로 정해놓고 평판이 어떤지 검색해보았다. 정말 평판이 끝내줬다. 미리 예약을 하고 평판이 좋은걸 봤기에 안도를 숨을 쉬었다. 그 칭찬 글 중 빠지지않고 있던 것이 ‘사야카’라는 사람이름이었다. 정말로 친절하다. 친절, 친절, 친절, ‘사야카’와 ‘친절’이라는 이 두 단어가 빠지지 않았다. 지금 나랑 대화를 나누고 있는 이 여자분이 사야카씨인가?

“저기저기, 아직 방에도 안 들어가셨는데 이야기는 짐을 내려놓고 하는게.....”

마침 다른손님이 들어왔고, 남자분이 여자분의 이야기를 중간에 끊고 말했다.

“어어어어??? 체크인 중이었어? 아 어떡해, 지금 뭐 보러 나가시는줄 알고 설명했는데”

사야카씨로 추정되는 이 여자분이 몸둘 바를 모르며 연신 사과를 했다.

내가 쓸 방은 2층이고 같이 방을 쓸 사람들 역시 한국인이라고 한다. 여자분은 이 한국인들이 잠깐 어디 나갔기에 지금은 빈 방이라고 가르쳐주었다.

짐을 내려놓고 침대에 벌러덩 누웠다. 하루종일 걸어다녔기에 눕자마자 침대로 빨려들어가는 듯했다. 말로 형용할 수 없는 느낌이었다. 정말 침대가 나를 끌어들이는 느낌이었다. 이미 시간이 많이 늦었으나, 이 느낌을 박차고 일어날 수가 없었다. 그래 오늘 정말 많이 운동했지. 그러니까 좀 쉬다가 나가자라고 생각했다.

얼마나 누워있었을까, 방문을 누군가 똑똑똑 두드렸다. 같이 방을 쓰는 사람들이라면 노크는 하지 않겠지. 단번에 여자분임을 직감했다. 여자분은 맞았는데 그 뒤에 남자 둘이 또 서 있었다. 이 분들이 나랑 방을 같이 쓸 분들인가보다. 여자분이 이 남자분들을 나에게 소개시켜주었다.

“한국인이에요, 코리안 코리안”

“아, 네...”

남자분들은 방으로 들어왔다. 설마 달랑 소개만하러 올라온건가? 여자분은 종이 몇 장과 책 하나를 나에게 건내주었다.

“막부 말 역사를 좋아한다고 해서 이것저것 찾아봤는데요, 혹시 아시려나 모르겠는데...”

“감사합니다. 어디요?” “하마구리고몬이라고....아시나요? 너무 어렵나”

1863년 8월 18일에 있었던 정변으로 교토에서 추방되었던 조슈번 세력이 교토에서 시가전을 벌인 사건이 있었다. 하마구리고몬의 변, 또는 금문의 변이라고도 하는데 료마전 기행에도 소개가 되었기에 당연히 알고 있었다. 체크도 했었고.

“아아아아아아 알아요 알아요, 하마구리고몬! 여기도 가고싶었는데 말이죠 정말! 으아, 그런데 시간 때문에 배제할 수 밖에 없었어요”

“하마구리고몬까지 알고 계셨군요!” “예, 금문의 변이라고도 하죠”

여자분은 입을 쩍 벌렸다.

“와아.....나 감동했어요, 금문의 변까지 아시다니”

“여기가면 그 때의 총탄자국이 남아있다고 하던데 그걸 꼭 보고싶었단말이죠”

“맞아요 맞아! 정확히 알고 계시네요, 감동감동감동! 아, 그리고 이건 신센구미에 관한 책인데요, 시간날 때 읽어보세요. 막부말 역사를 좋아하신다기에 가져와봤어요”

신센구미에 관한 책이었다. 여자분 역시 막부말 역사를 좋아하고 그 중에서도 신센구미를 대단히 좋아하여서 똑같이 막부말 역사를 좋아하는 나랑 이야기하며 텐션이 많이 올라간 듯 보였다. 감사하다고 인사를 했지만 당연히 이 책을 읽을 여유는 없었다.

“아, 저기”

“네?”

“실례지만 이름이 어찌되세요?”

“저요? 사야카에요.”

역시 그랬다.

“정말 친절하셔서 물어봤습니다. 사야카씨는 한국에서 정말 유명해요. 여기로 숙소를 잡고 지유인에 대해 조사를 했더니 전부 사야카씨가 친절하다는 말로 넘쳐나던데요”

“에에에? 에? 아니에요 아니에요! 누가 그런”

“블로그같은데 있잖아요.”

사야카씨는 손사래를 치면서 그렇지 않다고 부정하였다. 하지만 확실한건 그 누구라도 사야카씨의 친절에는 감동할 것이다. 사야카씨랑 그렇게 서서 대화를 나누었다.

“그럼 편히 쉬세요”

“예, 감사합니다.”

사야카씨가 내려가고 나랑 방을 같이 쓸 한국인 두 분을 보았다. 지금도 그 눈빛이 잊혀지지 않는다. 두 분은 어찌할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나를 멀뚱멀뚱 쳐다봤다.

“한국인......이신가요?”

정말 조심스럽게 한 분이 물어보았다.

“예에...”

“아아아아아, 살았다. 와, 일본어 잘하시네요, 아니 분명 한국 분 들어올거라했는데 일본인인줄 알고”

“유학생이에요. 1년동안 있었어요”

“아아아 그랬구나”

두 분이 동시에 탄성을 질렀다. 2인조로 일본여행을 온 듯 했는데. 그렇게 기분좋은 침대에 누워서 수다가 시작되었다. 일본어를 하나도 모르는채로 여행을 왔다고 한다.

“와, 전 그게 더더욱 대단하게 느껴지는데요. 아예 언어 모르는 중국으로 자유여행가라면 전 못 갈 것 같은데”

두 사람은 나라를 보고 교토를 구경하고 내일 오사카를 간다고 했다.

“어, 전 어제 오사카를 갔다가 오늘 교토에 왔어요”

“진짜요?? 오사카 어때요? 재밌어요? 어디갔어요?” “한국인이 워낙에 많아서요, 먹는여행을 했어요. 그리고 도톤보리라고 있는데..”

도톤보리에서 먹었던 여러음식들을 이야기하고 그리고 긴류라멘이 두 군데가 있는데 한 곳은 밥이 무한리필이 아니니 주의하라는 내용 등, 어제 있었던 오사카 이야기를 하였다. 물론 장황하게 도톤보리의 걸즈바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역시 남자라서 그런지 두 사람은 경청을 하였다.

“아아, 일본의 맥주가 정말 맛있더라고요. 또 마시고싶네”

두 분 중 한 분이 말했다.

“호로요이라고 드셔보셨어요?” “호로요이가 뭐에요?” “정말 맛있는 술인데, 여러분한테는 그냥 주스겠지만 아무튼 진짜 맛있어요! 유학생들이 귀국해서 이 호로요이를 제일 그리워한다니까요?” “이야, 역시 현지인은 다르시네요”

“그게 맛도 여러개있어요, 하얀 밀키스 비슷한거랑 복숭아 맛, 레몬벌꿀맛. 아, 아이스티맛은 절대로 드시지마세요”

“오오, 저 복숭아 맛을 먹어보고싶어요”

“아, 술 먹고싶은데”

“갈까요”

“가지요”

세 남자는 의기투합해서 술을 사러 갔다. 친해지는데 술 만한게 없긴하지. 침대에 있다가 기온이나 시조도오리를 구경하러 간다는 생각은 관두고 내일로 미뤘다. 일단 오늘의 일정은 이걸로 접고, 느긋하게 술 한캔을 하고 쉬면서 내일의 계획을 철저하게 세우기로 하였다.

나가려고 할 때 사야카씨가 어디가냐고 물었다. 술을 사러 간다고 하자 웃으면서 슈퍼위치가 어딘지 아냐고 물었다. 응? 그러고보니 난 모르는데? 그런데 남자 두 분은 아는 듯 했다.

“사야카씨, 호로요이 어떤 맛 좋아해요?” 내가 물었다.

“호로요이요? 복숭아를 좋아하긴하는데...”

“알겠습니다.”

지유인 건물을 나와 슈퍼를 향해 갔다. 슈퍼로 가는길에 계속 사야카씨 이야기가 나왔다. 친절이란 단어를 쓰기가 아까울정도로 엄청난 친절에 우리 모두 감탄한 것이다.

“슈퍼가 이 쯤이면 나올텐데”

“저거 아니야?”

“아니에요, 세탁소라고 써 있네요”

“역시 현지인은 다르시네요”

슈퍼에 도착했다. 호로요이는 있었으나 두 사람이 먹고싶어하던 복숭아 맛은 없고 기본 하얀색 호로요이 밖에 없었다. 복숭아 맛을 찾기위해 돈이 좀 비싸더라도 편의점으로 갔다. 편의점에는 다양한 맛이 있긴했지만 거기서도 이상하게 복숭아 맛은 없엇다. 호료요이를 사고 안주로 먹을 과자를 사서 돌아왔다. 사람은 세 명이지만 들고 있는 술은 다섯 캔이었다.

“사야카씨 이거”

나는 사야카씨 앞에 딸기맛 호로요이 두 캔을 내려놓았다.

“에에!?” “아쉽지만 복숭아 맛은 없었어요”

“괜찮은데, 괜찮아요, 괜찮아”

“드세요, 고마워서 드리는거에요”

“소중한 돈인데!” “소중한 정보를 주셨잖아요?”

“잘 마실게요..고마워요”

“사야카씨도 막부말 역사를 참 좋아하다니 숙소를 여기로 정하길 참 잘했어요”

“고마워요, 정말정말 좋아해요 막부 말 역사”

“신기하네요”

“네?”

“제 친구 중에 사야코라는 아이가 있는데 그 녀석도 역사를 되게 좋아하거든요. 특히 신센구미”

“와, 저랑 똑같네요”

“이름도요. 사야카, 사야코. 이름에 사야가 들어가면 다 역사를 좋아하는가 연구할 필요가 있을거 같아요”

우리는 2층에 마련 된 휴게실에 앉아서 봉지에 바리바리 담아 온 과자와 술을 늘어놓았다. 두 분은 호로요이를 따고 맛을 보았다.

“어때요?”

두 분은 만화에서 맛있는 걸 한 입 먹었을 때처럼 서로를 잠깐 쳐다보았다.

“오오!!!” “이야, 끝내주는데요! 술 맛은 아니지만”

“와, 다행이다. 괜히 추천했다가 맛없다고 하면 어쩌나했는데”

“역시 현지인은 다르시네요.”

술을 마시며 오랫동안 수다를 떨었다. 휴게실에는 방명록이 마련되어있었는데 역시나 사야카씨에 대한 친절에 대한 내용으로 가득찼다.

방명록 옆에는 이 곳 여행자가 추천하는 교토맛집을 모아놓은 수첩이 있었다. 지유인측에서 쓴 것은 물론이고, 여행자가 직접 써 넣은 곳도 많았다.

“그거 우리도 아까 봤는데 뭐라고 썼는지 알 수가 있어야죠 하하하하 대충 맛집을 설명한 것 같기는 한데요”

“일본어 몰라서 먹고싶은게 있어도 어딘질 모르잖아요 그거 보니 또 배가 고파지네요.”

나는 차근차근 그 수첩을 넘겼다.

“여기 괜찮아보이는데요? 1000엔 고기부페”

“억, 그런데가 있었어요?”

“싼 거 아니에요?”

“엄청 싼거죠 시조도오리면 여기서 버스타고 금방이니까 위치도 안 멀고”

“아이고! 좀 진작에 오시지!!!!!”

방으로 돌아와 여행책과 오늘 여기저기서 받은 관광지 안내를 훑어보며 내일 계획을 그렸다. 아까 길고 긴 체크인하면서 남자카운터분과 사야카씨랑 이야기했던 곳들은 아침에 오우미야를 찾아 헤매면서 관광안내소에서 받은 ‘가와라마치 사적스팟’에 대부분 있었다.

사카모토 료마가 암살당한 오우미야의 터는 아까 봤다. 그리고 쭉 직진하여 가와라마치산조에 가서 이케다야소동지의 터, 그리고 그 앞에 있는 가이엔타이의 본부로 쓰였던 스야를 본다. 그리고 가츠라 고고로의 동상과 그 옆에 있는 조슈번 한테이의 터를 고나서 다카세 강을 따라 쭉 내려오며 카가한테이의 터, 사쿠마쇼잔의 임시거처 터, 다케치 한페이타의 임시거처 터, 요시무라 도라타로의 임시거처 터, 히코네한테이 터, 도사이나리신사, 도사한테이 터, 나카오카 신타로 임시거처 터로 마무리.

가와라마치 사적스팟에 관심가는 것이 저렇게나 있었다. 바꿔말하면 가와라마치는 완전히 알짜배기인 것이다. 전부 모여있었다. 하지만 스야와 도사이나리신사를 제외하고는 전부 그냥 터만 남아 비석만 덩그러니 서 있는 곳들이다. 막부 말 역사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면 하등이익이 없는 관광코스이다. 하지만 나에게 있어서는 최고이다. 소설 ‘료마가 간다’라던가 대하드라마 ‘료마전’ 등의 막부말 역사를 그린 책이나 드라마에서 보던 사건들이 있었던 곳을 직접 찾아간다고 생각하니 생각만해도 두근거려서 견딜 수가 없었다. 그냥 비석이기 때문에 오픈시간이 따로 있는게 아니다. 그러므로 최대한 일찍 일어나서 저것들을 구경해야 했다.

체크아웃시간이 오전 11시까지이므로 그 전에 숙소로 돌아와서 체크아웃을 하고, 니조성을 보러 간다. 그리고 료젠역사박물관을 관람한 다음 료마의 묘로 찾아간다. 그리고 나서 미부데라를 간 다음 날이 어두워지면 기온을 보는걸로 윤곽이 잡혔다.

저 중에서 기요미즈데라, 금각사, 은각사 등의 본래 교토여행을 오는 사람들이 가는 관광명소는 니조성 밖에 없다. 그래도 괜찮았다. 내가 평생 살면서 누구랑 가던간에 교토여행을 가게된다면 언제나 갈 수 있는곳들이다. 나 혼자 자유롭게, 남들이 봤을 때 그냥 비석에 불과한 저 사적들을 여유있게 구경할 수 있는 시간은 지금밖에 없을 것이다.

내일은 정말 일찍 일어나서 가와라마치의 사적스팟들을 돌아야한다. 그것들을 보기위해 관광명소들을 모조리 포기했다. 조금이라도 늦게 일어난다면 다 돌아보지 못하고 여행에 차질이 생길 것이다. 일찍 잘 생각이었지만 방을 같이 쓰는 두 분이랑 이야기도 잘 맞아서 침대에 누워 수다를 떨다보니 시간이 많이 늦었다.



오늘의 지출 – 전차 교통비 2000엔

비닐우산 600엔

코인락커 400엔

교토버스이용권 두 장 1000엔

데라다야에서 입장료+기념품 1800엔

료마관에서 기념품 1550엔

타이야끼 150엔

오야코동 600엔

숙박비 2500엔

호로요이 3캔 444엔



총 11044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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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4

  • 작성자
    Lv.85 darktrac..
    작성일
    15.06.18 09:49
    No. 1

    재밌게 보고 갑니다. 지난번 교토 갔다온게 있어서 그런지 더 생생하게 느껴지네요 ㅎㅎ
    저도 일본어를 좀 배워서 가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좀 생깁니다ㅋㅋ;
    어설프게 영어로 했더니 게스트하우스에서도 혼자놀아서 ㅜ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12 사이타니야
    작성일
    15.06.20 16:49
    No. 2

    감사합니다. 교토에서는 한 달 내내있어도 질리지가 않을 것 같아요! 게스트하우스 사람들이랑 어울리는것도 좋지만 최대한 많은시간을 관광에 투자하셨을테니 손해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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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Lv.61 소요권법
    작성일
    15.06.21 13:52
    No. 3

    료마전 보셨군요. 저는 마지막 세 편 정도는 끝끝내 못보다가... 한참 뒤에야 겨우 보고 말았다는 ㅜㅜ 신센구미도 초반엔 재밌게 봤지만 중반부터 조원들이 자꾸 죽어나가서 결국 아직까지도 엔딩을 못봤어요 ㄷ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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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답글
    작성자
    Lv.12 사이타니야
    작성일
    15.06.22 14:43
    No. 4

    소요권법님도 일본역사에 관심이 있으시군요! 저는 취미가 일본역사, 특히 막부말 책 탐독이고 그 중에서도 사카모토 료마를 정말 좋아해서 료마전을 몇번이고 돌려봤습니다. 휴대폰 케이스에도 사카모토 료마의 가문이 찍혀있고요 ㅋㅋ 반갑습니다. 료마를 좋아해서 그런지 저절로 신센구미는 그리 좋게 생각하지 않고있어요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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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3 2013. 02. 23 토요일 유학생활 삼 백 서른 세 번째날 +3 15.07.01 801 8 25쪽
332 2013. 02. 22 금요일 유학생활 삼 백 서른 두 번째날 +2 15.06.30 919 8 36쪽
331 2013. 02. 21 목요일 유학생활 삼 백 서른 한 번째날 +2 15.06.28 706 6 26쪽
330 2013. 02. 20 수요일 유학생활 삼 백 서른 번째날 +2 15.06.27 617 7 25쪽
329 2013. 02. 19 화요일 유학생활 삼 백 스물 아홉 번째날 +2 15.06.26 610 8 42쪽
328 2013. 02. 18 월요일 유학생활 삼 백 스물 여덟 번째날 15.06.23 613 6 14쪽
327 2013. 02. 17 일요일 유학생활 삼 백 스물 일곱 번째날 15.06.22 624 6 12쪽
326 2013. 02. 16 토요일 유학생활 삼 백 스물 여섯 번째날(교토 2일차) 15.06.20 1,196 9 88쪽
» 2013. 02. 15 금요일 유학생활 삼 백 스물 다섯 번째날(교토 1일차) +4 15.06.18 934 5 78쪽
324 2013. 02. 14 목요일 유학생활 삼 백 스물 네 번째날(오사카 관광) +2 15.06.16 809 8 68쪽
323 2013. 02. 13 수요일 유학생활 삼 백 스물 세 번째날(오사카로 출발) +4 15.06.15 806 8 15쪽
322 2013. 02. 12 화요일 유학생활 삼 백 스물 두 번째날 +2 15.06.11 913 7 13쪽
321 2013. 02. 11 월요일 유학생활 삼 백 스물 한 번째날 15.06.10 784 5 8쪽
320 2013. 02. 10 일요일 유학생활 삼 백 스무 번째날(AKB48 악수회 세번째 방문) +4 15.06.08 998 7 32쪽
319 2013. 02. 09 토요일 유학생활 삼 백 열 아홉 번째날 +2 15.06.07 770 7 12쪽
318 2013. 02. 08 금요일 유학생활 삼 백 열 여덟 번째날 15.06.06 897 3 24쪽
317 2013. 02. 07 목요일 유학생활 삼 백 열 일곱 번째날 15.06.05 706 8 17쪽
316 2013. 02. 06 수요일 유학생활 삼 백 열 여섯 번째날 +2 15.06.04 745 9 16쪽
315 2013. 02. 05 화요일 유학생활 삼 백 열 다섯 번째날 +2 15.06.03 787 7 9쪽
314 2013. 02. 04 월요일 유학생활 삼 백 열 네 번째날 15.06.03 658 5 3쪽
313 2013. 02. 03 일요일 유학생활 삼 백 열 세 번째날 +2 15.06.01 711 7 16쪽
312 2013. 02. 02 토요일 유학생활 삼 백 열 두 번째날 15.06.01 755 5 5쪽
311 2013. 02. 01 금요일 유학생활 삼 백 열 한 번째날 +4 15.05.30 677 9 6쪽
310 2013. 01. 31 목요일 유학생활 삼 백 열 번째날 +2 15.05.29 672 7 4쪽
309 2013. 01. 30 수요일 유학생활 삼 백 아홉 번째날 +4 15.05.28 835 8 14쪽
308 2013. 01. 29 화요일 유학생활 삼 백 여덟 번째날 +2 15.05.27 688 6 11쪽
307 2013. 01. 28 월요일 유학생활 삼 백 일곱 번째날 +2 15.05.26 813 6 9쪽
306 2013. 01. 27 일요일 유학생활 삼 백 여섯 번째날 +2 15.05.21 713 6 10쪽
305 2013. 01. 26 토요일 유학생활 삼 백 다섯 번째날 +2 15.05.19 839 6 9쪽
304 2013. 01. 25 금요일 유학생활 삼 백 네 번째날 +4 15.05.18 758 6 20쪽
303 2013. 01. 24 목요일 유학생활 삼 백 세 번째날 +2 15.05.14 751 5 18쪽
302 2013. 01. 23 수요일 유학생활 삼 백 두 번째날 15.05.13 651 5 5쪽
301 2013. 01. 22 화요일 유학생활 삼 백 한 번째날 15.05.12 750 7 1쪽
300 2013. 01. 21 월요일 유학생활 삼 백 번째날 15.05.12 619 6 6쪽
299 2013. 01. 20 일요일 유학생활 이 백 아흔 아홉 번째날 +2 15.05.11 701 5 2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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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7 2013. 01. 18 금요일 유학생활 이 백 아흔 일곱 번째날 15.05.09 619 6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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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5 2013. 01. 16 수요일 유학생활 이 백 아흔 다섯 번째날 15.05.08 710 6 18쪽
294 2013. 01. 15 화요일 유학생활 이 백 아흔 네 번째날 +4 15.05.07 773 7 23쪽
293 2013. 01. 14 월요일 유학생활 이 백 아흔 세 번째날 +2 15.05.06 771 8 15쪽
292 2013. 01. 13 일요일 유학생활 이 백 아흔 두 번째날 +1 15.05.06 561 6 2쪽
291 2013. 01. 12 토요일 유학생활 이 백 아흔 한 번째날 +1 15.04.05 939 7 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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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7 2013. 01. 08 화요일 유학생활 이 백 여든 일곱 번째날 15.04.01 732 5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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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4 2013. 01. 05 토요일 유학생활 이 백 여든 네 번째날 15.03.28 743 7 5쪽
283 2013. 01. 04 금요일 유학생활 이 백 여든 세 번째날 15.03.27 1,067 5 10쪽
282 2013. 01. 03 목요일 유학생활 이 백 여든 두 번째날 15.03.27 607 4 1쪽
281 2013. 01. 02 수요일 유학생활 이 백 여든 한 번째날 15.03.26 730 5 5쪽
280 2013. 01. 01 화요일 유학생활 이 백 여든 번째날 15.03.25 794 6 15쪽
279 2012. 12. 31 월요일 유학생활 이 백 일흔 아홉 번째날 +1 15.03.17 933 7 16쪽
278 2012. 12. 30 일요일 유학생활 이 백 일흔 여덟 번째날 15.03.16 831 7 11쪽
277 2012. 12. 29 토요일 유학생활 이 백 일흔 일곱 번째날 +2 15.03.15 753 4 5쪽
276 2012. 12. 28 금요일 유학생활 이 백 일흔 여섯 번째날 15.03.14 779 6 10쪽
275 2012. 12. 27 목요일 유학생활 이 백 일흔 다섯 번째날 15.03.13 780 6 10쪽
274 2012. 12. 26 수요일 유학생활 이 백 일흔 네 번째날 15.03.12 698 6 4쪽
273 2012. 12. 25 화요일 유학생활 이 백 일흔 세 번째날 +2 15.03.11 836 7 19쪽
272 2012. 12. 24 월요일 유학생활 이 백 일흔 두 번째날 +2 15.03.11 719 5 2쪽
271 2012. 12. 23 일요일 유학생활 이 백 일흔 한 번째날 15.03.10 743 7 4쪽
270 2012. 12. 22 토요일 유학생활 이 백 일흔 번째날 15.03.09 703 7 14쪽
269 2012. 12. 21 금요일 유학생활 이 백 예순 아홉 번째날 15.03.08 743 6 16쪽
268 2012. 12. 20 목요일 유학생활 이 백 예순 여덟 번째날 15.03.07 843 7 12쪽
267 2012. 12. 19 수요일 유학생활 이 백 예순 일곱 번째날 15.03.06 818 4 13쪽
266 2012. 12. 18 화요일 유학생활 이 백 예순 여섯 번째날 15.03.05 658 4 6쪽
265 2012. 12. 17 월요일 유학생활 이 백 예순 다섯 번째날 15.03.04 880 6 8쪽
264 2012. 12. 16 일요일 유학생활 이 백 예순 네 번째날 15.03.03 785 7 3쪽
263 2012. 12. 15 토요일 유학생활 이 백 예순 세 번째날 15.03.02 893 6 15쪽
262 2012. 12. 14 금요일 유학생활 이 백 예순 두 번째날 15.03.01 988 11 12쪽
261 2012. 12. 13 목요일 유학생활 이 백 예순 한 번째날 15.02.28 905 5 7쪽
260 2012. 12. 12 수요일 유학생활 이 백 예순 번째날 15.02.27 932 5 11쪽
259 2012. 12. 11 화요일 유학생활 이 백 쉰 아홉 번째날 15.02.26 677 5 5쪽
258 2012. 12. 10 월요일 유학생활 이 백 쉰 여덟 번째날 +2 15.02.25 893 5 12쪽
257 2012. 12. 09 일요일 유학생활 이 백 쉰 일곱 번째날 15.02.24 804 4 4쪽
256 2012. 12. 08 토요일 유학생활 이 백 쉰 여섯 번째날 +2 15.02.23 1,219 9 13쪽
255 2012. 12. 07 금요일 유학생활 이 백 쉰 다섯 번째날 +4 15.02.16 941 8 15쪽
254 2012. 12. 06 목요일 유학생활 이 백 쉰 네 번째날 15.02.15 764 5 5쪽
253 2012. 12. 05 수요일 유학생활 이 백 쉰 세 번째날 15.02.14 959 7 12쪽
252 2012. 12. 04 화요일 유학생활 이 백 쉰 두 번째날 +2 15.02.13 958 7 13쪽
251 2012. 12. 03 월요일 유학생활 이 백 쉰 한 번째날 +2 15.02.12 728 10 6쪽
250 2012. 12. 02 일요일 유학생활 이 백 쉰 번째날 15.02.11 857 4 6쪽
249 2012. 12. 01 토요일 유학생활 이 백 마흔 아홉 번째날 15.02.10 1,122 7 18쪽
248 2012. 11. 30 금요일 유학생활 이 백 마흔 여덟 번째날 15.02.09 836 5 8쪽
247 2012. 11. 29 목요일 유학생활 이 백 마흔 일곱 번째날 15.02.08 895 5 4쪽
246 2012. 11. 28 수요일 유학생활 이 백 마흔 여섯 번째날 +2 15.02.07 858 6 9쪽
245 2012. 11. 27 화요일 유학생활 이 백 마흔 다섯 번째날 15.02.06 797 5 4쪽
244 2012. 11. 26 월요일 유학생활 이 백 마흔 네 번째날 +2 15.02.05 834 7 7쪽
243 2012. 11. 25 일요일 유학생활 이 백 마흔 세 번째날 15.02.04 821 6 10쪽
242 2012. 11. 24 토요일 유학생활 이 백 마흔 두 번째날 15.02.03 829 6 11쪽
241 2012. 11. 23 금요일 유학생활 이 백 마흔 한 번째날 +2 15.02.02 926 5 18쪽
240 2012. 11. 22 목요일 유학생활 이 백 마흔 번째날 15.01.31 717 7 7쪽
239 2012. 11. 21 수요일 유학생활 이 백 서른 아홉 번째날 15.01.30 863 5 7쪽
238 2012. 11. 20 화요일 유학생활 이 백 서른 여덟 번째날 15.01.30 773 8 2쪽
237 2012. 11. 19 월요일 유학생활 이 백 서른 일곱 번째날 +1 15.01.29 1,160 6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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