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쿠라스 44화-도발(1)
다음날 벤하르트를 깨운것은 지독한 통증이었다. 물론 다른 일행들이 전부 깨어 있다는것은 기정 사실이었다. 나무 막대를 들고 서 있는 샤리네를 보고 그는 얼얼한 볼을 움켜 잡았다.
어제 처음 만난 남남 같은 사이 인데도 그녀는 아주 거침이 없었다. 얼얼해진 볼을 매만지며 아침 식사를 위해 자리를 잡았다. 아침도 푸르다키아 였을까. 지독한 냄새를 맡으며 주방으로 걸어간 벤하르트는 화들짝 놀라 펄쩍 뛰었다.
전날에는 검고 음침한 찌게 였고 오늘은 녹색이었다. 그것도 굉장히 불쾌해 보였는데 그것은 비단 그 혼자만의 생각은 아닌듯 했다.
"어이 네르데르 도대체 어떻게 이런 색이 나오는 거야?"
작게 리드가 네르데르에게 물었지만 네르데르는 고개를 저었다. 요리를 하는 순간에 어느 순간 부터인가 색이 망가져 있는 것이었다.
"손질하는데 문제가 있었을라나요,"
"빨리 빨리 먹고 오늘 아침부터는 일을 하러 나가야 하니까 준비해두도록 해."
샤리네는 그렇게 말하고 냄비에서 요리를 덜어 급하게 먹어 치우고 그녀는 식기를 씻어 냈다. 그에 따라 레니아와 리드 네르데르도 어쩔수 없다는 듯이 수저를 들고 음식을 먹기 시작했다.
보기에는 역시 굉장히 안좋았지만 맛만큼은 일품이었다. 그녀의 요리를 먹고 리드는 잠시 웃음 지었다. 샤리네의 음식에 샤를린의 맛이 조금 느껴졌던 까닭이었다.
"으음,,"
요리를 앞에 두고 벤하르트는 심각하게 고민 하고 있었다. 맛이 좋고 나쁘고는 상관 없었다. 눈앞의 음식을 입으로 넘기기에 그의 비위는 매우 약했다.
"벤 뭐해 안먹어?"
"으.. 역시 무리랄까, 도저히 못먹겠는데,"
"그러지 말고 먹는게 좋을껄? 어제도 아무것도 못먹었잖아. 자 입 벌리고."
이미 배에서는 음식을 달라도 난동을 부리고 있었지만 애써 태연자약한 표정으로 벤하르트는 그녀의 수저를 멀리했다.
"한 숟가락만 먹고 결정해. 딱 한 숟가락이야. 죽지도 않고 그정도는.."
"그정도야 뭐.."
벤하르트는 코를 막고 음식을 입에 털어 넣었다. 막았던 코를 풀자 네르데르가 만들었던 푸르다키아와는 미묘하게 다른 맛이 그의 입에 전해졌다. 굳이 따지자면 맛있었을 음식이었고 저 상태만 아니라면 충분히 먹어줄만 했을터였다.
"맛있지만 역시 무리야. 도저히 못먹겠다."
"그럼 오늘도 굶으려고?"
"아니 나가서 뭔가를 사 먹어야 겠지. 그런데 왜 하필 녹색이야? 검은색이었으면 나도 참고 먹을만 했을텐데,"
"글쎄,,"
폐허가 된 가게에는 샤리네가 위풍당당하게 서 있었다. 그녀는 즉각 그자리에서 리드와 벤하르트에게 일을 시켰다. 가게 안의 나무를 전부 밖으로 빼내 놓으라는 것이다.
벤하르트는 나무를 들려고 가 보았지만 도대체 어떻게 하면 가게 안에 이정도 크기의 나무가 올수 있었는지 의문일정도로 길고 거대한 통나무가 가게 안에 버젓히 놓여 있었다.
"이거 어쩌죠?"
"아무 걱정할것 없습니다. 조금 많이 움직이고 조금 힘만 들이면 벤하르트씨라면 충분히 할수 있을거애요."
"왠지 자신은 안할것이라는 듯이 말씀하시는것 같은데,"
"아니 그런게 아니고, 제 말은 딱 반으로 나누도록 하자는 겁니다. 반은 벤하르트씨가 반은 제가 하는겁니다. 어떻습니까?"
말은 타당했기에 벤하르트는 고개를 끄덕였다. 리드는 싱긋 웃고는 단검을 들고 통나무에 한껏 내리쳤다. 번쩍 빛나는가 싶더니 통나무는 반으로 갈라져 있었다. 리드는 손짓으로 통나무의 소유자를 알려 주었다. 그의 검술에 벤하르트는 나지막히 탄성을 내질렀다.
"말도 안돼."
싱긋 웃으면서 리드가 답했다.
"말이 안되는 현상은 세상에 존재 하지 않습니다. 보고 그것이 확실하다면 현실을 빠르게 인지해야 하는것이죠."
벤하르트는 순간 섬칫한 기분에 리드에게서 거리를 벌렸다. 무언가 서늘한 느낌이 벤하르트의 옆으로 지나갔다.
"역시 살기를 내면 잘 피하시는군요. 앞으로는 살기 없이 공격하도록 하겠습니다."
어이없다는듯 리드를 바라보던 벤하르트가 입을 열었다.
"꼭 이럴때 그렇게 실전을 고집해야 하는겁니까?"
가벼운 대답이 날아올줄 알았지만 리드에게서 나온 대답은 상당히 진중한 분위기의 말이었다.
"벤하르트씨 만약에 마을에서 축제가 일어났다고 하면 모든것을 잊고 놀수 있겠습니까? 자신을 노리는 자가 있다고 해도요? 평상시에 대한 주의심을 기르는것은 아마도 벤하르트씨 당신에게 가장 필요한 것일겁니다."
거기까지 말하고 그는 다시 밝게 웃으면서 나무를 이곳 저곳 살피기 시작했다. 한동안 통나무 덩이를 바라보던 그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단검을 들었다. 단검의 날은 아주 짧아서 설사 통나무를 벨수 있다고 해도 완벽하게 끊어 낼수는 없을 단검이었다. 하지만 그는 아주 가볍게 단검으로 통나무를 끊어 냈다. 순식간에 네조각이 난 통나무중 하나를 들면서 벤하르트에게 말했다.
"벤하르트씨도 얼른 일을 시작하시죠."
잘라내는것 까지는 벤하르트도 손쉽게 할수 있었지만 저만큼 거대한 통나무를 드는것은 벤하르트에게 무리였다. 벤하르트가 도공술로 신체가 단련 되어 있었다고 하나 전체적인 근력이 그정도까지는 미치지 못하다는것은 본인이 가장 잘 알고 있었다.
그래도 리드 덕분에 방향을 잡을수 있었던 벤하르트는 통나무를 들수 있을 만큼의 크기로 잘라내기 시작했다. 그의 검은 쇠마저 가볍게 끊을정도의 명검 그런 검이 었기에 통나무 정도는 우습다 할수 있을 정도였다. 하지만 리드 처럼 화려하게 일순간에 양분하는 기술은 무리였기 때문에 통나무를 전부 잘라 내었을때 이미 리드의 일은 끝난 뒤였다.
"리드씨 좀 도와 주세요."
"네? 벤하르트씨. 아까 분명 말했듯이 이쪽은 제것 이쪽은 당신의 것이라고 했잖아요. 그러니 자신의 할일은 자신이 해야죠. 결정적으로 그것에 동의한것은 벤하르트씨라는 것 잊지 말아 주세요."
"오늘 따라 유난히 리드씨의 행동이 거슬리는데요."
"기분 탓일겁니다."
리드는 총총 걸음으로 가게 밖을 나섰는데 그 모습 마저도 벤하르트에게는 짜증이 치밀게 했다. 그리고 다시 자신의 통나무를 보는순간 벤하르트의 옆구리에서 아찔한 통증이 느껴졌다.
"끄윽.."
"방심 하면 안됩니다."
그의 밑에는 자그마한 돌멩이 하나가 떨어져 있었다. 벤하르트는 성인 군자가 아니었지만 참지 않는다고 딱히방법도 없었기에 묵묵히 통나무를 집어 들고 밖으로 내보내기 시작했다. 반쯤 통나무를 들어 내자 리드의 쩔쩔매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이고 알았다니까요."
"그렇다고 놀고 있으면 어떻합니까? 아직도 일이 얼마나 많은데, 아무래도 당신에게는 목록을 적어 두어야 겠군요."
샤리네는 어디서 준비했는지 펜과 종이를 꺼내 들고 지금부터 리드가 해야 할일을 전부 적어서 리드에게 건넸다.
"그 일을 다 할때까지 쉬지 마세요."
"아이고 어떻게 이것들을 다 하라는 것입니까. 샤리네씨 조금만 줄여 주세요."
"능력이 된다면 그것에 필적할만큼의 일을 주어야 겠죠. 아셧으면 빨리 움직이세요."
울상 지은 리드의 얼굴을 보면서 벤하르트는 즐거운듯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쌤통이군.. 어? 그러고보니 일을 느리게 하면 느리게 할수록 그만큼 쉴수 있다는 이야긴가, 그렇군.'
너무 뻔히 보이게 쉬지 않고 적당히 일의 속도를 낮춘다면 그만큼 쉴수 있는 시간이 많아 질것이라고 생각한 벤하르트는 교묘하게 일을 하기 시작했다. 본래 사람을 속이는 것에는 상당한 재능이 있었던 그였기 때문에 일을 열심히 하는것처럼 보이는것은 그에게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렇게 느슨하게 일을 하고 있던 그는 무언가 섬뜩한 느낌이 들었다. 주위를 둘러보니 일을 하던 레니아가 그를 빤히 쳐다 보고 있었다. 그녀가 하던 일은 외관을 다시 본래로 되돌리는 일이었는데 일을 하는 도중 그녀는 계속해서 벤하르트를 보고 있었다. 그리고 잠시 일을 멈추고 그녀는 벤하르트에게 다가갔다.
"벤."
"어?"
"일을 대충 하는것 같은 느낌이 드는데?"
"그럴리가 잘못 봤겠지."
레니아는 벤하르트의 얼굴을 빤히 보기 시작했다. 벤하르트와 그녀가 같이 지낸 시간만 벌써 4달째, 그간 벤하르트를 실험 대상물로 이용했었던 레니아는 벤하르트 자신보다 그의 체력을 더 잘 알고 있었다. 다른 사람이라면 모를까 그녀의 눈을 벗어날수는 없었다.
"정말?"
레니아의 눈에 더 이상 거짓말을 할수 없음을 깨달은 벤하르트는 고개를 숙이고 수긍했다.
"벤 일을 할때는 좀 착실하게 해. 내 실험에 종사할때는 그렇게 열심히 했으면서 지금은 왜 이러는거야?"
"이번 일은 그와는 별개 라고, 그때는 죄의 값을 치른것이고 지금 이 일은 나에게 돌아오는건 아무것도 없다고나 할까. 억지로 하는것에 열을 내지 못한것 뿐이야."
그의 지극히도 이기적인 발언을 듣고 레니아는 기분이 상했다. 벤하르트도 자신이 그동안 보아 왔던 인간들과 별반 다르지 않다고 생각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래? 그럼 지금처럼 하면 되겠네. 잘해봐."
평상시와는 다른 그녀의 냉랭한 말투에 벤하르트는 후회와 짜증이 같이 몰려 왔다. 벤하르트는 평생을 자신을 위해서만 살아 왔던 사람이었다. 레니아의 앞에서만큼은 무엇이든지 양보해왔던 그였으나 그것은 진정한 자신을 숨긴 모습에 지나지 않았다. 그는 레니아가 이기적인것을 인정하는듯 하면서도 그런것을 싫어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녀 앞에서는 항상 자중한 모습을 보였으나 리드와의 말다툼 때문이었는지 그는 이성을 잃어 버렸다.
가게의 밖으로 나간 레니아를 보면서 그는 통나무를 힘껏 찼다.
"젠장."
무엇하나 제대로 풀리지 않는 것에 평소 자주 쓰지 않는 말마저 입에 담았다. 이 모든것이 리드로 부터 비롯되었다고 생각하며 그는 가슴에 손을 가져갔다. 그의 속은 쌔까맣고 변질되어 버린 분노로 가득 차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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