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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이 님의 서재입니다.

월야공자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박이
작품등록일 :
2011.08.24 1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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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1.20 2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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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5.02 1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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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야공자 제24화--6

DUMMY

지금 묵상은 300년 전의 인연을 언급하고 있었다.

300년 전 이도립은 도합 300건의 청부를 수행했다.

그 중에 한건이 바로 사흑성주 묵겸과 관련된 청부였다.

이도립은 300번의 청부에서 단 한차례의 실패도 허락하지 않았다. 당연히 사흑성주 묵겸이 이도립의 검에 최후를 맞았다는 뜻이었다.

갑작스런 사흑성의 몰락, 그 원인으로 지목되었던 묵겸의 실종은 이렇게 월야검객 이도립과 관련되어 있었다. 하지만 단순히 그것이 평범한 자객에 의한 암살이었다면 묵상이 지금 이렇게 비무를 요청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아니 과거 사흑성이 그렇게 몰락하는 일 자체가 없었을 것이다.

아마도 사흑성은 자객인 이도립에게 복수를 하고자 했을 것이다.

그리고 복수가 끝난 이후에는 다시 중원을 노렸을 것이다.

당시 사흑성주 묵겸에게는 충분히 이를 수행할 수 있는 묵천이라는 뛰어난 후계자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천하를 향해 그 도를 겨누던 묵겸, 그런 묵겸에게 어느 날 비무를 청하는 이가 있었다.

사천성의 패자인 묵겸에게 도전하는 무인들이 어디 하나둘이겠는가?

그 비무를 청하는 방식이 그저 평범한 방법이었다면 묵겸은 아마도 이를 무시했을 것이다. 하지만 상대는 비무를 요청하는 서신이 적힌 비무첩을 아무도 모르게 잠자는 묵겸의 머리맡에 남겨두었다.

사천성 최강의 세력인 사흑성을 상대로, 더구나 가장 경계가 삼엄한 사흑성주 묵겸의 처소에, 그것도 비록 잠들어 있다고는 하지만 천하제일인으로까지 언급되며 천하를 긴장시키는 묵겸의 이목마저 속인 채 그의 머리맡에 서신을 남겨두었다는 것은 실로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이것은 사흑성에게는 더없는 치욕이었고, 묵겸에는 더없는 굴욕이었다.

더구나 상대는 스스로가 살수임을 당당하게 밝히고 있었다.

이는 상대가 마음만 먹었다면 지난 밤 묵겸의 목숨을 취할 수도 있었다는 뜻이었다.

상대가 자객임을 감안한다면 이미 그 승부에서 패한 것이나 다름이 없는 일이었다.

그런 상대가 자신에게 비무를 요구하고 있었다.

묵겸에게 이것은 상대가 그에게 호의를 베푼 것이나 다름이 없는 일이었다.

또한 이에 응하지 않는다면 묵겸은 두 번 패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결국 묵겸은 상대의 요구에 따라 단신으로 사흑성을 떠났다.

허나 이런 묵겸의 뒤를 은밀히 따르는 사람이 있었으니 바로 그의 후계자임과 동시에 그의 아들인 묵천이었다.

묵천은 평소와는 다른 아버지의 모습에서 무언가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지고 있음을 직감했다. 때문에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은밀하게 묵겸의 뒤를 따랐다. 그리고 묵천은 아버지 묵겸의 뒤를 따르면서 자신의 추측이 옳았음을 확신할 수 있었다.

평소라면 의당 아버지인 묵겸이 자신의 추적을 쉽게 감지했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 대체 누가 있어 아버님을 이토록 당혹스럽게 만들 수 있단 말인가?’

묵천은 자연스레 이런 생각이 들었다.

묵천에게 있어서 아버지 묵겸은 하늘이었다.

묵천은 하늘이 동요하는 모습을 그때까지 단 한 번도 본적이 없었다. 심지어 상상조차 해본 적이 없었다. 때문에 묵천이 이렇게 생각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휘영청 밝은 보름달이 세상을 밝히던 그날 묵겸은 이도립과 마주했다.

‘ 어떻게 이런 자가 한낱 자객일 수 있단 말인가?’

이것이 묵겸이 이도립을 대한 첫인상이었다.

내심 어느 정도 짐작은 하고 있었으나 이도립의 기도는 묵겸의 상상을 초월하고 있었다.

달빛 아래 서 있는 이도립은 물아일체(物我一體), 말 그래도 자연과 완벽하게 동화되어 있었다. 단순히 살행을 추구하는 자객이 아닌 한명의 무인으로서 완벽한 자세로 묵겸을 기다리고 있었다.

묵겸은 타고난 무인이었다.

그리고 묵겸의 본능은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그가 평생을 기다렸던 최강의 상대가 지금 자신을 마주하고 있다고, 이렇게 생각하는 순간 지금까지의 혼란이 모조리 머릿속에서 사라지고 있었다.

이내 묵겸은 최고의 일전을 위해 냉정을 되찾았다.

그리고 그 즉시 자신을 뒤따라온 묵천의 존재마저 감지할 수 있었다.

‘ 못난 모습을 보였구나.’

묵겸은 이렇게 생각하며 입가에 씁쓸한 미소를 머금었다.

그리고 이도립을 향해 아들의 이야기를 꺼내려했다.

허나 묵겸이 이야기를 꺼내기도 전에 이도립은 묵천이 숨어있는 장소를 바라보면서 허락의 뜻으로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묵천의 안전을 보장해주겠다는 뜻이었다.

그렇게 사천성의 아니 어쩌면 천하의 운명마저도 바꾸게 된 일전이 시작되었다.

그러나 두 사람의 승부는 그리 길지 않았다.

고작 20여 합, 이도립의 검은 고작 20여 합 만에 묵겸의 심장을 꿰뚫고 있었다.

묵겸의 아들 묵천은 이날 달빛 속으로 사라지는 이도립의 모습을, 그리고 아버지의 심장에 검을 꽂는 이도립의 모습을 평생 잊지 못했다.

비단 아버지의 죽음 때문이 아니었다.

자신이 하늘이라고까지 생각했던 아버지가 무너지는 광경 앞에서 묵천은 하늘이 무너져 내리는 슬픔보다도 이도립의 무공에 매료되어 감탄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그리고 그의 아버지 묵겸 역시도 가슴에 검을 꽂은 상태에서도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부전자전(父傳子傳), 이렇게 두 사람 모두가 타고난 무인, 무공에 미친 사람들이었다.

이렇게 묵겸은 죽음에 임박한 상황에서도 자신을 능가하는 최고의 무공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는 사실에 미소를 머금고 있었고, 그의 아들인 묵겸은 아버지의 죽음 앞에서 원망보다 먼저 상대의 무공에 감탄하고 있었다.

천천히 묵천에게 다가오는 이도립, 그런 이도립에게 묵천은 원망이 아닌 흠모의 시선을 보내고 있었다.

이런 두 부자의 모습은 이도립에게도 당황스러울 정도였다.

“ 기다리고 있으마.”

이도립의 말에 묵천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것이 자신의 도전을 기다리고 있겠다는 말임을 묵천은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자신이 이도립을 꺾는 그 순간이 바로 아버지 묵겸을 능가하는 순간이며 또한 사흑성이 다시 천하를 향해 발을 내디딜 시기라고 생각했다. 이런 생각으로 아버지의 시신을 수습한 묵천은 사흑성의 주력인 일백사혼대를 해체하고 은거를 결심했다.

허나 그가 꿈꾸는 시기는 결코 찾아오지 않았다.

묵천은 평생 이도립을 목표로 무공을 연마하고 새로운 경지를 목표로 했으나 그 경지에 도달하는 길은 너무나 요원했다. 묵천은 자신의 후예들에게 필생의 무공을 전하며 이도립의 무공을 꺾을 자신이 없다면 결코 강호에 출도해서는 안 된다는 유언을 남겼다.

그렇게 300년의 세월이 지난 후 묵상이 비로소 세상에 나왔다.

허나 묵상이 묵천으로부터 시작해 그의 아버지 묵염에 이르기까지 새롭게 완성된 뇌음사흑강과, 일견사흑도를 완벽하게 익힌 것은 아니었다. 그랬다면 결코 이 자리에서 두려움 따위는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묵상의 아버지 묵염은 무리하게 무공을 연마하다고 주화입마로 유명을 달리했다.

혼자 남은 묵상은 무공의 완성보다는 세상이 궁금했다.

5대째 계속되어온 선대의 노력과 유언으로도 그의 세상에 대한 호기심을 막을 수 없었다.

더구나 그를 제지해야할 아버지가 불의의 사고로 사망하자 묵상은 세상으로 나갈 것을 결심했던 것이다. 최소한 뇌음사흑강이 9성의 경지를 넘어선 이후에 강호로 나가라는 아버지의 유언마저도 그를 막을 수는 없었다.

그리고 사천성 무림대회가 그에게 뜻밖의 기회를 주었다.

하지만 운명처럼 묵상은 월야검객의 전인을 만나고야 말았다.

달밤에 펼쳐진 진조범의 월영보, 세상 모든 사람들이 월영보를 알아볼 수 없을지라도 묵상만은 한눈에 그것을 알아볼 수 있었다. 8대 300여년의 세월을 목표로 해온 무공을, 평생 수십 차례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왔던 그 무공을 어찌 알아보지 못하겠는가?

월야검객의 후예가 지붕위에서 자신을 지그시 바라보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 묵상의 뇌음사흑강은 고작 6성의 경지, 필패를 의미했다.

자연히 패배에 대한 두려움이 먼저 묵상을 엄습했다. 그러나 이것은 자신을 바라보는 월야검객의 후인에게 결코 보이고 싶지 않은 모습이기도 했다.

묵상은 패배를 예감하면서도 달아나지 않았다.

피는 속이지 못하는 법이라고 해야 할까?

묵상은 자신의 패배를 예감하면서도 8대 300여년의 세월 선조들이 목표로 했던 그 무공을 자신의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 싶었다. 설사 그것이 또한 자신의 죽음이라고 할지라도 말이다.

그래서 묵상은 진조범의 뒤를 쫓았고, 이렇게 비무를 청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런데 정작 월야검객의 후인인 진조범은 자신의 존재조차도 모르고 있었다.

300여년의 세월동안 선조들의 노력이 무시당했다는 생각에 분노가 치밀었다.

하지만 이내 분노를 잠재울 수 있었던 것은 상대가 월야검객의 후인이라면 그럴 자격이 충분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지금 자신의 무공으로는 진조범의 상대가 되지 못한다고 생각했기에, 자신이 창절 윤인환을 무시했듯이 진조범도 자신을 무시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 고작 6성의 경지로 과연 내가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애써 담담하게 도를 뽑아들고 있었지만 묵상의 도신은 떨리고 있었다.

원중도가 진조범을 대신해서 천천히 묵상을 향해 움직였다.

순간 진조범이 원중도를 불러 세웠다.

“ 원총관.”

원중도가 자신을 바라보자 진조범이 가만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물러나라는 뜻이었다. 이는 곧 자신이 직접 묵상을 상대하겠다는 말이었다.

묵상은 이런 진조범의 행동에 가볍게 고개를 숙여 화답했다. 자신을 직접 상대해주겠다는 진조범의 호의에 감사의 인사를 건네는 것이었다.

300여년의 시공을 뛰어넘어 사흑성주 묵겸의 후예와, 월야검객 이도립의 후예의 격돌이 이렇게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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