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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르바나
작품등록일 :
2012.09.24 12:55
최근연재일 :
2016.12.22 04:05
연재수 :
11 회
조회수 :
20,193
추천수 :
136
글자수 :
42,755

작성
16.12.22 0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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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1쪽

발화 (5)

DUMMY

아이들을 태운 규철의 배가 선착장에 도착했다.

그새 날이 저물어 사위가 어둑어둑해지기 시작했다.

하늘에는 먹구름이 낮게 깔려있었고 곧 머지않아 비를 뿌릴 것 같았다.

바람도 눈에 띄게 거세지고 있었다.

조금만 더 지체했더라도 바다에서 풍랑을 만나 애를 먹었을 것이다.

규철이 선착장에 배를 묶는 동안, 아이들은 각자 짐을 챙겨서 하선했다.

기영은 친구들을 일일이 챙긴 다음에 가장 마지막으로 내렸다.

규철은 그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다가 기영과 시선이 마주치자 엄지를 세워보였다.

기영이 머쓱한 표정을 지으며 어깨를 으쓱거렸다.

“자, 다들 이쪽으로.”

규철이 앞장을 섰다.

아이들은 지쳤을 텐데도 기대에 찬 얼굴로 규철을 부지런히 따라갔다.

자갈이 깔린 오르막길은 도시에서 자란 아이들에게는 다소 버거운 코스였지만 다들 군말 없이 올라갔다.

이윽고 오르막길이 끝나고, 야트막한 언덕 위에 자리 잡은 규철의 집이 나타났다.

규철이 걸음을 멈추고 아이들을 돌아봤다.

“저기 보이는 집이 우리 집이다. 조금 비좁을지도 모르겠다만 지내기엔 나쁘지 않을 거다.”

아이들은 고개를 돌려 규철이 가리키는 집을 쳐다봤다.

어릴 때부터 아파트에서만 자란 아이들이라 그런지 단독주택은 다소 생경했다. 게다가 고립된 섬마을 가옥의 특성상 대문도 없어서 다들 신기하게 여겼다.

“어? 담장은 있는데 대문이 없네요?”

반장이 물었다.

규철이 피식 웃었다.

“필요하지 않으니까 달지도 않았지.”

“도둑이 들면 어떡해요?”

이번에는 승민이 물었다.

“이 조그만 섬에 도둑질할 사람이 있겠니. 어디에 누가 사는지 다 알고 누구 집에 밥숟가락이 몇 개 있는지 다 아는데. 그리고 물건을 훔친다고 해도 어디로 도망을 가겠어. 사면이 다 바다인데.”

규철의 설명에 아이들은 아아, 하고 고개를 끄덕거렸다.

“자! 서두르자. 아무래도 비가 한바탕 쏟아질 거 같으니까 얼른 들어가자. 섬이라서 비바람이 도시랑은 또 달라.”

아이들은 씩씩하게 대답하고 규철을 따라 집으로 들어갔다. 규철이 사는 집은 ㄷ자 형태의 옛날가옥이었다.

가운데 마루를 중심으로 좌측에는 안방과 부엌이, 우측에는 같은 크기의 방이 두 개가 있었다.

규철은 안방을 여자애들에게 내주고 비어있는 방을 사내애들이 쓰게 했다. 그리고 본인은 당분간 서재로 쓰는 방에서 지내기로 했다.

아이들이 방에서 짐을 풀고 있는 동안, 규철은 부엌으로 가서 저녁을 준비했다. 한참 자랄 때니만큼 식성도 좋을 것이다.

규철은 쌀을 열 컵이나 씻어서 밥을 안치고 냉동실에 넣어둔 돼지고기를 가져와 커다란 냄비에다가 고추장찌개를 끓였다. 그리고 밥을 먹고도 금세 배고프다고 아우성칠 걸 대비해서 가마솥에 옥수수를 넣고 삶았다.

전기밥솥이 칙칙 소리를 내며 밥을 짓는 동안, 규철은 마당으로 나와 대야에 물을 받아서 세수를 했다.

“어, 형 마침 집에 계셨네요?”

발소리가 들려 고개를 드니 재휘가 크로스백을 메고 마당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규철은 수건으로 얼굴을 닦고 나서 재휘를 쳐다봤다.

“저녁은 먹었어?”

“아뇨, 아직. 그보다 형, 할 이야기가 있는데······.”

그때 아이들이 밥 짓는 냄새를 맡고 방에서 우르르 나왔다.

“와, 맛있는 냄새다!”

“배고파요, 삼촌!”

“이 냄새, 옥수수 아냐?”

“배고파서 돌아가실 거 같다.”

재휘가 어안이 벙벙한 표정을 지으며 규철을 흘끗 쳐다봤다. 그러고는 아이들을 의식했는지 목소리를 낮추고 물었다.

“조카가 이렇게 많았어요?”

“설마. 조카랑 조카 친구들이야.”

“아아, 그렇군요.”

재휘는 이제야 수긍이 간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내색하진 않았지만 재휘는 예전부터 어린애들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아니, 정확히는 어린 친구들을 상대하는 걸 어려워하는 편이었다.

“얘들아, 인사해라. 여기는 이 마을에서 나랑 친하게 지내는 조재휘 의사 쌤이시다.”

규철이 아이들에게 재휘를 소개했다.

“안녕하세요!”

아이들이 한 목소리로 인사했다.

재휘는 어색하게 웃으며 인사를 받았다.

“어어, 안녕. 만나서 반가워. 아, 이 기분은 뭐랄까. 내가 존경해마지 않는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1977년 작인 ‘미지와의 조우’의 감명 깊은 엔딩 씬을 봤을 때와 비슷한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이 영화는 말이지. 오스카상을 무려······.”

재휘는 뭔가 어색한 분위기에 직면하면 말이 많아지는 경향이 있었다. 지금도 그랬다. 아이들은 눈을 말똥말똥 뜨며 재휘를 쳐다봤다. 재휘가 하는 말을 절반도 못 알아듣겠다는 표정들이다. 옆에서 규철이 헛기침을 하며 재휘의 옆구리를 쿡 찔렀다.

“재휘야, 일절만 하자.”

“아, 그렇지. 얘들아, 미안.”

규철이 웃으면서 고개를 흔들었다.

“다들 배고프지? 밥 다 되었으니까 맛있게들 먹자.”

밥이라는 말에 아이들이 일제히 환호성을 질렀다. 무척 시장했던 것이다. 기영과 승민이 규철을 도와 밥상을 차렸다. 참견장이인 화영도 가만히 있지 않고 거들었다. 저녁상이 차려지자 아이들은 전투적인 기세로 밥을 먹었다. 멀미를 심하게 해서 식욕을 잃었다던 승민도 순식간에 밥을 두 그릇이나 비웠다.

“진짜 배고팠나 보네.”

규철은 온화한 미소를 지으면서 아이들이 밥 먹는 모습을 가만히 지켜봤다. 그러다가 문득 생각났다는 듯 재휘를 쳐다봤다.

“근데 무슨 일이야?”

“아, 맞다. 형, 아무래도 마을 분위기가 이상해요.”

재휘가 목소리를 낮추고 말했다.

“이상하다니? 뭐가?”

규철이 고개를 갸웃하고 되물었다.

재휘는 잠시 망설이다가 이곳에 오기 전에 자기 집에서 겪은 일을 가감 없이 전부 규철에게 들려주었다.

“윤구 아저씨가?”

“네, 뭐라고 설명하기 힘들지만 제 의학적 소견으로는 마치 공수병에 걸린 사람 같았습니다.”

“공수병이라고? 근데 이 섬에는 이제 개를 키우는 사람이 없잖아. 무슨 공수병이야? 이해가 가지 않는데.”

“꼭 개가 아니라 야생동물이 옮길 수도 있죠.”

“이런 고립된 섬에서 갑자기?”

“하긴 지금 생각해보니 형 말이 맞네요.”

“그래서 윤구 아저씨는 지금 어디에 있는데?”

규철이 물었다.

“음 일단 진정제를 놓고 저희 집 창고에 격리시켰습니다.”

“격리라면, 묶어놨다는 건가?”

“뭐, 일단은 그렇죠.”

“화장실도 못 갔겠는데? 좀 봐줘야 하는 거 아냐?”

“아, 그렇겠군요. 그 생각을 또 못했네요. 아까는 넘 경황이 없어서.”

“근데 진짜 공수병이면 조심해야 되는 거 아냐? 백신은 있고?”

“이 섬에 공수병이 마지막으로 발생한 일자가 십수 년 전인데요. 당연히 가지고 있을 리가 없죠.”

재휘가 다소 무책임하게 대답했다.

“그럼 문제잖아?”

“그래서 형한테 찾아온 거예요. 갑자기 전화도 먹통이고 인터넷도 안 터지더라고요. 혹시 형도 전화 안 됩니까? 인터넷도?”

“음, 전화는 섬에 오기 전부터 안 터졌어. 인터넷은 방에 가서 확인해봐야겠다. 근데 너희 집도 안 되면 여기도 장담 못하겠는데. 이 섬의 인터넷 환경이야 뻔한데, 광케이블 자체에 문제가 생겼을 확률이 높잖아.”

규철이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그렇죠.”

재휘가 고개를 끄덕거렸다.

“일단 기다려봐. 방에 가서 확인해볼게.”

그러고는 규철은 방으로 들어갔다가 몇 분 만에 무거운 표정을 지으며 나왔다. 역시 인터넷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형네도?”

“음, 뭔가 느낌이 안 좋은데. 전화도 안 터지고. 이제 인터넷까지······.”

규철이 굳은 얼굴로 아이들을 쳐다봤다. 식사를 거의 마쳐가는 분위기였다. 몇몇 아이들은 밥상에서 물러나 배를 두드리고 있었다.

“일단 윤구 아저씨를 좀 봐야겠다.”

“그러시겠어요?”

“근데 아이들만 놔두고 가도 될지 모르겠네.”

“에이, 뭐 어린애들도 아닌데요.”

“하긴.”

규철이 맞는 말이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솔선수범해서 밥상을 치우고 있는 기영을 불렀다.

“기영아.”

기영이 규철을 쳐다봤다.

“삼촌, 잠깐 어디 좀 다녀올 데가 있는데 아이들을 놀고 있어. 부엌에 가면 솥 안에 옥수수를 쪄놨으니까 입이 심심하면 가져다가 먹고. 지금쯤 다 익었을 거야. 혹시, 삼촌이 늦으면 기다리지 말고 먼저 자. 뭐, 일찍 잘 거 같지는 않다만.”

규철은 그렇게 말하고는 피식 웃었다.

“알았어요. 다녀오세요.”

기영이 씩씩하게 대답했다.

“그러면 다녀오마. 얘들아, 재미있게 놀고 있어.”

규철이 아이들에게 말했다.

아이들은 자리에서 일어나 규철에게 인사했다.

규철은 아이들에게 손을 흔들어주고는 우비를 챙겨서 재휘와 함께 집을 나섰다. 바람이 강하게 불 때는 우산보다 우비가 더 효율적이었다.

아이들은 자기들끼리 남게 되자, 밥상을 치우고 마루에서 여러 가지 게임을 하며 시간을 보냈다.

그렇게 한 시간쯤 지났을 때, 요의를 느낀 승민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집 안에도 화장실이 있었지만 여자애들을 의식해서 그런지 일부러 마당에 있는 재래식 화장실로 가서 소변을 봤다. 그러고는 다시 화장실에서 나오다가 무엇을 봤는지 걸음을 멈추고 출입구 쪽을 우두커니 쳐다봤다.

“승민아. 왜 비 맞고 서 있어? 빨리 오지 않고.”

반장이 물었다.

승민은 고개를 갸웃하더니 반장을 흘끗 쳐다봤다.

“어, 그게 저기 누가 있는 거 같아서.”

그러면서 다시 출입구 쪽을 쳐다봤다.

“거기 누구 있어요? 혹시 규철이 삼촌이세요?”

대답이 없었다.

하지만 분명히 어두컴컴한 저 너머에 거뭇한 그림자가 서 있었다. 비도 내리고 있고 조명도 마루에서 흘러나오는 불빛이 유일해서 잘 알아볼 수가 없었다.

“왜 그래?”

이번에는 기영이 물었다.

“저기 누가 있는 거 같은데 대답을 안 하네?”

승민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출입구 쪽으로 걸음을 뗐다. 그러다가 뭔가 알 수 없는 섬뜩한 느낌을 받고 다시 우뚝 멈췄다.

“저기요?”

다시 조심스럽게 불러보았다.

그러자 거뭇한 그림자가 이쪽으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근데 걸음걸이가 어딘지 모르게 자연스럽지 못했다.

승민은 본능적으로 두려움을 느끼고 슬금슬금 물러섰다.

“누, 누, 누구세요?”

바로 그때, 어둠 속의 존재가 처음으로 반응을 보였다.


까드드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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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여름방학 (2) 16.10.22 721 11 13쪽
2 여름방학 (1) 16.10.19 957 15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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