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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르바나
작품등록일 :
2012.09.24 12:55
최근연재일 :
2016.12.22 04:05
연재수 :
11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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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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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6
글자수 :
42,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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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11.13 1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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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발화 (4)

DUMMY

한참 키보드를 두드리던 재휘는 요란한 천둥소리에 앉은뱅이책상에서 일어나 마루로 나왔다.

아직 해가 지기엔 이른 시간인데도 밖이 어둑어둑했다. 먹구름이 잔뜩 몰려와 해를 집어삼켜버렸다. 바람의 기세도 심상치 않아서 저만치 떨어진 바다의 먹구름이 이쪽으로 오는 건 시간문제였다.

재휘는 뿔테안경을 벗어 렌즈를 셔츠에 문질러 닦더니 다시 쓰고 심각한 얼굴로 바다를 쳐다봤다.

“비가 오려나. 갑자기 막걸리에 파전이 훅 땡기네. 원고 보내고 나서 규철이 형한테나 가볼까.”

재휘는 중얼거리며 방으로 돌아와 휴대폰을 찾았다. 규철에게 전화를 걸어보려고 책장의 의학서적 사이에 놓아둔 휴대폰을 집어 번호를 검색하다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인터넷 신호는 물론이고 아예 전화까지 먹통이었기 때문이다.

“얼래? 이게 뭔 일이야. 갑자기 전화가 왜 이래. 헐, 인터넷도 안 되네? 미치겠군. 인터넷이 끊어지면 정말 곤란한데.”

재휘는 황급히 노트북의 연결 상태를 확인했다. 마찬가지였다. 조금 전까지 잘만 잡히던 인터넷 신호가 사라져버렸다.

당황해서 공유기로 눈길을 돌렸다. 역시나 그 어떤 신호도 잡히지 않았다.

“헐, 큰일 났다.”

재휘는 털썩 주저앉더니 머리를 벅벅 긁었다.

이곳, 영락도에 공중보건의사로 파견 나와서 지내고 있지만 그에게는 부업으로 하는 일이 따로 있었다. 재휘는 ‘히치콕‧J’라는 필명으로 매주 영화관련 웹진에 글을 기고하는 칼럼리스트였다. 그런데 갑자기 인터넷이 끊겨버렸으니 마감을 못하게 되어 난감해진 것이다.

“이거 어쩌지. 원고 펑크 내면 편집장이 뭐라고 할 텐데. 대체 뭐가 문제인 거야. 아까까지는 잘만 터지더니만.”

혀를 끌끌 차며 방을 서성이던 재휘는 뭔가 생각났는지 급히 노트북을 가방에 챙겼다. 그러고는 우산을 챙겨서 집을 나섰다.

재휘는 대문을 지나자마자 혹시라도 빠뜨린 건 없는지 흘끗 집을 돌아봤다.

진료실 겸 거주공간으로 삼고 있는 이 집은 오랫동안 버려진 가옥을 개조한 것인데, 워낙 외딴 곳이기도 했지만 예전부터 귀신이 나온다는 소문이 나돌아서 그런지 가까이에 사는 사람이라고는 규철이 유일했다.

두 사람은 서로 오가면서 차나 술을 마시는 일이 잦았다. 어떻게 보면 둘 다 외지에서 들어온 입장이라 금세 친해졌다. 나이는 규철이 열 살 가까이 많아서 재휘가 먼저 스스럼없이 형이라고 불렀다.

재휘는 규철의 집에 가서 원고를 보낼 생각이었다. 단지 회선에 문제가 생긴 거라면 규철의 집에서는 인터넷 신호가 잡힐지도 모르는 일이다.

재휘는 그런 일말의 희망을 품고 부지런히 걸음을 옮겼다. 그러다가 버릇처럼 다시 왔던 길로 고개를 흘끗 돌렸다.

큰 몸집에 비해 걸음이 날랜 편이어서 잠깐 사이에 집에서부터 꽤 멀리까지 나왔다.

강박증이 약간 있는 재휘는 혹시 가스를 끄지 않았나 싶어 잠시 고민하다 온종일 가스레인지 근처에도 가지 않았다는 것을 깨닫고 다시 걸음을 옮겼다.

“근데 이 형, 집에 있으려나. 오늘 누가 찾아온다고 했던 거 같은데.”

재휘는 혼잣말을 하며 갈림길에서 규철의 집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얼마 후, 반대방향에서 윤구가 헉헉거리며 뛰어왔다.

안색도 나쁘고 몹시 지쳐보였다. 한여름이라고는 해도 지나치게 땀도 많이 흘렸다.

윤구는 갈림길에서 잠시 숨을 고르고 나서 고개를 들었다.

재휘가 사는 집은 야트막한 언덕 위에 있다. 요즘 같은 무더위에는 완만한 경사진 길이라도 오르는 일이 만만치 않다.

윤구는 무릎을 두드려가며 부지런히 자갈길을 올라갔다. 신발을 신지 않아서 두 발 모두 피범벅에 상처투성이였다. 자갈길에 시뻘건 발자국이 남았지만 이제 통각이 무뎌졌는지 윤구는 숨을 조금 헐떡일 뿐 무덤덤하게 걸음을 옮겼다. 눈은 초점 없이 흐릿했다.

이윽고 재휘의 집에 다다르자 윤구는 길게 숨을 토하고 허리를 폈다.

“선생님, 집에 계십니까?”

나이는 재휘가 훨씬 어렸지만 윤구는 늘 예의를 갖춰서 존칭을 썼다. 이 섬에서 재휘에게 하대를 하는 사람은 규철이 유일했다.

“저, 박윤구입니다. 조 선생님, 안 계십니까?

몇 번을 불러도 대답이 없자 윤구는 슬그머니 마루로 올라가 방문을 열어봤다. 그리고 재휘가 부재중임을 확인하고 낙담했다. 힘들여 여기까지 왔는데 헛걸음했다는 생각에 맥이 탁 풀려서 마룻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허허, 이제 어쩌면 좋담.”

윤구는 쓴웃음을 지으며 털레털레 마루에서 내려왔다.

앞으로의 일이 막막했다. 어쩌면 마을 사람 전부가 그 이상한 돌림병으로 미쳐 돌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게 다 무슨 난리인가 싶었다. 어제, 아니 불과 몇 시간 전까지만 해도 다들 멀쩡하지 않았나. 어떤 전염병 같은 거라면 분명히 감염경로가 있을 것이다.

윤구는 얕은 지식을 총동원에서 어디서부터 비롯되었는지, 원인은 무엇인지 곰곰이 궁리해봤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봐도 딱히 문제가 될 게 없어보였다.

이 조그만 섬마을의 일상이라는 게 늘 똑같다. 지루할 정도로 쳇바퀴처럼 반복되는 일상이 아니던가. 그래서 어쩌다가 구실만 생기면 잔치를 벌이는 거고. 잔치? 그래. 오늘은 그 어쩌다가 있는 잔치를 벌인 날이다. 무엇 때문에?

“그 주사?”

윤구는 퍼뜩 정신이 들었다.

평소와 다른 게 있다면 그 주사를 맞은 일밖에 없다. 제약회사에서 선심을 쓴다며 마을사람들이 죄다 이장 집에 모이지 않았던가. 윤구도 늦게 도착해서 몸에 좋다는 주사를 맞았다. 솔직히 최 영감처럼 효능을 느끼지는 못했지만 그냥 몸에 좋다고 하니 괜히 기분은 좋았다.

하지만 그 주사에 뭔가 있는 거라면?

생각이 거기까지 미쳤을 때 까닭 없이 오한이 들었다. 갑자기 으슬으슬 춥고 정신이 혼미해진다. 윤구는 다리에 힘이 빠지면서 크게 휘청거렸다. 시야도 뿌옇게 흐려졌다. 몽롱한 기분이 들면서 정신이 아득해졌다.

“거기 누구십니까?”

그때 인기척이 느껴져 고개를 돌렸다. 누군가가 다가오고 있는 게 분명한데 시야가 흐려서 보이지를 않았다. 혹시, 이상하게 변한 마을 사람 중 하나가 아닐까? 윤구는 덜컥 겁이 났다.

“윤구 아저씨?”

재휘였다. 이전부터 규철에게 가져다주려고 했던 양주가 생각나서 다시 되짚어 돌아온 것이다.

“웬일이세요? 어디 아프십니까?”

재휘가 다가와 물었지만 윤구는 멍한 표정을 지으며 초점 없는 흐린 눈빛으로 다른 곳을 응시했다.

“아저씨? 왜 그러세요?”

윤구는 재휘를 바로 앞에 두고도 눈이 먼 맹인처럼 두리번거렸다.

재휘가 윤구에게 다가서며 어깨를 짚었다.

“으아아아아아!”

윤구는 비명을 지르며 재휘의 손을 뿌리쳤다. 뭔가 이상하다고 느낀 재휘는 본능적으로 뒤로 물러서서 윤구를 관찰했다.

“윤구 아저씨? 접니다, 조재휘. 저, 못 알아보시겠습니까?”

재휘가 다시 조심스럽게 말을 걸었다.

윤구는 대꾸를 하지 않았다.

“훅, 훅, 훅, 훅.”

윤구는 갑자기 숨을 거칠게 몰아쉬기 시작했다. 어깨까지 들썩이며 격정적으로 숨을 토했다. 그러기를 몇 차례 반복하다가 경련을 일으키더니 배를 움켜쥐고 토악질을 시작했다. 토사물이 마당을 더럽혔다.

“아저씨?”

“우에에에엑.”

재휘는 황급히 방으로 뛰어가 왕진가방을 찾았다. 그사이에도 윤구의 구토는 계속 이어졌다.

“괜찮으세요?”

방에서 왕진가방을 챙긴 재휘가 윤구를 부르며 다가갔다.

그때 윤구의 구토가 뚝 멈췄다.

“윤구 아저씨?”

재휘가 긴장하며 조심스럽게 손을 뻗는데, 윤구가 고개를 홱 쳐들었다. 재휘는 흠칫 놀라며 손을 거두었다. 그만큼 윤구의 얼굴이 어딘가 이상했다. 백태가 낀 것처럼 동공이 흐렸고, 검게 변한 핏줄이 눈에 띄게 불거져있었다.


까드드득!


윤구의 입에서 끔찍한 소리가 튀어나왔다. 그러더니 침을 질질 흘리며 재휘에게 달려들었다.

“뭐, 뭡니까?”

재휘는 빠르게 뒷걸음을 쳤다.

윤구가 쫓아가서 이빨을 딱딱 부딪치며 재휘를 물어뜯으려고 했다.

재휘는 혀를 차고 몸집에 어울리지 않게 민첩한 동작으로 빙글 돌아 손바닥으로 윤구의 턱을 올려붙였다.

뻐걱, 소리가 나며 윤구의 턱이 돌아갔다.

재휘가 놀란 표정을 지으며 눈을 크게 떴다.

뇌진탕이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의 타격이었는데도 윤구는 쓰러지지 않았다. 다만 고개가 기괴할 정도로 꺾인 상태로 덜렁거렸다. 목뼈가 부러진 것처럼 보였다.

재휘는 당황했다.

의대에 들어가기 전에 재휘는 한때 철학도의 길을 걸었다. 그러다가 일신의 변화로 뒤늦게 의대에 들어간 케이스였다.

철학도 시절에 재휘는 중국무술, 특히 내가권에 심취했었다. 의대에 들어가서도 수련을 게을리 하지 않아서 사범으로부터 정식으로 입문해보지 않겠냐는 제의를 받기도 했었다. 실력으로 치자면 일반인 수준을 훌쩍 넘어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물론 한 번도 자랑삼아 완력을 쓴 적은 없지만 스스로의 실력에 어느 정도 자부심을 갖고 있었다.

그런데 윤구가 정타를 맞고도 두 발로 서 있어서 놀랐지만, 갑자기 비정상적인 행동을 하는 게 더 이상했다.


까드드득!


윤구가 고개를 덜렁거리면서도 포기하지 않고 끔찍한 소리를 내지르며 재휘에게 다시 달려들었다.

재휘는 본능적으로 윤구에게 물리면 안 된다는 것을 직감했다.

어쩌면 공수병 같은 것을 앓고 있는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이 섬에서 개를 기르는 사람은 없지만 야트막한 산이 있어서 야생동물을 통해 감염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다.

“윤구 아저씨, 정신 좀 차리세요!”

아무리 이름을 불러도 윤구는 자기 이름조차 인지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재휘는 자신을 보호하기로 마음을 굳혔다. 속으로 미안하다고 읊조리며 짐승처럼 달려드는 윤구의 정강이를 걷어찼다.

순간 중심을 잃은 윤구가 휘청거리며 앞으로 나자빠졌다.

재휘는 틈을 주지 않고 무릎으로 윤구의 등을 찍어 눌렀다. 그러고는 이를 꽉 깨물고 윤구의 후두부를 가격했다.

몸부림을 치던 윤구가 의식을 잃고 축 늘어졌다.

재휘는 길게 한숨을 내쉬고 윤구의 몸에서 내려왔다.

“후우, 이게 무슨 일이람.”

이때만 해도 재휘는 윤구 한 사람만의 문제라고 생각했다. 앞으로 끔찍한 악몽이 펼쳐질 거라고는 전혀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재휘는 바닥에 떨어진 왕진가방을 줍고 천천히 일어섰다. 그러고 나서 윤구를 내려다보며 착잡한 표정을 지었다.

“이 양반을 어떻게 하지. 그냥 놔둘 수도 없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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