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니르바나 유니버스

폐쇄구역

웹소설 > 작가연재 > 공포·미스테리, SF

니르바나
작품등록일 :
2012.09.24 12:55
최근연재일 :
2016.12.22 04:05
연재수 :
11 회
조회수 :
20,201
추천수 :
136
글자수 :
42,755

작성
16.10.23 18:51
조회
492
추천
7
글자
7쪽

여름방학 (5)

DUMMY

“묘하네, 묘해.”

승민이 초코바를 한입 베어 물고 중얼거렸다. 이제야 식욕이 돌아왔는지 벌써 초코바를 두 개째 해치우고 있다.

“뭐가?”

그때, 여자애치고는 다소 드문 편인 중저음에 가까워 음산하기까지 한 목소리가 승민의 귓속으로 불쑥 파고들었다.

“앗, 깜짝이야.”

갑작스러운 목소리에 승민은 흠칫 놀라며 고개를 돌렸다. 언제부터 거기에 있었는지 채린이 양손에 캔 커피를 하나씩 들고 우두커니 서 있었다. 1, 2초 정도 정적이 흐르고 나서야 뒤늦게 반장을 알아본 승민은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다.

“왜 그렇게 놀래?”

“야, 기척 좀 해.”

승민이 툴툴거렸다.

“뭣 때문에?”

채린이 시니컬하게 되물었다.

“아니다, 아냐. 됐어.”

승민이 뭔가 대꾸하려다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다시 시선을 돌렸다.

채린이 승민의 옆에 털썩 주저앉더니 무심하게 캔 음료를 내밀었다. 승민이 뭐냐는 듯 흘끗 쳐다봤지만 채린은 고개를 돌리지 않고 앞만 바라봤다. 승민은 캔 음료를 받아야할지 말아야할지 잠시 망설였다.

“아까부터 뭘 그렇게 보는 거야?”

채린이 물었다. 하지만 승민은 묻는 말에는 대꾸하지 않고 딴청을 피웠다.

“이거 나 주는 거?”

승민이 다소 장난스러운 말투로 묻자, 채린은 매정하게 캔을 도로 가져가려고 했다.

“싫음 말고.”

반장은 결심도, 행동도 늘 빨랐다.

“야야, 뭘 줬다 뺏어. 감사히 마시겠습니다.”

승민은 냉큼 캔을 받아들자마자 다시 뺏길까봐 뚜껑을 땄다.

“근데 뭘 보고 있냐니까?”

채린이 다시 물었다. 여전히 시선은 앞을 보고 있었다. 승민은 피식 웃고는 대수롭지 않은 일이라는 듯 어깨를 으쓱거렸다.

“뭘 보긴. 그냥 애들 구경이지. 재미있는 구도라서.”

“그게 무슨 말이야?”

“저 녀석들 말이야. 서로 얽히고 얽힌 게 재미있어서.”

여전히 알아듣지 못하겠는 듯, 채린은 비로소 고개를 돌리고 승민의 얼굴을 빤히 쳐다봤다. 때때로 승민은 마치 모든 것에 달관한 듯 애늙은이처럼 굴 때가 있었다.

“저기를 봐.”

승민이 반쯤 남은 초코바로 선착장에서 배를 기다리고 있는 아이들을 가리켰다. 채린은 그쪽으로 시선을 돌렸지만 아직도 잘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갸우뚱했다.

“뭘 보라는 거야?”

“정말 둔하기는.”

“계속 그럴래?”

채린이 주먹을 불끈 쥐어보였다.

“알았어, 알았다고. 기영이랑 화영이가 커플인 건 전교생이 다 아는 사실이니까 새삼스러울 건 없고. 문제는 화영이랑 석균이지. 쟤네들 엄마끼리 중학교 동창이라서 서로 집을 오가고 그러거든? 화영이가 석균이를 곧잘 챙기니까 기영이 입장에선 신경 쓰일 수밖에. 그리고 석균이 저 오덕 새끼 모르긴 몰라도 화영이한테 맘 있는 거 같고.”

승민이 초코바로 기영과 화영 그리고 석균 순으로 차례차례 가리켰다.

“그걸 어떻게 알아?”

“어떻게 아냐고? 보면 알아. 근데 최시아, 쟤 기영이 좋아한다? 자기 베프 남친이니까 내색을 못하고 있는 거라고.”

“그건 또 어떻게 아는데?”

채린이 시큰둥한 목소리로 물었다.

“자식, 나는 보면 딱 안다니까. 그리고 장석이 말이야. 저 새끼, 생긴 거랑 다르게 순정파라 예전부터 ‘시아바라기’였어. 아마 여기까지 쫓아온 이유도 시아 때문일걸? 대승이 자식이야 장석이가 오니까 덩달아 따라온 거고.”

승민이 영감 같은 말투로 말을 이었다.

“정말 그런 게 다 보여?”

채린은 여전히 아무 감흥도 없는 말투로 물었다.

“당연하지. 야, 이 오빠가 말이야. 장래 유명한 웹툰 작가가 될 몸이잖아. 작가는 모름지기 통찰력이 중요해. 통찰력은 또 뛰어난 관찰력에서 오는 거란다. 어때? 이 오빠, 막 존경하고 싶지 않냐?”

승민이 어깨에 잔뜩 힘을 주고 으스대며 말했다.

“응, 오빠.”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내뱉은 즉답.

“······.”

승민이 흠칫하며 채린을 쳐다봤다. 마치 귀신이라도 본 것 같은 표정이다.

채린도 무표정한 얼굴로 승민을 봤다.

“왜?”

“야, 넘나 빠른 긍정이라 몹시 당황스럽다.”

“그래? 그럼 철회.”

“하아. 진짜 너란 아이는······.”

그때 채린이 승민의 팔을 툭 건드렸다. 승민이 왜 그러냐고 쳐다보자, 턱짓으로 선착장을 가리켰다.

“배가 왔나 본데?”

“어? 그래?”

고개를 돌리니 선착장으로 어선 한 척이 들어오고 있었다. 배에 대해선 문외한인 승민이 보기에도 꽤 낡은 어선이었다. 불현듯 저 배를 타고 섬까지 무사히 갈 수 있을지 괜히 불안해졌다.

‘물에 뜨긴 하겠지?’

기영이 이쪽을 돌아보더니 승민과 채린에게 빨리 오라고 손짓했다. 다른 아이들도 배에 오르기 시작했다.

승민은 엉덩이를 털고 일어섰다.

“가자.”

채린은 말없이 승민을 따라나섰다.

“야, 박기영!”

“삼촌!”

조타실에서 나온 키 큰 남자가 환하게 웃으며 기영을 얼싸안았다.

“저 키 큰 아저씨가 기영이 삼촌이구나. 둘이 닮긴 닮았네.”

사진으로 몇 번 본 적이 있는 승민은 금세 기영의 삼촌을 알아보았다. 사진보다는 나이가 들긴 했지만 같은 핏줄이라 그런지 눈매나 분위기가 기영이랑 많이 닮은 것 같았다. 키도 크게 차이 나지 않았고 웃는 모습도 비슷했다.

‘쟤네 집안은 다들 큰가보네.’

승민은 속으로 생각하다가 무심코 하늘을 올려다봤다. 이곳 가의도에 처음 도착했을 때만해도 구름 한 점 없이 맑았는데 어느새 잔뜩 흐려있었다. 당장은 아니지만 몇 시간쯤 지나면 비가 내릴 것 같았다.

“맞다. 태풍 경로!”

승민은 스마트폰을 꺼내 날씨정보를 검색했다. 액정을 쳐다보는 승민의 표정이 갑자기 어두워졌다.


- 태풍 11호 타록(ทารก), 슈퍼태풍으로 진화 중. 현재 경로는······.


“야, 황승민! 뭐해? 빨리 타. 다들 기다리잖아.”

기영이 승민을 부르고 있었다. 다른 아이들은 이미 배에 올라타서 승민을 기다리고 있었다.

“아, 미안.”

승민은 사과하고 얼른 배로 뛰어갔다. 배에 오르자, 장석과 대승이 곱지 않은 시선으로 쏘아봤다. 승민은 두 사람을 무시하고 갑판으로 걸어갔다.

“삼촌. 얘가 승민이야. 내 베프. 인사해, 우리 삼촌.”

기영이 삼촌에게 승민을 소개했다.

“안녕하세요. 황승민이라고 합니다.”

승민은 고개를 꾸뻑 숙였다.

기영의 삼촌, 규철이 환하게 웃으면서 악수를 청했다.

“네가 승민이구나? 만나서 반갑다. 이야긴 많이 들었어. 나도 잘 부탁해. 우리, 친하게 지내보자.”

“네, 저도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삼촌!”

승민은 웃는 얼굴로 규철의 손을 잡았다. 무척 크고 따듯한 손이었다. 체온만큼이나 기영의 삼촌도 따듯한 사람일 거란 생각이 들었다. 왠지 이번 여름방학은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것 같았다.

아주 오랫동안 잊히지 않을 추억으로······.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 글 설정에 의해 댓글을 쓸 수 없습니다.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폐쇄구역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니르바나 유니버스』란 무엇인가? +1 12.11.25 1,599 0 -
공지 [알림] 폐쇄구역은? +15 10.09.08 12,355 25 -
11 발화 (5) 16.12.22 498 6 11쪽
10 발화 (4) 16.11.13 393 7 11쪽
9 발화 (3) 16.11.13 436 6 8쪽
8 발화 (2) 16.10.25 455 6 7쪽
7 발화 (1) 16.10.23 503 7 11쪽
» 여름방학 (5) 16.10.23 493 7 7쪽
5 여름방학 (4) 16.10.23 378 9 8쪽
4 여름방학 (3) 16.10.23 916 11 8쪽
3 여름방학 (2) 16.10.22 721 11 13쪽
2 여름방학 (1) 16.10.19 958 15 8쪽
1 프롤로그 16.10.17 1,619 26 4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