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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르바나
작품등록일 :
2012.09.24 12:55
최근연재일 :
2016.12.22 04:05
연재수 :
11 회
조회수 :
20,195
추천수 :
136
글자수 :
42,755

작성
16.11.13 03:35
조회
435
추천
6
글자
8쪽

발화 (3)

DUMMY

“헉, 헉, 이게 다 뭔 난리야. 돌림병이라도 돌았나. 왜들 미쳐서 날뛰는 거래.”

윤구는 숨을 헐떡거리며 언덕길을 뛰어서 내려갔다. 땀을 뻘뻘 흘리는 그의 얼굴은 마치 귀신이라도 본 것처럼 잔뜩 겁에 질려있었다.

불과 몇 십 분전까지 술판이 벌어진 이장의 집에서 막걸리를 퍼마실 때만 해도 세상을 다 얻은 기분이었다. 두둑하게 받은 보상금으로 그토록 원하던 뭍에 나가서 살 수 있게 되었으니 이제 좋은 일만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갑자기 생각지도 못하게 끔찍한 일이 벌어졌다.

창고에서 썩어가던 가라오케 기계까지 꺼내서 한바탕 잔치 분위기가 무르익던 술판이 한순간에 아수라장으로 바뀌었다.

시작은 올해로 아흔을 넘긴 섬의 최고령자인 최 영감부터였다.

방송으로 무슨 몸에 좋은 주사를 놔준다고 하니 노구를 이끌고 제일 먼저 이장 집에 도착한 것도 최 영감이었다.

최 영감은 다 늙은 나이에 무슨 호사를 누리겠다고 주사도 제일 먼저 맞겠다며 고집을 부렸다. 정말로 약효가 좋은지 주사를 맞고 나더니 이팔청춘처럼 껑충껑충 뛰며 음악에 맞춰 춤도 추고 막걸리도 혼자서 몇 주전자나 마셨다.

본격적인 술판이 벌어지자, 제약회사 직원들은 즐거운 시간을 가지라며 의료장비를 챙겨서 철수했다.

그러고 두어 시간 후, 몇 사람이 가라오케 반주에 노래를 부르고 섬에서 노래를 가장 잘한다고 자부하는 태안댁이 마이크를 잡았다. 애창곡인 ‘남행열차’의 반주가 신명나게 흘러나오고 막 첫 소절을 부르려고 할 때였다.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로 막걸리를 몇 사발 째 마시던 최 영감이 갑자기 꽥 소리를 내며 평상에 나자빠졌다.

같이 있던 마을사람들은 노인네가 나이도 잊고 무리를 해서 탈이라도 난 줄 알았다.

이장이 모인 사람들 중에 그나마 젊은 윤구를 불러 최 영감을 업고 빨리 조 선생에게 데려가라고 채근했다. 조 선생은 이 섬에 파견을 나와서 이년 째 살고 있는 공보의였다.

이제 오십을 바라보는 윤구는 여전히 애 취급당하는 게 못마땅하면서도 최 영감이 걱정되어 마지못해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이장과 고 씨가 업는 걸 도와주려고 쓰러진 최 영감을 일으켰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이었다.


까드드득.


최 영감이 벌떡 일어나 앉더니 허옇게 눈을 희번덕거리며 그 섬뜩한 소리를 목구멍으로 토해냈다.

조심성 많은 이장은 그 소리를 듣자마자 뒤로 물러섰지만 평소에도 오지랖 넓은 고 씨는 괜찮으냐며 최 영감에게 다가가 어깨에 손을 얹었다. 그러자 최 영감은 그 끔찍한 소리를 또 내뱉으면서 고 씨의 손을 물어버렸다. 고 씨가 비명을 질러댔지만 최 영감은 광견병에 걸린 개처럼 손을 문 것도 모자라 그 상태로 마구 흔들어대는 바람에 살갗이 찢어지고 피가 사방으로 튀었다.

깜짝 놀란 사람들이 최 영감에게 달라붙어 고 씨로부터 떼어내려고 했다.

그런데 그들 중 또 한 사람이 다가서다 말고 몸을 기괴하게 꺾으며 경련을 일으키더니 최 영감이 냈던 그 끔찍한 소리를 내질렀다.

그때부터 몇몇 사람이 연달아 같은 증세를 보였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은 여지없이 옆 사람을 물어뜯고 할퀴었다.

마치 집단으로 공수병에 걸린 것 같았다.

윤구는 신발도 제대로 챙기지도 못하고 맨발로 이장 집에서 도망쳐 나왔다. 뾰족한 돌을 밟을 때마다 눈물이 찔끔 날 정도로 아팠지만 멈춰서 살펴볼 틈이 없었다. 이장 집을 나서자마자 누군가가 그 끔찍한 소리를 내며 쫓아왔기 때문이다.

흘끗 돌아보니 사람들이 서산댁이라고 부르는 이장의 며느리였다.

한때 마음을 품게 만들었던 곱상한 얼굴이 흉측하게 일그러져 있었다. 눈은 붉게 출혈했고, 거무죽죽하게 변색된 피부 위로 핏줄이 불거져서 무섭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서산댁도 맨발이었지만 전혀 아픔을 느끼지 못하는 것 같았다.

윤구는 이를 악물고 정신없이 뛰었다.

꽤 거리가 벌어졌지만 윤구도 슬슬 지치기 시작했다. 이러다가는 붙잡히기도 전에 숨이 넘어갈 것 같았다.

윤구는 주위를 두리번거리다가 수풀로 들어가 납작 엎드려 몸을 숨겼다. 그러고 조금 있으니 서산댁이 뛰어왔다.

윤구의 흔적을 놓친 서산댁은 멈춰 서서는 눈을 희번덕거리며 주위를 둘러봤다. 윤구는 들키지 않으려고 숨소리도 죽이며 바짝 엎드렸다. 괜히 눈이라도 마주칠까 두려워서 고개도 내밀지 못했다.

“꺼어어어어어어억!”

한참을 주위를 살피던 서산댁이 갑자기 배를 움켜쥐고 몸을 숙이더니 토악질을 시작했다.

윤구는 지금이 적기가 싶어서 다시 내빼려고 슬그머니 일어섰다.

“거기 누구요? 얼래, 서산댁 아닌감?”

마을 후배인 창수가 저만치에서 걸어오다가 서산댁을 발견하고 걱정스런 얼굴로 황급히 뛰어왔다.

‘아, 안 돼, 창수야.’

윤구는 창수에게 경고를 해주고 싶었지만 겁에 질린 나머지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결국 다시 몸을 낮추고 잠자코 지켜보았다.

“서산댁, 서산댁 맞지? 어디 아픈가? 왜 그러고 있남.”

창수가 몸을 수그리고 있는 서산댁에게 다가가 등을 토닥이며 걱정스레 물었다. 그러자 서산댁이 토악질을 멈추고 고개를 들었다.

“응? 얼굴이 왜 그 모양이여. 참말로 많이 아픈가벼. 약은 먹었는감.”

아무것도 모르는 창수는 서산댁이 음식을 잘못 먹고 탈이라도 나서 그러는 줄 알았다.

“이라고 있지 말고 조 선생한테 갑시다.”

창수가 서산댁의 팔을 잡고 일으키려고 했다.


까드드드득!


순간, 서산댁이 벌떡 일어나더니 창수의 팔뚝을 물어버렸다.

“아아아아! 뭐여, 시방. 왜, 내 팔울 물고 그려. 아파, 아프다고!”

그러거나 말거나 서산댁은 창수의 팔뚝을 물고 마구 흔들어댔다. 후드득, 찢어진 상처에서 피가 떨어졌다.

“아, 그만 좀 하라고!”

참다못한 창수가 역정을 내며 거칠게 서산댁을 떼어냈다.

창수의 힘을 감당하지 못한 서산댁은 엉덩방아를 찧으며 뒤로 넘어졌다. 그러고는 다시 달려들지는 않고 두 손으로 바닥을 짚고 아까처럼 뱃속을 게워내기 시작했다. 시뻘건 토사물이 꾸역꾸역 쏟아져 나왔다.

“허어, 이게 다 뭐여. 갑자기 왜 이러는 거여. 내가 싫으면 싫다고 말로 하지. 왜 팔을 물고 지랄이여, 지랄이. 됐구먼. 이제 나도 말 안 붙일 테니까 아프든 말든 그건 서산댁이 알아서 하소.”

창수가 토악질을 하고 있는 서산댁을 내버려두고 씩씩거리며 집으로 향했다.

윤구는 창수를 부르고 싶었지만 여전히 떠나지 않고 있는 서산댁 때문에 수풀에서 나오지 못했다.


꽈르르르르릉.


창수가 거의 보이지 않을 때쯤 별안간 벼락이 번뜩이더니 천둥소리가 들렸다. 마치 불안한 윤구의 마음을 대변하는 것 같았다.

윤구는 불안에 떨면서 빨리 서산댁이 떠나주기만을 기다렸다.

거의 한 시간쯤 지나고 나서야 토악질을 멈춘 서산댁은 주위를 한차례 두리번거리더니 어딘가로 떠나버렸다.

윤구는 마음을 놓을 수가 없어서 그러고도 한참이 지난 후에야 수풀에서 나왔다.

다행히 서산댁은 보이지 않았다. 윤구는 나직이 한숨을 내쉬었다. 한시름 놓기는 했으나 아직 안심할 수는 없었다.

‘이제 어떻게 한담. 분명히 뭔 일이 벌어지고 있긴 한데 마냥 여기서 이럴 수는 없고. 그래, 맞아. 일단은 조 선생을 찾아가보자. 똑똑한 의사 양반이니까 무슨 방법을 알려줄지도 모르잖아.’

마음을 굳힌 윤구는 조 선생을 찾아서 부지런히 언덕길을 내려갔다. 혹시라도 가는 길에 누군가와 마주칠까 싶어서 주위를 열심히 살피는 것도 잊지 않았다. 적어도 이장 집에 찾아온 사람들만큼은 피하고 싶었다. 잘은 모르지만 거기 있던 사람들은 모두 서산댁처럼 변했을 것 같다는 막연한 생각이 들었다.

“헉, 헉, 이게 다 뭔 난리야. 돌림병이라도 돌았나. 왜들 미쳐서 날뛰는 거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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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여름방학 (4) 16.10.23 377 9 8쪽
4 여름방학 (3) 16.10.23 916 11 8쪽
3 여름방학 (2) 16.10.22 721 11 13쪽
2 여름방학 (1) 16.10.19 957 15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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