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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르바나
작품등록일 :
2012.09.24 12:55
최근연재일 :
2016.12.22 0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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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10.22 1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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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여름방학 (2)

DUMMY

“어이, 규철이 집에 있는가?”

밖에서 담배를 많이 피워서 나는 가래 끓는 목소리가 들렸다. 분명, 이장이다. 규철은 셔츠의 단추를 채우다말고 손을 멈칫하고 한숨을 내쉬었다. 그가 찾아온 용건이 뭔지 너무도 잘 알기 때문이다.

“이 친구, 어디 갔나. 신발은 보이는데······.”

이장이 입맛을 다셨다.

“분명히 못을 박았는데도 참 끈질긴 양반이네.”

규철은 나직이 중얼거리며 단추를 마저 채우고 나서 성큼성큼 마루로 나갔다. 슬그머니 집안을 살피려던 이장이 화들짝 놀라며 고개를 번쩍 들었다. 안 그래도 키가 180이 훌쩍 넘는데 마루 위에 서 있으니 170이 채 되지 않는 이장으로서는 눈을 마주치려면 고개를 한껏 들어야했다.

“어이쿠, 깜짝이야. 집에 있었구먼? 근데 어디 가나 보네. 옷도 차려입고. 잠깐이면 되는데 얘기할 짬도 없으려나.”

이장이 슬쩍 말끝을 흐렸다.

“무슨 말씀을 하시려고요? 혹시 그 얘기를 다시 꺼내실 거면 그만 하죠. 저는 이미 답을 드렸잖습니까?”

규철이 귀찮다는 투로 내뱉자, 이장은 이맛살을 찌푸리며 낮게 헛기침을 했다.

“에헤이. 사람 참 하고는. 젊은 친구가 왜 그리 꽉 막혔어. 그러지 말고 내 이야기 좀 들어봐. 다들 다 동의했는데 계속 자네 혼자만 고집을 부리고 있잖은가. 이게 어디 나 혼자 잘 되자고 하는 일인감. 다 잘 먹고 잘 살자고 하는 거지.”

“글쎄요. 저는 이전에도 몇 번이나 말했지만 이 섬을 떠날 생각이 없습니다. 제가 왜 여길 떠나야하죠? 가실 거면 이장님이나 가세요.”

“이봐, 규철이. 아니 이 섬에 뭐 볼 게 있다고 그리 고집을 피우나. 여기도 이제 예전만 못해. 잘 알잖아. 새우도 망할 떼놈들이 수시로 넘어와서 아예 씨가 말랐어. 고기도 안 잡히고. 작년 구월에 그 태풍 뭐시기인지 뭔지가 와서 양식장도 쑥대밭이 돼서 아직 복구도 못하고 있잖은가. 입에 풀칠하는 것도 녹록치 않아.”

이장은 잠시 말을 끊고 입에 침을 바르며 슬쩍 규철의 눈치를 살폈다. 규철은 듣기도 싫다는 듯 이장을 외면했다.

“이 섬에 남아있는 식구가 몇이나 되는가. 그나마 젊은 애들은 거진 다 떠났고, 죄다 노인네들뿐이지 않는가. 여기에 뭘 바랄 게 있어. 그래도 이 볼 거 없는 섬을 사겠다는 데가 나타났는데 망설일 이유가 뭔가? 그것도 시세보다 세 배나 더 쳐준다는데 이 좋은 기회를 그냥 버릴 셈인가? 자네는 아직 창창한 나이인데 이런 섬 구석에서 뭘 하려고?”

“제가 뭘 하든 그건 알아서 할 겁니다. 제 걱정은 하지 마세요.”

규철이 노골적으로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며 짜증나는 투로 말했다.

“어허, 참.”

대체 이 황소고집을 어떻게 꺾어야하나. 이장은 갑갑한 마음에 아랫입술을 깨물며 끙 신음을 내뱉었다.

“이장님, 여긴 이 영락도는 말이죠. 저희 집안이 5대에 걸쳐 살아온 땅입니다. 부모님, 조부모님 묘도 이곳에 있고요. 전 죽는 날까지 여기서 지내다가 뼈를 묻으렵니다. 저는 이 섬이 좋아요.”

“아니, 자네처럼 공부도 많이 하고 똑똑한 친구가 대체 이런 조그만 섬에서 왜 이러고 있는 거야. 내가 다 답답하네. 다시 변호사 사무실도 내고, 보란 듯이 재기해야지. 그게 정말 효도 아니겠나?”

“저는 그 바닥에 다시 안 돌아갑니다.”

규철이 딱 잘라 말했다.

“거 참. 자네, 정말 그렇게 안 봤는데 이제 보니 사람이 참 이기적이네. 어찌 자네 생각만 하는 거지?”

“이기적이라고요? 제가요?”

“그럼 이기적이지 말고. 이보라고. 그 양반들은 이 섬을 통째로 사고 싶어 하는데 자네가 이리 버티면 다 물거품이 되잖은가. 자네 고집 때문에 다른 사람들까지 좋은 기회를 놓치게 되는데도 맘에 걸리지 않나? 우리처럼 다 늙어빠진 노인네들이 그 얼마 안 남지도 않은 여생 좀 편히 살자는 건데 그게 그리 못마땅한가?”

기어이 이장이 역정을 냈다.

“그럼 저는 빼고 계약하면 되잖아요.”

“어허, 이 친구. 방금 내가 한 말은 못 들었어? 그 사람들은 이 섬을 다 사겠다고 하잖아. 게다가 자네 집안 땅이 가장 넓은데 자네가 안 팔면 어쩌자는 건가. 그냥 똥물을 끼얹겠다는 소리지.”

“그러니까 저는 그것도 이해가 안 가요.”

규철이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뭐가?”

“이장님 말씀처럼 이 섬에 뭐 볼 거 있다고 여길 통째로 산답니까? 부동산 가치가 있는 것도 아니고. 게다가 제가 알아보니 그 인간들 외국계 제약회사 대리인이던데 무슨 꿍꿍이가 있는 거 같지 않나요?”

“아니 이 친구야. 그게 무슨 상관이가. 우리는 돈 받고 팔면 그만이지. 걔들이 여기서 고스톱을 치든, 국을 끓여먹든 우리가 상관할 바가 아니지. 이 썩어빠진 땅에서 뭘 하든 그게 그리 대수인가?”

이장이 답답하다는 듯 혀를 찼다.

“하아, 그래서 계속 고집을 피우겠다는 건가? 오늘이 기한인데 정말 이럴 셈이야. 자네 한 사람만 마음을 바꾸면 모두가 행복해지는데, 계속 그렇게 혼자서만 모르쇠로 있을 건가? 규철이, 자네 정말 매정한 사람이었네그려.”

“네, 저는 모르겠습니다. 어차피 자기 인생 각자 알아서 살아가는 겁니다. 저는 그냥 내버려두세요. 다른 분들이 사인을 하든 말든 제가 알 바 아닙니다. 괜히 제 핑계 대지 마시고요. 정 그러면 이장님이 나서서 그 사람들을 잘 구워삶아보세요. 정말 이 땅이 필요하면 통째로 아니어도 절반만 사들여도 되지 않겠습니까?”

규철이 단호한 어조로 말했다.

이장은 입울 꾹 다물고 사나운 눈초리로 규철을 쏘아봤다. 규철도 물러서지 않고 꼿꼿이 서서 이장을 노려봤다.

“정말 고집불통이군.”

이장이 혀를 차며 중얼거렸다.

규철이 흘끗 시계를 봤다.

“죄송하지만 더 하실 말씀 없으면 여기까지 하죠. 서울에서 조카가 오기로 해서, 뭍으로 마중 나가야합니다.”

“자네, 정말······.”

이장이 뭔가 대꾸하려다가 입을 다물었다. 더 대화를 나눠봤자 규철의 고집을 꺾을 수 없다고 여긴 것이다. 그저 무심히 규철을 쳐다보기만 했다. 규철은 애써 이장의 시선을 무시하고 마루에서 내려와 운동화를 신었다.

“배를 띄우려고?”

“네. 조카를 데리고 와야 합니다.”

규철이 귀찮다는 듯 건성으로 대답하며 운동화 끈을 묶었다.

“바람이 심상치 않던데? 일기 예보에서도 태풍이 온다고 하더만.”

“예, 저도 일기예보 봤습니다. 아직은 괜찮아요.”

이장이 고개를 들어 하늘을 쳐다봤다.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하늘이었다. 태풍은커녕 비 한 방울 내릴 것 같지 않았다.

“그리고 그 문제는 이제 거론하지 않는 걸로 하죠. 그럼 살펴가세요.”

규철은 고개를 꾸뻑 숙이고는 성큼성큼 걸어갔다.

이장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규철이 지나갈 수 있도록 길을 비켜주었다. 이윽고 규철의 모습이 시야에서 사라지자 무거운 표정을 지으며 시선을 규철의 안방으로 돌렸다. 뭔가 망설이는 눈빛이었다.

“그래, 이게 다 같이 잘 되자는 짓이니까 나중엔 나한테 고맙다고 할 거야. 지나고 나면 자네도 날 이해하게 될 거야.”

이장은 결연한 표정을 지으며 신도 벗지 않고 마루로 올라갔다. 그러고는 주변을 흘끗 살피더니 방으로 들어갔다.



“야, 섬 이름이 뭐라고 했지?”

“응? 뭐라고?”

앞좌석을 뚫어져라 쳐다보던 기영은 옆에서 승민이 말을 붙이자 잘 못 들었다는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돌렸다.

“섬 이름.”

“아아. 영락도(永樂島)야. 왜?”

“얼마나 먼가 검색해보려고.”

“근흥면 안흔항에서 배를 타고 들어가서 다시 가의도란 섬에서 한 번 더 갈아타야해. 거기는 정기 노선이 없어. 아버지 말로는 몇 년 전까지는 있었다고 하더라. 나도 어릴 적에 몇 번 가보고 오랜만에 가는 거야.”

“그래? 진짜 겁나 머나보다.”

“응, 그래서 삼촌이 배를 가지고 마중 나온댔어.”

“배 멀미 심하려나? 나, 태어나서 배는 처음 타보는데.”

승민이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글쎄다. 하는 사람도 있고, 안 하는 사람도 있고.”

기영이 어깨를 으쓱였다.

“자식, 참 무성의하게 대답하네. 베프의 근심을 덜어줄 생각도 안 하고. 근데 섬에 너희 삼촌 혼자 산다고 했나? 다른 가족은 없고? 숙모나 사촌은?”

“삼촌, 섬으로 돌아간 지 몇 년 안 돼. 이제 한 이 년 되어가나. 숙모하곤 아마 별거중일 거야. 숙모는 로펌에서 변호사로 있어. 원래 아이는 없었고. 아, 삼촌도 몇 년 전까지는 로펌 대표였어.”

“레알? 로펌 대표? 와, 쩌는데? 근데 왜 섬에 계시냐.”

“자세한 건 나도 모르겠다. 뭐, 어른들만의 사정이 있겠지. 사실 아버지가 이번 여행 허락한 이유 중 하나가 나보고 가서 삼촌 좀 설득하라는 것도 있어. 이제 그만 서울로 돌아오라고 얘기 좀 해보래. 내가 말하면 들을지도 모른다고. 삼촌, 아버지하곤 사이가 안 좋아도 나하곤 예전부터 잘 통했거든.”

“뭔가 중대한 사명을 띠고 가는 거구나.”

승민이 고개를 주억거리며 말했다.

“뭐, 사명씩이나.”

기영은 중얼거리며 다시 앞좌석을 쏘아봤다.

앞좌석에는 화영과 석균이 앉았다. 화영이 석균을 배려해서 좌석배치를 그렇게 한 것이다.

기영은 그게 못마땅했다.

석균은 학교 안에서나 학교 밖에서나 따돌림을 당하는 아이다.

말수 적고 분위기도 어딘가 음침하고, 만약에 화영이 감싸주지 않았다면 진작 ‘빵셔틀’로 전락했을 것이다.

처음에는 화영이 석균을 너무 챙겨서 둘 사이를 오해했었다. 그러다가 화영과 소꿉친구나 다름없는 승민에게 이야기를 듣고 오해는 다소 풀렸지만 여전히 불만은 남아있다.

승민에게 들은 바로는 두 사람의 엄마들이 중학교 동창이란다. 그것도 둘도 없는 단짝 친구.

대학을 졸업하고 서로 먹고 사느라 바빠 한동안 연락이 끊겼다가 화영이 고등학교 입학식을 하던 날 우연히 재회했고 그때부터 다시 각별한 사이가 된 것이다.

심지어 집도 일부러 같은 아파트를 분양받아서 한 동에서 위아래 이웃으로 살고 있다.

화영이 석균을 챙기는 것도 석균의 엄마가 특별히 당부해서다. 게다가 화영은 천성적으로 오지랖도 넓고 남 일에 참견하길 좋아하는 성격이라 석균의 엄마가 부탁을 하지 않았더라도 지금처럼은 아니겠지만 많이 챙겨줬을 것이다. 빤히 알고 있지만 그래도 기분이 나쁜 건 나쁜 거다. 여자 친구가 자기 아닌 다른 애를 세심하게 챙기는데 좋아할 남자가 몇이나 있을까.

“아까부터 뭘 그렇게 쳐다봐?”

승민이 물었다.

“아냐, 아무것도.”

기영은 괜히 놀림거리가 되기 싫어 시치미를 뗐다. 하지만 순순히 물러날 승민이 아니다. 더욱이 승민은 눈치도 빠르다. 흘끗 기영의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리더니 뭔지 알았다는 듯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자식, 신경 쓰이냐?”

“뭐가?”

기영이 퉁명스럽게 대꾸했다.

“뭐긴. 석균이 땜 아냐? 딱 봐도 알겠구만.”

“아냐, 그런 거.”

“자식, 아니기는. 야, 야. 얼굴에 다 써 있어, 인마. 질투의 화신, 박기영. 속 좀 타나본데? 크크크.”

승민이 짓궂게 웃었다.

“그냥 이럴 때는 모른 척 해주는 게 진정한 친구다.”

기영이 불만 섞인 어투로 말했다.

“오냐. 알았다. 그런데 솔직히 신경 쓰이긴 하겠네. 나라도 그럴 거 같아. 내가 그 마음 이해한다.”

승민은 기영의 어깨를 토닥이며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입가엔 장난스러운 미소가 걸려있었다.

“그만하래도?”

기영이 잇새로 내뱉었다.

승민이 어깨를 으쓱였다.

“아, 근데 이 자식이 정말······.”

“어?”

뭘 봤는지, 승민이 눈을 크게 떴다. 기영도 고개를 갸웃했다.

“뭔데?”

“너, 일기예보 봤었냐? 태풍 올라온대. 슈퍼태풍이라는데?”

“보긴 봤는데 경로는 아직 알 수 없다던데. 우리나라를 통과하지 않고 바로 중국으로 갈 수도 있다고 했고.”

“그래? 뭔가 좀 불안한데. 이 기사를 보면 태풍이 서해를 지나서 중국으로 상륙할 확률이 높다는데······.”

“아직 저 멀리 있으니까 두고 보면 알겠지.”

기영이 덤덤하게 말했다.

“아씨, 태풍 올라오면 배가 더 흔들리는 거 아냐? 열라 요동칠 거 아냐. 그럼 진짜 심하게 멀미할 거 같은데.”

“글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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