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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르바나
작품등록일 :
2012.09.24 12:55
최근연재일 :
2016.12.22 04:05
연재수 :
11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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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
추천수 :
136
글자수 :
42,755

작성
16.10.23 02:23
조회
3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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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글자
8쪽

여름방학 (4)

DUMMY

이장은 자꾸만 엉덩이를 들썩거렸다. 기분이 너무 좋아서 평상에 가만히 앉아있을 수가 없었다.

“이로써 영락도의 모든 토지를 매입할 수 있게 되어서 저희도 무척 기쁩니다. 다행히 기한 안에 마무리를 지었네요.”

마주 앉은 젊은 남자가 흡족하게 웃으며 양도계약서를 가방에 챙겼다. 머리를 갈색으로 물들이고, 럭비 선수처럼 건장한 체구에 꽉 조이는 양복을 걸치고 있었다. 거기에 은테 안경을 쓰고 있어서 눈매가 날카로워 보였다. 이 남자가 바로 카두세우스 그룹에서 나온 브라이언 리였다. 그 옆에는 상대적으로 마르고 키가 조금 더 큰 남자가 서 있었다. 브라이언의 파트너이자 부하직원인 대니얼 킴이었다. 선글라스를 쓰고 있어 눈을 볼 수 없었지만 그도 웃고 있는 게 분명했다.

“그럼 대금은 언제쯤······.”

이장이 넌지시 물었다. 풍기는 이미지가 남달라서 그런 것인지 아니면 돈을 받아야하는 입장이라 그런지 이 젊은 남자를 상대할 때마다 까닭 없이 조심스러웠다.

“오래 끌 필요가 없죠. 지금 바로 송금해드리겠습니다.”

브라이언이 그렇게 말하고는 흘끗 뒤쪽의 대니얼을 쳐다봤다.

대니얼이 아이패드를 꺼내더니 전용계좌를 열어 이장이 보는 앞에서 주민들의 개인 계좌로 대금을 이체했다. 그걸 지켜보는 이장의 입이 쩍 벌어졌다. 수백억이 넘는 거금이 송금되는 데까지 불과 몇 초밖에 걸리지 않았다.

“방금 이체를 완료했습니다, 어르신.”

브라이언이 정중하게 말했다. 재미교포라고 하지만 전혀 어색한 데가 없는 완벽한 한국말을 구사했다.

“아이코, 이렇게 빨리? 허허, 이런 시원시원한 성격이라니, 참 좋네, 좋아. 으응, 정말 좋구먼그래.”

이장은 너무 기뻐서 금방이라도 입이 찢어질 것만 같았다. 십년 묵은 체증이 단번에 내려가는 기분이었다.

“그런데 지난번에 한 분이 마지막까지 고집을 피워서 애를 먹은 걸로 기억하는데 어떻게 해결하신 겁니까?”

브라이언이 물었다. 안경 너머로 보이는 눈빛이 유난히 날카롭게 느껴졌다. 이장은 정곡에 찔린 사람처럼 당황해서 낮게 헛기침을 했다.

“아, 그건 말입니다. 그게 그러니까······.”

이장은 난감해졌다.

브라이언이 언급한 사람은 바로 규철이었다. 매매 계약을 두 달 가까이 끌었던 이유가 규철이 완강하게 반대했기 때문이라는 걸, 브라이언도 잘 알고 있었다. 사람이 하루아침에 생각을 바꾸는 일은 흔치 않다. 브라이언으로서는 당연히 의혹을 제기하고도 남았다. 계약에 조금이라도 문제가 생긴다면 그도 달가워하지 않으리라.

‘이걸 어쩐다.’

이장은 규철이 집을 비운 사이에 몰래 도장을 훔쳐와 계약서에 날인했다. 만약에 그 사실을 브라이언이 알기라도 한다면 모든 게 물거품이 될지도 모른다. 이장은 생각이 거기에 미치자 아찔해져서 안절부절못했다.

“뭐, 상관없습니다. 그런 디테일한 부분까지 제가 알 필요는 없죠. 저희야 기한을 맞출 수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만족합니다. 그리고 원래 돈 싫어하는 사람은 없잖아요. 그렇죠? 이장님.”

브라이언이 이장의 눈빛을 살피며 교활하게 웃었다.

이장도 마음이 놓여 허허, 하고 어색하게 웃어보였다.

“그럼 이주는 다음 달 말까지 마칠 수 있을까요? 그때부턴 저희도 임상실험에 들어가야 해서 말이죠.”

브라이언이 물었다.

“아, 물론입니다.”

“어떻게 이사 갈 곳은 마련하셨습니까, 어르신?”

“이제부터 구해봐야지. 돈이 생겼는데 까짓 거처쯤이야 금방 마련하지 않겠습니까. 요새 돈이면 다 되잖아요.”

이장은 그렇게 말하며 껄껄 웃었다.

“모쪼록 저희가 드린 돈으로 새출발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이장님도, 그리고 이 섬 주민 여러분 모두······.”

“하하, 다들 좋아할 겁니다.”

“그거 참 다행입니다. 아, 그리고 말이죠.”

브라이언이 잠시 말을 끊고 안경을 벗어 렌즈를 닦았다. 안경을 벗자 안 그래도 사나운 눈매가 더욱 매섭게 느껴졌다.

“이번에 저희 회사에서 어르신들에게 좋은 신약이 하나 나왔습니다. 아직 시판을 하지 않는 비매품이에요. 기존의 것과는 차원이 다릅니다. 효능도 이미 검증되었고요. 비아그라보다 훨씬 좋습니다. 게다가 부작용도 전혀 없고요.”

“오호, 그런 약이 있어요? 정말 좋은 약인가 봅니다그려.”

이장은 비아그라보다 효능이 좋다는 말에 귀가 솔깃해진 모양이다. 노골적으로 호기심을 보였다.

“네, 회사 차원에서 강력히 밀고 있는 신약이죠. 어떻습니까? 이장님이 힘 써주셔서 계약도 순조롭게 마쳤는데 그 답례로 약소하지만 신약을 좀 드리고 싶습니다만. 물론 이 섬의 모든 분들에게 골고루 나눠드릴 생각입니다.”

브라이언이 다시 안경을 고쳐 쓰고 이장을 지그시 쳐다봤다.

“신약을요? 공짜로요?”

이장이 눈을 휘둥그레 뜨고 브라이언을 쳐다봤다.

“물론이죠. 대신에 홍보 좀 부탁드리겠습니다.”

브라이언은 미소를 지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이 섬 사람들 모두에게 말입니까?”

“네, 한분도 빠짐없이 전부요. 사실 이미 약은 충분히 챙겨왔습니다.”

뒤에서 망부석처럼 서 있던 대니얼이 그렇다는 듯 말없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허어, 이런 고마을 데가 있나.”

이장이 탄복했다는 듯 무릎을 쳤다.

“그럼 제가 뭘 하면 됩니까?”

“저희가 일일이 찾아가서 투여하면 시간이 꽤 걸릴 거 같으니까 다소 성가시겠지만 마을 분들을 한곳에 모아주실 수 있겠습니까?”

브라이언이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그거야 어렵지 않죠. 방송으로 다들 마을 회관으로 모이라고 하면 됩니까. 요샌 소일거리가 없어서 다들 집에 있을 테니 모이는 데 오래 걸리지도 않아요. 당장 방송하겠습니다. 마을회관으로 모이라고.”

이장은 신이 나서 어깨를 들썩이며 평상을 내려갔다.

“저기, 이장님.”

브라이언이 방송을 하려고 방으로 들어가는 이장을 불러 세웠다. 이장은 걸음을 멈추고 뒤돌아봤다.

“예에?”

“조금 시간이 걸리더라도 한분도 빠짐없이 참석하라고 해주세요. 아시겠죠? 이 섬의 모든 주민들에게 혜택을 드리고 싶으니까요. 단 한 사람도 소외되는 일이 없게 해주세요. 꼭입니다, 이장님.”

이장이 씩 웃었다.

“젊은 분이 마음씀씀이도 참 좋으시구먼. 알겠습니다. 그렇게 하죠. 한 사람도 빠지지 말라고.”

브라이언은 다시 한 번 당부하고는 고개를 돌려 대니얼을 쳐다보더니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말수가 적은 대니얼도 고개를 끄덕거리며 조용히 웃었다.

“시간이 얼마나 남았지?”

브라이언이 물었다.

“아직 넉넉해. 입금된 수표는 조금 후에 본사에서 도난신고를 할 거고.”

대니얼이 키득거리며 대꾸했다.

“그래? 아직까진 순조로운 거 같군. 돈독이 잔뜩 오른 영감이라 상대하는 게 어렵지 않아 다행이야.”

“그런데 그 변호사 양반은 절대로 고집을 꺾지 않을 거 같더니만 이렇게 순순히 생각을 바꾸다니 의외네.”

“이봐, 대니. 세상에 돈 앞에선 장사가 없는 법이야.”

“하긴 그렇지.”

대니얼이 동의한다는 듯 어깨를 으쓱거렸다.

“이거 일이 너무 쉽게 풀리니까 오히려 맥이 빠질 지경이야. 이 섬에 사는 주민이 몇 명이라고 했었지?”

“지난번에 확인한 바로는 백 명이 조금 안 되는 거 같던데?”

“그래? 그 정도면 ‘씨앗’이 부족하진 않겠군그래.”

브라이언이 다행이라는 듯 고개를 끄덕거렸다.

“아마 차고 넘칠 거야. 유실될 경우까지 상정해서 가져왔으니까. 거기다가 구 이사와 린다가 주도하고 있는 유닛A도 오늘밤부터 착수에 들어갈걸.”

“아아, 그렇지. 그쪽은 샘플이 뭐였더라? 타입 감마였나?”

“아니, 입실론. 그리고 그쪽은······.”

그때 이장이 확성기를 켜고 방송을 시작하기 시작했다.

“에에, 다들 식사들 하셨습니까? 주민 여러분. 나 이장이외다. 계약은 잘 마쳤습니다. 그리고 여러분께 한 가지 기쁜 소식을 전합니다. 에, 그러니까 지금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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