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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르바나
작품등록일 :
2012.09.24 12:55
최근연재일 :
2016.12.22 04:05
연재수 :
11 회
조회수 :
20,194
추천수 :
136
글자수 :
42,755

작성
16.10.23 00:06
조회
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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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글자
8쪽

여름방학 (3)

DUMMY

선착장까지 내려온 규철은 기둥에 묶여있는 밧줄을 풀고 배로 올라갔다. 섬에 돌아왔을 때 먼 친척뻘인 황 씨에게 구입한 어선이었다.

황 씨는 자식들을 모두 뭍으로 시집장가 보내고 아내랑 둘이서만 살았는데 몇 해 전에 아내가 병으로 세상을 떠나자 섬에 대한 미련을 버렸다.

때마침 그 무렵에 귀향한 규철에게 재산을 정리하는 데 도움을 받았다. 답례로 황 씨는 어선을 거의 헐값에 넘겼다.

규철은 이따금 어선을 끌고 바다로 나가 낚시를 즐겼는데 몇 달 지나지 않아서 흥미를 잃어버렸다. 덕분에 어선은 한동안 방치되어있었지만 아직 물길을 다니는 덴 크게 지장이 없었다.

유량계부터 확인하고 나서 배의 상태를 점검하고 있는데 수평선 너머로 거뭇한 실루엣이 시야에 들어왔다.

중형화물선이었다.

눈을 게슴츠레하게 뜨고 화물선을 확인한 규철은 미간을 찡그리며 입술을 깨물었다.

달갑지 않은 손님의 등장이었다.

이장을 비롯한 이 섬의 순진한 노인네들을 꼬드기고 있는 자들이다.

처음에는 부동산 브로커가, 나중에는 그들을 앞세운 양복쟁이들이 나타났다.

이름이 대니얼 킴과 브라이언 리라고 했었나.

둘 다 30대 초반으로 꽤 젊은 사내들이었다.

그들이 내민 금색으로 도장한 명함에는 헤르메스의 지팡이로 알려진 로고가 박혀있고, 영문으로 카두세우스 그룹이라고 새겨져 있었다.

자기들을 재미교포라고 소개한 그들은 말쑥한 양복차림 때문인지 제약회사 직원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월스트리트에서 일하는 펀드매니저처럼 보였다.

그들 말로는 카두세우스 그룹은 다국적 기업이자 제약회사이며 불치병을 퇴치하기 위한 신약을 개발 중인데 임상실험에 적합한 환경을 지닌 장소를 물색하다가 이 섬이 딱 제격이라 매입에 나섰다는 것이다.

하지만 규철은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지 않았다.

구글링을 통해 알아본 바로는 그들이 제약회사인 것은 맞지만 한편으로 군수산업에도 깊이 개입하고 있었다.

규철은 의아하게 생각했다.

다국적 기업을 표방하는 그들이 굳이 이런 동아시아의 작은 나라, 그것도 서해 남단의 이런 볼품없는 섬에서 임상실험을 해야 하는 이유를 납득할 수 없었다.

인프라도 턱없이 부족하고 외부에서 보급을 받기에도 불편하기 짝이 없는 환경이다.

게다가 불치병은 물론이고 어떤 풍토병을 대조해 봐도 이 섬의 환경에 특정할만한 것을 찾지 못했다. 모든 점에서 의문투성이다.

규철은 직감했다. 그들이 뭔가 숨기고 있다는 것을.

잠시 생각에 잠긴 사이에 실루엣으로만 보이던 화물선의 윤곽이 또렷해졌다.

규철은 멍하니 화물선을 응시하다가 해야 할 일을 깨닫고 황급히 조타실로 들어갔다. 시간에 맞춰 가의도로 가려면 서둘러야했다.

“기영이 녀석 얼마나 컸을까. 이제 키가 나만 하겠지.”

규철은 중얼거리며 엔진에 시동을 걸었다.



“우에에웩.”

벌써 몇 번째인지 모른다. 승민은 아침에 먹은 것도 모자라 전날 점심에 먹은 햄버거까지 모두 게워내고 있었다. 옆에서 기영이 안쓰러운 눈빛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괜찮냐?”

기영이 티슈를 건네며 물었다.

승민은 난간을 붙들고 쪼그려 앉은 자세로 고개만 들어 기영을 쳐다봤다.

“이게 괜찮아 보이냐?”

말투가 퉁명스러웠다.

“승질은. 멀미 하는 게 내 탓이냐.”

“아, 몰라. 죽을 거 같아.”

승민은 티슈로 입가를 닦으며 투덜거렸다.

“황승민, 다 죽어가네?”

화영이 다가왔다.

“야, 너는 지금 웃음이 나와?”

“뭐야. 나는 걱정돼서 온 건데, 왜 성을 내.”

단 1퍼센트도 진정성이 느껴지지 않는 말투였다.

하이고 퍽이나. 뒤에서 기영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게 지금 걱정하는 얼굴이야? 아주 고소해 죽겠다는 얼굴이지.”

승민이 눈을 흘기자, 화영은 혀를 살짝 내밀며 어깨를 으쓱거렸다.

“헤헤, 들켰나.”

기영이 적당히 하라는 듯 화영의 팔을 툭 건드렸다.

“그나저나 오화영.”

“응?”

“이제 얘기 좀 해봐.”

“무슨 얘기?”

화영이 순진무구한 눈빛으로 남자 친구를 쳐다봤다.

“애들 말이야. 내가 혼자 가기 그러면 한두 명 정도만 부르라고 했지, 언제 저렇게 떼거지로 데려오랬어?”

기영이 허리에 손을 얹고 화영을 노려봤다.

화영은 뭔가 찔리는지 슬그머니 시선을 피하며 딴청을 부렸다.

“오화영. 내 얼굴 똑바로 쳐다보고 이야기해.”

“그냥 나는······.”

“어. 너는 뭐?”

승민이 엉덩이를 갑판 바닥에 털썩 붙이고 주저앉더니 두 손으로 턱을 괴고 흥미진진하다는 얼굴로 두 사람을 쳐다봤다.

“처음에는 석균이랑 시아만 부를 생각이었어.”

“그런데?”

기영이 엄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그런데 시아가 반장을 부르더라고.”

화영의 목소리가 점점 기어들어갔다.

“그래서?”

“근데 어떻게 알았는지 시아가 간다니까 장석이가 따라온 거고······.”

화영이 슬쩍 말끝을 흐렸다.

“알겠다. 대승이는 장석이 따라 온 거네?”

승민이 끼어들었다.

화영이 그렇게 된 거라며 고개를 끄덕였다.

“후우. 그럼 나한테 미리 얘기라도 해줬어야지.”

기영이 한숨을 쉬었다.

“미안. 나도 이렇게 될 줄 몰랐어. 갑자기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난 거야. 정말 미안해. 화 많이 났어? 내가 이렇게 빌어도 안 될까, 응?”

화영은 두 손을 싹싹 비비며 애교를 부렸다.

“아, 나도 모르겠다.”

기영은 졌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남자 친구 눈치를 살피던 화영은 언제 그랬냐는 듯 환하게 웃었다.

“이제 화 풀린 거지? 그치?”

화영이 눈웃음을 지으며 남자 친구에게 매달렸다. 이렇게까지 나오면 화를 낼 수 없다. 기영은 애써 고개를 돌리며 시큰둥하게 내뱉었다.

“아, 몰라.”

“빨리 말해. 이제 괜찮은 거 맞지?”

화영은 포기하지 않고 기영의 팔을 끌어안으며 대답을 종용했다. 결국 백기를 들 수밖에 없었다.

“그래, 그래.”

기영이 마지못해 끄덕거렸다.

“히힛.”

옆에서 지켜보던 승민은 못 말린다는 듯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흔들었다. 그걸 놓치지 않고 화영이 표정을 바꾸고 싸늘한 눈초리로 소꿉친구를 쏘아봤다.

“뭐야, 황승민. 무슨 불만이라도 있어?”

“내가? 설마. 전혀 없습니다요.”

승민은 황급히 손사래를 치며 굽실거렸다.

“그래? 그럼 다행이고.”

화영이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고는 고개를 돌려 다시 남자 친구를 쳐다봤다.

“근데 얼마나 더 가야해? 승민이도 승민이지만 저쪽에서 반장이랑 장석이도 계속 토하고 있어. 걔들도 배는 처음 타나봐. 시아는 의외로 잘 버티고. 대승이는 처음에만 토하더니 지금은 괜찮대. 석균이는 아주 멀쩡하고.”

“가의도에서 삼촌을 기다려야해. 따로 영락도까지 가는 배편은 없어.”

“그렇구나. 삼촌은 시간 맞춰 오시려나?”

“뭐, 누구처럼 약속시간에 늦으시겠어.”

뒤에서 승민이 지나가는 투로 말했다. 그러자 화영이 고개를 홱 돌리며 승민을 사납게 노려봤다.

“야, 황승민.”

“이크. 여왕님 화나셨다.”

승민이 장난스럽게 웃더니 잽싸게 일어나 고물로 달아났다. 화영은 분하다는 듯 씩씩거리다가 갑자기 양궁장비를 꺼냈다.

“야, 뭐하려고?”

기영이 화들짝 놀라며 화영을 말렸다.

“저 자식, 내가 쏴버릴 거야.”

그렇게 말하면서 정말로 가방에서 양궁을 꺼내들었다. 농담이 아닌지 화살까지 시위에 매겼다. 양궁부 에이스답게 그야말로 순식간이었다. 기영이 어떻게든 말려보려고 했지만 막무가내였다.

“야야, 오화영.”

화영은 진심인 것 같았다.

“야! 황승민!”

미처 말릴 새도 없이 화영이 승민을 겨누며 버럭 소리를 질렀다.

장난스럽게 고물 쪽으로 뛰어가던 승민은 흘끗 돌아봤다가 무시무시한 광경을 발견하고는 그대로 얼어붙더니 엉덩방아를 찧었다.

“히익! 야, 화영아! 내가 잘못했어. 살려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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