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콤니노스 님의 서재입니다.

왕관

웹소설 > 자유연재 > 판타지, 전쟁·밀리터리

콤니노스
작품등록일 :
2013.09.20 23:24
최근연재일 :
2013.11.24 14:44
연재수 :
15 회
조회수 :
5,508
추천수 :
112
글자수 :
74,335

작성
13.11.05 18:48
조회
361
추천
8
글자
10쪽

북변경의 야노슈 (9)

DUMMY

"궁금한게 있는데,"


루푸스는 허벅지에 힘을 줘가며 말을 통제했다. 그는 곧 앞서가던 알쿠르를 따라잡아 그와 나란히 가게 되었다. 완전무장한 흑인 전사는 말해보라는 듯한 표정으로 루푸스를 돌아보았다.


"군대에 종군자(camp follower)가 없을 수도 있는건가?"


종군자란 군대를 따라다니는 민간인들을 의미한다. 모든 군대에는 대장장이, 상인, 잡역부, 창녀 같은 직업인들은 물론이고 병사들의 부인과(이런 '전장 부인'들은 전황에 따라 남편은 물론이고 속한 진영도 휙휙 바뀌는 경우가 다반사다.) 아이들도 포함되는 거대한 민간인 무리가 따라다닌다. 이들은 병사들을 상대로 장사를 하고 전투가 끝난 전장을 약탈하는 등의 방법으로 생계를 이어가는데 그 수가 군대 자체와 맞먹거나 더 큰 경우가 많았다. 루푸스가 읽어 본 병법서들은 한결같이 이런 종군자들을 언급하고 있었다. 레분툼 민병대를 제외하면 루푸스가 태어나서 처음 본 군대인 야노슈군의 진영에서 종군자들이 전혀 보이지 않는 것이 당황스러울 수 밖에 없었다. 더 당황스러운건 알쿠르가 그 점을 전혀 이상하지 않다는 듯한 태도로 언급했다는 것이다. 알쿠르가 만사에 무덤덤한거야 하루 이틀 일은 아니었지만.


"옛날, 그러니까 아크티우스 황제나 불칸 전쟁 시절의 군단에는 종군자가 없었다고 말은합니다. 그 시절엔 그런 개념이 없었던건지, 금지하는 법이 있었던건지는 저도 모르겠습니다만. 후자였다면 법과 현실 사이의 괴리는 어느 정도였을지도 모르겠고."


알쿠르가 어깨를 으쓱하며 언급한 이름과 사건들은 거의 2세기 전의 것들이었다. 알쿠르는 알고 있는 지식이나, 사용하는 어휘 모두 노예 검투사 출신의 것이라곤 믿기 어려울 정도로, 그의 몇 안되는 친우들 중에는 그가 노예가 되기 전에 뭘하고 살았는지 궁금해하지 않는 자가 없었으나 알쿠르는 그런 질문만 나오면 굳게 입을 다물 뿐이었다. 루푸스가 도대체 그런건 어디서 들었냐고 묻지 않은 것은 그때문이었다.


"그런 옛날 얘기 말고 제 경험을 물으신다면, 예, 본 적이 없습니다. 하지만 불가능한 이야기 같진 않습니다. 종군자들이 따라오지 못할만큼 빠르게 행군했다던가, 군대가 가는 방향이 민간인들에겐 영 맘에 들지 않아서 종군자들이 스스로 떨어져나갔다던가하는 경우도 있겠죠."


알쿠르는 고개를 돌려 야노슈군의 진영을 바라보았다. 수레로 막아두지 않은 부분, 즉 입구에 서 있는 경비들이 이쪽을 향해 손가락질을 하며 떠드는 것이 보였다.


"둘 다 그럴듯하죠."


루푸스는 알쿠르의 어조에서 묘한 분위기를 느꼈다. 루푸스는 그걸 알아차리지 못할 정도로 바보는 아니었다.


"둘 다 아니라고 생각하지?"


알쿠르는 다시 루푸스를 돌아봤다. 두꺼운 입술이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말려올라가 있었다.


"그런 이유들이라면 종군자가 한 명도 안 남아 있을리는 없지요. 아마 떨어냈을겁니다."


그게 가능한 것인가, 무슨 수를 써서 그렇게 한건가, 그런 행동을 한 이유는 무엇일까 같은 의문들이 동시에 떠올랐지만 그것들을 지금 입에 담기는 어려웠다. 진영에 도착했기 때문이다. 루푸스 일행의 접근을 바라보고 있던 두 병사 중 하나가 걸어 나왔다. 병사가 익숙한 자세로 어깨를 으쓱하자, 등에 매고 있던 방패가 마법 같이 돌아나와 왼손에 착 쥐어졌다. 수십 수백번 해본 동작임이 틀림 없었다. 방패의 위쪽 반에는 붉은 빗금이 쳐진 검은 쌍두 독수리가 그려져 있었고, 그 밑에는 야노슈의 상징인 회색 늑대머리가 그려져 있었다. 오른손에는 병사 본인의 키보다 조금 더 큰 창을 들고 있었는데, 날이 나뭇잎 모양으로 넓은 것이 베는 용도로도 사용 가능해보였다. 보조 무기로는 자루가 짧은 손도끼를 오른쪽 허리에 차고 있었다. 전투에서는 물론이고 장작을 팬다던가 하는 일에도 쓸 수 있을 것 같아보였는데, 아마 그 이유 때문에 갖고 다니는 것이리라. 방어구로는 뻣뻣해보이는 가죽 흉갑과 뺨가리개와 작은 챙이 달린 투구가 전부로, 가죽 흉갑은 빛깔이나 모양새가 얼핏 봐도 경화 작업을 거친 것이 분명했다. 물론 없는 것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는 되니 갑옷이라고 입고 다니는 것이겠지만, 금속제 갑옷에 비하면 한없이 약한 물건이었다. 루푸스는 뒤에 따라오는 노새에 실린 플라비우스의 갑옷을 떠올렸다. 눈 앞의 병사 같은 자들이 그런 갑옷을 손에 넣으려면 죽은 자에게서 벗겨내는 것 말고는 방법이 전무할 것이었다. 아직 사람 한 번 죽여보지 못한 루푸스가 그 정도의 물건을 받은 것이다.


알쿠르와 루푸스는 고삐를 잡아 당겨 말을 멈춰세웠다. 그 앞을 막아선 병사는 창을 들어올려, 창대로 자신의 오른쪽 어깨를 툭툭 쳤다. 그냥 제멋대로 하는 행동인지, 싸울 의사가 없음의 표시인지는 가늠할 수 없었다. 투구 챙 밑으로 간신히 보이는 눈은 비웃음의 경계에 위태로울 정도로 다가선 웃음을 짓고 있었다. 무례한 눈빛이었다. 루푸스는 불쾌감을 느꼈으나 별 말은 하지 않았다. 어쨌든 용병은 예의범절로 이름난 존재들은 아니다.


"대장의 손님입니까?"


대답은 알쿠르가 했다.


"이 분은 플라비우스 가문의 루푸스 되신다. 스테파누스 네만치크 왕자님의 초청으로 왔다."


병사는 알쿠르의 말에 입을 비죽이더니, 뒤에 선 병사에게 손짓을 하며 물러났다. 뒤에 서서 상황을 관망하던 병사는 그 손짓을 보자마자 몸을 돌려 황급히 어디론가 달려가기 시작했다. 평복을 입고 지나가던 병사 하나가 그와 거의 부딪힐뻔했다. 그가 달려간 방향으로, 작은 천막들 위로 크게 솟은 대형 천막이 보였다. 그들의 도착을 사령부에 보고하려는 것이리라.


알쿠르는 루푸스에게 고개를 끄덕여보였다. 루푸스는 작게 한숨을 내쉬고, 허벅지에 살짝 힘을 줬다.


"가자."


채찍이나 박차가 없이도, 늙은 말은 그 정도만으로도 주인의 의도를 이해했다. 입구에서부터 사령부까지는 천막 간의 간격을 의도적으로 넓혀 길이 만들어져 있었다. 그 길을 걷고 있는데, 갑자기 오른쪽 앞에서 나무통 하나가 갑자기 굴러나왔다. 깜짝 놀란 루푸스와 알쿠르는 급히 말고삐를 잡아당겼다. 갑작스런 행동에 알쿠르의 말이 놀라 히힝거렸다. 곧 소년 하나가 느긋하게 걸어나왔다가, 자신이 굴려보낸 통이 길을 막았음을 깨닫고는 황급히 달려가 다시 통을 굴렸다. 통에는 가루 같은 것이 반쯤 차 있는 듯, 굴러가며 착착 소리가 났다. 인상을 잔뜩 찌푸린 알쿠르는 소년에게 폭언이라도 퍼부으려는 듯 입을 벌렸으나, 길에서 비켜난 소년이 잔뜩 겁먹은 표정으로 그를 쳐다보는 것을 보고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뭐하는거지?"


루푸스는 다시 출발하며 물었다.


"완전히 겁먹었더군요. 굳이 뭐라고 할 필요가 없어보였습니다."


물론 알쿠르는 익숙치 않은 사람들에겐 무섭게 보일테지만, 루푸스의 질문은 그것이 아니었다.


"아니, 나무통은 뭐하러 굴리고 있나 싶어서."


알쿠르는 코웃음을 쳤다. 루푸스가 굉장히 바보 같은 일을 하거나 멍청한 질문을 하면 나오는 반응이었는데, 근래 들어서는 갈수록 보기 드물어졌던 것이라 루푸스는 조금 당황했다.


"갑옷의 녹을 제거하는겁니다. 통에 갑옷을 넣고, 적당히 알이 굵은 모래를 반쯤 채운다음 뚜껑을 단단히 닫고 굴리죠. 꺼내서 모래를 털어내보면 새 물건처럼 반짝반짝해집니다. 갑옷을 오래 입으려면 꼭 해줘야 할 일 중 하나인데, 한번도 못 들어보셨습니까?"


루푸스는 얼굴이 화끈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는 그런 자질구레한 일들을 거의 알지 못했는데, 스스로 생각해보기에는 별로 자랑거리가 아니었다.


"뭐, 직접 할 일은 거의 없겠지만 앞으론 기억해두십시오."


알쿠르는 대수롭지 않다는 투로 말하고는, 다시 앞만 보며 가기 시작했다.


사령부 천막으로부터 대략 30m 정도 떨어진 지점부터는 뾰족하게 깎은 나무로 장애물을 만들어 통행을 제한하고 있었다. 그 곳에도 무장한 경비들이 서 있었는데, 그들은 아무 검문 없이 루푸스 일행을 통과시켜줬다. 그들이 들어선 장애물 안쪽 공간에는 남북으로 서로 마주보고 있는 큰 천막이 둘, 그 주변을 둘러싼 작은 천막이 열개 정도였다. 대략 30여개의 말뚝과 말구유가 늘어선 간이 마굿간 같은 것도 있었다. 지금은 일곱 마리의 말이 묶여 있었다. 큰 천막들의 사이에는 길고 굵은 장대가 박혀 있었고, 그 끝에는 거의 소형 천막으로 써도 될만큼 큰 깃발이 걸려 있었는데, 깃발에는 흰 배경에 회색 늑대머리가 그려져 있었다. 큰 천막들의 입구에는 창을 든 경비가 둘 씩 서 있었는데, 북쪽을 향해 세워진 천막에서만 사람들이 왔다갔다하는 윤곽이 보였다. 아마 그곳이 사령부일거라 짐작한 루푸스는 천막 앞에 깃발이 박혀있는 곳까지 말을 몰았다. 경비들의 나른한 눈빛이 그와 알쿠르의 뒤를 따랐다. 말들이 묶여있는 쪽에서 허름한 차림의 남자 셋이 뛰어왔다. 루푸스는 말에서 내리고, 아마 말구종일 그들에게 고삐를 넘겼다. 알쿠르도 말에서 내리며 말했다.


"생각해보니,"


"응?"


알쿠르는 자신의 고삐를 말구종에게 넘겼다.


"여기까지 오는 동안 아무도 마중을 나오지 않았군요."


루푸스는 인상이 구겨지는 것을 통제할 수 없었다. 노예도 아니고 안내자 하나 없이 스스로 오고-비록 성문까지 마중나간 것은 아니지만, 어쨌든 루푸스는 저택 문 밖에서 야노슈를 맞이했었다-, 또 그걸 지금까지 깨닫지도 못했다. 이중으로 멍청한 일이었다.


루푸스는 천막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경비들은 그를 제지하지 않았다. 황급히 뒤따르는 알쿠르의 갑옷이 철컹거리는 소리를 뒤로 하며, 그는 천막의 입구를 훽 열었다.


작가의말

나름 주저리주저리 쓰다가 4500자에서 적절한 분량이다 싶어서 끊어봤더니 회의 시작도 안했군요. 이 정도면 거의 본능 수준...느린 전개를 받아들이고 제 아이덴티티로 삼으렵니다. 대신 디테일이나 더 살려야지 ㄲㄲㄲㄲ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2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왕관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통합 공지 (13.11.09) 13.11.09 118 0 -
15 북변경의 야노슈 (13) 13.11.24 230 4 11쪽
14 북변경의 야노슈 (12) 13.11.23 197 4 11쪽
13 북변경의 야노슈 (11) 13.11.16 377 7 10쪽
12 북변경의 야노슈 (10) 13.11.09 218 5 13쪽
» 북변경의 야노슈 (9) +2 13.11.05 362 8 10쪽
10 북변경의 야노슈 (8) 13.11.03 194 6 12쪽
9 북변경의 야노슈 (7) 13.11.01 154 4 9쪽
8 북변경의 야노슈 (6) 13.10.17 383 6 12쪽
7 북변경의 야노슈 (5) +2 13.10.09 451 9 16쪽
6 북변경의 야노슈 (4) 13.10.06 318 7 10쪽
5 북변경의 야노슈 (3) 13.10.03 400 10 13쪽
4 북변경의 야노슈 (2) 13.10.03 369 7 9쪽
3 북변경의 야노슈 13.09.22 616 15 10쪽
2 프롤로그 2 13.09.21 514 9 11쪽
1 프롤로그 1 +2 13.09.20 656 11 8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