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콤니노스 님의 서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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콤니노스
작품등록일 :
2013.09.20 23:24
최근연재일 :
2013.11.24 1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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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10.06 1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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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쪽

북변경의 야노슈 (4)

DUMMY

야노슈의 작위가 작위이다보니 플라비우스는 그에게 상석을 내주려고 했지만, 야노슈가 격렬히 거부하는 바람에 상석은 플라비우스가 앉게 되었다. 대신 야노슈는 플라비우스의 오른쪽 자리에 앉았고, 그 맞은편에는 말로니우스 주교가 앉았다. 루푸스는 야노슈의 옆자리에 앉게 되었는데, 아까 소개된 순서를 감안해보면 자연스러운 배치였지만 어쨌든 부담스럽기 짝이 없는 자리였다.


플라비우스가 간단한 환영사를 읊자, 이어서 야노슈도 자리에서 일어나 답례사를 했다. 11년 전 그가 플라비우스를 떠났을 때와 지금 재회했을 때의 차이를 간단히 언급하며, 그가 원래부터 얼마나 위대한 사람이었는지를 칭송하며 지금 그가 이렇게 거대한 저택에서 연회를 베풀 수 있게 된 것은 신의 섭리임에 틀림 없다는 내용이었다. 그의 말을 들은 플라비우스와 말로니우스 모두 만족한 표정이었다. 이어서 말로니우스 주교가 -플라비우스의 불편한 묵인 속에- 그의 신에게 기도를 올리고, 연회를 축복하고, 축사를 마치고, 목을 가듬으며 무언가 한마디를 덧붙이려하는 순간 플라비우스가 음식을 내오라고 외쳤다. 그렇게, 참가자들의 열렬한 박수 소리와 함께 연회가 시작되었다.


이 날의 연회를 플라비우스가 '특별히 준비했다'라고 하기엔 조금 무리가 있을 것이었다. 물론 참석자의 수가 열셋 밖에 되지 않아 무슨 거대한 준비가 필요한 것은 아니었으나, 세상에는 도저히 하루만에 준비할 수 없는 음식들이 있게 마련이기 때문이었다. 야노슈의 용사들에겐 안타깝게도, 신선한 고기가 바로 그 범주에 들어간다. 다행히 창고에 약간 남아 있던 고기를 활용하여 버섯과 양파를 곁들이고 후추를 뿌려 구운 사슴 구이가 나왔지만, 그 외엔 햄과 소세지가 조금 나왔을 뿐 식탁 위에는 고기가 없었다. 사실 플라비우스가 특별히 준비한 것은 바로 식탁 그 자체였다. 제국식 연회에서는 빈객들이 특별히 만들어진 길고 푹신한 의자에 비스듬히 누운채로 음식을 먹는다. 식탁에 둘러 앉아 먹는 것은 평민들과 야만족들의 방식이었고, 여기서 말하는 야만족에는 산민들도 포함된다. 플라비우스는 그들이 익숙하지도 않은 자세로 먹다가 체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나름 신경을 써준 것이다. 그들이 배려에 그렇게 감사했는지는 알 길이 없긴 했지만. 불만이 터져나올 수도 있는 상황이었지만, 손님들 모두가 나름 체면을 아는 사람들이었는데다, 무엇보다 꿀술과 포도주만은 매우 훌륭했고 양도 푸짐했기에 누구도 불평하지 않았다.


연회는 그렇게 떠들썩한 분위기는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조용한 것도 아니었다. 야노슈는 엘게쿰 전투를 시작으로 자신이 겪은 온갖 전투와 기상천외한 경험담들을 늘어놓기 시작했는데, 가끔씩 엘러드나 마고 등이 끼어들어 당시 상황을 자신들의 관점에서 완전히-보통 야노슈에게 불리한 쪽으로- 재구성하고, 야노슈는 그것을 때로는 수용하고, 때로는 격렬히 부정하여 모두의 웃음을 유발했다. 모두가 부어라 마셔라하고 있었고, 노예들은 분주히 오가며 잔을 채웠다. 조용한 것은 루푸스 밖에 없었다.


루푸스는 은 잔에 담긴 포도주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아직 아이 취급을 받는 루푸스는 한번도 술을 마셔본 적이 없었다. 플라비우스는 술 문제에 관해선 엄격했고-그렇다고 다른 사안에서 엄격하지 않았다는 것은 아니다- 알쿠르는 전사는 술을 멀리하면 멀리할 수록 좋다는 주장만 반복할 뿐이었다. 루푸스 역시 그렇게 술이 마시고 싶다거나 한 것은 아니었긴 했지만. 어쨌든 그런식으로 오랫동안 금주를 해왔는데, 그것을 깨고 처음으로 술을 마시는 것이 별다른 축하도 없이 이렇게 스리슬쩍 넘어가는 것은 참 얄궂었다. 플라비우스는 루푸스의 음주에 대해서 난 그런것 모른다는 듯이 전혀 신경도 쓰지 않고 있었다. 노예들이 알아서 루푸스의 잔까지 채울리는 전혀 없으니 플라비우스의 사전 지시가 있었던게 뻔히 보이는데도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는 것이다. 거의 낯간지러운 수준의 연기다. 근래들어, 플라비우스도 좀 정직했으면 모두가 편할거라는 생각을 자주 하는 루푸스였다. 원망이나 반감 같은 것과는 전혀 무관한, 약간의 체념과 약간의 애정이 섞였으면서도 전체적으론 무덤덤한 평가다. 루푸스는 쓴웃음을 지으며 잔을 집어들고, 한번에 들이켰다. 뭐라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맛이었다.


"술에 파리라도 떠있었냐?"


야노슈의 질문이었다. 그는 분명히 방금전까지 아르타쉐스 계곡 야습에서 올라야 할 능선을 착각한-그래서 전장에 늦게 도착한 것은 물론이고 제때 도착했던 6군단을 궤멸 위기에 몰아넣었던- 사람이 누구였는지를 두고 엘러드와 옥신각신하고 있었는데, 언제 또 루푸스에게 관심을 돌렸는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어쩌면 처음부터 관심의 일부를 루푸스에게 할애하고 있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아니요. 술이 처음이라."


야노슈는 조금 놀란 눈치였다. 그는 손에 들고 있던 자신의 잔을 단번에 비우고는, 어깨 너머로 잔을 들어올리며 '포도주!'라고 소리쳤다. 다가온 노예가 잔을 채우자, 그는 노예에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고맙다."


노예 소녀는 당황해서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어찌해야할지 모르겠다는 듯 머리를 조아리고는 물러갔다. 당황한 것은 루푸스도 마찬가지였다. 노예에게 감사 인사라니. 무슨 관심이라도 있는걸까. 그의 다음 질문은 그런 오해를 심화시켰다.


"나이가 몇 살이지?"


루푸스는 그가 노예의 나이를 물은 것으로 착각했다. 침실에라도 데려가려고 저러는건가 하고 생각하며 인상을 찌푸리던 루푸스는 -플라비우스는 그런 행위를 아주 엄격하게 금지하고 있었다- 야노슈가 물은 것이 그의 나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열여덟입니다."


야노슈는 흐음 소리를 내며 입을 비쭉 내밀었다. 지금까지의 짧은 만남을 토대로 판단해봤을때, 그는 표정이 다양한 남자였다. 살아온 경력이나 지금의 위치 같은 것을 생각해보면 기이할 정도였다.


"늦은 편이구나. 그 나이까지 주님의 피 맛을 몰랐다니."


그는 루푸스의 얼굴을 보더니 웃음을 터뜨렸다. 표정이 어지간히도 얼떨떨했던 모양이었다.


"우리의 성자께서 한번 포도주를 당신의 피라고 말씀하신 적이 있거든. 제 말이 맞습니까, 주교님?"


"무론이요, 무론이요."


입에 음식을 가득 밀어넣은 채로 돌아온 대답이라 발음이 불분명했다. 말로니우스 주교는 수익의 대부분을 빈민 구호와 도시 유지에 헌사하고 있어서 말만 주교지 웬만한 도시 평민보다 곤궁하게 사는 것으로 유명했다. 그의 입장에선 간만에 먹는 제대로 된 음식일 것이었다.


야노슈는 잔을 내려놓고, 자신과 말로니우스 사이에 놓인 고기 접시를 집어들었다. 접시에는 먹기 좋은 크기로 썰린 사슴 고기와 양파 몇 덩이가 남아 있었는데, 그는 자신의 접시에 약간을 덜어놓고, 비어있는 루푸스의 접시에도 남은 고기의 거의 절반 가까이를 쏟아부었다. 당황한 루푸스가 손을 내저으며 거절하려 했지만, 야노슈는 고개만 저을 뿐이었다.


"랑골 사내라면 이 정도는 먹어야지."


그 말에 루푸스는 몸이 뻣뻣이 굳는 것을 느꼈다. 그는 랑골족이 아니었다. 절대로 아니었다.


"전 랑골족이 아닙니다."


야노슈는 코웃음을 쳤는데, 곧 그것이 비웃음처럼 보일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는지 루푸스의 어깨에 그 묵직한 손을 털썩 얹었다.


"그럼 나도 산민이 아니겠네?"


그는 잠시 뜸을 들인 뒤에야 말을 이었다.


"지금까지 살아보니 그렇더라. 그런건 네가 스스로 정하는게 아니더라고. 방패에 독수리 문양 그리고 피바다에서 헤엄쳐도, 세례 받고 주말마다 꼬박꼬박 미사에 나가고, 시민권자들 태반보다 글 잘 읽어도 한 번 산민은 영원한 산민이지. 마찬가지로 넌 랑골족이야. 네가 머리카락이랑 눈동자 색을 바꿀 수 있는게 아니면 평생 그렇게 살아야해."


루푸스는 가슴에 분노가 치밀어오르는 것을 느꼈다. 야노슈의 인생역정에 대해 많이 아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와 자신의 배경이 다른 것만은 확실히 알고 있었다. 제국 시민권도 갖지 못한 자가 어찌 이리 주제 넘은 소리를 한단 말인가. 루푸스는 뭐라 반박을 하고 싶었지만, 야노슈는 이제 그에겐 흥미를 잃은 듯 말로니우스 주교와 대화를 시작했다. 자신이 세례를 받은 대성당에 관한 이야기였는데, 루푸스는 조금도 알아들을 수 없을 뿐더러 관심도 없는 이야기였다. 그는 할 수 없이 방금 야노슈가 담아준 고기 조각을 집어들었는데, 그 순간 속이 울렁거렸다. 자신의 상태를 알리고 싶었지만 뜨거운 것이 목구멍으로 솟구칠 뿐이었다. 미칠듯이 어지러웠지만 여기서 토할 수는 없다는 집념으로 자리에서 일어나는데는 성공했다. 사위가 조용해졌다. 모두가 놀라 그를 쳐다보고 있었다.


"속이 안 좋은 모양이오. 듣자하니 술도 처음 마셔봤다는데."


야노슈가 상황을 수습했다. 정말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한 어조였는데 물론 그것은 사실이었다. 사람들이 놀란 것 때문에 루푸스는 격심한 부끄러움을 느끼고 있었다. 그는 애처로운 눈빛으로 플라비우스를 바라봤다. 노인은 무표정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방에 가서 쉬고 있거라."


"죄송합니다."


그 말을 끝으로, 루푸스는 자리를 떴다. 노예 알리아가 부축하러 달려왔지만 루푸스는 그녀를 뿌리쳤다. 웬지 모르게 화가 났다.


작가의말

으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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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북변경의 야노슈 (13) 13.11.24 231 4 11쪽
14 북변경의 야노슈 (12) 13.11.23 197 4 11쪽
13 북변경의 야노슈 (11) 13.11.16 377 7 10쪽
12 북변경의 야노슈 (10) 13.11.09 219 5 13쪽
11 북변경의 야노슈 (9) +2 13.11.05 362 8 10쪽
10 북변경의 야노슈 (8) 13.11.03 195 6 12쪽
9 북변경의 야노슈 (7) 13.11.01 155 4 9쪽
8 북변경의 야노슈 (6) 13.10.17 384 6 12쪽
7 북변경의 야노슈 (5) +2 13.10.09 452 9 16쪽
» 북변경의 야노슈 (4) 13.10.06 319 7 10쪽
5 북변경의 야노슈 (3) 13.10.03 401 10 13쪽
4 북변경의 야노슈 (2) 13.10.03 370 7 9쪽
3 북변경의 야노슈 13.09.22 617 15 10쪽
2 프롤로그 2 13.09.21 515 9 11쪽
1 프롤로그 1 +2 13.09.20 658 11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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