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콤니노스 님의 서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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콤니노스
작품등록일 :
2013.09.20 23:24
최근연재일 :
2013.11.24 14:44
연재수 :
15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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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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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10.03 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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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쪽

북변경의 야노슈 (2)

DUMMY

루푸스의 그리 길지 않은 인생에서 가장 친숙한 장소 하나를 들자면 바로 저택 안뜰일 것이다. 레분툼 시에서 거의 왕자와 비슷한 지위를 누리고 있는데다 나이도 많지 않은 루푸스는 저택 밖으로 나가는 일이 거의 없었고, 산책도, 수업도 모두 이 곳 안뜰에서 했기 때문이다.


저택 자체와 마찬가지로 안뜰도 제국식으로 조성되어 있었다. 안뜰 부지는 저택의 한가운데가 뻥 뚫린 듯한 모양으로 배치되어 있었고, 아름다운 대리석 기둥들이 늘어선 주랑이 안뜰의 네 면을 감싸고 있었다. 공간의 크기에 비해 나무는 그렇게 많이 심어져 있지 않고, 풀과 나무 또한 최소한의 정도로만 손질되어 자연적인 모습을 유지하고 있었는데 이 또한 제국식이었다. 물론 플라비우스 저택의 안뜰이 머나먼 남부에 위치한 제국 중심지의 저택 안뜰들과 완전히 같은 모습은 아니었다. 이 곳은 제국의 핵심 지역과는 거리가 먼 북변경이었고, 온난한 기후의 번잡한 시가지에서 발달한 저택들과는 주변 환경이 크게 달랐기 때문이다.


첫번째 차이점은 크기에 있었다. 제국 도시 귀족들의 저택 문화는 인구 밀도가 극단적으로 높은 몇몇 도시들, 즉 제국 수도 헤라클레이아와 그 위성 도시들에서 꽃피운 것이었고, 제아무리 강력한 귀족이라고 해도 거주하는 저택은 그렇게 크지 않은 것이 일반적이었다. 하지만 그런 제약을 받지 않는 레분툼시의 플라비우스 저택은 웬만한 수도 권귀들의 별장들과 맞먹는 크기를 자랑했고, 그에 비례해 안뜰의 크기도 굉장히 큰 편이었다.


두번째 차이점은 심어진 나무들의 수종이었다. 플라비우스가 자기 저택의 안뜰에 올리브 나무와 포도 나무 대신 전나무와 자작나무를 심은 이유는 간단했다. 이 곳의 날씨, 특히 겨울 날씨가 아주 춥기 때문이다.


세번째 차이점은 알아차리기가 쉽지 않은 것이었다. 안뜰을 둘러싸고 있는 야트막한 담장의 윗부분에 홈이 주욱 파져 있는 점이 그것이었다. 엘러드는 그곳에 홈이 파져 있다는 사실을 방금에야 깨달은 듯, 손가락으로 홈을 툭툭 쳤다.


"일부러 파 놓은겁니까?"


참 뜬금없는 말 돌리기라고 루푸스는 생각했다. 플라비우스도 비슷한 생각을 했는 듯 한숨을 내쉬었지만 억지로 원래 주제로 돌아가려는 시도는 하지 않았다. 품위가 없는 일이기 때문이리라.


"겨울이 되면 나무로 된 바람막이를 거기다 끼운다네. 안뜰은 천장이 없으니까 추위를 막을 수 없거든. 북변경에 남아있는 제국식 저택들 모두가 하는 방식이지."


엘러드는 도대체 왜 저렇게 진지한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진지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루푸스는 엘러드가 저 홈은 식량 창고가 꽉 찼을때 소세지들을 끼워서 보관하는 용도라는 답변을 들었어도 저렇게 반응 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표정이 진지해 보이는 것은 아마 플라비우스의 제안에 대한 대답을 생각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과연 루푸스의 추측이 맞았는지, 엘러드는 바로 원래 주제로 돌아왔다.


"흑인 친구 하나 붙여준다고 크게 바뀔 일은 없겠지만, 왕자님한테 말은 해보겠습니다."


플라비우스는 인상을 찌푸렸다. 대답이 어지간히도 마음에 안 들었던 모양이었다.


"아무것도 약속은 못해준다는 말이군."


"제대로 된 전사라면 모를까, 저 나이대의 신병들은 원래 끝줄에서부터 시작하는게 맞습니다. 그게 본인한테도 좋죠. 왕자님의 옆자리라면 1열의 중심부인데, 아마 전투가 시작되자마자 죽는 것은 물론이고 그 때문에 생긴 구멍에 모두가 위험해질 수도 있습니다."


플라비우스는 말이 없었으나, 엘러드의 말을 납득한 것처럼 보이지도 않았다. 루푸스는 조금 답답한 기분이 들었다. 전장에 나가서 어엿한 전사가 되고 이름을 떨치는 것이 루푸스 평생의 소원이었으나, 잘 알지도 못하고 자기를 반겨주지도 않는 사람들 사이에서 눈총을 받는 것은 사양이었다. 플라비우스가 루푸스와 엘러드에게 강요하는 것은 바로 그런 것이었다.


"어차피 전투가 벌어질 일도 없을겁니다. 제가 처음에 제안했던 것처럼, 이 친구는 통역만 해주면 됩니다. 저희와 함께 다니고 협상장에 얼굴만 내밀어도 배울 수 있는 것이 많을겁니다."


"전투에서 사람을 죽여봐야 남자가 되는걸세. 이 아이가 배워야 할 건 바로 그런거야."


엘러드는 힘없이 웃어보였다.


"그건 산민이나 랑골족 같은 야만인들 기준이겠지요. 당신도, 이 아이도 어엿한 제국 시민권자 아닙니까?"


"시대가 그런걸 어쩌겠나. 환경이 변하면 사람도 바뀌는거지."


엘러드는 손을 크게 휘저으며 무언가를 말하려다, 말을 되삼켰다. 루푸스는 그가 대체 뭔 말을 하려고 했는지 궁금했지만 물어볼 수는 없는 상황이었다. 성인들간의 대화에 아이가 끼어들 수는 없다.


"좋습니다. 대신 무슨 일이 벌어져도 저희에게 책임은 없는겁니다."


루푸스는 당황했지만 플라비우스는 흡족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결국 루푸스는 자기가 알지도 못하는 사이에 야노슈인지 뭔지 하는 사람을 따라 전장에 나가게 된 것이다. 루푸스의 불만을 알아챈 듯, 플라비우스는 오후에 왕자가 오기 전까지 한숨 자고 있겠다는-그 '왕자'가 오후에 온다는 것도 루푸스는 이때 처음 알았다'- 엘러드가 물러가자마자 루푸스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상대가 누구든간에 신체 접촉을 극히 꺼리는 플라비우스로서는 매우 많이 나간 것이었고, 루푸스도 그것을 알았기에 얼굴에 떠오르려하는 불만기를 최대한 억누르며 고개를 숙여보였다.


"너에겐 급작스러운 소식이겠지. 알고 있단다."


이것 역시 플라비우스치고는 매우 부드러운 말이었다. 루푸스는 어딘지 모르게 가슴이 찌르르한 것을 느끼면서도, 역시 상황이 보통이 아니라는 것도 직감했다. 마음속이 복잡했지만, 사실 사춘기 이후로 루푸스의 속이 복잡하지 않았던 적은 거의 없었다.


"어디서부터 설명해야할지 모르겠구나. 야노슈에 대해 내가 말한 적이 있었니?"


루푸스는 잠시 생각해보았지만 아무것도 떠오르는 것이 없었다. 플라비우스는 전장을 누비던 젊은 시절 이야기를 루푸스에게 해준 적이 거의 없었다. 그는 고개를 저었다.


"없습니다."


플라비우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너도 붉은 관문 너머의 고산지역에 대해선 알고 있을거다. 랑골족과는 또 다른 족속들이 살고 있는 곳이지. 우린 그들을 산민이라고 부르지만, 그건 마치 자트족, 벵알족, 골갈란트족 같은 족속들을 랑골족으로 묶어 부르는 것과 같은 일이란다. 산민들 사이에는 많은 분파가 있고, 야노슈는 그 중 하나의 왕자였지."


플라비우스는 말을 끊고 잠시 생각에 잠겼다. 어떻게 하면 이야기가 장황해지는 것을 피할 수 있을지 생각하는 듯했다. 그는 단어 낭비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랑골족은 우리 제국만 침공한게 아니란다. 붉은 관문도 그들의 공격 대상 중 하나였고, 야노슈의 왕국을 비롯한 많은 산민 국가들이 랑골족의 칼날에 무너졌지. 망명길에서 살아남은 엘러드 부자와 야노슈가 레부르 강을 건넜을 때, 난 베루스-알라만티아 통합 민병대의 대장이었지. 지금은 둘 다 없는 도시다. 엘러드의 아버지는 얼마 안 있어 죽었지만, 엘러드와 야노슈는 내 부하가 되어 함께 전장을 누볐었다. 둘은 타고난 전사였고 난 그들을 신뢰했지만, 내 밑을 떠나 독립한다고 했을 때는 이렇게까지 거물이 될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었다."


플라비우스는 말을 멈추더니 눈살을 찌푸렸다. 루푸스는 자신도 모르게 미소짓고 말았다. 너무 말을 많이 했다는 생각이 든 것이리라. 하지만 그것이 아니었다. 플라비우스가 인상을 찌푸린 이유는 성격에 맞지 않는 쑥쓰러운 소리를 꺼내야 했기 때문이었다.


"넌 내 아들이나 다름없다. 내 피를 이은건 아니지만 어차피 잇고말고 할 혈통도 없는 나이니 그런건 상관 없겠지. 원래라면 지금쯤 네게 지휘하는 법을 가르쳐나갔어야 했는데, 넌 아직 전사조차 못된 것이 현실이다. 2년 전 전투에는 네가 너무 어려서 내보내지 못했었다. 그 후로 2년 동안 사소한 약탈전 하나 벌어지지 않을거라곤 생각하지 못했는데. 어쨌든 넌 아직 전장을 겪어보지 못했어. 그때 야노슈가 나타난거다. 그 놈의 경력은 이제 나는 따라갈 수도 없을 정도야. 마침 저쪽에 랑골어를 할 줄 아는 사람이 없어서 생긴 기회긴 하다만, 어쨌든 그걸 최대한 활용하거라. 그는 뛰어난 전사고, 뛰어난 지휘관이다. 난 네가 그에게서 많은걸 배웠으면 한다."


플라비우스는 고개를 끄덕이며 루푸스의 어깨에 얹은 손에 힘을 주었다. 루푸스는 입장 표명은 커녕 별다른 말 한번 제대로 하지 못했지만, 사실 그런 것이 무슨 상관인가? 의견이란 것을 가질 수 있는 것은 성인 남성뿐이다. 아직 성인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루푸스가 할 수 있는 것은 명령을 받아들이는 것뿐. 그래서, 루푸스는 공손히 고개를 조아렸다.


"알겠습니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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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북변경의 야노슈 (13) 13.11.24 231 4 11쪽
14 북변경의 야노슈 (12) 13.11.23 197 4 11쪽
13 북변경의 야노슈 (11) 13.11.16 377 7 10쪽
12 북변경의 야노슈 (10) 13.11.09 218 5 13쪽
11 북변경의 야노슈 (9) +2 13.11.05 362 8 10쪽
10 북변경의 야노슈 (8) 13.11.03 195 6 12쪽
9 북변경의 야노슈 (7) 13.11.01 155 4 9쪽
8 북변경의 야노슈 (6) 13.10.17 384 6 12쪽
7 북변경의 야노슈 (5) +2 13.10.09 452 9 16쪽
6 북변경의 야노슈 (4) 13.10.06 318 7 10쪽
5 북변경의 야노슈 (3) 13.10.03 401 10 13쪽
» 북변경의 야노슈 (2) 13.10.03 370 7 9쪽
3 북변경의 야노슈 13.09.22 617 15 10쪽
2 프롤로그 2 13.09.21 515 9 11쪽
1 프롤로그 1 +2 13.09.20 657 11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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