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콤니노스 님의 서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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콤니노스
작품등록일 :
2013.09.20 23:24
최근연재일 :
2013.11.24 14:44
연재수 :
15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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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20
추천수 :
112
글자수 :
74,335

작성
13.09.20 2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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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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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글자
8쪽

프롤로그 1

DUMMY

끔찍할 정도로 추운 밤이었다.


민병대원은 부들부들 떨며 하늘을 올려보았다. 별자리의 위치를 보고 시간을 가늠하기 위함이었다. 그가 본 것은 황당할 정도로 그대로인 하늘이었다. 아까 전에 올려다 보았을 때와 아무 변화가 없었다. 매서운 추위에 천상계마저 얼어붙은 것일까.


웃기지도 않은 소리다. 그는 등 뒤를 돌아보았다. 어둠에 잠긴 도시 너머, 북쪽으로 펼쳐진 평야가 보이고, 그 너머로는 레부르 강이 희미한 달빛을 반사하며 도도하게 흘러가고 있었다. 강은 아직 얼지 않은 것이다. 강이 얼지 않았는데 하물며 천상계가 얼었으랴. 강물이 얼지 않았으니, 랑골족이 국경을 넘어오는 일도 없을 것이며 별들도 멀쩡히 움직일 것이고 그의 교대 시간도 올 것이다.


하지만 묵묵히 기다리기엔 날이 너무 추웠다. 남문 불침번들이 돌려쓰는 곰가죽 망토는 낡을대로 낡아, 입고 있으면 고약한 악취가 올라오는데다 곳곳에 뚫린 구멍으로 바람이 숭숭 들어왔다. 2년 전에 얻은 전리품인 가죽 장갑은, 그가 2년 내내 험하게 사용한 뒤 오른쪽 손등은 거의 종잇장처럼 얇아졌고, 검지 마지막 마디쪽은 구멍이 나 손가락이 들어갔다 나왔다 했다. 그가 쓴 쇠투구는 코 가리개도, 뺨 가리개도 없이 그냥 둥그렇기만 한 물건으로, 이런 쪽으로 해박한 말로니우스 주교 말로는 3세기쯤 전 제국군이 이 지역으로 처음 진격해왔을 때 썼던 물건이라고 했다. 아마 300년 전에도 지금처럼 더울때만 땀 차고 추울때만 바람 잘 드는 물건이었을 것이다.


이런 허섭스레기들을 입은 채로는 교대까지 동사하지 않고 버틸 수 없다는 확신이 열아홉번째로 든 순간, 그는 발치에 놓여 있던 장작더미에서 장작 두 토막을 집어들고, 바로 옆에 서 있는 화로에 던져 넣었다. 불티가 폭발하듯 튀어오르더니, 급작스런 비상과는 정반대의 느린 속도로 낙하했다. 그는 화로 밑에 놓여 있던 불쏘시개를 집어들어 몇 번 화로를 뒤적였다. 잘 마른 장작들은 만족스럽게 타올랐다. 수염을 태우고 눈알을 녹여버릴 것 같은 열기가 솟아 올랐지만, 그는 개의치 않고 화로에 한 발짝 더 다가섰다.


민병대원은 한숨을 내쉬었다. 화로의 열기를 직접 받는 얼굴은 이제 슬슬 뜨거움을 견디기 힘든 수준이었지만, 열기를 받지 못하는 등은 여전히 시릴 정도로 추웠다. 얼굴의 열기를 견디지 못하게 되어 물러서면, 겨우 한두발짝 차이건만 화로와 수천 걸음 떨어진 것과 별 차이가 없게된다. 다시 얼어붙은 얼굴을 열에 쬐이고, 어마 뜨거라 하고 물러나기를 몇번 반복하다보면 불길은 사그라들고, 그는 다시 하늘을 올려다보고, 시간이 가지 않음을 한탄하고, 화로에 새 장작을 집어 넣을 것이다. 그 다음은 이전의 무한 반복. 그는 우울한 눈빛으로 장작더미를 내려다보았다. 그의 교대자가 유달리 추위에 강한 사람이 아니라면, 동이 틀 때 저 빈약한 장작더미는 부스러기 하나 남아있지 않을 것이다. 그러면 아침에 출근하여 그것을 발견한 플라비우스 대장이 이제 겨우 자러 들어간 불침번자들을 모조리 깨워 장작의 재고량과 절약의 중요성에 대해 일장 연설을 늘어 놓겠지. 생각하기도 싫은 끔찍한 사태였지만, 솔직히 그런 일이 벌어져도 민병대원은 자신이 대장에게 불만을 품을 수 있을거라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기엔 일단 대장은 너무나 무서운 존재였고, 장작을 아껴야 할 필요성은 그도 절감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총독의 명령으로 이 언덕 위에 레분툼 시가 세워진 지도 8년, 이제는 벌목을 위해선 거의 원정을 나가야 할 지경이다. 어떤 결과가 나올지 알면서도 남벌이 행해져왔는데, 이제 슬슬 그 대가를 치루고 있는 것이다.


더 이상 열기를 견딜 수 없었기에, 민병대원은 화로에서 조금 물러났다. 싸늘한 냉기가 아직 온기가 차지하고 있는 부위를 잠식해들어간다. 느리지만 절대 멈추지 않는 전진이다. 마치 근래들어 제국을 휩쓸고 있는 야만인들처럼. 그 생각에 등골이 서늘해진 그는 다시 화로쪽으로 한걸음을 내딛었지만, 곧 버티지 못하고 다시 물러났다. 수염에 불이 붙을 것 같았던 것이다.


그렇게 추위와 열기 속을 방황하고 있었기에, 민병대원은 어둠 속에서 날아온 목소리를 놓쳤다. 날아온 것이 화살이었으면 죽었을 것이다.


"경비!"


관문 밖의 어둠 속에서 다시 한번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번 것은 대원도 들었다. 그는 문자 그대로 소스라치게 놀랐다. 목책의 깎여진 부분 사이에 기대어둔 창을 집어 들려고 했지만, 추위에 뻣뻣하게 곱은 손과 급한 마음이 그를 배신했다. 놓친 창은 무덤 속의 망자도 기겁하여 깨어날 정도로 요란한 소리를 내며 주랑을 굴러가다, 우당탕 소리와 함께 계단을 튕겨내려갔다.


민병대원의 다음 행동은 그나마 덜 멍청한 것이었다. 그는 창을 쫓아 내려가지도 않았고, 소 뼈를 깎아 만든 단검을 뽑아들지도 않았다. 대신 그는 목에 걸고 있던 뿔나팔을 붙잡고, 혹시나 모를 투사 무기의 공격에 대비해 자세를 잔뜩 낮췄다. 뿔나팔의 주둥이를 턱 근처까지 갖다댄 다음에야 그는 입을 열었다.


"누구냐!"

대답은 거의 즉시 돌아왔다.

"사신이다! 이곳 수비대장과 접견을 요청한다!"


민병대원은 미간을 찌푸렸다. 보이지 않는 상대의 말이 이해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신이 오기엔, 이 곳은 변경에 조금 가깝다는 것 외엔 아무런 특이점도 없고, 관청이고 뭐고간에 중요한 것은 하나도 없는 도시였다. 거기다, 상대는 아직도 어둠 속에 숨은채 정체조차 드러내지 않고 있었다. 상대의 말에는 그 외에도 설명하기 어려운 이상한 부분이 있었지만, 그게 정확히 무엇인지는 콕 집어내기가 어려웠다. 잠시 그것에 대해 생각해보던 민병대원은, 그보다 더 급한 일이 있음을 상기했다.


"어디에서 온 누군지 정체를 밝혀라!"

대답은 이번에도 거의 바로 돌아왔다.

"멍청아! 문장을 보고도 그런 소리가 나오는가!"


민병대원은 미간을 더더욱 찌푸렸다. 달은 아까 전부터 구름에 가려져 있었고, 목책 너머의 어둠은 자체의 질량을 지닌 검은 액체처럼 허공을 채우고 있었다. 그에게는 그런 어둠을 궤뚫어 볼 능력이 없었다.


그때, 어둠 속에서 한 형체가 걸어나왔다. 큰 키의 남성이었지만, 투구의 뺨 가리개를 턱끈으로 묶어둔데다 여행자들이 흔히 입는 긴 망토를 두르고 있어서 신체상의 특징은 볼 수 없었다. 그보다 더 눈길을 끈 것은, 그가 내밀고 있는 원형 방패였다. 쇠를 두른 테두리의 윗부분이 우그러져있는 것과, 방패에 그려진 문양 곳곳에 난 흠집이 이 방패가 바로 얼마 전까지 전장을 전전했음을 웅변하고 있었다. 문양의 내용도 웅변적이었다. 잘 보이지도 않고 -이 경우엔- 중요하지도 않은 회색 그림 위로, 제국의 쌍두독수리 문양이 그려져 있었다. 무구에 그려진 쌍두독수리 문양은 제국군의 상징이다. 하지만 그 문양에는 조금 특이한 점이 있었는데, 오른쪽 위에서 왼쪽 아래로 붉은 빗금이 하나 쳐져 있다는 것이다. 민병대원은 그 빗금의 의미를 알고 있었다. 아니, 그 의미를 모르는 제국인은 아무도 없다. 민병대원은 아까 상대의 말에서 느껴졌던 부자연스러움이 바로 이상한 억양이었음도 깨달았다. 그는 치를 떨었다.


저 이방인은 적은 아니다. 하지만 어떤 면에선 적보다 더한 놈들이다. 제국을 좀먹는 기생충 놈들, 저 간신배 킬리아쿠스보다 더 악독한 놈들.


"여긴 장님을 보초 세우나? 나는 스테파누스 네만치크 왕자가 지휘하는 제국군 외인부대의 대표로 왔다! 이 곳의 수비대장 플라비우스에게 급히 전할 전갈이 있으니 당장 문을 열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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