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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어 님의 서재입니다.

이안(Due Cuori)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온어
작품등록일 :
2016.09.25 13:23
최근연재일 :
2017.03.29 02:30
연재수 :
18 회
조회수 :
4,740
추천수 :
9
글자수 :
109,729

작성
17.03.08 01:35
조회
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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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0쪽

1부 4화 또다시, 기다림(5)

DUMMY

난데없이 뺨을 맞은 이라는 고개가 돌아간 채 눈만 끔뻑거렸다. 그런 그녀를 남작은 분노에 찬 눈으로 노려보았다.



“대체 이게 무슨 짓이냐!”



이라는 처음으로 느껴보는 강렬한 적의에 어쩔 줄을 몰라 아무런 대응도 하지 못하고 남작의 노기 어린 얼굴만 쳐다보았다. 그는 뺨을 때린 것으로도 분이 풀리지 않는지 주먹을 쥔 채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의 두 볼도 그런 분노를 대변하듯 떨리고 있었다.



“내가 뭐라고 했느냐. 얌전히 시집만 가면 된다고 한 것을, 백작가와 사돈지간이 될 수 있는 기회를 네가 망쳐? 이 아비를 무어로 생각하는 게냐, 이안!!”


-너는 그저 좋은 집안에 시집 잘 가서 편안하게 살면 된단다.



이라는 귀청을 때리는 고함소리와 함께 일전에 남작과의 첫 대면에서 그에게 들었던 말이 귓가에서 맴돌았다. 자신을 값비싼 노예로 취급하며 팔리기만을 기대하던, 그 기분 나쁜 말들이 그녀의 머릿속을 더럽혔다. 이라는 남작이 이렇게까지 화내는 이유를 깨닫고 헛웃음이 나왔다. 정말, 정떨어지게 하는 재주가 있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녀의 냉소적인 반응은 남작의 화를 더 돋웠다.



“웃어? 지금 이 아비가 말하는데 웃음이 나오느냐!”



그의 얼굴은 금방이라도 터질 것 같은 홍시처럼 변했다. 하지만 그의 말들은 덜 익은 감처럼 떫고 썼다. 이라는 더 이상 그를 존중해줘야 할 필요성을 느낄 수 없었다. 어차피 이곳에 오래 머무를 생각도 없었으니 이렇게 정을 확 떼는 편이 어쩌면 더 좋았다. 이라는 씩씩거리는 남작에게 다가가 그의 뺨을 주먹으로 최대한 세게 후려쳤다.



“왜 웃냐고? 말이 말 같아야 제대로 들어주지.”



남작은 덜덜 떨리는 손으로 자신의 볼을 만지며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짓고서 그녀를 보았다. 이라는 미안한 마음이 불쑥 들었지만, 그를 더 차갑게 노려보았다.



“질렸다고, 이 집안이나 당신이나. 날 제대로 알려고 해보긴 해봤어? 한 번도 안 해봤겠지.”


“이, 이안······?”



그는 이라를 이안이라고 불렀다. 자신의 딸이 바뀐 것도 모르는 그를 보며, 이라는 실소가 나왔다. 지금 이 모습을 이안이 본다면 뭐라고 생각할까. 그녀는 자신이 이 세계에서 이안 대신 살아간다는 것에 어느 정도 책임감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이안의 부모와도 원만하게 지내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이 순간만큼은 이안도 폭발하지 않았을까, 하는 마음이 들었다.


그렇게 이라는 이안이 되어 남작에게 외쳤다.



“그렇게 눈 닫고 귀 막고, 모른 척하고, 정작 내가 진짜 뭘 원하는지 아무것도 모르면서 결혼을 강요하고, 내 미래를 강제하고. 그럼 기분 좋아?”



목 언저리가 먹먹한 느낌이 들었다. 큼큼, 목을 풀었지만 응어리 진 무언가가 계속 몸 깊숙이 남아 있었다. 흔들리는 눈빛을 감추지 못하고 자신의 시선을 피하고 있는 남작을 보고 이라는 크게 숨을 들이마셨다가 후우, 길게 내쉬었다. 하지만 답답한 느낌은 사라지지 않았다.



“나가. 꼴도 보기 싫어.”



그녀는 냉정하게 말했다. 목이 막혀와 몇 번이나 목을 가다듬었지만 소용없었다. 수초가 지나고, 남작은 이라의 얼굴을 잠깐 바라보다가 조용히 밖으로 나갔다. 너무나도 얌전한 그의 반응이 묘하게 느껴진 이라는 문 쪽으로 의심의 눈초리를 보냈지만, 그의 심정을 알 수 있는 단서는 남아 있지 않았다. 그녀는 남작이 자신의 잘못을 인지하고 반성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머릿속에서 그를 지워버렸다.



해가 뉘엿뉘엿할 때쯤, 시종장은 저녁밥이 잘 준비되고 있는지 확인한 뒤 이층으로 올라가고 있었다. 그때 일층으로 내려오는 사람이 보였다. 하얗게 센 머리와 수염을 단정하게 정리하고 그와 잘 어울리는 은테 단안경을 끼고 있는 남자는 바로 집사였다. 시종장과 집사는 곧 서로를 마주보았다.



“좋은 저녁입니다, 집사님.”


“허허, 그래요. 어딜 그리 바삐 가나요?”


“이층에 볼 일이 있습니다.”


“급한 일인가요?”


“아닙니다.”



집사는 품 안에서 편지 하나를 꺼냈다. 고급스러운 베이지색 편지봉투 가운데에는 붉은 밀랍 인장이 붙어 있었다. 정교하게 찍혀 있는 나무 문양을 본 시종장은 다시 그를 보았다.



“집사님, 이건?”


“일단 받으세요.”



그가 편지봉투를 내밀어 시종장이 그것을 받아들자 질 좋은 종이가 손에 부드럽게 닿았다. 그가 의아해하며 집사를 보았지만, 그는 그저 사람 좋은 미소만 지을 뿐이었다.



“이 편지부터 부쳐주겠어요? 이건 급한 일이에요.”


“무슨 편진지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이건 말이죠······.”



집사는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목소리를 낮추며 시종장에게 편지의 정체를 말해주었다.



다음날 아침, 이라는 찌뿌둥한 아침을 맞이했다. 악몽을 꾼 것처럼 몸이 무겁고 눈을 뜨기가 힘들었다. 정신이 저 멀리 떠나 있다가 방금 돌아온 듯 아득하게 느껴지고, 무형의 힘이 질척거리며 그녀의 몸에 끈덕지게 달라붙는 느낌이 들었다. 이라는 간신히 기지개를 켜며 불쾌한 속을 애써 털어냈다.


그녀가 시중을 받으며 정신을 차리고 있을 때, 시종들이 유독 자신을 힐끔힐끔 훔쳐본다는 것을 눈치챘다. 이라는 자신의 얼굴에 뭐라도 묻었나 싶었지만, 방금 막 씻었는데 그럴 리도 없었다.



“···뭐 문제 있어?”


“네?”


“계속 나 힐끔거리잖아.”



시종들은 뜨끔해서 괜히 딴청을 부리자 이라가 끈질기게 눈빛을 쏘았다. 그들은 서로를 툭툭 치며 저들끼리 무언의 대화로 오갔다. 그러다가 부추김 당한 한 시종이 한숨을 푹 쉬었다.



“시종장님이 말하지 말라고 신신당부하셨는데······.”


“말해.”


“아가씨이~”


“쓰읍! 내가 중요해, 시종장이 중요해?”


“그렇게 말하지며언~”



그녀는 이라의 말에 입을 우물거리다가 결국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게에~ 오늘 아침에 우편물 하나가 왔는데, 그게 아가씨 선 보는 걸 결정하는 거라고 시종장님이······.”


“서언?!”



이라는 입을 떡 벌렸다. 자신이 선을 보게 될 것이라고는 상상해본 적도 없다. 아직 꽃다운 나이 십팔 세건만 무슨 선이야! 그녀는 혼란스러운 와중에 어제 남작과 나누었던 대화가, 그리고 들어올 때완 다르게 얌전히 물러나던 것이 떠올랐다. 그녀는 헛웃음을 지었다.



“기어코 결혼을 시키시겠다?”



이럴 거면 차라리 아페르토랑 결혼하는 게 낫지!


이라는 치욕을 느끼며 분노로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시종들은 그 반응에 안절부절 했지만, 그것을 알면서도 그녀는 스스로 이미지 관리를 하지 않았다. 토가 나올 정도로 기가 찼다. 아무리 어제 자신이 심한 말을 내뱉었다고는 하지만, 그 중요한 것을 조금의 상의도 없이······. 그런 이라의 눈에 세련된 레이피어가 들어왔다. 그리고 때마침, 도복도 잘 갖추고 있었다.



“나 갈게. 좀 늦을지도 몰라. 아니, 늦을 거야.”


“아가씨······.”


“너네 때문 아니니까, 자책하지 말고.”



이라는 레이피어를 들고 밖으로 나갔다. 이 저택에 언제까지 있을지 계속 의문이었다. 자의로 온 것은 아니지만, 이곳은 그렇게 바라 마지않던 판타지 세계다. 원하는 것도 다 못 해보고 세월을 썩힐 수는 없어 지금까지 나갈 기회를 노리고 있던 차였으니 오히려 잘 됐다. 이라는 달려가듯 빠르게 일층으로 내려갔다.


그때 시종장이 앞에 나타났다.



“어딜 그렇게 급히 가십니까, 아가씨?”


“알 거 없어요.”



이라가 그대로 지나치려고 할 때, 시종장이 그녀를 붙잡았다.



“영영 가시는 겁니까?”



이라는 깜짝 놀라 그를 보았다. 하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품속에서 주머니 하나를 꺼내 그녀에게 건넸다.



“받으십시오.”


“···이게 뭔가요?”


“비상금입니다. 아가씨께서 제게 주셨던.”



이라는 얼른 표정을 정돈했다. 여기서 모른다는 눈치를 줘서 붙잡히게 되면 더 곤란해지기에 이라는 당연하다는 듯 알아차린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금액이 어느 정도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그 가치가 묵직한 무게감으로 조금은 가늠되었다. 시종장은 주머니를 그녀의 허리춤에 잘 달아주었다.



“아가씨가 이렇게 가버리실 걸 대비해서 제가 좀 더 보탰습니다.”


“감사해요. 잘 쓸게요.”


“그럼 행운을 빕니다.”



이라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고 다시 계단 밑으로 뛰어 내려갔다. 살짝 뒤를 돌아보자 시종장이 고개를 숙이고 있는 것이 보였다. 그 모습이 눈에 밟혀 묘한 기분이 들었다. 전부터 그의 태도가 평범한 시종과 조금 다른 것은 느끼고 있었지만, 이 정도로 가까운 사이인 줄은 미처 몰랐다. 이라는 전부터 그를 경계했던 것이 무색하게 느껴져 조금 미안해졌다.


이라는 그렇게 저택을 나왔다. 그녀는 누군가가 자신을 다시 붙잡기 전에 탈출해야겠다는 일념 하에, 이대로 가다간 숨이 멎으리라고 여겨질 때까지 달리고 또 달렸다. 바닥만 바라본 채 골목골목을 무작정 뛰어가던 그녀는 모퉁이를 돌다가 누군가와 세게 부딪쳤다.



“으악!”



이라는 뒤로 넘어지며 곧 닥칠 충격에 대비해 두 눈을 질끈 감았다. 하지만 그 잠깐 사이, 그녀의 등에 느껴진 것은 딱딱한 땅이 아닌 누군가의 단단한 팔이었다. 이라는 슬며시 눈을 떴다.



“이안?”



아침햇살을 그대로 칠해놓아 환상적이기까지 하는 금발 머리와 단정한 이목구비, 높지도 낮지도 않아 딱 듣기 좋은 목소리. 그는 바로······.



“레토······?”



불과 사흘 전에 헤어졌던 그녀의 친우, 레토 렐리 쥬디체였다.


작가의말

길고 길었던 기다림의 끝!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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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2부 6화 이초(離初) 2 +1 17.03.29 81 1 15쪽
17 2부 6화 이초(離初) 1 17.03.25 126 0 13쪽
16 1부 후기 17.03.23 121 0 5쪽
15 1부 5화 또 다른, 시작(2) 17.03.18 213 0 12쪽
14 1부 5화 또 다른, 시작(1) 17.03.15 174 0 13쪽
» 1부 4화 또다시, 기다림(5) 17.03.08 96 0 10쪽
12 1부 4화 또다시, 기다림(4) 17.03.05 760 0 15쪽
11 1부 4화 또다시, 기다림(3) 17.03.01 137 0 15쪽
10 1부 4화 또다시, 기다림(2) 17.02.25 157 0 13쪽
9 1부 4화 또다시, 기다림(1) 17.02.07 154 0 12쪽
8 1부 3화 그렇게, 만남(4) 17.02.04 187 0 12쪽
7 1부 3화 그렇게, 만남(3) 17.02.01 738 1 12쪽
6 1부 3화 그렇게, 만남(2) 17.01.28 155 1 16쪽
5 1부 3화 그렇게, 만남(1) 17.01.25 217 1 13쪽
4 1부 2화 그리고, 적응(2) 16.10.05 192 1 18쪽
3 1부 2화 그리고, 적응(1) 16.10.02 294 1 17쪽
2 1부 1화 마침내, 시작(2) +4 16.09.28 255 1 15쪽
1 1부 1화 마침내, 시작(1) +4 16.09.25 684 2 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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