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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어 님의 서재입니다.

이안(Due Cuori)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온어
작품등록일 :
2016.09.25 13:23
최근연재일 :
2017.03.29 02:30
연재수 :
18 회
조회수 :
4,738
추천수 :
9
글자수 :
109,729

작성
17.01.25 20:30
조회
216
추천
1
글자
13쪽

1부 3화 그렇게, 만남(1)

DUMMY

한편, 그렇게도 궁금하던 문 너머를 보게 된 이라는 주위를 둘러보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곳은 꽤 넓은 홀이었다. 높은 천장에는 금빛 샹그리에가 반짝거렸고 바닥은 색색의 대리석이 아름답게 수놓아져 있었다. 홀은 가로로 길쭉한 직사각형 모양이었고 방향마다 모두 문이 있었다. 그 문들 중 이라의 왼쪽에 있는 문이 특히 화려했다. 그 문은 금빛으로 빛나고 있었으며, 양옆으로 나선계단이 있고 그 끝에는 작은 난간이 문 위로 있어서 똑같은 문이 하나 더 있었다.



이라는 주위를 살피고 조심스럽게 그 문으로 다가갔다. 특별히 높은 구두를 신은 것도 아닌데 그녀의 발걸음 소리가 홀 안에서 크게 울렸다. 이윽고 문에 다다른 이라는 침을 꿀꺽 삼키고 문에 손을 살짝 대었다. 금속성의 냉랭한 찬기가 손바닥을 타고 느껴졌다. 이라는 조심스럽게 문을 밀었다.



“···어라?”



하지만 문은 굳게 잠겨 있었다. 이라는 김이 새버려 입술을 삐죽이며 속으로 불평하고는 뒤를 돌았다. 이런 문, 봐서 뭐해? 어차피 별거 없을 거야. 이라는 그렇게 되뇌면서도 아직 미련이 남아 다시 문을 보았다가 고개를 세차게 저었다.



“더 이상 이런 곳에서 시간을 뺏길 수야 없지!”



이라는 현관문으로 추정되는 큰 문으로 달려가 양 문을 손바닥으로 힘껏 밀었다. 육중한 문이 천천히 열리면서 약간 어두컴컴한 밖이 보이기 시작했다. 이라는 점점 안달이 나서 더 세게 문을 열었다.


그렇게 문이 활짝 열리고 훈훈한 바람이 이라를 맞이했다. 이라를 반기듯 정원 군데군데에 있는 가로등에 불이 들어왔다. 푸른빛으로 차분하게 내려앉은 정원은 따뜻한 훈내와 은은한 꽃내음에 휩싸여 있었다.


정원의 가상에 세워져 있는 나무판은 격자무늬로 구멍이 뚫려 있었고 그 위에는 나팔꽃과 장미꽃이 입을 다문 채 잠들어 있었다. 이제 막 얼음이 녹은 흙냄새는 팬지, 수선화, 마리골드 등 자그마한 꽃들과 어우러져 봄의 향기를 내뿜고, 그 옆에는 노란빛 광채를 내뿜고 있는 개나리와 이제 막 피기 시작한 하얗고 빨간 철쭉들이 즐비해 있었다. 아직은 앙상한 나무들도 따뜻한 기운을 받아 이파리가 돋아나고 있었다.



“우와~ 진짜 넓고 예쁘다!”



이라는 입을 벌리고 감탄했다. 집, 학교, 병원만 반복하던 그녀에게 저택의 정원이란 결코 익숙한 것이 아니었다. 그랬기에 더욱 천천히 걸으며 정원을 구경했다. 바람이 불 때마다 코끝을 간지럽히는 꽃향기는 정원을 가득 메워서 그녀의 몸에 달라붙는 듯한 착각이 들게 하였다. 이라는 긴 머리를 일부러 흩날리게 걸으면서 봄의 분위기에 한껏 젖었다.


약간 자아도취 되어 있던 그녀는 곧 저택의 정문에 다다랐다. 흰색으로 덧칠해진 철문은 생각보다 육중해 보였다. 이라는 잠금장치를 풀고, 팔을 걷어붙이고, 철문을 힘껏 밀었다.


끼이이익-.


육중한 쇳소리와 함께 겨우 틈이 생긴 철문 사이로 이라는 몸만 슬쩍 빠져나왔다. 그리고 눈 가리고 아웅 식으로 철문만 닫아둔 이라는 손을 탁탁 털고 뒤를 돌아보았다. 지평선 근처에 얹혀 있는 주황빛과 그 아래로 펼쳐진 아담한 마을이 이라를 반기고 있었다. 그녀는 숨을 들이마셨다가 어깨를 툭 내리며 미소를 지었다. 재밌는 일이 일어날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이라는 씩씩하게 마을 쪽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그녀는 저택의 정문에서 바로 앞에 있는 대로변을 따라 쭉 걸었다. 한산한 주택가가 지나고 조금씩 상가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과일과 채소를 전시해놓은 가게, 고소한 빵 냄새가 피어오르는 가게, 빨간 고기를 천장에 걸어놓은 가게, 한약 냄새가 배어 있는 가게 등 똑같은 것을 파는 가게 없이 모두 제각각이었다. 이라는 눈을 빛내며 가게들을 하나하나 세세하게 구경했다. 벌레가 먹지 않은 과일이 없었고 빈말로도 위생이 좋다고 말할 수 없는 것들이 대부분이었지만, 시골 같은 정겨움이 느껴졌다. 그녀는 마을 사람들이 자신을 보고 황급히 고개를 숙일 때마다 일일이 화답해주며 과일 가게 아주머니가 손에 쥐여준 사과를 맛있게 먹었다.


사과를 다 먹어갈 즈음, 잔잔한 악기 소리가 들려왔다. 이라는 수제 도자기 그릇을 구경하느라 숙였던 고개를 번쩍 들었다. 부드럽고 여성스러운 선율에 순간 엘프가 떠올랐다. 그녀의 얼굴이 확 달아올랐다. 머릿속에서는 이미 아름다운 엘프가 비파를 뜯으며 노래 부르는 장면을 그리고 있었다. 이라는 음악 소리가 끊기기 전에 반드시 그 모습을 봐야겠다는 일념으로 반쯤 뛰듯 노랫소리가 울려오는 쪽으로 걸어갔다.


음악 소리가 점점 가까워질수록 고운 목소리가 선율을 따라 흘러가는 것이 들렸다. 목소리에 제법 힘이 있어서 많은 사람의 목소리를 뚫고 이라가 있는 곳까지 퍼질 수 있었다. 살짝 허스키한 듯 맑은, 사람들을 끌어당기는 묘한 매력을 지닌 목소리였다. 이라는 걸음 속도를 더욱 올렸고, 곧 노래가 흘러나오는 곳에 당도할 수 있었다.



“아.”



그곳은 광장이었다. 종이 달린 높은 첨탑과 하얀 대리석으로 된 빛나는 분수가 돋보였다. 하지만 이라는 처음 보는 이국의 광장에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굳이 찾지 않아도, 사람들이 몰려 있는 광장의 중앙에 자신이 그토록 찾아 달려온 엘프가 있음이 분명했다. 그녀는 당장 그쪽으로 달려가 사람들을 비집고 들어갔다.



“잠시만요, 잠시만 지나갈게요!”



사람들이 구시렁대는 소리를 깔끔하게 무시한 이라는 곧 맨 앞줄에 다다를 수 있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겨우 빠져나온 이라는 반동으로 넘어질 뻔한 몸을 가까스로 추스르고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눈앞의 사람과 눈이 마주쳤다.



“어······.”



그는 엘프도, 하물며 어여쁜 여인도 아니었다. 곱상하게 생기긴 했지만 모로 보나 평범한 인간 남자였다. 그는 이라에게 살포시 웃어 보이며 노래를 이어갔다. 다시 들어도 조금 중성적일 뿐, 영락없이 여자 목소리였다.



조금씩 다가왔네

짙푸른 안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

이성을 잃은 사람들

나를 슬프게 하는 사람들

아아, 지옥인가

고개를 끄덕였네

신이 우릴 버렸구나



멀리서 들을 때는 더없이 아름다운 곡인 줄 알았으나, 가까이에서 들으니 가사나 그 안에 내포된 분위기가 제법 음산했다. 그는 눈빛을 낮게 깔고 노래를 읊조리다가 고개를 들어 이라를 보았다. 그의 눈이 기묘한 뜻을 품은 채 이채를 띠었다. 이라는 무언가 잘못한 사람처럼 자신도 모르게 흠칫 몸을 떨었다. 그는 다시 눈을 내렸다.



언젠간, 언젠가는

벗어날 수 있겠지요

이 잔혹한 세계에서



그는 비파 줄을 한 번 부드럽게 쓸면서 노래를 마쳤다. 그러자 주위에서 환호성과 함께 박수가 터져 나왔다.



“오늘도 멋졌어요~”


“예쁘다!”


“내일도 꼭 와주세요!”



사람들은 그의 앞에 있는 자루에 동전을 떨어뜨리며 제각기 한마디씩 하고 지나갔다. 그는 그런 사람들에게 일일이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다. 하지만 이라는 꿈쩍도 못하고 서 있었다. 곧 사람들이 흩어지자 그는 짐을 챙기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이라에게 다가가 고개를 숙였다.



“안녕하십니까, 이라님.”


“아, 음? 아, 네. 안녕하세요.”



남자가 다가오는 줄도 모르고 서 있던 이라는 그가 갑작스럽게 말을 걸어오자 당황했다. 일단 인사는 했지만 기분이 찝찝했다. 뭐지, 이 익숙하면서도 낯선 느낌은?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기다리고 있었다니, 절요?”



이라는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남자의 용모로 여성의 목소리를 하고 있는 그나, 이제 막 이 세계에 온 이라를 이미 알고 있던 것처럼 대하는 태도나, 여러모로 이상했다.


그때 이라가 눈을 번쩍 떴다.



“그러고 보니 제 이름은 어떻게······.”


“먼저 제 소개를 올리겠습니다.”



남자는 이라의 말을 부드럽게 일축하며 미소를 지었다. 할 말은 많은데 다 하지 못하고 답답해하는 그녀의 모습을 귀엽게 바라보다가 이내 남자는 송구스럽다는 듯 고개를 숙였다.



“저는 주신을 모시는 예언자, 제17대 프로페타입니다. 그냥 프로페타라 불러주십시오. 주신의 뜻을 받들어 이라님께서 바른길로 가실 수 있도록 인도하라는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이곳에서 이라님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이제부터······.”


“저, 저···잠시만요.”



프로페타의 공손한 태도에도 이라는 이런 갑작스러운 상황이 이해되지 않아 그가 더 말하려던 것을 막고 어지러운 머릿속을 열심히 정리했다. 그는 그것을 보고 살짝 웃었다.



“후후, 제가 다 설명해 드릴 테니 애써 유추하려고 하지 않아도 됩니다. 궁금한 점은 무엇이든 물어보십시오. 저는 이라님이 이라님인 것을 알고 있지 않습니까.”


“어라, 그러네요?”



이 세계에서 이라는 없는 존재이다. 하물며 자신과 똑같은 이안이 원래부터 이곳에 있었으니, 자신을 이라라고 불렀다는 것은 그녀의 사정을 다 아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이라는 그렇게 판단하고 프로페타를 똑바로 보고 말했다.



“아시는 것을 전부 말해주세요!”



프로페타는 절도 있게 고개를 숙였다.



“명 받들겠습니다.”



그들은 가까운 식당에 들어갔다. 저녁때라서 그런지 술을 마시며 왁자지껄 떠드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이런 곳일수록 말이 새나갈 위험이 적을 것입니다. 이라님께서는 괜찮으십니까?”


“네, 괜찮아요.”



둘은 가장 구석진 자리로 가서 앉았다. 간단한 요깃거리를 주문하고, 잠시 후 음식이 나오자 본격적인 이야기를 시작했다.



“궁금한 것은 무엇이든 물어보십시오. 하지만 저도 전부 다 아는 것은 아닌지라 충분한 답변은 못 해 드릴 수 있습니다. 그 점은 미리 양해 부탁드립니다.”


“네, 알겠어요. 그럼 먼저······.”



이라는 이곳으로 걸어오면서, 또 음식이 나오기를 기다리면서 정리했던 질문들을 다시 되새겼다. 그리고 그중 가장 궁금했던 것을 물어보았다.



“전 이곳에 왜 오게 된 거죠?”


“그건 저도 모릅니다.”


“······.”



이라는 프로페타의 단호한 말에 어이가 없다 못해 황당해져서 말을 잇지 못했다. 그는 이라의 반응이 웃긴지 쿡쿡 웃으며 다시 말했다.



“아아, 죄송합니다. 그렇게 눈을 빛내면서 물으시니 저도 모르게······.”


“···장난치지 말고 제대로 알려주세요.”



프로페타는 가까스로 웃음을 멈추고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하지만 모른다고 한 것은 사실입니다. 저같이 미천한 인간이 주신께 얼마만큼 중요하겠습니까. 그래서 그 안다는 것도 주신께서 제게 직접 알려주시는 것이 아니라 제가 깨닫는 것에 가깝습니다. 저희 프로페타들은 그것을 ‘알음 귀’라고 부릅니다. 어느 순간 이라님이 온다는 것을, 이라님을 만나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고, 지금 이 자리에 있게 된 것입니다.”


“흐음······.”



이라는 그의 아리송한 말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럼 제가 이곳에 오게 된 것이 바로 주신의 뜻이라는 건가요?”


“네, 그렇습니다.”


“그럼 주신은 뭐죠? 신들의 왕? 하느님?”


“신들의 중심, 이라고 하는 것이 가장 적합할 것 같군요. 신에게는 계급이 없습니다. 다만, 주신을 구심점으로 하고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주신께서 어떠한 뜻을 세우시면 거기에 동의한 다른 신들이 주신과 함께 그 뜻을 이루는 것으로 신계와 이 세상이 움직이고 있습니다.”



이라는 고개를 끄덕였다. 완전히 와 닿지는 않았지만, 그냥 납득하기로 했다. 프로페타는 그녀의 태도가 마음에 들었는지 살포시 웃었다.



“이라님께서 무슨 일로 이곳에 오시게 되었는지는 잘 알지 못하지만, 미력하게나마 아는 것이 몇 가지 있습니다.”


“그게 뭐죠?”


“이라님께서는 단순한 범인이 아니라는 것, 이라님께서 이곳에 오신 연유는 누군가를 돕기 위함이라는 것, 그리고 그 도움으로 인해 이 세계에서 가장 뒤틀린 무언가를 바로잡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뒤틀린 무언가?”



프로페타는 고개를 끄덕였다.



“제 생각에 그것은 말레교가 아닐까 사료됩니다.”


“말레교요?”


“혹시 ‘렐리 임페리아레’라고 들어보셨습니까?”


“!!!”



이라의 눈이 동그래졌다. 그녀는 설마 이안의 아버지가 한숨 쉬듯 말했던 그 단어가 프로페타의 입에서도 나올 줄은 몰랐기에 표정을 숨기지 못하고 몸을 움찔 떨었다.


작가의말

1화부터 다시 수정중입니다. 많이 늦었지만 다시 열심히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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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2부 6화 이초(離初) 2 +1 17.03.29 81 1 15쪽
17 2부 6화 이초(離初) 1 17.03.25 126 0 13쪽
16 1부 후기 17.03.23 121 0 5쪽
15 1부 5화 또 다른, 시작(2) 17.03.18 213 0 12쪽
14 1부 5화 또 다른, 시작(1) 17.03.15 174 0 13쪽
13 1부 4화 또다시, 기다림(5) 17.03.08 95 0 10쪽
12 1부 4화 또다시, 기다림(4) 17.03.05 760 0 15쪽
11 1부 4화 또다시, 기다림(3) 17.03.01 137 0 15쪽
10 1부 4화 또다시, 기다림(2) 17.02.25 157 0 13쪽
9 1부 4화 또다시, 기다림(1) 17.02.07 154 0 12쪽
8 1부 3화 그렇게, 만남(4) 17.02.04 186 0 12쪽
7 1부 3화 그렇게, 만남(3) 17.02.01 738 1 12쪽
6 1부 3화 그렇게, 만남(2) 17.01.28 155 1 16쪽
» 1부 3화 그렇게, 만남(1) 17.01.25 217 1 13쪽
4 1부 2화 그리고, 적응(2) 16.10.05 192 1 18쪽
3 1부 2화 그리고, 적응(1) 16.10.02 294 1 17쪽
2 1부 1화 마침내, 시작(2) +4 16.09.28 255 1 15쪽
1 1부 1화 마침내, 시작(1) +4 16.09.25 684 2 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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