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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어 님의 서재입니다.

이안(Due Cuori)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온어
작품등록일 :
2016.09.25 13:23
최근연재일 :
2017.03.29 02:30
연재수 :
18 회
조회수 :
4,743
추천수 :
9
글자수 :
109,729

작성
17.02.07 02:54
조회
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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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2쪽

1부 4화 또다시, 기다림(1)

DUMMY

“정말 가는 거야?”


“지금 출발해도 오늘 밤에나 도착하니 서둘러야 하오. 그러니 이제 가야 할 때요.”



레토는 늘 그렇듯 공손하게 고개를 숙였다.



“그동안 정말 고마웠소.”


“···수도로 간다고 했지?”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간결하고도 망설임 없는 대답에 이라의 심경은 복잡하기 그지없었다. 불과 일주일 전, 그녀는 레토에게 동행을 청했었다.



-레토. 그 복수, 내가 도와줄게.



그 말을 했을 때, 그녀의 기억 속에 있는 레토는 조금 놀라워하고 있었다. 그리고 고마워하면서도 슬퍼했다. 그는 짐짓 쓸쓸하게 웃었다.



-십 년 전 그날부터 지금까지, 그 도와준다는 진심 어린 말을 단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구려.


-그렇다면······!


-하지만 그 제안은 받아들일 수 없소.



레토는 꽤 단호한 어조로 말했다. 이라는 더 말하지 못하고 입을 다물었지만, 상당한 불만을 표정으로 말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얼굴에도 그는 자신의 말을 무르지 않았다.



-위험한 여정이 될 것이오. 아무 관계도 없는 그대를 끌어들일 수 없소.


-나도 내 몸 하난 지킬 수 있어!


-그건 알고 있소.


-······.



그렇게 말하니 또 할 말이 없어졌다. 그래도 그녀는 포기할 수 없었다. 이 세계에서 자신만이 할 수 있는 일일지도 모른다. 그것을 눈 뜨고 보기만 할 이라가 아니었다.



-그래도 내가 도움될 수도 있잖아. 어떻게 그렇게 단언할 수 있어? 내가 위험해질 거라고.


-내게도 동료가 있소. 그리고 그들은 무슨 일이 있어도 본인들 몸과 전투를 못 하는 나까지 지킬 수 있는 실력자들이오. 하지만 그대까지 지킬 수 있을 거란 장담은 하기 힘드오. 그리고 나의 선택으로 그대가 위험에 빠지게 된다면, 내가 그대를 어찌 본단 말이오.



레토의 어조는 다정하면서도 냉정했다. 그의 말은 지극히 이성적이어서, 이라에게는 그 말이 비수처럼 느껴졌다. 반박을 할 수 없으니 더욱 그랬다. 단순한 격투라면 모를까, 괴수와 싸우거나 상대를 죽여야 할 때가 온다면 자신이 과연 도움될지, 이라도 단언할 수 없었다.


레토는 반박하는 말을 멈추고 담담하지만 단호했던 표정을 풀어 생긋 웃었다.



-그래도 너무 아쉬워하지 마시오. 복수가 정말로 성공한다면 내 그대를 수도로 꼭 부르겠소.



이라는 레토의 얼굴을 뚫어지게 보다가 그의 표정이 변하지 않는 것을 보고 자신의 마음을 접어야 했다. 그녀는 욕심을 전부 털어내려고 한숨을 푸욱 내쉬었다.



-좋아. 약속하는 거다?



레토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뒤로 둘은 매일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이라는 그에게 자신의 정체를 숨겼기 때문에 대체로 레토가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식이었다. 지금까지 어떻게 살아왔는지, 가족들은 어떤 사람들이었는지, 우마니타교가 어떤 종교인지 등 그녀가 기억을 잃었다고 믿고 있는 레토는 아주 상세하게 설명해주었다.


그는 밝게 웃으면서 이야기했지만 때때로 그 깊은 슬픔을 숨기지 못했는데, 이라는 그것을 알면서도 모르는 척해주었다. 레토가 그렇게 한바탕 이야기를 쏟아내고 나면 후련한 표정을 지었기 때문에, 이라는 적당한 맞장구만 쳐주면서 귀 기울여 이야기를 들어주었다.


또한 종종 레토가 그녀에게 자신의 신성력을 보여주었다. 그 따스한 빛은 그 힘을 보인 장본인의 빛나는 머리칼을 연상시켰다. 이라는 그 힘을 볼 때마다 이곳이 판타지 세계임을 실감하면서도, 피부로 느껴지는 현실감과 그 힘이 제 것인 양 끌어당겨지는 친밀감이 낯설면서 익숙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그녀는 그 보답으로 체술에 약한 레토에게 간단한 호신술을 알려주고, 시종에게 부탁해서 직접 공수해온 단검도 선물로 주었다. 하지만 레토의 운동신경은 썩 좋지 않아서 배운 것들을 충분히 활용할 수 있다고 기대하기는 어려웠다.


그리고 어제, 웬일로 레토가 자신에게 찾아오지 않아 의아해하던 이라는, 오늘 아침 일찍 자신을 찾아온 그가 작별인사를 하자 드디어 올 것이 왔다는 생각을 했다. 이제 헤어질 때가 되었다. 그것을 자각하자 아쉽다는 말로는 다 설명하지 못할 감정이 그녀를 뒤덮었다. 불과 일주일간의 만남이었지만, 그들은 분명 서로에게 깊은 우정을 느끼고 있었다.


이라는 레토를 보았다. 그가 그녀를 아주 친근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하지만 망설임은 없었다. 정말이지, 당해낼 수가 없는 사람이다. 이라는 어쩔 수 없다는 듯 웃었다.



“나보다 두 살밖에 안 많으면서 세상 다 산 척하기는.”



너무나도 어른스러운 사람이다. 레토는 그녀가 중얼거린 말을 듣지 못하고 고개를 갸우뚱했지만,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아무것도 아니야. 그럼, 잘 가.”


“다시 볼 수 있을 터이니 조금만 기다려주시오.”


“응.”


“그때까지 몸조심하시오.”


“응, 너도.”



이라가 손을 흔들자 레토가 고개 숙여 인사했다. 이라가 자신에게 허락도 없이 반말한 것에는 아무런 주위도 주지 않은 주제에 끝까지 예의 바른 사람이었다. 그녀는 등을 돌리고 점점 멀어져가는 그를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곧게 이어진 길을 걸어가는 그가 작은 점이 되어 흔적도 없이 사라질 때까지 이라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레토의 모습이 더 이상 보이지 않게 되자 그녀는 그의 여정에 행운을 빌며 마을 입구로 되돌아갔다.



이라는 저택 안으로 들어갔다. 저택에서는 사람들이 이리저리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하루하루 활기차지는 저택의 모습을 보며, 그녀는 시간의 흐름을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일주일 전, 팔소에게서 온 세금고지서를 보고 이안의 아버지는 주위에 친한 남작들과 비밀리에 회의를 열었다. 그리고 세금을 조금이라도 줄이기 위해 여러 가주들의 지혜를 한 데에 모았다.


그렇게 나온 대안은 바로 그들끼리의 파티를 여는 것이었다. 아예 영지 내에서 축제를 벌여 자신들의 충성심을 입증함과 동시에 세금 감면을 요청할 수 있는 명분을 만들고 그 수익금을 황성에 바치는, 꽤 괜찮은 계책이었다.


영지에서는 벌써 일주일 째 축제를 즐기고 있었다. 그리고 내일, 귀족들은 주변 남작가 중 가장 큰 저택을 가진 이안의 프리모가에 다 같이 모여 축제의 마지막 밤을 즐긴다고 한다. 워낙 대대적으로 홍보해서 궁중 파티에 참석하지 않은 자작가나 백작가의 자제도 몇몇 참석한다고 한다.


오늘은 그 파티에서 입을 옷을 고르는 날이다. 이라는 기가 질리게 화려한 드레스들이 가득한 옷방을 떠올리며 벌써 머리가 아파져 왔다. 얼마나 인형 놀이를 할지 짐작이 가질 않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녀는 계단을 올라가 자신의 방 쪽으로 걸어갔다. 때마침 두 남자 시종이 옷걸이 하나를 어깨에 짊어지고 방 안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그 옷걸이에는 처음 보는 드레스들이 빼곡히 걸려 있었다. 그 장면을 본 이라는 방문 앞에서 주춤했지만, 그녀가 온 것을 알아챈 여러 시종의 손에 이끌려 결국 그토록 들어가기 싫던 옷방 안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그리고 이라는 벌써 질려버리고 말았다. 원래도 화려한 드레스가 가득 차 있던 방이건만, 그것보다 배로 화려한 드레스가 배로 불어나 그녀를 맞이하고 있었다.



“아유, 아가씨! 지금 오셨어요? 살펴볼 옷이 산더미라고요!”



한 여 시종이 호들갑을 떨며 이라에게 다가왔다. 그녀는 이 집에서 가장 오랫동안 일 해온 시종으로, 집사가 이안의 아버지와 같다면 이 여 시종은 어머니와 같은 존재다.



“···발리아, 이게 다 뭐죠?”


“뭐긴요~ 다 아가씨께서 입을 옷이죠!”


“파티 하나 하는데 이렇게 많이 준비할 필요는 없잖아요!”



이라는 어이가 없어져 살짝 성질을 냈다. 그러자 발리아가 “하여간 성질은······.”이라며 꿍얼거렸다. 그 말을 놓치지 않고 들은 이라는 발리아를 찌릿 째려보았다. 하지만 발리아는 딴청을 피우면서 그 눈빛을 피했다. 방 안에 있던 시종들은 저들끼리 킥킥거리며 그 모습을 훈훈하게 바라보았다.


이라가 이곳에 온 첫날, 이안의 파격적인 변화는 저택에 큰 파란을 불러왔었다. 그 일은 모든 시종의 입에 오르내리며 많은 소문이 잇따랐다. 처음에는 그것이 단순한 소문이라며 믿을 수 없다는 여론이 대다수였다. 하지만 하루 이틀, 시간이 지나고 많은 시종이 이안의 변화를 경험하고 나서야 기정사실이 되었다.


가장 먼저 태도에 변화가 온 것은 발리아였다. 그녀는 이라의 웃는 모습을 보자마자 눈물을 흘렸고, 그 뒤로는 거의 어머니처럼 그녀를 챙겨주고 있다. 발리아는 전형적인 백인 아줌마처럼 생겼는데도 이라는 그녀를 볼 때마다 본인의 어머니가 떠올랐다. 그래서 이라도 그녀를 원래부터 알던 사람처럼 친근하게 대할 수 있었다.


발리아는 드레스를 집어다 이라의 몸에 대보며 무엇이 어울릴지 가늠해보았다. 그 본격적으로 시작된 인형 놀이에 긴장감마저 돌았다. 그녀는 이것저것 살펴보다가 드레스 하나를 이라에게 건넸고, 이라는 일단 그것을 주섬주섬 받아들고 그녀를 보았다.



“한 번 입어보세요, 아가씨!”


“아······.”



이라는 자신의 손 아래에 있는 옷을 살폈다. 은은하게 빛나는 금빛 비단 치마 위에 별빛이 내려앉은 것 같이 사그락거리는 레이스가 풍성하게 뒤덮여 있었다. 이라는 시종들의 성화에 못 이겨 옷을 갈아입고 거울 앞에 섰다.



“······벗을래.”


“왜요, 아가씨~ 잘 어울리세요!”


“몰라, 이거 싫어.”



이라는 허물을 벗듯 드레스를 벗어젖혔다. 시종들이 아쉽다며 한숨을 내쉬었지만, 그녀는 뜻을 굽히지 않았다. 진심으로 온몸에 전구를 달아놓은 줄 알았다. 그대로 파티에 입고 나갔다간 파티장에 있는 전원이 실명해버릴 것이다. 이라는 그 과도한 화려함에 혀를 내둘렀다.


하지만 그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하나둘 이라의 허물들이 바닥에 쌓여갔다. 시종들은 바닥에 던져지는 드레스들을 안타깝게 바라보았지만, 이라는 거북스러워서 그런 것들을 도저히 입을 수 없었다.


그런데 발리아가 뒤적거리다가 어떤 드레스 하나를 한쪽으로 던졌다. 이라는 그것을 무심히 바라보다가 눈을 크게 떴다.



“잠깐만요, 발리아!”


“왜요, 아가씨?”


“방금 그 드레스 보여주세요.”


“이거요?”



발리아가 한 드레스를 들어 올렸다. 은빛 레이스가 드레스 전체를 뒤덮고 있는 하늘하늘한 드레스였다. 이라는 신경질적으로 고개를 저었다.



“그거 말고요!”


“설마···이거요?”



발리아가 인상을 찌푸리며 그녀에게 한 드레스를 보여주었다. 그러자 이라가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거! 지금 바로 입어볼게요.”


“하지만 이건······.”


“어서요!”



이라의 성화에 발리아는 어쩔 수 없이 그 드레스를 그녀에게 입혔다. 이라는 그 어느 때보다 적극적으로 움직여 그것을 입고 거울 앞에 섰다. 그리고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이걸로 할게요.”


“아가씨~”


“그만. 내가 이걸로 하겠다면 그런 줄 알아요.”



시종들은 다들 실망하는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하지만 이라는 그런 그들을 기세등등하게 바라보다가 다시 거울 속 자신을 보았다.


좋아. 이거면 입을 수 있겠어.


그녀는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당사자가 이러니 시종들은 어쩔 수 없이 마음을 접고 드레스에 어울릴만한 액세서리를 찾기 시작했다.


작가의말

새로운 화,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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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1부 5화 또 다른, 시작(1) 17.03.15 174 0 13쪽
13 1부 4화 또다시, 기다림(5) 17.03.08 96 0 10쪽
12 1부 4화 또다시, 기다림(4) 17.03.05 760 0 15쪽
11 1부 4화 또다시, 기다림(3) 17.03.01 137 0 15쪽
10 1부 4화 또다시, 기다림(2) 17.02.25 157 0 13쪽
» 1부 4화 또다시, 기다림(1) 17.02.07 155 0 12쪽
8 1부 3화 그렇게, 만남(4) 17.02.04 187 0 12쪽
7 1부 3화 그렇게, 만남(3) 17.02.01 738 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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