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온어 님의 서재입니다.

이안(Due Cuori)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온어
작품등록일 :
2016.09.25 13:23
최근연재일 :
2017.03.29 02:30
연재수 :
18 회
조회수 :
4,734
추천수 :
9
글자수 :
109,729

작성
16.09.25 13:25
조회
683
추천
2
글자
16쪽

1부 1화 마침내, 시작(1)

DUMMY

지금도 눈을 감으면, 여러 목소리가 자연스럽게 들려온다. 그것은 소녀 자신을 응원하는 것도 냉소하는 것도 아닌, 그저 단순하고 일방적인 야유이다.



-야. 쟤야, 쟤.


-쟤랑 같이 수업 듣기 싫어. 기분 나빠.


-학교 언제 그만둔대? 빨리 전학 갔으면 좋겠어.



웅성대는 목소리가 주위를 휘감는다. 그 웅성거림은 음산한 숲속에서 바람결에 잎사귀가 사락거리는 소리보다 더 소녀를 외롭고 두렵게 만든다.



-나는 곧 판타지 세계에 갈 거야. 가서 전 대륙을 여행하면서 드래곤도 만나고 엘프도 보고 몬스터들과도 싸울 거야!



어린 시절, 자신만만하던 소녀의 모든 말들은 그녀를 특이하면서도 재밌는 아이로 보이게 했지만 단 한 마디, ‘쟤 좀 이상해. 정신병자 같아.’라는 한 마디는 그녀를 이상한 아이로 만들었다.


그렇게 소녀는 어린 나이부터 자신을 숨기고 연기해야 했다. 이겨내기 위해서는 강해질 수밖에 없었다. 소녀는 기술을 배워 자신을 괴롭히는 자들에게 대갚음하는 법을 익혔고, 자신을 욕하는 무리에게 다가가 친근하게 말을 걸며 자신의 편으로 만드는 가면을 썼으며, 그 모든 것은 자신 스스로 내면에 가두는 것이 아니라 원래 그런 사람이기에 그런 행동을 하는 것이라고 스스로 최면을 걸었다.


그렇게 소녀는 추억이라 말할 수 없는 악몽에서부터 벗어날 수 있었다.



그 후 5년이란 세월이 흐르고 소녀가 18살이 되는 1월 추운 겨울날, 소녀는 병상에 누워 있었다. 정확히는 심한 독감으로 학교도 나가지 못하고 침대에만 누워 있는 신세였다. 소녀는 쉴 새 없이 잔기침을 해대며 땀을 잔뜩 흘리면서도 몸을 오들오들 떨었다. 풀려 있는 동공은 눈만 뜨고 있을 뿐, 초점을 맞추지 못하고 그 어느 곳도 바라보고 있지 않았다.



“이라야, 죽 먹자.”



그때 소녀, 이라의 어머니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하지만 그녀는 눈을 뜬 채 자기라도 하는 양 반응조차 하지 못했다. 그렇게 반송장처럼 누워 있는 이라를 보며 한숨을 내쉰 어머니는 그녀를 일으켜 앉혔다.



“뭐라도 먹어야 약을 먹지. 자, 입 벌리렴.”



이라는 그제야 어머니가 방으로 들어왔다는 것을 눈치채고 입을 달싹거렸다. 그러자 그녀는 이라의 입을 억지로 더 벌려 죽을 입 안으로 넣어주었지만, 턱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자꾸만 밑으로 떨어지는 바람에 목 뒤로 넘어가지 못한 죽이 입 밖으로 흘러내렸다. 어머니는 죽과 함께 가져온 휴지로 이라의 턱을 닦아주었다. 그러자 가만히 눈만 껌뻑이던 이라가 목을 쥐어짜 내어 말했다.



“엄마.”


“그래, 이라야. 왜 그러니?”


“미안······.”



다 타버린 장작에서 겨우 숨만 붙들고 있는 불씨처럼 아슬아슬하게 정신을 유지하고 있는 이라가 기름칠하지 않은 톱니바퀴가 돌아가는 소리로 겨우 한 말은 꽤 뜻밖의 것이었다. 어머니는 약간 놀랐지만, 그녀의 작은 목소리를 한 글자라도 놓치지 않기 위해 최대한으로 귀를 기울였다.



“내가 항상···이렇게, 아파, 서······. 금방, 나을게. 미안해······.”



선천적으로 몸이 약한 이라는 늘 질병을 달고 살았다. 어렸을 때부터 위험한 장난을 많이 부렸던 그녀는 다리나 팔이 부러지는 것은 예삿일이었고, 겨울에는 집이 동굴이라도 되는 듯 집밖에 나서지를 않았다. 개도 안 걸린다는 여름 감기는 기본, 평소보다 한두 시간만 덜 자도 몸이 골골댔다. 이라는 그런 자신의 몸이 늘 짜증스럽고 싫었지만, 또 한편으로는 부모님, 특히 어머니에게 미안한 마음이 컸다.


그랬기에 짧지만 진심 어린 그 말에 어머니는 코끝이 시큰해지는 것을 겨우 참아내고 생긋 웃었다. 그리고 이라에게 죽 한 숟가락을 더 떠먹였다.



“그럼 힘들어도 이거 다 먹어. 이렇게 심하게 아픈 건 오랜만이잖니. 힘내서 나아야지, 그렇지?”



이라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죽을 꿀꺽 삼켰다. 어머니는 그런 이라를 흐뭇하게 바라보며 죽을 더 떠주었고, 그녀는 어머니가 주는 대로 죽을 다 받아먹은 뒤 약까지 전부 먹고 다시 자리에 누웠다. 그러자 어머니는 머리를 한 번 쓰다듬어주고 나갔고, 다시 그녀만의 시간이 찾아왔다. 하지만 약 기운 때문인지, 아니면 배부르게 죽을 먹어서인지, 이라는 졸린 눈을 끔뻑이다가 곧 잠에 빠져들었다.



“헉!”



이라가 눈을 번쩍 떴다. 그러자 티끌 하나 보이지 않는 새하얀 하늘이 보였다. 이라는 몸을 벌떡 일으켜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낯선 그곳에는 그 무엇도 존재하지 않았다. 하늘과 땅이 구분되지 않을 정도로 새하얀 공간은 원래부터 존재 자체가 없었던 것만 같았다. 이라는 바닥을 더듬거리면서 겨우 일어났다. 그녀는 마치 공간이 자신의 몸을 옥죄는 것 같으면서도 자신이 허공에 떠 있는 것 같은 착각을 느꼈다.



“꿈인가······.”



한숨 쉬듯 내뱉은 말에 이라는 본인이 놀라 손을 목에 대었다. 목의 진동이, 자신의 목소리가 너무나도 또렷이 인지되자 자연스럽게 느껴지던 감각들이 오히려 생경했다. 꿈이라기엔 너무나도 생생한 이 ‘꿈’은 꿈이 아닌 것 같으면서도 꿈처럼 느껴졌다.



-······에······리.



갑자기 들려온 희미한 목소리에 이라는 또 한 번 주위를 둘러보았다. 하지만 그 목소리는 특정한 곳에서 나온 것이 아니었다. 공간 자체에서, 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었다. 이라는 또다시 목소리가 들려올 것을 직감하고 귀를 기울였다. 그러자 목소리가 또렷하게 들렸다.



-두에 쿠어리.



그 목소리에 눈이 번쩍 떠졌다. 그러자 눈앞에는 자그마한 은빛 꽃이 곳곳에 만발해 있는 숲속이 펼쳐졌다. 어둡게 내려앉은 숲속에서 오직 빛나는 것은 그 꽃뿐이었다. 그 빛을 전등 삼아 그 한가운데에서 짙은 흑발을 길게 늘어뜨리고 검은 눈동자를 반짝이며 땅바닥에 엎드려 개미들을 관찰하는 한 여인이 있었다.


얼굴을 알 수 없는 그 여인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이라는 아까까지만 해도 뚜렷하게 들리던 한 음성에 잡음이 낀 듯 잘 들리지 않았다. 그녀는 미간을 찌푸리며 귀를 기울였지만 소리는 계속해서 멀어져가는 느낌이었다. 다시 앞을 바라보자 풀밭에 개미가 줄지어 걸어가는 것이 눈앞에서 보였다. 손에서는 약간 축축한 흙과 바람결을 따라 팔을 간질이는 풀의 감촉이 느껴졌다.


어······?


그때, 누군가가 이라의 어깨를 확 잡았다.



“두에 쿠어리!”



이라는 깜짝 놀라 뒤를 휙 돌아보았다. 그러자 강렬한 햇빛이 바로 위에서 쏟아졌고 그 탓에 앞에 선 사람의 모습이 잘 보이지 않았다.


누구······.


이라는 그자의 얼굴을 잘 확인하려고 눈을 비비적거렸다. 그리고 눈을 번쩍 떴다.



“이라야!”



눈앞에는 또 다른 풍경이 펼쳐졌다. 눈을 두어 번 깜빡인 이라는 이곳이 자신의 방임을, 그리고 자신을 부르던 사람은 다름 아닌 자신의 어머니임을 알아차렸다.



“엄마······?”


“이라야, 너 괜찮니?”



이라는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그러다가 목에 무언가가 걸리는 느낌도, 그렇게나 자신의 몸을 뜨겁게 달구던 열도 사라졌음을 눈치챘다. 이라의 동공이 놀라움에 커졌다.



“어, 나 다 나았나 봐.”



그리고 몸을 일으켜 등을 침대 머리에 기댔다. 어머니는 이라의 갑작스러운 변화에 놀라워하다가 체온계를 가지고 오겠다며 밖으로 나갔다. 이라는 얼떨떨한 기분이 느껴져 한숨을 내쉬며 천장을 보았다. 그것은 대체 무슨 꿈이었을까. 그렇게 생생한 꿈은 여태까지 꿔본 적이 없었다. 일순 이곳이 낯설게 느껴질 만큼 그곳은 신비롭고 아름다웠고, 또 더없이 익숙했다. 뒷모습밖에 볼 수 없었던 그 여인도 너무나도 잘 아는 사람인 듯한 느낌이 들었다. 대체 이건 뭘까. 하지만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꿈속에서 보았던 그 광경들도 서서히 잊혀가는 듯했다.


그렇게 이라는 꿈을 잊어버렸다.



이틀이 지난 아침, 잠시 결석했던 학교를 다시 나가야 했기에 이라는 여느 때처럼 어머니가 깨우는 목소리를 들으며 이부자리에서 일어났다. 눈도 제대로 못 뜨고 머리만 벅벅 긁던 이라는 찌뿌둥한 몸을 일으켜 방 밖을 겨우 나섰다. 눈을 반쯤 감고도 용케 부엌에 이른 그녀는 자연스럽게 식탁 앞에 앉았다. 게슴츠레하게 뜬 눈으로 희미하게 보이는 것들은 아침마다 당연하게 보는 풍경이었다. 곧 식탁 위로 갓 푼 약간 진 밥이 놓이고, 이라는 일단 앞은 보려고 눈가를 찌푸리며 한쪽 눈만 슬며시 떴다. 하지만 간신히 뜬 눈으로는 숟가락도 제대로 잡지 못해 헛손질했다.



“어휴, 제대로 눈 뜨고 밥 먹어!”


“방금 일어났는데 어떻게 눈을 떠요?”



그녀의 잔소리에 이라는 툴툴거리며 숟가락을 들었다. 어머니는 “하여간 말이나 못 하면.”이라고 말하며 이라의 등을 찰싹 때리자, 국을 푸던 그녀가 깜짝 놀라 숟가락을 국 위로 떨어뜨리는 바람에 국물 몇 방울이 얼굴에 튀었다.



“아이, 엄마 때메 국물 튀었잖아!”


“어머, 그게 무슨 내 탓이니?”



그녀는 이라가 조금 전에 그랬던 것처럼 능청맞게 대꾸하며 반대편에 앉았다. 그러자 이라는 입술을 삐죽 내밀며 “말이나 못 하면······.”이라고 중얼거렸고, 그 말을 들은 어머니는 피식 웃으며 이라를 보자 이라도 그녀를 보며 씩 웃었다.



“누굴 닮아서 저런 게 태어났는지.”


“누구긴, 엄마지.”


“어우, 징그럽다, 징그러.”



그녀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이라를 외면했지만, 입가에는 장난기 어린 미소가 맺혀 있었다. 이라 역시 입은 삐죽거리면서도 눈은 웃고 있었다.


이라는 어느새 빛에 익숙해진 눈을 똑바로 뜨고 아까 먹지 못한 국을 펐다. 매끈한 아욱이 함께 떠져서, 그녀는 국을 후후 불고 입을 크게 벌려 후루룩 마셨다. 하지만 아욱이 미끄덩 목구멍으로 넘어가고 코끝에 희미한 된장 향이 감돌기도 전에, 그녀는 참을 수 없게 강한 자극을 느꼈다.



“컥, 푸읍!”



이라가 입안에 머금었던 국을 전부 뿜어버리는 바람에 턱부터 목 아래까지 국물이 흘러내렸다. 그녀가 엎어버린 국은 식탁을 흥건히 적시고 바닥까지 주르륵 흘러 떨어졌다. 그녀는 의자에서 반쯤 일어나 침을 퉤퉤 뱉으며 콧물, 눈물을 다 쏟아내고 있었다.



“무, 무울! 어마, 무우울!!”


“이라야, 괜찮니?! 잠깐만 기다려!!”



어머니는 급하게 물을 떠 이라에게 가져다주었다. 그녀는 컵을 뺏듯 가져가 숨도 쉬지 않고 물을 마셨다. 다 마신 컵을 식탁에 탁 내려놓은 그녀는 의자에 쓰러지듯 앉았다. 어머니는 엎어진 국을 닦아내며 이라의 눈치를 보듯 힐끔 보았지만, 그녀는 아무런 대꾸도 하지 못하고 고개를 숙였다. 그러자 어머니는 작게 한숨을 쉬며 걸레질을 계속했다. 된장 색이 제대로 나지도 않는 국의 잔해를 보며 미안한 감정이 불쑥 고개를 들었다. 자신 때문에 항상 입에 맞지도 않는 밍밍한 음식을 먹어야 하는 부모에게 죄책감을 가진 적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하지만 자신이 잘못한 것이니 미안해하지 말라던 어머니의 말이 떠올라 그 감정을 애써 눌러내고 이라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씻고 올게.”



“그래, 그러렴.”


눈가가 조금 촉촉해진 어머니의 눈을 외면한 이라는 도망치듯 욕실로 들어갔다.



요란한 아침을 보낸 이라는 한숨을 내쉬며 길을 걷기 시작했다. 잡다한 생각을 하며 걷는 발걸음은 습관처럼 학교로 향하고 있었다. 곧 머릿속을 어지럽히던 생각들이 뭉게구름이 되어 사라지고, 이라는 등교하는 일만이 입력된 로봇처럼, 무표정으로 땅만 바라본 채 정문에서부터 현관까지 이어진 먼 천릿길을 터벅터벅 걸어갔다. 마치 깊은 늪을 걷는 양, 그녀의 발걸음은 느리기 짝이 없었다. 아침의 사건은 잊은 지 오래였다. 이제 이라는 곧 시작될 학업이란 의무에 짓눌려 있는 평범한 학생일 뿐이었다. 하지만 한숨 쉴 여력조차 없었다. 그녀에게 있어서 학교에 가는 일은 무척이나 고된 것이었고, 매 순간이 긴박한 임무와도 같았다.


하지만 교실에 들어가자 그녀의 표정이 밝게 변하였다. 이미 삼삼오오 모여 이야기를 나누는 애들에게 그녀는 손을 흔들었다.



“안녕! 좋은 아침~”


“이라야, 왔어?”



몇몇이 그녀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조금 전까지 재미있게 나누던 이야기들을 이라에게도 자연스럽게 공유해주었다. 그 이야기에 이라는 맞장구를 쳐주며 때로는 인상을 찌푸리고, 때로는 하하 웃으며 친구들과 즐겁게 얘기했다.



몇 분이 지나고 선생님이 들어오자, 이라를 포함한 학생들은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그렇게 친구들을 등지고 자리에 가서 앉는 이라의 얼굴은 언제 웃었냐는 듯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이라는 이렇게 그 누구와도 정을 쌓지 않았다. 이라의 또래 여자아이들이 나누는 이야기는 그녀에게 있어서 시시하기 짝이 없는 것들뿐이었다. 어제 본 드라마 이야기, 연예인 이야기, 남자 이야기, 화장품 이야기, 인터넷에서 본 흥미로운 글에 관한 이야기. 그것들은 이라가 전혀 모르고 관심도 없는 것들임에도 이에 공감하지 못하면 이라는 늘 이야기에서 뒤처지게 마련이었다. 그래서 이라는 그들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고 잘 공감해주는 ‘시늉’을 하는 법을 익혔다. 하지만 그것은 매우 지치는 일이기에, 이라는 학교 밖에서 친구들과 어떠한 인연도 만들지 않고 있었다. 이렇게 심리적인 거리감을 두며 외톨이로 지내기 시작한 것은 너무 오래된 일이라 이젠 외로움과 소외감도 들지 않을 정도였다.



한때는 이것이 너무 지겹고 힘들어, 누구와도 인연을 맺지 않은 시절이 있었다. 그 시절의 이라는 학교에서 늘 혼자였었다. 아무도 그녀를 건들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그녀를 신경 써주는 사람도 없었기에, 이라는 자연스럽게 느껴지는 공허함을 일부러 안 느끼려고 무심한 척 넘어가곤 했었다. 선천적으로 몸이 약한 이라가 끊임없이 기침하며 거의 쓰러지려고 할 때도, 유인물을 나눠주거나 걷을 때도, 반에서 작은 이벤트를 열 때도 이라는 반에서 없는 사람 취급을 받았었다. 그것은 평범한 사람은 견디기 어려운 것이었고, 이라는 차라리 연기로라도 친구가 있는 편이 낫겠다는 생각을 하였다.



그렇게 이라는 새 학기가 될 때마다 자신에게 다가오는 사람에게 친절하면서도 친근감 있게 대해주었다. 그러자 그녀의 주위에는 자연스럽게 사람들이 모여들었고 그녀는 더는 강렬한 외로움을 느끼지 않게 되었다. 하지만 자신을 더 상처주지 말라는 듯, 이 이상은 다가오지 말라는 듯, 이라는 그들과 자신 사이에 벽을 만들었다. 그렇게 이라는 철저하게 혼자가 되었다.



조회시간이 시작되었다. 창가 자리에 앉은 이라는 늘 거기서 거기인 선생님의 말씀을 흘려들으며 턱을 괴고 창밖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넓게 펼쳐진 하늘이 아닌, 안전용으로 달아놓은 창살이 보였다. 청회색으로 살짝 덧칠해진 쇠창살은 하늘을 대신하기는커녕, 이곳을 감옥으로 느껴지게 했다. 이라는 그 창살이 우리를 위한 것인지, 그들을 위한 것인지 잠깐 머릿속에서 토론의 장을 열었다가 자신이 바보 같이 느껴져 그만두었다.



이라는 생각했다. 세상은 지루한 일투성이다. 지구가 내일 멸망해도 미련 따윈 없다. 하지만 아주 조금, 미련이 남아 있다면 자신의 이상향을 아직 이루지 못한 점이다. 판타지 세계. 자신이 실존한다고 절대적으로 믿으며, 아직 본 적도 들은 적도 없는 미지의 세계. 이라는, 누군가가 이 하릴없이 흘러만 가는 일상을 부수고, 자신을 그 모험의 세계로 데려가 줄 것이라고, 확신했다.



또다시 무표정. 이라는 종이와 펜을 손아래에 두고, 시선은 선생님과 칠판에 둔 채 기계적으로 필기했다. 수업하는 선생님의 장난스러운 농담에 소리 내어 크게 웃어보기도 했지만, 그것도 아주 잠깐이었다. 이라의 하루 대부분은 아무런 가치도 감정도 느껴지지 않는, 그저 그런 일상일 뿐이었다.


작가의말

이안, 시작합니다.

작가 블로그: http://blog.naver.com/smhwang97
작가 트위터: https://twitter.com/ona_fantasia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4

  • 작성자
    Lv.80 녹빛새벽
    작성일
    16.09.27 21:52
    No. 1

    중간에 아라가 독감걸려 누워있을때 "항상 아파서 미안" 이라고 하는 부분이 조금 이질적이네요. 독감이 아니라 난치병, 혹은 병약하단 느낌을 주는데 아라가 평소에 지병을 않는다는 부분이 안보여서, 독감도 잠깐 걸린걸텐데 하고 몰입을 조금 깨게 만드는것 같습니다. 초반부의 흥미유발이 조금 아쉽지만 잔잔하고 부드러운 분위기는 좋아요. 아직 한편밖에 못봐서 섣불리 뭐라 말하긴 어렵지만 뒤로 이어지는 내용을 좀더 보고싶단 생각이 들었습니다. 건필하세요!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5 온어
    작성일
    16.09.28 02:41
    No. 2

    의견 감사합니다! 그 부분에 대한 설명이 많이 부족했네요 ㅎㅎ;; 재밌게 읽어주셨다니 감사합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17 베네토
    작성일
    17.02.01 03:46
    No. 3

    제가 첫 선작인가요?ㅎ 뭔가에 첫번째가 되는 건 참 묘하면서도 기쁘거든요.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5 온어
    작성일
    17.03.18 13:20
    No. 4

    앗! 답이 늦었네요 ㅜ 선작 감사합니다 ㅎㅎㅎ 재밌게 봐주세요!

    찬성: 0 | 반대: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이안(Due Cuori)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18 2부 6화 이초(離初) 2 +1 17.03.29 81 1 15쪽
17 2부 6화 이초(離初) 1 17.03.25 126 0 13쪽
16 1부 후기 17.03.23 121 0 5쪽
15 1부 5화 또 다른, 시작(2) 17.03.18 213 0 12쪽
14 1부 5화 또 다른, 시작(1) 17.03.15 173 0 13쪽
13 1부 4화 또다시, 기다림(5) 17.03.08 95 0 10쪽
12 1부 4화 또다시, 기다림(4) 17.03.05 760 0 15쪽
11 1부 4화 또다시, 기다림(3) 17.03.01 137 0 15쪽
10 1부 4화 또다시, 기다림(2) 17.02.25 156 0 13쪽
9 1부 4화 또다시, 기다림(1) 17.02.07 154 0 12쪽
8 1부 3화 그렇게, 만남(4) 17.02.04 186 0 12쪽
7 1부 3화 그렇게, 만남(3) 17.02.01 738 1 12쪽
6 1부 3화 그렇게, 만남(2) 17.01.28 155 1 16쪽
5 1부 3화 그렇게, 만남(1) 17.01.25 216 1 13쪽
4 1부 2화 그리고, 적응(2) 16.10.05 192 1 18쪽
3 1부 2화 그리고, 적응(1) 16.10.02 294 1 17쪽
2 1부 1화 마침내, 시작(2) +4 16.09.28 254 1 15쪽
» 1부 1화 마침내, 시작(1) +4 16.09.25 684 2 16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