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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나이 님의 서재입니다.

무신은 학관을 경영한다.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판타지

하늘나이
작품등록일 :
2023.08.01 18:06
최근연재일 :
2023.08.18 16:20
연재수 :
15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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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글자수 :
78,330

작성
23.08.02 1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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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여기부터 시작이다(3)

DUMMY

여기부터 시작이다(3)


투욱!


나무판과 기둥을 엮어 만든 표지판을 밖에다가 박아 넣는다.


- 관원 모집 중 -


표지판에 쓰인 글귀였다.


“이 정도면 됐겠지?”


기분이 좋았다. 이렇게 글까지 써서 팻말을 박아놓으니 뭐라도 시작한 기분이었다.


금방이라도 관원들이 모일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아무도 안 올 것이오.”


갑작스러운 말이었다. 나의 기분을 깬 그 목소리에 나는 고개를 홱 돌렸다.


“말복 아재가 시키는대로 했잖아.”


팻말을 만드는 것부터 밖에다가 설치하는 것까지, 이것은 모두 말복 아재한테 나온 생각이었다.


처음이 중요하다면서 시킨 일이기에 했건만, 갑자기 아무도 안 올 거라니!


기분 좋게 시작했지만, 바로 열정을 식게 만드는 한마디였다.


“일단, 지나가는 사람들한테 알리기라도 해야 해서 설치한 것뿐이오.”


“그럼 지나가다가 관심 있는 사람들은 들어오겠네.”


“없을 것이오.”


결국 나는 소리칠 수밖에 없었다.


“아니 그러니까 왜 없는데!”


“생각해보시오. 건물도 없고, 관원들도 없소. 이런 곳을 누가 찾는단 말이오. 객잔도 요리를 잘하고 멋들어지게 지어놓은 곳에 손님이 몰리는 법이오. 하지만 우리는 그런 게 아무것도 없지 않소.”


수없이 안되는 이유를 드는 그의 말에, 나는 결국 별다른 반박을 찾지 못했다.


내가 가장 잘하는 것이 무공이기에, 남을 가르치는 학관을 생각한 것이었건만, 생각할 게 이리도 많다니.


갑자기 불어난 문제들에 정신력이 갉아 먹히는 기분이었다.


“그럼... 어떻게 하자고...”


말복은 별거 아니라는 듯, 대답했다.


“당연히 관원을 가르치고 모아야지요.”


나는 순간 울화가 치미는 것을 느꼈다.


“그러니까! 팻말로는 안 된다며! 어떻게 모을 거냐고!”


“일단 춘복이를 가르쳐야 하오.”


“춘복이를 가르쳐?”


말복이가 진지한 눈으로 나를 쳐다보며 크게 외쳤다.


“잘 키운 제자 하나가 학관을 먹여 살리는 법이지!”


쾅쾅쾅!


말복이의 등 뒤로 화산이 터지는 듯한 환상이 보이는 것 같다.


자신 있게 말하는 말복이의 말에 나는 점점 빠져들고 있음을 느꼈다.


“우리는 춘복이를 먼저 키워, 학관의 얼굴이 되게 할 것이오. 그리고 춘복이를 홍보함으로써 관원을 모으는 것이지!”


열정을 넘어선 광기마저 서린 그의 눈빛에 압도되는 느낌을 받을 정도였다.


“그러니! 우리는 춘복이를 아~주! 아주 잘 키워야 하오!”


꿀꺼억.


나도 모르게 침이 삼켜진다.


그런 말복이가 내게 속삭이듯 말했다.


“자신 있으시오..?”


나는 숨을 참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에 말복이 빙긋 웃더니 말했다.


“그럼 지금 바로 해보시오.”


“지금?”


“그럼 내일 시작하려고 했소?”


나는 빠르게 고개를 저었다.


말복이가 손가락으로 마당을 가리키며 말했다.


“지금!”


그의 행동에 나는 재빠르게 마당으로 향했다. 그 뒤를 춘복이가 따른 채였다.


* * *


어정쩡하게 춘복이의 앞에선 나.


맞은편에 있던 춘복이는 무릎을 꿇고서 내 말을 경청하고 있었다.


뭔가 시작은 이상했지만, 학관을 설립하기로 한 이상 제대로 해볼 생각이었다.


나는 춘복이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자! 무공에서 가장 중요한 건 기본자세다.”


“기본 자세유?”


“그래. 뭐... 다른 놈들은 체력을 길러야 한다느니, 근력을 길러야 한다느니 말하지만, 그런 건 다 개소리니까 무시해라.”


춘복이가 나의 말에 열정이 담긴 눈빛으로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무공을 배운다는 말에 아까부터 쭉 저런 상태였다.


‘자식. 무공을 배운다는 게 그렇게 좋은가?’


하지만 처음부터 그에게 고절한 무학을 가르칠 수는 없었다.


형을 가르치기에 앞서서 춘복이의 몸을 먼저 살피고 완벽한 상태로 맞춰놔야 하기 때문이다.


“춘복아 너는 무슨 손잡이냐?”


갑작스러운 나의 질문 때문일까? 춘복이가 뜬금없는 얼굴을 했다.


“무슨 손잡이라니유? 갑자기 그게 무슨 말이에유?”


나는 별거 아니라는 듯, 말했다.


“아니, 어떤 손을 주로 사용하냐고.”


나의 질문에 춘복이가 당연하다는 듯, 오른손을 들어 보였다.


“당연히 오른손 아니겠어유?”


“발은?”


이번엔 춘복이가 오른발을 앞으로 내밀었다.


“오른발이에유.”


“그렇군... 역시...”


춘복이가 궁금하다는 얼굴로 되물었다.


“왜 그러는 거에유?”


나는 그런 춘복을 바라보며 말했다.


“내가 처음에 무공에서 뭐가 가장 중요하다고 했지?”


“기본 자세유!”


“그렇지. 기본자세다. 하지만 내가 말하는 기본자세는 무공의 자세가 아니라 너의 자세를 이야기하는 거다.”


“저유?”


춘복이가 검지로 스스로를 가리키며 아리송한 얼굴을 했다.


“그래. 너. 이제부터 너한테 한 가지 숙제를 내려주마.”


숙제라는 말에 춘복이가 화들짝 놀랐다.


“숙제유? 뭔데유?”


“너는 지금부터 왼손만 사용한다. 그리고 걸을 때도 일자로 제대로 걷는 것을 연습해야 한다.”


“갑자기 그게 무슨 말이에유. 오른손잡이인데, 갑자기 왜 왼손만 쓰라고 한데유.”


나는 한숨과 함께 고개를 숙였다.


‘아.... 하나하나 설명하기 너무 짜증나...’


끊임없이 질문을 해대는 아이들을 상대하는 선생들의 노고가 느껴진다.


그들이 얼마나 위대한지 몸소 느끼는 순간이었다.


‘그냥... 포기할까?’


라는 생각이 불현듯 머릿속에 떠오를 정도였다.


내가 스스로 할 때는 몰랐는데, 남에게 알려주자니, 너무 귀찮은 것이었다.


‘아.... 내가 직접 하는 것과 설명하는 게 이렇게 다르다니....’


“하아...”


이것을 어디서부터 설명할까 고민할 때였다.


“혹시 왜 그런지 이유를 알 수 있겠습니까?”


뒤에서 지켜보던 말복의 질문이었다.


학관을 만들기로 하고, 나를 관주로 따르기로 한 이상, 존댓말을 쓰기로 한 것이다.


내가 괜찮다고 누차 말했지만, 서열상 상하관계는 매우 중요하다며 반드시 초장부터 제대로 잡아야 한다고 외쳤었다.


그래서 결국 나도 포기하고 말없이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그런 말복이도 궁금한지 묻는다.


나는 결국 한숨과 함께 입을 열었다.


“사람의 몸은 습관이라는 놈에 아주 약해.”


“습관이유?”


“그래. 사람은 저마다 어렸을 때부터 커오면서 자기만의 습관을 만들기 마련이지. 그럼 자기도 모르게 그 습관에 길들어져서 불균형이 생기게 돼.”


“오호! 불균형!”


무엇인가를 깨달은 것인지, 말복이가 다급히 말했다.


“그래서 어느 손을 주로 쓰는지 물어본 것이군요! 하나만 주로 쓰다 보면, 필연적으로 반대쪽보다 근력이 더 세질 수밖에 없으니 말이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그래서 나는 이 불균형을 먼저 맞추고자 해. 아니 정확히 말하면 습관에 치우치지 않는 몸을 만들려고 하지.”


“습관에 치우치지 않는 몸?”


마당을 쓸며 눈치를 보던 똘복이도 어느새 가까이 다가와 대화를 듣고 있었다.


“너는 왜 왔냐?”


갑작스러운 나의 말에, 똘복이가 화들짝 놀라며 재빠르게 대답했다.


“그... 저도 궁금해서....”


정말로 궁금한 것인지 그의 눈빛이 초롱초롱하다. 나는 눈을 감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 어차피 너한테도 기본은 알려주려고 했으니까 옆에서 같이 들어라.”


순간 똘복이의 얼굴에 감동이 서리기 시작했다.


“저... 저한테도 말입니까?”


“그래. 그러니까 너도 집중해서 잘 들어.”


“감사합니다!”


직각으로 고개를 숙인 똘복이도 이내 가지고 있던 빗자루를 옆에 조심스럽게 내려놓더니 무릎을 꿇고는 내 설명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나는 그런 둘의 모습에 피식 미소를 짓고는 말을 이었다.


“너희들의 말린 어깨라던가, 틀어진 골반, 뼈의 위치는 내가 언제든지 원래대로 맞춰줄 수 있어. 하지만 아무리 그렇게 해서 내가 완벽한 신체로 만들어 준다 해도, 너희들이 습관을 고치지 않으면, 몸은 언제고 다시 처음 그때로 돌아갈 거야.”


모두가 뭔가 깨닫기라도 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 지금부터 너희들이 해야 하는 것은 가지고 있던 습관을 버리고 고치는 거야. 오른손이 익숙하면 왼손을 쓰고, 어깨가 말려 있다면 뒤로 빼고 가슴을 펴는 거지. 그게 내가 내린 첫 번째 숙제야. 그게 제대로 돼야 다음으로 넘어갈 수 있어.”


더 이상 질문은 없었다. 다만 크게 대답할 뿐이었다.


“알겠어유!”


“알겠습니다!”


“알겠습니다!!”


그렇게 셋은 열정이 담긴 외침과 동시에 자리를 벗어났다.


그런 그들 사이에 나의 시선은, 춘복과 똘복이 아닌 말복아재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데... 말복아재는 왜 고개를 끄덕인 거야?’


그때는 몰랐다. 말복아재 또한 무공에 관심이 그렇게 많을 줄은....


* * *


한 달이란 시간이 지났다.


그런 우리 무신학관에도 변화가 찾아왔다.


우적우적.


넷이서 짚 위에 앉으며 바가지에 담긴 밥을 먹는다. 정체를 알 수 없는 반찬들과 보리가 담겨 섞어진 밥이었다.


보기엔 개밥처럼 보이지만, 맛은 그렇게 나쁘지 않았다.


‘처음엔 이걸 어떻게 먹나 했는데....’


이곳에서 지내면서 처음으로 식사에 대한 걱정을 해봤다.


밥을 어떻게 구해야 하나 고민했다. 하지만 그런 내 걱정이 마치 기우라는 듯, 말복을 비롯한 똘복이와 춘복이가 구걸하면 된다는 말에 나는 재빠르게 고개를 저었다.


‘무신의 체면에 구걸이라니! 말도 안 되지.’


하지만 결국 나는 할 수밖에 없었다.


난생처음 해본 구걸.


‘돈 좀.... 주... 크으으윽 못하겠다.’


그날 나의 수입은 빵원이었다.


춘복이와 똘복이, 말복이는 각각 철전 다섯 푼, 일곱 푼, 식은밥과 반찬들을 챙겨오며 득의양양한 얼굴로 나를 내리깔아봤다.


그때의 패배감이란....


그런데 이것도 처음에만 어렵지, 한 번 해보니 두 번은 쉬웠고, 세 번째는 더더욱 쉬웠다.


이제는 내가 관주인지 거지인지도 구분이 안 될 정도였다.


‘아니지! 나는 무신학관의 관주다!’


그런식으로 스스로의 정체성을 다시 한번 자각하고는 본래의 임무(?)로 돌아가기 일쑤였다.


나는 밥을 먹는 셋을 쳐다봤다.


이제는 제법, 왼손을 오른손처럼 쓸 수 있게 된 그들이었다.


어디를 이동할 때도 허리와 가슴을 펴고 제대로 걸었다.


‘이 정도면 되겠는걸?’


이제는 다음 차례로 넘어가도 될 듯했다.


나는 밥을 다 먹은 후에, 춘복이와 똘복이를 데리고 마당으로 나왔다.


저벅저벅.


먼저 나와 뒤를 돌아보니, 그곳엔 춘복과 똘복 이외에 한 사람이 더 있었다.


“으잉? 말복아재는 왜 나와?”


“저도 견문을 넓히고자...”


“무슨 견문? 말복아재는 우리 무신학관을 어떻게 키울지 대책을 마련해야지.”


“말했지만... 춘복이를 먼저...”


“그래. 그래. 그 춘복이는 내가 알아서 키울 테니까 그 후로 어떻게 할 건지 대책을 마련하라고.”


“크흠... 저도 같이 보면 안될....”


“안돼.”


“어떻게 좀...”


“대책을 마련해 가지고 오면 볼 수 있게 해줄게.”


“끄응....”


말복이가 고개를 숙인다. 몸을 부들부들 떠는 것이 못내 분한가 보다.


하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나는 학관을 경영하는 능력이 없다.


할 줄 아는 건 무공이 전부이다.


그러니 경영에 대해 그나마 아는 사람인 말복이가 지금은 고생할 수밖에 없었다.


‘사실 무공이야 배우기 시작하면 금방 실력이 늘 테니 말이지.’


암암. 누가 알려주는 것인데.


그래서 지금은 무공보다 경영에 힘써줄 사람이 더욱 필요했다.


‘그게 말복아재고.’


아쉬워도 어쩔 수 없었다. 말복 아재는 지금 경영을 담당해야만 했다.


말복아재가 고개를 숙이고 처량한 모습을 한 채 방으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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