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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나이 님의 서재입니다.

무신은 학관을 경영한다.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판타지

하늘나이
작품등록일 :
2023.08.01 18:06
최근연재일 :
2023.08.18 16:20
연재수 :
15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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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글자수 :
78,330

작성
23.08.01 1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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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인연(1)

DUMMY

인연(1)


터벅터벅.


힘없는 걸음이 저잣거리를 거닌다.


감옥처럼 느끼던 초옥을 빠져나온 것도 벌써 몇 년은 된 것 같다.


그 사이에 무림에는 여러 소문이 퍼진 것 같다. 그중에서도 단연 이슈인 것은 무신의 죽음이었다.


그런 소문이 퍼질 때가 돼서야 나는 비로소 미소를 지었다.


작전이 잘 통했다는 생각에서였다.


“크크크. 그놈들. 아마 내가 죽었다고 믿으니까 그런 소문을 퍼트린 거겠지?”


혼자서 음침한 목소리로 웃는 것 때문일까? 저잣거리를 거닐던 사람들이 굳은 얼굴로 나를 피했다.


“크크크크. 진작에 이렇게 했어야 했는데.”


왜 그동안 시체 만들 생각을 하지 못했을까, 스스로를 자책해본다.


하지만 아무리 후회해봤자 지나간 시간은 돌아오지 않는다.


나는 결국 생각하기를 포기하고는 지금의 들뜬 감정을 즐기기로 했다.


삼 년이다! 자그마치 삼 년!


나의 눈치를 보던 무림 놈들의 눈을 속이고 잠적한 시간 말이다.


이 정도의 시간이 흘렀으니, 더 이상 무신에 대한 기억은 떠올릴 수 없을 거라 판단했다.


그래서 나왔다.


어디서 나왔냐고?


동굴에서다.


나는 그동안에 무림 놈들을 속이기 위해 이름 모를 산에서 굴을 파놓고 생활을 했다.


다시 말하지만, 그게 자그마치 삼 년이다.


덕분에(?) 전에 입고 있던 백의는 흑의가 아닌가 착각이 될 정도로, 더럽고 군데군데 찢어져 있었다.


아마 지금의 모습이라면 개방의 거지들도 불쌍하다며 동전이나 먹을 것을 던져줄 것이다.


보라. 지금도 내 주위로 거지 두 명이 나를 살펴보고 있지 않은가?


앞에 있던 중년 거지가 나를 게슴츠레 쳐다보더니 말한다.


“춘복아. 어찌 이놈이 우리보다 더 거지 같냐?”


관리되지 않은 수염에 땟국물이 흐르는 손을 연신 빨아 재끼는 남자, 손가락이 입안에 들어갔다 나올 때마다 손가락이 번들거렸다.


춘복이를 부르던 거지의 말에, 옆에 있던 어린 거지가 재빠르게 대답했다.


“그러게 말이에유. 이런 행색이면, 웬만한 소거지(小居地) 열 놈이 구걸하는 것보다 더 벌어올 수 있을지도 몰라유.”


춘복의 말에 중년 거지가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이더니, 뭔가 결심한 듯 입을 열었다.


“이놈. 우리 집으로 데려가자.”


갑작스러운 그의 말에 오히려 놀란 것은 나였다.


나는 손을 내저으며 다급히 말했다. 아니 정확히는 말을 하려고 했다.


“이봐... 뭔가 오해가 있는 거 같은데 나는 거지가 아니....”


“거지가 아니긴 뭐가 아니에유! 지금의 모습! 그리고 씻지 않은 얼굴! 이것만 봐도 거지 중에 상거지가 다름없구만유!”


나는 그들의 말을 부정하기 위해 열심히 손을 흔들었지만, 그들은 거짓말하지 말라며, 오히려 내 손을 붙잡고는 이끌기 시작했다.


그렇게 나는, 의도와 상관없이 그들을 따라가게 됐다.


그들의 손에 이끌려 걷다 보니 어느새 광장을 벗어나 있었고, 어느 후미진 골목길에 들어서게 됐다.


저벅저벅.


골목에 들어서자 나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주위로는 무너진 건물과 먹지 못해 뼈만 남은 사람들이 즐비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내가 가는 골목길은 한 번으로 끝나지도 않았다.


벌써 몇 번이나 서로 다른 길을 지났는지 모르겠다.


지금까지 살아오며 골목들이 이렇게 수없이 얽혀있다는 것은 또 오늘에서야 깨달았다.


이제는 처음 들어왔던 길이 어디였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을 정도였다.


그렇게 나는 그들의 손에 이끌려 수많은 길을 지나쳤고, 결국 그들이 원하는 목적한 곳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곳에 들어서자 중년 거지가 득의양양한 목소리로 한껏 외쳤다.


“어떠냐? 이게 우리 집이다! 엄청나지 않느냐?”


하지만 나는 그의 말에 함부로 대답할 수가 없었다. 말이 안 나왔다는 게 더 정확한 표현일 것이리라.


“참... 이게...”


그들이 말한 집을 본다.


이내 시선을 돌려서 웃고 있던 중년 거지와 춘복이라는 놈의 얼굴을 봤다.


미소를 짓는 그들은 행복해 보였다.


하지만 나는 아니다.


‘이게 무슨 집이야?’


다시 집을 본다. 아무리 봐도 한숨밖에 나오지 않는 구조이다.


터를 보면, 분명 이곳에 집이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것은 ‘있는 것 같기도 했었다’라는 것이다.


있. 는. 것. 같. 기. 도. 했었다고!


이미 집이라 부를 수 있는 구조물은 사라진 지 오래다.


천장은 어따 팔아먹었는지 뻥 뚫려있었고, 방과 방을 나눌 벽은 다 무너져 존재치 않았다.


남은 건 방의 벽이었을 무너진 돌무더기가 전부였다.


‘이런 곳에서 산다고?’


차라리 전에 내가 파놓은 굴이 더 나을 지경이었다.


적어도 비는 피할 수 있으니까.


하지만 그들은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저 웃으며 나를 안내할 뿐이었다.


“어떠냐? 어서 들어오거라.”


중년 거지가 방(?)이었을 공간으로 먼저 들어가 앉는다.


다른 곳과 차이라면 방과 밖을 구분하기 위해서인지 짚들을 깔아놨다는 정도였다.


나는 한숨과 함께 고개를 저었다.


나는 절대로 이런 곳에서 살 수 없다.


안 그래도 굴에서 방금 나온 참이다.


아무리 내 상태가 지금 거지처럼 보여도 이건 아니었다.


지금 다시 초옥에만 돌아가도 내가 만들어놓은 비밀 공간에 금이 반 관이나 넘게 쌓여있다.


단지 바깥 공기를 빨리 마시고 싶었기에, 금을 챙기지 않고 나온 것뿐이다.


나는 그것들을 다시 챙겨야만 했다.


집으로 돌아갈 결정을 내린 나는 얼른 몸을 돌렸다.


이 녀석들과의 인연은 이 정도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아니, 솔직히 인연이랄 것도 없다.


그저 저놈들이 저잣거리에서 나를 발견했고, 내 의사와는 상관없이 나를 이곳으로 끌고 온 게 전부였으니.


도움을 받은 것도 없다.


‘오히려 도움이라면 내가 줄 판이지.’


하지만 난 저들을 도울 생각이 전혀 없었다.


생각해보라. 방금 만난 자들이다. 그리고 일방적인 이끌림에 따라왔을 뿐이다.


저들과 유대감을 형성하기엔 너무나 짧은 시간이었다.


‘깊은 관계로 남고 싶지도 않고.’


삼 년이라는 시간을 굴에서 버티며, 하고 싶은 것을 하나씩 적어 꿈을 꾸던 게 바로 전이었다.


많은 것을 적었지만, 그것 중에 거지처럼 사는 것은 존재치 않았다.


나는 짧게 말했다.


“나는 이만 돌아가 봐야겠다.”


그 말과 함께 걸음을 떼려 하자, 뒤에서 작은 손 하나가 나타나 내 옷깃을 붙잡는다. 살짝만 힘줘도 부서질 연약한 손이었다.


피하거나 받아치는 것도 가능했지만, 굳이 그렇게 하지는 않았다.


이 손의 주인이 누구인지 아는 까닭이다.


하지만.


부욱!


“응?”


“오잉?”


“자... 잘못했어유!”


나는 허망한 눈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곳엔 한땐 백의였을 소매를 든 춘복이가 있었다.


놀란 표정으로 재빠르게 고개를 숙이는 그였다.


눈을 질끈 감은 것이 정말로 미안한 얼굴이긴 했다.


한편으로는 안쓰럽기까지 했다.


딱 봐도 저런 자세를 취하는 것이 한두 번 해본 솜씨는 아니다.


아마, 구걸하며 모진 꼴을 많이 당한 까닭이겠지.


고개를 숙인 춘복의 뒤로 중년의 거지가 보였다.


그도 처음엔 꽤 놀란 표정이었지만, 이내 표정을 굳히고는 걱정스러운 얼굴로 이쪽을 쳐다봤다.


그한테서도 상대방의 화를 같이 감당하겠다는 의지가 전해졌다.


그들의 모습에 나는 피식 미소를 지었다.


그들의 눈에는 내가 그들보다 더한 거지처럼 보였어도, 그들은 나를 무시하거나 업신여기지 않는다.


세상 밑바닥에 있는 자들도 서열이 있을진대, 이들은 더한 거지행색(?)을 한 나를 보고도 자신이 벌인 잘못을 먼저 깨닫고 고개를 숙이는 이들이었다.


그런 이들한테


‘암암. 뭐라고 할 수는 없지.’


물론 이렇게 편한 마음을 먹는 이유도 있긴 있다.


‘집으로 돌아가면 황금이 나를 반기는데 이런 옷쯤이야.’


나는 미소와 함께 춘복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얼마나 씻지 않았는지, 머리에 올린 손에 기름이 덕지덕지 묻어나왔지만, 나는 애써 미소를 지었다.


“괜찮다. 이런 옷은 또 사면 되니까.”


나의 말에 안심한 것일까? 춘복이가 빠르게 고개를 들더니 놀란 얼굴로 말했다.


“오... 옷을 산다고유? 거지가 돈이 어디에 있어서 옷을 산다는 거유! 이거는 내가 어떻게든 꿰메서...”


“됐다니까.”


나는 춘복이의 기름진 머리를 한 번 더 쓰다듬어 준 후, 중년 거지에게 말했다.


“진짜로 나는 괜찮소. 그러니 걱정하지 마시오. 춘복이한테도 죄를 묻지 않을 테니.”


중년 거지의 표정이 그제야 풀어진다. 그러고는 내게 다가왔다.


“네가 돈이 있다는 건 믿지 않지만, 그렇게 계속 말하는 걸 보니, 가야 하는 곳이 있긴 있나 보구나.”


나는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나의 행동에 중년 거지가 춘복이의 어깨를 붙잡고는 부드러운 얼굴로 말했다.


“옷도 필요 없다고 하니, 이대로 보내는 게 어떻냐?”


“하지만....”


“안다 알아. 짧은 시간이지만 잠시 만난 이놈이 걱정되는 것이겠지?”


춘복이는 말이 없었다. 다만 고개만 끄덕일 뿐이었다.


그 모습에 중년 거지가 부드러운 얼굴로 나를 쳐다보며 말했다.


“이놈이 아직 어려서 남한테 정을 쉽게 줘. 그러니, 혹시 일이 끝나거나.... 잘 안되면 춘복이를 만나러 한 번쯤은 이곳에 더 와줄 수 있겠나?”


그의 말에 나 또한 마주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안 그래도 돌아가서 황금을 찾게 되면 이곳에 들려서 금자 몇 개를 던져줄 생각이었다.


처음에는 그럴 생각이 없었지만, 춘복이와 이 중년 거지가 보여준 모습이 왠지 나를 따뜻하게 만든 까닭이다.


나는 그렇게, 아쉬워하는 소년과 그를 달래는 중년 거지를 뒤로한 채, 그곳을 빠져나왔다.


잠시지만 그들이 보여준 모습에 기분이 좋아진 나는 골목길을 느긋하게 걸었다.


그렇게 얼마나 걸었을까?


골목 입구에서부터 일련의 거지들이 뭉쳐서 다가오는 게 보였다.


“분명 오늘까지 자리를 넘기랬는데, 말복이 그놈이 아직도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단 말이지?”


가장 앞서서 걷는 거지의 말이었다. 그는 다른 거지들보다 식사를 잘 챙겼는지 덩치가 조금 더 커 보였다.


으름장 같은 그의 말에, 뒤에서 눈치를 보고 있던 다른 거지 하나가 재빠르게 대답했다.


“맞습니다!”


“분명 오늘까지 나가라고 한 나의 말은 잘 전달했던 거겠지?”


“물론입죠!”


“그런데 감히 나의 말을 무시했다? 나를 무시한 건 우리 구걸이파를 무시한 거라고! 더 이상 이 산서 땅에서 구걸 따윈 못하게 만들어주지.”


한껏 성을 내는 대장 거지의 말에, 뒤에 있던 거지들도 덩달아 고개를 끄덕이더니 한껏 표정을 굳히며 그 뒤를 따랐다.


그들은 그렇게 나를 지나쳐 골목 쪽으로 사라졌다.


“흐음...”


그들의 말을 들어서인가? 왠지 모를 불길함이 느껴졌다.


하지만 나는 이내 고개를 내젓고는 마지막의 불안을 없애기 위해 골목을 빠르게 빠져나갔다.


내가 갈 곳은 정해져 있었다.


나는 미소와 함께 앞을 향해 쏘아졌다.


목적지는 나의 금들이 묻어져 있는 초옥의 비밀 공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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