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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만은 님의 서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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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만은
작품등록일 :
2016.10.03 09:08
최근연재일 :
2019.01.03 20:30
연재수 :
505 회
조회수 :
359,845
추천수 :
5,086
글자수 :
1,239,628

작성
18.09.16 18:48
조회
117
추천
2
글자
6쪽

옥상에서의 휴식.

DUMMY

한서준은 카운터에 앉았다.

"뭘 드릴까요?"

철로 만든 뼈대에 플라스틱 껍질을 덮은 기역자형 카운터 뒤에 서 있던 백인 남자가 물었다. 검은색 티셔츠와 흰색 가죽 조끼를 입은 남자는 스포츠형 머리의 건장한 청년이었다.

한서준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손님은 없었다. 입구 쪽 테이블엔 치워지지 않은 와인잔과 접시들이 놓여 있었고 카운터 한쪽 구석엔 동그란 얼음이 남아 있는 유리잔이 있었다. 시계와 함께 벽에 걸린 메뉴판을 흘깃한 한서준이 남자를 바라보았다.

"맥주."

"오··· 이런, 오··· 그, 그러니까··· 제 말은··· 그, 차는 안 끌고 오셨나 보죠?"

남자가 물었다. 남자는 바깥을 한 번, 한서준을 한 번 쳐다보았다. 한서준이 고개를 끄덕이자 남자는 진열장으로 몸을 돌렸다. 한서준은 다시 주위를 쓸어보았다. 그는 카운터 위에 놓인 자그마한 바구니 안의 동그란 초콜릿을 집어들었다.

"초콜릿은 마음껏 드셔도 됩니다."

남자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말했다.

한서준은 건빵 주머니에 초콜릿을 집어 넣고 카운터와 마주보는 벽 중앙의 벽걸이 TV를 보았다. TV에선 얼굴을 굳힌 존 위트니의 상투적인 말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집행자는 여전히 너부러진 채였고 옆에선 정장의 요원 셋이 시체를 정리하는 중이었다.

"맥주 나왔습니다."

한서준은 맥주잔을 잡아들고 재차 TV를 보았다.

리포터의 질문은 형식적이었다. 존 위트니가 왜 상투적인 대답만 하는지 알 수 있을 정도로 쓸데가 없고 단조로웠다. 실시간으로 이어져 있는 아나운서의 질문도 마찬가지였다. 존 위트니는 새로운 요원을 영입했다는 말을 끝으로 일방적으로 인터뷰를 끝내고 몸을 돌렸다.


《국장쯤 되면··· 역시 인터뷰는 익숙해지는 모양이야.》


권지아가 말했다. 한서준은 고개를 끄덕이며 단숨에 맥주를 들이켰다. 그는 빈 잔을 카운터 위에 올려놓고 일어났다.

"벌써 가십니까?"

국자로 붉은빛의 스프가 담긴 냄비를 휘젓던 남자가 물었다. 휴지를 뜯어 손을 닦고 유리 뚜껑으로 냄비를 덮은 남자가 한서준을 돌아보았다.

"예."

한서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값을 치르고 밖으로 나왔다.


《···음, 그럼 이제··· 뭘 하지?》


"···어차피··· 결과는 똑같다."

빛이 뭉친 장소로 걸음을 옮기던 한서준이 말했다.

"위치추적기가 잘 작동이 된다면··· 말이다."


《그거야 걱정할 건 없고···. 뭐 그렇네. 좀 있으면 그 슈퍼히어로가 찾아올테니까···. 음, 그럼 그냥 걸어. 주변도 구경할 겸. 난 미국 처음이거든.》


"날 통해서 본다 해도··· 그게 직접적인 구경은 아닐 텐데."


《글쎄? 대리 만족이라도 되겠지. 그리고 내가 당신 감각 일부를 공유한다는 것. ···그새 잊은 건 아니지?》


"...일부일 뿐이다. 전체는 아니고. 게다가··· 내가 아무런 감정도 느끼지 못하면, 너도 아무것도 못 느끼는 것 아닌가?"

그는 빛을 향해 나아가던 발을 돌려 가드레일이 깔린 도로 쪽으로 걸어갔다.


《그렇기는 해. 근데··· 그건 단순히 당신이 그렇다고 생각하는 것뿐이야. 그러니까··· 당신의 이성은 인식하지 못하고 있지만, 본능은 충분히 인식하고 즐기고 있거든. ···그리고 그 예로··· 당신은 지금 당장이라도 스스로가 려에게 아무 감정이 없다고 말할 수 있을 거야. 그리고 그걸 스스로가 진실이라 생각하겠지. 하지만 그건 그냥 당신의 이성이 내린 결론이야. 그러니까··· 본능은 다르단 거지. ···당신이 려에게 유난히 신경을 쓰는 것도 그 맥락 중 하나고. ···알겠어?》


"신경을 쓴다라···. 그렇게 보이나?"

가드레일을 넘어 도로를 따라 걷던 한서준이 가드레일에 바짝 붙었다. 정면에서 달려오던 트럭이 주위의 공기를 터뜨리며 지나쳤다. 한서준은 다시 걸음을 이었다.


《려가 당신을 엄청 의지하고 있다는 게 그 증거야. ···처음 당신을 만났던 때와··· 지금 생각하는 걸 비교해 보면··· 차이가 엄청나거든.》


한서준은 건빵 주머니 안을 들여다보았다. 초콜릿은 없었고 려는 종잇조각을 모아 무언가를 만들고 있었다. 려는 주머니의 입구가 열리자 위를 올려다보았다. 려는 두 손을 들어올렸다. 황금빛 구체가 주머니 안에 나타났다 사라졌다.


《꺼내 달래.》


한서준은 손을 내밀어 려의 눈앞에 가져다 놓았다. 려는 머리카락을 훑어 한 손으로 거머잡고 한서준의 손가락을 잡았다. 뭉친 머리카락의 끝이 완만한 곡선을 그리며 휘어졌지만 려는 머리카락을 놓지 않고 손가락 위에 올라탔다. 머리카락 끝이 사방으로 갈라지며 허공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봐. 저 머리카락. 당신을 흡수하고 싶어서 미치겠다잖아.》


"···그게, 내가 려에게 신경을 쓴 결과라고 말하고 싶은 거냐?"

한서준이 물었다.


《거의 집착이나 다름없으니까. 애초에··· 저 머리카락은 려처럼 독자적인 무언가가 아니거든. 어디까지나 본능이 움직이는··· 그런 욕구의 덩어리라고 해야 할까? 대충 그런 거니까. 그러니··· 뭐, 아무튼 조심하라고. ···세상 그 어떤 것도··· 본능을 이성으로 깔아뭉개고 지배한 생명체는 없었어.》


"···명심하지."

한서준은 려를 어깨 위에 올려놓고 도로를 따라 계속 걸었다. 중간중간 끊어진 가드레일 너머로 여러 건물들이 나타났지만 불이 켜진 건물은 하나도 없었다.

"···벌써 왔군."

한서준이 문득 입을 열었다. 어깨 위에서 바람을 쐬던 려가 고개를 갸웃거렸으나 려는 별말 없이 한서준의 손가락을 잡고 건빵 주머니 안에 들어갔다.


《원래 비밀 데이트엔 방해꾼이 많은 법이잖아. 아쉽네.》


권지아가 말했다. 한서준은 미미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위를 올려다보았다. 어둠만이 가득한 밤하늘 저편에서 먼지 쌓인 별 하나가 빠르게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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