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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힘법사의 서재입니다

내 몸 안의 블랙기업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공포·미스테리

완결

올힘법사
작품등록일 :
2021.05.05 08:35
최근연재일 :
2022.02.05 18:40
연재수 :
300 회
조회수 :
13,299
추천수 :
327
글자수 :
1,661,802

작성
21.10.23 18:40
조회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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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글자
12쪽

레밍(lemming) (3)

DUMMY

(경기도 평택시 - J아파트)



다음 날 월요일 조금 늦은 아침, 황대근은 제일 먼저 눈을 떴다.

집주인 백경민과 천강우는 여전히 깊은 잠에 빠져있었다. 황대근은 거실로 나갔다.


창문 밖을 보니 비는 그쳐있었다. 땅이 완전히 폭 젖었고, 바람이 심하게 불었는지 창문에는 나뭇잎 몇 장이 더럽게 붙어있었다.

하늘 위에 떠 있는 먹구름은 여전히 기세가 등등했다. 하지만 당분간 비가 올 것 같지는 않았다.


"밤 사이에 엄청 퍼부었나본데."


아파트 음식물 쓰레기통은 뒤집혀 있었고, 쓰레기통 밖으로 튀어 나온 음식물과 부서진 나뭇가지들을 경비원들이 치우고 있었다.

나뭇잎도 많이 떨어지고, J아파트 근처 산에서 흘러 내려온 흙도 보인다.

황대근의 시선이 J아파트 근처에 있는 재물산을 바라보았다.


재물산은 이름에서 유추할 수 있는 바와 같이, 재물산의 정상에 오르면 재물을 많이 모을 수 있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그 이름의 뜻이 어디서 유래했는지, 누가 이런 헛소문을 퍼뜨렸는지는 알 수 없다.


허나, 사람들은 일주일에 한 번씩 로또를 사는 것과 비슷한 심정으로 재물산의 정상에 오르며 많은 재물을 꿈꾸고는 한다.


"지금 산에 가기에는 조금 힘들텐데? 비가 어지간히 왔어야지."


황대근은 재물산의 정문 입구에 옹기종기 모여있는 열 명이 조금 안 되는 사람들을 보며 중얼거렸다.


"아무리 산이 좋아도 그렇지, 이렇게 위험한데 가도 괜찮을까?"






(경기도 평택시 - G아파트)



한편 시연엄마는 분주했다. 그녀는 거실과 방, 방과 화장실을 왔다갔다 거리며 부산스럽게 움직이고 있었다.

작은 발로 32평짜리 집을 왔다갔다 거리며 그녀는 이렇게 중얼거렸다. 늦으면 안 돼, 늦으면 안 돼!


곁에서 토스트 식빵 위에 딸기잼과 녹인 버터를 골고루 바르던 이시연은 그런 자신의 엄마에게 물었다.


"엄마, 어디 가는 거예요? 그렇게 입고?"


시연엄마의 복장은 등산복 차림이 아니었다. 결혼식장에라도 가려는 듯 예의를 갖춘 정장 차림이다.

시연엄마는 기분이 좋은 듯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대답했다.


"아주 좋은 곳에."


바삭하게 잘 익은 토스트의 모서리가 이시연의 입으로 들어가 부엌 바닥에 부스러기를 떨궜을 즈음, 시연엄마는 가벼운 발걸음으로 집을 나섰다.






(경기도 평택시 - 재물산)



황대근이 있는 J아파트와 도보로 약 9분 거리에 있는 재물산 정문 입구에는 총 7명의 사람들이 모여있었다.

그들은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주변에는 이들 외에 아무도 없었다.


"헉헉....! 죄송합니다, 여러분! 많이 기다리셨죠? 제가 늦은 건 아니죠?"


시연엄마가 숨을 헐떡이며 묻자, 신도 중 한 명이 대답했다. 어젯밤, 머리에 나뭇잎을 꽂고 있던 그 신도였다.


"늦지 않았습니다. 현재 시간 오전 9시 40분입니다. 지금부터 산에 올라 정상에 도착하면 10시 30분 정도 될 겁니다. 정상에는 전망대가 하나 있습니다. 그곳에 올라 기다리면 됩니다."


나뭇잎 신도의 말에 시연엄마는 두 손을 모으며 나머지 신도들에게 외쳤다.


"정확히 10시 32분에, 큰하늘님께서 우리에게 친히 보내신 새천년 마차가 내려올 겁니다! 영부님께서 큰하늘님의 말씀을 직접 들으시고 적은 창세기 10장 32절에는 이렇게 적혀 있습니다! '이것이 민족 계보에 따라 본 노아 자손들의 씨족들이다. 홍수가 있은 뒤에, 이들에게서 민족들이 세상으로 갈라져 나갔다' 라고요!"


신도들은 일제히 '믿습니다'를 외쳤다. 시연엄마는 말을 이었다.


"큰하늘님께서는 선택 받은 우리로 하여금 타락하고 더러워진 이 세상을 정화하실 겁니다! 우린 선택 받았습니다! 자, 우리 다함께 새천년마차에 오르러 갑시다!"






(경기도 평택시 - 재물산 근처)



정우엄마는 화가 많이 나 있는 상태였다.


전날 밤, 정우아빠와 피가 튀기도록 싸운 것인데(몸싸움은 아니었다), 그녀는 화가 너무 난 나머지 밤잠을 설치고 말았다.

약 몇 시간 전, 정우엄마는 침대에서 아무 생각 없이 태평하게 코를 골며 자는 남편의 엉덩이를 발로 한 번 걷어 차주고는 화를 식히러 재물산에 오르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흥, 그 엉덩이를 더 세게 걷어차 줬어야 했는데! 남편의 뜻이 남의 편이라더니, 하여간....."


정우엄마는 식지 않는 화를 애써 가라앉히며 재물산의 후문 입구로 걸어갔다. 이때 시간은 대략 오전 10시 쯤이었다.


질퍽—


그녀가 비싸게 주고 산 등산화가 비에 젖은 흙에 잔뜩 더럽혀졌다. 허나 정우엄마는 조금도 신경 쓰지 않았다.

그녀는 자신이 밟는 이 흙이, 마치 남편이라도 된 것처럼 세게 밟으며 재물산을 올랐다.


"아니, 그 얘기는 굳이 할 건 또 뭐야? 사이비 같아도 시연엄마는 얼굴이 예쁘니까 그냥 봐주자고? 그게 지금 마누라 앞에서 할 소리야? 참나!"


운동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이런 말이 있다.

'절대로 화가 많이 난 상태에서는 운동하지 말라'는 말이다.


대다수의 일반인들은 화가 난 상태에서 운동을 하면 흥분했으니 더 잘 하지 않을까 라고 하지만, 사실은 부상위험이 좀 더 높아진다.

지금의 정우엄마 역시 마찬가지였다.


미끌—


"으악!"


재물산의 후문은 길이 조금 험했다. 사람들은 대체로 오르기 쉬운 정문 입구를 택하지, 경사가 높고 가파른 후문 입구는 꺼려했다.

정우엄마는 넘어질 뻔한 몸뚱아리를 간신히 일으키더니 중얼거렸다.


"이런.... 남편 욕하다가 그놈보다 내가 먼저 저승길 가게 생겼네... 너무 욕해서 벌 받았나?"


몇 번이나 넘어질 뻔한 위기를 겪고 나니, 그녀는 드디어 산의 정상에 도착했다.

정상에서 조금만 구석으로 가면 평택 시내가 훤히 보이는 높은 전망대가 하나 있다. 그녀가 전망대에 도착한 시간은 약 10시 28분이었다.


"그나저나 올라오면서 사람을 한 명도 못 보네? 다들 오늘 따라 운동하기 싫은가? 맨날 산 속 헬스장에서 운동하는 할아버지들도 안 보이고 말이야."


비가 어지간히 온 게 아니었다. 성인 남성 한 명이 빗물에 쓸려 실종된다 해도 어색할 것 없는 기록적인 폭우였다.

그런 폭우가 쏟아진 뒤에 산에 오를 생각을 하다니, 정우엄마도 분명 제정신은 아니다.


"아~ 스트레스 풀리는 기분이 드네! 여기 올라오니까 그놈 생각도 잘 안 나고 좋은데? 갑자기 우리 남편이 이뻐 보이네. 이따가 퇴근하고 오면 다시 궁둥이를 좀 차줘야겠어. 솔직히 좋아하는 것 같던데."


숨이 탁 트이는 넓은 평택의 땅을 바라보며 마음을 정화 시킨 그녀는 심호흡을 몇 번 하더니 전망대를 내려갔다. 오전 10시 31분이었다.


전망대에 오르내리는 계단은 두 개다. 정우엄마는 앞의 계단으로 내려갔고, 정문 입구를 통해 왔던 신도들은 뒤의 계단으로 전망대에 올라오고 있었다.

정우엄마는 계단이 너무 미끄러운 탓에 넘어지지 않으려 집중하느라 신도들이 올라오는 소리도, 모습도 보지 못했다.


"어우, 어우! 계단이 뭐가 이렇게 미끄러워? 평택시 자체에서 뭔가 조치를 취해야 하는 것 아냐, 이거? 너무 위험한데? 이렇게 미끄러운데를 어떻게 다니라는 거야?"


자신이 등산화 하나에 의지하며 얼음보다 미끄러운 물에 젖은 산을 올라온 것은 까맣게 잊은 모양이다.


"음?"


그녀가 투덜투덜거리며 계단을 겨우 다 내려왔을 때였다.


쿠웅—


무언가 커다란 것이 밑으로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그것이 무엇인지는 알 수 없었다. 허나 떨어진 그 무언가가 제법 무게가 있다는 것은 확실했다.


"뭐야....?"


정우엄마는 고개를 돌렸다. 짐승일까? 산짐승? 들짐승? 짐승들이 먹이를 찾으러 왔나? 날 잡아먹으려는 걸까?

그것도 아니면 산적....? 아니다, 이건 말이 안 된다. 요즘 세상에 산적이 어디 있다고.


그럼 대체 뭐가 떨어진 걸까?


쿠웅— 찌직—


또다시 소리가 들려왔다. 이번에는 무언가 찢어지는 소리가 나더니 곧 잠잠해졌다.

정우엄마는 본능적으로 전망대를 바라보았다. 이 근처에서 무언가 떨어지기 좋은 곳은 전망대 말고는 없다.


"설마.....?"


그녀는 본능적으로, 여자의 직감으로 전망대 계단으로 달려갔다.

너무 급하게 달린 탓일까, 그녀는 몇 번이고 넘어졌고 수 차례나 얼굴에 진흙과 나뭇잎을 묻히고 말았다.

허나 그녀는 신경 쓰지 않았다. 그녀는 미끄럽기 그지없는, 까딱 잘못하다가는 황천길 가기 딱 좋은 전망대 계단을 뛰어올랐다.


새로 산 등산화가 더 이상 원래의 색을 유지하지 못하고 더러운 갈색으로 바뀌었을 즈음, 그녀는 겨우 전망대에 도착했다.


"어디야... 대체 어디서 뭐가 떨어진.....?! 시연엄마!?"


시연엄마는 무언가에 홀린듯 전망대의 절벽 끝에서 하늘을 향해 무어라 중얼거리고 있었다.


"믿습니다... 큰하늘님.... 저를 구원해주세요.... 저를 당신의 도구로 사용하십시오... 저는 당신의 종입니다...."


정우엄마는 시연엄마가 있는 곳을 향해 달렸다. 미친 듯이 달렸다. 미끄러진다. 넘어진다. 옷에 진흙과 더러운 산짐승의 흔적이 묻는다. 허나 그녀는 신경 쓰지 않는다. 그녀의 손이 낭떠러지를 향한 시연엄마의 얼굴을 붙잡았다.


"시연엄마! 정신 나갔어?! 어?! 자기가 미친년인줄은 알았지만, 미쳐도 곱게 미쳐야지 이건 정말 오지게 미쳤네!"


정우엄마는 시연엄마가 뛰어내리지 못하도록 그녀의 온 몸을 결박했다.

아무래도 정우엄마의 근력이 훨씬 더 강한 탓일까, 제법 가녀린 몸을 가진 시연엄마는 꼼짝 하지 못했다.


정우엄마는 시연엄마가 뛰어내리려 했던 절벽의 밑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녀는 순간 다리를 휘청했다.

7명의 사람들이 싸늘하게 죽어 시체가 되어있었다.


"시연엄마, 이거 다 구영원인가 뭔가 하는 데서 시킨 거지? 그렇지? 영부가 자기 한테 억지로 시킨 거지? 그 영부 새끼 내가 믿지 말랬잖아! 아무리 13년전 살인사건 범인이 죽었다 해도 그렇지, 이게 말이 나 ㄷ.....?!"


정우엄마는 순간 몸을 움찔했다. 시연엄마의 눈은 결코 협박을 당했다거나 억지로 일을 하는 이의 눈빛이 아니었다.

그녀의 눈빛은 진심이었다.


"정우엄마, 왜 날 방해해?"


순간, 정우엄마는 망치로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을 느꼈다.


"뭐, 뭐라고...? 방해....?"


시연엄마는 손목에 찬 얇은 손목시계를 흘깃 보더니, 정우엄마에게 원망의 눈빛을 보냈다.


"시간이 지났어! 다른 사람들은 모두 새천년 마차에 올라 새천국에 가버렸다고! 나만 못갔잖아, 나만! 정우엄마가 방해하지만 않았어도, 난 지금쯤 영부님과 함께 새천국에 있었을 거야!"


정우엄마는 절벽 밑을 내려다보더니 말했다.


"시연 엄마, 저 사람들은 이미 다 뒤졌어. 무슨 얼어 죽을 놈의 새천년 마차야? 새천년 마차같은게 여기 왔었으면 내가 눈치 챘겠지! 그런 건 다 거짓말이야! 어린애들도 안 믿을 걸 대체 왜 다 큰 어른이 믿고 그래?"

"아아악! 날 방해하지 마! 방해하지 말라ㄱ....?!"


정우엄마는 진흙이 묻은 손으로 시연엄마의 입을 틀어 막았다.

더 이상 말 같지도 않은 개소리를 들어줄 수는 없었다.

그녀는 나머지 손으로 등산전용 바람막이 주머니를 열고는 스마트폰을 이용해 119를 불렀다.


"읍읍!"


정우엄마는 여전히 악과 떼를 쓰는 시연엄마의 광기를 바라보며 생각했다.


'구영원..... 영부..... 분명히 이거 뭔가 있어. 범인이 죽었다고? 아니야... 뭔가 있어.... 확실해....'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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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 디스맨(this man) (2) 21.10.12 23 1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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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 어둠의 주인 (3) 21.10.09 26 1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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