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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힘법사의 서재입니다

내 몸 안의 블랙기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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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올힘법사
작품등록일 :
2021.05.05 08:35
최근연재일 :
2022.02.05 18:40
연재수 :
300 회
조회수 :
13,292
추천수 :
327
글자수 :
1,661,802

작성
21.10.23 0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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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2쪽

레밍(lemming) (2)

DUMMY

(대근건설 - TK법원)



이틀 뒤 일요일 오후, 플루의 재판이 시작되었다.


플루의 죄목은 다양했다. 명예훼손죄, 모욕죄, 업무 방해죄, 권리 행사 방해죄, 직무 유기죄, 공무 집행 방해죄 등등....

죄란 죄는 죄다 끌어다 쓴 것일까? 이렇게 막무가내일 수가 있나 싶지만, 이곳은 대근건설이니 이상할 것도 없다.


재판이 진행되면서 피고인석에 앉은 플루의 표정은 점점 어두워졌다. 그녀의 뒤에 있는 방청석에 앉은 케어는 한참 증언 중인 앵거를 죽일 듯 노려보고 있었다.


"존경하는 재판장님, 저는 언제나 인간 황대근을 위해 일해왔습니다. 저희 뇌부서가 얼마나 열심히 살아왔는지, 그리고 얼마나 힘든 고통의 시간을 감내해야만 했는지 아시리라 믿습니다. 포(for) 대근!"


앵거가 '포 대근'을 외치며 오른손을 위로 뻗자, 재판장 역시 포 대근을 외치며 손을 하늘 위로 올렸다.

그런 재판장의 모습에 앵거는 나름 만족한 표정을 지었다. 재판의 분위기가 자신에게 유리하게 돌아가고 있다고 믿고 있는 것이다.


"얼마 전, 저는 감정팀의 센시티브가 인간 황대근의 소중하고 잘생긴 얼굴에 뾰루지라는 무시무시한 존재가 나타났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 사실은 안구팀에 물어보면 정확히 알 수 있습니다. 여기 안구팀 CCTV에서 나온 사진 자료입니다. 뾰루지가 보이시죠?"


앵거가 보여준 사진 자료에는 그의 말대로 새빨갛게 잘 익은 뾰루지 하나가 보였다.


"저는 이것을 없애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곧장 WBC에 직통 전화를 걸어 이 사태를 해결해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뻔뻔스런 앵거의 말에 케어의 옆 자리, 반려견 이동가방에 들어있던 키가 코웃음을 쳤다.


"부탁이라니! 부탁이라니! 그게 어떻게 부탁이야? 협박이지!"


키가 투덜대자 옆에 앉아있던 케어는 경고의 의미로 이동가방을 강하게 툭 하고 쳤다.

앵거는 방청석을 둘러보며 말을 계속했다.


"그런데, WBC 대원 중 한 명은 제가 부탁한 이 일이 매우 불만스러웠던 것 같습니다. 존경하는 재판장님! WBC는 인간 황대근의 건강과 심리를 해치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하게 되어있습니다. 그 어떠한 불만이나 명령 불복종도 허용되지 않습니다. 맞습니까?"


재판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저는 WBC가 이 사태를 해결했다는 소식을 듣고, 위로와 수고의 말을 전하러 그곳에 갔습니다. 헌데, 저기 피고인석에 앉아 있는 플루 대원은 그런 저의 호의를 무시했고, 짓밟았습니다. 뾰루지를 짜고 나온 피지를 저에게 뿌리며 제게 모욕감을 주었습니다. 저는 수치스러웠습니다."


열변을 토하는 앵거의 머리 위 불꽃은 지글지글 끓고 있었다.

반면, 그런 앵거를 바라보는 케어의 눈빛 역시 부글부글 끓고 있었다.


"존경하는 재판장님!"


앵거가 소리쳤다.


"저는 피고인 플루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할 것을 부탁 드립니다."


웅성웅성—


앵거의 말을 들은 방청석은 곧 술렁이기 시작했다.

플루의 작은 어깨는 힘없이 축 쳐져 곧 땅과 붙을 기세였다.

기가 팍 죽은 자신의 부하 대원을 말 없이 지켜보던 케어는 옆에 있던 반려견 이동 가방 손잡이를 터질 듯 꽉 쥐었다.


재판장은 소란스러워진 방청석을 향해 정숙하라고 크게 외쳤고, 이렇게 말했다.


"이번 사건은 매우 중대한 사건이니, 쉽게 결정을 내릴 수는 없습니다."


사실 이번 재판은 앵거에게 무조건적으로 유리한 것은 아니었다.

앵거가 가지고 있는 것은 사건 당일 피지가 잔뜩 묻어 더러워진 와이셔츠와 양복 바지 뿐이다. 다른 증거는 없었다.


앵거는 그저 자신의 기분이 상했다는 이유로, 괘씸하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딱히 유용하지 않은 심리적인 증거만을 내세울 뿐이었으니까.

그리고 위산도 아닌 피지에 맞은 것은, 심지어 인간 황대근도 아닌 직원이 맞은 것은 무조건적 처벌 대상이 아니다.

만약 앵거가 뇌부서가 아니었다면 사건 취급도 받지 못했을 억지 사건이다.


이 애매하고 어이없는 사건 같지도 않은 억지사건의 재판은 결국, 사흘 뒤 수요일로 유보 되었다.






(경기도 평택시 - J아파트)



지루했던 플루의 재판이 끝난 일요일 오후, 평택에는 폭우가 쏟아지고 있었다. K-55가 있는 신장동 쪽은 이미 물난리가 난 상태였다.

도로 위의 차들은 꼼짝 없이 도로에 갇혔고, J아파트 근처에 있는 산에서는 흙탕물이 인도 위로 쏟아져 내려왔다.


아파트 거실 창문 밖으로 바깥 상황을 알아보던 천강우는 제로칼로리 콜라를 벌컥벌컥 들이키며 말했다.


"이야, 우리 계곡 갔다가는 계곡 도착하기도 전에 비 맞아서 저승 간 다음에 염라대왕하고 하이파이브 하고 왔겠는디?"

"먹을 건 제대로 사 온 거냐?"


백경민은 식탁 위에 검은 봉다리들 속에 들은 정체를 파악하고 있었다.

그는 황대근과 천강우에게 자기 집에 와서 놀고 싶으면 좋은 말 할 때 먹을 것을 사오라고 일찌감치 일러두었다. 폭우 때문에 배달을 시켜 먹자니, 양심에 찔렸던 것이다.


부스럭—


백경민은 제일 먼저 천강우가 들고 온 검은 봉지 안을 살펴보았다.

봉지 안에는 너무나도 익숙한, 물을 뿜어 대는 닭이 그려진 물닭볶음면 5개 묶음 1봉지가 들어있었다.


"야 천강우, 이것만 사왔냐?"


우르릉—


천둥이 치자 어두컴컴했던 하늘이 순간 밝은 빛을 번쩍였다. 자연의 경이로운 광경을 바라보며 천강우가 대답했다.


"어. 또 뭐가 필요한가?"

"야식은?"

"야식?"

"이건 저녁이고, 야식은 없어? 야식도 사오라 했잖어."

"우리 셋이잖아. 저녁에 3개 끓이고 남은 두 개는 야식 먹음 되잖아?"

"사람이 셋 인데 한 봉지를 나눠 먹자고?"

"...당연한 거 아니야? 그리고 야식은 왜 먹어? 저녁 먹잖아?”

"야! 네가 그러니까 그렇게 비쩍 마른 거야!"

"야! 원래 라면 1봉지가 정량이야! 누가 막 몇 봉지씩 먹냐? 돼지도 아니고!"

"이런 멸치 새끼가!"

"뭐라는 거야 근돼새끼야!"


친구들의 마치 산꾀꼬리처럼 정겹게 떠드는 소리를 ASMR삼아 들으며, 황대근은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스마트폰 어플을 통해 바깥 상황을 살펴보니, 밑에 지방 일부 지역은 이미 큰 수재를 입은 듯 했다.

집을 잃은 사람들부터 사랑하는 가족을 잃은 사람들까지. 피해를 입은 사람들은 너무 많았다.


'세상이 이렇게 발전했는데 여전히 자연은 이길 수 가 없구나.'


먼 해외에 있는 사람과 통화를 할 수 있고, 말 한마디 만으로 기계를 조종할 수도 있고, 심지어 특정 나라를 복구 불가 수준으로 만들어버릴 수 있는 폭탄을 만드는 경지까지 왔는데 우리 인간들은 여전히 천둥이 치면 무서워 하고, 폭우가 쏟아져 내리면 속수무책으로 당한다.


이렇듯, 자연은 인간들에게 가끔씩 경고라도 하듯 따끔한 채찍질을 하곤 한다.


"내가 이거 가져왔어! 이거 한 번 해보자. 요즘 이게 유행이라고 했어."


저녁으로 물닭볶음면 5봉지와 황대근이 사온 푸라면 5봉지를 깔끔하게 해치운 셋은 게임을 하기로 결정했다.

천강우는 검은 봉지 외에 또 다른 방수 비닐로 만들어진 가방을 들고 왔었는데, 안에 소중한 거라도 들었는지 겉에 뭍은 물기를 신중하게 닦아내고 있었다.


"이거! 내가 물 안 맞게 하려고 얼마나 신경 써서 가져왔는데. 새로 나온 닌덴도 요기요 카트 칩도 있어."


굉장히 무해해 보이는 귀엽게 생긴 캐릭터들이 귀여운 카트를 타며 이 맵 저맵을 한참 오가니 늦은 밤이 되었고, 백경민과 천강우는 하나 둘 잠에 빠져들었다.

황대근은 아까 무리해서 먹은 물닭볶음면이 영 몸에 맞지 않았는지, 잠이 오지 않아 거실에 나와 혼자 텔레비전을 보고 있었다.


"이 시간에는 뭐 재미있는 거 안 하네. 모르는 드라마만 잔뜩.... 음? 동물?"


황대근은 동물을 좋아한다. 파충류, 어류, 양서류, 포유류, 조류 등등 모든 동물을 사랑하는 남자다. 심지어는 대다수 사람들이 싫어하고 혐오하는 곤충까지.

텔레비전은 현재 레밍에 관한 다큐를 보여주고 있었다.


동물을 사랑하는 황대근은 홀린 듯 한참 설명 중인 나레이션의 목소리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레밍은 쥐과의 포유류에 속합니다. 나그네쥐라고도 불리는 레밍은, 북유럽과 북아메리카에서 주로 서식하며 3~4년을 주기로 무리 지어 집단이동을 하죠. 이동시 절벽에 도달한 대장 레밍이 절벽으로 뛰어내리면, 그 뒤를 따르던 레밍 떼가 차례로 뛰어내려 죽습니다. 인간들은 이런 레밍을 보며 한심하다는 듯 고개를 젓습니다. 허나 우리 인간들 역시, 레밍처럼 무분별하게 남을 맹목적으로 쫒다 가랑이가 찢어지는 경우가.......]






(경기도 평택시 - 구영원)



황대근이 한참 텔레비전을 시청하고 있는 일요일 밤 10시 32분. 구영원 안에 있는 예배실에는 신도들 8명이 모여있었다.

그들은 새천국으로 가는 새천년 마차에 오르기로 선택 받은 이들이었다.

영부는 순백색의 로브를 입고 십자가를 등지고 예배실 정 가운데 서서 신도들에게 한참 연설을 하고 있는 중이었다.


"어리석은 이들은 우리를 보며 이렇게 말합니다. 저들이 믿는 것이 대체 무엇이길래 저들은 저토록 맹목적이란 말인가? 저들은 어째서 저 머리 하얀 늙은이의 말에 아무런 의심도 하지 않고 따르는가?"


영부의 말이 끝나자, 8명의 신도들 사이에서는 '믿습니다'하는 소리가 터져 나왔다.

그들은 두 손을 모아 간절히 기도했다. 무엇을 위해, 무엇에 대해 기도하는지는 여전히 의문이긴 하지만.


"여러분!"


영부의 외침에 신도들의 중얼거림도 멈췄다.


"과거 우리 인류의 조상인 노아는, 큰하늘님의 말을 듣고 거대한 배를 만드셨습니다. 여러분, 창 밖을 보십시오!"


영부가 예배실 양 옆 벽에 만들어진 창문을 가리켰다. 여전히 내일 당장 지구가 멸망하기라도 할 것처럼 폭우가 쏟아지고 있었다.

신도들의 옷차림을 자세히 보니, 그들의 신발과 바지는 온통 흙탕물로 뒤덮여 있었다. 그들의 머리 꼴도 영 말이 아니었다.

어떤 신도는 머리에 나뭇잎 두 개가 묻은 줄도 모르고 열심히 기도를 하고 있었다.


"큰 하늘님께서 이 타락한 세상에 분노하셨습니다! 타락한 인간들에게 실망하셨습니다! 곧, 심판의 날이 다가옵니다. 지상의 수많은 인간들은 그분의 심판 앞에 납작 엎드려, 지난날의 죄악을 후회하게 될 것입니다. 그들은 저 땅 속 깊은 곳에 있는 지옥불에 던져져, 자신의 잘못을 처절하게 후회할 겁니다."


격양된 목소리로 열변을 토하던 영부는 두 손을 모아 자신의 가슴으로 가져갔다.

신도들 역시 영부를 따라 숨이 넘어갈 듯 '믿습니다'를 외치다, 영부가 잠잠해지자 그를 따라 가슴을 향해 손을 가져다 댔다.


"그러나 우린 다릅니다. 우린 언제나 그분을 믿고 따랐습니다. 여러분 역시 제가 그분의 말씀을 듣는다는 것을, 그분과 함께 대화한다는 것을 믿었습니다. 여러분은 아무런 의심없이 그분의 곁을 지켜드렸습니다."


믿습니다!


"내일 오전 10시 32분에, 큰하늘님께서는 우리에게 거대한 배를 하나 보내주실 겁니다."


뒤통수에 나뭇잎 두 개를 꽂은 신도가 투박한 손을 들더니 물었다.


"영부님은요? 영부님도 함께 새천년 마차에 오르실 건가요?"


영부는 인자한 표정으로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나는 승천하게 될 겁니다. 큰하늘님께서 친히 새천국의 불마차를 이끄시고 저를 데려가실 겁니다."


영부의 말에 신도들은 경이로운 듯 그를 우러러보았다.


"다른 이들의 눈에는 큰하늘님께서 보내신 배가 눈에 보이지 않을 겁니다. 허나! 우리는 다릅니다. 우리의 영적인 눈으로는 큰하늘님께서 친히 보내주신 배를 볼 수 있습니다."


그가 잠시 말을 멈추며 신도들을 둘러보더니 곧 말했다.


"새천년 마차가 떠나고, 저는 곧 여러분의 곁을 떠나게 될 겁니다. 허나 걱정하지 마십시오. 저는 다시 부활하게 될 테니까."


영부가 명상이라도 하듯이 눈을 잠시 감았다 떴다. 그리고 소리쳤다.


"여러분! 믿습니까?!"


신도들은 열광적이었다.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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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 망각의 호수 (1) 21.10.18 23 1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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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 디스맨(this man) (2) 21.10.12 23 1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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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 저중량은 유산소라니까 21.10.11 24 1 13쪽
63 해충 한 마리 죽이는 건 잘못이 아니지 21.10.10 28 1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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