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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힘법사의 서재입니다

내 몸 안의 블랙기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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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올힘법사
작품등록일 :
2021.05.05 08:35
최근연재일 :
2022.02.05 18:40
연재수 :
30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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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370
추천수 :
327
글자수 :
1,661,802

작성
21.10.13 0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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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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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2쪽

다리 꼬지마 (1)

DUMMY

(경기도 평택시 - H고등학교)



와글와글—


다음 주 화요일이 되었고, 학생들이 그토록 기대하고 고대 하던 여름방학식 날이 되었다.

여름방학식이라고 해 봐야, 교장선생님이나 교감선생님의 훈화(설교)말씀을 듣거나 상을 받는 아이들을 화면으로 보여주는 게 전부다.


2학년 2반 교실에는 학생들 뿐이었다. 김철환이나 다른 선생들은 무슨 준비라도 하는 것인지, 아니면 대체 뭘 하는 것인지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복도가 시끌시끌한 것을 보니 다른 반들도 마찬가지인 것 같았다.

천강우는 황대근에게, 방학식 같은 건 그냥 문자로 보내주고 끝냈으면 좋겠다며 지껄이고 있는 중이었다.


"솔직히, 그냥 상 받는 애들 몇 명만 학교 오게 하고 나머지는 그냥 문자 같은 걸로 방학식 하면 안 되나? 난 개학식하고 방학식은 굳이 안 해도 되는 것들이라고 생각해."


말을 마친 천강우는 무언가를 들고 히죽거리는 박정우를 흘깃 쳐다보았다.

그러더니 황대근에게 속삭였다.


"야, 박정우 이번 기말 때 성적 겁나게 올랐더라? 이제 전교 100등 안에는 들 걸?"


황대근은 관심이 없었다.

박정우가 이러든 어쩌든, 자신과는 상관 없었기 때문이다.


"나도 쟤가 다니는 학원 다녀볼까? 가격대가 좀 비싸다는데... 엄마아빠가 허락 안 해주겠지? 거기 학원 강사들 대치동 출신이래. 대치동이 훨씬 돈 많이 벌 텐데 뭣하러 여기까지 내려왔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학원 다니면 왠지 공부 잘 할 것 같아. 안 그래?"


아마추어 과외를 하든, 몇 백 짜리 돈을 들여 과외를 하든 성적이라는 건 결국 하는 사람의 문제다.

안 하면 성적이 낮을 것이고, 하면 잘 나올 것이다.

돈 몇 백 들여 기껏 과외 시켜 놨더니 과외 시간 내내 딴 생각으로 보내버리는 학생들도 종종 있으니까.


"우리 엄마아빠가 허락하면 대근이 너도 같이 다닐래?"


벌컥—


황대근이 대답하기 전에 교실 앞문이 벌컥 열렸다.

2학년 2반 교실이 일제히 조용해지더니, 곧 다시 시끌벅적해지기 시작했다.

앞문에 서 있던 것은 김철환이 아니라 백경민이었다.


"야! 우리 계곡가자. 8월 초 쯤에 한 번 가자."


백경민의 제안에 천강우가 물었다.


"계곡? 어디로 가려고?"

"강원도 쪽으로 가자. 거기가 우리나라 여름 중 제일 시원할 걸?"

"버스타고 가나? 어떻게 가지?"

"버스타고 뭐 타고 하면 어떻게든 가겠지."

"이시연은?"

"이시연? 걔는 왜?"

"걔는 안 간데?"


백경민이 고개를 저었다.


"초반에는 간다고 했는데, 자기 주짓수 대회 준비해야 한다면서 못 간다고 하더라고. 걔 원래는 지 친구 두 명인가 세 명도 데리고 가겠다고 했었어."


천강우가 물었다.


"친구? 남자?"

"아니, 여자애들. 걔가 친구가 우리만 있는 줄 아냐? 걔 너보다는 친구 많을 걸?"

"그럼 그 여자애들이라도 같이 가자고 하자!"

"뭐?"

"어차피 너네 반 아니야? 같이 가자고 하자!"

"이시연 안 가면 걔네도 안 간다고 했대."


천강우의 얼굴에 실망이라는 두 글자가 띄워졌다.

두 친구 놈들 하고 놀아도 문제가 없을 것을, 천강우는 이시연이 안 간다는 사실에, 아니 정확하게는 이시연의 여자사람 친구들이 안 간다는 사실에 그는 눈에 띄게 아쉬워하고 있었다.

그런 그의 모습을 눈치챈 백경민이 말했다.


"왜? 걔네랑 계곡 가서 괜찮은 애 있으면 잘 해보려고?"


그렇다. 천강우는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여자친구를 사귀어 본 적이 없는 것이다.


"천강우, 어쭙잖게 꼬시려고 해 봤자 역효과다. 그냥 자만추가 최고야. 자연스러우면서 은근한! 딱! 뭔지 알지?"

"자만추는 연애를 안 하겠다고 선언하는 거라고 누가 그랬어."

"그건 너 같은 모쏠들이 하는 소리고."


천강우의 얼굴이 울상이 되었다.

그는 옆에 있던 황대근에게 백경민의 만행에 대해 고자질을 하기 시작했다.


"저 새끼 얼굴 한 번만 쳐줘! 뒷감당은 내가 할게!"


천강우와 백경민이 서로 투닥거리기 시작했다.

반면 황대근은 아까 전부터 다른 생각에 잠겨 있는 상태였다.


'꿈 속에서 어떤 여자가 나왔는데... 처음 보는 여자였어. 누구지? 보기만 해도 편안해지고, 그 손을 잡으면 걱정과 근심이 전부 사라질 것 같은 여자였는데.... 대체 누구지?'


욱씬—


잇몸이 아프다. 황대근은 본능적으로 느꼈다.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저번부터 계속 아래 왼쪽 어금니 쪽이 아픈데... 오늘 치과에 가봐야 하나? 저번에 사랑니 뺀지 얼마나 됐다고?'


까끌까끌—


그는 혀를 이용해 왼쪽 아래 어금니 뒤쪽에 있는 고개를 빼꼼 내밀고 있는 이빨을 건드려 보았다.

제법 많이 자랐다. 저번에 사랑니를 처음 뺐을 때 조금 많이 아프기는 했지만, 나쁘지는 않았다고 그는 생각했다.


'뭐, 이번에도 별 거 아니겠지! 조금 붓고 말겠지!'


과연 그럴까?






(대근건설 - 제 1건물 브레인 - 사장실)



"어린 페르소나를 잃어버렸단 말입니까?"


쉐도우의 목소리는 차가웠다.

마치 맨 발로 얼어붙은 얼음 길을 아무런 장비 없이 걸어가는 느낌이다.

페로는 벌벌 떨고 있다. 어찌나 심하게 떠는지 육안으로 그의 솜털이 진동을 하는 것이 보일 정도다.


"죄, 죄송.... 죄송합니다.... 쉐도우님..... 그게... 그것이....."


무음 처리한 휴대폰처럼 벌벌 떠는 페로를 보며 헨리가 손짓했다.


"됐어, 그만 가 보도록 해."


그러자 쉐도우가 그를 노려보았다.


"뭐라고요? 사장님, 하지만...."

"그냥 보내."


헨리의 말투는 단호했다.


"저 녀석 추궁해봐야 나아질 건 없지 않나? 그냥 보내버려. 그리고 이번 건 페로의 잘못이 아닌 것 같은데."


페로는 헨리가 마치 구세주라도 되는 양 연신 절을 올리더니 서둘러 사장실을 빠져나갔다.

이제 사장실 안에는 헨리와 쉐도우 뿐이었다.


"이봐 헨리."


쉐도우가 헨리에게 물었다.


"자네... 지금은 뭐지?"


기다란 책상의 먼지를 닦아내고 있던 헨리가 대답했다.


"질문이 조금 독특하군."

"자네, 지금 누군가?"


끼익—


헨리가 특수제작한 가죽 의자에 앉았다.


"나는 대근건설의 최고 권력자, 헨리다."


쉐도우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지금의 자네는 헨리 지킬이야. 내가 찾는 건 에드워드 하이드다."


헨리는 씨익 웃었다.


"내 인격이 두 개인 것에 대해 불만을 품고 있나 보군, 쉐도우."

"......"

"애초에 나를 두 개로 나누어 버린 건 자네였어."

"......"

"그나저나... 누가 어린 페르소나를 훔쳐간 거지? 어린 페르소나는 분명 페로가 만든 작은 우리에 갇혀있지 않았나?"


쉐도우가 헨리의 책상에 엉덩이를 걸치고 앉았다.

그 바람에 방금 막 책상 위의 먼지를 치운 헨리의 얼굴이 약간 찌푸려졌다.


"어린 페르소나, 그러니까 5살 황대근의 자아에게 심어 놓은 나의 힘이 사라졌어. 그 바람에 어린 페르소나를 지키던 디스맨 역시 힘을 잃어버렸지."


달칵—


헨리가 정사각형 모양의 큐브를 돌렸다.


"디스맨은 무의식의 방어기제가 어쩌지 못할 거라더니? 어린 페르소나가 갇힌 그곳은 무의식이 아니라 너의 기억이라 괜찮다고 하지 않았나? 그 기억의 주인은 바로 자네라서, 방해 받지 않을 거라고 하지 않았나?"


달칵—


큐브의 한쪽 면이 맞추어졌다.

9개의 작은 네모가 전부 노란색으로 맞추어 지는 것을 보며 쉐도우가 말했다.


"내가 예상하지 못한 게 있었어."


달칵—


노란색 큐브가 일그러졌다.

헨리가 물었다.


"예상하지 못한 것?"


쉐도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어찌되었건 나는 인간 황대근에게 있어서 타인이다. 그리고 내가 만든 가상의 인물인 디스맨 역시 타인이야. 개인의 무의식 속에서 타인은 적이야. 내 개인적인 기억은 분명 나의 것이지만.... 그 기억은 무의식 속에 있었던 것이야. 그 바람에...."


달칵—


"그래서 실수를 했다는 거로군, 말하자면."


헨리의 말에 쉐도우는 약하게 고개를 떨구었다.


"결국은 자네가 저지른.... 치명적인 실수라는 거야. 그렇지?"


콰앙—!


헨리가 벽을 향해 큐브를 던졌다.

완벽하게 맞춰진 큐브는 그대로 산산조각이 나버렸다.


"내가 인간이 되지 못하면 책임 질 건가, 쉐도우?"


쉐도우가 오른손을 뻗었다.

그의 오른손은 까맣게 변해 있었다. 일시적인 것인지, 아니면 원래부터 이랬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걱정하지 마, 헨리."


이젠 오른손 뿐 아니라 쉐도우의 온 몸이 까맣게 변했다.

꾸물꾸물, 꿀렁꿀렁, 그의 몸은 마치 형체가 있는 액체처럼 기괴해 보였다.


"그림자의 규모는 아주 크지."


스르륵. 스륵. 그의 발 밑에서 손이 뻗어져 나왔다. 그 손은 검었고, 징그러운 눈이 여러 개 달려 있었다.

어떤 손들은 사장실의 천장을, 어떤 손들은 사장실의 바닥을, 또 어떤 손들은 헨리의 얼굴을 향해 뻗어 있었다.

헨리는 움직이지 않았다. 그림자들이 종잇장처럼 날카로운 손으로 그를 위협해도 그는 결코 움직이지 않았다.


"녀석은 나의 지배에서 벗어날 수 없어. 알겠나, 헨리?"






(대근건설 - 소화기부서 내 카페)



구강팀장 마우스와 위장팀장 피니시는 사이좋게 기장떡을 나누어 먹고 있었다.

피니시는 비숑처럼 생긴 기장떡을 매우 좋아했는데, 이유는 소화가 잘 되기 때문이라고 한다.


"대근이도 기장떡을 먹을 때면 치아를 닦기 아주 편하죠. 이빨에 딱히 달라붙지도 않거든요."


마우스의 말에 피니시는 공감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기장떡이 참 좋지요. 든든하기도 하고, 소화에도 좋고, 부담도 없고."


둘이 벌써 기장떡을 세 그릇 째 먹고 이제 네 번째 기장떡을 주문하려고 할 때였다.


"팀장님! 팀장님! 마우스팀장님!"


몰라가 그들이 있는 곳으로 달려오고 있었다.

어찌나 급하게 뛰어온 것인지, 그녀의 뽀얀 이마에는 땀이 송골송골 맺혀있었다.


"팀장님, 큰일입니다!"


기장떡 하나를 몰라에게 건네며 마우스가 물었다.


"무슨 일인데? 자, 여기 이것 좀 먹고 천천히 얘기해 봐."

"아니, 그걸 얘기할 때가 아니에요!"


몰라가 소리쳤다.


"대근이, 대근이 사랑니가 또 났대요! 조만간 곧 뽑아야 할 것 같다구요!"


그러자 마우스는 별 것 아니라는 듯 손을 휘휘 저었다.


"에이, 저번에 한 번 뽑아봤잖아? 별 거 아니었어. 침이랑 흐르는 피를 좀 막아주면 된다고. 걱정하지 마. 치과 의료 기구 소리가 조금 시끄럽긴 하지만, 금방 끝난다구."


몰라는 도리도리 좌우로 고개를 세차게 저었다.


"그게 아니라니까요! 그 사랑니가 다리를 꼬고 있대요!"


피니시는 피식 웃었다.

사랑니가 다리를 꼬고 있다? 그것이 과연 무슨 의미인지 그는 제대로 파악하고 있었다.

하지만 경력이 짧은 우리의 마우스 팀장은 그녀의 말이 무슨 뜻인지 모르는 듯 하다.


"쯧쯧."


마우스의 등을 탕탕 치며 피니시가 말했다.


"우리 위장팀은 당분간 여유롭게 지낼 수 있겠는데?"






(경기도 평택시 - S치과)



"으음, 이런 뿌리는 오랜만에 보는데."


생각의자, 아니 진료의자에 누워 자신의 앞에 놓인 컴퓨터 화면을 바라보는 황대근의 표정에 짙은 어둠이 깔렸다.

석허용은 화면 속의 치아 엑스레이 사진을 보며 안됐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사랑니가 아주 섹시하게 다리를 꼬고 있네요. 그것도 다리가 여러 개인 것 같은데? 그래도 누워있지 않는 게 어딥니까, 안 그런가요 학생?"


석허용의 말이 끝나자마자, 황대근은 생각했다.

'사랑니'가 아니라 '살았니?'로 이름을 바꾸어야 한다고.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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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리 꼬지마 (1) 21.10.13 25 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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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 디스맨(this man) (2) 21.10.12 23 1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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