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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힘법사의 서재입니다

내 몸 안의 블랙기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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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올힘법사
작품등록일 :
2021.05.05 08:35
최근연재일 :
2022.02.05 18:40
연재수 :
30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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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323
추천수 :
327
글자수 :
1,661,802

작성
21.10.17 1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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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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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2쪽

스파링 할 때 마우스피스는 필수

DUMMY

(경기도 평택시 - 구영원(求靈院))



일요일, 황대근과 친구들이 크로스핏 마초에서 한참 운동을 하고 있었을 때였다.


집에서 뒹굴 거리다 방금 나온 듯 약간 늘어진 티셔츠에 츄리닝 바지를 입은 정우엄마와 노란색의 하늘하늘한 원피스를 입은 시연엄마는 구영원 근처에 있는 공원을 걷고 있었다.

시연엄마는 정우엄마의 팔에 팔짱을 끼고 구영원의 역사와 교리에 관해 아주 친절하게 설명을 해주고 있는 중이었다.


한참 동안 설명을 듣던 정우엄마는 그녀가 낀 팔짱을 풀어내더니 이렇게 말했다.


"그런데 난 아직도 찜찜해. 종교 하나 갖는 거야 뭐 대수롭지는 않은데, 13년 전 범인이 교주였던 곳이잖아. 솔직히 난 좀 그래. 그리고 여기 평택에서 얼마전에 소문 하나 퍼진 거 몰라? 13년 전 범인이, 여기 평택에 살아있을지도 모른다는 거 말이야! 범인이 다시 나타나면 어떡해? 저번에도 J아파트 살인사건 난 것 좀 봐! 그때 범인도 여기 다녔던 여자라며?"


정우엄마가 갑자기 발걸음을 멈추었다.

그때 공원 바닥을 지나가던 작은 개미가 그녀의 큼직한 발 때문에 길이 막혀 다른 곳으로 멀리 돌아가야만 했다.


"시연엄마, 혹시 그 범인이라는 여자 말이야. 13년 전 범인하고 아는 사이 아냐?! 범인이 지시한 거 아니야?! 어? 막, 그런거 있잖아. 뒤에서 조종하는 배후 같은 거!"


시연엄마는 약간 텅 빈 듯한 눈동자를 빛내며 말했다.


"정우엄마, 그저 믿기만 하세요. 이 세상에 일어나는 좋은 일과 안 좋은 일들은 모두 큰하늘님의 크신 뜻이에요. 우리 인간들은 그분의 뜻을 감히 헤아릴 수 없잖아요."


정우엄마는 순간 뒷골이 당기는 것을 느꼈다.


"아이고, 진짜! 속 터져서!"


그녀는 속으로 자신의 가슴 정중앙을 여러 번 쳤다. 답답했던 것이다.

뭔 말만 하면 그분의 뜻, 그분의 뜻. 그녀는 시연엄마가 이렇게 말이 안 통하는 여자였나 고민했다.

이 여자는 원래 이렇게 맛이 가지 않았었는데. 어쩌다 이렇게까지 망가졌을까?

정우엄마의 타 들어가는 속을 아는지 모르는지, 시연엄마가 말했다.


"그리고 나무를 보고 숲을 판단할 수는 없는 거랍니다. 물론, 나무들 중에서는 썩은 나무도 있고 덜 자란 나무도 있고 벌레 먹은 나무도 있겠지요. 하지만 모두 어딘가에는 중요하게 쓰이는 소중한 재료들입니다."


그러나 정우엄마는 막무가내였다.


"아, 됐고! 난 그런 거 몰라! 나문지 뭐시긴지 내 알 바 아니잖아! 어쨌든 저쨌든 13년 전 평택 살인사건의 범인이 이곳 교주였던 건 사실이잖아! 아니야?!"


시연엄마의 얼굴이 살짝 굳었다. 그러나 곧 풀렸다.


"정우엄마, 교주가 아니고 영부님이세요."


정우엄마의 뒷골이 다시 한 번 당겼다.


"아, 그래 그래! 영부, 영부! 영부님! 지금 구영원 영부가 13년 전의 그 범인이 아니라는 증거를 대봐! 어서!"

"13년 전 평택살인사건의 범인은 이미 죽었답니다."


발을 동동 구르며 난리를 피우던 정우엄마의 발이 뚝 하고 멈추었다.


"....뭐?"


시연엄마는 구영원 건물 겉부분에 걸려있는 현수막, [너 자신을 사랑하는 것 만큼 네 이웃을 사랑하라]라고 적힌 문구를 바라보며 말했다.


"정우엄마 말씀이 맞아요. 13년 전 범인은, 분명 우리 구영원 신도들의 영부님이셨죠. 하지만 그게 과연 그렇게 큰 죄일까요? 우리 모두는 큰하늘님 아래 똑같이 평등한 죄인입니다. 그리고 이 오묘한 세상은 큰하늘님의 계획대로 흘러갑니다. 이 세상에 일어나는 모든 것은 큰하늘님의 뜻 아래 정해져 있어요. 설령 누군가 살인을 저질렀다 해도, 겁탈을 당한다 해도 그 역시 큰하늘님의 크신 뜻입니다. 우린 그 부분에 대해 단죄할 수 없어요. 그 누구도."


정우엄마의 귀에는 그 어떤 말도 들리지 않았다.

그녀는 13년 전 범인이 죽었다는 그 사실만 계속해서 되새기고 있었다.


"시, 시연엄마.... 범인이... 범인이 죽었다고....? 대체 어떻게...? 거짓말이지...? 하지만 J아파트 살인사건에서는 분명 살아있느냐고....."


시연엄마가 정우엄마의 혼란스러운 두 눈동자에 눈을 맞추며 말했다.


"정말이에요. 당시 영부님은 돌아가셨어요. 그리고 영부님이 돌아가셨기 때문에 공소권 없음 처분이 되었죠."






(경기도 평택시 - H주짓수 체육관)



달콤했던 일요일이 끝나고 8월 첫째 주 수요일이 되었다. 인간 황대근은 백경민, 천강우와 함께 이시연이 다니는 주짓수 체육관에 갔다.

이미 이곳을 다닌 지 일주일이 넘었다. 주짓수가 어떤 운동인지, 셋은 조금씩 파악하기 시작했다.


특히 황대근과 천강우의 주짓수 실력이 눈에 띄었다.

천강우는 제법 마르고 그렇게 크지 않은 체격을 갖고 있었는데, 그는 주짓수의 무게중심을 잘 이해했다.

황대근은 무게중심을 잘 이해한다기보단 마치 아주 오래전 배워본 사람 같았다. 그 자신 역시 혹시 전생에 주짓수를 배웠던 게 아닐까 의심할 정도였다.


반면에...


"어깨에 힘 빼! 그러다 어깨 나간다!"


주짓수 코치가 백경민에게 소리쳤다.

백경민은 힘이 좋았다. 그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니까.

그러나 그는 거의 대부분의 운동을 힘으로 해결하려고만 했다.


"악!"


스파링 시간, 안익준과 스파링을 하던 백경민은 클로즈가드(close guard)로 자신을 묶어버린 안익준을 데드리프트 하듯 힘으로 번쩍 들어 올렸다.

그 덕에 갑자기 공중으로 들어 올려진 안익준은 클로즈가드 자세를 더욱 단단히 취하며 그에게 빈정댔다.


"야, 이 운동이 힘으로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는 운동 같냐?"


백경민은 그가 걸은 클로즈가드를 풀려고 무진 애를 쓰고 있었다.

그러나 효과는 없는 듯 했다.


"닥쳐, 아무리 세상이 발전했다고 해도 결국 힘 센 놈이 이긴다니까."

"나 원 참, 위험해서 이건 안 쓰려고 했는데...."


휘릭—


안익준은 순식간에 암바(arm bar) 자세를 취했다. 공중에서 암바 자세를 취하다니, 쉽지 않은 일이다.


"아! 악! 알겠어! 알겠다고! 탭(tap)! 탭!!"


땡—


마침 스파링의 종료를 알리는 종소리가 울렸다.

안익준에게 져 화가 난 백경민은 찬물이라도 마시기 위해 정수기로 걸어갔다.

그 사이 스파링 시작 종이 울렸고, 안익준은 또 다른 상대와 스파링을 하기 시작했다.


"넌 나랑 한 판 해야지?"


상대 없이 혼자 매트 위에 앉아있는 황대근에게 이시연이 다가왔다.

둘은 스파링을 시작했고, 그는 이시연에게 수 차례나 당하며 탭을 외쳐야만 했다.


힘이야 물론 황대근이 세지만, 기술로 따지자면 몇 년을 수련한 이시연을 당해낼 수는 없었다.

황대근은 이제 겨우 1주일 차였으니까.


"아, 탭! 탭! 야 너 우리 세 명 괴롭히려고 다니라 한 거지? 그치?"


그의 질문에 백포지션(back-position)을 빼앗긴 황대근의 등 위에 올라앉은 이시연이 고개를 끄덕였다.


"음, 꼭 그렇다고 할 순 없지만 어느 정도는?"

"안익준은 언제부터 다닌 거냐?"

"글쎄, 이제 1년 반 쯤 됐을 걸?"

"너랑 안익준이랑 하면 누가 이기냐?"

"당연히 내가 이기지, 나 무시해?"


황대근은 몸을 뒤집었다. 그녀가 방심하는 사이, 그는 조금 전 안익준이 취했던 클로즈가드 자세를 잡았다.

허나 그녀의 허리가 워낙 얇다 보니 황대근은 기다란 두 다리를 아주 꽉 조여야만 했다.


땡—


스파링 마침 종이 울렸다. 이시연은 그 소리를 듣더니 말했다.


"음~ 가드 잡았는데 아쉽게 됐네. 다음에 다시 덤벼~ 언제든지 받아줄 테니까."


그녀는 마침 막 찬물로 세수를 하고 나온 백경민에게 다가가 스파링 신청을 했다.

황대근의 앞에도 누군가 스파링 신청을 하러 다가왔다.

안익준이었다.


"한 판 할까?"


안익준이 주먹을 내밀었다. 스파링 시작 종이 울렸고, 황대근은 그가 내민 주먹에 자신의 주먹을 맞대며 인사했다.


"잘 부탁한다."


스파링을 하기 전에는 스파링 상대에게 잘부탁한다는 인사를 하는 것이 예의이거늘, 안익준은 황대근의 예의를 무시했다.


'이 새끼 뭐야...?!'


스파링이 어느 정도 진행되었을 무렵, 안익준은 당황했다. 분명 황대근은 주짓수를 처음 배우는 초짜인데, 대체 왜 이렇게 감각이 좋은 것일까?


'아니, 누가 이 새끼 몸 속에서 막 조종하나?'


그는 모를 것이다. 물론 황대근 본인 조차도 모를 것이다.

인간 황대근이 주짓수 스파링을 한다는 소리를 듣고, 왕근과 프로틴이 지금 대근건설에서 얼마나 난리를 피우고 있는지.

근골격부서 직원들이 얼마나 힘들게 일하고 있는지.


'스파이더가드스윕(spider guard sweep)? 이건 안 배워봤을 텐데?!'


황대근의 다리는 아주 길다. 스파이더가드는 다리가 길면 길수록 유리한 자세다.

황대근과 키는 비슷하지만 상대적으로 다리가 짧은 안익준은 그의 스파이더 가드에 제대로 걸려들고 말았다.


'으악!'


안익준이 스윕을 당해 넘어가면서 황대근은 이빨을 있는 힘껏 앙 물었다.

스윕하는데 굳이 이빨을 물 필요는 없는데, 황대근이 아무리 주짓수에 재능이 보인다해도 초보는 초보였다.

힘을 줄 때와 뺄 때를 구분하지 못하니까.


뽀각—


안익준은 졌고, 스파링 마침 종이 울렸다.

때마침 수업 역시 끝날 시간이 되었고, 관장은 마무리 인사를 하면서 수업을 종료했다.

황대근은 조금 전 입 안에서 느꼈던 이상한 느낌과, 온 몸의 신경이 쭈삣 서는 더러운 기분 때문에 수업이 끝나자 마자 화장실로 직행했다.


'오 이런 젠장... 미치겠네.'


이빨이 조금 깨졌다. 황대근은 치료가 걱정되는 것은 둘째치고 도대체 얼마가 들까를 먼저 고민했다.

역시 자본주의에 물든 인간은 달라도 뭔가 다르다.






(대근건설 - 메모리아 부서 - 비밀의 방)



리콜이 없는 메모리아 부서는 허전했다.

컨트롤은 그가 사라졌고 계속 출근도장을 찍지 않는다는 사실을 인지했음에도 불구하고 조금의 관심도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말썽쟁이 한 놈이 사라져 후련하다는 태도였다.


"혜윰씨, 다 됐습니까?"


황대근과 혜윰은 비밀의 방에서 주혁이 건네준 헨리의 약병에 든 약의 성분을 조사하고 있었다.

메모리는 밖에서 컨트롤과 함께 업무같지 않은 업무를 보는 중이었다.


"네, 다 됐어요. 금방 출력할게요."


혜윰은 노트북에 약의 성분에 대해 자세히 옮겨 적더니, 프린트기를 사용해 그녀가 적은 것을 인쇄했다.


"자 여기요."


황대근은 그녀가 건넨 자료를 살펴보았다.

헌데 무슨 소린지 도통 알아 먹을 수가 없었다.


"이게 다 무슨 소립니까? 이상한 언어로 적혀있는데요."


혜윰은 작은 주먹으로 자신의 머리를 콩 하고 쳤다.


"그러고 보니 대근씨는 약을 전공하지 않았죠?"


그녀의 말에 의하면, 약병 안에 든 약은 희귀한 재료로 만들어진 것이라 한다.

그 재료는 쉽게 말해 자기 자신, 즉 자아를 잃어버리지 않도록 붙들어 주는 약재인데 구하기 매우 어렵다고 한다.


그녀는 약재를 구하기 위해선 무의식 속 깊은 곳에 숨어있는 한 작은 섬에 가야 하는데, 문제는 쉐도우가 현재 헨리의 자아를 지배하고 있는 상태이기에 헨리가 무의식에 갈 수는 없다는 것이었다.

설상가상으로 쉐도우는 헨리가 자신의 자아를 유지하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알아낸 게 있어요."

"그게 뭡니까?"


혜윰이 자료 맨 밑에 적힌 것을 가리켰다.

이번에는 황대근도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 수 있었다.


"이건 헨리 사장님의 본명이에요."

"헨리 지킬...."


황대근이 중얼거리자 그녀가 말했다.


"어쩌면, 헨리 지킬의 존재를, 아니 그분의 잃어버린 자아를 되찾아주면 범인 역시 대근이의 몸 속에서 빠져나갈 수 있지 않을까요? 그렇게 되면 쉐도우는 갈 곳이 없어지는 거잖아요?"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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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 분위기 깨지 말고 웃어 21.10.19 24 1 13쪽
80 망각의 호수 (2) 21.10.19 20 1 13쪽
79 망각의 호수 (1) 21.10.18 23 1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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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파링 할 때 마우스피스는 필수 21.10.17 23 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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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 다리 꼬지마 (3) 21.10.14 23 1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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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 디스맨(this man) (2) 21.10.12 23 1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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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 저중량은 유산소라니까 21.10.11 24 1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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