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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힘법사의 서재입니다

내 몸 안의 블랙기업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공포·미스테리

완결

올힘법사
작품등록일 :
2021.05.05 08:35
최근연재일 :
2022.02.05 18:40
연재수 :
30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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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수 :
327
글자수 :
1,661,802

작성
22.01.04 1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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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구해줘 (save me) (3)

DUMMY

(경기도 평택시 - H고등학교)



6월 22일 수요일, 학생회장 선거 날이 되었다. 지금으로부터 약 6일 전 쯤, 황대근은 죽다 살아나는 진귀한 경험을 해야만 했다. 안익준이 그에게 곰팡이 제거 세제를 넣은 음료수를 먹게 한 것이다.


그 덕에, 황대근의 몸 속 세포들은 한 바탕 난리가 났다.


'플루! 플루! 당장 해독제 가져와! 키! 너는 자양강장제 가져오고!'


언제나 황대근에게 충성하는 WBC덕에 황대근은 금방 나을 수 있었다.

조금만 시간이 지체되었더라면, 황대근은 수능을 몇 개월 안 남겨둔 지금 병원 신세를 져야만 했을 터다.


'아깝네.'


안익준이 이번 사태의 범인이라는 것이 밝혀지는 것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허나, H고 측에서는 그 어떠한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그 새끼, 분명히 우리가 찍은 사진 때문에 저러는 걸 거야."


이시연의 말대로, 안익준이 황대근에게 세제가 든 음료수를 먹인 것은 확실히 음흉한 의도가 있었다.

그는 황대근이 이시연에게 직접 '시켜서' 사진을 찍은 것으로 착각한 것이다.


'날 후보에서 제명하려고 별 짓을 다하는구나 황대근. 하지만 넌 나한테 안 된다.'


안타깝게도, 상황은 안익준의 바램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이시연과 천강우가 안익준과 그의 패거리들이 박정우를 괴롭히는 사진과 담배를 피우는 사진을 찍어 H고 전체에 퍼뜨린 것이다.

게다가 음료수 사건까지 터졌으니, 학생들의 신뢰도는 이미 바닥을 기다 못해 지구 내핵을 뚫어버렸다.

그것도 모자라 성적 조작 사건에, 시험지 유출 사건까지 있었으니 제정신이 박혔다면 학생들이 안익준을 뽑을 이유는 없다.


"지금부터 투표함 개표를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1학년부터 3학년까지 H고의 전체 학생들이 선택한 학생회장은 당연하게도 황대근이었다.

대다수의 학생들, 아니 어쩌면 안익준 패거리를 제외한 모든 학생들은 당연한 결과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안익준과 그의 패거리들은 아니었다.

그들은 이 결과를 인정하지 못했다.


"이건 조작이야."


정교빈이 투덜거리자, 이시연이 소리쳤다.


"조작~? 지금 조작이라 했어? 야, 안익준! 네가 지금까지 한 모든 짓들 다 증거로 남겨서 너 감옥가게 만들거야! 넌 감옥에서 영원히 콩밥먹어야 된다고!"







(경기도 평택시 - H고등학교)



"대근아, 밤에 잘 못잤냐?"


다음 날 목요일 1교시, 신용호의 수업시간일 때였다.

신용호는 체육선생임에도 불구하고, 맡은 반 아이들이 고삼이라는 이유로 교실에 갇혀있어야만 했다.


대한민국 고삼에게 체육시간은 한 줄기의 빛이 될 수 있는 좋은 과목이지만, H는 그 얄팍한 빛조차 허락해주지 않았다.

조금 우울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신용호는 자신의 목부근을 긁적이며 가장 앞자리에 앉아 있던 황대근에게 말했다.


"조금 자라. 공부도 다 잠을 잘 자야 할 수 있는 거다."


신용호의 말대로, 황대근은 최근 들어 잠을 젤대로 자지 못했다.

그래서일까, 원래 그런 적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황대근은 종종 졸기 시작했다.


"밤 늦게까지 뭔 공부를 그리 열심히 하냐?"


신용호가 여전히 목을 긁으며 말했다. 그의 목에는 영부에게 당했던 흉터가 여전히 남아있었다.


"체력 봐 가면서 해라. 무턱대고 앞만 보고 달리기만 했다가는, 언젠가는 지쳐 쓰러져. 알겠냐?"


황대근은 3학년이 되어서 좋은 점 중 하나는 바로 신용호라고 생각했다.

작년과 재작년 담임들은 하나같이 황대근을 하나의 도구로만 여겼다.

선생으로서의 의무감 따위, 그들에게는 존재하지 않았다.


황대근이 공부를 잘 하니까 언젠가는 나한테 보상을 해 주겠지. 이 학생은 나의 자랑이야. 나의 '잘남'을 드러낼 수 있는 자랑거리.

내가 이만큼 잘 했으니까 황대근이 이렇게 잘 나가는 거야. 다 내 덕이지. 내가 좋은 선생인 덕이라고.


'좋은 선생은 개뿔. X같은 선생들이었지.'


황대근은 김철환이 싫었다. 기억조차 제대로 나지 않는, 어쩌면 기억하고 싶지도 않은 1학년 때 담임선생도 싫었다.

그는 외로웠다. 누군가에게 의지하고 싶었다. 아무런 의심 없이, 아무런 근심없이 기댈 수 있는 누군가가 있었으면 하고 바랬다.


그의 양부모들은 분명 좋은 사람들이었지만, 근본적인 무언가를 채워주기에는 역부족이었다.


'하지만 그 '무언가'가 대체 뭔데?'


가장 큰 문제는, 황대근 역시 그 '무언가'가 무엇인지 모른다는 것이다.

어딘가 외롭다. 어딘가 쓸쓸하다. 어딘가 허전하다.

하지만 '왜' 그런 감정을 느끼는지는 알 수 없다.


'그나마 이번 담임선생님은....'


신용호는 털털하다. 그리고 괄괄하다. 김철환만큼은 아니지만 신용호 역시 일반적인 다정함 과는 거리가 먼 선생이었다.

허나 다정하지 않은 말투에서도 때로는 진한 다정함이 묻어 나오는 법이다.

달콤한 목소리와 다정한 행동에서 때로는 가시 같은 칼날이 숨겨져 있듯이.


"알겠냐, 황대근? 일찍 죽고 싶지는 않을 것 아니냐."


계속되는 신용호의 어설픈 걱정에, 황대근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조절 잘 하겠습니다. 최근 들어서 꿈을 자꾸 꿔서 잘 못 잤어요."

"꿈?"

"네. 무슨 꿈인지는 잘 모르겠는데, 조금 이상한 꿈이었어요."







(대근건설 - 대근고시 고사장)



인간 황대근이 점심을 먹으며 잠기운을 털어내는 동안, 또다른 황대근과 다른 메모리아 직원들은 고사장 식당에 있었다. 시험을 보러 온 것은 아니었다. 그들은 이미 취업에 성공한 자들이었으니까.

이들이 온 이유는 단 하나다. 거의 대다수의 직장인들이 그다지 좋아하지 않을 바로 그 일을 하기 위해서 온 것이다.


"시험 감독 개 같아요."


점심시간, 겨우 숨막히는 시험장에서 풀려난 메모리가 퀭한 눈으로 동료들에게 말했다.


"아니 솔직히. 올해는 얼마 뽑지도 않는다면서요? 애초에 신입은 안 뽑고 경력직만 뽑는다면서요? 신입 뽑아도 저기 고위 간부들 자녀들만 낙하산으로 꽂아준다면서요?"


메모리는 끓어오르는 화를 참을 수 없었는지 얼굴이 홍당무처럼 새빨게져 있었다.

혜윰은 그런 메모리의 뜨거워진 얼굴을 찬 물수건으로 식혀주며 말했다.


"브레인부장님의 아드님들도 그렇게 들어온 거잖아요. 그 삼형제는 형식적으로 대근고시만 치르고, 바로 팀장 자리 받았거든요."


뇌부서의 대다수 직원들은 모두 이런 식으로 들어왔다.

릴리가 상당히 특이한 케이스였다. 그녀야말로 자기 힘으로 직접 들어왔으니까.

리커버 역시 특이하다면 특이한 케이스다. 낙하산이 아닌 오로지 자기 힘으로 대근고시를 수석으로 합격했으니까.

물론, 들어오자마자 온갖 정치질을 하며 이미 더러워진 물을 더 더럽히긴 했지만.


"아, 저기 싸가지 오시네."


메모리아 4인방이 힘없이 수저를 뜨고 있는데, 누군가 식당 안으로 들어왔다. 리커버였다. 혜윰은 그런 리커버를 젓가락 끝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아까 저분 연설한 거 들었어요? 아주 가관이던데요."


황대근은 고개를 끄덕였다.


"재미있더군요. 공정에 평등에 정직에.... 별 놈의 단어는 다 갖다 붙이더라고요. 정작 본인은 아니면서."


대근고시는 대근건설에 들어오기 위한 하나의 관문이다. 인간으로 치자면 거의 수능과 비슷한 수준의 시험이라고 할 수 있다.

수능을 잘 보느냐 못 보느냐에 따라 대학이 갈리듯이, 대근고시 역시 마찬가지다.

잘 보면 대근건설에 취업할 수 있지만, 반대라면 취업같은 건 꿈도 못 꾼다.


"아까 사장님도 오신 것 같던데요?"


레이지의 말에 황대근은 몇 시간 전 리커버가 연설할 때를 떠올렸다.

분명히, 리커버 뒤에 앉아있던 고위 간부들 사이에 헨리도 있었다.

쉐도우는 보디가드마냥 헨리의 옆에 서있었다.


'사장님 표정이 영 좋지 않았는데.'


언제부터일까, 쉐도우가 헨리에게 검은약을 하루도 빠짐없이 매일 먹인 뒤부터일까?

헨리의 표정은 점점 사라졌다. 그나마 남아있던 활발한 성격 또한 많이 사라져버렸다.


'범인을 잡으면 사장님도 원래대로 돌아오실까?'


황대근은 궁금했다. 헨리는 원상태로 돌아올 수 있을까?

그의 몸 속을 지배하던 범인의 그림자는 사라질 수 있을까?







(대근건설 - 메모리아부서)



지겨웠던 시험감독이 모두 끝이 나고, 어느 새 밤이 되었다.

4인방은 부서로 돌아와 한창 오늘 있었던 일에 관해 신나게 떠들어대고 있었다.


어떤 놈이 시험 중에 방귀를 뀌었네, 어떤 놈이 시험감독이 움직인다고 컴플레인을 걸었네, 어떤 년이 다리를 자꾸 떨어서 또 어떤 놈이 컴플레인을 걸었네 등등, 4인방은 시험감독이 겪을 수 있는 모든 것을 하루만에 모두 겪었다.

다시는 시험감독 따위 하고 싶지 않다는 혜윰의 말을 마지막으로, 이야기의 주제는 바뀌었다.


황대근은 동료들에게 꿈 속에서 본 검은 복면의 남자에 대해 이야기해 주었다.

그러자 메모리가 말했다.


"혹시, 드림워킹을 할 수 있는 누군가가 영부의 생각을 훔친 다음, 영부를 통해 우리한테 메세지를 전달 한 것은 아닐까요?"


메모리의 복잡한 결론에 나머지 3인방은 고개를 저었다. 그들의 반응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메모리는 얼굴을 들이밀며 동료들을 설득하기 시작했다.


"아니, 가능하다니까요? 드림워커는 타인의 생각을 훔칠 수 있잖아요. 대근씨도 저번에 그렇게 해서 박정우 구한 거 아닙니까? 박정우는 솔직히 대근씨 아니었으면 이미 저세상 갔어요!"


메모리의 말대로, 황대근은 분명 영부의 기억을 훔친 전적이 있다.

타인의 생각과 기억을 훔친다. 정상적인 사고방식을 가진 이라면 분명 개소리라 할 터다.

허나 세상은 결코 과학적이거나 이성적인 방식으로만 흘러가지는 않는다.


때로는 말도 안 되는 일이 일어나곤 하는 법이니까.


"그러고 보니까, 아까 점심 먹고 잠깐 낮잠 자는데 꿈을 꾸었습니다."


황대근의 말에 혜윰이 질문했다.


"대근씨는 회사에 잠 자러 와요?"

"돈 많은 백수처럼 살고 싶거든요, 저는."


혜윰이 밉지 않게 흘겨보는 것은 무시한 채, 황대근이 말을 이었다.

사실, 꿈 내용이라고 해 봐야 별 거 없었다. 꿈의 내용은 매우 간단했으니까.


한 여자아이가 울고 있었다. 아이 곁에는 굉장히 탐욕스러워 보이는 늙은 남자가 있었다.

누구에게 하는 말인지는 모르겠다. 혼잣말인지, 타자에게 하는 말인지. 어쨌든 여자아이가 구슬프게 말했다. 'save me'라고.


"얼마 전에 인간 황대근이 꾼 꿈이랑 같네요?"


레이지의 말에 혜윰도 동의했다.


"맞아요. 똑같아요. 아주 똑같아요."


길었던 토론아닌 토론 끝에, 4인방은 결론을 내렸다.

복면의 남자가 영부의 생각을 훔친 후, 영부를 통해 우리에게 메세지를 보냈다. 일종의 SOS일지도 모른다.


추측이 정확하다면, 여자아이는 아마 에파타학교에 다니는 학생일 것이다.

그 아이가 살려 달라고 외치는 것이다. 무슨 짓을 당해서 그러는지는 모르겠지만.







(경기도 평택시 - 에파타학교)



훌쩍훌쩍-


한 남자아이가 눈물을 글썽이고 있다. 상당히 어려보인다. 실제 나이는 10살이지만, 또래 친구들에 비해 체격이 작고 말랐기에 훨씬 더 어려 보였다. 갓 유치원을 졸업했다 해도 믿을 정도다.

아이는 학교 내에 있는 낡고 낡은 기숙사 침대에 누워, 창밖을 바라보았다.

하늘은 맑았다. 구름 한 점 없었다.


슥-


아이가 침대 옆 협탁 위에 올려진 공책을 꺼내들었다.

그리고, 무언가를 적어내기 시작했다.


[save 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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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4 구해줘 (save me) (2) 22.01.04 20 1 12쪽
233 구해줘 (save me) (1) 22.01.03 19 1 12쪽
232 소리 없는 아우성 22.01.03 19 1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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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 콩가루집안 (4) 22.01.02 17 1 12쪽
229 콩가루집안 (3) 22.01.01 17 1 13쪽
228 콩가루집안 (2) 22.01.01 18 1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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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6 발 없는 시체 (3) 21.12.31 17 1 12쪽
225 발 없는 시체 (2) 21.12.30 18 1 11쪽
224 발 없는 시체 (1) 21.12.30 18 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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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2 스터디 모임 (3) 21.12.29 17 1 13쪽
221 스터디모임 (2) 21.12.28 17 1 11쪽
220 스터디모임 (1) 21.12.28 18 1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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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7 달밤의 추격전 (2) 21.12.26 17 1 13쪽
216 달밤의 추격전 (1) 21.12.26 16 1 12쪽
215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힌다 (2) 21.12.25 15 1 15쪽
214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힌다 (1) 21.12.25 16 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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