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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힘법사의 서재입니다

내 몸 안의 블랙기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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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올힘법사
작품등록일 :
2021.05.05 08:35
최근연재일 :
2022.02.05 18:40
연재수 :
30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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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1,661,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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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12.26 0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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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달밤의 추격전 (1)

DUMMY

(경기도 평택시 - GH 도서관)



이종범은 생각보다 둔한 면이 있는 남자다. 또 복잡한 것은 싫어하는 단순한 면모도 존재한다.

방금 전의 소리 따위, 지금의 이종범에게는 관심사 밖이다.


"뭐, 고양이나 생쥐 같은 거겠지. 신경 쓸 건 없을 거야."


이종범은 다시 서세희에게 다가갔다. 그는 서세희 옆에 하얀 가루가 든 봉투들을 가리켰다.


"저게 뭔 줄 아십니까?"


이종범이 물었다.


"필로폰입니다. 필로폰. LSD도 일부 섞여있죠."


서세희는 딱히 놀랍지는 않았다. 이미 예상했으니까.

하얀 가루에 아무런 냄새도 나지 않고, 또 이렇게 으슥한 장소에 몰래 보관을 해두었다는 것은... 마약이 아니라면 무엇이겠는가.


"아, 이런!"


이종범은 말실수라고 한 것처럼 자신의 입을 톡 하고 쳤다.


"당신을 살려두어서는 안 될 이유가 한 가지 더 늘어나 버렸군요! 이곳 도서관의 비밀을 알게 되었으니 말입니다."


서세희는 어이가 없었다. 자기 혼자 떠들어 대고는 왜 남한테 뭐라 하는 것인가.


"하하, 사실 저는 이것에 관련된 이야기를 항상 남들에게 말하고 싶었어요. 하지만 그래서는 안 되었죠. 영부가 싫어하니까."


영부라고? 서세희는 깜짝 놀랐다.


"이 도서관이 왜 지어진 건 줄 아십니까? 다 영부의 욕심 때문이죠. 남들 눈에는 자선사업 하는 좋은 종교로 보이면서, 실제로는 마약을 밀매입하는 도서관을 지은 겁니다. 뭐, 그 덕에 저도 밥벌이 하고 살긴 합니다만."


서세희는 순간 성수를 떠올렸다. 영부가 신도들에게 주는 그 성수. 자신도 그 성수를 마셨던 적이 있었다.

구영원을 빠져나온 후, 서세희는 금단현상에 시달려야만 했다.

물론 성수에 넣은 마약의 양은 많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약은 마약이었다.


'그런데.... 그런데 왜 나를?"


서세희의 마음을 알아챘는지, 이종범이 신나서 떠들어대기 시작했다.


"현중관 지파장의 말에 의하면, 당신은 큰하늘님의 말씀을 거역했다고 하더군요. 뭐라더라? 배신했다고 했었나? 아무튼."


그런 것인가. 저번에 구영원 앞에서 자기에게 했던 말의 뜻은 바로 이것이었나.

이런 식으로 죽일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는데. 엘리베이터 위에서 생을 마감할 줄이야.


"뭐, 아무튼! 당신을 죽이기 전에, 좀 재미있는 걸 해야겠습니다. 저항할 생각은 하지 마십시오. 저도 정신 머리 멀쩡한 놈은 아니라 욱하면 당신 혓바닥을 뽑아버릴 수도 있으니까."


콰당탕-


또 다시 소음이 들려왔다.

앞으로 미세하게 돌출된 바지지퍼를 내리던 이종범은, 투덜대며 바지지퍼를 도로 올렸다.


"아... 젠장. 아무래도 고양이가 아닌가 본데."


저벅저벅—


계단으로 향하는 이종범의 두 눈은 풀려있었다. 그의 목덜미에는 묘한 분위기를 풍기는 흉터가 나있었다.


"어떤 새끼인지.... 술래잡기 한 번 해볼까."






이종범이 서세희에게 한참 떠들고 있을 때였다. 황대근과 그의 친구들은 지하 매점에 있었다.

원래는 2층에 있는 비품창고실에 있었는데, 천강우의 부주의로 인해 소음이 들려오고 난 뒤 서둘러 지하 매점으로 달려간 것이다.


"너희들은 대체 왜 따라온 거냐?"


황대근이 투덜대자, 백경민이 말했다.


"친구가 제발로 뒤지러 가는데 그럼 그냥 두고 가리?"

"니들이 오면 방해 된다고."

"우리가 있으니까 아마 네가 죽어도 천천히 죽을 거야."

".....그게 위로야?"

"위론데?"


친구들을 돌려보낼 방도가 없다는 것을 깨달은 황대근은 그냥 포기하기로 결정했다.

도서관에 숨은 뒤 도서관에 있던 이들이 모두 나가고 모든 불이 꺼질 때까지 숨어 기다리느라 다리가 저렸던 이시연은 자신의 가는 다리를 콩콩치기 시작했다.


"어우, 그 좁은데서 쭈구리고 있으려니까 힘들어 죽는 줄 알았네."


천강우가 시비를 걸었다.


"넌 키도 작은데 힘들게 뭐가 있냐?"

"뭐라고? 그러는 넌 큰 줄 알아?"

"나 정도면 평균이지."

"평균 같은 소리하네. 우리 둘 다 평균 이하야."


다투는 두 친구들을 내버려둔 채, 황대근은 냉동고가 있는 계산대 쪽으로 걸어갔다.


'이건 대체 뭘까?'


이종범은 황대근에게, 냉동고를 열어본 적은 없으며 도서관 관계자들이 절대 열지 말라고 했다고 말했다.

이종범의 말대로, 이 냉동고는 그저 냉동 햄버거 따위를 보관하는 일반적인 냉동고인 것일까?


퉁-


냉동고는 열리지 않았다. 비밀번호를 눌러야 하는 것인가 싶어 찾아보았으나 찾을 수 없었다. 심지어 자물쇠도 없었다.


"내가 한 번 열어볼게."


천강우가 나섰다. 그는 두 팔을 걷어붙인 다음 두 손으로 냉동고 손잡이를 꽉 잡았다.


"윽!"


허나 냉동고는 열리지 않았다. 천강우보다 몇 배는 힘이 센 황대근이 해도 안 열리던 문이었다.


"황대근, 나랑 같이 해보자. 둘이 하면 되지 않을까?"


백경민에 제안을 수락한 황대근은 다시 한 번 더 냉동고의 문을 열어보기로 결정했다.

이시연은 뭐 하러 그런 짓을 하느냐며 나무랐으나, 둘은 신경 쓰지 않았다.


"자, 하나 둘 셋 할 때 여는 거다. 오케이? 자 그럼.... 하나, 둘..... 셋!"


황대근의 신호와 함께 냉동고의 문이 열렸다.

문이 열리는 힘이 강했던 탓일까, 황대근과 백경민은 그만 바닥에 나자빠지고 말았다.


콰당탕-


넘어지는 소리가 너무 크다. 황대근은 걱정스러웠다.

그러나 그런 그의 걱정을 잊게 해주는 것은, 바로 눈 앞에 있는 냉동고 내부의 모습이었다. 냉동고 안에는 하얀 가루가 담긴 봉투들이 가득 차 있었다.

이제야 알게 된 것이지만, 냉동고는 작동하지 않았다. 코드는 뽑혀 있었다. 언제부터 뽑혀있었는지는 알 수 없다.


터벅터벅—


황대근이 넘어짐과 동시에 발자국 소리가 점점 가까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소리로만 파악해 보건데, 이 소리는 분명 계단을 내려오는 소리였다.


황대근과 그의 친구들은 당황했지만,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며 고개를 끄덕이더니 서둘러 몸을 피했다.






"흠...."



이종범은 한 손에 후레쉬를 든 채, 지하 매점의 이곳저곳을 살펴보고 있었다.

냉동고의 문은 열려있다. 누가 있었는지 공기는 따듯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자신이 마지막으로 매점을 정리했을 때의 정돈된 모습이 흐트러져있었다.


이종범은 확신했다. 누군가 이곳에 있었다. 어쩌면 한 명이 아닐지도 모른다.

조금 전 들렸던 그 소리는, 누군가 넘어지는 듯한 소리였다.

소리가 둔탁한 것이 가능성은 두 가지다. 몸무게가 많이 나가는 사람이거나, 혹은 둘 이상이거나.


GH도서관에는 총 두 개의 계단이 있다. 계단은 도서관 건물의 양 쪽 끝에 각각 위치해 있다.

도서관에 오는 대다수의 사람들이 사용하는 계단은 조금 전 이종범이 타고 내려왔던 바로 그 계단이다.


"반대편 계단으로 간 건가?"


반대편 계단은 흔히 비상계단으로 불리는 바로 그 계단이다.

화재에 대비해 만들어진 계단이었다.


저벅저벅—


이종범은 매점 옆에 있는 비상계단으로 걸어갔다. 비상 계단 쪽 문이 열려있었던 것이다.

분명 닫아두었던 것 같은데. 누군가 도서관에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한 명이든 두 명이든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문제는 '누구인가'이다.


끼이익—


비상계단의 문이 열리고, 이종범은 천천히 계단을 한 칸 한 칸 오르기 시작했다.


"회원님......? 길을 잃으셨습니까....? 어디 계십니까.....? 제가 도와드리겠습니다....."






이종범이 2층을 지나 벌써 3층까지 올라간 동안, 황대근과 친구들은 화장실에 있었다. 그것도 여자화장실에.


"왜 우리가 여기 있어야 하는 거야?"


천강우가 아주 작은 목소리로 속삭이자, 이시연이 대답했다.


"범인한테 걸려서 죽는 것보다는 낫잖아!"


황대근은 화장실 칸막이에 등을 기댄 채 생각했다.


더 이상 발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원래는 3층으로 올라가려 했지만, 알 수 없는 본능이 자신을 이곳으로 이끌었다.

맹세코 여자 화장실에 들어오고 싶었던 것은 아니지만, 이 방향으로 와보니 있는 것이 이곳 뿐이었다.


"남자화장실로 가면 되는 거 아니었냐?"


백경민이 묻자, 이시연은 힘없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냥 황대근이 가는대로 따라간 것 뿐이야. 그리고 어두워죽겠는데 여자화장실인지 남자화장실인지 그게 구분이 가는 줄 아니? 게다가 지금은 그런 거 따질 때가 아냐. 이러다 우리 다 죽게 생겼다구!"






이종범은 3층에 있었다.

3층에 멈춰선 엘리베이터의 윗부분에는 서세희가 있었다. 그녀는 이종범을 죽일 듯이 노려보았다.


"이곳에도 없는 것 같고.... 하하, 도서관이 제법 큰 편이라 술래잡기 하기에는 아주 안성맞춤이군요. 그렇지 않습니까?"


서세희는 대답하지 않았다. 아니, 사실 대답하기 어려웠다. 아까 이종범이 자신에게 주사한 마약 때문이었다.

그녀의 정신은 놀라울 정도로 멀쩡했지만, 어찌 된 일인지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안면 근육도 근육이라고, 그녀의 입 역시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그러니 말을 하기 버거웠던 것도 무리는 아닐 것이다.


"진짜 돌아버리겠네요. 하하! 기왕 이렇게 된 거, 재미있는 얘기 하나 들려드릴까요? 작년 가을 쯤이었나요? 아니면 여름의 끝자락이었던가? 두 명의 남녀가 죽은 사건이 발생했지요."


이종범이 점점 가까이 다가오자, 서세희의 두 눈이 미세하게 떨렸다.


"언론에서는 13년 전 평택 살인사건의 모방범이랍시고 떠들어대는데, 아닙니다. 그건 저만의 아트(art)였어요. 제가 자존심 상하게 그깟 13년 전 범인이나 따라하겠습니까?"

"아, 뭐.... 물론... 저 혼자서 그 예술을 한 것은 아니었죠. 도와준 놈들이 두 명이었나, 암튼 있었어요."

"하지만, 제가 한 게 더 많지요. 직접적으로 조각을 낸 것은 나였으니까."

"그런데, 제가 만든 예술품의 조각들이 어디 있는 줄 아십니까?"

"얼마 전에, TV에서 피해자들 시체의 일부가 도난 당했다는 얘기 들으셨나요?"

"그건 도난 당한 게 아닙니다! 그것들의 원래 주인은 나란 말입니다!"

"낄낄낄.... 저의 물건을 되찾은 후, 저는 그것들을... 저의 예술작품들을 다시 보관해 두었습니다."

"어디에 보관했을까요? 한 번 잘 생각해보시죠."






이종범은 도서관 밖으로 나갔다.

어두컴컴한 어둠속에 서세희만을 내버려 둔 채, 밖으로 나간 것이다.


밖에는 비가 내리고 있었다. 낮 동안 하늘이 영 심상치 않더니, 결국 구름들이 무거워진 몸을 견디다 못해 땀을 쏟아내기 시작한 것이다.


"......"


이종범은 우산을 들고 있었다. 검은 우산이었다. 바람이 불어왔기에 비는 제법 지저분하게 내렸다.

허나 이종범은 그런 것들 따위 아랑곳하지 않은 채, 도서관을 바라보았다.


그는 생각했다. 술래잡기의 술래는 바로 나다. 헌데 이 술래잡기의 다른 참가자들은 모두 어디에 있는 것일까?


"....."


한참 동안이나 시선을 피하지 않고 도서관을 지켜보았지만, 참가자들의 흔적은 찾을 수 없었다.

미세한 움직임이나 흔적이라도 발견한다면 좋겠지만, 아무것도 없었다.


"헛것을 들은 걸까요....?"


휙-


이종범은 결국 도서관을 등진 채 뒤를 돌았다.


치익-


겉옷 주머니에서 담배 한 개비를 꺼낸 후, 입에 물고는 라이터로 불을 지폈다.

이 담배는 얼마 전, 얼굴이 불타 죽은 바로 그 천식환자의 담배였다.


피해자가 죽기 전 얼마 피우지 않았는지, 담배갑 안에는 꽤 많은 양의 담배가 들어있었다.


"후우....."


담배를 깊게 빨아들인 후 다시 내뱉자, 뿌연 연기가 하늘 높이 올라갔다.


"빨리 서세희를 처리하고는 싶은데, 이 찜찜한 기분은 대체 뭘까요."


이종범은 약간은 떨리는 손으로 담배 한 개비를 더 꺼내려 겉옷 주머니에 손을 집어넣었다.

그때였다.


달칵-


도서관의 불이 켜졌다.

뒤돌아있던 이종범의 눈 앞에 밝은 빛이 감돌았다. 그는 뒤를 돌아보았다. 서세희가 있는, 바로 그 곳이다. 그가 피우던 담배는 땅에 떨어졌다.


".......찾았다."


이종범이 다시 도서관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을 땐, 이미 도서관의 불은 꺼진 상태였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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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2 스터디 모임 (3) 21.12.29 17 1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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