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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힘법사의 서재입니다

내 몸 안의 블랙기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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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올힘법사
작품등록일 :
2021.05.05 08:35
최근연재일 :
2022.02.05 18:40
연재수 :
30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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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287
추천수 :
327
글자수 :
1,661,802

작성
22.01.03 1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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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구해줘 (save me) (1)

DUMMY

(대근건설 - 메모리아부서 구내식당)



황대근의 예상은 정확했다.

백설하는 그에게 이렇게 말했다.


'대근씨 말이 맞아요. 에파타는 평택에 있는 에파타학교를 가리키는 말이었어요.'

'하루종일까지는 아닌데, 머릿속에 범인의 생각이나 기분이 마구 떠올라요.'

'오늘 아침에는 저도 모르게 이상한 생각이 떠오르더라구요. 그렇고 그런 생각은 아니고, 뭐랄까, 제가 제가 아닌 기분? 누가 내 몸을 지배하고 있는 것 같은 기분?'


다음 날 월요일 점심시간에 황대근은 동료들에게 이 사실을 전했다.

메모리아 동료들의 반응은 영 시원찮았다. 그 밍밍한 반응에 황대근은 속으로만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하다. 이미 우리가 예상했던 거니까.


"에파타학교라...."


젓가락으로 눅눅한 돈까스의 애꿎은 피부를 푹푹 찌르며 혜윰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디서 들어봤는데. 그게 어디 있는 학교였지? 아! 기억났어요!"


그녀가 손뼉을 치며 말했다.


"진위쪽인가? 그쪽에 있는 학교일 거예요. 일반 학교는 아니고, 조금 몸이 불편한 친구들이 가는 학교라고 했어요. 자세한 건 몰라요. 제가 자료실에서 뭐 하나 좀 슬쩍하다가 봤거든요."


다 식어버린 돈까스를 먹으며 황대근이 물었다.


"더 알고 있는 건 없습니까?"


혜윰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저도 몰라요. 어쨋든 대근이는 그 학교랑 관계가 없잖아요."







(경기도 평택시 - 에파타학교)



경기도 평택시 진위면에는 학교가 하나 있다.

바로 에파타학교라 불리는 청각장애학교였다.


웅성웅성-


오늘이 무슨 날인 것인지, 에파타학교에는 방송관계자들이 즐비했다. 아마 촬영와 인터뷰를 하러 모인 것일 터였다.

그들은 모두 학교 운동장에 있었다. 그 중 가장 눈에 띄는 한 남자가 보인다. 바로 경찰서장 안광윤이다.


인터뷰를 하는 그의 곁에는 또 다른 남자가 있었다. 에파타학교 교장인 안성택이었다.

두 남자는 모두 운동장에서 검고 무거워보이는 카메라의 렌즈를 바라보며 인터뷰중이었다.


하하하-


뭐라고 했길래 저 두 남자가 저리 웃는 것일까?


"안광윤 경찰서장님께서는 에파타학교에 대해 매우 긍정적인 답변을 해주셨는데요, 이유가 있을까요? 일각에서는 단순히 주위의 눈을 생각해 억지로 좋다는 대답을 했다는 얘기도 많이 나옵니다."

"에파타학교 근처 주민들은, 학교를 완공하기 전까지도 줄곧 반발을 했다고 하던데요. 그런 주민들의 의견을 무시하고 학교를 지으셨는데, 어떠신가요?"


인터뷰어의 질문에 안광윤이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우리와 함께 지내는 장애우들을 우리가 잘 보살펴야 하지 않겠습니까. 평범하게 자라지 못하는 아이들이, 일반 학생들이 다니는 학교에 가게 되면 괴롭힘을 당하거나 따돌림을 당하는 경우가 많이 있다고하더군요. 제가 평택 경찰서장으로 있는 동안 평택에 있는 모든 학교는 따돌림과 괴롭힘이 조금도 없는 좋은 학교로 만들 생각입니다."


안광윤의 가증스러운 대답에 공감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여보이며, 인터뷰어가 이번에는 안성택 쪽으로 몸을 돌려 그에게 마이크를 들이밀었다.


"학교 시설이 상당히 좋은데요, 교장선생님께서는 전 재산을 이 학교를 세우기 위해 투자하셨다면서요?"


머리가 거의 벗겨지고, 배는 금방이라도 순산할 듯 튀어나온 안성택이 대답했다.


"어려운 결정은 아니었습니다. 이는 모두를 위한 일이었으니까요. 우리 주위에 있는 어렵고 힘든 아이들을 위해서라면 무엇인들 못하겠습니까."


안광윤과 안성택이 인터뷰를 하는 동안, 에파타학교 학생들은 운동장에 두 줄로 나란히 서있었다.

그들은 마치 군대에서 교육이라도 받은 군인들처럼 질서정연하게 움직였다.

방송 촬영팀과 인터뷰어가 눈치를 챘을지는 모르겠지만, 아이들의 곁에는 에파타학교 선생들이 서있었다.

선생들은 아이들이 조금이라도 흐트러지는 모습을 보일까봐, 두 눈에 불을 켜고 감시했다.


"그럼 안으로 들어가 보도록 하겠습니다. 학생들을 인터뷰해도 괜찮겠지요?"


곧 촬영팀과 인터뷰어가 학교 안으로 들어왔다.

운동장에 벌을 서는 것처럼 서있던 학생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시설이 정말 좋네요. 언어장애나 청각장애가 있는 아이들을 신경 쓴 게 티가 납니다."


인터뷰어는 '행복반' 이라는 이름의 교실내부를 빙 둘러보더니, 한 어린 여학생에게 마이크를 들이밀며 질문했다.


"이렇게 좋은 학교에 다니니까 어때요? 선생님들은 좋아요?"


아이는 대답하지 않았다. 인터뷰어가 머쓱하게 있자, 안성택이 말했다.


"그 아이는 말을 하지 못합니다. 청각장애가 있거든요. 제가 대신 질문해드리겠습니다."


이 여학생에게는 진심으로 안타깝게도, 인터뷰어와 촬영팀 중 그 누구도 수화를 할 줄 몰랐다. 이들의 언어를 알지 못했다.

이 사실만큼 여학생에게 지옥처럼 다가온 것이 있을까.


슥- 슥슥-


안성택이 수화로 여학생에게 인터뷰어의 말을 전했다.

그 순간, 행복반 교실에 있던 아이들의 표정이 일제히 굳어졌다. 허나 그 누구도 그것을 눈치채지 못했다.


"......"


안성택의 수화가 끝이 나고, 여학생이 천천히 손을 들어 움직이기 시작했다. 오른손은 엄지를 치켜들어보이며 펴진 왼손 위에 올려두었다. 존경한다는 의미의 수화였다.


아무리 수화를 모르는 사람일지라도, 엄지를 치켜세웠다는 것은 긍정적인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는 것 쯤은 알 것이다.


인터뷰어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 친구가 좋아하는 것 같네요. 교장선생님, 이 아이에게 뭐라 질문하신 건가요?"


그러자 안성택은 얼굴에 묘하게 역한 미소를 띄웠다.

진실을 알고 있는 여학생과 아이들의 얼굴에는 경련이 일었다. 억지로 웃느라 괴로운 것이다.


"'학교에 다니는 게 즐겁니?' '선생님들은 어떠니?' 라고 물었습니다."







(경기도 평택시 - H고등학교)



"우리 아빠 인터뷰한 거 봤냐?"


점심시간이 거의 끝나갈 무렵이었다.

3학년 1반 교실에서 안익준은 삐딱한 자세로 책상에 걸터앉아 있었다.

물론, 그 책상의 주인은 안익준이 아니었다. 다른 학생이었다.

그는 제일 만만한 학생을 고른 것이다. 3학년 1반에는 박정우가 없으니, 평소에는 같은 반 학생을 괴롭혔다.


"너희 아빠 완전 착한 분이시더라."


안익준의 곁에 있던 한 여학생이 말했다.


"장애인들 위해서 그런 일도 하시잖아."


이제보니 안익준의 주변에는 친구들이 제법 있었다.

정교빈과 방금 전의 여학생은 물론이고, 어림잡아 대충 7~8명 정도는 되어 보인다.


"당연하지."


여학생의 말에 안익준은 당연한 걸 얘기한다는 듯 고개를 처들었다.


"우리 아빠가 얼마나 좋은 분이신데. 그거 아냐? 긴꼬리 원숭이 새끼는 긴꼬리 원숭이라는 말."


이런 말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 아빠 밑에서 자랐으니까, 내가 이렇게 잘 큰 거지."


성적조작사건이 터진 후, 안익준의 엄마에 대한 태도는 180도 바뀌었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는 마마보이처럼 엄마에게 모든 것을 기대했는데, 이젠 아니었다.


각종 언론에서는 익준엄마에 대한 자극적인 기사만 배출해냈다.

그 어떤 언론에서도 안광윤이나 안익준을 공격하지 않았다.

언론은 그저, 안광윤과 안익준을 불쌍한 피해자로 묘사했을 뿐이다.


익준엄마의 행동은 분명 잘못된 행동이었지만, 순식간에 아들과 남편에게 외면 당했으니 상실감은 제법 클 것이다.


"쟤는 언제 감옥 들어가냐?"


한편, 안익준 패거리의 반대편에는 황대근과 친구들이 있었다.

이시연은 싸가지없는 안익준을 보며 투덜거렸다.


"언제 판결나지? 아직 재판 중이라 했었나?"


이시연의 질문에 황대근이 대답했다.


"아직 멀었어. 10월은 되어야 확정날 걸. 이미 안익준 쪽에서 항소했잖아."

"항소했어? 언제?"

"1심에서 징역 2년 때렸는데, 안익준 측에서 항소한거야. 부당하다고."


확실한 것은 하나다.

무죄추정의 원칙에 의하면 모든 판결이 나기 전까지, 안익준은 무죄다.


"진짜 어이없어. 누가 봐도 안익준은 죄가 많다고!"


이시연과 다른 친구들이 안익준의 뒷담을 신나게 까는 동안, 황대근은 생각했다. 얼마 전 꾸었던 꿈을 오늘도 꾼 것이다.

꿈 속의 그 여자는 누구일까? 왜 자꾸 이런 묘한 분위기의 꿈을 꾸는 걸까?


'악몽은 아니니까 그나마 다행이긴 한데.'

"황대근! 너 내일 그거 가져와!"


한참 생각에 빠져있는데, 이시연이 그에게 말을 걸었다.


"알겠지? 까먹으면 안 돼!"


까먹으면 안 된다고? 황대근은 이해하지 못했다. 무얼 까먹으면 안 된다는 건가?


"뭔 소리야?"


황대근이 진심으로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자, 이시연은 답답하다는 듯 말했다.


"금방 학생회장 선거 있잖아! 저 미친 안익준 놈도 나온다잖아! 준비해야지! 팜플렛 같은 거 만들어서 준비해야 할 거 아냐! 너 서울의대 가려면 그것도 나가야 하잖아!"







"교빈엄마!"


오후 2시쯤, 익준엄마는 장을 보기 위해 동네 슈퍼에 갔다. 그곳에서 그녀는 정육코너에 있는 교빈엄마를 마주할 수 있었다.

허나, 교빈엄마는 혼자 있지 않았다. 익준엄마가 주최했던 스터디모임의 엄마들과 함께였다.


"아..."


익준엄마의 표정이 좋지 않다. 다른 엄마들도 마찬가지. 그녀들은 성적조작사건이 탄로난 후, 대놓고 익준엄마를 무시했다.

설사 불똥이라도 튀길까 봐 거리를 둔 것이다.


"어머, 자기들 장보러 왔어?"


익준엄마는 얼굴에 철판이라도 깐 것인지 자연스럽게 행동했지만, 다른 엄마들은 아니었다.

익준엄마와는 말도 섞기 싫었는지, 그녀들은 대놓고 익준엄마를 무시했다.


휙-


타임세일 중인 정육코너에 있던 엄마들이 자리를 이동했다.

마치 익준엄마를 보지 못하기라도 한 것처럼 행동했다.


"아, 아니! 자기들 어디가?"


익준엄마가 외쳤지만, 그녀들은 뒤돌아보지 않았다.


[자~ 오늘 타임세일 들어갑니다~ 어머님들~! 오늘 저녁반찬으로 돼지불고기 하나 들여가십쇼~! 오늘 들어와서 야들야들하고 부드럽습니다~! 지방은 적당하고 살코기는 뻑뻑하지 않고 부드러운 우리 돼지고기~! 자, 자! 얼마 남지 않았어요~ 많이들 들여가세요~!]







(경기도 평택시 - H아파트)



그날 밤, 황대근 또다시 꿈을 꾸었다.

이번에는 조금 다른 꿈이었다.


휘이잉-


배경은 추웠다. 이곳이 한국인지, 일본인지, 아니면 아프리카인지 유럽인지도 알 수 없다.

사막일까? 아니다. 그렇다고 하기엔 바닥에 모래가 없다. 그럼 남극일까? 아니다. 바닥에 눈이 없다.

그럼 여긴 어디인가?


그가 알 수 있는 것은 단 하나, 날씨가 아주 춥다는 것 뿐.

황대근의 팔에는 닭살이 돋아났다. 날씨가 너무 추웠던 것이다.


아직 6월인데, 초여름날씨여야 정상일 텐데 이리도 춥다니. 황대근은 두 팔로 온 몸을 감싸 열의 손실을 방지했다.


저벅저벅-


더 이상 이 추위를 견딜 수 없다고 생각했을 즈음, 누군가 그에게 다가왔다.

가까이 다가온 것은 아니었다. 그저, 형체를 파악하고 얼굴의 생김새 정도를 알아차릴 수 있을 정도의 거리였다.


".....?"


누군가는 황대근과 대략 20미터 정도의 거리를 사이에 두고 멀뚱히 서있었다.

누군가는 검은 복면을 쓰고 있었는데, 춥지도 않은지 아주 얇은 옷을 입고 있었다.

몸을 떨지도 않았다. 추위에 강한 사람임에 틀림없다.


'남자같긴 한데.'


얼굴과 목 부분을 복면으로 가리고 있었기 때문에, 황대근은 그가 남자라는 사실 외에는 알 수 있는 게 없었다.


저벅저벅-


남자가 점점 가까이 다가왔다.

황대근은 처음 보는 이 남자가 자신을 해칠까 경계하며 뒤로 물러났다.

허나 남자는 겨우 이 한마디만을 그에게 건넸을 뿐이다.


" Ephphatha. save me."


그날, 백설하는 실종됐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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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6 악인의 선행은 선행인가 (1) 22.01.05 17 1 12쪽
235 구해줘 (save me) (3) 22.01.04 18 1 12쪽
234 구해줘 (save me) (2) 22.01.04 20 1 12쪽
» 구해줘 (save me) (1) 22.01.03 19 1 12쪽
232 소리 없는 아우성 22.01.03 19 1 11쪽
231 나에게로의 초대 22.01.02 17 1 12쪽
230 콩가루집안 (4) 22.01.02 17 1 12쪽
229 콩가루집안 (3) 22.01.01 17 1 13쪽
228 콩가루집안 (2) 22.01.01 18 1 10쪽
227 콩가루집안 (1) 21.12.31 21 1 11쪽
226 발 없는 시체 (3) 21.12.31 17 1 12쪽
225 발 없는 시체 (2) 21.12.30 18 1 11쪽
224 발 없는 시체 (1) 21.12.30 18 1 12쪽
223 스터디 모임 (4) 21.12.29 17 1 12쪽
222 스터디 모임 (3) 21.12.29 17 1 13쪽
221 스터디모임 (2) 21.12.28 17 1 11쪽
220 스터디모임 (1) 21.12.28 18 1 13쪽
219 원래 사건 터지면 몸통이 아니라 꼬리가 잡혀가는겨 21.12.27 18 1 12쪽
218 달밤의 추격전 (3) 21.12.27 17 1 13쪽
217 달밤의 추격전 (2) 21.12.26 17 1 13쪽
216 달밤의 추격전 (1) 21.12.26 15 1 12쪽
215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힌다 (2) 21.12.25 15 1 15쪽
214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힌다 (1) 21.12.25 16 1 12쪽
213 행복은 성적 순이 아니잖아요 (3) 21.12.24 16 1 12쪽
212 행복은 성적 순이 아니잖아요 (2) 21.12.24 19 1 13쪽
211 행복은 성적 순이 아니잖아요 (1) 21.12.23 20 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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